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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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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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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월 30일 (월) 19:10 판

www.parkandcube.com 이개년좀 막아주삼 제발...오~~이 미친년도 막아주셔www.parkandcube.com/blog 이거저 쳐먹는 씨발년 폴라드 개씹년놈들

대한민국 새정치민주연합
[[파일:Npad_logo.svg|]]
로고
약칭 새정치연합 (한글)
NPAD (영문)
상징색 바다파랑[1]
이념 사회자유주의
스펙트럼 중도주의
당직자
대표 문재인
원내대표 우윤근
역사
창당 2014년 3월 26일
선행조직 민주당
새정치연합 창당준비위원회
내부 조직
중앙당사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68길 14 (여의도동, 신동해빌딩 11층)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70길 12 대산빌딩 10, 12층
정책연구소 민주정책연구원
의석
국회의원
130 / 298
광역자치단체장
9 / 17
기초자치단체장
80 / 226
광역자치의원
349 / 786
기초자치의원
1,157 / 2,895

새정치민주연합(한국 한자: 新政治民主聯合)은 대한민국사회자유주의 정당으로, 민주당(당시 대표 김한길)과 새정치연합(당시 대표 안철수)의 합당으로 창당되었다. 2014년 3월 16일, 창당 발기인대회를 개최하여 당명을 발표하였으며, 공동창당준비위원장에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새정치연합 창당준비위원회 중앙운영위원장이 선출되었다.[2][3] 이에 따라 새정치민주연합은 민주당의 126석과 새정치연합의 2석 그리고 발기에 참여한 무소속의 박주선강동원 의원을 합하여 총 130석의 원내 2당이 되었다.[4]

통합 방식은 창당준비위원회 단계인 새정치연합과 민주당과 통합을 하고, 그 이름을 새정치민주연합을 하여 3월 26일에 안철수와 김한길을 공동 대표로 하여 통합 창당 하였다.[5] 이는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열린우리당을 흡수합당하였던 과정과 비슷하다.[6]

2014년 3월 17일 창당준비위원회 결성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하였다.[7][8]

당명에 관하여 논란이 있었으나, 결국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명칭으로 절충하되 약칭은 새정치연합으로 정했다.[9] 이러한 당명에 대해 "표현 그대로 양 세력의 상호존중과 동등한 통합정신을 의미하며 새 정치라는 시대의 요구와 민주당이라는 역사와 전통을 한데 묶어내는 미래지향적이고 시대통합적인 정신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10]

당색은 민주당의 태극파랑과 새정치연합의 하늘파랑의 중간에 해당되는 바다파랑을 사용하였다고 밝혔다.[11][12]

역사

새정치민주연합 출범 이전

평화민주당 창당에서 정권 교체까지

대한민국의 민주당계 정당의 역사는 1945년 8월 해방 직후 서울에서 고려민족당, 조선민족당, 한국국민당 등이 창당되고 그해 9월 12일 이 세 정당이 통합되어 한국민주당으로 발족되면서 시작되었다. 1955년 자유당 정권의 사사오입 개헌 때 범야권의 결집으로 확장되었으며, 현재 새정치민주연합까지 이어지는 정통 야당의 맥은 통일민주당이라 할 수 있다.[13] 신한민주당 총재 이민우에 반대하던 양김(김영삼, 김대중)이 탈당한 뒤 1987년 4월 통일민주당을 창당하였다. 통일민주당은 당시 전두환의 민주정의당 정권에 항의하는 야당으로서 활동해 왔다.

