블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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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스
토대 장르 African American folk music, 노동요, 스피리튜얼스
전성기 19세기 말, 미국 남부
사용 악기 기타, 베이스 기타, 피아노, 하모니카, 더블 베이스, 드럼, 색소폰, 보컬, 트럼펫, 트럼본
파생 장르 블루글래스, 재즈, R&B, 로큰롤,
종류
부기우기, Classic female blues, 컨트리 블루스, 델타 블루스, 일렉트릭 블루스, Fife and drum blues, 점프 블루스, 피아노 블루스
퓨전 장르
블루스 록, African blues, 펑크 블루스, 소울 블루스
지역별 장르
브리티시 블루스, Canadian blues, 시카고 블루스, Detroit blues, 이스트코스트 블루스, Hill country blues, Kansas City blues, Louisiana blues, Memphis blues, New Orleans blues, 뉴욕 블루스, Piedmont blues, St. Louis blues, Swamp blues, 텍사스 블루스, 웨스트코스트 블루스
v  d  e  h

블루스(Blues)는 미국 노예 해방 선언 이후 구체화 된 노동가 또는 민요 형식 속에 흑인들이 자기를 표현하는 음악 형식으로 발전된 음악을 말한다.

블루스는 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끌려온 흑인 노예들의 음악이다. 미국 노예 시대 흑인들의 노동요나 필드 홀러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이들과 스피리튜얼스 등, 주로 집단적으로 불리던 소박한 민요가 개인이 부르는 노래로 바뀌어 블루스가 된 것으로 전해진다. 초기의 블루스 (포크 블루스·컨트리 블루스)는 노예해방이 이루어진, 19세기 중엽 이후의 것으로, 해방된 흑인들의 비참한 생활 환경, 인간적인 슬픔, 고뇌 ,절망감 등이 나타내고 있다.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길거리 술집이나 시장터 축제에서 연주하는 블루스 맨(Blues Man)들을 통해 다른 지역으로 퍼졌고, 흑인들의 슬픔과 소망, 그리고 기쁨(모든 감정들)등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또한 독특하게 느린 블루스의 리듬은 백인들 사이에도 널리 퍼져 많은 춤 곡들이 나왔으며, 그러한 음악과 춤에도 블루스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어원[편집]

블루스의 어원은 '청색(블루) 인디고'에서 유래되는데, 남부 아프리카인들의 문화 중, 죽음을 맞아 의식을 치룰 때 의복을 청색으로 물들여 입음으로써 자신들의 슬픔, 고통 등을 표현하였다. 남부 아프리카인들이 청색으로 물들일 때 사용하던 식물이 바로 Indigofera Tinctoria이다. 이것은 주로 미국 남부 노예 농장에서 많이 자랐는데, 이 풍습과 서부 아프리카 노예들이 목화를 재배할 때 부르던 노동요를 합쳐 우리가 알고 있는 "블루스" 라 부르게 된 것이다. 블루스라는 말이 처음 쓰이기 시작한 것은 1890 ~ 1900년대 초이며, 1912년에는 흑인 밴드의 리더였던 W. C. 핸디(William Christopher Handy)의 《Memphis Blues》이 발표된다. 그 뒤, 많은 노래들이 블루스라는 이름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블루스가 우울과 슬픔을 의미하는 블루 데빌스(Blue Devils)에서 유래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Blue Devils는 조지 콜먼(George Colman)의 원맨 광대쇼 'Blue Devils'(1798)에서 처음 사용되었다.[1]

블루스의 형식과 선법[2][편집]

12마디 진행의 코드: C 블루스의 코드:
I I or IV I I7
IV IV I I7
V V or IV I I or V
C C or F C C7
F F C C7
G G or F C C or G

