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대한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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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편집]

저작권 허락 받은 <대한제국 문장> 누가 찾아서 올려 주셨으면 합니다 참조→영어 위키백과 --미키마우스 2007년 3월 15일 (금) 17:33 (KST)답변

http://www.museum.seoul.kr/chd/chat/ch_seoul_story_detail.jsp?num=5319&id=25&p=1&condition=&words=

여기 있긴한데 저작권이 있는 것 같군요. --Alfpooh 2007년 3월 15일 (금) 18:09 (KST)답변

http://www.coinbank.co.kr/cyber/sub05_06a.htm 이것 또한 역시... 저작권이 있는듯. 하옇든 이렇게 생긴 걸 찾으면 되겠군요. 오얏꽃무늬 혹은 이화무늬(李花) 로 찾으시면 됩니다.--Alfpooh 2007년 3월 15일 (금) 18:19 (KST)답변
단독으로 있는 것 찾고 있는데요...--미키마우스 2007년 3월 15일 (금) 18:14 (KST)답변
오얏꽃? 대한제국의 국장은 오얏꽃이 아니라 무궁화인데요. 오얏꽃을 나라꽃으로 삼은 일도 없고, 국장으로 삼은 일도 없습니다. 다만 무궁화가 실재하는 무궁화(현재 대한민국의 국화)인지, 전설 속이 무궁화인지는 명확히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Knight2000 2007년 8월 30일 (목) 16:47 (KST)답변
대한제국의 국장은 지배왕가인 이왕가문양을 따라 오얏꽃(이화)입니다.덕수궁 석조전, 당시 동전, 훈장, 하다못해 술잔에도 이화문이 박히죠.Jaylee06 (토론) 2015년 9월 10일 (목) 23:28 (KST)답변

정식 국호: 韓 vs 大韓帝國[편집]

본문의 #국호 섹션을 보면 대한제국의 진짜 국호는 그냥 '韓'이지 '大韓帝國'이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타당한 설명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내용이고 다른 언어판에서도 이를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런 내용을 설명하고 있는 관련 서적의 출처를 누가 좀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출처가 확실해지면 제가 다른 언어판에도 이 내용을 본문에 덧붙이거나 토론에 부치도록 하겠습니다. ― Yes0song 2007년 7월 25일 (수) 20:14 (KST)답변

고종실록에 의하면, 그 이름은 고종이 제안한 것인데, 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없는 듯합니다. 본문 내용은 실록의 내용을 참조하여 수정하였습니다. jtm71 2007년 8월 5일 (일) 12:35 (KST)답변
제가 본문을 작성하면서 '한(韓)'을 대한제국의 정식 국호라고 기술하였는데, 관련 자료를 추가 확인한 결과 정식 국호는 '한'보다는 '대한'이었던 것 같습니다. 윗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고종황제의 국호 의미 언급에서도 그렇고, 대한제국 시기의 각종 법령, 외교문서 등에서도 '한'만 쓰인 경우는 없고 '대한' 또는 '대한국', '대한제국' 등으로 표기되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물론, 이웃 청나라 역시 '청'만 쓰지 않고 '대청', '대청국', '대청제국' 등을 사용하였지만, 하여간 '한'보다는 '대한'이 맞는 것 같습니다('한국'으로 쓰인 경우가 있기는 함). 그러나, 역시 황제국의 국호는 원래 한 글자로 제정되는 것이 원칙이었음을 감안해 볼 때 '한'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대한제국 시기의 관원들이 이러한 역사적 예제에 미흡했거나 따르지 않았을 수 있음). --달조각 2007년 9월 13일 (목) 20:55 (KST)답변
그런데 공식적으로, 또한 아주 대중적으로, 또한 세계적으로 통용되는게 '대한제국'이라는 명칭이 아닙니까? '대한제국'이 '한(韓)'이라고 칭한거는 금시초문입니다.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를 참고해 봐도 '한'이라는 말은 하나도 서술되어 있는게 없습니다. --Kys951 2007년 9월 21일 (금) 21:30 (KST)답변
그렇게 따진다면, 일본도 마찬가지가 됩니다. 일본에서 아무리 "대일본제국"을 자칭했더라도, 동양권에서 통용되는 이름은 "일본제국"일 뿐 "대일본제국"은 아니게 됩니다. --Knight2000 2007년 11월 21일 (수) 21:10 (KST)답변
'한(韓)'만은 아니더라도, 광무제, 융희제 의 연호가 대한 건양, 대한 광무, 대한 융희 등이였던걸 보면 단지 대한이라는 명칭은 사용되었을지도 모르겠군요.--Love_Boy93 (토론) 2008년 7월 8일 (화) 21:53 (KST)답변

참고로 동아시아에서 “OO제국”이라고 자칭한 나라는 일본이 최초(대일본제국)이며, 그 이전에는 그냥 “OO국”이었습니다. 예컨대, 대명제국이나 대청제국이 아니라, 대명국, 대청국입니다. 그래서 대한제국 헌법도 대한국 국제(大韓國國制)입니다. 다만 다른 나라처럼 대(大)가 단순 미화가 아니라 삼한대한으로 바꾼 것입니다. --Knight2000 (토론) 2020년 8월 27일 (목) 21:58 (KST)답변

제국 분류.[편집]

대한제국은 엄밀히 따져 제국이 아니라 이름만 제국을 한 것입니다. 과연 제국으로 분류하는 것이 맞는 걸까요? --WaffenSS 2007년 9월 28일 (금) 01:56 (KST)답변

이름만 제국이 맞는 듯 합니다. 만주국과 같이 생각하여야 할것 같습니다. 제국의 정의를 식민지, 직/간접 통치 지역, 제후국의 존재 여부등으로 기준을 먼저 정한다면 제국의 정의에 맞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19세기와 20세기 초까지 왕정 국가에서 제국 호칭이 유행한 것을 감안 해야 할것 입니다.--Alfpooh 2007년 9월 30일 (일) 01:37 (KST)답변
이것도 위의 제 의견과 마찬가지입니다. "대일본제국"이 아니라 그저 "일본국"이어야겠죠. 나중에 식민지를 만들었다거나 하는 일은 나중 일이고, 성립 당시로 보면 그저 "일본국"이어야 옳습니다. 결과적으로야 "일본제국"이겠지만. --Knight2000 2007년 11월 21일 (수) 21:12 (KST)답변
물론 허울뿐이였던 제국이 바로 대한제국이였죠. 만약 제국이였다면 실제로 청 황제와 대등한 위치에 있어야겠지만, 중국의 평안감사 급이라 할 수 있는 북양대신과 대등하다는 조건으로 조약을 맺었으니,, 어련할까요?--Love_Boy93 (토론) 2008년 7월 8일 (화) 21:51 (KST)답변

대한제국은 제국이 맞습니다. 다만 대한제국의 국력이 약소하였기 때문에 북양대신과 동등한 조건으로 조약을 맺은 것이겠지요. 오늘날도 이러한 국제 관계를 흔히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고종은 자주성을 내세우며 황제에 등극했고 공식적, 대외적으로 제국임을 공포하였습니다. 또한 한국사에서 시대를 분류할 때 조선과 대한제국을 별개로 보여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선 왕국과는 별개로 대한제국은 제국입니다. --6THSSENSE (토론) 2008년 10월 9일 (목) 12:34 (KST)답변

중국의 속국에서 풀어 발해진 조약을 숨기지 말아라[편집]

Treaty of Shimonoseki in 1895 http://en.wikipedia.org/wiki/Treaty_of_Shimonoseki

Article 1: China recognizes definitively the full and complete independence and autonomy of Korea, and, in consequence, the payment of tribute and the performance of ceremonies and formalities by Korea to China, that are in derogation of such independence and autonomy, shall wholly cease for the future.

누구의 덕분에 대한제국을 만들 수 있었는지, 학교에서 배우지 않아? 220.96.7.144 (토론) 2008년 10월 8일 (수) 17:13 (KST)답변

韓国語勉強しなさい。Dangshei (토론) 2008년 10월 8일 (수) 17:36 (KST)답변

한국에서는 Treaty of Shimonoseki가 대한제국과 전혀 관계가 없는 조약이라고 거짓말을 가르치고 있습니까?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에게 진실을 가르치지 않아? 일본의 덕분에 중국의 속국이라고 하는 입장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Treaty of Shimonoseki가 없으면, 중국이 무서워서 조선 민족은 대한제국을 만들 수 없었습니다 221.184.39.128 (토론) 2008년 10월 9일 (목) 12:04 (KST)답변

대한제국시모노세키 조약과는 그다지 관련이 없습니다. 물론 대한제국은 조선을 이어받은 나라이지만, 대한제국성립할 때 주요 원인과 명분은 “춘추의리론”(春秋義理論)과 “춘추복수론”(春秋復讐論)입니다. 다시 말해, 일본제국에 대항하다 죽은 명성황후의 넋을 위로하려면 조선이 왕국이어서는 안 되며, 격이 높은 제국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이론이며(춘추의리론), 나아가 일본에 복수해야 한다는 이론입니다(춘추복수론). 이 두 가지 이론이 역사서 《춘추》에 근거를 두고 있으므로 춘추의리론과 춘추복수론으로 불립니다. 그러므로 일본제국이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형식상 독립시킨 시모노세키 조약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청나라는 물론이고 일본제국으로부터도 독립을 바랐던 명성황후를 기리는 “춘추의리론”과 “춘추복수론”이 더욱 중요합니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에서 대한제국을 설명할 때 청일전쟁시모노세키 조약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일은 없고, 대한제국 성립의 명분이었던 춘추의리론과 춘추복수론을 밝혀야 하는 을미사변까지만 설명합니다. --Knight2000 (토론) 2008년 10월 11일 (토) 16:50 (KST)답변
의견 덧붙이자면, 학교에서는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는 데 있어 청나라의 방해를 원천적으로 막기 위하여 청나라의 조선에 대한 종주국 지위를 박탈한다고 가르칩니다. --CLAW_the_Ultimate ( talks ♬ ) 2008년 10월 15일 (수) 01:35 (KST)답변
예. 그렇습니다. 그것을 대한제국까지 끌고가야 할 이유가 있나요? (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대한제국 성립 당시에 고종은 시모노세키 조약 덕분에 청나라로부터 독립했다고 여기지는 않았습니다. 갑오개혁의 최대 성과 가운데 하나인 홍범14조를 반포하러 종묘에 갈 때 황제의 예도 아니고(16/12인거), 왕의 예도 아닌(8인거), 고위 관리의 예(禮)에 따라 4명이 끄는 가마(4인거)를 타고 갔던 일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 뒤로도 고종의 기행은 계속됩니다. --Knight2000 (토론) 2008년 10월 16일 (목) 10:34 (KST)답변

중국의 지배로부터 "외국인"의 손에 의해서 해방된 역사적 사실은 매우 중대한 사건이었습니다. 영어나 중국의 대한제국의 설명에서도, Treaty of Shimonoseki의 설명이 성립되고 있습니다. 한국에 있어 미워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본의 덕분에 중국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었다고 하는 것은 굴욕적이기 때문에 설명하지 않는다고 하는 이유는 세계가 인정하지 않습니다.220.106.178.210 (토론) 2008년 10월 14일 (화) 03:17 (KST)답변

굴욕적이기 때문에 설명하지 않는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시모노세키 조약은 “형식상” 청나라로부터 독립한 조약이지만, “실제로는” 일본에게 예속되는 조약입니다.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얻은 이익은 오직 형식상의 독립뿐이었고, 실익은 전혀 없고, 오히려 손해만 있는 조약입니다. 그 때문에 한국사에서는 시모노세키 조약을 중요시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청일전쟁에서 “형식상” 조선과 일본은 동맹국이었으므로 시모노세키에서 얻은 이권도 공유해야 하지만, 이권은 오직 일본이 독점하고, 명분뿐인 “형식상”의 독립만을 보장해 줍니다. 다시 말하지만, 대한제국이 성립하는 원인은 시모노세키 조약이 아니라 을미사변입니다. 만약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이기고 또한 청나라가 조선 왕비를 죽였다면, 역시 복수해야 한다면서 반청/칭제 상소가 올라가게 됩니다. 조선 왕비를 일본이 죽였기 때문 반일/칭제 상소가 올라갔을 뿐이죠. --Knight2000 (토론) 2008년 10월 15일 (수) 01:21 (KST)답변
왜 일본어 위키에서는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조선에 대한 침략이 쉬워졌음을 밝히지 않죠? 청일전쟁에서 얻은 이권을 왜 일본이 독점하고 동맹국 조선에는 전혀 이권을 나눠주지 않은 이유가 뭐죠? 전쟁터는 조선 영토였고 군량을 조선에서 보급하였기 때문에 조선도 상당히 많은 전비가 들었는데, 시모노세키 조약에서는 왜 그것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을까요? 등등등... 수없이 많은 시모노세키 조약에 대한 사항이 일본어 위키를 비롯한 다른 언어 위키에서는 전혀 밝혀지지 않은데, 왜 한국어 위키에서, 한국사에서는 전혀 고려하지도 않는 사항을 밝혀야 하죠? --Knight2000 (토론) 2008년 10월 15일 (수) 01:21 (KST)답변
세계가 인정하든 말든 아무런 상관없습니다. 시모노세키 조약이 없었더라도 대한제국의 성립을 설명하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거든요. 그 이전부터 청나라를 거치지 않고 다른 나라와 조약을 맺어 왔고, 그에 따라 형식상으로도 실제로도 조선이 독립국임을 밝혀 왔습니다. 만약 시모노세키 조약 때문에 비로소 조선이 독립국이 되었다고 주장한다면, 1895년 이전에 서양 나라와 맺은 조약은 (청나라를 거치지 않았으므로) 모두 무효라는 뜻입니까? --Knight2000 (토론) 2008년 10월 15일 (수) 01:27 (KST)답변
시모노세키 조약에 의하여 조선이 청나라로부터 독립했다는 것은 일본인들에 의하여 전세계에 유포된 일본인의 관점입니다. 조선은 건국이래 독립국이었고 세모노세키 조약은 일본이 조선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두기 위한 청나라와의 협상이었다는 것이 중립적인 관점일 것입니다. --케골 (토론) 2008년 10월 15일 (수) 04:24 (KST)답변

중국과의 속국 관계가 계속 되어도 대한제국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하는 망상은 그만두고 현실을 봐 주세요.세계는 Treaty of Shimonoseki가 없으면 조선 민족은 대한제국을 만들 수 없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Treaty of Shimonoseki를 중요시합니다.일본인이 세계에 거짓말해 돌고 있다고 생각하기 전에, 스스로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상식적 감각을 가진 어른이 될 수 없습니다. Treaty of Shimonoseki가 없어도 대한제국을 만들 수 있었다고 망상하고 있는 것은 한국인만입니다. 스스로가 올바르다고 했더니, 중국과의 속국 관계는 없었다.Treaty of Shimonoseki는 조선의 위엄을 실추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비열한 일본의 음모다.대한제국은 일본이 없어도 우수한 한국인의 손으로 간단하게 성립시킬 수 있었다고 온 세상에 말해 돌아 주세요.매우 차가운 시선을 향할 수 있겠지요.58.91.152.85 (토론) 2008년 10월 16일 (목) 01:52 (KST)답변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 아니었다는 것이 한국인의 일반적인 역사 인식입니다. 시모노세키 조약은 당시 중국이 조선에 가지고 있던 일시적 영향력을 일본이 제거하고 일본의 영향력을 넓히는 조약일 뿐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이 선의를 가지고 조선을 위하여 중국의 영향력을 조선반도에서 제거해 주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말씀하시는 것처럼 대한제국을 한국인들이 주체적인 역량을 가지고 성취한 위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제국을 큰 성취나 자랑스러운 일로 생각하는 한국인들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조선은 고도화된 유교문화의 영향력 아래에서 무력이 필요없는 평화로운 시기를 누렸으나, 무력을 경시하여 결과적으로는 문약하여 식민지가 필요했던 일본에 나라를 내어주게 되었습니다. 일본이 조선을 위하여 진정한 선의를 발휘하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케골 (토론) 2008년 10월 16일 (목) 02:53 (KST)답변
망상이 아니라 실체적 진실입니다. 또한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조선이 독립국이 되었다면, 마찬가지로 일본도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독립국이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관점에 따라서는 시모노세키 조약은 일본의 독립전쟁(중화문명의 책봉관계로부터의 독립)인 셈입니다. 하지만 현재 그러한 설명을 하던가요? ip님의 주장을 이곳에서 왈가왈부하기보다는 외국 역사학자의 견해를 정식으로 출처 붙여서 문서에 기여하시기 바랍니다. 출처까지 붙였음에도 삭제한다면 그때 가서 다시 따지세요. --Knight2000 (토론) 2008년 10월 16일 (목) 10:20 (KST)답변
그리고 중국과 속국관계는 없었다고 쓴 적은 없습니다. 이미 실체적으로도 독립된 위치에 있었다고 했을 뿐이죠. ip님들이 먼저 밝혀 주셔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1) 청나라를 통하지 않고 조선은 서양과 조약을 맺었는가, 맺지 않았는가? 이 문제에 대해 청나라를 통하지 않고는 조약을 맺지 않았음을 밝혀 주셔야 합니다. (그러나 조선은 미국과 조약을 맺을 때 청나라를 통하지 않았습니다.) (2) 중국과의 (형식상의) 속국 관계 청산은 시모노세키 조약이 아니라 1894년 7월 23일부터 벌어진 일본군(일본제국군)의 경복궁 점령 때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이틀 뒤에 조선의 물자를 지원 받아 선전포고 없이 청나라 군대를 공격합니다. 여기에서 일본군이 조선의 왕궁을 점령한 이유를 먼저 설명해야 합니다. (조선을 독립시키려는 전쟁에서 조선의 독립을 훼손한 까닭을 먼저 설명해 주세요.) (3) 시모노세키 조약에서 조선 측의 의견은 어떻게 반영되었는가? (그러나 실제로는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 먼저 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Knight2000 (토론) 2008년 10월 16일 (목) 10:20 (KST)답변

가장 중요한 사항으로 진정으로 조선이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독립하였다면, 조선이 다시 독립을 잃고 예속된 조약은 1909년 8월 29일 한일 병합 조약이 아니라 1905년 11월 17일 제2차 한일 협약(을사조약)입니다. 왜 그렇게 되는지는 시모노세키 조약을 다시 읽어 보고 스스로 깨닫기를 바랍니다. 일본의 제국주의자 및 극우주의자조차 알지 못한 중대한 모순이 이 세 가지 조약에 숨어 있는 셈입니다. --Knight2000 (토론) 2008년 10월 16일 (목) 10:56 (KST)답변

구한말 한반도를 바라본 해외의 시선[편집]

구한말 한반도를 바라본 해외의 시선. 혹시 이것에 대해 자세히 아는 분 있습니까? Komitsuki (토론) 2011년 7월 3일 (일) 16:33 (KST)답변

대한제국의 현재국가에 중화인민공화국 지린성은 왜 있는 겁니까?[편집]

대한제국에서 중화인민공화국에 포함되는 영토는 유지하지 않았는데 설마 간도때문에 그걸 넣으신 겁니까? 설명해주십시요.

위의 말에 답변해주지 않으신다면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 이 의견을 작성한 사용자는 Ohs2102 (토론)이나, 서명을 남기지 않아 다른 사용자가 추가하였습니다.

