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역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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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의 중앙부는 해안과는 높은 [[산맥]]과 [[사막]]으로 나뉘어 있다. [[카프카스 산맥]], [[히말라야 산맥]], [[카라쿰 사막]], [[고비 사막]] 등은 스텝 지역의 기마병들이 쉽게 건널 수 없는 장벽이었다. 해안 도시들이 보다 기술이나 문화는 앞서 있었으나, 스텝의 기마병들을 막아내기에는 군사력이 충분치 않았다. 이들은 중국, 인도, 중동의 도시를 정복한 기마민족은 곧 이들 문화에 동화되어갔다.
대륙의 중앙부는 해안과는 높은 [[산맥]]과 [[사막]]으로 나뉘어 있다. [[카프카스 산맥]], [[히말라야 산맥]], [[카라쿰 사막]], [[고비 사막]] 등은 스텝 지역의 기마병들이 쉽게 건널 수 없는 장벽이었다. 해안 도시들이 보다 기술이나 문화는 앞서 있었으나, 스텝의 기마병들을 막아내기에는 군사력이 충분치 않았다. 이들은 중국, 인도, 중동의 도시를 정복한 기마민족은 곧 이들 문화에 동화되어갔다.


== 국가별 역사 ==
== 고대 ==
=== 한국 ===
{{본문|한국의 역사}}
{{본문|한국의 역사}}

=== 동아시아 ===

==== 한국 ====
한국의 역사는 [[구석기 시대]] 이후 주로 [[한반도]]와 [[만주]], 넓게는 [[동아시아]] 지역을 바탕으로 발전되어 온 [[한민족]]의 역사이다. 한국의 역사는 [[전기 구석기 시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ref>변(1999), p. 27. 변은 [[석장리]]의 저층 과 다른 위치에서 기원전 60만에서 50만 년 으로 연대가 추정되는 유물이 나왔고, 담양에서는 기원전 70만 년으로 추정되는 인류 주거지가 발견되었다고 설명한다.</ref>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토기는 기원전 8000년 무렵의 것이며, 기원전 6000년 이전에 [[신석기 시대]]가 시작되었고, 기원전 2500년 무렵에 [[청동기 시대]]로 이어졌다. [[삼국유사]]를 비롯한 다른 고려 중기의 기록에 따르면, [[고조선]] 왕국이 기원전 2333년에 세워졌고 한반도에서 만주에 이르는 영토를 확보했다고 한다.<ref>[http://www.asianinfo.org/asianinfo/korea/history.htm 고조선]</ref> 기원전 1세기에 [[한나라]]의 침공을 받고 멸망해 여러 국가로 나누어졌다.
한국의 역사는 [[구석기 시대]] 이후 주로 [[한반도]]와 [[만주]], 넓게는 [[동아시아]] 지역을 바탕으로 발전되어 온 [[한민족]]의 역사이다. 한국의 역사는 [[전기 구석기 시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ref>변(1999), p. 27. 변은 [[석장리]]의 저층 과 다른 위치에서 기원전 60만에서 50만 년 으로 연대가 추정되는 유물이 나왔고, 담양에서는 기원전 70만 년으로 추정되는 인류 주거지가 발견되었다고 설명한다.</ref>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토기는 기원전 8000년 무렵의 것이며, 기원전 6000년 이전에 [[신석기 시대]]가 시작되었고, 기원전 2500년 무렵에 [[청동기 시대]]로 이어졌다. [[삼국유사]]를 비롯한 다른 고려 중기의 기록에 따르면, [[고조선]] 왕국이 기원전 2333년에 세워졌고 한반도에서 만주에 이르는 영토를 확보했다고 한다.<ref>[http://www.asianinfo.org/asianinfo/korea/history.htm 고조선]</ref> 기원전 1세기에 [[한나라]]의 침공을 받고 멸망해 여러 국가로 나누어졌다.


