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한강인도교 폭파

문서 내용이 다른 언어로는 지원되지 않습니다.
새 주제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마지막 의견: 12시간 전 (웬디러비님) - 주제: 한강 인도교 폭파 사건 관련 논란

사망자수[편집]

부분 폭파였기에 그짧은 구간에 수백명 사망은 말도 안된다. 121.125.168.126 (토론) 2024년 2월 24일 (토) 04:08 (KST)답변

일부 출처 제거[편집]

책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해당 책은 교보문고 사이트에서 구독을 통해 확인하였습니다.

감격한 스탈린, 공군과 막대한 전쟁 물자를 보내다: 중국이 소련의 공군 지원 없이 북조선을 구하겠다며 전격 참전을 결정하자 스탈린은 중국에 대한 모든 의심을 버렸다.

일반적으로 위키백과에서 역사를 다루는 분이시라면, 이 내용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얘기인지 아실 겁니다. 러시아어를 읽을 줄 아시는 분이라면 더욱 그렇게 느낄 것이고요. 해당 역사학자의 정치적 관점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무엇보다도 문제가 되는 점은, 해당 책이 다루는 출처가 이런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출처들로 이뤄져 있다는 점입니다. 출처 대부분이 단순히 제목만 표시되어 있으며, 정확한 페이지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출처도 살펴보면 이런 문제가 있는 내용으로 작성된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대표적으로 출처를 박완서의 소설을 달아놓은 것입니다. 박완서라는 대작가를 정치적 시각에서 폄하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소설을 출처로 달아놓았다는 점입니다. --호로조 (토론) 2024년 2월 25일 (일) 02:00 (KST)답변

위 내용의 삭제에 관해서는 맥락적으로는 다르나, 만약 궁금하신 분이 있으시다면 따로 틀:핑을 이용해서 호출과 함께 답변을 남겨주시거나 사용자 토론에 의견을 남겨주세요. 그에 맞게 답변하겠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별로 궁금해하지 않을 내용에 대해 장황하게 써놓은 것 같아서요. --호로조 (토론) 2024년 2월 25일 (일) 02:05 (KST)답변
"출처 대부분이 단순히 제목만 표시되어 있으며, 정확한 페이지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출처도 살펴보면 이런 문제가 있는 내용으로 작성된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이 부분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작성하지 않은 부분은 모르겠는데 제가 작성한 내용에 대한 출처는 모두 정확하게 제목, 페이지, 책의 경우 발간연도, 저자 모두 기재하였고 인터넷 전자책 등의 링크가 존재하면 최대한 링크를 해 놓았습니다. 인터넷 전자책 링크가 없으면 할 수 없이 독자들이 국립중앙도서관 등에서 확인을 해야 하는데 인터넷 전자책 링크가 없다고 한국어 위키백과에서 출처로 삼지 못 한다는 규정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출처도 살펴보면 이런 문제가 있는 내용으로 작성된 내용이 대부분이라는 것도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가 안 갑니다. 모두 국내외 저명한 6.25 전쟁 역사책들입니다. 119.194.102.28 (토론) 2024년 2월 25일 (일) 15:22 (KST)답변
@호로조: LR0725 [ 토론 | 기여 ] 2024년 2월 25일 (일) 16:16 (KST)답변
119.194.102.28: 저건 숨어 있는 한국 현대사 부분만을 설명하는 겁니다. 다른 출처의 경우 어떤 문제가 있는지 설명해드리겠습니다. --호로조 (토론) 2024년 2월 25일 (일) 21:46 (KST)답변
생각해보니 다른 출처를 제거한 이유에 대해서 묻는 게 아닌 본인의 편집을 제거한 이유에 대해서 묻는 것 같아 아래 더 말씀 드렸습니다. --호로조 (토론) 2024년 2월 26일 (월) 03:24 (KST)답변
119.194.102.28님께서 제시하신 출처는 문제가 없습니다만, 이 출처를 서술하는 방식에 대해선, 출처를 취합해서 새로운 결론을 내고 계신 것에 해당합니다. --호로조 (토론) 2024년 2월 26일 (월) 03:13 (KST)답변
(1) "백과사전은 논란을 서술하는 책이 아닙니다."
당연히 여기서 말씀하시는 백과사전은 위키백과를 의미하실텐데 위키백과 문서에 논란 문단의 생성 및 서술을 금지하는 규정은 없습니다. 문서마다 논란 문단은 자유롭게 만들 수 잇으면 2008년 대한민국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논란처럼 사안 자체가 원천적으로 논란 성격이면 바로 논란을 주제로 한 문서 생성이 가능하며, 기존 해당 문서에서 차지하는 논란 비중이 중대하고 분량도 많다면 대한민국 여성가족부 관련 논란처럼 독립 문서도 생성 가능합니다. 호로조님 말씀대로면 아래와 같은 문서나 문단들 전부 삭제해야 하는 것인가요? 한강 인도교 폭파 사건이 논란이 많은 사거으로 논란 문단 생성은 자연스러운 문서 확대 과정입니다.
영어 위키백과 역시 마찬가지로 문서마다 Controversy 문단이 엄청 많습니다.
(2) "조셉 굴든은 기자이므로 신뢰할 수 없다고 보여집니다."
먼저 보시다시피 en:Joseph C. Goulden은 한국어 위키백과 보다 저명성 기준이 까다로운 영어 위키백과에서
문서가 생성된 인물이며 미 육군 방첩대에서도 근무했고 en:Virginia Military Institute에 자문 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기자이므로 신뢰할 수 없으면 기자들이 작성하는 모든 군사 관련 신문 기사들은 신뢰할 수 없으므로 위키백과에서 무조건 국방부 등 직접 연관된 주체가 생산하는 1차 자료만 출처로 제시하라는 말씀이신데 오히려 위키백과 규정은 1차 자료가 아닌 보통 사건에서 최소한 한 단계 이상 떨어져 있는 2차 자료 사용을 더욱더 권장합니다. 특히 영어 위키백과는 이러한 경향이 더 강합니다.
그리고 제가 Joseph C. Goulden의 주관적인 의견이나 견해를 이 문서에서 권위있는 공식적인 결론처럼 사용한 것도 아니고, Joseph C. Goulden의 저서에 나온 미 군사고문단 발언 문장 Frank Gibney의 증언 문장을 그대로 인용한 것 밖에 없습니다.
(3) "오해할 수 있는 사실이 왜 필요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위에 기사 보시다시피 대동강 철교 사진이 삽입되어 있고 미 군사고문단이 민간인 사망자가 500~800명이라고 증언했다고 이렇게 잘못된 정보가 퍼져서 오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문단을 만든 것입니다. 즉 위키백과의 추구하는 가장 큰 목적 중 하나인 올바른 정보 전달을 위해 이런 문단들 만든 것으로 주관적인 생각으로 뭐가 필요하냐 이런 식으로 삭제해 버리면 위키백과에 남아나는 내용이 있겠습니까? 독자들에 따라 필요한 내용이 있고 불필요한 내용이 있는 것으로 호로조님 입장에서는 불필요한 내용일지라도 제가 만든 문단을 보고 한강 인도교 관련 기사에 대동강 철교 사진들이 있어서 이때까지 잘못 알고 있었다 하면서 유용한 정보로 받아들이시는 분도 계신다는 것입니다.
(4) "신기철의 연구를 역사학에서 주되게 인용하는 것도 아니고 비중이 있게 설명되는 것도 아닌데 반박-고발 식으로 서술하는 건 부적합합니다."
신기철 인권평화연구소장은 6.25 전쟁 당시 국가권력 즉 국군과 경찰의 민간인 학살을 전문적으로 연구하시는 분입니다. 학살 연구 결과가 주류 역사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낮으니 주되게 인용은 안 되지만 한겨례신문, 오마이뉴스 등 진보 계열 메이저 신문사들이 연구결과를 자주 인용하시는 분이며 그나마 한강 인도교 폭파 민간인 인명피해자에 대해 학술적으로 조사하신 분이 이 분이 거의 처음이고 이런 연구결과를 논란 항목에서 소개하는 것은 부적합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5) 출처를 서술하는 방식에 대해 새로운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처럼 오해의 여지가 있다는 지적대로 문장 등을 다듬었고 계속 읽어보고 다듬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문서에서 어떤 새로운 결론을 내린 것이 아닙니다.
인명피해자 관련해서는 본문에서도 설명했던 것처럼 시체 수습을 통해 사망자수와 신원에 대해 이론의 여지없는 통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극히 상식적인 전제를 먼저 적시했고 그 후 이 신기철이라는 민간인 학살 전문 연구가가 인명피해자 대부분이 군경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으며 군인 사망자만 보도하고 있는 미국 신문 기사 등을 소개를 한 것입니다.
그리고 폭파 시기 역시 폭파 시기는 조기 폭파이지만 이에 대해 반론들이 존재한다고 반론들을 소개한 것입니다.
논란 문단이기 때문에 민간인 인명피해자가 대다수이다. 조기폭파가 아니다라는 반론 들을 다시 재반박하는 조기 폭파가 명백한 이유 등을 다른 편집자가 상세히 기재를 한다면 저로서는 대환영입니다.
(6) 여담이지만 위키백과 규정에 심각한 위반이 있는 것도 아닌데 정성스럽게 작성한 문서들을 이렇게 날려버리고 토막글 수준에서 더 이상 발전시키지 못 하게 막고 그러면 앞으로 누가 위키백과에 기여를 하고 위키백과 문서를 누가 보러 오겠습니까?
관리자님이신 것 같은데 이런 점 때문에 위키백과 문서에 볼 내용도 없고 어차피 기여해봤자 규정 들이되면서 날려버리고 이러니까 계속 편집자들도 떠나고 대부분 사람들이 나무위키 문서 먼저 보고 그런다고 생각은 안 드시는지요?
제가 편집한 문서 내용에 맘에 안 드시는 부분이 있으셔도 날려버리고 토막글로만 만들려고 하지 마시고 제가 소개한 연구결과와 방향성이 다른 연구결과 등을 첨부해서 문서를 풍부하게 만들어 주기실 부탁드립니다.