지린성이면 간도 때문에 넣은 게 맞는 것 같네요. 곧바로 삭제 편집하기보다는 논의가 필요해 보입니다.
우선 제 의견을 피력해보자면, 간도 지역은 오랜 기간 청의 봉금 지역이었지만 조선인들이 화전을 일구기 위해 정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대한제국 수립 후 실태를 파악해보니 그 규모가 상당했고, 정부 차원에서 관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습니다. 게다가 1903년에 간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시찰원으로서 이범윤을 간도에 파견하였고, 북변간도관리사로 임명하여 1903년 10월부터 1905년 5월까지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조선인들을 보호하고 세금도 납부 받았습니다. 또한 해당 기간은 기존에 해당 지역을 관할하던 청이 러시아 제국에게 패퇴하면서 지배력을 상실한 기간이기도 합니다. 그리 긴 기간은 아니지만 해당 기간 동안 간도 지역을 실효지배하였다고 보아야 합니다.--IMVrai (토론) 2015년 12월 14일 (월) 13:47 (KST)답변
수정해야겠네요...... 실효 지배는 영토와 같은 개념이 아닙니다. 간도관리사만으로는 실효 지배가 인정되기도 힘듭니다. 간도에 대해서는 동북아역사재단의 서적들을 참고 바랍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12월 20일 (일) 12:00 (KST)답변
@일단술먹고합시다: 글쎄요. 간도가 대한제국의 지배권 하에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며, 백두산정계비에서도 조선과 청의 국경을 압록강과 토문강으로 한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토문강은 오늘날 쑹화 강의 상류로써, 간도는 이 지역에 포함됩니다. 또한 조선과 청은 간도의 귀속 문제를 두고 1885년 함경도 회령에서 을유 감계 회담을, 1887년 제2차 감계 회담을 연 바 있습니다. 또한 1900년에는 서간도를 평안북도에, 1903년에는 북간도를 함경도에 편입시킨 바 있습니다. 이는 대한제국의 영토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또한 경성제국대학 총장 시노다 지사쿠가 30년 간 연구하여 발표한 <간도는 조선 땅이다>에서도 318페이지에서 326페이지까지 간도를 조선 땅으로 보고 있습니다. 1938년 이 책이 쓰여졌을 때는 조선이 일제의 식민지였음에도 불구하고 간도를 조선 땅으로 보는 것이죠. 또한 청나라와 일본이 체결한 간도 협약에서도 백두산정계비와는 다르게 대한제국과 청의 국경을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하며, 간도 지역은 청나라의 영토임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간도는 대한제국의 영토가 맞습니다. Omaha Beach max~ 2015년 12월 20일 (일) 17:22 (KST)답변
독도는 시네마 현에 편입되었으니 일본의 영토입니까? '영유권 주장'과 '실효 지배'와 '영토'는 모두 다른 개념입니다. 간도는 대한제국이 영유권을 주장한 적은 있었으나 영토인 적은 없었습니다. 동북아역사재단의 논문들은 인터넷으로 열람이 가능하고, 대학생이시라면 riss에서 다른 논문들도 다운이 가능하니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신뢰할 수 있는 출처는 아닙니다만 간도백두산 정계비에 나름 정리가 잘 되어 있는 것 같으니 읽어보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12월 21일 (월) 09:13 (KST)답변
@일단술먹고합시다: 사용자님께서는 특정 부분만 강조하지 말아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다싶이 먼저 첫째, 백두산정계비가 국경 관련 조약에 관한 비문이라는 것은 조선과 청의 영토의 경계를 정했다는 겁니다. 조선과 청이 간도의 영유권만 가지고 분쟁을 벌였다면, 굳이 국경이라는 표현을 백두산정계비에 넣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둘째, 님의 말씀대로 독도는 우리나라가 실효 지배하고 있는데다가, 행정적으로는 우리나라 영토에 편입되어 있으며, 그곳을 담당하는 기관이 있습니다. 간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대한제국이 실효지배를 했고, 우리나라 행정 체계에 편입되었으며, 그곳을 담당하는 관리인 간도 시찰원을 파견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네이버를 비롯한 다양한 백과사전에서도 이런 표현을 썼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는 '정계비는 두만강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간도 지방은 곧 토문강과 송화강의 동쪽 지역으로, 이미 우리 영토로 확정해 놓았던 것이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 네이버 어린이 백과사전에서는 '세종 대왕 이후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지역을 본격적으로 개척했지. 숙종 때부터 국가 간의 국경선 개념이 뚜렷해지자, 우리나라와 중국의 관리들이 만나 논의한 끝에 두 나라의 국경선을 분명히 했어. 그리고 백두산에 정계비(경계를 정하는 비석)를 세웠지.'라고 서술되어 있습니다.
  • 두산 백과에서는 '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국경분쟁이 계속되어 오다가 고종 20년인 1883년 두나라간 국경에 관한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었다. 중국측은 백두산정계비에 새겨진 '서위압록 동위토문(西爲鴨綠, 東爲土門)'이라고 새겨진 문장에서 토문이 두만강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조선에서는 토문(土門)이라는 글자는 두만이라는 글과 음과 뜻이 달라 두만강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며 토문이라는 글자는 만주지역의 지명이라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는 청나라의 역사서인 청사고에 토문이라는 곳이 만주지역이라고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당시 서북지역 경략사(經略使)였던 어윤중(魚允中)이 조사관을 파견하여 이를 조사하게 하였으며 그 결과 간도는 조선의 땅임을 재확인하였다. 이후 간도는 조선에 편입되었으며 이범윤이 간도관리사로 파견되어 간도지방 조선인을 보호하고 세금을 납부받았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렇듯 다양한 백과사전과 위에서 언급한 사료에서도 간도는 조선의 영토임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조선을 계승한 대한제국 또한 이 영토를 지배한 것은 당연한 거고요. 제발 모든 부분을 읽어봐주십시오. Omaha Beach max~ 2015년 12월 21일 (월) 14:32 (KST)답변

음... 제가 간도백두산 정계비 읽어보시라고 말씀드렸는데... 안 하신 것 같네요... 네. 그래요. 정말 (백과사전이 아니라) 사료를 봅시다.
土門江源, 則白山東邊最下處, 有一派東流。 摠管指此爲 豆江 之源 (토문강의 근원은 백두산 동변의 가장 낮은 곳에 한 갈래 물줄기가 동쪽으로 흘렀습니다. 총관이 이것을 가리켜 두만강 의 근원이라 하였다 - 조선왕조실록 숙종 51권 38년(1712) 5월 23일조)
蓋淸差 ... 未嘗逐水而下, 窮探去處, 故不知渠所見之水, 則流向別處去, ... 而誤認, 以渠所見者, 流入於豆江, 此固出於輕率之致。... 穆差所定之水源旣誤 ... (대개 청차는 ... 물을 따라 내려가 끝까지 흘러가는 곳을 찾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본 물은 다른 곳을 향해 흘러가고 ... 그가 본 것이 두만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인 줄 잘못 알았던 것이니, 이는 진실로 경솔한 소치에서 나온 것입니다. ... 목차가 정한 수원은 이미 잘못된 것인데... - 조선왕조실록 숙종 52권 38년(1712) 12월 7일조)
...... 청나라나 조선이나 토문강을 두만강이라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저 삐리리 같던 청나라 사신이 삐리리 같이 경계선을 그은 것일 뿐;;;;;;; 그럴 리가 없다고요? 사료를 좀 더 살펴볼까요? 豆滿以北, 便非我地 (두만강 이북은 곧 우리 땅이 아니다. - 조선왕조실록 정조 16권 7년(1783) 12월 8일조) ... 18c 사료긴 합니다만 조선에선 19c까지도 간도를 영토라 인식하지 않았습니다. 레알 헬조선을 벗어나 '월경'(경계를 넘어간다는 뜻입니다)하는 농민들을 열심히 쇄환했지요.
그런데도 헬조선은 헬조선인지라;; 월경하는 농민들은 끊임이 없었고 19c 후반부터 조선은 그런 농민들을 기반으로 간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합니다. 사료가 말하다시피 간도는 원래 청나라의 영토라는 걸 양국이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근데 거기에 불법 체류한 농민들을 기반으로 영유권을 주장한다? 이런 걸 보고 '정당한 권원 없이 권리를 주장하는 행위'라 합니다. 조선이 무력으로라도 그곳을 점령했다면 모릅니다. 그땐 전쟁이 훌륭한 외교 수단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조선과 청은 그러지 않았고 수차 말씀하신 회담을 가지지만 결론을 내지 못합니다 그렇게 양국이 으르렁대지만.. 아시다시피 19c-20c 양국의 처지가 영 좋지 않아 어영부영했고 그러던 차 일본이 기존의 청나라 권리를 재확인해주었죠.
간도는 이게 끝입니다. 간도관리사요? 이름이 말해주듯 정식 지방관도 아닙니다. 이것조차 청나라가 발끈해서 금방 철수시킵니다. 조선은 간도에 어떤 제대로 된 통치력을 행사한 적이 없습니다. 이전에 말씀드렸다시피 동북아역사재단이나 리스에서 여러 개의 논문들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광복 이후 일제의 잔재로부터 벗어나고자 모든 걸 민족적으로 해석하였던 (이병도를 포함한) 선대 석학들은... 조금 멀리서 이해해주세요. 그러나 현대에 와서까지 민족주의의 탈을 쓴 제국주의자들에게까지 휘둘리지는 말아주세요...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12월 25일 (금) 01:27 (KST)답변
부탁드립니다.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인데, 백과사전 쪽은 안 읽으신 것 같군요. 오늘날 역사학자나 백과사전을 보면 아실 수 있듯이, 대부분의 학자들은 간도를 조선의 '잃어버린 땅'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자기의 머리에서 이야기를 쓴 것도 아닐테고, 사료에 기반한 것일 겁니다. 제가 님에게 드리고자 하는 말씀은 사료 자체만 보시지 마시고, 사료가 오늘날 어떻게 해석되는지, 그리고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이 어떻게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같이 이해하셔야 한다는 것이죠. 위에서 보시다시피, 대부분의 사료들은 애매모호합니다. 더욱이, 동북아역사자료실에는 다음과 같은 서재들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 간도는 왜 우리 땅인가? - 육락현 지음
  • 間島의 영토문제에 관한 일연구/ 서간도를 중심으로 - 윤문식 지음
  • 우리땅 간도 대 강연회/ 한나라당 중앙위원회, 외교통상분과위원회 [공편].

즉,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조선과 청의 국경을 정하는 백두산정계비는 압록과 토문을 국경으로 하고 있었지만, 토문이 오늘날의 두만강인지, 아니면 토문강인지를 두고 청과 조선 사이의 분쟁이 벌어진 것이 정사의 이야기입니다. 만약 토문강을 두만강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면, 청나라 측이 토문이라고 정한 것이 왜 잘못 되었다고 말하겠습니까? 즉, 청은 토문강을 두만강으로 인식하고 있었지만, 조선은 토문강과 두만강을 별개의 강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토문이라는 표현이 조선 정조실록에서 등장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뒷받침하고 있지요. 오늘날의 현대 연구에서도 간도는 조선 땅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측의 입장을 벗어나서 (님의 말씀대로) 조금 더 중립적으로 일제강점기 때 1933년 발표된 시노다 지사쿠 석사의 30년 연구 논문에서도 간도는 조선 땅이다라는 사실을 사료 분석을 통해 밝혀놓은 바 있습니다. 결국 여러 측면에서 간도는 조선의 땅임이 인정받고 있습니다. (솔직히 중국 측의 자료도 제시해주시면 좋았을텐데요.) Omaha Beach max~ 2015년 12월 25일 (금) 11:09 (KST)답변

長白山之西,中國與朝鮮既以鴨綠江為界,而 土門江自長白山東邊流出東南入海,土門江西南屬朝鮮,東北屬中國,亦以江為界 ... 장백산 서쪽은 압록강이 조청 국경이고, 토문강은 장백산에서 동남쪽으로 바다로 들어가는데 토문강의 서남쪽은 조선, 동북쪽은 중국에 속하니 이 강도 국경이다. - 《청사고》526권 열전 제313 속국1 조선
彼咨中所謂土門江, 卽華音豆滿江也 ... 저들의 자문에 토문강이라 한 것은 곧 두만강의 중국 음(音)이다. - 《비변사등록》 숙종 38년 2월 30일
중국 사료와 당시 조선이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도 제시해드렸습니다. 사료의 어느 부분이 애매하다는 것인지 분명히 해주시겠습니까? 사료가 말해주듯 백과사전이 잘못됐다는 겁니다. 제시해드린 사료의 앞뒤 문장을 더 보고 싶다면 링크를 따라가시면 됩니다. 조선은 두만강이 경계라는 데에 내내 합의하고 있다가 19c 후반, 정확히는 대한제국에 와서야 님이 말씀한 내용으로 말을 바꾼 겁니다. 바로 몇 년 전인 1880년대 감계 회담 때도 두만강이 경계라는 데엔 이의가 없었으며 회담이 결렬되었던 이유는 두만강 상류의 경계가 홍토수냐, 석을수냐였을 뿐입니다. - 韓·淸 문제에 대한 참고서류 송부 件 - 勘界 節略 校閱轉奏事 北洋衙門 咨 홍토수와 석을수 사이가 얼마나 좁쌀만한 땅인지는, 보통 생각하는 간도와 얼마나 동떨어진 것인지는 이걸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국가 간의 관계를 단순하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만 도의적 관점에선 그만큼 대한제국 고종 정부가 치사했던 겁니다.
또 언급하신 시노다 지사쿠(條田治策)는... 1872년에 태어나 러일전쟁에 고문으로 종군하기도 한 명치 ~ 소화 때의 법학자입니다. 뭔가... 느낌이 쎄하지 않습니까? 시노다는 간도를 조선 땅이라... 하기 보다는 더 정확히 말해서 ‘간도엔 여진인들이 살았으나 청나라의 봉금 정책으로 영토 주권을 포기하였고, 조선 역시 월경하지 않아 무주지가 되었다. 19c 양국 어디에도 정당하게 속하지 않은 상태에서 영토 분쟁이 일어났고, 이제 일본이 무주지인 이곳을 먹으면 되는데 왜 우리 위대한 대일본제국 정부는 간도를 청나라에 간단히 주어버렸는가?’라고 합니다. 독도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뭔가 같은 걸 봤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드실 겁니다. 조선은 공도 정책을 실시하여 독도의 영토 주권을 포기하였고, 무주지가 된 독도를 일본이 병합하였다는 논리와 완전히 같은데다 그냥 제국주의사관이예요. 일본어가 유창하실듯 하니 원서를 직접 읽어보시거나 최장근, 〈간도의 중국관할 경위〉, 《일본근대학연구》49, 2015도 추천합니다. 사족입니다만 현대에 민족주의라 자칭하는 분들 대부분의 실상은 식민사관이나 제국주의사관을 나라만 바꿔서 복붙한 겁니다.
대한제국의 간도영토론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이었는지, 일제의 잔재가 현대까지 무슨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는 이명종, 〈대한제국기 간도영토론의 등장과 종식〉, 《동아시아문화연구》54, 2013를 보시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12월 26일 (토) 11:29 (KST)답변
백과사전이 문제가 있다면, 백과사전 자체를 고쳐야겠네요. 그리고 위의 시노다 지사쿠의 말은 어느 책에 있는지 말씀해 주시죠. 아무런 사료 없이 말씀하시면, 개인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참고로 전 일본어 초보입니다. 대학생 1학년이에요.) 어쨌든, 조금 더 확실히 해보도록 하죠. 위에서 말씀하신 '청차는 ... 물을 따라 내려가 끝까지 흘러가는 곳을 찾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본 물은 다른 곳을 향해 흘러가고 ... 그가 본 것이 두만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인 줄 잘못 알았던 것이니, 이는 진실로 경솔한 소치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걸로 끝입니다. 토문강과 두만강이 다르다는 것은 맞으나, 그래서 국경에 변동이 있었느냐라던가, 아니면 조선의 국경을 두만강으로 재조정하는 노력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한 마디로 이 말은 압록과 토문을 국경으로 정한 백두산정계비에서 토문이 두만인 줄 알았던 양국은 이 두 강이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은요? 조선과 청에서 이런 큰 문제라면 회담이나, 국경 분쟁으로 이어질 법도 한데, 님께서 제시하신 자료에서는 그냥 두 강이 다르다로 끝입니다. 님께서 제시한 사료의 대부분은 '조선은 두만강 이북의 땅은 우리 것이 아니다라는 인식을 지니고 있었다' 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해결책은 없었습니다. 인식을 지니면 그것에 대한 실질적인 절차가 필요한데, 그런 것을 증명할 사료가 부족합니다. 조금만 제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오늘날 우리가 과연 역사학자의 사관에서 자유로울 수 있냐는 겁니다. 물론 비판적인 사고를 가져야겠지요. 하지만, 님께서 자주 인용하시는 동북아역사재단에서도 간도가 우리 땅이라는 증거를 찾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학자들은 간도가 조선의 땅이었음을 인정하려고 있지요. 제가 찾은 백과사전도 한국민족대백과사전 (한국중앙학연구원)이나, 한국사 개념 사전 등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들이 친일인가, 그것은 또다른 문제이지요. 백과사전 자체가 잘못된 정보로 우리를 왜곡시키려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들의 입장을 비판적으로 보며 저항해야 하는데, 왜 아무도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을까요... Omaha Beach max~

《白頭山定界碑》요. 아님 언급해드린 논문으로 보셔도 될 것 같습니다. 백두산 정계비를 세우게 된 경위는 압록강과 두만강 사이의 경계가 부정확하다는 것이었지(但鴨綠、土門二江之間地方,知之不悉 - 《청사고》526권 열전 제313 속국1 조선), 압록강 - 두만강 라인은 이미 명확했기에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그 좁쌀만한 땅 땜에 분쟁이 생길 수도 있으니 조선 나름대로 정계비보다 아래 두만강의 상류 부근부터 목책을 세우는 것으로 해결합니다.(조선왕조실록 숙종 52권 38년(1712) 12월 7일조) 1880년대 감계 회담의 관건도 그 부분이었지 두만강이 국경이라는 데에는 합의를 본 상태였습니다. 이랬던 판을 뒤집은 게 대한제국 고종 정부 때...;; 한편 조중변계조약으로 북한이 중국한테서 좀 더 삥을 뜯는 것으로 국경선 정리가 완료됩니다. 즉 분쟁구역이던 곳 이상으로 북한 영토에 편입되었기 때문에 대한제국의 영토에서 지린성은 빠져야 하는 것입니다.
간도에 대한 동북아역사재단의 입장은 이렇습니다. 대부분...이 아니예요. 간도에 대한 연구는 단순히 영토로 국한되지 않습니다. 정계비의 성격, 간도의 명칭과 범위, 간도 협약의 유무효, 청나라와 조선 내지 대한제국의 실효적 지배 여부, 일제의 간도 개입 이유, 영유권 주장의 타당성... 등 다방면에서 다루어지고 있으며 영유권 주장의 타당성과는 별개로 간도가 조선 혹은 대한제국의 영토라는 데에는 회의적 관점이 더 커가고 있습니다. 이하는 사견입니다만 이전에 말씀드렸듯 모든 걸 식민사관에서 벗어나고자 하셨던 석학들께서 (사실은 식민사관에서 나라만 바꾼) 좀 무리수인 기초들을 세우신 게 많고 현재 이런 게 수정되어가는 추세입니다. (다른 매체도 마찬가지입니다만) 백과사전은 집필자가 누구인지를 필히 확인해야 합니다. 전... 백과사전은 소스로 안 씁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12월 27일 (일) 08:17 (KST)답변
간도는 대한제국청나라의 주권이 충돌하는 지역이었으며 2013년 이전까지의 북부 코소보와 유사합니다. --대한민 (토론) 2015년 12월 29일 (화) 16:05 (KST)답변
북부 코소보는 제가 잘 몰라서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간도는 대한제국과 청나라가 영토 분쟁을 하던 곳이었기는 합니다만 대한제국의 영토인 적은 없었습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6년 1월 1일 (금) 08:14 (KST)답변
@일단술먹고합시다: 압록강ㅡ 두만강 라인은 당연히 명확하죠. 문제는 백두산정계비에 적혀진 토문과 두만의 문제입니다. (사견은 최대한 배제토록 하겠습니다. 공적이니까요. 솔직히 역사학을 전공하려던 입장에서 기분이 약간 나쁘기도 하고요) 님께서 위해서 말씀하셨던 위의 이유들을 하나씩 따져보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정계비의 성격, 간도의 명칭과 범위, 간도 협약의 유무효, 청나라와 조선의 실효적 지배 여부, 일제의 간도 개입 여부 등등 모두 말입니다.
  • 정계비의 성격은 원래 님 말씀대로 조선과 청나라의 국경 문제를 명확히 하는 것입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定界碑는 경계를 정하는 비석입니다. 문제는 동쪽 경계의 강을 토문이라 하여 문제가 불거진 것이죠. 두만강이 국경이라고 합의를 본 상태면 토문이라 적을 이유가 없습니다. (님의 개인적인 사견인 셈이죠.) 토문과 두만은 오늘날에도 명백히 다른 강임이 알려져 있습니다. 결국 토문과 두만의 문제로 조선의 동쪽 국경이 애매모호해진 것이 사실입니다. (토문을 잘못 적은 것을 청나라 측에서 수정하지 않았으며, 조선 또한 잘못되었다고 인식했을 때 정계비 자체를 고치려 들지 않았다는 것이 명백한 증거이죠.)
  • 간도의 명칭과 범위는 만주 땅 대부분을 일컫고 있으나 서, 북, 동으로 구별됩니다. 서간도는 압록강 이북의 지역으로 옛날 국내성이나 오골성 지역 등이 포함됩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자면 요하를 경계로 압록강부터 백두산 일대까지의 만주 지역을 서간도라 부릅니다. (그러니까 좁쌀만한 땅이 아닙니다.) 동간도는 북간도라고도 불리며 백두산 동쪽부터 두만강 이북, 그리고 오늘날 러시아와 중국의 국경인 헤이룽 강을 경계로 삼으며, 토문강을 서쪽 경계로 삼고 있습니다. 남만주 대부분이 간도 지방인 것은 다 알고 있습니다. 명칭은 간단히 번역하면 사잇섬입니다. 원래는 압록강과 두만강 사이의 하중도 여러 개를 일컫다가, 그 의미가 확장된 것이죠.
  • 간도 협약은 청과 일본 측에서 보면 유효하지만 우리 측에서는 무효입니다. 이 때 당시 1909년에는 을사조약(1905) 때문에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박탈된 상황이었으며, 간도 귀속 문제의 해결은 여전히 모호한 상황이었습니다. (대한제국, 청은 아직 간도가 누구 땅인지 정하지도 않았어요.)
  • 양측 모두 실효지배를 한 경험이 있습니다. 선춘령 경계비와 건주위 여진의 위치가 대표적인 예이지요. 조선의 경우 세종실록을 보면 오늘날 선춘령 지역에 경계비를 세운 적이 있습니다. 선춘령의 위치는 불분명하지만 백두산 이북인 것만은 확실히 공인받고 있습니다. 조금 더 근대로 다가가면 대한제국이 1900년 간도 관리사를 파견하고, 서간도와 북간도를 각각 평안도와 함경도의 땅으로 편입시켰습니다. (백성, 땅, 주권이 모두 존재하니 엄연한 대한제국의 영토인 거죠. 중국인이 섞여 산 것도 사실이지만 고구려나 발해, 부여도 이와 유사하였습니다.) 청의 경우 고구려와 발해의 멸망 이후 여진(말갈, 숙신이라고도 하죠)족이 요나라 휘하에서 압록강과 두만강, 함경도 쪽에 흩어져 살다가 금나라 건국 이후 이 지역을 완전히 실효지배한 경험이 있습니다. 이후 금은 몽골에게 멸망 당했지만 약 300년 후 명나라 때 다시 이 지역의 자치를 인정 받습니다. 건주위 여진 등이 대표적으로, 이들은 오늘날 간도 땅에 자리잡았죠. 이후 후금의 건국 이후 이 지역은 다시 여진족(만주족)의 실효지배 지역이 됩니다.
  • 일제의 간도 개입 여부는 분명합니다. 20세기 초, 러일 전쟁 이후 일본은 제국주의의 길을 걷습니다. 이에 따라 만주 지역은 일본이 중국 본토로 진출하기에 적합한 지역이었습니다. 일본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해 반식민지 상황으로 만든 후, 그 다음 목표로 만주 지역을 노리게 됩니다. 남만주 철도를 부설하기 위해 청과 협상을 시도하려 하지만, 남만주 (여기가 간도인 것은 위에서 설명한 바 있습니다.) 땅의 귀속 문제가 불분명했기 때문에 일본은 청과 간도 협약을 체결합니다. 이후 일본은 이 조약을 통해 남만주 철도 부설권을 얻게 되었죠. Omaha Beach max~ 2015년 12월 29일 (화) 17:32 (KST)답변
으음... 역사학을 전공하려던 분이라면 설사 전공은 아니더라도 앞으로 꾸준히, 더 깊게 공부하시길 권합니다. 요즘은 세월이 조아서 전공자가 아니라도 사료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답니다. 편중시각소유자들은 흔히 (그들의 표현을 따와) 강단사학계가 석학들의 학설을 신봉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고 석학들의 논리 중 틀린 부분이 있다면 거침없이 수정돼가는 세계라고요.
자꾸 말씀이 길어지시는데 이 토론 주제가 뭡니까? ‘대한제국이 간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했는지의 여부’가 아니라 ‘간도가 대한제국의 영토인지의 여부’아닙니까? 인천직전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이 그 주제와 무슨 연관이 있습니까... 무엇보다 사견뿐만이 아니라 사료를 제시하며 말씀해주셔야죠...
영토가 되는 방법은 대략 다음의 2가지가 있습니다. 간도가 대한제국의 영토라는 것을 증명하려면 저 두 가지중 하나여야 합니다.
1. 무주지 선점 - 간도가 무주지인 상태에서 조선 혹은 대한제국이 선점. 그러나 간도는 청나라가 지배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미 사료로 보여드렸습니다. 대한제국은 청나라가 지배하고 있던 곳의 불법 체류민을 기반으로 그 영유권을 주장한 것이고요.
※ 다만 봉금정책을 영토의 포기라 해석한다면 좀더 생각해볼 구석이 생기긴 합니다. 흔히 간도영토론을 주장하시는 분들의 근거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독도와의 이중잣대라 비판받지요. 어쨌든 봉금 정책을 영토의 포기로 본다 해도 간도에 통치력을 먼저 '행사'한 건 청나라입니다. 간도관리사 이범윤의 파견 이유부터가 간도에 사는 조선인들에 대한 '청나라 관원들의 학대를 막기 위함'(以防淸員之虐待)입니다. - 고종실록 43권 고종 40년 8월 11일
2. 양도 - 두 가지 성격의 양도 계약이 있습니다.
  • 강제 : 무력을 사용하여 할양받습니다. 세계대전 이전엔 합법적 방법입니다. 그러나 대한제국은 간도를 점령하기 위해 청나라와 전쟁을 벌인 적이 없습니다. 군대를 주둔시킨 건 오히려 청나라입니다.
  • 자율 : 서로가 자율적으로 합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사료를 보여드렸듯 청나라는 대한제국에게 간도를 양도한 적이 없습니다. 대한제국 때 토문강이 두만강이 아니라며 떼를 쓴 적만이 있었을 뿐이죠. (두만강과 토문강의 개념에 대해선 이강원, 〈조선후기 국경인식에 있어서 豆滿江 · 土門江 · 分界江 개념과 그에 대한 검토〉, 《정신문화연구》vol.30, No.3, 2007 도 참고 바랍니다)
이상과 같이 간도는 대한제국의 영토였던 적이 없습니다. 더이상 주제와 관련없거나 사료를 제시하지 않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음 좋겠습니다. 인천직전님은 자신의 믿음을 길게 말씀하시는 경향이 많으신데 그다지 좋은 토론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자신의 믿음이 부정당하신다면 자꾸 토론을 끌지 말고 정말 그런지 사료부터 찾아보는 게 순서 아닐까요? 언젠가 시간날 때 간도, 백두산정계비 등 관련 내용들 싹- 손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은 다음의 인용으로 마치겠습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6년 1월 1일 (금) 08:14 (KST)답변