공동기원(Common Era) 초기에, [[삼국시대]]를 맞아 세 왕국([[고구려]], [[백제]], [[신라]])이 다른 고조선의 후속 국가들을 정복하였고 한반도와 만주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였다. 이 세 왕국은 경제와 군사 면에서 서로 경쟁하였다. [[고구려]]와 [[백제]]는 강력하였고, 특히 고구려는 대규모의 군사행동을 해 [[흉노]] 등 중앙아시아의 기마 민족과 [[수나라]] 등 중국 세력을 격파하고 한반도 북부부터 만주의 대부분을 점령하였다. 백제와 신라는 해상 교역과 육상 교역을 통해 중앙아시 아부터 시작해 아라비아와까지 교류하였다. 신라의 힘은 [[화랑도]] 를 바탕으로 서서히 커져서 결국 당나라의 지원을 받아 백제와 고구려를 침공 하여 멸망시켰다. 한편 전직 고구려 장군인 [[대조영]]은 고구려의 뒤를 이은 [[발해]]를 건국하 였다. 이로써 한반도와 만주,연해주에 걸친 [[남북국시대]] 가 성립된다.
공동기원(Common Era) 초기에, [[삼국시대]]를 맞아 세 왕국([[고구려]], [[백제]], [[신라]])이 다른 고조선의 후속 국가들을 정복하였고 한반도와 만주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였다. 이 세 왕국은 경제와 군사 면에서 서로 경쟁하였다. [[고구려]]와 [[백제]]는 강력하였고, 특히 고구려는 대규모의 군사행동을 해 [[흉노]] 등 중앙아시아의 기마 민족과 [[수나라]] 등 중국 세력을 격파하고 한반도 북부부터 만주의 대부분을 점령하였다. 백제와 신라는 해상 교역과 육상 교역을 통해 중앙아시 아부터 시작해 아라비아와까지 교류하였다. 신라의 힘은 [[화랑도]] 를 바탕으로 서서히 커져서 결국 당나라의 지원을 받아 백제와 고구려를 침공 하여 멸망시켰다. 한편 전직 고구려 장군인 [[대조영]]은 고구려의 뒤를 이은 [[발해]]를 건국하 였다. 이로써 한반도와 만주,연해주에 걸친 [[남북국시대]] 가 성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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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
중국은 [[황하 문명]]의 발원지이며 동아시아 문화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 중세 ==

=== 동아시아 ===

====== 한국 ======
[[신라]]가 9세기 후반에 국력이 쇠퇴하자, [[후삼국시대]]가 시작되었고, [[왕건]]이 건국한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면서 종식되었다. 비슷한 시기, 926년 발해가 [[거란족]]에게 멸망한 이후 많은 발해 사람들이 [[고려]]로 넘어왔다.
[[신라]]가 9세기 후반에 국력이 쇠퇴하자, [[후삼국시대]]가 시작되었고, [[왕건]]이 건국한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면서 종식되었다. 비슷한 시기, 926년 발해가 [[거란족]]에게 멸망한 이후 많은 발해 사람들이 [[고려]]로 넘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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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번성하였다. 또한 고려는 [[남북국시대]] 부터 이어져 온 활발한 국제교역 활동으로 부를 축적하였으며, 고려 말까지 [[벽란도]] 를 중심으로 이를 계속하였다. 993-1019년 동안 고려는 [[거란]]과 전쟁을 벌여서 거란을 격퇴하였다. 1238년 [[몽골 제국|몽골]]이 침입하였고 30년에 가까운 전쟁끝에 양 측은 평화 조약을 맺었다. 그 후 [[공민왕]]의 자주개혁이 있기 전까지 [[원나라|원]]의 간섭을 받았는데, 이 시기 [[성리학]]이 한국에 전래되었다.
문화가 번성하였다. 또한 고려는 [[남북국시대]] 부터 이어져 온 활발한 국제교역 활동으로 부를 축적하였으며, 고려 말까지 [[벽란도]] 를 중심으로 이를 계속하였다. 993-1019년 동안 고려는 [[거란]]과 전쟁을 벌여서 거란을 격퇴하였다. 1238년 [[몽골 제국|몽골]]이 침입하였고 30년에 가까운 전쟁끝에 양 측은 평화 조약을 맺었다. 그 후 [[공민왕]]의 자주개혁이 있기 전까지 [[원나라|원]]의 간섭을 받았는데, 이 시기 [[성리학]]이 한국에 전래되었다.