신한민주당 시절 때부터 사실상 당권을 장악했던 양김이 독자적으로 창당한 이 통일민주당은, 대한민국의 민주화에 큰 기여를 했으며, 그 결과 6·29 선언을 통해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냈다.[13] 그러나 김영삼이 이끄는 상도동계와 김대중이 이끄는 동교동계의 마찰이 계속됐고, 결국 대선을 눈앞에 두고 동교동계가 탈당하였다. 이들이 창당한 정당이 현재 새정치민주연합의 실질적인 뿌리가 되는 평화민주당이다.[13] 그러나 여기서 시작된 야권 분열은 물론, 부정선거로 추정되는 행위 등으로 인해 통일민주당평화민주당은 결국 대선에서 참패하고 말았으며, 이어 치러진 총선에서도 처참하게 패했다. 평화민주당은 3위의 득표율에도 원내 2당이자 제1야당으로 떠올라 정부를 견제할 힘을 얻었지만, 다른 야당이던 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민주정의당과 합당하면서 그 힘을 잃게 되었다(3당 합당으로 창당된 민주자유당은 개헌선을 초과한 218석을 차지했다). 그러나 일부 통일민주당 의원들은 독자 행보를 걸고 꼬마민주당을 창당했다. 평화민주당은 이후 신민주연합당으로 개명한 뒤 줄곧 활동해 왔으며, 이후 1992년 꼬마민주당을 흡수한 뒤 민주당을 창당했다. 새로운 민주당은 1992년 총선에서 패했으나 민주자유당의 위기 속에서 나름 선전을 했으며, 이후 같은 해 대선에 김대중을 후보로 내세워 도전했으나 패하여, 야당으로 계속 남게 되었다. 김대중의 은퇴로 김대중은 모든 당권을 내놓았으나, 동교동계의 당권 장악은 계속되었다. 1995년 지방선거에서 선전했고, 이어 정계에 복귀한 김대중 일대가 탈당하면서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였다. 새정치국민회의는 1996년 총선에서 부진했으나 1997년 대선에서 자유민주연합과의 연대로 승리하여, 사상 최초의 여야 정권교체를 이끌어냈다. 이로써 헌정 이후 최초이자 1960년 이후 38년만에 민주당계 정당이 집권하였다.

분당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창당까지

1998년 2월 25일 김대중의 취임으로 '국민의 정부'가 탄생했고, 선거 당시 연대한 자유민주연합은 김대중의 새정치국민회의와 더불어 여당이 되었다. 당시 거대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새정치국민회의자유민주연합을 괴롭혀왔으나, 오히려 국민들의 반감을 사 1998년 지방선거에서 참패하였다. 이어 '의원 빼가기' 작전 끝에 새정치국민회의자유민주연합은 국회과반의석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내각제 개헌 문제를 두고 여권 분열이 있었고, 여러 스캔들이 터져 민심 이반이 일어났다. 새정치국민회의는 2000년 새천년민주당으로 개편되어 해체되었고, 이어 총선에서 의석수는 늘어났으나 한나라당에 밀려 패했다. 이후 김대중은 리더십을 잃었고, 공동여당 공조 파기까지 일어나면서 정권의 국정 운영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민주당은 2002년 지방선거에서 패했고, 결국 김대중은 탈당하였다(2000년 총선 전 새천년민주당 창당). 그러나 동교동계는 여전히 당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같은 해 대선 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국민 경선제가 동교동계의 위기를 불러오기도 했는데, 당시 '노풍'의 결과로 노무현의 지지율이 급상승하면서 동교동계 후보 한화갑은 몰락했다. 결국, 대선 후보로는 노무현이 선출되었다. 대선 결과, 노무현의 당선으로 새천년민주당은 정권을 연장했으나, 당시 당권을 장악하고 있었던 동교동계와 노무현 간의 관계 악화는 계속되었고, 이 와중에 소위 '친노'라고 불리던 개혁파 당원들이 탈당하였다. 이들은 한나라당 탈당파들과 연대한 뒤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한편 노무현은 열린우리당 창당 이후에도 한동안 남아있다가, 2003년 9월 30일 탈당하였다. 이로써 새천년민주당은 야당으로 전락하였고, 여당이 없는 중립내각이 출범하였다(하지만 노무현을 지지하는 열린우리당이 실질적인 여당 역할을 하였다). 노무현은 2004년 총선 직전 '열린우리당 지지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고, 이에 새천년민주당한나라당, 자유민주연합과 함께 '선거중립 위반'을 이유로 노무현을 탄핵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국민들의 반감을 샀으며,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152석을 차지하여 과반 의석을 차지하게 되었다. 민주당은 역으로 한나라당은 물론 비주류 정당이었던 민주노동당에게조차 밀려 9석짜리 미니정당으로 전락했다. 김종필 자민련 총재의 은퇴까지 이어져 3김 시대는 끝났고, 동교동계도 정치적 실권을 잃게 되었다. 대신 새로 떠오른 열린우리당이 국민들의 기대를 모았다. 열린우리당은 친노무현 세력과 비노무현 세력으로 분류되었는데, 비노 계열의 경우 개혁 성향의 친김근태계 및 친고건계와 실용주의 성향의 친정동영계로 분류되었다.