119.194.102.28 (토론) 2024년 2월 26일 (월) 18:09 (KST)답변

'여담이지만 위키백과 규정에 심각한 위반이 있는 것도 아닌데 정성스럽게 작성한 문서들을 이렇게 날려버리고 토막글 수준에서 더 이상 발전시키지 못 하게 막고 그러면 앞으로 누가 위키백과에 기여를 하고 위키백과 문서를 누가 보러 오겠습니까?'라고 하셨는데, 위키백과에 기여하시는 거라면 위키백과 서술 방식을 존중해주세요. 나무위키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여기는 나무위키와 다릅니다. 나무위키와 다르다는 것을 아신다면 나무위키와 다른 서술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1. 한강 인도교 폭파에 대한 논란이 독립 문서로 만들어져야 할 정도로 메이저한가요? 한강 인도교 폭파에 대한 전개에 대한 내용보다 중요하게 서술되어야 할 정도로 중요한가요? 백:비중을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는 '오해할 수 있는 사실' 문단에 대한 답변과도 일맥상통합니다.
  2. 저명한 기자라는 점에서 등재 가능한 것이지, 그 사람이 책에서 서술하는 내용을 신뢰할 수 있다는 무조건적 근거가 되지 못합니다. 상황과 맥락상 500~800명이라는 수치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는 점은 기여자분께서도 이미 밝힌 내용 아닌가요?
막말로, 귀하가 저를 규정 들이밀면서 날려버린다고 하셨으면, 귀하는 '독자의 알 권리'와 '토론 시 서술 우선 유지주의'를 들이밀면서 잘못된 내용을 서술하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으셨나요? 토론 예절을 준수해주시기 바랍니다. --호로조 (토론) 2024년 2월 26일 (월) 20:11 (KST)답변
1. 관리자이시면서 토론 끝나지도 않았는데 맘대로 삭제하시는 것은 왜 그런가요? 기본적인 규정도 모르시나요?
2. 위키백과 서술 방식대로 다듬고 있는 중입니다.
3. 한강 인도교 폭파에 대한 논란이라는 제목으로 제가 독립 문서를 만든 것이 아닙니다. 한강 인도교 폭파라는 문서에서 논란 문단을 만들어서 확장한 것이입니다. 지금 인명피해자 논란은 건국전쟁 영화 때문에 메이저하니 언론 기사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4.미 군사고문단이 군인과 민간이 합쳐서 500~800명 추정 발언했다는 기록을 그대로 인용한 것입니다. 문서를 정확하게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미 군사고문단이 500~800명 추정 발언을 근거로 제가 한강 인도교 폭파 인원은 공식적으로 500~800명이다 이렇게 확정했습니까?
5. 논란 문단을 만들면 안 된다, Joseph C. Goulden이 기자라서 인용하면 안 된다 이상한 규정이라도 있는 것처럼 하시다가 전부 반박되니까 이상하게 말꼬리를 잡으시네요. 119.194.102.28 (토론) 2024년 2월 26일 (월) 22:56 (KST)답변
귀하의 편집을 문제 삼은 건 저고, 따라서 기존 판으로 원복하였습니다. 정말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위키백과에서는 논란 문단 만들지 않는 건 불문율입니다. 반박을 했다니, 말꼬리를 잡는다니, 더 이상의 이성적 토론은 불가하겠네요. --호로조 (토론) 2024년 2월 26일 (월) 23:02 (KST)답변

사진 제거[편집]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과 채병덕 장군>(연구소 링크 실효로 부득이 하게 접근할 수 있는 링크 따로 첨부함) 2002, 124페이지 참고. 당시 폭파된 한강 인도교가 아닌 서북단의 철교만 찍혀있습니다. 이미 위키미디어 공용에 해당 사진이 있다는 점에서 굳이 철교만 보여주는 사실을 올릴 필요는 없다고 판단합니다. --호로조 (토론) 2024년 3월 5일 (화) 04:14 (KST)답변

문서 구조[편집]

먼저 문서 구조를 어떻게 할지부터 토론으로 총의를 모아서 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기존에 있던 '오해의 소지' 문단과 논란 문단을 원상복구 했으면 좋겠습니다.