'간도 되찾기'를 주장하는 이들은 일본의 침략성을 근거로 간도협약 무효를 제기했다고 하지만 사실 그들의 인식 속에 있는 간도는 통감부간도파출소에서 간도 점령을 위하여 만들어낸 간도의 이미지인 것이다. '간도 되찾기'를 주장하는 이들의 국수적인 고토 회복 의식은 간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중국 측의 입장에 반대하면 할수록 만주 침략을 위한 전진기지로서 간도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하는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논리와 공명하게 되는 것이다.

— 배성준, 「간도」, 『역사용어 바로쓰기』, 역사비평사. 더 많은 인용은 여기
아, 새해 복 많이 받는 것도 잊지 마세요.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6년 1월 1일 (금) 08:28 (KST)답변
친일파가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고 주장했으니,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고 주장하면 반민족적이고 친일이다라는 말과 같은 수준의 무의미한 주장입니다. 일제의 침략논리와 같다며 간도영유권론을 비판하는 것은 인신공격의 오류입니다. --대한민 (토론) 2016년 1월 5일 (화) 17:28 (KST)답변
? 제가 반민족적이라거나 친일이라는 단어를 타이핑하였는지요...? ... 뭐어... 켕기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또 친일을 하든 반민족적 행위를 하든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린 그저 백:원칙을 준수하며 백과사전을 작성하기만 하면 됩니다. 전 (현재 의미의) 간도란 개념을 오직 일제가 발명했기 때문에 부정하자고 한 적이 없습니다. '오직 일제가 관여했기 때문에' 모든 걸 부정하는 자세... 그게 바로 제가 지적하는 민족주의사관 내지 국수주의사관의 폐해입니다. 이덕일은 아예 간도를 부정하는 자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고까지 했죠...;; 어쨌든 그런 논리가 아니라 여러 백:확인 가능한 자료를 제시해드렸으니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귀하께서는 딱히 반박 자료를 제시하지 않으셨으므로 조만간 수정하겠습니다. 사족입니다만 낙랑군은 이미 당나라, 고려 사서에서부터 평양에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즉 일제의 발명품이 아니라서 간도영유론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6년 1월 7일 (목) 00:00 (KST)답변
님이 자꾸 그런 식으로 원리원칙 이야기에 사견까지 덧붙이시면 원래 토론에서 다른 방향으로 서술될 우려가 있습니다. (솔직히 원리 원칙 이야기는 사용자토론에서 하셔야죠. 여기는 대한제국의 토론란입니다.) Omaha Beach max~ 2016년 1월 7일 (목) 01:02 (KST)답변

국토 경계(국경)이 확정되지 않았을 때에는 실효적 지배의 경계를 국경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일례로 16세기 캐나다 서부는 영국이나 프랑스 영토가 아니라, 스페인 영토로 취급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간도에 대한 청의 지배는 실효적이지 못했습니다(청나라 행정기관도 설치하지 않고, 무턱대고 조선인의 귀환을 요구했습니다.). --Knight2000 (토론) 2016년 3월 1일 (화) 06:19 (KST)답변

더욱이 “유민의 쇄환” = “영토의 포기”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것은 울릉도에서 도민을 쇄환한 사실이 곧 울릉도와 독도의 영유권을 포기한 일이던가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는 독도 문제와 간도 문제에서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으로서, “쇄환”은 영토 포기와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이건 영토 관리의 측면이지 영토의 포기가 아닙니다). 왜 이것이 이중잣대가 되는지가 의문입니다. 유민의 쇄환은 해당 영토에 대한 정치적·군사적·행정적 여건이 나빠져서 백성을 불러들였다고 해석할 문제이지, 영토를 포기했다고 해석할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게 따지면 유인도였다가 무인도로 바뀐 대한민국의 연안 도서는 대한민국의 영토가 아니라는 뜻이 되어 버립니다. --Knight2000 (토론) 2016년 3월 1일 (화) 06:19 (KST)답변

간도와 독도의 이중잣대(?)[편집]

간도와 독도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으로서,

(1)관료의 파견 : 일본과 청은 아무런 관리도 파견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시마네 현에서는 귀속발표만 하고, 적어도 대한제국이 존재할 동안에는, 주소 지정과 그에 따른 후속 행정적 처분은 없었습니다. 청나라도 조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만 조선에서는 분쟁이 발생하자, 세금 징수 등의 행정적 처분이 뒤따랐으나, 청과 일본은 그것조차도 없었습니다.

(2)세금 징수 : 실효적 지배는 그저 관료의 파견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행정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행정은 외교관을 통해서도 할 수 있으나, 해당 지역에 대한 세금 징수는 오로지 내무관료를 통해서만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세금의 징수는 실효적 지배의 명확한 증거 가운데 하나입니다. 청과 일본은 간도와 독도에 대해서 세금을 징수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조선은 간도에 대해서는 관료를 파견한 직후부터 바로 세금을 징수했고, 독도에 대해서는, 심지어 강치잡이를 하는 일본인에게까지도 세금을 징수했습니다.

(3)군대 파견 : 청과 조선 사이에 간도 분쟁이 발생한 원인이, 청에서 간도 지역에 군대를 파견하면서 그곳에 사는 조선인을 청국인으로 취급하여 징병하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조선은 그 뒤 관료에게 군사권까지 주어 파견했습니다. 독도에 대해서도 울릉도의 관료가 독도의 방어를 관할하였습니다.

(4) 조약의 실효성 : 간도 관련 조약은 백두산정계비에 나타난 대로인데, 이때 당시 어떤 것을 두만강으로 보고 문안을 작성했느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해당 내용에 대해 청나라 측은 아무런 자료도 제시하지 않았으나, 조선 측에서는 당시 상황을 그린 그림 등을 제시하였고, 현재까지 전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토문”이라는 문자가 두만강이든 토문강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으며, 정계비를 세울 때 함께 그런 그림이 가리키는 강은 현재의 송화강 지류이며, 이는 두만강과는 전혀 다른 물줄기입니다. 게다가 그 그림은 청차와 함께 해당 유역을 답사하고 그렸기 때문에 절대적인 증거로 볼 수 있습니다. “토문”에 대한 해석은 서로 다를 수 있는 상대적인 증거입니다. 반면에 일본측이 주장하는 “시마네현의 무주지 선점” 논리는 그 자체로 이미 허구입니다. 일본측에서는 메이지유신 이전부터 독도를 선점해왔다고 주장하면서, 정작 국제적 인정을 받은 것은 “무주지 선점”이라는 이중잣대에 따른 논리전개를 하고 있습니다. “무주지 선점”은 말 그대로 주인이 없는 땅을 선점했다는 말인데, “일본이 주인이었는데, 지금은 주인이 없으니 선점하겠다”라는 이상한 논리이지요. 한국에게는 독도의 주민을 쇄환했기 때문에 영토 포기라고 말하면서, 일본은 아예 자기네 영토를 “공식적으로 포기”하였다고 선언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러한 공통점이 존재하는데, 어떤 부분에서 이중잣대라고 주장하는지 이해하기 힘듭니다. --Knight2000 (토론) 2016년 3월 1일 (화) 06:19 (KST)답변

대한제국 표[편집]

대한제국 표에 보면 애국가 라는 단어가 있는데 애국가는 1935년에 작곡된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된것인가요?--Kijun3345 (토론) 2017년 2월 23일 (목) 10:33 (KST)답변

1902년에 작곡된 대한제국의 국가의 명칭도 애국가입니다. --Knight2000 (토론) 2020년 8월 27일 (목) 22:13 (KST)답변

편집분쟁[편집]

지금 대한제국 문서에서 구조적 문제점 단락에 관한 심각한 편집분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두 분에게 토론참석 부탁합니다.220.122.36.60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02:28 (KST)답변

백:출처, 백:신뢰, 백:독자, 백:확인 가능 지침 정독이 맞는 순서입니다. 지침의 이해도 되지 않으셨으면서 이런식의 행동은 옳지 않습니다. --양념파닭 (토론 · 기여) 2020년 5월 23일 (토) 02:30 (KST)답변
의견 상동. -- Yelena Belova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02:31 (KST)답변
정독했는데 정확히 어느부분을 위반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설명 바랍니다. 220.122.36.60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02:33 (KST)답변
어느 부분을 찝을 필요도 없이 전체적으로 문제입니다. --양념파닭 (토론 · 기여) 2020년 5월 23일 (토) 02:34 (KST)답변
?????? 220.122.36.60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02:34 (KST)답변

개인적인 연구를 올리는 데 사용하지 마십시오. 다시 말해서 본인의 새로운 이론이나 풀이, 독창적인 생각, 용어의 새로운 정의를 서술하거나 자기가 생각한 새로운 용어를 도입하는 행위 등을 하지 마십시오.

딱 이 한 문장으로도 충분해 보이네요. --양념파닭 (토론 · 기여) 2020년 5월 23일 (토) 02:36 (KST)답변

만약 당신이 스스로 어떤 주제에 대해 연구를 끝냈다면 연구 결과를 전문가의 검수를 받은 저널이나, 권위있는 온라인 매체 및 인쇄본 등의 경로로 출판해야 합니다. 당신의 연구가 그런 경로를 통해 출판되고 공인된 지식의 일부가 된다면 위키백과에서 다룰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검증이 되었고, 해당 편집자만의 의견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신뢰할 수 있는 출처에서 인용해서 소개해야 합니다. 이 문장은요? 전문가의 검수를 받은 저널이나 권위있는 온라인 매체 및 인쇄본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제가 인용한 서적은.220.122.36.60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02:38 (KST)답변

http://www.yes24.com/24/AuthorFile/Author/61943?scode=008_001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와 사회발전연구소 소장을 거쳐 현재 포스텍 인문사회학부장으로 재직 중이다. 정치와 경제를 포함, 사회 현상과 사회 정책에 관한 정교한 분석으로 널리 알려진 학자이자 칼럼니스트다.

저서로 『인민의 탄생: 공론장의 구조변동』(2011), 『시민의 탄생: 조선의 근대와 공론장의 지각변동』(2013), 『촛불의 시간: 군주·국가의 시간에서 시민의 시간으로』(2017), 『가 보지 않은 길: 한국의 성장동력과 현대차 스토리』(2017), 『혁신의 용광로: 벅찬 미래를 달구는 포스코 스토리』(2018) 등과 장편소설 『강화도: 심행일기』(2017), 『다시, 빛 속으로: 김사량을 찾아서』(2018)가 있다. 220.122.36.60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02:39 (KST)답변

출판은 된 것이 맞으나 공인된 지식이라는 부분에는 동의하기 어려운데요. --양념파닭 (토론 · 기여) 2020년 5월 23일 (토) 02:44 (KST)답변
공인된 지식 기준 좀요. 220.122.36.60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02:52 (KST)답변
대체 이걸 출처로 인용 못하면 그 어느내용을 서술할 수 있죠?220.122.36.60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02:53 (KST)답변
심지어 자비출판물도 아니고

위키백과는 전 세계의 과학자, 학자, 연구자들이 작성한 확립된 문서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학술성을 가진 문서에 의하여 기술된 항목들은 종종 신뢰할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학술적 성과는 더 새로운 연구에 의해 낡은 지식이 되거나 다른 설명에 의해 쟁점이 될 수 있습니다. 위키백과의 문서들은 이러한 화제에 대한 모든 주요한 학문적인 해석들을 설명해야 합니다. 자료들이 학술 단체에 의해 검토 과정을 거쳤다는 것은 상호검토된 출처로 출판되었고, 대학의 기관지 등에 의해 검토되어 받아들여졌음을 의미합니다.

학술적인 참고서적으로서 추천할 만한 내용이 선호됩니다.

책이나 논문의 제목이 제시된(작성자가 명시된) 글은 그렇지 않은 글보다 더욱 신뢰할 수 있는데, 이는 그 글을 전문가가 작성하였고, 그 내용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글과 상통합니다. 서술하기에 문제가 없어보입니다. 220.122.36.60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03:02 (KST)답변

이래서 학력사회가 문제라니까요. 무슨 여기가 학위박사 논문 자랑하는 곳인가요? 저 교수가 발표한 저서가 학계에서 널리 인정되고 있는 통용 학설이며, 해당 논문의 주장이 대한민국 사학계에서 일반적으로 아무런 문제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의견인지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Yelena Belova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03:18 (KST)답변
출판된 학위박사 논문의 서적을 출처로 인용할수 없으면 대체 무엇을 인용해야하며 통용 학설이란 개념 자체가 추상적이고 대한민국 사학계에서 아무런 문제없이 받아들여지는 의견이란건 존재할수도 없습니다. 220.122.36.60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03:20 (KST)답변
뭔 추상적이에요.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했다. 이런 게 통용되는 학설이자 사학계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사실인데 그걸 부정하시겠다고요? 무슨 야사 편집하세요? -- Yelena Belova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03:23 (KST)답변
애초에 교과서에서 내의 내용만봐도 학계 내에서 삼국통일전쟁으로 볼거냐 삼국정복전쟁으로 볼거냐는 의견이 분분하며 위키백과가 애초에 사학계에서 만장일치로 인정한 사실관계만을 늘어놓는 곳이라면 문서 반절은 삭제해야합니다.제가 인용한건 위키백과의 신뢰성 있는 출처의 기준에 부합하며, 그 학설이 잘못됬다 싶으면 그쪽이 반박근거 올리시면 됩니다. 220.122.36.60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03:25 (KST)답변
그리고 지침에 학계에서 널리 인정되고 있는 통용 학설이며, 해당 논문의 주장이 대한민국 사학계에서 일반적으로 아무런 문제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의견만 등재할수 있다고 되어있습니까? 저보고 지침 읽어보고 오라고 하더니 이 무슨....220.122.36.60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03:28 (KST)답변
애초 그쪽이 광무개혁 단락에 서술한 부분도 똑같은 문제를 제기할수 있는데 제거해도 상관없는 부분인가요? 220.122.36.60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03:28 (KST)답변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게 됬지만 제 기여분 삭제에 대한 판단이 옳았는지 다시 한번 판단해주셨으면 합니다. 싸우러 온게 아니니까요. 220.122.36.60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03:29 (KST)답변
그러니까 그게 아전인수식 해석이라는 것이지요. 본인이 제대로 지침을 이해하지도 못했으면서 지금 남에게 화내고 계신 것 같네요. 맞아요. 님 말대로 위키백과가 사학계에서 일반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지는 사실을 위주로 문서 편집하는 곳입니다. 그러니까 통일신라라는 표현도 엄연히 등재되고, 고려의 후삼국 통일이라고 하지 후삼국 정복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아요. 독도도 다케시마라고 표기하지 않고 독도라고 표기하고요. 덧붙여서 신뢰할 수 있는 출처라는 건 님이 그 지침을 읽고 개인적으로 판단하는 기준이 아닙니다. 아무래도 위키백과에서 본인이 등재하고 싶은 학자의 학설을 등재하려고 오신 것 같은데, 유감이지만 그런 것을 원하실 경우 다른 사이트를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 Yelena Belova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03:33 (KST)답변
지침 어느 부분이 문제인지 알려달라고 수번 반복해서 말씀드립니다. 독도 문제랑은 무관하고요. 신라의 삼국통일전쟁을 삼국정복전쟁으로 봐야하냐는 실제로 학계에서 의견이 분분합니다.이 문제랑 별개로 제가 가져온 글은 위키백과 지침에 어긋나지 않을뿐더러 그 신뢰할수 있는 출처의 판단은 그럼 누가하나요? 그쪽이 하나요? 뭐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설명이라도 해주라니까 왜 자꾸 그렇게 뭉퉁그려서 표현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220.122.36.60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03:36 (KST)답변
그리고 그쪽이 그 학설이 소수설이라고 생각하며 전적으로 내용이 틀렸다고 생각하시면 근거를 가져오세요. 왜 자꾸 그 학설을 근거없이 유사역사학 취급하는건 물론이며 등재하고 싶은 학자의 학설 등재,이게 뭐가 잘못입니까? 등재하고 싶지 않은 학자의 학설을 등재하는 경우도 있어요? 220.122.36.60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03:39 (KST)답변

님 주장 전체가 문제라고 위에서 이야기 나왔잖아요. 님이 지금 하고 계신 편집 자체가 문제라고요........ 굳이 이렇게까지 설명을 드려야 합니까? -- Yelena Belova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03:40 (KST)답변

이미 모두 다 반박했는데 뭐 주장 어떤점이 어떻게 문제인지 설명이라도 해주실래요? 220.122.36.60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03:41 (KST)답변
그리고, 문서 보니까 뉴스 링크까지 출처로 걸려있는데 뉴스 링크는 학계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학자의 출처며 하버드대학 박사학위 받은 교수가 쓴 서적은 출처로서의 가치가 없다는 말이죠?220.122.36.60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03:44 (KST)답변
하버드 대학 박사학위가 문서의 신뢰성을 보장해요? 그리고 뉴스가 학자가 쓴 겁니까? 비교 대상을 제대로 놓고 이야기하셔야죠. 정말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오네요. -- Yelena Belova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03:47 (KST)답변
그러게요. 제가 묻고 싶습니다. 뉴스는 학자가 쓴것도 아니고 기자가 쓴건데 등재가 되고 제가 쓴 내용의 출처, 즉 서울대학교 사회과학교수의 저서는 출처로 인용이 안된다는게 이상합니다.

위키백과는 전 세계의 과학자, 학자, 연구자들이 작성한 확립된 문서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학술성을 가진 문서에 의하여 기술된 항목들은 종종 신뢰할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학술적 성과는 더 새로운 연구에 의해 낡은 지식이 되거나 다른 설명에 의해 쟁점이 될 수 있습니다. 위키백과의 문서들은 이러한 화제에 대한 모든 주요한 학문적인 해석들을 설명해야 합니다. 자료들이 학술 단체에 의해 검토 과정을 거쳤다는 것은 상호검토된 출처로 출판되었고, 대학의 기관지 등에 의해 검토되어 받아들여졌음을 의미합니다.

학술적인 참고서적으로서 추천할 만한 내용이 선호됩니다.