열린우리당노무현의 입당으로 정식 여당이 되었고, 이어 '4대 개혁 입법'을 추진했으나, 계파 갈등과 야당의 반대 등으로 무산되었다. 보수주의 및 우익 세력들은 노무현을 종북이라고 비난했으며, 진보주의 및 좌익 세력들은 노무현을 친미주의자라고 비난했다. 이 과정에서 민심 이반이 일어났으며, 2005년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하여 과반이 붕괴되었다. 게다가, 미니정당으로 전락한 민주당(2005년 '새천년'을 뺀 민주당으로 개명)이 차츰 힘을 얻었고, 결국 열린우리당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에게도 밀리는 참패를 당했다(호남에서도 패했다). 이후 2007년 2월 열린우리당은 계파 분열로 소수 정당으로 전락했으며, 8월 합당으로 원내 1당의 위치를 되찾았으나, 역으로 대통합민주신당에 흡수되어 자동 해체되었다. 또한 일부는 민주당으로 들어갔다.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된 정동영은 당시 실추된 민심의 결과로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명박에게 패배하여, 다시 야당으로 되돌아갔고, 이어 2008년 민주당을 흡수해 통합민주당을 창당해 총선에서 활약했으나 참패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미국산 소고기 문제로 반정부 시위가 터졌고, 이어 노무현의 자살로 인해 한나라당 정권의 지지율이 타격을 입어, 때마다 치러진 보궐 선거에서 승리하였다. 이어 2010년 지방 선거에서 민주당한나라당을 누르고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민주당은 2011년 말 민주통합당으로 개편하였다.

2013년 5월 4일 민주당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비주류의 지원을 받은 김한길 의원이 대의원투표, 권리당원투표, 국민여론조사 결과 61.72%의 득표율로 임기 2년의 당 대표에 선출되었다. 2013년 9월 1일에는 영등포당사로 이전한지 10년 만에 다시 여의도로 이전하였다. 민주당은 기존의 노란색과 녹색을 벗어나 파랑을 상징색으로 하는 새로운 PI를 발표하였다.

한편 2011년 재보궐 선거 무렵부터 안철수가 돌풍을 일으키면서 유력 정치인으로 떠올랐다. 물론 2012년 총선에서 활동은 하지 않았고, 대신 대선에 출마하여 화제를 모았으나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의 단일화 중 돌연 사퇴하였다. 야권의 실질적인 단일 후보가 된 문재인안철수의 지지 유세 속에서 최선을 다했으나 패배하여, 계속 야당으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안철수는 이미 '유력 대권주자'까지 부상했고, 이에 민주통합당은 2013년 보궐선거를 앞두고 안철수 영입을 고려했으나 거부당했다. '안철수 신당' 창당설이 나돌기 시작했으며, 드디어 11월 신당 창당을 본격 선언함으로써 '안철수 신당'은 구체화되었다. 이미 '안철수 신당'의 가상 지지율은 민주당의 지지율을 추월했고, 신당의 이름까지 새정치연합으로 결정되었으며, 일각에서는 민주당을 누르고 제1야당이 될 것이라는 설이 나돌았다. 그러나 '안철수 신당'은 이후 지방선거 후보자 영입의 부진과 신당 내부의 갈등으로 인해 지지율이 점차 하락하며 고전을 거듭했다. 그 결과 2014년 새정치연합 (창당준비위원회)민주당과 합당을 선언하였다. 이로써 사실상 야권의 연대가 이루어졌다. 이후 안철수민주당 대표인 김한길은 여러 회의를 거쳐 통합신당 창당 준비를 했고, 3월 25일 새정치연합 (창당준비위원회)는 해산되었다. 드디어 2014년 3월 26일 민주당(2013년 개명)과 새정치연합이 최종 합당을 선언하였으며, 이로써 새정치민주연합이 출범했다. 또한 창당과정에서 창조한국당출신 인사들이 대거 합류하였다.