한강 인도교 폭파 관련해서 대중들과 언론에서 오해 혹은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이 많고 즉 한강 인도교 폭파 관련 기사]에서 정말로 대동강 철교 사진을 사용하고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오해의 소지 문단은 필요하며 그리고 사실 한강 인도교 폭파 문서의 핵심은 사실 인명피해자가 누구인지, 조기 폭파가 맞는지 등등 이런 논란들이기 때문에 논란 문단은 필수로 생각됩니다. Footwiks (토론) 2024년 3월 5일 (화) 23:21 (KST)답변

@Footwiks: 오해의 소지 문단과 논란 문단만 거의 문서 내용의 반할을 차지합니다. 이는 균형있게 다루기와 비중의 적절성에 어긋납니다. --호로조 (토론) 2024년 3월 6일 (수) 00:07 (KST)답변
한강 인도교 폭파 사건에서 가장 대중들의 관심이 뜨겁고 문제가 되는 부분이 오해의 소지와 논란 사항이니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계적으로 문단별 분량 제한하는 것이 더 이상한 것 같습니다. Footwiks (토론) 2024년 3월 6일 (수) 00:17 (KST)답변
@Footwiks: 문단별 분량을 '제한'한다고 하시거나 이것이 기계적이라며 문제를 삼으시는 건 균형있게 다루기와 비중의 적절성 지침 그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와 같습니다. 전 기계적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그게 문제가 있다고 느껴지신다면 메타적인 부분에서부터 토론을 진행하셔야 하는 사안이라고 보입니다. --호로조 (토론) 2024년 3월 6일 (수) 00:27 (KST)답변
이 문서 내에서 비중의 적절성 이런 문제가 있다면 아예 한강 인도교 폭파 관련 논란 새로운 문서로 독립해서 나가겠습니다.
한강 인도교 폭파 사건의 논란이 자체가 독립 문서로 충분히 만들만한 저명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LR0725님에게 문의한 결과 그때 말씀하셨던 것처럼 한국어 위키백과에 "백과사전은 논란을 서술하는 책이 아닙니다.","정말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위키백과에서는 논란 문단 만들지 않는 건 불문율입니다. 이런 규정이나 불문율은 저처럼 들어보신 적 없으시다고 합니다. Footwiks (토론) 2024년 3월 6일 (수) 00:32 (KST)답변
@Footwiks: 관점 포크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긴 합니다. 개인적으로 논란 문서를 만드는 건 굳이 막지는 않습니다만, 지금도 독자연구와 들여쓰기를 통한 코드 인용 형식 사용, 인용틀에 대한 이해 미비 등 문제가 많은데 논란 문서에서도 반복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정말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위키백과에서는 논란 문단 만들지 않는 건 불문율입니다"에서 불문율은 문서화되지 않았다는 뜻인데, 당연히 정책에도 없는 게 맞지 않나요? 이와 비슷한 것으로는 개요 문단을 작성하지 않는 것과 문단 먼저 나누지 않고 내용이 많아질 때 내용을 분리하는 관례가 있을 수 있겠네요. --호로조 (토론) 2024년 3월 6일 (수) 00:43 (KST)답변
그런 불문율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내용이 많아서 본문서 비중이 안 맞는다고 하시니 그러면 제가 논란 문서로 독립시키겠습니다. Footwiks (토론) 2024년 3월 6일 (수) 18:21 (KST)답변
그리고 지금 한강 인도교 폭파 문서 확장 반대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조사해서 편집한 내용들이 한강 인도교 폭파 인명피해자가 군인과 경찰에 치중된 자료가 많아서 그런것인가요? 그러니까 제가 민간인 인명피해자에 대한 관련 자료도 조사해서 넣어드리면 중립적으로 맞춰지고 문제 안 삼으시는것인가요? 제가 민간인 인명피해자 대한 내용도 넣을테니 서로 이쯤에서 토론 끝내시는 것은 어떠신가요? 그리고 민간인 인명피해자에 대한 내용은 호로조님도 자유롭게 채워넣으시기 바라며 저는 제가 넣은 자료보다 분량이 많더라도 비중이 안 맞다고 이런 이의 제기 절대 안 하겠습니다.Footwiks (토론) 2024년 3월 6일 (수) 18:44 (KST)답변

자신들의 지프 주위의 트럭들이 다리와 같이 폭파되면서 탑승해있던 수백명의 한국군들이 사망했다고만 보도하고 있으며 민간인 사망자에 대해서는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다.

@Footwiks: 이런 식의 서술이 진짜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뭐가 잘못된 것인지 모르신다면 역량의 문제라고 봅니다. --호로조 (토론) 2024년 3월 6일 (수) 21:30 (KST)답변

답변 문제로 내옴합니다. --호로조 (토론) 2024년 3월 6일 (수) 21:59 (KST)답변

현재 당시 상황을 추정할 수 있는 자료는 목격자 등등의 증언뿐이고 한강 인도교 다리 건너다가 직접 폭파 경험한 외신 기사에 나온대로 당시 상황에서 대해서 그대로 설명하는 것인데 무슨 문제가 있나요?

저는 지금 저 기사의 원문을 가지고 있고 원문기사 링크도 걸어놓았지만 다른 유저들이 저 기사 실제로 볼려면 미국 신문 아카이브에서 돈 내고 봐야 합니다. 그러니까 군인 사망자 기술된 부분만 의도적으로 발췌해서 올린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으니 '민간인 사망자에 대해서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다.'는 문제삼으신 문장은 여기에서 꼭 필요한 부연 설명입니다.

그리고 제가 당시 종군기자 3명 중 버튼 크레인과 키스 비치는 군인 사망자만 보도했고 나머지 1명 프랭크 기브니는 민간인 사체도 보았다고 보도한대로 제가 그대로 기술했습니다.

저는 당시 상황 추정할 수 있는 증언 자료들을 올리는 것인데 이것을 지금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다른 유저들이 외신기사 증언을 아예 보지 못하도록 하고 인명피해자는 아예 언급도 못 하게 토막글 수준으로 막고있는 호로조님이 저는 이해가 안 갑니다.
그리고 문제삼은 문장 문제 제기하는 것이 지금 호로조님 밖에 없는 호로조님 개인 의견일뿐인데 문제삼은 문장에 대해서 토론을 걸던가 해야지 왜 증언 단락 전체를 통째로 날려버립니까?

하여튼 이 문장 때문에 중립적인 시각이 아니라고 하시는 것 같아서 "국군 중에 이창록 소위와 유모 소령은 피란 민간인 사망자를 특정해서 명확하게 증언하였다." 이런 문장도 넣었습니다.

아무튼 저는 아래와 같은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원하시는 바를 정리해 주세요.
(1) 문서 내 비율이 문제이시면 제가 그 부분 수용해서 오해의 소지와 논란 문단은 아예 독립문서로 만들겠습니다.
(2) 상황을 묘사하는 모든 증언들을 기록하고 민간인 인명피해자에 대한 어떤 학술자료가 있으면 이 부분 소개하면 최적인데 그런 자료가 없어서 제가 나무위키에서도 황현필 연구강사 연구결과 단락 만들었는데 한위백에서도 황현필 강사의 연구결과 단락을 만들어서 최대한 균형을 맞추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논란 문서에서 민간인 인명피해자가 많았다는 견해를 강화시키고 싶으시면 직접 자료 좀 찾아서 확장시켜 주시던가 군인 사망자만 강조하는 견해가 강하다고 느껴지면 중립성 틀을 달던가 해야지 아예 문서 확장 자체를 기본적인 개요 단계 수준으로 강제로 되돌려서 논란의 여지가 아예 없는 문서 만드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관리자로서 잘못 처신하시고 계신 것 같습니다.