책이나 논문의 제목이 제시된(작성자가 명시된) 글은 그렇지 않은 글보다 더욱 신뢰할 수 있는데, 이는 그 글을 전문가가 작성하였고, 그 내용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위에서 못 보셨을까봐 편집지침 보여드립니다. 220.122.36.60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03:49 (KST)답변

네 이미 봤고요. "뉴스 링크는 학계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학자의 출처"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게 대체 뭔소리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님 말은 학자들이 뉴스를 썼다, 이 말이지요? -- Yelena Belova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03:59 (KST)답변
그리고 어차피 님이 지침 자체를 위반했고, 그거에 대해서 자기 혼자 나몰라라 하고 있습니다. 그냥 님이 자기 주장을 정당홯하기 위해 온갖 수다늘 동원하려는 시도로 밖에 보이지 않거든요. 만약에 저 혼자서 님의 주장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으면 저 역시 님과 다를 바가 없겠지만, 양념파닭 님께서 이미 사용자님의 주장에 대해 제대로 논거를 제시하셨고, 사용자님이 가지고 온 출처에 대해서도 위키백과 지침에 따라 충분히 설명해드렸어요. 그렇기 때문에 님과의 토론은 필요가 없어요. 그리고 토론을 여신 이유도 모르겠고요.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토론을 이어가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판단합니다. 지침에 대해 본인이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셨으면서 저와 양념파닭 님을 비난하듯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자세도 아니고요. -- Yelena Belova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03:59 (KST)답변
제가 뉴스 링크가 공신력있는 출처다 라고 말한게 아니라 뉴스링크 출처는 그대로 놔두면서 제가 인용한 서적에만 왜 그렇게 잣대가 엄격하냐 이말입니다. 220.122.36.60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0:23 (KST)답변
무슨 지침을 위반했는지 설명조차 하지 않고 지침을 위반했으니 제 기여 자체가 무가치하다는식으로 매도하는데 제가 지금 어느 장단에 맞춰줘야하는지 모르겠고 편집 분쟁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토론과 설득을 하는건 지극히 상식적인 대응이고요. 제가 가져온 출처가 위키백과 지침 어디에 위반되는지 제대로 설명좀 해주세요. 말에 논리성과 설득력이 결여되어있으니까 그렇죠.220.122.36.60 (토론)
저기요. 양념파닭 님이 어떤 지침을 위반했는지 일일이 다 설명해드렸는데, 그걸 가지고 "나는 지침 위반한 적 없다"고 맞대응한 건 님이십니다. 전 이미 양념파닭 님이 제시하신 위키백과 의견과 동일하다고 (의견 상동) 밝힌 바 있고요. 계속 무슨 지침을 위반했는 지 알려달라고 했는데, 이미 저희들은 편집 요약과 토론란에서 "백:출처, 백:신뢰, 백:독자, 백:확인 가능" 읽고 제대로 이해하라고까지 말씀드린 것 같네요. 그런데도 이렇게 지침을 알려달라, 나는 지침을 위반하지 않았다라고 끝까지 우기는 것은 결국 사용자님이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 밖에 지나지 않으므로, 저는 더 이상 토론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하겠습니다. -- Yelena Belova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4:56 (KST)답변
양념파닭님이 주신 문서에도 제가 지침을 위반했다는 근거자료는 없는데요? 오히려 저의 기여에 힘을 실어줄만한 글들이 있습니다. 정확히 어느 부분을 어떻게 위반했다는건지 설명도 하지 않으시면서 무슨 계속 지침을 위반했으니 무가치한 기여라는 식으로 계속 되돌리네요. 출처 없다고 따질때는 언제고, 출처 밝히니까 지침 위반이라며 자꾸 지워버리는데 제가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줘야 합니까. 님은 그냥 제 서술이 꼴보기 싫다 이거잖아요. 220.122.36.60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5:01 (KST)답변
뭐가 유일한 한민족이 세운 국가죠? 말이 되는... 그건 그냥 야사 아닙니까. 그리고 그걸 굳이 인종으로 따져야겠습니까? 중요한 내용인 것 같지도 않은데. 그럼 고종은 조선 태조의 후손인데. 태조는 한민족이 아니면서 후손인 고종은 한민족이라고요? 그 누구도 완벽한 '한민족'은 아닙니다.--iLiveInSuwon (Debate, Contributions)α 2020년 5월 23일 (토) 15:11 (KST)답변
그거랑 상관없는 분쟁이며 한민족이 세운 제국국가를 구분하실 필요가 있을것 같습니다.220.122.36.60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5:13 (KST)답변
지침 인용하겠습니다.

위키백과는 전 세계의 과학자, 학자, 연구자들이 작성한 확립된 문서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학술성을 가진 문서에 의하여 기술된 항목들은 종종 신뢰할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학술적 성과는 더 새로운 연구에 의해 낡은 지식이 되거나 다른 설명에 의해 쟁점이 될 수 있습니다. 위키백과의 문서들은 이러한 화제에 대한 모든 주요한 학문적인 해석들을 설명해야 합니다. 자료들이 학술 단체에 의해 검토 과정을 거쳤다는 것은 상호검토된 출처로 출판되었고, 대학의 기관지 등에 의해 검토되어 받아들여졌음을 의미합니다.

학술적인 참고서적으로서 추천할 만한 내용이 선호됩니다.

책이나 논문의 제목이 제시된(작성자가 명시된) 글은 그렇지 않은 글보다 더욱 신뢰할 수 있는데, 이는 그 글을 전문가가 작성하였고, 그 내용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조적 문제 단락에서 제가 딱히 지침을 어긴것 같지는 않은데 어떤 지침을 위반한건지 설명해주세요. 220.122.36.60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5:14 (KST)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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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의 편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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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할 수 있는 출처에 관한 주요한 분쟁 중 하나는 특정 출처가 편향적이므로 다른 출처를 써야 한다거나, 그 출처를 인용한 것은 삭제해야 한다는 주장에 관한 논쟁입니다. 출처를 바꾸는 것은 문서 편향성 분쟁에서 편향이 있는 출처를 빼서 편향된 문서를 중립적으로 바꾸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출처가 '편향적이다'라는 이유 자체로는 없애버릴 수 없습니다. 모든 원 출처의 각 저자는 개인 성향과 가치관, 정치관, 신념 등을 가지고 있으며 글을 쓸 때는 이러한 특정 시각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220.122.36.60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5:21 (KST)답변

위키백과:비로그인 사용자도 사람입니다220.122.36.60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5:46 (KST)답변

지침 인용하면서 그 뒤에 거는 왜 안 적으세요?

출처의 편향성의 경우에는

신뢰할 수 있는 출처에 관한 주요한 분쟁 중 하나는 특정 출처가 편향적이므로 다른 출처를 써야 한다거나, 그 출처를 인용한 것은 삭제해야 한다는 주장에 관한 논쟁입니다. 출처를 바꾸는 것은 문서 편향성 분쟁에서 편향이 있는 출처를 빼서 편향된 문서를 중립적으로 바꾸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출처가 '편향적이다'라는 이유 자체로는 없애버릴 수 없습니다. 모든 원 출처의 각 저자는 개인 성향과 가치관, 정치관, 신념 등을 가지고 있으며 글을 쓸 때는 이러한 특정 시각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편향된 출처는 보통 그 자체로 신뢰할 수 없게 만드는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만일 다른 문제가 있을 경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처를 바꾸거나 지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편향된 출처는 보통 그 자체로 신뢰할 수 없게 만드는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만일 다른 문제가 있을 경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처를 바꾸거나 지울 수 있습니다. 이거는 왜 안 인용하세요? 엄연히 지침인데. 그리고, 가장 위에 중립적 서술에 대해 상세히 서술해주고 있는데, 그건 왜 안 읽으세요? -- Yelena Belova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5:58 (KST)답변

편향되었다는 근거를 제시해주세요. 그리고 편향적이라는 이유 자체로 없애버릴수 없다고 위에 인용했는데 못보셨나요?220.122.36.60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6:03 (KST)답변
그리고 무슨 다른 문제요??220.122.36.60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6:18 (KST)답변
서영희는 대한제국이 추구한 것이 근대 국민 국가 수립 시도 혹은 전제군주제의 근대적 변용이라고 지적하고 있다.그러나 둘은 같지 않으며, 후자가 보다 타당한 설명이라고 봐야한다. 이것에 대해 어떻게 입증하실 건가요. 서영희의 주장이던 사용자님의 주장이던, 둘은 교차 검증이 가능해야 합니다. 즉, 다른 자료나 출처에서도 해당 내용이 인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후자가 보다 타당한 설명이라고 봐야한다는 지극히 사적인 의견 서술입니다. 어느 것이 더 타당하다의 문제는 지양하고 있다고 중립적 서술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주장이 타당하면, 다른 주장은 무시되는 것인데, 이것이 어째서 중립적 서술에 기인하는 것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구조적 문제에 대한 서술이 출처를 근간으로 하고 있는데, 그 출처가 어떤 고유한 주장을 담고 있으면, 이에 대한 다른 주장을 서술하거나, 아니면 해당 주장이 일반적으로 널리 통용되고 있음을 입증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중립적이고 객관적이라고 하는 것이지, 님처럼 하버드대학 박사학위나 서울대학교라는 대학 타이틀로 신뢰성을 판단하여 지속적으로 되돌리기를 하는 것은 중립적 서술이 아니다 이 말입니다. -- Yelena Belova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6:29 (KST)답변
'하지만 편향된 출처는 보통 그 자체로 신뢰할 수 없게 만드는이라고 되어 있잖아요..... 그게 다른 문제라고요.... --Yelena Belova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6:29 (KST)답변
후자가 더 타당하다고 서술한것은 제 개인의 의견이 아닌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교수의 저서를 인용한 것 뿐입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널리 통용된 출처만 허용, 이건 대체 누가 정한거고 지침 어디에 그런 내용이 있죠? 220.122.36.60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6:33 (KST)답변
그리고 왜 편향된 출처인지 설명해주세요.220.122.36.60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6:33 (KST)답변

일단 특수:차이/26576876 판이 편집 분쟁 발생하기 이전의 판이니까 그거 적용하였습니다. 계속되면 보호 요청하는 게 좋을 것같습니다.--기들만정계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6:21 (KST)답변

헤당 주장이 일반적으로 통용되거나 해야 한다고요, 출처가 아니라... 하아.... "어떤 고유한 주장을 담고 있으면, 이에 대한 다른 주장을 서술하거나, 아니면 해당 주장이 일반적으로 널리 통용되고 있음을 입증해야 할 것입니다." 주장에 대해 설명했는데, 왜 출처로 바꾸시냐고요..... -- Yelena Belova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6:37 (KST)답변
뭔소린지 모르겠습니다. 애초에 출처 인용 부분에서 결점이 없고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사실관계만 늘어놓은 서술만 존치시킬거면 위키백과 문서 반절은 없애야합니다. 그리고 출처에 신뢰성이 없다면서 딴지를 거셨잖아요. 뭐가 어떻게 편향되어 있으며 지침 위반인지 설명하라니까요. 지침에 대해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는건 지금 그쪽이잖아요., 220.122.36.60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6:48 (KST)답변
뭔소리인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지 마시고, 그게 지금 지침 위반의 핵심이라고요. 이런 식으로 어물쩍 넘어가려 하지 마시고요. 님이 제시하신 출처, 교차검증하시라고요. -- Yelena Belova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6:55 (KST)답변
로그인 했습니다.

그니까 그쪽이 말한 내용이 지침에 명문화 되어있냐고요 그쪽이 그냥 자의적으로 해석하는거잖아요.

위키백과는 전 세계의 과학자, 학자, 연구자들이 작성한 확립된 문서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학술성을 가진 문서에 의하여 기술된 항목들은 종종 신뢰할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학술적 성과는 더 새로운 연구에 의해 낡은 지식이 되거나 다른 설명에 의해 쟁점이 될 수 있습니다. 위키백과의 문서들은 이러한 화제에 대한 모든 주요한 학문적인 해석들을 설명해야 합니다. 자료들이 학술 단체에 의해 검토 과정을 거쳤다는 것은 상호검토된 출처로 출판되었고, 대학의 기관지 등에 의해 검토되어 받아들여졌음을 의미합니다.

학술적인 참고서적으로서 추천할 만한 내용이 선호됩니다.

책이나 논문의 제목이 제시된(작성자가 명시된) 글은 그렇지 않은 글보다 더욱 신뢰할 수 있는데, 이는 그 글을 전문가가 작성하였고, 그 내용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도 명문화되어있듯이 제가 인용하려고 하는 부분은 신뢰할 수 있는 출처에 해당하며 왜 갑자기 교차검증 이야기가 나옵니까? 200w200w (토론)

인용하는 자료가 출처이고, 인용하려는 부분은 주장이죠. 이 부분은 명백히 합시다. 출처가 명백해도 주장이 독자적인 경우에는 이것은 신뢰할 수 있는 출처라고 하지 않죠. 예를 들어봅시다. 조선일보나 동아일보 자체의 기사는 출처로서 제시할 수 있지만, 그 출처가 편향되었다하는 것은 동아일보나 조선일보에서 쓴 기사의 내용을 가지고 판단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 문서에서는 단순히 조중동뿐만 아니라 jtbc, 연합뉴스, kbs 보도, bbc 등 다양한 기사들을 바탕으로 글을 서술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정치적 문서에 따라 언론사의 입장과 내용이 다 다르므로, 그 입장과 내용을 객관적으로 서술하기 위해 조중동뿐만 아니라 jtbc, mbc, kbs, sbs, 연합뉴스, ytn, 매일경제신문 등 다양한 언론사들을 비교하며 해당 주장들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분석합니다. 이것이 교차검증입니다.

예외적인 주장을 위키백과에 싣기 위해서는 그 주장을 하는 자 자신들 이외의 다른 신뢰할 수 있는 2,3차 출처에서도 그 주장을 언급했어야 합니다. 특히, 과학적이거나 의학적인 화제들, 역사적 사건, 정치적 논란이 있는 쟁점, 생존하는 인물에 대한 글은 더욱 그렇습니다.

빙고. 위키백과:신뢰할 수 있는 출처#예외적인 주장은 예외적인 출처를 요구합니다를 참고하세요. 해당 주장이 그 교수의 논문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출처에서도 언급되었다는 걸 입증하시기 바랍니다. -- Yelena Belova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7:23 (KST)답변
그럼 어느 부분이 예외적인 주장이며 어떤 부분의 교차검증을 원하는지 알려주세요. 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7:26 (KST)답변
주장 자체가 예외적인 거잖아요. 왜 자꾸 전체가 아니라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시는 지 모르겠네요. 아, 그리고 하나 더 있네요.

다시 말해서 본인의 새로운 이론이나 풀이, 독창적인 생각, 용어의 새로운 정의를 서술하거나 자기가 생각한 새로운 용어를 도입하는 행위 등을 하지 마십시오. 만약 당신이 스스로 어떤 주제에 대해 연구를 끝냈다면 연구 결과를 전문가의 검수를 받은 저널이나, 권위있는 온라인 매체 및 인쇄본 등의 경로로 출판해야 합니다. 당신의 연구가 그런 경로를 통해 출판되고 공인된 지식의 일부가 된다면 위키백과에서 다룰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검증이 되었고, 해당 편집자만의 의견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신뢰할 수 있는 출처에서 인용해서 소개해야 합니다.

-- Yelena Belova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7:31 (KST)답변

어느 주장인지 말해주세요. 그리고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교수의 저서면 출판되고 공인된 지식의 일부가 되었다고도 할 수 있는데요? 저기서 뭘 위반했죠 대체?

참, 그리고 부르주아지 말인데 http://www.yes24.com/Product/Goods/286572

사회적으로 지배계급이었고 경제적으로 대지주였던 고급 관료 및 귀족들은
밀려드는 자본주의 상품경제에 적응하면서 자본을 축적하기도 했으나, 몰락하
기도 했다. 문벌 관료, 귀족 출신의 자본가들은 대부분 치열한 시장 경쟁에 필요
한 경제 지식과 경영 기술을 지니지 못했기 때문에, 투자 결과가 부진하거나 혹
은 가산을 탕진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궁내부대신(1908)을 지낸 민병석
(閔丙奭)은 만여 석 지주였으나, “현대 경제가 어떤지 모르고 모회사 사장이니 모
회사 고문이니 하는 첩지에 누거만(累巨萬)의 손해를 입어” 결국 토지문서가 식
산은행에 저당잡히게 되었다. 그는 한말부터 노동력 조달 회사인 대한경부철도
역부회사(大韓京釜鐵道役夫會社, 1900)를 시작으로 상선회사(商船會社, 1903),
황무지 개간을 영업내용으로 하는 풍부회사(豊阜會社, 1904), 어채(魚採)를 목적
으로 하는 수산주식회사(水産株式會社, 1907) 설립에 참여했다. 
- 《근대 한국의 자본가들》 (푸른역사, 2014)

여기서도 구한말 자본가(부르주아지)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이제 부르주아지의 존재여부에 관한 설명은 따로 안해도 되겠죠? 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7:32 (KST)답변

네, 사용자님이 특정 주장에 입각하여 서술하였으므로, 더 이상 이야기 아닌 관리자의 판단에 맡겨야겠네요. 여기서 부르주아지가 어디서 나오나요. 대지주가 어떻게 부르주아지인가요. 그렇게 따지면 고려 권문세족, 위진남북조 시대 호족 전부 다 부르주아지인데. 님 개인의 역사를 보는 관점은 잘 이해했고요. 자료를 개인적인 기준으로 판단하신 님에 대해서는 독자 연구가 성립함을 알려드립니다. -- Yelena Belova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7:36 (KST)답변
자본주의 상품경제에 적응하면서 자본을 축적했다고 써져있잖아요? 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7:38 (KST)답변
자 이제, 교차검증도 했고 저명성은 http://minumsa.minumsa.com/book/5770/ 여기서 확인되었고 자비출판물도 아니며 편집 지침에 위배되지도 않죠? 그쪽이 원하는 판으로만 되돌리는 행위가 지속될시 저도 제가 원하는 판을 만들어 그 판만을 고집하겠습니다.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7:40 (KST)답변
멋대로 결정짓지 마시고요. 교차 검증도 아니고, 저명성도 만족 못해요. 이런 식으로 고집 피우시면 부분 차단에서 그냥 차단으로 올리겠습니다. 차단 사유는 독자 연구, 협업 정신 위반, 지속적인 되돌리기를 통한 편집 분쟁 유발, 문서 훼손, 중립적 시각 위반, 분란 조장의 편집, 위키백과에 대한 오해 위반, 비주류 이론 지침 위반이 이유가 될 수 있겠습니다. 특히, 양념파닭 님, 흑조 님, 뇸이 님, Whachadoin 님, Vudghk 님이 사용자님의 편집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여 이에 대해 지적을 하고 계신데도, 이를 수용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편집을 강행하는 행위는 "제가 원하는 판을 만들어 그 판만을 고집하겠습니다."라는 발언과 더불어 위키백과의 공동체 정신에도 위배되는 행동이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 Yelena Belova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7:50 (KST)답변
그 편집에 대해 무슨 지적을 하셨나요 그분들이? 제가 되돌린 판이 편집분쟁 이전 판이라는 근거는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EB%8C%80%ED%95%9C%EC%A0%9C%EA%B5%AD&oldid=26576876 이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제가 구조적 문제점 단락에 내용을 추가한 이후 양념파닭님이 되돌리면서 시작된 편집분쟁입니다 애초에. 그리고 저명성이랑 교차검증 만족 못하면 왜 그런지 설명을 해주세요. 그냥 마음에 안든다 이거잖아요. 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7:54 (KST)답변
(편집 충돌) 본 토론은 현재 소모전으로 판단되며, 더 이상의 토론 참여는 무의미하다 판단됩니다. --양념파닭 (토론 · 기여) 2020년 5월 23일 (토) 17:54 (KST)답변
토론 참여도 거부하고, 편집분쟁 이전 판으로 되돌리자니까 그것도 거부하시고, 어쩌자는건지 모르겠습니다. 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7:56 (KST)답변
이미 지침 링크랑 다 드린걸로 아는데도 끝까지 고집을 피우시는데 정상적인 토론이 가능할리가요. --양념파닭 (토론 · 기여) 2020년 5월 23일 (토) 17:56 (KST)답변
지침 어디를 위반했는지부터 설명해주세요. 무슨 고집을 피웠는지도요. 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7:58 (KST)답변
지침 어디를 위반했는지에 대해 계속 설명해달라고 하시는데, 토론 역사 및 해당 편집분쟁 관련 토론 항목 처음부터 쭉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더 이상 이에 대해 설명을 덧붙이지 않겠습니다. 또한 해당 편집 분쟁 역시 사용자의 정상적인 기여라고 더 이상 볼 수 없으므로, 이 이후 편집 되돌리기는 문서 훼손 및 협업 정신 위반이 성립함을 알려드립니다. -- Yelena Belova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8:02 (KST)답변
아니 지침을 위반한 바가 없는데 명확한 설명이 결여된채 읽어보라고만 강요하면 어떡합니까? 지침 위반에 대한 입증책임은 그쪽에게 있는거잖아요. 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8:07 (KST)답변

200w200w 님의 판[편집]

@양념파닭, 흑조, 뇸이, 마요찌, Vudghk, Whachadoin, 200w200w:

해당 판에 대해 좀 더 논의를 해보도록 하죠. 200w200w 님이 계속 근거 없이 "편집 분쟁 이전의 판"이라고 주장하시면서 편집을 되돌리기 하고 계신데, 해당 판의 유지가 적절한지 편집 분쟁과 무관하게 논의해보고자 합니다. 참고로, 200w200w 님은 이전에 광무개혁과 단발령의 내용이 중복된다는 이유로 해당 내용의 삭제를 요청하셨는데, 현재 판을 되돌리기 하시면서 자신의 주장과 모순되는 편집을 이어가고 계십니다. -- Yelena Belova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7:57 (KST)답변

중복되는건 둘째치고 그쪽이 제 편집을 수용못하니까 편집분쟁이 최초로 일어나기 전에 그 판으로 되돌리자는건데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EB%8C%80%ED%95%9C%EC%A0%9C%EA%B5%AD&oldid=26576876 편집분쟁이 일어나기 전 바로 전 판은 이 판 아닌지요? 뭐가 문제죠? -- 이 의견을 2020년 5월 23일 (토) 17:59 (KST)에 작성한 사용자는 200w200w (토론)이나, 서명을 남기지 않아 다른 사용자가 추가하였습니다. 의견을 남기실 때에는 항상 의견 끝에 띄어쓰기를 하고 --~~~~를 입력해 주세요. 저장할 때 자동으로 서명이 됩니다.
죄송합니다. 지금 당장은 개인사정으로 토론 참여가 불가능합니다.--𝕃𝕖𝕕𝕒 2020년 5월 23일 (토) 18:01 (KST)답변
(편집 충돌) 현재 분쟁 상태인 부분은 이 편집으로 보이며 분쟁 이전 판은 이 판의 바로 이전이 되어야 한다고 판단됩니다. --양념파닭 (토론 · 기여) 2020년 5월 23일 (토) 18:01 (KST)답변
(편집 충돌) 편집 분쟁과 관련없는 얘기 죄송하지만, 저는 왜 호출하신 건가요? — Taeri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8:02 (KST)답변
사용자님께서 200w200w 님이 하신 대한제국 문서에 대한 편집을 되돌리기하셔서, 해당 되돌리기에 대한 의견을 듣고자 호출하였습니다. -- Yelena Belova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8:04 (KST)답변
분쟁이 처음 촉발된 판은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EB%8C%80%ED%95%9C%EC%A0%9C%EA%B5%AD&type=revision&diff=26581999&oldid=26581946 이 편집으로 보입니다.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8:05 (KST)답변
(편집 충돌) 편집 분쟁과 관련없는 얘기 죄송하지만22, 저는 오타? 고친 걸 200w200w님이 되돌리시길래 되돌렸습니다. — Taeri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8:07 (KST)답변
그 편집은 현재 귀하께서 고집하는 편집이 아니므로 분쟁 상태라고 볼 수 없습니다. --양념파닭 (토론 · 기여) 2020년 5월 23일 (토) 18:08 (KST)답변
그 편집은 제가 구조적문제 단락에서 문제시되는 서술을 추가하자 그쪽이 되돌린 것을 뜻하는걸로 편집분쟁의 시발점이 맞습니다.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8:09 (KST)답변
시발점은 중요치 않습니다. 현재 진행형이 중요하죠. --양념파닭 (토론 · 기여) 2020년 5월 23일 (토) 18:10 (KST)답변
???? 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8:11 (KST)답변
분쟁 이전 판으로 되돌리는 것은 현재 진행 중인 분쟁을 중단하고 토론을 통해 결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따라서, 현재 진행 중인 분쟁이 아닌 해당 판 이전으로 되돌릴 이유가 없는 것이죠. --양념파닭 (토론 · 기여) 2020년 5월 23일 (토) 18:12 (KST)답변
참고로 구조적문제 단락 뿐만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도 상당한 편집분쟁이 진행중입니다. 이해할수 없는 같이보기 삭제 등등요. 이 경우 최초 분쟁시점을 기준으로 하여 되돌리는게 맞다고 판단됩니다. 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8:15 (KST)답변
지금 위에서 토론 중인 것은 이 편집을 두고 하는 것이 아니었나요? 적어도 저는 그랬는데요. --양념파닭 (토론 · 기여) 2020년 5월 23일 (토) 18:16 (KST)답변
그 부분이 끝나면 나중에 다른 부분도 토론해야 합니다. 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8:17 (KST)답변

