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비시 자동차 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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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비시 자동차 공업 주식회사
일본어: 三菱自動車工業株式会社
Mitsubishi Motors Corporation
그림칸 Mitsubishi Motors.svg
산업 분야 분류:일본의 기업
창립 1970년 4월 22일
시장 정보 도쿄: 7211
오사카: 7211
국가 일본
본사 도쿄 도 미나토 구 고난 2정목 16번 4호
핵심 인물 마스코 오사무 (대표이사)
제품 자동차
매출액 1,260백만 엔 (2006년 3월 기준)
웹사이트 (일본어) http://www.mitsubishi-motors.co.jp

미쓰비시 자동차 공업 주식회사(三菱自動車工業株式会社)는 미쓰비시 그룹에 속하는 일본자동차 제조 회사의 하나로, 1970년미쓰비시 중공업에서 독립했다.

미쓰비시 중공업크라이슬러와의 합병 사업으로서 출발해, 1993년까지 크라이슬러와 자본 제휴를 하고 있었다. 그 후 2000년부터 독일에 본거지를 둔 다임러 크라이슬러와 자본제휴 관계가 되었지만, 현재는 해소되었다. 기술 제휴 관계는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어서, 현대자동차의 직렬 4기통 엔진인 세타 엔진의 개발에도 같이 참여하기 위해 GEMA라는 법인을 만들기도 했다.

2003년에는 트럭이나 버스 등의 대형 상용차 사업을 분사화했다.(미쓰비시후소트럭·버스를 참조)

자동차 경주 분야의 힘을 기울여, 월드 랠리 챔피언십(WRC)이나 파리 다카르 랠리에 참전해, 종합 우승을 처음으로 한 좋은 성적을 많이 남기고 있다. 「랜서 에볼루션」과 「파제로」는 너무도 유명하다. 또한 일본 프로 축구 J리그우라와 레즈의 모회사이기도 하다. 현대자동차의 창업 초기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엔진 기술 및 메커니즘 계통을 뒷받침해 준 회사이기도 하였으며, 대한민국 최초의 고유모델이자 보기 드문 후륜구동 해치백 승용차인 포니 역시 랜서후륜구동 플랫폼 및 미쓰비시의 4기통 새턴 엔진을 갖고 와서 제작하였다. 그러나 갈수록 현대자동차에게 명성에서 밀리기 시작하였고, 데보네어 2세대(대한민국에서는 그랜저로 팔림)는 현대자동차에 밀려 미쓰비시 자동차의 종말을 불러왔다. 2008년 9월 22일 대한민국에 정식으로 판매를 개시했으나, 판매 부진으로 그 당시 수입사였던 MMSK가 청산하여 철수했고 2012년에 범 한진가의 자동차 딜러인 CXC를 통해 판매를 재개했지만 역시 부진을 면하지 못해 2013년 7월에 잠정적으로 수입이 중단되었다가 그해 10월에 다시 철수했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재진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개발보다는 전기 자동차의 양산을 주로 연구하고 있으며 미드십 리어 엔진 경승용차인 i를 베이스로 한 양산형 전기 자동차인 i-MIEV(아이-미브)를 개발하였고 대한민국에서도 테스트했다.

개요[편집]

  • 자동차 검사에서는 "미쓰비시"라고 표기되지만, 일반적인 통칭은 "미쓰비시 자동차"이다. "미쓰비시 자공(三菱自工)이라고 줄이는 경우도 있다(예: 미즈시마임해철도의 미쓰비시자공앞역).
  • 1976년~1982년경까지, 미쓰비시의 이니셜인 알파벳 M을 본뜬 엠블럼을 붙이고 있었지만 이스즈혼다와 혼동되기 쉬웠기 때문에 1980~1990년대에는 영문 사명의 약자 "MMC"를 심볼 마크로 삼아, 스리 다이아몬드도 사라졌던 시기도 있었지만(후소의 중대형 상업차의 스티어링 휠에는 제대로 스리 다이아몬드가 각인되어 있었다), 인터넷에서의 도메인명 "mmc.co.jp"가 같은 미쓰비시 그룹미쓰비시 마테리얼에 먼저 사용된 것도 있어서 현재 MMC는 구문으로의 뉴스 보도 이외에는 사용되고 있지 않다. (미쓰비시 후소 버스제조에서는 MMC 로고가 2003년경까지 창문 유리에 사용되었다)
  • 1996년 미국 일리노이 주에 소재한 미국 현지 공장(스포츠카인 미쓰비시 이클립스 등을 일리노이에서 생산한다)에서 일어난 미쓰비시 자동차 공업 미국 현지공장 여직원 집단 성희롱 고소사건으로 2억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보상금을 요구당해 미국 내 매상이 감소하였으며, 2000년 일본에서는 미쓰비시 리콜 은폐 사건이 발각된 불상사 때문에, 미쓰비시의 자동차 매상이 감소했다.