제가 중립적으로 최대한 균형 맞추어서 다시 기술해 놓았으니 살펴보시고 민간인 인명피해자를 강조하시고 싶으시면 호로조님이 자료 첨부해서 문서 확장하는데 도움을 주시기 바랍니다. Footwiks (토론) 2024년 3월 7일 (목) 22:59 (KST)답변

@Footwiks: 계속 이상한 의도로 몰아가시는데, 민간인 인명피해자 강조하고 싶은 생각 없고, 관심도 없습니다. 왜 이렇게 사람들이 제 정치적 관점을 마음대로 판단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건국전쟁에도 관심 없고, 파묘에도 관심 없습니다. 둘 다 싫어요. 저한테나 문서에나 개인 본연의 정치적인 관점 좀 그만 투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어지간해서는 최대한 감정 안 상하게 말씀드리는데 이건 진짜 불쾌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군사사(史)적인 부분인데 귀하가 기자는 아니지 않습니까.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다고 쓰는 게 어떻게 봐서 2차 자료에 근거한 서술인가요... 그러면 그 동안 위키백과 이런 식으로 편집하셨다는 거네요? --호로조 (토론) 2024년 3월 7일 (목) 23:58 (KST)답변
그리고 제발 들여쓰기 좀 지켜주시고, 해야할 말, 하지 말아야 할 말 구분해주시기 바랍니다. --호로조 (토론) 2024년 3월 8일 (금) 00:02 (KST)답변
원문 기사에 민간인 인명피해자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다는 점을 그대로 쓴 것인데 무엇이 문제인가요? 삭제할려면 그 부분만 삭제를 하시던가?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다 이 부분 때문에 전체 분량이 돌려지는 것이 정당합니까? 이렇게 하는 유저 있으면 관리자한테 신고해야 되는 것 아닌가요?
이때까지 문제되는 문장 있으면 그 단락 전체 날려버리면서 그렇게 위키백과 관리하셨나요?
원문 기사에 인명피해자에 대해 언급이 있었는데 언급이 없었다고 이렇게 쓰면 문제이겠지만 저는 그 동안 위키백과 기사에 나오는 그대로 편집했었고 아무 문제 없었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원하시는 것이에요? 무조건 호로조님이 만든 토막글 수준에서 누구도 확장 시키면 안 된다 이것을 원하시는 것인가요?Footwiks (토론) 2024년 3월 8일 (금) 00:42 (KST)답변
@Footwiks: 직설적으로 말씀드리지 않으면 눈치를 못채는 성격이신 것 같은데, 스파르탄 3000 토론이랑 ANI 통해서 영어 위키피디아에서 차단 당하신 이유를 본인만 모르고 계신 건가요? 서술 방식에 의한 문제예요. 님이 독자의 해석 방식과 결과를 창출하고 계신 거잖아요. 귀하가 영어 위키피디아에서 무기한 차단 당했다는 거 알고 계시면 귀하가 문제가 있다는 걸 좀 자각을 하시면 좋겠습니다.
분명 다른 관리자인 LR님께서도 토론 없이 문서 작성 시점으로 되돌리지 말라고 했지 않습니까? --호로조 (토론) 2024년 3월 8일 (금) 00:42 (KST)답변
넵 직설적으로 말 안 해 주면 눈치를 못 채는 성격이니 구체적으로 지적을 해 주세요
스파르탄 3000은 목록 삭제에 관한 것인데 무슨 서술방식에 대한 문제입니까? 스파르탄 3000 토론에 참여하시지도 않았으며 이 토론과 본질적으로 무관한 사항이 부적절한 언급하지 마시고요 그리고 제가 중립적으로 여러가지 보강해서 편집한 샘플 버전 보여드린것으로 어디에 독자의 해석과 방식과 결과를 창조하고 있습니까?
LR님이 어차피 참여자 없어서 1대1로만 토론 계속되다가 흐지부지 되면 어차피 돌리라고 하셨습니다.Footwiks (토론) 2024년 3월 8일 (금) 01:01 (KST)답변
@Footwiks:

My fault was only copyvio by mistake. That's what Footwiks' conclusion is, from this entire discussion. He's done everything perfectly fine, he just made one little tiny error, and everyone else is mistreating poor Footwiks terribly. So what if Footwiks doesn't do what other people want? Footwiks knows best, and everyone else just make big deals out of small issues. If a section has critical issues but it was written by Footwiks, it should stay for six months and Footwiks will blame others for not deleting it. Of course, it doesn't matter that Footwiks has reverted the deletion of that section on multiple occasions, it's still other people's fault for not deleting it! If another editor is reminded of an absolutely terrible section Footwiks has written, it is Wikipedia:Gaming the system. If Footwiks wants to WP:FORUMSHOP and WP:CANVASS editors with the same multiple edits they have told many many times to stop doing, Footwiks just says "I'm sorry to bother you." Because Footwiks didn't mean it, really he didn't. It's just a little mistake! If another editor to take significant time out of their day explaining how Wikipedia works to Footwiks, Footwiks dismissively replies "What a long prose. It takes much time. I do not think it is worth it." Afterwards, Footwiks says "I really didn't mean it. But if you feeled insulted, I really do apologize for my comments" Look everyone, Footwiks didn't mean it! Just forget about the fact he said it anyway. And about the fact that Footwiks has himself written several long prose, taking much time, in this very section. But don't worry, Footwiks' long prose is worth it. Definitely. 100%. Just remember everyone, bearing in mind all of the above, Footwiks believes his only error was copyvio by mistake. That's the only thing he's understood from this discussion.

In the Spartan 3000 thread, Footwiks lengthy and often posted repetitive comments that would regularly take up to 30 consecutive edits or more before being complete.

좀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호로조 (토론) 2024년 3월 8일 (금) 01:02 (KST)답변
답변 문제로 내어옵니다. --호로조 (토론) 2024년 3월 8일 (금) 01:04 (KST)답변
제가 영어 위키백과에서 AirshipJungleman29 그리고  thewolfchild와 편집 분쟁을 겪었습니다.
당연히 저한테 좋은 얘기를 안 하는 것이고 그리고 아래 얘기는 스파트란 3000 토론에서 너무 길게 쓴다고 저 thewolfchild가 자신이 할 말 없으니까 꼬투리 잡은겁니다.
In the Spartan 3000 thread, Footwiks lengthy and often posted repetitive comments that would regularly take up to 30 consecutive edits or more before being complete.
그러면 호로조님도 Ellif님과 분쟁 있으셨고 그래서 Ellif님은 "호로조님을 관리자로서 신임하지 않으며, 제 편집과 관련된 판단에 있어서 이들의 관할을 거부합니다." 이렇게 대문에 대놓고 쓰신 적 있었는데 Ellif님의 이 발언이 현재 이 토론에서 필요한 것인가요?
Footwiks (토론) 2024년 3월 8일 (금) 01:15 (KST)답변
@Footwiks: 계속 약속 어기시고 되돌리시는데, 님이 의견 내고 제가 1시간안에 답변 안 하면 토론이 흐지부지 된 건가요? --호로조 (토론) 2024년 3월 8일 (금) 01:21 (KST)답변
제가 중립적인 서술 비중 문제 등등 개선할 부분 반영한 샘플 못 보신 것 같아서 돌린것인데 샘플 확실히 보셨으니 일단 그대로 두렜습니다. 추후 개선할 부분 반영해서 샘플 이런 이름으로 쓰고 돌려놓을테니 그때 검토해 보시고 제가 기여한 내용에 한 글자도 허용하시기 싫으신 것 아니시면 원하시는 편집 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LR님도 중립적인 서술 문제 즉 민간인 인명피해자에 대한 기술 갖추어서 균형만 맞추면 문제 없는 문서라고 하셨습니다.Footwiks (토론) 2024년 3월 8일 (금) 01:33 (KST)답변

당시 Footwiks님의 서술 역시 비중의 문제를 충분히 삼을 수 있는 영역인지라, 특별히 문제 삼을 건 아니라 생각하였습니다.