{{인용문|구조적 문제점 단락에 관한 심각한 편집분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맞아요. 이것만 두고 이야기를 시작하자는 건 님이었죠. 그리고 그 이후 불필요한 같이 보기 삭제, 광무개혁 및 단발령 내용 중복 삭제 되돌리기 등, 백:편집 지침에 맞는 것까지 전부 되돌리기 하신 게 200w 님이고요. -- Yelena Belova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8:18 (KST)답변

구조적문제점 단락 외에서도 분쟁이 일어나는 바, 최초 분쟁발생시점 이전으로 되돌리는게 맞죠.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8:23 (KST)답변
님께서 스스로 편집 분쟁이 일어난다고 보는 지점이 구조적 문제에 대한 것이었고, 이후 편집들은 해당 편집 분쟁과 무관하게 이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용자님은 "특정 사용자가 좋아하는 판"이라는 개인적인 기준을 내세우셔서 전체적으로 문서를 되돌리기 하셨는데, 이것은 사용자님 개인의 주관적 판단일 뿐이므로, 핵심 문제에서 벗어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다른 편집 분쟁이 발생하고 있다는 식으로 호도하는 것은 지양해야 할 사항입니다. 현재 핵심 분쟁 사항은 구조적 문제이므로, 이에 대한 편집 갈등이 편집 분쟁으로 보는 것이 적합할 것입니다. -- Yelena Belova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8:30 (KST)답변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만약에 사용자님이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시려면, 위 편집분쟁에서 토론을 처음 개설하신 이유와 현재 여기서 논의하는 편집 분쟁의 맥락이 같아야 할 것입니다. 사용자님은 아무런 근거없이 구조적 문제에 대한 되돌리기를 문서 전체에 대한 되돌리기로 바꾸셨는데, 그것이 특정 사용자가 선호하는 판으로의 회귀라는 주장은 이미 여러 사용자들의 편집을 거쳐 타당하지 않음이 입증되었습니다. 즉, 사용자님이 현재 하고 계신 편집 되돌리기는 사용자님이 처음 주장하신 편집 분쟁과 전혀 무관한 별도의 편집이라는 겁니다 -- Yelena Belova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8:33 (KST)답변
특정 사용자가 좋아하는 판이 아니라 특정 사용자가 원하는 판이고요 분쟁이 났을 때 최초 분쟁 이전으로 되돌려놓고 토론하는 게 보통이고. 분쟁 최초발생시점은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EB%8C%80%ED%95%9C%EC%A0%9C%EA%B5%AD&type=revision&diff=26581999&oldid=26581946 이 편집이며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EB%8C%80%ED%95%9C%EC%A0%9C%EA%B5%AD&offset=20200523065049%7C26596597&action=history 여기서 알 수있듯 제가 편집분쟁중인 내용 외에 다른 내용들을 편집했는데 웬디러비님이 끝까지 자기 편집 고집한다며 차단 신청하겠다고 한 바 있습니다. 애초에 편집분쟁 이외의 편집을 되돌리는 행위는 그쪽이 먼저 했습니다. 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8:36 (KST)답변
즉 아무런 근거없이 먼저 편집분쟁중인 내용 단락 외의 기여분을 지침 읽고오라며 일방적으로 되돌린건 그쪽이라는겁니다.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8:37 (KST)답변
뭐 구조적 문제 단락 토론이 끝나면 다른 문제도 토론 개설해보도록 하겠습니다. 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8:44 (KST)답변
그건 이미 본인이 포기 선언 하지 않았습니까? --양념파닭 (토론 · 기여) 2020년 5월 23일 (토) 18:45 (KST)답변
그냥 좀 더 해보고 결정하겠습니다. 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8:47 (KST)답변
저는 분명 해당 편집을 할 때, 편집 요약을 통해 해당 문서를 어떻게 옮기는 지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또한 편집 분쟁이라는 건 당연히 구조적 문제를 말씀하시는 것일텐데, 이에 대해서는 양념파닭 님께서 토론을 여심으로써 무엇이 지침 위반이었는지 명백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근거가 없다는 주장은 결코 타당하지 않습니다. 제가 그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고 하시겠지만, 저는 분명 "의견 상동", 위와 의견이 같음을 통해 먼저 근거를 제시한 바 있고, 이는 위키백과에서 기본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편집 분쟁 시점에 대해 저, 양념파닭 님을 제외한 다른 사용자들이 (흑조 님 제외) 사용자님에게 "토론을 거치지 않았다, 판은 웬디러비 님의 판이 이전 판이다"라고 하는 것은 사용자님의 주장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입니다. 이렇게까지 많은 사용자들이 사용자님의 편집, 주장,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그렇게 말을 하시는데, 이를 무시하고 계속 자기의 뜻을 밀어붙이는 것은 위키백과 공동체 정신 위반입니다. 단순히 지침을 위반한 것을 너머,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사용자님의 잘못을 알려주고 있는데 본인의 길을 가시겠다고 이야기하시는 것은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시겠다는 뜻이지요. 이런 행동은 위키백과에서 권장하는 행동이 아닙니다. -- Yelena Belova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8:50 (KST)답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토론을 개설하시겠다고 하시는데, 위의 토론에서 보여주신 것처럼 그냥 개인적인 주장을 펼치기 위해 활용하실거면, 여는 것보다 열지 않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어차피 다시 또 소모전으로 갈 양상일 거니까요. 그리고 다른 편집 분쟁이라고 하셨는데, 그건 님께서 위키백과의 편집 방식 및 지침, 원칙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본인 스스로 광무개혁과 단발령의 문서가 중복되므로 삭제해야 한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 그걸 열심히 되돌리고 계신 이유의 타당성도 입증이 안 되었고요. 이런 사용자와 토론을 했을 때, 얼마나 생산적인 토론이 오갈 지에 대해 저는 의문입니다. -- Yelena Belova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8:50 (KST)답변
정확히 어느 부분이 어느 지침 문서의 위반인지 설명을 해주셔야지 양념파닭님이 말씀하신 그 부분도 제 기여를 지울만한 근거는 없어요. 협업 운운할거면 최소한 그분들, 토론이라도 와주셔야죠 단순히 다수의견이라고 소수 의견을 묵살하고 특정 편집을 고집하는걸 협업이라 부르지는 않아요. 그리고 이의를 제기할거면 그 학설이 잘못된 논리적인 근거를 제시해야지, 무슨 지침 위반이라고 다 깔아뭉게시려고 하잖아요. 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8:52 (KST)답변
인신공격성 발언부터 자제해주시고 어떤 지침을 어떻게 위반했는지, 그 학설이 왜 공신력이 없는지 설득력있게 주장을 해야 내가 납득하든 말든 하죠. 님이 하는 말의 골자는 그냥 다수의견이니까 따라라, 지침위반이니까 적지마라 식이잖아요 안그래요? 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8:53 (KST)답변
인신 공격은 한 적 없습니다만. 솔직히 해당 주장에 대해 객관적으로 평가를 해보셨나요? -- 2020년 5월 23일 (토) 18:55 (KST)
무슨 평가요.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8:56 (KST)답변

특정 주장[편집]

사용자님께서, 그 교수의 주장을 가지고 오신 근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해당 교수나 해당 논문, 해당 논문을 발간한 출판사 등...... 해당 교수의 논문을 고집하실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더욱이 그 이후 가지고 온 출처 역시 "대한제국을 자본주의의 관점"에서 바라본 출처들이었고요. 이런 주장을 펼치기 위해서는 그 이외의 주장이 같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은 굳이 위키백과가 아니더라도 알고 계셨을 겁니다. 처음에 사용자님이 해당 주장을 게재했을 때 내세웠던 하버드 대학교나 서울대학교 박사학위가 해당 교수의 신뢰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 사용자님은 위키백과가 아니었더라도 알 수 있었을 겁니다. 논문을 표절했다, 박사 학위를 위조했다 등, 그런 논란이 불거지는 게 일상적인 대한민국에서, 그걸 신뢰도의 바탕으로 제시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을 본인이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서울대가 역사학 기준의 표준도 아니고, 하버드대 역시 대학이 명성이 높을 뿐이죠. 거기 있는 모든 문서들이 신뢰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학공서열제도 아니고, 그런 주장을 펼치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대한제국을 자본주의적 시각"으로 바라본 주장에 대해 왜 고집을 하고 계시냐 이 말입니다. 대한제국이 근대국가로 들어갔다 마느냐가 이미 핵심 쟁점이라고 이야기하셨습니다. 님의 주장대로라면, 그 자본주의적 시각은 핵심 쟁점에 대한 주장 중 일부일 뿐입니다. 그것이 다른 주장들을 모두 제외하고 띄어지거나 부각되어야 할 정도로 중요도가 있나요? -- Yelena Belova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9:07 (KST)답변

그 이외의 주장이라 함은 무엇을 뜻하는건가요. 위키백과 편집 지침 내에서 충분히 공신력 있는 출처로 판단된 상황이고 그게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쪽이 반론을 하셔야죠. 저는 그 저서를 인용한 것 밖에 한게 없습니다. 내용같은걸 문제 삼고싶으면 그쪽이 타당성 있는 반론을 제기하세요. 처음부터 끝까지 기승전결 지침 위반이라고만 하고 계씨잖아요. 해당 교수가 논문을 표절했으며 박사학위를 위조한것 같으면 그쪽이 찾아서 올리세요. 굳이 출판까지 된 책에 쓰여져 있는 내용을 자기 마음에 안든다는 이유로 지우려 하지 마시고요. 그거, 반달입니다. 위키백과가 언제부터 교수의 저서나 논문도 등재하지 못하는 위키가 되어버렸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같은 잣대로 대한제국 문서에 확인되지 않은 출처들,출처랍시고 뉴스 링크 단것들 모두 제거해도 되는겁니까? 보통 출처의 공신력을 논할 때 해당 논문이나 저서를 쓴 학자의 학위,전문성을 기준으로 삼아요. 일개 개인이 쓴 글하고 해당 분야 전문가가 쓴 글하고 공신력이 비교가 안되잖아요. 핵심 쟁점 중 일부라고 생각하면 그쪽이 다른 학자 논문이나 저서를 가지고와서 다른 시각을 기여하면 될 일이예요. 굳이 자신이 보기 아니꼽다는 이유로 타인의 기여를 묵사발 내버리는것보다요. 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9:12 (KST)답변
본인, 그 교수와 친분이라도 있나요? 이렇게까지 그 주장에 대해 고집하는 이유를 이야기해보시죠. -- Yelena Belova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9:25 (KST)답변
딱히 친분은 없고요. 그냥 타 사용자가 여느 학설 서술하는거랑 똑같아요. 그냥 그 학설이 서적에 있길래 추가해본거예요.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9:30 (KST)답변
그리고 제가 되물어보는데 그쪽, 그 교수랑 악연이라도 있나요? 이렇게까지 등재 방해하는 이유를 이야기 해보시죠.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9:30 (KST)답변
그 교수를 알았더라면 당장 찾아가서 해당 출판물을 자비로 출판했는지 물어봤을 겁니다. 다른 것 없어요. 사용자님이 처음 오신 위키백과란 세계의 지침과 정책에 따라 님의 행동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거죠. 그리고 그 질문, 한 번 양념파닭님이나 다른 분에게도 해보시지 그러셔요. 아니, 그냥 자기 편집에 대해 현재 님의 판을 되돌리는 모든 분들께 똑같이 질문하시면 되겠네요. 내 판에 대해 이렇게 등재 방해할 이유가 있냐고. -- Yelena Belova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9:36 (KST)답변
자비 출판물 아니니까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그런식의 질문, 그쪽이 먼저 하셨으니 저도 되물어본겁니다. 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9:38 (KST)답변
무슨 지침을 어떻게 위반했는지 설득력 있게 주장한 사람, 단 한명도 없습니다. 제가 보기엔 말이죠.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9:39 (KST)답변
그러니까요. 그건 님의 개인적인 생각이고요. 이걸 편집 분쟁으로 몰고 가실 명확한 근거는 없습니다. 본인이 이 글 적고 싶으시면, 보고서나 논문에 올리시면 돼요. 위키백과는 개인적인 학설이나 주장 적는 곳도 아니고, 더더욱이 남들이 아니라고 몇 번이고 이야기하는데도 본인의 편집을 기여코 올리면서 편집 분쟁을 유도하는 사용자를 좋게 보는 곳도 아니니까요. 위키백과의 지침은 남을 설득하라고 만든게 아니라 따르라고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용자님이 지침을 위반했으면, 그것에 대해 타당성을 입증하라고 요구할 게 아니라 뭐가 잘못되었는지 계속 숙고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거죠. 지침 틀 가장 위에 보면 써있잖아요. "이것은 모든 사용자들이 일반적으로 따라야 하는 널리 인정된 기준입니다."라고. -- Yelena Belova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9:45 (KST)답변
편집 분쟁 맞고요. 위키에서 논문이나 책에 쓰여져 있는 부분을 출처로 인용하지 말라는 규정이나 지침은 없어요. 그리고 다수의 의견이라도 설득력이랑 주장의 개연성이 있어야 먹히지 논리성이 없는 상태에서 다수 의견이랍시고 타자에게 무조건 수용하라는게 올바른 행동인가요? 애초에 지침 위반이니 뭐니 한 사람들 중 제가 정확히 어떤 지침을 위반했는지 타당성 있게 설명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는데 왜 그 주장들을 저더러 수용하라고 합니까?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9:47 (KST)답변
그리고 지침을 위반했다고 사료되는게 없는데 굳이 "이것은 모든 사용자들이 일반적으로 따라야 하는 널리 인정된 기준입니다." 이 문장을 인용하시는 이유가 뭔지? 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9:48 (KST)답변
그쪽이 강력하게 주장하시는 그 지침, 한번 더 인용하겠습니다. 대체 제가 주장하는 서술이 어떤 부분이 자격 미달인지 다시한번 정확히 설명 바라겠습니다.
신뢰할 수 있는 출판물은 사실의 검증과 편집상 감독의 체계가 확립되어 있어야 합니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수학자라도 생물학에는 신뢰할만한 출처는 아닐 수 있습니 
다. 저자는 제2의 연구분야에서 전문적 지식을 갖고 있음을 인정받는다면 그 전공분야 외에도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본문의 내용은 가장 신뢰할 수 있고 적절한 출판된 출처를 사용하여야 하며, 위키백과:중립적 시각에 따라 모든 대다수의 주장과 주목받는 소수의 주장을 포함하여야 합니다.
문서는 신뢰할 수 있는, 사실 확인과 정확성에 평판 있는 제3자의 출간된 근거에 의존하여야 합니다. 출처는 주장에 적합해야 합니다. 즉, 대단한 주장은 대단한 출처 
가 필요합니다. 위키백과의 모든 문서들은 중립적 시각에 충실하여야 하고, 신뢰할만한 출처에 공표된 다수의 관점과 주요한 소수의 관점을 공평하게 제시해야 합니다.[1]
대체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출처는 전문가 검토(peer review)를 거친 학술지, 대학출판부에서 출간된 도서, 대학교 수준의 교과서, 그리고 평판 있는 출판사에서 출간 된 잡지, 정기간행물, 도서입니다. 통상적으로 사실의 확인, 법적인 문제의 검토, 특정한 일에 대한 증거와 논의를 세밀하게 검토를 한 출처일수록 더욱 신뢰할 수 있습니다.

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19:59 (KST)답변

http://minumsa.com/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20:00 (KST)답변

그리고 위키백과에 신입 유저는 신규서술이 강력하게 제한된다는 식의 암묵적 룰이 있는건 아니죠? 지금까지의 편집분쟁 양태를 보니 좀 의심되네요. 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20:06 (KST)답변

그러면 편집을 하지 않으시면 되겠네요. 지침도 안 따르겠다, 타 사용자 의견도 무시하겠다, 자기 편집은 옳다. 님께서는 위에서 설명한 것 안 보셨나봐요. 정확히 어떤 지침을 위반했는지는 설명했지만, 님께서 타당성, 개연성을 내세워서 그걸 거부했는데, 말했잖아요. 그런 것 필요 없다고요. 지침은 무조건 따라야 하고, 이걸 바꾸고 싶으시면 그 틀에서 이야기한 대로 총의를 거쳐야 한다고요. 지침에 대해 님에게 납득이 안 되고, 님이 아무리 옳다고 해도, 딱 써 있잖아요. 이것은 모든 사용자들이 일반적으로 따라야 한다고요. 구체적인 것에 대해서는 이미 양념파닭 님이 서술하셨고요. 그것에 대해 설득력이랑 주장의 개연성을 논의하는데, 그걸 못 받아들이신 건 님이에요. 님 하나 때문에 대한제국 편집 분쟁이 수십 번 일어났고, 지금도 님은 그걸 되돌리기 하고 계세요. 님은 남들에게 정상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남들에게 자기를 존중해달라고 요구하는데, 반대로 그렇게 함으로써 님은 님에게 지적한 사람들 모두를 존중하지 않은 거에요. 님 말대로 토론에 참여했고, 의견 제시했고, 출처까지 제시한 이 마당에 뭘 더 요구하고, 그것에 대해 반박하고, 아니라고 하고......... 그러면서 편집 분쟁을 주도하는데 책임은 양념파닭 님과 저에게 떠넘기시고....... 님이 지침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 없이 시작한 편집으로 인해, 3일 동안 해당 문서는 발전 없이 계속 무의미하게 되돌려지고 있고, 주장인지 논리인지도 모르는, 그리고 그것에 대해 교차검증도 대충 하시는 님의 편집은 더 이상 편집이 아니죠. 그냥 의견 투고 그거 뿐이에요. 이게 트롤이나 반달러, 악의적 아이피 사용자들이 하는 행동이랑 어떤 차이가 있죠? 본인은 출처에 근거하고 있다? 트롤들도 그렇게 많이 해요. 본인이 그런 사용자들과 다르다는 걸 보여주시려면, 아무리 다른 사용자들의 말이 수용이 안 되어도 내려놓을 줄 아셔야죠. 저는 왜 수용 안 하냐고요? 님께서 처음에 광무개혁하고 단발령이 문서 복붙한 거라고 하셔서 그거 의견 수용해서 삭제하고 영어판 번역으로 고쳐놨어요. 정작 님은 그걸 계속 되돌리기 하고 계시지만요. 그리고 양념파닭 님이 제시하신 판에 대해서도 수긍했어요. 그것마저 님과는 확실히 대조적이죠. 앞으로 이런 식으로 계속 타 사용자들을 무시하시면서 편집하시고, 편집 전쟁까지 선언하셨으니 말씀 드릴게요. 님은 그냥 자기 주장이 맞다고 말씀하시는 분이지, 문서 편집을 하러 오신게 아니라고 판단하겠습니다. 저 혼자서 님과 이렇게 편집 분쟁을 일으켰다면, 저 역시 님과 다를 바가 없겠지만 다른 사용자들도 일제히 나서서 사용자님이 잘못 되었다고 이야기하는 점, 그리고 그 잘못에 대해 저와 양념파닭 님은 원칙과 지침까지 보여주면서 사용자님과 협업하려고 시도했다는 점, 그리고 제시한 원칙에 대해 양념파닭님께서 님이 주장하는 타당성에 기초하여 설명하려고 했다는 점 이것만 보더라도 저희는 이미 할만큼 했습니다. 이제 여기서 뭘 더 요구하거나, 뭘 더 바라지는 않기를 빕니다.-- Yelena Belova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20:13 (KST)답변
1.지침을 위반한적이 없습니다. 2. 타 사용자 의견은 주장에 타당성이 보이면 바로 수용합니다. 그런데 지침 위반이라며 되돌리는게 대부분입니다. 정확히 어느 부분이 위반인지 밝히지도 않으면서 말이죠.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따라야 한다고 되어있는 문장은 위키백과 편집 지침이며 이 대한제국 문서에 교수의 저서를 등재하면 안되는가랑 하등 아무런 관련도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주장하는 타당성에 기초한 설명은 눈씻고 찾아봐도, 위에 토론 목록을 훑어봐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 고려해 주시고요. 먼저 편집 분쟁 외 단락을 제가 수정했는데도 지침을 읽어오라며 무작정 되돌린건 그쪽입니다. 그리고 위키백과 지침에 다수가 원하는 서술이면 무조건 등재하고, 다수가 원하지 않는 서술이면 등재하지 말라는 지침도 있나요? 아니면 위키백과 전통의 암묵의 룰??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을 못하겠습니다. 애초에 협업이니 뭐니 할거면 어느 부분이 어떻게 지침 위반인지부터 설명하세요. 다수의 논리에 편승해 제 주장을 찍어누르려고 하지 마시고요. 주장에 논리성이 있어야지 이거야 원....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20:19 (KST)답변
다수의 논리라..... 글쎄요. 위키백과가 다수결은 아니지만, 총의는 존재하죠. 그리고 제가 보기에 지금 사용자님의 문서에 대한 건 "총의"를 바탕으로 한 것이네요. 지침은 "총의"에 의해 작성된 것이니까요. 즉, 총의에 따른 서술을 권장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네요. 총의의 결과가 지침, 원칙, 정책 등등이니까요. 그러면 안녕히. 저는 사용자님과의 토론을 이어가지 않겠습니다. 저도 더 이상 사용자님의 토론에 대답할 이유를 못 찾겠네요. 지난 3일 간의 사용자님의 편집에서 기존 사용자들과 일부 신규 사용자들이 사용자님의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사용자님의 잘못된 문서 편집 방향을 고치려고 노력했다는 점만 알아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뭐, 사용자님은 계속 압제니 찍어누르려 하네 이런 식으로 마지막까지 해당 사용자들의 행동과 편집을 호도하고 왜곡하고 계시지만요. -- Yelena Belova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20:25 (KST)답변
논리학적으로 제가 A라는 주장을 들고왔고 그에 대한 근거, 출처까지 밝혔으면 반박하는쪽이 이러이러한 근거로 이러이러한 주장은 틀렸다고 얘기해야지, 반박측이 다수가 당신의 주장을 좋아하지 않으므로 당신은 더 이상 주장을 전개하면 안된다. 이런식으로 논의가 흘러가잖아요. 이게 정상적인 상황이냐구요. 그니까 총의고 뭐고 제 서술 되돌렸던 분들이 토론 참여조차 안하시는데 저보고 뭘 어쩌자는겁니까 대체. 그리고 어느게 지침 위반인지는 아직도 못찾았나요? 계속 지침 위반이라면서 왜 주장만하고 실질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이유는 뭡니까?토론과 설득을 거치지 않고 특정 사용자의 편집을 계속 되돌리는 행위, 편집분쟁외 단락의 편집도 지침 읽어라,차단 신청했다. 이런식으로 협박식 발언을 하면서 되돌리는 행위,다수의 의견이라는 이유로 주장 전개조차 하지 말라고 강요하는 행위등을 압제고 찍어누르려고 하는걸로 해석하는게 잘못됬나요?그럼 제 입장에서 대체 이 상황을 뭘로 받아들여야 하는데요?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20:31 (KST)답변
그래서, 토론은 안 와주실건가요...?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3일 (토) 21:19 (KST)답변