== 근세 ==
1392년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을 일으킨 이후 신진사대부와 손을 잡고 [[조선]]을 건국하였다. [[조선 세종|세종]]이 왕위에 있던 시기, [[한글]]이 창제되고 [[측우기]], [[앙부일구]]와 같은 발명도 이루어졌다. 또한 북방의 [[여진]] 과 남쪽의 [[왜구]] 를 토벌하였으며, [[화차]] 와 같은 군사병기도 제작되었다. 그 후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지만, 수군을 이끈 [[이순신]] 장군을 비롯한 여러 명장들의 노력과 곳곳에서 일어난 [[의병]]들의 조직적인 저항,그리고 [[명나라]]의 조선으로의 파병 덕분에 결국 일본군을 물리칠 수 있었다. 그러나 1620년대와 1630년대에 걸쳐 조선은 [[청나라]]의 침입으로 청나라와 사대를 맺게 되며 청은 왕의 나라 조선은 신하의 나라가 된다. 이후 [[영조]], [[정조]]의 치세를 겪으며 [[실학]]이 융성하였고 [[천주교]]가 전래되었지만 유교와의 마찰로 뒤이은 왕들에 의해 탄압받았다.
1392년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을 일으킨 이후 신진사대부와 손을 잡고 [[조선]]을 건국하였다. [[조선 세종|세종]]이 왕위에 있던 시기, [[한글]]이 창제되고 [[측우기]], [[앙부일구]]와 같은 발명도 이루어졌다. 또한 북방의 [[여진]] 과 남쪽의 [[왜구]] 를 토벌하였으며, [[화차]] 와 같은 군사병기도 제작되었다. 그 후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지만, 수군을 이끈 [[이순신]] 장군을 비롯한 여러 명장들의 노력과 곳곳에서 일어난 [[의병]]들의 조직적인 저항,그리고 [[명나라]]의 조선으로의 파병 덕분에 결국 일본군을 물리칠 수 있었다. 그러나 1620년대와 1630년대에 걸쳐 조선은 [[청나라]]의 침입으로 청나라와 사대를 맺게 되며 청은 왕의 나라 조선은 신하의 나라가 된다. 이후 [[영조]], [[정조]]의 치세를 겪으며 [[실학]]이 융성하였고 [[천주교]]가 전래되었지만 유교와의 마찰로 뒤이은 왕들에 의해 탄압받았다.


== 근대 ==
1870년대 초반 일본은 조선에 압력을 행사하면서 이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중국과 충돌하였고, 한국을 일본의 영향력 아래 두려고 하였다. 1895년 [[명성황후]]는 일본의 낭인들에게 암살되었다.<ref name="autogenerated3">{{웹 인용 |url=http://www.kimsoft.com/2002/jp-rape.htm |제목=명성황후 살해 |확인날짜=2004년 10월 9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41009171355/http://www.kimsoft.com/2002/jp-rape.htm |보존날짜=2004년 10월 9일 |url-status=dead }}</ref> 1897년 조선은 [[대한제국]] (1897-1910)으로 국호를 새롭게 정하였고, [[대한제국 고종|고종]]은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1870년대 초반 일본은 조선에 압력을 행사하면서 이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중국과 충돌하였고, 한국을 일본의 영향력 아래 두려고 하였다. 1895년 [[명성황후]]는 일본의 낭인들에게 암살되었다.<ref name="autogenerated3">{{웹 인용 |url=http://www.kimsoft.com/2002/jp-rape.htm |제목=명성황후 살해 |확인날짜=2004년 10월 9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41009171355/http://www.kimsoft.com/2002/jp-rape.htm |보존날짜=2004년 10월 9일 |url-status=dead }}</ref> 1897년 조선은 [[대한제국]] (1897-1910)으로 국호를 새롭게 정하였고, [[대한제국 고종|고종]]은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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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일본의 점령에 저항하고자 곳곳에서 [[3.1 운동]]을 1919년에 전개하였다. 뒤이어 이러한 [[독립운동]]을 총괄하고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설립되어 만주와 중국과 시베리아에서 직접 군부대를 조직해 일본군과 싸워 승리하는 등 많은 활동을 하였다.
한국인은 일본의 점령에 저항하고자 곳곳에서 [[3.1 운동]]을 1919년에 전개하였다. 뒤이어 이러한 [[독립운동]]을 총괄하고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설립되어 만주와 중국과 시베리아에서 직접 군부대를 조직해 일본군과 싸워 승리하는 등 많은 활동을 하였다.