— 본인(호로조)이 편집에 문제 삼았던 행동에 대한 질문을 하자, 그에 대한 대답

+ 덧붙여, 위키백과:중립적_시각#논란이_되는_주제들도 참고 바랍니다. 또한 백:논란칭호(지침)에 의거하여, '논란'이라는 어휘 자체가 권장되지 않는 표현이라는 것도 염두에 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솔직히 저는 어떤 버전으로 고정을 하든 별로 상관이 없다고 보고, 따라서 그냥 어느 한쪽 편 들어줄 거 없이 그 당시 판으로 고정한 것뿐입니다. 나무위키마냥 서술이 고정된 시점의 서술이 토론에서 우위를 가지는 것도 아니니 어느 판으로 고정됐는지에 목을 멜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단지 "되돌리기 분쟁을 막기 위함"일 뿐인 고정이니 그런 거에 집중하시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기존 서술이란 건 해석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해당 서술이 작성된 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삭제되었기 때문에 기존 서술은 삭제된 상태라고 볼 여지가 충분합니다. 해당 서술이 쓰인 게 최소 몇달 전이면 재검토하겠지만, 1달도 되지 않았으므로 제 결정이 잘못되었다 생각하진 않습니다.
토론이 계속되다가 호로조님(혹은 다른 삭제 측)이 의견을 내지 않거나, 총의가 도출된다면 다시 유지한 채로 돌릴 수 있겠습니다. 이거 이상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이 없는 거 같습니다.

다시 읽으시기 바랍니다. --호로조 (토론) 2024년 3월 8일 (금) 01:58 (KST)답변
@Footwiks: --호로조 (토론) 2024년 3월 8일 (금) 02:00 (KST)답변
제가 문서 확장을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고민하다가 아래와 같이 구체적으로 질문을 했었습니다. A라는 견해는 군인 인명피해자에 대한 견해, B라는 견해는 민간인 인명피해자에 대한 견해입니다.
  • 저의 질문
제 오해일 수도 있지만 호로조님이 계속 한강 인도교 폭파 문서 토막글 수준으로 되돌리는 이유가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B라는 견해를 직접 편집해서 넣어서 그렇게 하기는 귀찮고 그런데 A라는 견해는 보기 싫고 그러니 관리자 권한 이용해서 아예 토막글 수준으로 피장파장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 같은데 그러면 제가 B라는 견해까지 전부 조사해서 중립적으로 맞추어 놓으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인가요?
  • LR님의 답변
B까지 전부 조사해서 넣으신다면 제가 아는 선에서 특별히 문제가 될 이유는 없을 듯합니다. 물론 저는 해당 분야에 대해 두 분만큼 잘 아는 듯하진 않으니, 또 문제 삼을 부분이 어딘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저와 LR님이 나누었던 대화들을 LR님 토크에서 꼼꼼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Footwiks (토론) 2024년 3월 8일 (금) 02:07 (KST)답변
@Footwiks: 그 부분에 대해서 따로 첨언하지 않았던 이유는 LR님도 관리자이고 관리자로서 위신이 있으신데, 제가 대놓고 무안을 드릴 순 없기 때문입니다. 백:비중에 나와있는 내용입니다. 당시 Footwiks님의 서술 역시 비중의 문제를 충분히 삼을 수 있는 영역인지라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논란 서술의 경우 백:논란 칭호에서도 볼 수 있듯 권장되지 않습니다. --호로조 (토론) 2024년 3월 8일 (금) 02:14 (KST)답변
위키백과:논란칭호에 대해서는 저도 이 부분은 LR님한테 그때 질문 드릴려고 했는데 아래 설명 보셨다시피 특정 사건 문단에서 논란 문단 만드는 것과 관계없는 규정이잖아요. 논란을 유발하는 칭호에 대한 규정으로 인종차별주의자 이런 논란을 유발할 수 있는 칭호를 가급적 삼가하라는 것이고 어떤 사람 개인의 문서에서 논란을 설명하는 경우 논란을 입증하고 과도한 비중을 부여하는 것 아닌지 확인하고 이렇게 되어 있으며 영어 위키백과의 원문 규정을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현재와 같은 사건 사고에 대한 논란 서술과 관련이 없는 규정으로 보입니다.
  • 논란의 여지가 있는 칭호
주의해야 할 표현 : 이단, 인종차별주의자, 남성/여성 혐오자, 변태 성욕자, 근본주의자, 극단주의자, 의사(義士) 또는 열사, 테러리스트, 네오 나치, ~게이트, 논란, 유사- 또는 사이비-, 인종차별주의자, 남성/여성 혐오자, 변태 성욕자, 근본주의자, 극단주의자, 의사(義士) 또는 열사, 테러리스트, 네오 나치, ~게이트, 논란, 유사- 또는 사이비-, ...
컬트 (사파) , 인종차별주의자, 성차별주의자, 테러리스트, 의사(義士) 또는 열사가치 편향적인 칭호는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신뢰할 수 있는 출처에서 대상을 설명하는 데 널리 사용하지 않는 한 해당 표현은 피하는 편이 가장 좋습니다. 이 경우 텍스트 내 속성을 참고합니다. 비공식적인 신화는 피하고, 학술적 맥락상 이 용어의 공식적인 사용례를 나타내세요.
유사-' 또는 '사이비-'는 진위 여부가 의심스러운 것을 나타내는 접두사입니다. '-게이트'는 특정한 스캔들의 존재를 가리키는 접미사입니다. 외부에서 널리 사용되는 경우에만 문서에 쓰세요. (예: 게이머게이트 논쟁) 주관적이고 모호한 단어 '논란'을 사용하여 한 개인을 설명하는 대신, 독자에게 관련 논쟁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세요. 또한 신뢰할 수 있는 출처로 논란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이 용어가 비주류적인 관점에 과도한 비중을 부여하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세요.

'유사과학' 또는 '사이비 과학' 용어 관련: 위키백과:중립적 시각 정책에 따라, 유사과학적 관점은 "분명하게 그것이 유사과학임을 나타내야 합니다". 내용 관련 지침 위키백과:비주류 이론에 따라, 신뢰할 수 있는 출처가 뒷받침하는 경우, '유사과학'이라는 용어는 주류 과학과 비주류 이론을 구별하는 데 사용할 수 있습니다.

Footwiks (토론) 2024년 3월 8일 (금) 02:31 (KST)답변

@Footwiks: 이 정도면 일부러 이러시는 건지 아니면 진짜 모르고 하시는 말씀인지 모르겠는데, 님이 인용하신 내용에도 논란이라는 내용이 있지 않습니까? 인물에 대해 한정한다고 이해하신 겁니까? --호로조 (토론) 2024년 3월 8일 (금) 02:37 (KST)답변
넵 인물에 대해 한정하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인물은 개인 프라이버시가 있고 그러니 충분히 논란을 자제하라가 이해가는 규정이지만 사건, 사고 이런 분야에 적용되는 규정은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규정에서 위키피디아 전체 문서라고 하지 않고 인물로만 한정한 이유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Footwiks (토론) 2024년 3월 8일 (금) 02:44 (KST)답변
@Footwiks: 아무래도 제가 말씀드려도 제 개인적인 해석이라고 말씀하실 것 같아 그냥 내일 다른 관리자에게 해석을 맡기겠습니다. --호로조 (토론) 2024년 3월 8일 (금) 02:50 (KST)답변
위키백과:논란칭호는 정책이 아니고 위키백과:편집 지침으로 모든 사용자들이 가능하면 따라야 하는 보편적인 기준이며, 상식과 상황에 따라서는 예외가 있을 수 있다고 기재되어 있습니다. 호로조님 의견대로 사건과 사고에도 논란이라는 표현을 자제하는 편집 지침이라 하더라도 한강 인도교 폭파는 신뢰할 수 있는 출처로 이미 논란이 입증이 되었고 한강 인도교 폭파 사건 자체가 인명피해자수, 누가 폭파 지시를 내렸는가?, 조기 폭파가 맞는가 등 논란거리가 핵심인 사고라 위키백과:논란칭호에 영향받을 문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즉 위키백과:논란칭호가 한강 인도교 폭파 문서에 적용될 것도 아니고 위키백과:논란칭호에 대해 집중하면 토론이 산으로 갈 수 있을것 같습니다. Footwiks (토론) 2024년 3월 8일 (금) 19:35 (KST)답변
@Footwiks:

먼저 로이 E. 애플먼(Roy E. Appleman)이 편찬하고 미 육군 군사연구소가 발행한 6.25 전쟁사 'South to the Naktong, North to the Yalu(낙동강에서 압록강까지)'에 나오는 내용이기 때문에 미 군사고문단 장교가 실제로 이런 증언은 남긴 것은 확실하다. 참고로 국방부의 전사편찬위원회 발간한 한국전쟁사 1권에도 목격자에 의한 인명피해자 500~800명 추정 수치가 들어가 있지만 인명피해자를 민간인이라고 특정하지 않고 인원이라는 표현하여다.