정리를 하고 의견을 내보자면요, 원래 편집 분쟁이 문서 내부의 전체적으로 번졌을 때에는 '편집 분쟁이 일어난 원인 이전의 편집' 상태로 되돌린 뒤 어떤 부분을 살리고, 어떤 부분이 위키백과의 추구 가치와 맞지 않는지 결정하는 것입니다. 원래대로라면 편집 분쟁 이전의 상태에서 특정 부분에 대해 이것이 대한제국이라는 문서를 설명하는 데 적합하냐를 가려내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따라서, 웬디러비님과 양념파닭님 등 다른 사용자분들의 편집이 현재로써는 옳다고 여겨집니다. 편집 분쟁이 일어나기 이전, 그러니까 다시 말해 그 원인이 된 200w200w님(이전의 IP를 포함해)의 편집 이전의 상태로 되돌린 뒤, 내용에 대한 토론을 진행하는 것이 맞다 생각됩니다.

여기부터는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1897년 대한제국 수립 선포 이후 제도 및 정치적 개혁을 시도했고, 자주적 국가가 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1905년 을사조약 이후 일본에게 외교권이 박탈되었고, 이후 일본과 체결한 여러 조약으로 사실상 일본의 보호국으로 전락하였다. 1910년 8월 29일 한일 병합 조약으로, 대한제국은 일본 제국의 식민지가 되어 멸망하였다. - 편집 분쟁 이전의 내용

이 내용을 굳이 날리고 대한의 이름이 이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을 넣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하나의 내용만을 넣을 때에 그러하고, 사실은 두 내용이 모두 들어가는 것이 개요에 낫다고 여겨집니다. 1905년 을사조약과 1910년 한일병탄의 내용을 굳이 뺄 필요는 없는 것이 맞다 여겨집니다.

청나라는 반란 진압을 도와준 것을 핑계로 삼아 임오군란 이후부터 일방적으로 조선을 제후국으로 청나라를 종주국으로 선포하였다. 하지만 조선의 지식인들은 이에 대해서 반발하였고 이는 "대한제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 편집 분쟁 이후의 내용

해당 내용에는 백과사전에 가장 필요한 '어떤 지식인들이 이렇게 주장했는지, 그리고 레퍼런스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가 빠져 있네요.

그리고 "일본의 영향력 강화" 문단은 굳이 들어낼 이유가 보이지 않습니다. '광무개혁과 근대화 추진' 문단과 양립할 수 없는 것도 아니며, 서북철도국 설치나 한성전기회사 설치 등의 내용을 굳이 들어낼 필요도 없다고 여겨집니다. 특히 사견이 들어간 부분도 적잖다고 여겨집니다.

여러 정책은 경제, 교육, 시설 면에서 근대화와 남에게 보호받거나 간섭받지 않고 자기 일을 스스로 처리하게끔 국력을 증강하려는 노력이었으나 재정집중’을 포기한 채로 국가재원의 이속과 백동화 발행으로 황실재정을 확충함으로써 정부재정을 침해하였기 때문에 근대적 재정국가 건설에 실패했다.또 특권을 전제로한 봉건성을 탈피하지 못함으로써 그들의 지향을 현실화시키는데 성공할 수 없었다.

이런 여러 개혁 정책은 복고주의 성향과 집권층의 보수 성향과 개혁의 미미한 성과와 열강 세력에 간섭받아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근본적으로 황제와 측근들 중심의 비상 수단과 황제의 권위에 의존한 개혁이었다. 개혁은 지도자의 역량과 뒷받침 해주는 제도, 그리고 기본적인 국가의 저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시이다.

물론 모든 내용을 들어내는 것보다는 단발령 등의 내용이 들어갈 만은 하다고 보여집니다. 다만 그것을 기존 문서 내용과의 양립 대신, 기존의 멀쩡한 문서 내용을 삭제하고 그 대신 채워둔 것은 큰 유감을 표합니다. 현재 문서가 자꾸 되돌려지는 이유는 대한제국을 필요하는 데 필수적인 다른 내용을 삭제하고 해당 내용을 넣기 때문입니다. 위키백과는 인쇄로 찍혀 나오는 백과사전과 달리 지면에 제약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부득이 해당 편집을 되돌리고자 하니, 현재 존재하는 내용과 양립할 수 있도록 편집을 부탁드립니다.--trainholic (T, C) 2020년 5월 24일 (일) 01:23 (KST)답변

여하튼 문서 내용이 되돌려지는 것이 @200w200w:님께서는 기분이 언짢을 수도 있으시겠지만, 다른 사용자들을 최대한 선의로 봐 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미 있는 완성된 내용을 지우고 나의 추구하는 가치와 내용으로 채우는 대신, 다른 사용자들이 편집한 내용과 가치를 존중하셔서 더욱 나은 문서를 만들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trainholic (T, C) 2020년 5월 24일 (일) 01:25 (KST)답변

1. 원래 제가 되돌리려던 판이 제가 이 문서에 손을 대기 전의 상태의 판입니다. 나쁘게 보지는 않겠습니다만,편집기록을 다시한번 살펴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2.웬디러비님과 양념파닭님이 되돌리길 원하시는 판에는 편집분쟁중인 구조적 문제점 단락 이외에 제가 서술한 부분을 지침을 읽고오라며 차단 신청에 넣겠다고 협박성 발언을 한것은 물론 제 기여분을 무단으로 되돌린 것은 어떻게 봐야하나요?편집분쟁중인 내용 밖에 제가 서술한 기여분도 복구하는게 옳다고 생각됩니다. 3.Trainholic님의 의견을 대폭 수용하여 서술고정 시점의 판을 수정토록 하겠습니다만, 지금 토론거리가 되고있는 구조적 문제점 단락에 대해서는 의견이 없으신가요?4.현재 문서가 되돌려지는 이유는 서술고정 시점에 대한 양자간의 견해차이로 발발했다고 사료됩니다. 이에 대해 의견을 묻고 싶습니다. 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4일 (일) 01:47 (KST)답변
즉 위에 얘기한 단발령,광무개혁,국호 등의 서술상 문제는 지금 토론중인 내용과 무관하며 대한제국 서술이 되돌려지는 이유는 저와 웬디러비님 양자간의 서술시점 고정에 대한 견해 차이 때문이라는 겁니다.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4일 (일) 01:56 (KST)답변
거짓말하고 계시네요. 수용하겠다고 했으면서, 결국 원점으로 되돌아온 이 토론....... 이제는 중재안까지...... 좋습니다. 더 이상 님을 신뢰할 수 없겠네요. 타 사용자에게 수용했다고 해놓고 옛날 판 짜깁기하는 걸 보니 결국 님 뜻대로 하겠다는 거잖아요. 해당 중재안, 분명히 저와 양념파닭 님의 판에서 시작하라는 거였습니다. 저와 양념파닭 님의 판이 꼴도 보기 싫으시면 아예 님이 새로운 문서를 만드세요. 그리고 바뀐 모습 1도 보여주지 않으시면서 토론 중에 중재안 "수용했다" "받아들이겠다" 그런 말 꺼내지 마세요. 저도 참는 데에 한계가 있고, 이 정도면 그냥 편집 분쟁이 아니라 한 개인 사용자에 의해 남들이 휘둘리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trainholic 님께도 말씀 드립니다. 이 사용자가 과거 판을 짜깁기해서 올리는 행위, 이는 양념파닭 님과 저뿐만 아니라 사용자님도 무시하는 행위로 비쳐집니다. 즉, 이 사용자는 중재안을 받아들이는 척하면서, 문서 기여를 한답시고 과거 판을 짜깁기했으므로 사용자들을 기만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저는 해당 사용자가 중재안을 수용하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해당 사용자가 편집 분쟁을 이어가는 것으로 보겠습니다. 해당 사용자가 진정으로 중재안을 수용하려면 과거 판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리셔야 할 겁니다. -- Yelena Belova (토론) 2020년 5월 24일 (일) 03:36 (KST)답변

1897년 대한제국 수립 선포 이후 제도 및 정치적 개혁을 시도했고, 자주적 국가가 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1905년 을사조약 이후 일본에게 외교권이 박탈되었고, 이후 일본과 체결한 여러 조약으로 사실상 일본의 보호국으로 전락하였다. 1910년 8월 29일 한일 병합 조약으로, 대한제국은 일본 제국의 식민지가 되어 멸망하였다. - 편집 분쟁 이전의 내용

이 내용을 굳이 날리고 대한의 이름이 이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을 넣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하나의 내용만을 넣을 때에 그러하고, 사실은 두 내용이 모두 들어가는 것이 개요에 낫다고 여겨집니다. 1905년 을사조약과 1910년 한일병탄의 내용을 굳이 뺄 필요는 없는 것이 맞다 여겨집니다. - 당장 위에서....

그런데 초장부터 이래버리시면 재 중재안을 읽으신 게 맞는건가요...--trainholic (T, C) 2020년 5월 24일 (일) 03:42 (KST)답변

덧붙이자면, 최소한 국가의 문서에서는 언제 수립되었고, 언제 국권이 피탈되었으며, 언제 국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는지에 대한 수치와 상황을 개요에 우선시해서 넣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대한의 이름이 후대에 이어지는 것은 부차적인 이야기고요. 당장 청나라신성로마제국도 개요가 길지언정 몇년도에 어떤 사건으로 생겨나고 사라졌는지에 대한 수치가 나와 있습니다. 당장 그러한 개요부터 기존의 선례를 지켜주시고 나서 문서의 부분을 바꾸거나 해주시기 바랍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앞서 제가 차근차근 이야기해드렸던 게 다 무시당한 것 같아 불쾌합니다. --trainholic (T, C) 2020년 5월 24일 (일) 04:35 (KST)답변

토론의 핵심 쟁점 자체가 송호근 교수의 논문을 등재할지 말지였으며 개요 부분에 대해서는 논점에서 벗어난 거였고,뭐 개요부분에 그 부분을 넣긴 하겠으나 다음에 대한제국 문서에 따로 문제가 있는 부분이 있었으면 그쪽이 문서에 직접 기여를 해주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웬디러비님의 말에는 따로 할말이 없네요.광무개혁이랑 중복되는 문서 모두 지우고 다시 재정렬했는데 애초에 워딩 자체가 감정적인 단어를 늘어놓는 수준이라 보기 좀 그렇습니다. 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4일 (일) 10:54 (KST)답변
그쪽 의견을 수용하여 국가 수립과 국권 피탈, 멸망과정을 개요에 넣었습니다. 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4일 (일) 10:59 (KST)답변
거짓말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과거판 짜깁기하지 말라고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그게 님이 여태까지 했던 전체판 되돌리기와 대체 어떤 차이가 있는데요. 문단 순서만 바꾼다고 문제가 해결됩니까? 그렇게 님이 원하시는 판이 그거라면 애당초 처음부터 편집 분쟁이니 뭐니 운운하지 마시고, 내가 원하는 판은 이거다라고 말씀하시지 그러셨어요. 아무래도 이건 사용자님 자체가 "의견 수용"이 무엇인지에 대해 제대로 이해를 못하시는 것 같은데, 님께서 편집하신 내용이 님께서 과거 편집 분쟁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판과 내용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 설명해주세요. --Yelena Belova (토론) 2020년 5월 24일 (일) 20:36 (KST)답변
또한 @Trainholic: 님 외에 다른 사용자들에게도 조정을 요청합니다. 이런 식으로 이 사용자가 과거 판 짜깁기로 타 사용자의 조정을 수용했다는 것, 저는 이 사용자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편집하고 기여하는 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분쟁의 씨앗을 계속 남기는 행위니까요. 그리고 감정적인 워딩이 안 나오게 하려면 본인이 먼저 분쟁을 유발하는 행위를 자제하셨어야죠. -- Yelena Belova (토론) 2020년 5월 24일 (일) 20:36 (KST)답변
과거판에 있는 내용에다가 내용과 출처 몇개를 보강한겁니다. 그릭 Trainholic님이 주장했던 언제 국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는지에 대한 수치와 상황을 개요에 넣었는데 이게 주장을 수용한게 아니면 뭡니까? 그리고 애초에 분쟁은 그쪽이 제 기여분 무단으로 되돌리기하면서 시작됬어요.정상적인 기여에 과거판 운운하면서 시비는 걸지 마시고요. 뭐가 어떻게 잘못됬는지 명확하게 설명해주세요. 애초에 어떤게 지침 위반인지 제대로 설명도 하지 못하셨으면서 분쟁의 씨앗 운운하는건 좋은 태도가 아니고 최소한 영어 위키백과 영어로 되어있는 논문 짜집기해서 엉터리 번역으로 엉성하게 갖다붙인것보단 낫잖아요. 제발 이성을 찾으세요.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4일 (일) 20:48 (KST)답변
그리고, 송호근 교수의 논문을 등재하는 행위가 어떻게 지침 위반으로 연결되는지 설명하지 못하신다면 해당 서술을 등재하도록 하겠습니다. 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4일 (일) 20:48 (KST)답변

방해 편집은 위키백과의 협업을 방해하는 명백한 악의적 편집뿐 아니라, 편집자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협업을 저해하는 방해성 편집까지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몇 차례의 주의 또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방해 편집 또는 방해성 편집을 지속하는 사용자는 차단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중략...)

공동체가 총의로 이미 거부하였고 다른 건설적인 토론을 진행하기로 했는데도 방해편집자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한가지 주장이나 관점에 매달려 영구적인 분쟁을 벌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위키백과에 지장을 줍니다. 단지 스스로 생각했을 때 자기 의견에 타당성이 있다고 해서 공동체가 반드시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처럼 행동할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양념파닭 (토론 · 기여) 2020년 5월 24일 (일) 21:07 (KST)답변

더 이상 이 문제는 상호간 편집 분쟁이 아닌 한 사용자에 의한 방해 편집 및 문서 훼손으로도 간주될 수 있으며, 조심스러우나, 현재 제 롤백 기능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고려중임을 알립니다. --양념파닭 (토론 · 기여) 2020년 5월 24일 (일) 21:15 (KST)답변
그런 규정이 있었네요. 사용자들이 토론에 불참해도 총의가 결정되나요?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4일 (일) 21:24 (KST)답변
누구를 말씀하시는지 모르겠는데 이미 위에 토론만으로도 충분히 귀하의 편집이 부적절하다는 근거는 충분히 나왔다고 보며, 저 것만으로도 총의 형성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솔직히 소모전인 토론을 누가 이어 나가고 싶겠습니까? --양념파닭 (토론 · 기여) 2020년 5월 24일 (일) 21:25 (KST)답변
위에 토론 어디에서 제 편집이 부적절하다는 근거가 나왔죠? 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4일 (일) 21:26 (KST)답변
trainholic 사용자께서 이미 다 정리해주신거 아니었나요? --양념파닭 (토론 · 기여) 2020년 5월 24일 (일) 21:27 (KST)답변
이미 정리 다 해드렸는데도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것 자체가 소모전이고 백:방해 편집에 저촉되는 행위입니다. --양념파닭 (토론 · 기여) 2020년 5월 24일 (일) 21:28 (KST)답변
토론내용이랑 편집기록 다시한번 확인해주세요. 개요 부분에 대한제국이 어떤 과정으로 망했는지 서술되어야 한다는게 그 분 주장이였는데, 제가 이미 그 분 주장 수용해서 대한제국이 어떻게 망했는지에 대한 서술을 추가한 바 가 있어요.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4일 (일) 21:30 (KST)답변
그 멸망 부분은 현재도 개요에 존재 하는 것으로 확인되는데 왜 그걸 문제점으로 제시하시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양념파닭 (토론 · 기여) 2020년 5월 24일 (일) 21:31 (KST)답변
제가 그걸 문제점으로 제시한게 아니라요. 그분이 제가 되돌린 판에 대해 제시한 문제점이 그거예요. 상단 개요 부분에 대한제국이 왜 망했는지에 대한 서술이 없다고. 그래서 제가 그 분 주장 수용해서 편집했어요. 그런데 웬디러비님이 과거판 짜집기라며 되돌린 거구요. 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4일 (일) 21:33 (KST)답변
지금 보아하니 제 말 뜻을 잘 이해못하시는듯 한데요. 트레인홀릭님 뿐만 아니라 저를 비롯해서 웬디러비님께서 귀하의 편집에 문제를 제기했는데도 같은 편집을 반복하며, 잠시 몇 시간 토론 참여의 부재가 있었다고 해서 본인의 편집을 다시 강행하는 행위 자체가 위에서 언급한 지침 위반이라는 뜻입니다. --양념파닭 (토론 · 기여) 2020년 5월 24일 (일) 21:35 (KST)답변
트레인홀릭님이 문제를 제기하신 건 그 부분이였어요. 그래서 제가 그 분 주장 수용해서 편집한 것이고요. 그리고 같은편집 반복하지 않았어요.광무개혁,단발령 등의 중복되는 부분은 삭제처리 하기로 했습니다. 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4일 (일) 21:38 (KST)답변
저기요. 바로 위에 말했잖아요. 왜 자꾸 트레인홀릭님만 언급하세요. 지금 님빼고 다른 모든 분들이 님의 편집에 문제가 있다고 하시는데 왜 트레인홀릭님이 지적한 부분에 대해서 수용했다면서 본인의 행위를 정당화 시키세요? --양념파닭 (토론 · 기여) 2020년 5월 24일 (일) 21:40 (KST)답변
위에 다른 모든 분 누구요. 토론에 실질적으로 참여한건 트레인홀릭님 외에 양념파닭님이랑 웬디러비님밖에 없는데요.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4일 (일) 21:42 (KST)답변
꼭 본 토론에 참여안하더라도 되돌리는 행위 자체에 그러한 의사가 내포되어 있다고 보며, 무엇보다 편집 요약을 통해서도 귀하의 편집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표현한 사용자도 계십니다. --양념파닭 (토론 · 기여) 2020년 5월 24일 (일) 21:43 (KST)답변
실질적인 토론참여도 안하고,어느 지침을 위반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신 분도 없고, 그냥 다수가 원하니 그렇게 해야한다는식의 지침이 있었네요. 어쩔수 없네요 뭐...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4일 (일) 21:47 (KST)답변

@200w200w, 양념파닭: 200w님이 맞는것 같은데 기록보니까 막 싸우던데 제가 참견할건 아니지만 그래도 제가 도울게 있을까여? -- PUBG 토론기여 2020년 5월 28일 (목) 00:32 (KST)답변

어떤점에서 해당 사용자가 맞다고 판단하시는 거죠? --양념파닭 (토론 · 기여) 2020년 5월 28일 (목) 02:50 (KST)답변
제3자로써 말씀드리자면, 편집 분쟁이 일어나기 전의 판은, 200w200w님의 기여가 생기기 바로 전인 판, 즉 양녕파닭님과 웬디러비님이 원하는 판이 맞습니다.--Vudghk (토론) 2020년 5월 28일 (목) 21:19 (KST)답변

대한제국의 편집에 대해[편집]

지금 문서 전체적으로 편집분쟁이 번지고 있는데 어떤 내용을 채우고 넣을지에 대한 토론 요청합니다.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4일 (일) 22:44 (KST)답변