블루스는 음악적으로 따지면 독특한 방식을 보유하고 있다. '도레미파솔라시도' 7음 가운데 미와 시가 반음 내려가고 (b), 파는 반음 올라가 (#), 3음이 블루지한 상태를 보인다. 그러나, 그 것도 정확히 반음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이 아닌 피아노로는 어려운 미분 (微分)음의 개념이다. 이 반음 가까이 낮아지는 음을 블루 노트라고 한다. 또한 코드 진행상 '도미넌트 코드 (Ⅴ)' 앞에 '서브 도미넌트 코드(Ⅵ)' 가 위치하는 일반 패턴과 달리, 도미넌트가 서브 도미넌트를 앞선다. 또한 '도레미파솔라시도' 가 아닌 '도시라솔파미레도' 의 순으로 높은 음에서 내려오는 이른바 하행 (下行)선법이다. 여러모로 클래식이 확립해놓은 양식과 개념에서 일탈해있는 음악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블루스의 탄생 배경에서 '흑인 노예' 및 '목화 밭에서의 노동'이라는 점은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흑인 노예란 피압박 인종을 뜻하며, 목화 밭에서의 노동이라는 것은 블루스가 노동가(중국어: 勞動歌), 혹은 노동민중(중국어: 勞動民衆)의 가요임을 알려준다.

블루스 선법이 다른 것도 실은 여기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억압받는 사람의 소리이기에 거기엔 '저항의 요소'가 내재해 있다. 분위기와 자극이 가해지면 일시에 분출하고야 마는 폭발성이 있다. 말 그대로 '휴화산'이다. 초창기 백인 주인들이 드럼을 금지시켰던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흑인 노예들은 자신들의 고향인 아프리카에서 타악기의 비트에 맞춰 노래하고 춤추는 전통을 지녔기에, 이를 그냥 내버려두면 종족적 통일성이 고무되고 나아가서는 백인 주인들에 대한 반항과 폭동을 일으킬 불상사의 소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백인들은 드럼을 금지시키는 대신, 내키는 대로 노래하는 흑인들에게 순종을 유도하기 위한 목적에서 유럽 스타일의 음악을 가르쳐주었다.

이로써 민중적이고 슬픈 음조를 띠는 블루스에 음악적 체계가 잡힌다. 이 때문에 블루스는 '아프리카에서 날아온 씨앗이 유럽의 양분을 흡수하여 미국 땅에 뿌리내린 음악' 이라고 정의되는 것이다. 블루스는 슬픈 노래지만, 행복하고 유쾌한 블루스도 있다.

역사[편집]

기원[편집]

블루스의 기원은 18세기 미국 남부 목화 농장의 노예들로부터 시작된다. 남북전쟁 이후, 농장에서 흑인 노예들에 의해 불리었던 할러, 혹은 노동요로 불리는 음악들은 농장제가 없어지면서 동시에 소멸되었지만, 아프리카적 요소들을 고스란히 도입하고 있던 이러한 음악들이 민스트럴 쇼, 교회에서 불리던 가스펠등과 합쳐지면서 흑인영가렉타임, 부기우기등으로 발전 되었고, 블루스의 원류를 형성하는 음악이 된 것이다. 따라서 블루스는 본질적으로 '아프리카적 미국'(African-America)음악이다. 그리고 블루스가 완전한 형태를 이룬 것 역시 농장제의 와해와 맞물린 19세기 후반으로 여겨지고 있다. 또한, 오늘날 블루스의 기본적인 형태인 12마디 블루스 역시 이 시기에 나타난 것으로 보이지만, 당시에 주로 쓰이던 형태는 12마디 블루스가 아닌, 8마디 블루스가 2번 나열되는 형태였다.

1910 ~ 20년대[편집]

1910~1920년대 등장한 초기의 블루스 뮤지션들은 거의 대부분이 미국 남부지역 출신이었다. 그 중에서도 블루스의 발원지로 거론되는 미시시피 유역은 거대한 목화 농장들이 모여있던 지역이다 보니, 다른 어떤 곳 보다도 블루스의 원류가 되었던 노동요할러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있었을 것 이고, 이러한 전통이 이들 초기 블루스 뮤지션에게 음악적인 토양을 만들어 주었음은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일이다.