확실하다 뭐다 가부를 판단해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명백한 독자연구이고, 독자가 참고해야 할 것도 없고, 수치를 가지고 논란이 있다는 근거도 되지 못합니다. --호로조 (토론) 2024년 3월 8일 (금) 20:01 (KST)답변
* 'South to the Nakdong, North to the Yaul' p. 33
* '한국전쟁사 제1권' p. 547

'South to the Nakdong, North to the Yaul' p. 33과 '한국전쟁사 제1권 p. 547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South to the Nakdong, North to the Yaul p. 33 읽어보면 미 군사고문단 장교가 500~800명의 인명피해자 증언했다고 나오니 제가 미 군사고문단이 500~800명 인명피해자 추정 수치 남긴 것은 확실하다 이렇게 기술한 것인데 이것이 독자연구인가요?

'확실하다' 이런 표현이 독자연구처럼 느껴지셔서 그런 것 같은데 다음 편집에 South to the Nakdong, North to the Yaul에 미 군사고문단 장교가 500~800명 인명피해자 증언을 했었다. 이렇게 확정 문체로 기술하겠습니다.

그리고 '한국전쟁사 제1권 p. 547에도 아래처럼 인원이라고 나오지 민간인이라고 특정 안 해서 그대로 쓴 것인데 이것이 독자연구인가요?

  • 당시 헌병과 공병들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용산쪽에서 이곳까지 밀어닥친 차량과 인파가 폭발현장(중지도에서 세번째 교각)으로 밀리는 바 되어 인명피해가 가중된 것으로 보였는데 그 손실은 차량 50대, 인원 500~800명에 이른 것으로 목격자에 의해 추산되기도 하였다

계속 제가 독자연구를 했다고 하시는데 무엇이 독자연구라는 말씀이신거죠? 500~800명은 군인과 민간인 포함 인명피해자 추정 수치이다 이것에 제가 독자연구로 만들어낸 결론이라는 말씀이신가요?

신뢰할만한 출처 조선일보 기사에도 팩트체크 결과 미 군사고문단이 군인과 민간인 500~800명 사망이라고 추정했다고 나오며 미국의 다른 6.25 전쟁사에서도 나와서 교차검증이 된 팩트입니다.

  • 조선일보 기사
  • 'Korea: The Untold Story of the War' p. 82 (Joseph C. Goulden, 1982년) - 미 군사고문단 장교의 인명피해자 관련 발언 원문 발췌

>Recontructing the disaster later, KMAG officers estimated that from 500 to 800 soldiers and civilians were killed by the blast or drowned when they fell into the river.

그리고 건국전쟁 개봉 후 인명피해자는 경찰 77명만 죽었다고 주장하는 측도 있고 민간인 500~800명이 죽었다 이렇게 주장하는 측도 있고 논란이 과열되었으니 논란 문단을 만들어 반영한 것입니다. Footwiks (토론) 2024년 3월 8일 (금) 22:13 (KST)답변

  1. 확실하다고 쓸 필요가 없습니다. 2차 출처에 기반해서 써야 합니다.
  2. 그리고 '한국전쟁사 제1권 p. 547에도 아래처럼 인원이라고 나오지 민간인이라고 특정 안 해서 그대로 쓴 것인데 이것이 독자연구인가요?: 네. 결론을 임의로 도출을 하고 계신 겁니다.
  3. 자꾸 영화 건국전쟁 얘기하시는데 건국전쟁 관련 내용은 건국전쟁에 쓰세요.
@Footwiks: 그리고 계속 말씀 드리는 건데 들여쓰기 좀 지켜주세요. --호로조 (토론) 2024년 3월 8일 (금) 22:26 (KST)답변
1. 2차 출처에 기반해서 아예 미 군사고문단 장교의 발언은 군인과 민간인 합쳐서 500~800명이었다. 이렇게 기술해서 지적하신 부분 해결하겠습니다.
2. 한국전쟁사 제1권 P.547에 인원 500~800명 사망자를 독자연구처럼 민간인 사망자 500~800명으로 잘못 해석한 사례가 있어서 참고로 얘기한 것인데 이 기술 아예 빼도 상관없습니다.
3. 건국전쟁 이후 한강 인도교 폭파 인명피해자 이슈가 커진 것을 설명드린 것입니다.
사고 문서에서 인명피해자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고 이것이 한강 인도교 폭파는 논란이 되니 어쩔 수 없이 논란 문단으로 설명을 해야 하는 것이고 이제 독자연구 문제해결 되었고 백:비중 문제도 해결되었고 제 버전으로 돌려도 되겠습니까? Footwiks (토론) 2024년 3월 9일 (토) 16:28 (KST)답변
지적하신 부분은 아래와 같이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 미 군사고문단 장교의 사망자 추정 500~800명은 군인과 민간인 총합 추정수치

주한미군 군사고문단(Korean Military Advisory Group, KMAG) 소속 장교의 한강 인도교 폭파 사망자 500~800명 추정 수치는 완전히 민간인 사망자만의 추정 수치가 아니며 군인, 경찰, 민간인 등 다리 폭파로 사망했을 모든 사람들을 총합해서 추정한 수치로서[1]

로이 E. 애플먼(Roy E. Appleman)이 편찬하고 미 육군 군사연구소가 발행한 6.25 전쟁사 'South to the Naktong, North to the Yalu(낙동강에서 압록강까지) 그리고 조셉 C. 굴든(Joseph C. Goulden)의 저서 Korea: The Untold Story of the War'의 원문을 살펴보면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 'South to the Nakdong, North to the Yaul' p. 33 (미 육군 군사연구소, 1961년) - 미 군사고문단 장교의 인명피해자 관련 발언 원문 발췌
 The gigantic explosions, which dropped two spans of the Han highway bridge into the water on the south side, were set off about 0215 with no warning to the military personnel and the civilian population crowding the bridges. Two KMAG officers, Col. Robert T.Hazlett and Captain Hausman, on their way to Suwon to establish communication with Tokyo, had just crossed the bridge when it blew up—Hausman said seven minutes after they crossed, Hazlett said five minutes. Hausman places the time of the explosion at 0215 Several other sources fix it approximately at the same time.

Pedestrian and solid vehicular traffic, bumper to bumper, crowded all three lanes of the highway bridge, In Seoul the broad avenue leading up to the bridge was packed in all eight lanes with vehicles of all kinds, including army trucks and artillery pieces,as well as with marching soldiers and civilian pedestrians. 
The best informed American officers in Seoul at the time estimate that between 500 and 800 people were killed or drowned in the blowing of this bridge.
  • 'Korea: The Untold Story of the War' p. 82 (Joseph C. Goulden, 1982년) - 미 군사고문단 장교의 인명피해자 관련 발언 원문 발췌
Recontructing the disaster later, KMAG officers estimated that from 500 to 800 soldiers and civilians were killed by the blast or drowned when they fell into the river.