== 현대 ==
1945년 일본의 패망과 함께 [[유엔]]은 [[소련]]과 [[미국]]에서 통일 임시정부 수립을 위해 신탁통치를 계획했지만, 그 계획은 [[미소공위]]에서 입장차이로 결렬되어 곧 폐기되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38선]]을 기준으로 남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으로 각각 단독 정부가 수립되면서 한반도는 분단되었다. 분단 이후 양 측 간의 긴장이 이어졌고 1950년에 북한이 남한을 선제공격하여 [[한국 전쟁]]이 발발하였다.
1945년 일본의 패망과 함께 [[유엔]]은 [[소련]]과 [[미국]]에서 통일 임시정부 수립을 위해 신탁통치를 계획했지만, 그 계획은 [[미소공위]]에서 입장차이로 결렬되어 곧 폐기되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38선]]을 기준으로 남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으로 각각 단독 정부가 수립되면서 한반도는 분단되었다. 분단 이후 양 측 간의 긴장이 이어졌고 1950년에 북한이 남한을 선제공격하여 [[한국 전쟁]]이 발발하였다.



2020년 2월 27일 (목) 23:50 판

아시아의 문명을 잇는 실크로드
몽골제국 이전의 아시아

아시아역사동아시아남아시아, 중동등의 해안 지역과 이를 잇는 유라시아 스텝 지역의 역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해안 지역에서는 메소포타미아인더스 강, 황하 등의 큰 강 유역에서 주요 고대 문명이 발생하였다. 이들 문명은 수학이나 바퀴 등의 기술을 교류하였다. 또 독자적으로 문자가 발명되었다. 고대 문명은 점차 도시, 국가, 제국으로 성장해갔다.

스텝 지역은 오래전부터 기마 유목민족의 영역이었다. 이들은 스텝을 중심으로 아시아 전체를 활동 무대로 삼았다. 북쪽의 시베리아는 울창한 숲과 툰드라 때문에 스텝의 기마민족이 접근하기 어려웠다.

대륙의 중앙부는 해안과는 높은 산맥사막으로 나뉘어 있다. 카프카스 산맥, 히말라야 산맥, 카라쿰 사막, 고비 사막 등은 스텝 지역의 기마병들이 쉽게 건널 수 없는 장벽이었다. 해안 도시들이 보다 기술이나 문화는 앞서 있었으나, 스텝의 기마병들을 막아내기에는 군사력이 충분치 않았다. 이들은 중국, 인도, 중동의 도시를 정복한 기마민족은 곧 이들 문화에 동화되어갔다.

고대

동아시아

한국

한국의 역사는 구석기 시대 이후 주로 한반도만주, 넓게는 동아시아 지역을 바탕으로 발전되어 온 한민족의 역사이다. 한국의 역사는 전기 구석기 시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1]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토기는 기원전 8000년 무렵의 것이며, 기원전 6000년 이전에 신석기 시대가 시작되었고, 기원전 2500년 무렵에 청동기 시대로 이어졌다. 삼국유사를 비롯한 다른 고려 중기의 기록에 따르면, 고조선 왕국이 기원전 2333년에 세워졌고 한반도에서 만주에 이르는 영토를 확보했다고 한다.[2] 기원전 1세기에 한나라의 침공을 받고 멸망해 여러 국가로 나누어졌다.

공동기원(Common Era) 초기에, 삼국시대를 맞아 세 왕국(고구려, 백제, 신라)이 다른 고조선의 후속 국가들을 정복하였고 한반도와 만주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였다. 이 세 왕국은 경제와 군사 면에서 서로 경쟁하였다. 고구려백제는 강력하였고, 특히 고구려는 대규모의 군사행동을 해 흉노 등 중앙아시아의 기마 민족과 수나라 등 중국 세력을 격파하고 한반도 북부부터 만주의 대부분을 점령하였다. 백제와 신라는 해상 교역과 육상 교역을 통해 중앙아시 아부터 시작해 아라비아와까지 교류하였다. 신라의 힘은 화랑도 를 바탕으로 서서히 커져서 결국 당나라의 지원을 받아 백제와 고구려를 침공 하여 멸망시켰다. 한편 전직 고구려 장군인 대조영은 고구려의 뒤를 이은 발해를 건국하 였다. 이로써 한반도와 만주,연해주에 걸친 남북국시대 가 성립된다.