미시시피 델타 블루스로 불리기도 하는 초기의 블루스는 컨트리 블루스 혹은 포크 블루스로 불리기도 한다. 클럽에서 대규모의 빅밴드와 함께 연주하던 스윙 재즈와는 달리, 대부분의 블루스 뮤지션들은 떠돌이 악사들 수준이었다. 어쿠스틱 기타하모니카가 악기의 전부였고 글을 읽거나 쓰기는 커녕, 악보조차도 제대로 볼 수 없는 문맹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흑인 인구가 많고, 그들에게 음악을 공급할 가능성이 있는 풍부한 자원을 당시의 레코드 회사들이 그냥 지나치지는 않았다. 찰리 패튼(Charley Patton), 선 하우스(Son House), 로버트 존슨과 같은 뮤지션들이 하나 둘씩 레코딩을 시작했고, 백인들에게도 블루스의 존재가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미시시피 델타 블루스가 완전한 형태를 갖춘 것은 1930년대의 일 이었다. 그리고 남부 블루스의 뮤지션들 중에서도 로버트 존슨의 존재는 후대에 큰 인상을 남겼다. 그의 기타 스타일은 곧 이어 탄생 할 시카고 블루스(Chicago Blues, 혹은 일렉트릭 블루스라 불린다) 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고, 여자친구에게 독살당하게 되는 비극적인 죽음은 그의 음악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어 주기도 했다.

1930년대[편집]

미국의 30년대는 대 공황과 2번에 걸친 세계대전으로 수백만 명의 흑인들이 남부를 떠나 북부 도시로 이동하게 되자, 블루스는 좀 더 넓은 지역으로 펴져나갔고, 도시 환경에 적응하게 되었다. 가사에도 도시풍의 주제가 사용되었고, 블루스 밴드들은 블루스 가수 외에도 피아니스트, 하모니카, 베이스, 드럼으로 구성된다. 블루스는 처음엔 앨틀랜타, 멤피스, 세인트루이스에 맨 처음 정착되고, 그 후에 시카고와 뉴욕, 디트로이트 등지로 퍼져나가게 된다.

이러한 도시풍의 블루스를 어반 블루스(Urban Blues, 도시풍 블루스)라 부르는데, 이 어반 블루스의 발전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곳은 시카고였다. 어반 블루스는 컨트리 블루스의 요소와 도시적인 컬러를 적절히 융합한 절충주의의 형태를 띄고 있다. 여기서 도시적인 컬러의 의미는 재즈적인 이디엄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대 도시에서 유행하던 스윙 재즈의 스타일을 받아들여 재즈적 취향이 강한 대규모의 블루스 밴드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재즈의 관악기 편성을 받아들임 더불어, 렉 타임, 부기우기의 전통을 받아들여 발전한 어반 블루스는 조용하고 사색적인 느낌의 남부 블루스와는 달리 활기차고, 격렬한 느낌을 청중들에게 전달했다. 1920 ~ 30년대에 멤피스 미니, 탬퍼 레드, 빅 빌 브룬지, 존 리 서니 보이 월리엄슨 등은 시카고에서 인기있던 블루스 가수였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머디 워터스, 하울링 울프, 엘모어 제임스, 리틀 월터 제이콥스 등의 새로운 블루스 맨으로 바뀌었다.

1940년대[편집]