이외에도 지적하실 문구나 표현 있으면 가르쳐 주시고 최대한 반영하겠습니다.Footwiks (토론) 2024년 3월 11일 (월) 21:32 (KST)답변

@Footwiks: 말씀하시는 원하는 문구를 넣고 싶으시다면 최소한 글을 형식에 맞게 쓰고 넣으세요. 가만히 있다가 기습적으로 되돌리는 식으로 넣지 마시고요. --호로조 (토론) 2024년 3월 31일 (일) 17:26 (KST)답변
지적하실 문구나 표현 있으면 가르쳐 달라고 3월 11일에 올리고 20일 동안 기다리고 있었는데 무슨 기습적으로 되돌려요?
LR0725님이 토론 흐지부지되면 저한테 제 버전으로 돌려도 된다고 하셨고 이렇게 토론에 응하지 않으면 되돌려지는 것 호로조님도 아셨잖아요?

그리고 신뢰할만 출처로 확인된 아래와 같은 단순한 기술도 아예 문서에 삽입하지 못 하게 하면서 무슨 형식을 운운하시는건가요? 아래 기술이 위키백과 기술 형식에 무엇이 위배됩니까? 말씀해 보시기 바랍니다.

  • "인명피해자 수치는 미 군사고문단 장교가 군인, 경찰, 민간인 등을 포함하여 500~800명으로 추정한 기록이 있는데 현재까지도 정확한 인명피해자 수치와 신원에 대해서는 종로경찰서 소속 77명 이외에는 밝혀지지 않았다."

Footwiks (토론) 2024년 3월 31일 (일) 23:41 (KST)답변

밝혀지지 않았다는 식으로 귀하가 판단해서 글을 쓰지 마세요. 어차피 이렇게 말씀드려도 납득 안 된다고 하시면 그만 아닌가요? --호로조 (토론) 2024년 3월 31일 (일) 23:52 (KST)답변
기사 읽어 보세요. 인명피해자 정확한 수치 밝혀지지 않은 사실을 그대로 밝혀지지 않았다고 서술하는 것이 어떻게 제가 임의로 판단한 기술인가요? 정확한 인명피해자 수치가 밝혀지지 않았는데 이를 민간인 800명 사망 이렇게 특정해서 기술하는 것이 독자연구이지 뭔가를 착각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밝혀지지 않았다고 기술하는 것이 임의로 판단한 독자연구 같으면 호로조님이 정확한 인명피해자 수치와 신원을 사료들 통해서 밝혀서 쓰시기 바랍니다.Footwiks (토론) 2024년 4월 1일 (월) 00:20 (KST)답변
'미 군사고문단 장교 ○○는 500명에서 800명으로 사망자를 추정했다.<ref>{{harvnb|Smith & Taylor|p=(페이지)|1988|ref=(앵커)}}<ref>' 라고 쓰는 게 새로운 사실을 도출하지 않고 2차 출처의 방식으로 인용을 하는 것입니다. --호로조 (토론) 2024년 4월 1일 (월) 00:54 (KST)답변
무슨 위키백과가 2차 사료 문구 그대로 베껴서 넣는 곳인줄 아세요? Editorial Judgement로 여러 언론 기사 통해서 정확한 인명피해자 수치와 신원이 나오지 않는 것을 확인했으면 이를 바탕으로 현재까지 정확한 인명피해자 수치와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다고 충분히 기술할 수 있는 것입니다. Footwiks (토론) 2024년 4월 1일 (월) 00:59 (KST)답변
납득 못하시잖아요. 결국 귀하 논리는 '왜 그게 안 되냐' 이거 아닌가요? 2차 출처로 특정 논리 전개 방식을 창출하지 말라는 겁니다. 생경한 개념 운운하지 마시고요. Editorial Judgement가 뭔데요? --호로조 (토론) 2024년 4월 1일 (월) 01:12 (KST)답변
"인명피해자 수치는 미 군사고문단 장교가 군인, 경찰, 민간인 등을 포함하여 500~800명으로 추정한 기록이 있는데 현재까지 신원이 밝혀진 인명피해자 수치는 종로경찰서 소속 77명이다."
제가 위와같이 바꾸었습니다. 제가 처음에 썼던 문장과 의미상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똑같은 의미이긴한ㄷ 밝혀지지 않았다 삭제했으니 이제 문제없는거죠? Footwiks (토론) 2024년 4월 1일 (월) 01:16 (KST)답변
'미 군사고문단 장교 (누구)는 (얼마나)로 추정했다. 이 중 현재까지 70여명의 신원이 확인되었다.'
이렇게 한 줄 개요 문단에서 언급만 하면 되는 수준입니다. 문단 나누어서 본문 내용보다 많은 내용으로 할애할 것도 없습니다. --호로조 (토론) 2024년 4월 1일 (월) 01:21 (KST)답변
그것은 동의하기 어렵네요. 지금 인명피해자 논란으로 관련 기사만 엄청나게 나오고 종군기자 증언만으로 분석한 기사도 있을 정도입니다.
왜 위키백과를 문서를 풍부하게 만들면 안 되는 것이죠? 왜 위키백과가 호로조님이 규정한 토막글 분량에서 더 이상 확장을 하면 안 되는 것이죠?
Footwiks (토론) 2024년 4월 1일 (월) 01:34 (KST)답변
풍부하게 하고 싶으시면 한강교 폭파 관련해서 1차 서울 전투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 더 많이 분석하고 있으니 그걸 쓰세요. --호로조 (토론) 2024년 4월 1일 (월) 01:37 (KST)답변
왜 제가 호로조님이 원하는 내용으로 문서 확장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Footwiks (토론) 2024년 4월 1일 (월) 01:44 (KST)답변
@Footwiks: 문서를 되돌리지 않으면 토론에 응하시는 거 자체를 안 하시는데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호로조 (토론) 2024년 4월 1일 (월) 01:42 (KST)답변
그 뒤에 '그러나 실제로는 70여명의 군경 희생자만 나왔다는 주장이 있다.[1: '런승만 없었다'][2: 진실화해위원회 (2014)]' 이렇게 적으시면 원하시는 바를 충분히 독자연구 시비 없이 적을 수 있을 것 같네요. ― 사도바울 (💬ℹ️) 2024년 4월 1일 (월) 00:56 (KST)답변
77명 경찰 사망자 기록은 국방부 전사에 기재되어 있기 때문에 주장이 아닙니다.
제가 아래와 같이 문구를 수정했는데 제가 처음 기술했던 문장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인명피해자 수치는 미 군사고문단 장교가 군인, 경찰, 민간인 등을 포함하여 500~800명으로 추정한 기록이 있는데 현재까지 신원이 밝혀진 인명피해자 수치는 종로경찰서 소속 77명이다." Footwiks (토론) 2024년 4월 1일 (월) 01:13 (KST)답변
토론에 끼어들기 무섭지만.. 되돌려진 내용을 보니 1차 사료와 개별 연구를 너무 많은 분량으로 인용하고 계신 듯합니다. 위키백과:좋은 글 후보/조선 누층군의 의견들과 그에 따라 조선 누층군 문서가 어떻게 정비되었는지 보시면 도움이 될까 합니다. ― 사도바울 (💬ℹ️) 2024년 4월 1일 (월) 00:14 (KST)답변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1차 사료 원문을 조작해서 사실을 왜곡하는 2차 사료들이 많은 관계로 1차 사료 직접 인용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으며 개별 연구도 중립적으로 여러 관점을 기술하기 위해 넣다보니 분량이 좀 커졌습니다.Footwiks (토론) 2024년 4월 1일 (월) 15:16 (KST)답변
위키백과 문서는 어떤 설을 논박하기 위해 사용하는 공간이 아니니.. 만일 그런 목적으로 많이 인용하는 것이라면 담백하고 간결히 서술하는 방향으로 서술하는게 맞겠습니다. 저도 형식에 대한 호로조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 사도바울 (💬ℹ️) 2024년 4월 1일 (월) 00:58 (KST)답변
어떤 설을 논박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관련된 중요 증언을 원문 그대로 보여주고 종군기자 신문기사의 경우 유료 이용자만 볼 수 있기 때문에 독자들을 위해 일부러 발췌 형식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인용된 증언들이 엄청나게 많은 것도 아닙니다. 위키백과가 자유 형식인데 복잡한 이슈를 강박적으로 담백하고 간결하게 서술할 필요는 없어보이며 복잡한 이슈를 가진 문서는 그 문서에 맞게 기술하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Footwiks (토론) 2024년 4월 1일 (월) 01:09 (KST)답변
그건 인용문 매개변수로 할 수 있는 겁니다. --호로조 (토론) 2024년 4월 1일 (월) 01:03 (KST)답변
문서라는 건 비중이 있고, 광우병 문서에 '대한민국의 2009년 광우병 사태'를 장문으로 써서는 안 되는 겁니다. 최소한 문서를 보강하고 싶다는 의지를 가지고 계신 거라면 배경이나 군사 작전상의 전개에 대해서 서술하시기 바랍니다. 오해 문단 만들지 마시고요. 왜 독자가 귀하가 독자들이 오해할까봐 걱정하는 설레발에서 나온 장문의 '오해할 수 있는 사실' 문단을 읽어야 하는 건가요? --호로조 (토론) 2024년 4월 1일 (월) 01:35 (KST)답변
답변이 없어서 그냥 되돌립니다. 계속 토론에서 합의되지 않은 내용으로 되돌리시면 사용자 관리 요청에 회부하겠습니다. --호로조 (토론) 2024년 4월 1일 (월) 01:44 (KST)답변
비중이 문제라고 하시니 한강인도교 폭파 사고 관련 논란 문단으로 독립시키겠습니다. Footwiks (토론) 2024년 4월 1일 (월) 01:45 (KST)답변
부디 이런 식으로 괴롭게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저는 제가 작성하고 싶은 문서가 있고, 최소한 귀하가 독자에게 양질의 정보를 전달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으시다면, 문서를 보강할 때 이게 백과사전에 들어갈 만한 내용인지에 대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2024년 4월 1일 (월) 01:47 (KST) 호로조 (토론) 2024년 4월 1일 (월) 01:47 (KST)답변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입니다. 2024년 들어와서 한강인도교 폭파와 관련된 새롭게 밝혀진 자료들로 문서를 풍부하게 만들려는 저를 왜 이렇게 괴롭히시고 토막글로 유지시킬려고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신뢰할만한 출처로 명확하게 기술한 아래 문장 조차도 맘에 들이 않는다고 아래처럼 모호하게 바꾸시고 계시는데 왜 인명피해자에 대해서 이런 반응을 보이시는지 도저히 이해를 못 하겠습니다.
  • 저의 서술: 인명피해자 수치는 미 군사고문단 장교가 군인, 경찰, 민간인 등을 포함하여 500~800명으로 추정한 기록이 있는데 현재까지 신원이 밝혀진 인명피해자 수치는 종로경찰서 소속 77명이다.
  • 호로조님의 서술 500명에서 800명 정도가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현재까지 신원이 밝혀진 사람은 77명이다.
Footwiks (토론) 2024년 4월 1일 (월) 02:09 (KST)답변
제가 듣고 싶은 건 비아냥이 아닙니다. 제발 인내심을 시험하는 발언을 멈춰 주시기 바랍니다. 토론에 참여하기 이전에 기분이 나쁩니다. --호로조 (토론) 2024년 4월 1일 (월) 03:19 (KST)답변
피해자가 77명뿐이라는 의심을 지지하는 서술이 되면 안됩니다. 왜 독자가 귀하가 독자들이 오해할까봐 걱정하는 설레발에서 나온 장문의 '오해할 수 있는 사실' 문단을 읽어야 하는 거냐는 지적에 동의합니다. 경찰이 아닌 종군기자 등도 차가 뒤집혀 죽을 뻔 했는데, 경찰 희생자 77명 뿐이라는 주장을 부각시키는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Jiribaxa (토론) 2024년 4월 1일 (월) 10:18 (KST)답변
문서를 전체적으로 파악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작성했던 버전에는 77명뿐이라 내용을 지지하는 서술이 없고 부각시키는 서술도 없습니다. 500~800명 인명피해자 추청 수치에서 현재까지 일단 신원이 확인된 인명피해자가 경찰관 77명일뿐이라는 신뢰할만한 출처에 나온대로 기재했고 이 의미를 인명피해자가 77명만 존재한다 이렇게 받아들이시는 것은 내용을 잘못 파악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민간인 인명피해자가 엄청 많았다는 조사 결과 및 관련 증언도 중립적으로 균형있게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말씀해 주신 귀중한 의견을 반영하여 사망자 수치는 미 군사고문단 장교가 군인, 경찰, 민간인 등을 포함하여 500~800명으로 추정한 기록이 있는데 현재까지 신원이 밝혀진 사망자 수치는 종로경찰서 소속 경찰관 77명이다.(신원이 밝혀진 사망자 기록이 77명뿐이라는 의미로 이를 전체 인명피해자 수치로 확정할 근거는 발견할 수 없다) 이렇게 기재하겠습니다.Footwiks (토론) 2024년 4월 1일 (월) 14:54 (KST)답변

