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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음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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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음방송을 듣고 오열하는 일본인들.

옥음방송(玉音放送, 일본어: 玉音放送 교쿠온호소[*]) 또는 항복 방송(降伏放送)이란 당시 일본 제국쇼와 천황무조건 항복을 알리는 〈대동아 전쟁 종결의 조서〉(大東亜戦争終結ノ詔書) 줄여서 〈종전 조서〉(終戦詔書)를 읽은 라디오 방송을 말한다. 일본 제국 정부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 즈음 일본군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여, 이 방송을 통해 일본 국민들에게 일본의 항복을 알리게 된다. 이 녹음 방송은 오키나와 전투,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만주 전략공세작전 이후인 1945년 8월 15일 일본 표준시 기준 정오NHK 라디오 방송을 통해 방송되었다.

한편 '항복 방송'에는 '무조건 항복하겠다'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다.

옥음(玉音)은 일본어에서 일본 천황의 목소리를 높여 부르는 명칭으로 알려져있다. 여기서 옥음방송(일본어: 玉音放送 교쿠온호소[*])이라는 표현을 스스로 사용하였지만 대한민국, 중국, 동남아시아에서는 그러한 자칭 '옥음 방송'의 원문 주제인 '종전 조서'를 가리키는 (일본 천황 또는 당시 최고책임자의) 항복 방송, 혹은 종전 선언이라고 지칭하여, 방송의 목적을 강조하여 부르기도 한다.[1][2]

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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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와 천황이 종전조서를 녹음했던 음반

히로히토가 종전조서 연설을 녹화했을 시, 일본군의 반발에 대비해 일본 도쿄에 히로히토가 거주하던 궁전에 있던 비밀 지하실에서 녹화했다고 한다. 히로히토는 그 연설을 두번이나 반복하며 녹화했으며, 1945년 8월 15일 새벽에 일본의 유일한 방송국이였던 NHK의 기술자들에게 녹음물들을 주었다. 일본 정부군들이 몇명 나타나서 종전을 막으려 녹음 테이프를 뺏으려 했으나, 궁전의 경비로 인하여 실패하고 말았다. 그날 아침에 NHK 라디오 방송국에서 옥음방송을 전파하는데 성공했다.[3]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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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3일 일본 내각회의에서 포츠담 선언 수락을 결정해 중립국인 스위스를 통해 전달했다. 태평양 전쟁 종전 조서는 일본 도쿄도 고쿄에서 쇼와 천황이 몇 번 수정을 거쳐 완성했고, 8월 14일 밤 11시 20분부터 NHK 운영진 8명의 도움을 받아 고쿄에 녹음시설을 설치해서 녹음했다. 총 녹음 시간은 5분이었는데, 당시의 SP 레코드에는 3분 밖에 가지 않았으므로 총 2장에 걸쳐서 녹음했다. 8월 15일 정오 방송한 내용은 와다 노부카타가 진행을 맡았고, 다음과 같이 시작했다.

只今より、重大なる放送があります。全国の聴取者の皆様、御起立願います。天皇陛下におかせられましては、全国民に対し、畏くも御自ら大詔を宣らせ給う事になりました。

これより謹みて玉音をお送り申します。

지금부터 중대하온 방송이 있겠습니다. 전국의 청취자 여러분께서는 기립하여 주십시오. 천황 폐하께옵서 황공하옵게도 전국민에 대하여 칙서를 말씀하시옵게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삼가 옥음을 보내드리겠습니다.

그 다음 기미가요가 연주되었고, 천황이 종전조서를 읽으며 옥음방송이 시작되었다. 방송 내용은 다음과 같다.