중국

중국은 황하 문명의 발원지이며 동아시아 문화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중세

동아시아

한국

신라가 9세기 후반에 국력이 쇠퇴하자, 후삼국시대가 시작되었고, 왕건이 건국한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면서 종식되었다. 비슷한 시기, 926년 발해가 거란족에게 멸망한 이후 많은 발해 사람들이 고려로 넘어왔다.

고려 시대에는 국교로서 불교 문화가 번성하였다. 또한 고려는 남북국시대 부터 이어져 온 활발한 국제교역 활동으로 부를 축적하였으며, 고려 말까지 벽란도 를 중심으로 이를 계속하였다. 993-1019년 동안 고려는 거란과 전쟁을 벌여서 거란을 격퇴하였다. 1238년 몽골이 침입하였고 30년에 가까운 전쟁끝에 양 측은 평화 조약을 맺었다. 그 후 공민왕의 자주개혁이 있기 전까지 의 간섭을 받았는데, 이 시기 성리학이 한국에 전래되었다.

근세

1392년 이성계위화도 회군을 일으킨 이후 신진사대부와 손을 잡고 조선을 건국하였다. 세종이 왕위에 있던 시기, 한글이 창제되고 측우기, 앙부일구와 같은 발명도 이루어졌다. 또한 북방의 여진 과 남쪽의 왜구 를 토벌하였으며, 화차 와 같은 군사병기도 제작되었다. 그 후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지만, 수군을 이끈 이순신 장군을 비롯한 여러 명장들의 노력과 곳곳에서 일어난 의병들의 조직적인 저항,그리고 명나라의 조선으로의 파병 덕분에 결국 일본군을 물리칠 수 있었다. 그러나 1620년대와 1630년대에 걸쳐 조선은 청나라의 침입으로 청나라와 사대를 맺게 되며 청은 왕의 나라 조선은 신하의 나라가 된다. 이후 영조, 정조의 치세를 겪으며 실학이 융성하였고 천주교가 전래되었지만 유교와의 마찰로 뒤이은 왕들에 의해 탄압받았다.

근대

1870년대 초반 일본은 조선에 압력을 행사하면서 이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중국과 충돌하였고, 한국을 일본의 영향력 아래 두려고 하였다. 1895년 명성황후는 일본의 낭인들에게 암살되었다.[3] 1897년 조선은 대한제국 (1897-1910)으로 국호를 새롭게 정하였고, 고종은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의화단 운동 진압 당시 청국의 만주를 점거한 러시아가 조선에까지 영향력을 뻗치자 이에 두려움을 느낀 일본은 1905년 대한제국에게 압력을 행사하여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함으로써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하였고, 1910년에는 한일합방조약을 체결하였다. 한국인은 일본의 점령에 저항하고자 곳곳에서 3.1 운동을 1919년에 전개하였다. 뒤이어 이러한 독립운동을 총괄하고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설립되어 만주와 중국과 시베리아에서 직접 군부대를 조직해 일본군과 싸워 승리하는 등 많은 활동을 하였다.

현대

1945년 일본의 패망과 함께 유엔소련미국에서 통일 임시정부 수립을 위해 신탁통치를 계획했지만, 그 계획은 미소공위에서 입장차이로 결렬되어 곧 폐기되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38선을 기준으로 남과 으로 각각 단독 정부가 수립되면서 한반도는 분단되었다. 분단 이후 양 측 간의 긴장이 이어졌고 1950년에 북한이 남한을 선제공격하여 한국 전쟁이 발발하였다.

각주

  1. 변(1999), p. 27. 변은 석장리의 저층 과 다른 위치에서 기원전 60만에서 50만 년 으로 연대가 추정되는 유물이 나왔고, 담양에서는 기원전 70만 년으로 추정되는 인류 주거지가 발견되었다고 설명한다.
  2. 고조선
  3. “명성황후 살해”. 2004년 10월 9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4년 10월 9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