또 소모적인 토론으로 이어가시려고요? 위에서 문제 해결하고 새 토론 여세요. 문제도 해결 안 했으면서 새 토론 열지 마시고요. -- Yelena Belova (토론) 2020년 5월 24일 (일) 22:49 (KST)답변
그럼 위의 문제 해결에 대해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해주세요. 논리성 있는 의견도 제시해주시고요. 위에서는 그냥 다수가 싫어하니 기여를 하지 말라는식의 답변밖에 없잖아요.그럼 사실상 제 편집권은 극히 제한된 상태예요. 그럼 제가 실질적으로 문서를 기여할 방법이 없잖아요. 그니까 제 편집을 반대하시는 분들이랑 토론 좀 하려고 만든 주제입니다. 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4일 (일) 22:56 (KST)답변
추가로 서술을 고정하는 판의 시점도 확실히 합시다. 편집분쟁이 문서 전체로 퍼진 상황에서 제가 아이피로 기여하기 바로 직전의 판으로 되돌리는게 옳다고 생각합니다.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4일 (일) 22:57 (KST)답변
그니까 위에서 해결하시라고요. 자꾸 새로운 판 열지 마시고요. 왜 위에서 해결 안 하시고 문제를 자꾸 환기시키려고 해요. 그리고 왜 님은 맨날 원칙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죠? 님에게는 자기 편집 안 되면, 자기 편집이 마음에 안 든다, 그 정도 생각밖에 못하시나요? 위키백과 지침이 남 문서 선호도로 기준으로 했다는 그 논리 참 어이가 없네요. 그리고 해당 발언을 통해 또 소모전 양상으로 가겠네요. 이젠 지긋지긋합니다. -- Yelena Belova (토론) 2020년 5월 24일 (일) 23:02 (KST)답변
위에서 해결이 안되잖아요. 소모성 논쟁이니 뭐니해서 토론하는거 자체를 삽질취급하는건 물론이고 총의에 따라 제가 함부로 편집해서는 안된다고 되어있잖아요. 그럼 어떡하라는거예요 대체.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4일 (일) 23:05 (KST)답변
@양념파닭:@병현이: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4일 (일) 23:05 (KST)답변
소모전은 더 이상 이어나가지 않겠습니다. 이만. --양념파닭 (토론 · 기여) 2020년 5월 24일 (일) 23:08 (KST)답변
아니;;;;;;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4일 (일) 23:10 (KST)답변
님은 그러니까 토론을 통해 배운 게 하나도 없어요. 진짜 하나도요. 그러니까 토론 열지 마세요. 님 주장만 앵무새처럼 되풀이되는 이 토론은 아무 의미 없다고요. 님이 받아들이지 못해서 벌어진 이 소모전, 님이 스스로 납득하기 전까지 안 끝낼 거잖아요. 그게 무슨 토론이에요? 사용자들 수 천 명이 몰려와서 님 토론 잘못 했다고 해도, 님이 생각하기에 납득 안 되면 안 받아들이실거고요. 왜 토론이 님 기준에 맞춰져야 하는데요. 이게 님이 소유한 문서에요, 아니면 님이 이 문서에 대해 특권이라도 가지고 있어요? 이제 그러니까 님 설득하라고 여는 토론 그만 하시라고요. -- Yelena Belova (토론) 2020년 5월 24일 (일) 23:11 (KST)답변
그럼 편집이고 토론이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건가요? 제가 이 문서에 대해 특권을 주장했으면 이렇게까지 했을까요? 편집분쟁 이전의 판으로 되돌릴려고도 했고, 정확히 어디가 지침 위반인지 설명해달라고 했지만, 제가 가져온 송호근 교수 저서, 어느 지침을 위반했는지 설명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잖아요. 그러니까 다수가 제가 편집을 하길 원하지 않으니, 토론이고 뭐고 다 생략하고 편집 자체를 하지 말라 이거잖아요.토론이라도 못 열면 그럼 제가 이 상황에서 내가 뭘 어떻게 해야하냐고요..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4일 (일) 23:20 (KST)답변

그래도 한 발 물러나 토론을 제안하신 것에 개인적으로는 감사를 표합니다. 200w200w님과 다른 사용자 분들께 이번 편집이 일어나기 전의 편집으로 돌린 뒤, 기존 판과 200w200w님이 펀집하신 최종판과 비교하여 어떤 편집을 살리고, 어떤 편집을 뺄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하면 어떤가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아무래도 초반의 편집 분쟁으로 인해 감정의 골이 생겨서 서로 날 선 반응을 보이시지 않았나 싶습니다만, 그럼에도 모두가 백과사전에 기여하는 데 힘을 썼으면 합니다. 원래의 판을 현재 대한제국 문서에, 200w200w님의 최종판을 사용자:200w200w/연습장 문서에 두고 어떤 내용을 살리고, 어떤 내용을 빼낼지 논의하도록 해보는 것을 제안합니다. --trainholic (T, C) 2020년 5월 24일 (일) 23:18 (KST)답변

일단 서술고정 시점에 대해서는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EB%8C%80%ED%95%9C%EC%A0%9C%EA%B5%AD&oldid=26576876 이 판으로 하는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이피로 문제시되는 부분을 최초서술하기 이전의 시점이며,분쟁이 일어나기 이전의 시점이기도 합니다. 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4일 (일) 23:26 (KST)답변
이미 200w 님이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독단적으로 타 사용자들의 충고까지 무시해가면서 편집 분쟁을 일으켰고, 그렇기에 해당 사용자의 의견을 듣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양념파닭 님을 비롯한 다수의 사용자가 해당 사용자를 계도시키고, 설득시키려고 했음이 입증되었으며, 해당 사용자의 주장을 수용하는 것은 지금 이어지고 있는 편집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 아닌, 촉진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 조정은 거부하도록 하겠습니다. -- Yelena Belova (토론) 2020년 5월 24일 (일) 23:23 (KST)답변
언제 타 사용자의 충고를 무시했나요. 그 충고가 논리적 타당성은 있었나요? 재차 말씀드리지만 정확히 어느 부분을 어떻게 무시했는지에 대해 설명을 해줘야 제가 납득할 수 있어요. 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4일 (일) 23:26 (KST)답변
아, 반대로 하죠. 님께서 우리를 설득시키면 되겠네요. 왜 우리가 님에게 논리적 타당성을 입증해야 하는지, 지침을 왜 안 받아들이시는지, 왜 그렇게 구체적으로 따지기만 하는지 우리에게 한 번 설득시켜 보시기 바랍니다. 님이 그렇게 설득과 타당성을 요구하니, 저희도 똑같이 하면 되겠네요. 물론 님도 똑같이 논리적 타당성을 입증하시면서요. -- Yelena Belova (토론) 2020년 5월 24일 (일) 23:29 (KST)답변
좋습니다. 일반적으로 주장에 대해 논리적 타당성을 입증하지 않으면 그 주장은 설득력을 잃어버립니다. 따라서 타자에게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킬려면 논리적 타당성과 근거가 지침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지침을 안 받아들였다고 하는데, 제가 여기서 토론을 연 것, 그리고 송호근 교수의 글을 인용한게 어떤 지침을 위반한 것인지 구체적으로 그쪽께서 설명을 해줘야 제가 답변을 드릴수 있습니다. 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4일 (일) 23:32 (KST)답변
그건 논리적 타당성에 입각한 글이 아니라 그냥 지금 분쟁에 대해 제시한 거잖아요. 이게 무슨 논리적 타당성인가요? 님은 저희에게 하나하나 따져가며 물으면서, 님은 그냥 여태까지 있었던 편집 분쟁 주제만 제시하시나요? 됐습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네요. 결국 자기 주장 무한 반복이잖아요. 앞으로 어떤 중재던, 조정이던 수용하지 않겠으며, 사용자님이 주장을 굽히지 않는 이상 님과 다시는 토론하지 않겠습니다. 그 며칠 동안 수많은 지침과 정책을 언급하면서까지 문서 편집에 대해 설전을 벌였는데 님이 수용하지 못한 모든 사안에 대해 더 이상 설명할 의무도, 필요도 없습니다. 그럼 안녕히. 이 이상은 소모전이라 판단하고 앞으로의 모든 되돌리기는 방해 편집, 문서 훼손으로 간주하겠습니다. -- Yelena Belova (토론) 2020년 5월 24일 (일) 23:38 (KST)답변
토론하는데 하나하나 따져가면서 묻는게 잘못된건가요? 그리고 그쪽이 제 기여를 여태껏 되돌린 이유가 지침 위반이였잖아요. 그럼 제가 어느 지침을, 어떻게 위반했는지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 병행되어야 하는건 아닌가요? 그리고 자기 주장 무한 반복이라고 하시는데, 자기 주장 무한 반복은 지금 그쪽이 하고 계시잖아요. 지침 위반이다->어떤 지침 위반이냐->이미 설명했다->어디에도 설명되어 있지않다. 설명해달라.->다른사람들이 이미 충고해줬다.->????이렇게요. 그리고 토론 거부하면서 무조건 타 사용자의 기여를 방해편집으로 치부하는것도 옳은 태도로 보이진 않아요. 제발 이성을 찾아주세요..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4일 (일) 23:44 (KST)답변
@병현이:@뇸이: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4일 (일) 23:51 (KST)답변
@웬디러비:@양념파닭: 마지막으로 말씀드립니다. 저는 일련의 편집분쟁을 토론을 통해 해결하고 싶어하는 사람입니다. 대한제국 문서에 대한 저의 편집이 무엇이 잘못되었으며 어떤 내용이 위키백과에 적합하지 않은지 설명을 부탁드립니다.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5일 (월) 00:15 (KST)답변
귀하께는 토론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태도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같은 말을 반복하게 만드는 분이 무슨... 봐보세요. 벌써 "같은 말을 반복하게 한다." 이 말조차도 계속 반복해서 나오고 있잖아요? 누가 이런 토론을 하고 싶어하나요? 적당히 좀 합시다. 정신건강에 매우 해롭습니다. --양념파닭 (토론 · 기여) 2020년 5월 25일 (월) 00:17 (KST)답변
핑 달지 마세요. 더 이상 사용자님 하고 할 이야기가 없으니까. 이젠 더 이상 사용자님과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아요. 저하고 이야기하고 싶으시면, 님이 하고 있는 모든 주장을 내려놔야 할 겁니다. -- Yelena Belova (토론) 2020년 5월 25일 (월) 00:18 (KST)답변
두분, 토론 거부하시는 김에 최소한 어떤 부분이 잘못된건지 설명해주세요 마지막으로라도요. 무슨 주장을 내려놔야 하는지도 알려주세요. 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5일 (월) 00:20 (KST)답변
결국 또 다시 같은 말을 반복하시네요. 이미 위에 다 설명드린 것 같으니 더 이상 노코멘트할게요. --양념파닭 (토론 · 기여) 2020년 5월 25일 (월) 00:23 (KST)답변
아니.. 그리고 양념파닭님은 공인된 출판물이라고 보긴 어렵다. 라는 부분에서 사실상 이어나가지 않으셨잖아요 어떤 기준이 미달되어 등재하면 안되는지... 뭘 계속 노코멘트를 해요..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5일 (월) 00:25 (KST)답변
다른 사용자들의 의견으로 갈음하겠다는 뜻이었는데 이해를 못하셨나보네요. --양념파닭 (토론 · 기여) 2020년 5월 25일 (월) 00:25 (KST)답변
참....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5일 (월) 00:27 (KST)답변
그냥 위의 토론 문서 쭉 읽어보시면서, 납득 안 되는 거에 대한 지침을 다시 살펴보며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냥 토론란을 읽으시면 돼요. 본인 주장 빼고요. 이 이상은 더 얘기하면 또 소모전으로 이어질테니...... -- Yelena Belova (토론) 2020년 5월 25일 (월) 00:28 (KST)답변
@Helper0721: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5일 (월) 00:40 (KST)답변

@Kirschtaria: 토론 출석바람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6일 (화) 10:59 (KST)답변

정리[편집]

(2020년 5월 26일 17:31 (KST) 기준)
200w200w 사용자의 의견 대립되는 의견
대한제국 문서에서 구조적 문제점 단락에 관한 심각한 편집분쟁이 이어지고 있음. 백:출처, 백:신뢰, 백:독자, 백:확인 가능 지침 정독부터 필요함. 해당 편집은 전체적으로 문제임.
전문가의 검수를 받은 저널이나 권위있는 온라인 매체 및 인쇄본이라고 볼 수 있음. 출판이 된 내용이며 해당 내용을 쓴 전문가는 미국 하버드대 박사학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의 학력이 있음. 학위박사 논문 자랑하는 곳이 아님. 출판은 된 것이 맞으나 공인된 지식이라는 부분에는 동의하기 어려움.
통용 학설이란 개념 자체가 추상적이고 대한민국 사학계에서 아무런 문제없이 받아들여지는 의견이란건 존재할수도 없음.
지침에 학계에서 널리 인정되고 있는 통용 학설이며, 해당 논문의 주장이 대한민국 사학계에서 일반적으로 아무런 문제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의견만 등재할수 있다고 되어있지 않음.
추상적이지 않음.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했다. 이런 게 통용되는 학설이자 사학계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사실임. 위키백과는 사학계에서 일반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지는 사실을 위주로 문서 편집하는 곳이 맞음. 오히려 제대로 지침을 이해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함.
인용한 서적에 왜 그렇게 잣대가 엄격한가? 출처 인용 부분에서 결점이 없으며,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사실관계만 늘어놓은 서술만 존치시킬거면 위키백과 문서 반절은 없애야 함. 출처에 신뢰성이 없다 주장하는데, 뭐가 어떻게 편향되어 있으며 지침 위반인지 설명이 필요함. 하버드 대학 박사학위가 문서의 신뢰성을 보장하지 않음. 편향된 출처는 보통 그 자체로 신뢰할 수 없게 만드는 다른 문제가 있음. 하버드대학 박사학위나 서울대학교라는 대학 타이틀로 신뢰성을 판단하여 지속적으로 되돌리기를 하는 것은 중립적 서술이 아님. 서영희의 주장이던 사용자님의 주장이던, 둘은 교차 검증이 가능해야 함. 해당 주장이 일반적으로 널리 통용되고 있음을 입증해야 할 것임.
보통 출처의 공신력을 논할 때 해당 논문이나 저서를 쓴 학자의 학위,전문성을 기준으로 삼음. 하버드 대학교나 서울대학교 박사학위가 해당 교수의 신뢰성을 보장하지 않음. 논문을 표절했다, 박사 학위를 위조했다 등, 그런 논란이 불거지는 게 일상적인 대한민국에서, 그걸 신뢰도의 바탕으로 제시하는 것은 말이 안 됨.
핵심 쟁점 중 일부라고 생각하면 그쪽이 다른 학자 논문이나 저서를 가지고와서 다른 시각을 기여하면 될 일임.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대한제국을 자본주의적 시각"으로 바라본 주장에 대해 왜 고집을 하냐는 점임. 대한제국이 근대국가로 들어갔다 마느냐가 이미 핵심 쟁점이라고 이야기함. 상대의 주장대로라면, 그 자본주의적 시각은 핵심 쟁점에 대한 주장 중 일부일 뿐임. 그것이 다른 주장들을 모두 제외하고 띄어지거나 부각되어야 할 정도로 중요도가 있는지 의문이 듦.
다수 의견이랍시고 타자에게 무조건 수용하라는게 올바른 행동인지 모르겠음. 다수의 논리에 편승해 자신의 주장을 찍어누르려고 함. 다른 사용자들의 행동과 편집을 호도하고 왜곡하는 주장임. 위키백과가 다수결은 아니지만, 총의는 존재함.
단발령,광무개혁,국호 등의 서술상 문제는 지금 토론중인 내용과 무관하며 대한제국 서술이 되돌려지는 이유는 자신과 웬디러비 사용자 간의 서술시점 고정에 대한 견해 차이 때문임. 토론의 핵심 쟁점 자체가 송호근 교수의 논문을 등재할지 말지임. 기존 문서 내용(광무개혁, 단발령, 을사조약과 한일병탄 내용 삭제 등)과의 양립 대신, 기존의 멀쩡한 문서 내용을 삭제하고 그 대신 채워둔 것은 큰 유감을 표함. 현재 문서가 자꾸 되돌려지는 이유는 대한제국을 필요하는 데 필수적인 다른 내용을 삭제하고 해당 내용을 넣기 때문임.
위 내용들은 그냥 다수가 싫어하니 기여를 하지 말라는식의 답변밖에 없음. 원칙을 자기 멋대로 해석한 것임. 자신의 편집이 되지 않으면, 자신의 편집이 다른 사용자들에게 마음에 안 든다는 발언은 부적절함.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습니다. 혹시나 표에 수정이 필요하시다면 토론 참여자께서 자유롭게 수정하시기 바랍니다. --Raccoon Dog (talk) 2020년 5월 26일 (화) 17:31 (KST)답변


위에 길고도 지루한 토론을 이렇게 보기쉽게 정리를 해주신 사용자분께 감사를 표하며 해당 주장에 대해 차차 반박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1.학위 박사 논문자랑하는 곳이 아니며 공인된 지식이라고 보기 어렵다. -> 이에 대한 근거로 제시된 위키백과:아님#사견에 있는 문구를 인용해보겠습니다

개인적인 연구를 올리는 데 사용하지 마십시오. 다시 말해서 본인의 새로운 이론이나 풀이, 독창적인 생각, 용어의 새로운 정의를 서술하거나 자기가 생각한 새로운 용 
어를 도입하는 행위 등을 하지 마십시오. 만약 당신이 스스로 어떤 주제에 대해 연구를 끝냈다면 연구 결과를 전문가의 검수를 받은 저널이나, 권위있는 온라인 매체 
및 
인쇄본 등의 경로로 출판해야 합니다. 당신의 연구가 그런 경로를 통해 출판되고 공인된 지식의 일부가 된다면 위키백과에서 다룰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검 증이 되었고, 해당 편집자만의 의견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신뢰할 수 있는 출처에서 인용해서 소개해야 합니다.

분명 여기서 검증이 되었고, 권위있는 온라인 매체 및 인쇄본 등의 경로로 출판해야 한다고 되어있습니다. 해당 글에서 링크를 달아놓은 위키백과:신뢰출처 문서에 있는 문구도 인용해봅시다.

위키백과는 전 세계의 과학자, 학자, 연구자들이 작성한 확립된 문서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학술성을 가진 문서에 의하여 기술된 항목들은 종종 신뢰할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학술적 성과는 더 새로운 연구에 의해 낡은 지식이 되거나 다른 설명에 의해 쟁점이 될 수 있습니다. 위키백과의 문서들은 이러한 화제 
에 대한 모든 주요한 학문적인 해석들을 설명해야 합니다.
자료들이 학술 단체에 의해 검토 과정을 거쳤다는 것은 상호검토된 출처로 출판되었고, 대학의 기관지 등에 의해 검토되어 받아들여졌음을 의미합니다.
학술적인 참고서적으로서 추천할 만한 내용이 선호됩니다.
책이나 논문의 제목이 제시된(작성자가 명시된) 글은 그렇지 않은 글보다 더욱 신뢰할 수 있는데, 이는 그 글을 전문가가 작성하였고, 그 내용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체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출처는 전문가 검토(peer review)를 거친 학술지, 대학출판부에서 출간된 도서, 대학교 수준의 교과서, 그리고 평판 있는 출판사에서 출간 
된 잡지, 정기간행물, 도서입니다. 통상적으로 사실의 확인, 법적인 문제의 검토, 특정한 일에 대한 증거와 논의를 세밀하게 검토를 한 출처일수록 더욱 신뢰할 수 있 
습 니다.
 출처를 밝히실 때에는 글을 읽는 사람이 웹사이트 외부 링크 등을 통해 출처를 찾을 수 있게 되도록 완전하고 뚜렷하며 정확하게 밝혀 주셔야 합니다. 출처를 온라인 에서 찾을 수 없는 경우 잘 알려진 도서관, 자료실, 콜렉션과 같은 곳에서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테면 ISBN이나 OCLC 번호를 제공한다든지, 해당 문헌에 대한 위 키백과 문서로 연결(작품, 저자, 출판사)한다든지, 직접 해당 문헌을 토론 페이지나 구문에 간략히 밝혀 주시면 됩니다. --위키백과:출처 밝히기

분명 해당 내용에서 논문의 제목이 제시된(작성자가 명시된) 글은 그렇지 않은 글보다 더욱 신뢰할 수 있는데, 이는 그 글을 전문가가 작성하였고, 그 내용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가장 신뢰할 수 있는 출처는 전문가 검토(peer review)를 거친 학술지, 대학출판부에서 출간된 도서, 대학교 수준의 교과서, 그리고 평판 있는 출판사에서 출간 된 잡지, 정기간행물, 도서입니다. 라고 서술되어 있습니다.

제가 인용하려는 출처의 글쓴이의 이력을 직접 발췌하겠습니다. 송호근 글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역서 『철학과 예술사회학』(1983), 학위논문을 발전시킨 『칼 만하임의 지식사회학연구』(1983) 
를 출간한 후, 1984년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수학하였으며 1989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한림대학교에서 조교수와 부교수로 재임하였고, 1994년 서울대학교 사회학 
과에 조교수로 임용되어 학과장과 사회발전연구소 소장, 1998년 스탠퍼드대학교 방문교수, 2005년 캘리포니아대학교(샌디에이고) 초빙교수를 역임하였다. 국제협력본부 
장(2006-2008)을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제가 인용하려는 서적은 시민의 탄생:조선의 근대와 공론장의 지각 변동입니다. http://minumsa.minumsa.com/book/5770/ 링크에 들어가 보시면 알겠지만 카테고리가 학술 단행본이며 출판사에서 국제 표준 도서 번호(ISBN 978-89-374-8863-4)까지 붙어있는 상태입니다. 또한, 출판사인 민음사는 1966년 설립된 정식 출판사로서, 해당 서적은 연구 결과를 전문가의 검수를 받은 저널이며 권위있는 온라인 매체및 인쇄본 등의 경로로 출판된 출판물이라고 보기 충분합니다.

따라서 해당 서적이 공인된 지식이 아니라는 이유로 등재 미달이라는 주장은 완전히 틀린 것입니다. 그리고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교수라면, 해당 분야의 전문가라고 볼 여지가 충분합니다. 위키백과:독자 연구 금지문서에서 인용을 해보겠습니다.

전문가가 보증한 문서는 3차 자료가 아닌 믿을 수 있는 2차 자료로 여길 수 있습니다. 전문가의 보증이 없는 문서는 덜 믿을 만하지만, 백과사전의 수준이 높다면 사용 될 수 있습니다.

위키백과에서도 일반인보다 전문가의 보증을 더 중요시 여기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수 학위박사 논문 자랑하는 곳이 아니라며 출처의 신뢰도를 펌하하려는 행위는 완전히 잘못된 것입니다.이하의 주장에 대해서는 다음에 차차 반박하겠습니다.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6일 (화) 19:05 (KST)답변

2.위키백과는 사학계에서 일반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지는 사실을 위주로 문서 편집하는 곳이 맞음. -> 이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위키백과에서 통설이나 정설 위주로 기여를 할 수록 신뢰도가 올라가는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위키백과:위키백과에 대한 오해문서를 봅시다.