새정치민주연합 출범

당명 결정 과정

민주당과 새정치연합, 그리고 무소속 의원 2명이 만나 신설합당된 새정치민주연합의 당명 결정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국민 공모를 통해 이루어졌는데, 안철수의 새정치연합 측은 '민주'라는 이름을 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유는 '도로 민주당'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였다.[9] 반면 민주당 측은 역사적 정통을 담아 '민주'라는 이름이 꼭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으며,[14] 김한길 대표 역시 '민주'를 뺄 경우 호남지역에서 다른 정당이 그 이름을 차용할 것이라며 설득했다.[9] 새정치연합 측은 '새정치미래연합, '새정치희망연합'을 제안했는가 하면 민주당 측은 '새정치민주당', '새정치민주연합'을 제안했다.[9] 국민 공모를 통해 '새정치국민연합'이라는 이름이 1위를 기록했으나, 이는 '유사 당명'이라 하여 탈락했다.[9] 결국 양당 대표의 논의를 통해 결정할 수밖에 없었고, 당명은 끝내 새정치민주연합으로 결정되었다.[14]

대한민국 제6회 지방 선거 국면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이 합당했을 때, 둘은 '기초선거 공천폐지'를 약속했으며, 이후 새정치민주연합은 '기초선거 공천폐지'를 주장했다. 그러나 구 민주당 계를 위시하여 당내 반발이 일어났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안철수 공동대표가 청와대에 '기초선거 공천폐지' 논의를 위한 면담을 요청하기도 했으나 실패했다. 결국 당 내 여론조사에 따라 근소한 차이로 공천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선거운동 직전에 세월호 침몰 사고가 터지면서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를 '정부의 무능', '정부의 책임'이라 규정하며 새누리당에 맞섰고, 결국 전국에서 9명의 광역단체장을 당선시키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선거 막판 새누리당의 '대통령의 눈물' 마케팅으로 인해 부산, 인천, 경기에서 야권후보가 근소하게 패하는 등 전반적으로 압승한 선거라 보기는 어렵게 되었다.

7.30 재보궐 선거 참패와 지도부 총사퇴

2014년 7월 30일 재보궐 선거는 지방선거 참가로 사퇴한 국회의원들과 재판결과 상실한 국회의원들이 많이 발생하면서 총 15석을 두고 다투는 미니총선의 성격으로 치뤄지게 되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세월호 침몰 사고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선거의 타이틀로 삼고 선거를 진행해 나갔으나, 공천 과정에서의 잡음과 더불어, 광주 광산구 을 선거구의 권은희 공천에 대한 보은 공천 논란으로 겨우 4석만 얻는 참패를 당하고 말았다.

전통적인 우세 지역이던 수도권에서는 수원시 정 선거구에서 단 한 곳 만을 건지는 데에 그쳤고, 당의 지역적 기반으로 평가받던 전라남도 지역의 순천·곡성 선거구에서 새누리당에 패배하여 민주화 이후 전라남도 지역 최초로 보수 정당의 정치인이 당선되는 파란을 낳았을 뿐만 아니라, 손학규, 김두관, 정장선 등 새정치민주연합의 중진급으로 평가받던 인사들이 새누리당의 지역 정치 신인들을 상대로 대거 낙선하기도 하였다.