Footwiks

한강 인도교 폭파 사건 관련 논란[편집]

이 토론에서 다룰 주제는 이겁니다.

1. 한강인도교 폭파 사건 관련 논란과 한강인도교 폭파 문서 병합

2. 해당 주제가 위키백과:신뢰할 수 있는 출처위키백과:중립성에 의거해 서술되었는가.

다른 주제로 번질 경우, 위의 편집 분쟁과 연결된 주제이므로 이 두 가지에 대해서만 서술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일단 제 답변을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한강인도교 폭파 사건 관련 논란과 같은 "논란" 문제는 위키백과:문서 등재 기준과 부합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주제 역시 한강인도교 폭파에서 다루기 충분합니다.

다만 "한강인도교 폭파 사건 관련 논란" 문서를 그대로 옮겨와 이 문서에 포함하는 것에는 적극 반대합니다. 현재 해당 문서는 위키백과 문서라기보다는 보고서에 가까우며, 위키백과의 문법과 양식도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습니다. 백:아님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지요. 신뢰할 수 있는 출처가 있다할지라도 백:중립도 지키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Yelena Belova (토론) 2024년 4월 9일 (화) 17:04 (KST)답변

의견 아울러 두 사용자의 대립은 위키백과:함께 검토하기를 통해 풀어가실 것을 권장하고 싶습니다. --- Yelena Belova (토론) 2024년 4월 9일 (화) 17:06 (KST)답변
형식도 마찬가지이지만 애당초 '000 논란'과 같은 백:중립과 전면으로 충돌하는 제목을 갖춘 문서가 위키백과의 정책과 지침상 있어도 되는지 살짝 의문이 듭니다. 다만 호로조님이 최근 위키백과에 들어오지 않은 상황이어서 대립이 쉽게 해소되지는 않을 것 같네요... --YellowTurtle9 (토론) 2024년 4월 28일 (일) 22:50 (KST)답변
5월 9일까지 일단 해당 토론을 열어두고, 현재 분쟁의 핵심 원인인 한강인도교 폭파 사건 관련 논란은 삭제 신청 토론에 회부하여, 문서의 등재 기준을 충족하는지 여부를 결론지어야 할 것 같습니다. Yelena Belova (토론) 2024년 4월 30일 (화) 12:43 (KST)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