재즈 기타리스트 찰리 크리스천(Charlie Christian)에 의해 일렉트릭 기타가 도입 된 이후, 블루스 역시 일렉트릭 기타를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티 본 워커에 의해 블루스로 도입된 일렉트릭 기타의 사용은 대규모 콘서트 홀에서의 연주가 많아지기 시작한 블루스맨들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고출력 엠프를 동반한 일렉트릭 기타의 사용은 단지 사용되는 악기만 변화시킨 것이 아니었다.  과거 어쿠스틱 기타에서는 사용 할 수 없었던 일렉트릭 기타만의 독특한 주법들이 사용되기 시작되었고, 본격적으로 모던 블루스의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일렉트릭 블루스, 혹은 시카고 블루스라 부른다. 1940년대에 주로 시카고 남부의 바나 클럽에서 생겨났는 데, 머디 워터스, 하울링 울프 등으로 설명되는 시카고 블루스는 일렉트릭 기타, 하모니카, 일렉트릭 베이스, 전자 피아노 혹은 전자 오르간, 드럼으로 소규모 편성되어 연주된다. 시카고 블루스는 컨트리 블루스와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컨트리 블루스보다 발전한 형태이고, 악기의 사용도 기타 아니면 하모니카가 전부였던 컨트리 블루스에서 보다 다양해져서 시카고 때부터 피아노와 베이스, 드럼 등이 본격적으로 사용되어 음악적인 테크닉 및 표현방식이 휠씬 다양해지기 시작한다. 블루스에 일렉트릭 기타가 도입된 이후 후대 뮤지션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수 많은 전설적 뮤지션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엘모어 제임스(Elmore James), 윌리 딕슨(Willie Dixon), 티 본 워커(T-Bone Walker) 등은 로큰롤과 록의 출현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최근에 들어와 흑인 음악을 통칭하는 표현으로 사용되는 '리듬 앤 블루스는 사실 1940년대의 일렉트릭 블루스를 의미하는 표현이었다. 시카고 블루스가 가스펠적인 요소를 받아들임으로서 탄생한 리듬 앤 블루스는 그 어떤 블루스 보다도 블루스의 전통에 가까운 블루스 음악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흑인적인 음악이라는 리듬 앤 블루스가 백인적인 전통이 강한 음악 컨트리 앤 웨스턴과 합쳐짐으로써 인종을 초월한 음악 로큰롤이 탄생한 것은 대중 음악사에서 가장 큰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부의 흑인노예들은 2번에 걸친 세계대전 기간에 주인이 해방시켜주었든, 몰래 도망치든 북부 대도시로 이동하게 되었고, 1940년대에 시카고와 같은 도시에서 전기로 소리를 증폭하는 일렉트릭 기타를 접하게 된다. 흑인들은 전기 증폭에 의해 마침내 시골 블루스에서는 없던 리듬을 만들게 된다. 리듬 앤 블루스는 그렇게 생성된 것이었다. 여기서 리듬 앤 블루스는 우리가 근래 일컫는 개념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블루스에 리듬이 들어가면서 음악은 슬픈 기조에서 매우 밝고 힘찬 음악으로 변모해갔다. 윌리 딕슨(Willie Dixon) 이란 작곡자가 1948년 유명한 시카고 블루스 연주자인 머디 워터스에 대해 한 말은 이 과정을 생생히 설명해준다. "주변에 블루스를 부르는 사람은 꽤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슬픈 블루스를 노래했다. 머디 워터스는 그 블루스에 원기를 불어넣었다. 머디 워터스와 같은 아티스트에 의한 '활기찬 블루스'는 리듬 앤 블루스로 불리었다."

리듬 앤 블루스는 시간이 갈수록 더 템포가 빨라지게 되었고 사람들은 그 빠른 리듬 앤 블루스를 로큰롤로 부른다. 블루스 연주자 하울링 울프는 "12소절에 4소절의 도입부로 연주하면 블루스를 연주하고있는 것이다. 그것을 좀 더 올려서 빠르게 했다면 당신은 로큰롤을 연주하고 있는 것이다."[2]

1950 ~ 60년대[편집]

대중 음악의 형성 과정에 있어서 블루스(Blues)의 가장 큰 역할은 바로 "록 음악(Rock Music)의 탄생"에 관한 것이었다. 1950년대 후반, 블루스의 성장과 함께 백인들이 블루스를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블루스 음악을 백인들의 취향에 맞게 가공하면서 록 음악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블루스의 성장과 록 음악의 탄생이 이뤄진 곳은 블루스의 발상지인 미국이 아닌 대서양 건너 영국 땅 이었다.

미국의 블루스 록이 로큰롤의 토대위에서 성장했다면 영국 블루스 록의 기초는 '스키플(Skiffle)' 에서 활성화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흔히 영국의 로커 빌리, R&B와 영국 컨트리 음악의 퓨전, 영국의 블루그래스 등으로 규정되는 스키플은, 초기의 가난했던 미국 흑인들의 블루스와 재즈를 연주하기 위한 영국인들의 시도에서 출발했다.