결국 2014년 7월 31일 재보궐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지도부가 총 사퇴를 결의하게 되어서 김한길, 안철수 두 공동대표 체제는 4개월만에 막을 내리고 말았다.

국민공감혁신위원회 체제

지도부 총 사퇴로 인한 공백을 메꾸고 2015년 1월 이후에 있을 예정인 지도부 선출 전당대회까지 당을 혁신으로 이끌 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되었다. 2014년 8월 4일 의원총회에서 박영선 원내대표를 만장일치로 비상대책위원장에 추대하였으며, 8월 5일 박영선 위원장은 비상대책위원회 명칭을 국민공감혁신위원회로 확정지었다.

문희상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재편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이 두 번에 걸친 세월호 특별법 협상 실패로 리더쉽에 손상을 입게 되자 2014년 9월 12일 이상돈 중앙대학교 명예교수와 안경환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를 국민공감혁신위원장으로 내정하였으나 이상돈 명예교수의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과 정치혁신위원 등의 전력이 원인이 되어 당 내 반발을 받게 되어 두 교수의 고사로 실패하였다. 이후 당 내 일각에서 박영선 위원장의 위원장직 사퇴와 원내대표직 사퇴를 요구하자 박영선 위원장은 9월 15일 탈당을 시사하고 당무를 거부하였다. 이후 원내지도부의 설득과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특별법 강경발언 등으로 인해 박영선 위원장은 9월 17일 당무에 복귀하는 대신 국민공감혁신위원장직을 사퇴하기로 결정하였다.

9월 18일 박영선 위원장을 대신해 문희상 의원이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되어 새로운 비상대책위원회를 이끌게 되었다.

문희상 위원장은 비상대책위원으로 박지원, 정세균, 문재인, 인재근, 박영선 의원을 위촉하여 이른바 계파실세 비대위가 구성되었다. 한편 김한길, 안철수 의원도 위촉했으나 둘 다 책임지고 물러난 지도부였다는 점에서 고사했다.

제1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

새정치민주연합은 2015년 2월 8일 제1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를 개최하고 문재인을 새정치연합의 새로운 대표로 선출하였다.

대의원 현장투표와 권리당원 ARS 투표, 일반국민, 일반당원 여론조사를 합산한 결과, 문재인이 45.30%, 박지원이 41.78%, 이인영이 12.92%를 각각 득표하였다.

지도부

새정치민주연합 창당준비위원회 지도부

2014. 3.17 ~ 2014. 3.26
  • 공동 창당준비위원장 : 김한길 (민주당 대표), 안철수 (새정치연합 창당준비위원회 중앙운영위원장)
  • 신당추진단 분과위원장[15]
    • 정무기획분과 : 민병두 (민주당 의원), 송호창 (새정치연합 소통위원장, 무소속 의원)
    • 정강정책분과 : 변재일 (민주당 의원, 민주정책연구원 원장), 윤영관 (정책네트워크 내일 이사장)
    • 당헌당규분과 : 이상민 (민주당 의원), 이계안 (새정치연합 공동위원장)
    • 총무조직분과 : 노웅래 (민주당 사무총장 및 의원), 표철수 (새정치연합 실무집행단장 직무대행)
  • 공동 대변인 : 박광온 (민주당 대변인), 금태섭 (새정치연합 대변인)