주요 개발·생산 거점[편집]

주요 주주[편집]

결함 은폐 사건[편집]

2000년, 당시 일본 4위의 자동차 메이커인 미쓰비시 자동차가 과거 30년간 소비자 리콜(결함제품의 회수, 시정제도)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불법 은폐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관련된 제품은 당시 확인된 것만 100만 대 이상이다. 소비자 안전을 경시한 은폐 행위에 회사 전체가 조직적으로 관여한 것으로 밝혀졌다. 사건은 일본 운수성에 걸려온 익명의 제보 전화로 표면화됐으며, 운수성은 즉각 미쓰비시에 대한 현장검사를 실시, 직원 라커룸에 숨겨져 있던 대량의 자료 뭉치를 찾아냈다. 소비자 클레임의 접수 내역이 적힌 자료들엔 H라는 마크가 붙어 있었다. 추궁 끝에 운수성은 은폐 암호임을 밝혀냈다. 운수성의 추궁끝에 30년간 묻혀왔던 충격적 사실이 고구마 넝쿨처럼 무더기로 뽑혀 나왔다. 일본 법률엔 제품 결함이 발견돼 제조업체가 리콜을 할 경우 운수성에 보고해 정보를 공개토록 규정돼있다. 그러나 미쓰비시는 공개(운수성 보고) 절차를 생략하고 자동차를 사간 고객들에 개별 연락해 결함을 고쳐주는 비밀 리콜을 30년간 계속해왔다.

고객 클레임 및 리콜 자료는 이중서류를 만들어 전체의 20% 정도만 운수성에 보고했다. 나머지는 H 표시를 붙인뒤 담당자가 대대로 인계해가며 비밀 취급했다. 이렇게 결함정보가 은폐돼온 제품은 승용차에서 버스․트럭까지 최근 몇 년간 판매․수출된 것만 100만대를 넘는다.

정보 은폐의 이유는 기업 이미지 실추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미쓰비시 측은 결함 제품은 빠짐없이 회수, 시정해온 만큼 소비자 안전엔 지장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본 언론은 결함정보를 널리 알려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자는 정보공개 원칙이 리콜의 생명이라며 연일 미쓰비시를 비난했다.

실제로 은폐된 결함이 원인으로 작용한 인명사고도 터졌다. 구마모토에서 미쓰비시의 인기 RV(레저용차량)제품 파제로가 브레이크 고장을 일으켜 2명이 부상을 입었다. 브레이크의 구조적 결함이 원인이었으나 회사 측은 이 사실도 숨겨왔다.

미쓰비시 스타일은 1996년 미국 자회사에서 터진 성희롱 사건 때 극명하게 드러났다. 미국인 여직원 약 300명이 직장 내에서 상습적 성희롱을 당해왔다며 집단 고소한 것. 미쓰비시는 3400만달러(약 380억원)라는 성희롱 소송 사상 최대의 화해금을 물고 사건을 종결지었으나 회사 이미지는 치명적 타격을 입었다.

그 후 1998년엔 경영진이 총회꾼에 불법이익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나 또다시 물의를 일으켰다. 성희롱 사건이 종업원을 무시한 결과라면, 총회꾼 사건은 주주 경시를 뜻했다. 그리고 이번 사건으로 미쓰비시는 소비자까지 배반하는 결과가 됐다. 투명성 제고에 인색한 일본식 은폐경영의 극단적 패턴이었다.

일본 우익 기업 논란[편집]

미쓰비시 자동차 공업의 모회사 미쓰비시는 대표적인 일본의 우익 기업이며, 제2차 세계 대전때 군수 기업으로 성장했었는데 강제 연행한 조선인의 노동력을 사용했었다. 현재도 우익 단체와 정치가를 후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의 극우 언론사 산케이 신문과 함께, 일본의 대표적인 극우 성향 왜곡 교과서를 편찬하는 '새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을 후원하고 있다.[1] 초창기 현대자동차에 기술을 전수하기는 했어도 그러한 이미지로 인해 대한민국 실적이 부진하여 철수했다.

참고문헌[편집]

  1. 미쓰비시자동차 광주판매 안 돼! 2009-10-05. 광주일보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