사전적 정의만 올리는 곳이 아닙니다. - 위키백과의 문서는 단순히 낱말의 사전적 정의만 싣는 국어 사전이 아닙니다. 이 말은 위키백과 내에서 '단어' 문서를 쓸 수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위키백과의 문서가 원론적 정의만을 담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 반드시 문서를 개념적 정의를 서술하는 것으로 시 작할 필요도 없으며 백과사전같은 다양한 내용을 폭넓게 담을 수 있도록 확장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불혹 같은 문서와 같이 정의 그 이상의 다양한 서술이 들어가거나 
셔틀, 스티븐 콜베어가 만든 단어인 Truthiness와 같은 신조어 낱말, 을용타와 같은 인터넷 밈에 대한 서술도 위키백과에 쓸 만한 주제로 인정받습니다.
또 위키백과:중립적 시각의 문서도 인용해보겠습니다. 
위키백과에 처음 방문한 사람들이나 초보 편집자, 외부 비평가들이 종종 중립적 시각에 대해 오해하는 것 중 하나인 "문서엔 어떤 편향도 보여서는 안된다"라는 생각 
때문에, 이들은 편향이 보이는 문장을 무작정 삭제하러는 경향이 있습니다. 중립적 시각 정책은 "편집자의 편향"은 엄중히 막고 있지만, "신뢰할 수 있는 출처"의 편향 에 대해서는 막고 있지 않습니다. 현실 세계의 편향을 문서화하고 포함하지 않는다면 위키백과의 문서 대부분은 인간 지식의 총합(Sum total of human knowledge)을 싣 지 못할 것이고, 이는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는 내용이 가득한 무의미한 문서가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위키백과의 문서 대부분은 인간 지식의 총합 즉 집단 지성을 지향하며 낱말의 사전적 정의만 싣는 국어사전이 아니라고 되어있습니다. 만약 위키백과에 학계에서 이미 통용되는 학설만 서술해야 한다면, 위에서 지적한대로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는 내용이 가득한 무의미한 문서가 될 것입니다.

위키백과: 중립적 시각 문서의 다른 부분을 인용해 봅시다.

중립적 시각에 대해 가장 많이 오는 반박은 중립적 시각에 대한 가장 쉬운 오해에 비롯되기도 합니다. 중립적 시각 정책은 그 어디에서도 '객관성', '객관적으로 서술 하기'를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실제로 중립적 시각 정책의 본문 검색을 해도 이 질문 링크로 오는 구절밖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중립적 시각 정책은 철학에서 의미하 는 객관, 토마스 네이젤이 말한 '어떤 관점도 아닌 것'과는 거리가 매우 멉니다. 또한 중립적 시각 정책은 완벽하게 객관적인 사실만 적으라는 말도 아닙니다. '객관'이 라는 것은 우리가 정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도 아니며, 우리가 지향하는 목표도 아닙니다! 중립성 정책이라는 것은 어느 논쟁에 끼어들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 논쟁을 
설명하기만 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한 주제에 대해 토론할 때 우리는 무엇이 맞는가 대신 사람들이 그것에 관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에 집중하여 그것을 써 야 합니다. 

해당 문단에서 '객관'이 라는 것은 우리가 정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도 아니며, 우리가 지향하는 목표도 아닙니다! 라고 서술되어 있습니다. 이말인 즉슨 학계에서 객관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학설만을 등재해야하는 공간이 아니다로도 충분히 해석됩니다. 따라서, 해당 출처가 객관적이지 않다,학계에서 널리 통용되어있는 사실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지워버리는 것은, 지침에 부합하지도 않습니다.200w200w (토론) 2020년 5월 26일 (화) 19:24 (KST)답변

2번에 대해서는 정책을 완전히 잘못 해석하셨습니다. 첫 번째 백:오해의 국어사전에 대한 문단은 "문서를 만들 때 딸랑 단어 정의만 쓰고 끝내지 마라"라는 의미이지, 그것을 마음대로 왜곡해서 자기만의 학설을 써도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두 번째로, 중립적 시각에 대해서, '객관'적이라는 말을 쓰지 말라는 것은 정설만 스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위키백과:비주류 이론에 따라 정설을 써야 한다는 말입니다. 계속해서 정책을 왜곡하면서 자기 주장을 계속 고집하실 경우 관리자 직권으로 차단되실 수 있습니다. 경고합니다.--L. Lycaon (토론 / 기여) 2020년 5월 26일 (화) 23:55 (KST)답변

1. 개인적인 연구를 올리는 데 사용하지 마십시오. 다시 말해서 본인의 새로운 이론이나 풀이, 독창적인 생각, 용어의 새로운 정의를 서술하거나 자기가 생각한 새로운 용어를 도입하는 행위 등을 하지 마십시오. 만약 당신이 스스로 어떤 주제에 대해 연구를 끝냈다면 연구 결과를 전문가의 검수를 받은 저널이나, 권위있는 온라인 매체 및 인쇄본 등의 경로로 출판해야 합니다. 당신의 연구가 그런 경로를 통해 출판되고 공인된 지식의 일부가 된다면 위키백과에서 다룰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검증이 되었고, 해당 편집자만의 의견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신뢰할 수 있는 출처에서 인용해서 소개해야 합니다.

— 위키백과:위키백과에 대한 오해#사견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와 사회발전연구소 소장을 거쳐 현재 포스텍 인문사회학부장으로 재직 중이다.
— 사용자:200w200w

출판은 된 것이 맞으나 공인된 지식이라는 부분에는 동의하기 어려운데요.
— 사용자:양념파닭

공인된 지식 기준 좀요.
— 사용자:200w200w

독자 연구는 신뢰할 만한 출처가 아닙니다 위키백과는 새로운 연구, 생각, 해석, 또는 분석의 최초의 출처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독자 연구는 아직 신뢰받는 출처에서 출판되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위키백과에 포함되기에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신뢰성 있는 내용을 인용하려 한다면, 편집자는 그 출처가 새로운, 또는 명백하지 않은 방식으로 해석되거나 분석되지 않았음을 확실히 해야 합니다.

— 위키백과:신뢰할 수 있는 출처#특정 문서의 신뢰성

저 교수가 발표한 저서가 학계에서 널리 인정되고 있는 통용 학설이며, 해당 논문의 주장이 대한민국 사학계에서 일반적으로 아무런 문제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의견인지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 사용자:웬디러비

제가 인용한건 위키백과의 신뢰성 있는 출처의 기준에 부합하며, 그 학설이 잘못됬다 싶으면 그쪽이 반박근거 올리시면 됩니다.
— 사용자:200w200w

신뢰할 수 있는 출처라는 건 님이 그 지침을 읽고 개인적으로 판단하는 기준이 아닙니다.
— 사용자:웬디러비

편향된 문장을 중립적으로 바꾸기 의견이 있는 편향된 문장은 특정한 속성을 인용한 것으로만 나타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철수는 최고의 야구선수이다."와 같은 문장은 의견 표출이며, 위키백과에서 이 문장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쓸 수 없습니다. 이 문장은 "철수의 야구 기술은 YY 감독이나 ZZ 선수와 같은 야구계 인사들에게 최고라고 칭찬받은 바 있다."와 같이 의견에 관한 사실을 서술한 문장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장을 이렇게 바꿨어도 각각의 의견은 확인 가능해야 하며 적절한 출처를 통해 인용해야 합니다.

편향된 문장을 중립적으로 적절하게 바꾸는 다른 방법 중 하나는 실제로 사실인 세부 사항을 같이 써주어 서술을 구체화하거나 논리적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철수는 2003년부터 2006년까지 KBO(한국프로야구)에서 최고 타율을 기록했다."와 같이 사실인 서술을 쓸 수 있습니다. 이 문장을 본 사람들 중 일부는 여전히 철수가 최고의 야구선수인지 관해 논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도 이 문장 자체에 관해서는 논쟁을 벌이지 않을 것입니다.

모호한 표현으로 편향된 서술이나 의견을 쓰려 하면 안됩니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은 철수가 최고의 야구 선수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쓰고 싶을 때도 싶지만 이 문장에선 "누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라는 질문이 따라오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와 같은 상황을 피하려면 한 집단 내의 여론조사 등과 같은, 신뢰할 수 있는 출처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라는 의견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를 가져와야 합니다.

— 위키백과:중립적 시각#중립성 분쟁 다루기

편향되었다는 근거를 제시해주세요. 그리고 편향적이라는 이유 자체로 없애버릴수 없다고 위에 인용했는데 못보셨나요?
— 사용자:200w200w

서영희는 대한제국이 추구한 것이 근대 국민 국가 수립 시도 혹은 전제군주제의 근대적 변용이라고 지적하고 있다.그러나 둘은 같지 않으며, 후자가 보다 타당한 설명이라고 봐야한다. 이것에 대해 어떻게 입증하실 건가요. 서영희의 주장이던 사용자님의 주장이던, 둘은 교차 검증이 가능해야 합니다. 즉, 다른 자료나 출처에서도 해당 내용이 인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후자가 보다 타당한 설명이라고 봐야한다는 지극히 사적인 의견 서술입니다. 어느 것이 더 타당하다의 문제는 지양하고 있다고 중립적 서술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주장이 타당하면, 다른 주장은 무시되는 것인데, 이것이 어째서 중립적 서술에 기인하는 것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구조적 문제에 대한 서술이 출처를 근간으로 하고 있는데, 그 출처가 어떤 고유한 주장을 담고 있으면, 이에 대한 다른 주장을 서술하거나, 아니면 해당 주장이 일반적으로 널리 통용되고 있음을 입증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중립적이고 객관적이라고 하는 것이지, 님처럼 하버드대학 박사학위나 서울대학교라는 대학 타이틀로 신뢰성을 판단하여 지속적으로 되돌리기를 하는 것은 중립적 서술이 아니다 이 말입니다.
— 사용자:웬디러비

후자가 더 타당하다고 서술한것은 제 개인의 의견이 아닌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교수의 저서를 인용한 것 뿐입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널리 통용된 출처만 허용, 이건 대체 누가 정한거고 지침 어디에 그런 내용이 있죠?
— 사용자:200w200w

그리고 왜 편향된 출처인지 설명해주세요.
— 사용자:200w200w

헤당 주장이 일반적으로 통용되거나 해야 한다고요, 출처가 아니라... 하아.... "어떤 고유한 주장을 담고 있으면, 이에 대한 다른 주장을 서술하거나, 아니면 해당 주장이 일반적으로 널리 통용되고 있음을 입증해야 할 것입니다." 주장에 대해 설명했는데, 왜 출처로 바꾸시냐고요.
— 사용자:웬디러비

제가 인용하려고 하는 부분은 신뢰할 수 있는 출처에 해당하며 왜 갑자기 교차검증 이야기가 나옵니까?
— 사용자:200w200w

인용하는 자료가 출처이고, 인용하려는 부분은 주장이죠. 이 부분은 명백히 합시다. 출처가 명백해도 주장이 독자적인 경우에는 이것은 신뢰할 수 있는 출처라고 하지 않죠. 예를 들어봅시다. 조선일보나 동아일보 자체의 기사는 출처로서 제시할 수 있지만, 그 출처가 편향되었다하는 것은 동아일보나 조선일보에서 쓴 기사의 내용을 가지고 판단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 문서에서는 단순히 조중동뿐만 아니라 jtbc, 연합뉴스, kbs 보도, bbc 등 다양한 기사들을 바탕으로 글을 서술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정치적 문서에 따라 언론사의 입장과 내용이 다 다르므로, 그 입장과 내용을 객관적으로 서술하기 위해 조중동뿐만 아니라 jtbc, mbc, kbs, sbs, 연합뉴스, ytn, 매일경제신문 등 다양한 언론사들을 비교하며 해당 주장들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분석합니다. 이것이 교차검증입니다.
— 사용자:웬디러비

예외적인 주장을 위키백과에 싣기 위해서는 그 주장을 하는 자 자신들 이외의 다른 신뢰할 수 있는 2,3차 출처에서도 그 주장을 언급했어야 합니다. 특히, 과학적이거나 의학적인 화제들, 역사적 사건, 정치적 논란이 있는 쟁점, 생존하는 인물에 대한 글은 더욱 그렇습니다.

— 위키백과:신뢰할 수 있는 출처#예외적인 주장은 예외적인 출처를 요구합니다

어느 부분이 예외적인 주장이며 어떤 부분의 교차검증을 원하는지 알려주세요.
— 사용자:200w200w

주장 자체가 예외적인 거잖아요. 왜 자꾸 전체가 아니라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시는 지 모르겠네요.
— 사용자:웬디러비

그 이야기가 검증이 되었고, 해당 편집자만의 의견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신뢰할 수 있는 출처에서 인용해서 소개해야 합니다.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교수의 저서면 출판되고 공인된 지식의 일부가 되었다고도 할 수 있는데요? 저기서 뭘 위반했죠 대체?
— 사용자:200w200w

토론을 요약해드렸습니다. 아직도 지침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것이며, 다수의견이니까 따라라, 자신이 갖고 온 내용이 편향적이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지요?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다른 사용자들이 하고싶은 말은 서영희는 대한제국이 추구한 것이 근대 국민 국가 수립 시도 혹은 전제군주제의 근대적 변용이라고 지적하고 있다.그러나 둘은 같지 않으며, 후자가 보다 타당한 설명이라고 봐야한다. 처럼 후자가 타당한 설명이라고 본다는 주장을 통틀어 저자의 주장 자체가 널리 통용되고 있는지 확인하라, 해당(전체) 주장에 대한 다른 주장을 가지고 와라. 딱 이 얘기입니다. 이것에 대해 지침 위반을 하신 것이고, 현재 통용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되는 주장을 계속 고집하시면 그것이 지침에 위배된다는 뜻입니다.

중립적 시각 문서 내에도 있듯이, "철수는 최고의 야구선수이다."같이 의견을 표출하는 문장을 마치 사실인 듯이 쓰지 말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저자가 후자가 타당성이 있다 주장하더라도, 실제로 내용을 서술할때는 그런 주장을 제외하거나, A와 B가 무엇인지 서술한 뒤 어디가 더 타당한지에 대한, 타당성에 대한 생각은 독자가 판단하게끔 하는 것입니다. 아니면 후자가 타당하다고 하는지 그 출처 외에 널리 통용되고 있다면, 후자가 타당성이 있다는 것이 학계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정도로 서술하실 수 있고요.

그런데 본인께서는 이러한 지침들을 수용하지 않으시거나/제대로 읽어보시지 않으시고 계속 무엇이 잘못된 것이라는지 말해보라거나, 지침을 곡해, 다수의 행동을 부정적으로 호도하는 방식으로 다수 토론자들의 피로도를 높이고, 협력적인 발전 구도를 전력적으로 저하시키는 모습을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당장 위 주장에도 '공인된 지식이 아니라는 이유로 등재 미달이라는 주장은 완전히 틀린 것입니다.'라고 하셨는데, 이 마저도 상대 토론자들의 주장을 왜곡하신 것입니다. 상대 토론자들은 어디에 출판하고 그 저자가 주장했다 해서 이상한 주장이다라고 일방적으로 주장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그 주장이 공인된 지식이냐, 공인된 지식이라 하면 널리 통용된 지식을 말한다.라고 주장한 것이었습니다.

제3자로 토론을 지켜보는 입장으로서 의견을 정리해드려서 너무 토론의 길이가 길면 이해하기 힘들어질 수 있으니, 어떤 부분이 지침에 위반되었는지 숙고하시라는 마음에 정리를 해드린 것이지, 이것을 가지고 또 재차 지침과 상대의 주장을 왜곡하면서까지 자신의 주장을 펼치라고 드린 것이 절대 아님을 주지시키시기 바랍니다. 위 토론을 다시 안 읽으셔도 되니, 제3자인 저의 의견이라도 읽으시고 더이상 다수의 논리에 편승해 자신의 주장을 찍어누른다 이런 식의 토론 가치 폄하를 멈춰주시기 바랍니다. --Raccoon Dog (talk) 2020년 5월 27일 (수) 01:05 (KST)답변

그러니까 원래 이 토론의 목적은, 다른 사용자들이 제기한 문제에 대해 본인께서는 해당 주장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출처들을 가져오시면서 "아 이렇게 학계에 통용되고 있고, 공인되었고, 비중이 있는 주장이에요"를 밝히셨어야 했습니다. 해당 주장이 서울대 저자가 썼든, 그것이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학계에 통용되고 있냐가 핵심 포인트입니다. 사용자들이 토론을 하지 않고 떠나고 무시하게 된 이유는 본인께서 사건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시고 편향된 주장과 편향된 출처를 헷갈려 하시거나, 계속적인 출판사와 저자의 학력 언급, 공인된 사실이라는 단어에 대한 왜곡, 지침 왜곡 등으로 더이상 발전적인 토론의 가망성이 없다 판단, 본인의 주장을 듣지 않게 되신 겁니다.

처음에 신입 유저, 올드 유저라고 해서 무슨 일인가 해서 찾아왔는데, 이렇게 말씀드리자면 먼저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마는, 오히려 다수의 토론 사용자들이 이렇게까지 설득시키고 토론에 협력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신 것이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다시 한 번, 마지막으로 마음을 가라앉히시고, 마음을 싹 비우시고, 그냥 제 글을 여러번 천천히 정독해주시길 권장드립니다. 분쟁의 정점이 무시, 계속되는 되돌리기, 심지어는 차단까지 이어져 한 분의 기여자를 잃기 싫다는 건 심지어 다수의 협력적인 토론 사용자들도 가지고 있는 마음일거라 생각합니다. 이해가 완전히 되셨다면 토론을 이끌어왔던 토론 사용자분들께 사과의 말씀을 올리시고, 제가 제기하는 토론 방향(널리 통용되고 있냐)에 대해 적극 서술하신다면 다른 사용자 분들도 다시 마음을 여실 거라 생각합니다. --Raccoon Dog (talk) 2020년 5월 27일 (수) 01:42 (KST)답변

사용자:마요찌님이 감사표시를 했기땜에 참여합니다. 참고로 저는 이 토론에서 전혀 관계없다가 참여하게된 뉴비입니다. 제3자가 정리하지 마시고 해당자분들이 토론 참여바람니다. 어느 부분에 지침을 위반했는지 이게 왜 문서훼손인지 밝히시고 서술시점 지켜주세요.Dkdkwqp21 (토론) 2020년 5월 28일 (목) 21:01 (KST)답변

@양념파닭: 참 어이가 없네요. 갑자기 신고되어있네요. 글 내려주세요. 4일 지나지 않아서 반박도 못하잖아요.. 동일인 아닙니다. 실수로 라도 의심받게 참여한거 아닙니다. 토론 거부에 문제점 제시도 못하는 토론에는 누구라도 참여하는거 아닌가요? 그럼 저한테 감사합니다 누른 마요찌님도 신고하셔야죠. 토론으로 풀어야지 저급하게 무작정 신고만하연 토론은 왜 있나요. 어이가 없네요.Dkdkwqp21 (토론) 2020년 5월 28일 (목) 21:19 (KST)답변

되려 결백하면 떳떳하게 검사 받으셔야죠. --양념파닭 (토론 · 기여) 2020년 5월 28일 (목) 21:20 (KST)답변
이렇게 제 글을 지워버리는 걸 보니 도저히 선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군요. 글 안내릴 겁니다. --양념파닭 (토론 · 기여) 2020년 5월 28일 (목) 21:23 (KST)답변
토론도 경고도 없이 갑자기 신고하면 어떡합니까. 괜한 피해만 일으키는지 모르겠네요. 토론 불참여가 오히려 지침위반 아닌가요. 토론으로 풀어야지 그럼 토론이 왜 필요합니까.Dkdkwqp21 (토론) 2020년 5월 28일 (목) 21:26 (KST)답변
이 발언 조차도 위에 200 사용자와 매우 흡사하네요. 더더욱 동일인으로 밖에 안보이네요. --양념파닭 (토론 · 기여) 2020년 5월 28일 (목) 21:26 (KST)답변
아무리 그래도 가입한지 고작 1시간 되신 분이 바로 분쟁에 참여하시는게;; 솔직히 의심을 안할 수가 없네요. --Raccoon Dog (talk) 2020년 5월 28일 (목) 21:28 (KST)답변
참고로 저는 토론조차 뭉개버리는 상황에서 어이가 없어서 실수로 편집을 되돌렸다가 안되겠다싶어 참여한거지 동일인이 아닙니다.Dkdkwqp21 (토론) 2020년 5월 28일 (목) 21:31 (KST)답변
그걸 가입한지 얼마 안된 뉴비가 수일째 진행이 없던 본 토론을 바로 알차챈다고요? --양념파닭 (토론 · 기여) 2020년 5월 28일 (목) 21:32 (KST)답변
미친;;그럼 욕설했으니 긴급차단시켜주시죠.퍽이나 위키질하네요. 말꼬리잡지 마시고요Dkdkwqp21 (토론) 2020년 5월 28일 (목) 21:33 (KST)답변
다중계정 검사를 해보시고, 그것도 아니라면 동원계정인지 검사하면 되겠네요. 위의 200w 님의 발언에서 타 사용자가 비슷한 학설을 주장하길래 이 주장을 적었다라는 이야기가 나왔으니, 해당 사용자가 200w 님과 연관이 있는지 검사를 해보면 바로 답이 나오겠네요. 뜬금없이 등장하셔서 저의 주장이 잘못 되었다고 하셨는데, 200w 님과 동일한 주장을 반복하면 당연히 동일인 또는 관련인이라는 의심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 Yelena Belova (토론) 2020년 5월 29일 (금) 01:12 (KST)답변

200w200w (토론) 님이 착각하는 거...[편집]

200w200w (토론) 님이 전문가(대학교수)라는 사실은 잘 알겠습니다.

문제는 1인이 주장하는 연구나 그 연구결과는 독자연구에 해당합니다.

아무튼 자신이 주장이 사실임을 밝히고 싶다면, 자신의 주장+타인의 주장, 이렇게 2인의 주장을 출처로 제시해 주시면 됩니다.

참고로 김덕령 문서 보면, 각주가 1개 달린 곳도 있지만, 2개 달린 곳도 많습니다. 이건 제가 위키초보 때인 2000년대 초에 출처 한 개 달았다가 털린 적이 있어서, 2중으로 각주를 다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글+타인의 글, 각주를 첨부해 주십사 부탁드립니다. --Knight2000 (토론) 2020년 8월 27일 (목) 22:28 (KST)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