1기 지도부

2014. 3.26 ~ 2014. 7.31

국민공감혁신위원회

2014. 8. 4 ~ 2014. 9.17

비상대책위원회

2014. 9.18 ~ 2015. 2.8

2기 지도부

2015. 2.9 ~

논란

서울시의원 살인 청부 사건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김형식 서울시의원(열린우리당 대변인 역임, 충청남도 서천군 출생)은 2014년 3월에 자신에게 5억여원의 빚을 독촉하던 서울특별시 강서구의 수천 억대 재력가 송모(67)씨를 자신의 10년 지기 친구인 팽모(44)씨를 시켜 살해한 혐의로 2014년 5월 29일 경찰에 체포되었다. 김형식 서울시의원은 경찰에 체포된 직후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였다.[16]

이에 새누리당 민현주 대변인은 "이런 사람을 시의원 후보로 공천한 새정치연합은 엄중한 책임감을 느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새정치연합 지도부는 이번 사건에 대해 국민들에게 진심을 담아 사과해야한다"며 "새정치연합은 김 의원을 공천한 경위를 소상히 밝히고, 정당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점을 깊이 반성하고 책임져야한다"고 밝혔다.[17]

이에 따라 새정치민주연합은 "무거운 마음으로 향후의 수사절차와 재판을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박범계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변인은 이날 "탈당한 현역 시의원이 심각한 사건에 연루됐다고 한다. 개인적 의혹이고 아직 사건의 실체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우리 당은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필요한 조사와 조치를 취했다", "(당은) 지난 27일 오후 4시에 당 윤리위원회를 긴급 소집해 해당 시의원이 그 전날 당에 제출한 탈당계를 추인했고, 향후 무죄확정이 되지 않는 한 복당을 불허한다는 의결을 했다"고 주장했다.[18]

같이 보기

각주

  1. 박철중, 바다파랑 '새정치민주연합', 썩지 않는 바다처럼, 뉴스1, 2014년 3월 16일
  2. 한정원, '새정치민주연합' 당명 확정…닻 올린 통합신당, SBS, 2014년 3월 16일
  3. 송수경·박경준, 野신당, '산업화+민주화세력' 끌어안기로 통합 첫발, 연합뉴스, 2014년 3월 16일
  4. 임찬종, 박주선-강동원 의원, 통합야당 합류…의석 130석, SBS, 2014년 3월 16일
  5. 박상휘, 발기찬 발기인 대회 마친 통합신당…창당까지 남은 절차는?, 뉴스1, 2014년 3월 16일
  6. 심원섭, 김-안 ‘제3지대 창당’ 은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이 모델, CNB뉴스, 2014년 3월 3일
  7. 유승관, 새정치민주연합 '창준위 결성 신고합니다', 뉴스1, 2014년 3월 17일
  8. 김중배, 새정치민주연합, 전국조직 개편 '가속', 뉴스와이, 2014년 3월 17일
  9. 구교형 (2014년 3월 16일). “김한길·안철수 심야 담판서 당명 확정”. 2014년 3월 30일에 확인함. 
  10. 온라인뉴스부, 통합신당 당명 ‘새정치민주연합’…“당명 줄이면 민주 빠진다…색깔은 바다파랑”, 서울신문, 2014년 3월 16일
  11. 강영희, 새정치민주연합 이름 바꾸고 발빠른 출발, 새전북신문, 2014년 3월 16일
  12. 배민욱, 민주-安, 당명·당색 통합강조…새정치 이미지 구축, 뉴시스, 2014년 3월 16일
  13. 새전북신문 (2014년 3월 27일). “[사설] 막 내린 60년 민주당”. 2014년 3월 29일에 확인함. 
  14. 뉴시스 (2014년 3월 16일). “新 당명 새정치민주연합, 새정치국민연합과 막판까지 경합”. 2014년 3월 30일에 확인함. 
  15. 박영석, 민주-安 신당추진단 분과위원장 명단, 연합뉴스, 2014년 3월 10일
  16. 김형식 서울시의원, 5억 빚때문에 친구시켜 수천억대 강서구 재력가 살인 충격
  17. 與 “시의원 살인교사 혐의 사건, 새정치연합 사과해야”
  18. 새정치연합 “현직 시의원 살인교사 혐의 사건, 무거운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