비틀즈의 멤버들이 중학교에 재적할 무렵 대 유행기를 거친 스키플 사운드로니 던갠(Lonnie Donegan) 이 밴조를 연주하던 '켄 콜리어 밴드(The Ken Colyer Band)'에서 그 근원을 찾는다. 그가 얼마 후 본격적인 스키플 사운드를 지향하는 '로니 앤 히즈 스키플 그룹(Lonnie & His Skiffle Group)' 과 함께 런던의 로얄 페스티벌 홀에서 연주회를 가졌을 때 영국의 로커빌리는 활성화되기 시작한다. 50년대를 히트 퍼레이드의 권좌에 앉아 화려하게 보낸 스키플이 본격적인 브리티쉬 블루스 록으로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60년대 초반의 일이었다. 알렉시스 코너(Alexis Korner), 시릴 데이비스(Cyril Davis), 스크리밍 로드 서치(Screamin' Lord Sutch), 그래험 본드(영어: Graham Bond), 존 메이올 등의 선구자들에 의해 꽃 피우기 시작한 영국의 블루스는 자국의 탄탄한 음악적 전통 속에서 블루스의 본산지인 미국의 시도에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3] 또한, 이들의 영향을 받은 롤링 스톤스(The Rolling Stones), 비틀즈(The Beatles), 프리티 싱스(Pretty Sings)와 같은 밴드들이 전면에 나서기 시작하면서, "브리티시 리듬 앤 블루스(British Rhythm and Blues)" 로 불리는 영국 특유의 블루스 음악이 록으로 진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 본산지로서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짓밟힌 미국의 블루스 계는 폴 버터 필드(Paul Butterfield), 블루스 프로젝트(BLUES PRIJECT) 등이 로커 빌리를 잠식하면서부터 블루스 록의 신화를 창조하기 시작한다. 물론 미국의 그것도 영국과 마찬가지로 자국의 로큰롤에 기초하여 성장해 나갔으며, 뿌리 깊은 블루스의 옹호 위에서 60년대 록 사운드를 주도해 나갔다.[3]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모여든 히피들이 포크 음악에 관심을 가지면서 이른바 Acid Rock이라는 약물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 음악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곧 이어 제니스 조플린(Janis Joplin) 이 등장하면서 포크에 국한 되어있던 히피들의 관심은 대번에 블루스 음악으로 확장되었고, 비비 킹, 루더 엘리슨(Luther Allison)과 같이 재야에 숨어있던 블루스 맨들이 다시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브리티시 록과 아메리칸 록[3][편집]

영/미의 블루스 록은 거의 같은 기초 위에서 출발했지만 전성기를 맞이했을 때에는 이미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영국과는 달리 60년대의 미국은 반전, 반정부적인 색채의 사회사상이 무르익고 있었다. 따라서 히피를 연상시키는 당시의 아메리칸 블루스 록은 영국의 신사적인 블루스보다 더욱 싸이티델릭(Psychedelic) 사운드에 근접해 있다. 반면에 영국의 블루스 록은 싸이키델릭적 요소 이전에 자국의 록을 형성해온 전통적인 브리티쉬 스타일에 기초한 것이었다. 비틀즈, 롤링 스톤스, 애니멀즈(Animals) 등을 배출해 낸 탄탄한 기초 위에 영국의 블루스 록은 체계적이고 정당화된 힘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미국의 블루스 록이 60년대의 록 정신에 충만한 사운드였다면, 영국의 그것은 보다 필은 자국의 안정된 사운드로부터 유래한 것이었다. 영국의 블루스 록이 보다 완성적이고 담백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외형적인 결함으로 아메리칸 블루스 록의 사상을 외면할 수는 없다.왜냐하면 미국의 싸이키델릭 블루스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회 참여 의식과 저항의 횃불을 간직하고 있었고, 또 그것이 60년대 대중 음악사의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블루스 록이 전성기에 달했을 때 영국과 미국의 사운드는 대서양을 넘어, 단합과 자유의 함성 속에서 융합되기 시작한다. 이후 60년대가 지나가고 70년대 초반을 넘어섰을 때 진정한 의미의 블루스 록은 거의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주석[편집]

  1. The "Trésor de la Langue Française informatisé" provides this etymology to the word blues and George Colman's farce as the first appearance of this term in the English language, see Blues. Centre Nationale de Ressources Textuelles et Lixicales. 2010년 1월 18일에 보존된 문서. October 15, 2010에 확인. (프랑스어)
  2. Neo Music Communication IZM 中 인용
  3. 브리티쉬 블루스 록과 아메리칸 블루스 록, 中 인용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