원문(문어) 한국어 번역

朕󠄁深ク世界ノ大勢ト帝󠄁國ノ現狀トニ鑑ミ非常ノ措置ヲ以テ時局ヲ收拾セムト欲シ茲ニ忠良ナル爾臣民ニ吿ク
朕󠄁ハ帝󠄁國政府ヲシテ米英支蘇四國ニ對シ其ノ共同宣言ヲ受諾スル旨通󠄁吿セシメタリ
抑〻帝󠄁國臣民ノ康寧ヲ圖リ萬邦󠄁共榮ノ樂ヲ偕ニスルハ皇祖皇宗ノ遺󠄁範ニシテ朕󠄁ノ拳々措カサル所󠄁
曩ニ米英二國ニ宣戰セル所󠄁以モ亦實ニ帝󠄁國ノ自存ト東亞ノ安定トヲ庻幾スルニ出テ他國ノ主權ヲ排シ領土ヲ侵󠄁スカ如キハ固ヨリ朕󠄁カ志ニアラス
然ルニ交戰已ニ四歲ヲ閱シ朕󠄁カ陸海將兵ノ勇󠄁戰朕󠄁カ百僚有司ノ勵精朕󠄁カ一億衆庻ノ奉公各〻最善ヲ盡セルニ拘ラス戰局必スシモ好轉セス
世界ノ大勢亦我ニ利アラス
加之敵ハ新ニ殘虐ナル爆彈ヲ使󠄁用シテ頻ニ無辜ヲ殺傷シ慘害ノ及フ所󠄁眞ニ測ルヘカラサルニ至ル
而モ尙交戰ヲ繼續セムカ終󠄁ニ我カ民族ノ滅亡ヲ招來スルノミナラス延テ人類ノ文󠄁明ヲモ破却スヘシ
斯ノ如クムハ朕󠄁何ヲ以テカ億兆ノ赤子ヲ保シ皇祖皇宗ノ神靈ニ謝セムヤ
是レ朕󠄁カ帝󠄁國政府ヲシテ共同宣言ニ應セシムルニ至レル所󠄁以ナリ
朕󠄁ハ帝󠄁國ト共ニ終󠄁始東亞ノ解放ニ協力セル諸盟邦󠄁ニ對シ遺󠄁憾ノ意ヲ表セサルヲ得ス
帝󠄁國臣民ニシテ戰陣ニ死シ職域ニ殉シ非命ニ斃レタル者及其ノ遺󠄁族ニ想ヲ致セハ五內爲ニ裂ク
且戰傷ヲ負ヒ災禍ヲ蒙リ家業ヲ失ヒタル者ノ厚生ニ至リテハ朕󠄁ノ深ク軫念スル所󠄁ナリ
惟フニ今後帝󠄁國ノ受クヘキ苦難ハ固ヨリ尋常ニアラス
爾臣民ノ衷情󠄁モ朕󠄁善ク之ヲ知ル
然レトモ朕󠄁ハ時運󠄁ノ趨ク所󠄁堪ヘ難キヲ堪ヘ忍󠄁ヒ難キヲ忍󠄁ヒ以テ萬世ノ爲ニ太平󠄁ヲ開カムト欲ス
朕󠄁ハ茲ニ國體ヲ護持シ得テ忠良ナル爾臣民ノ赤誠ニ信倚シ常ニ爾臣民ト共ニ在リ
若シ夫レ情󠄁ノ激スル所󠄁濫ニ事端ヲ滋󠄁クシ或ハ同胞󠄁排擠互ニ時局ヲ亂リ爲ニ大道󠄁ヲ誤󠄁リ信義ヲ世界ニ失フカ如キハ朕󠄁最モ之ヲ戒ム
宜シク擧國一家子孫相傳ヘ確ク神州ノ不滅ヲ信シ任重クシテ道󠄁遠󠄁キヲ念ヒ總力ヲ將來ノ建設ニ傾ケ道󠄁義ヲ篤クシ志操ヲ鞏クシ誓テ國體ノ精華ヲ發揚シ世界ノ進󠄁運󠄁ニ後レサラムコトヲ期スヘシ
爾臣民其レ克ク朕󠄁カ意ヲ體セヨ

御名御璽
昭和二十年八月十四日
內閣總理大臣鈴木貫太郞

짐은 깊이 세계의 대세와 제국의 현상(現狀)에 비추어보아 비상의 조치로써 시국을 수습하고자 하여 여기에 충량(忠良)한 그대 신민에 고하노라

짐은 제국정부로 하여금 미·영·지·소(美英支蘇) 4국에 대하여 그 공동선언을 수락할 뜻을 통고하게 하였다

애당초 제국신민의 강녕을 꾀하고 만방공영(萬邦共榮)의 낙을 함께함은 황조황종(皇祖皇宗)의 유범이요 짐이 비손하여 마지않는 바
일찍이 미·영 2국에 선전(宣戰)한 소이 또한 실로 제국의 자존과 동아의 안정을 서기(庶幾)함에서 나온 것이니 타국의 주권을 배척하고 영토를 침범하는 따위는 보니 짐의 뜻이 아니었느니라
그럼에도 교전은 벌써 4년을 경과하고 짐의 육해장병(陸海將兵)의 용전, 짐의 백료유사(百僚有司)의 여정(勵精), 짐의 일억중서(一億衆庶)의 봉공 각각 최선을 다했음에도 전국은 결코 호전되었다 할 수 없고
세계의 대세 역시 우리에 이롭지 아니하며
더구나 적은 새로이 잔학한 폭탄을 사용하여 잇따라 무고한 이를 살상하여 그 참해(慘害)가 미치는 바 참으로 측량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느니라
하물며 아직도 교전을 계속하고자 함은 결국 우리 민족의 멸망을 초래할 뿐 아니라 나아가서 인류의 문명조차 파각할 것이라
이러할진대 짐은 어이 억조의 적자(赤子)를 지키고 황조황종(皇祖皇宗)의 신령께 사죄하랴
이것이 짐이 제국정부로 하여금 공동선언에 응하게끔 한 소이이니라
짐은 제국과 더불어 종시(終󠄁始) 동아의 해방에 협력한 제(諸) 맹방에 대하여 유감의 뜻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제국신민으로서 전진(戰陣)에서 죽고 직역에서 순(殉)하고 비명에 스러진 자 및 그 유족에 생각이 미치매 오장이 찢기는 듯하노라
아울러 전상을 입고 재화를 당하고 가업을 잃은 자의 후생에 이르러는 짐이 깊이 진념하는 바이라
생각건대 금후 제국이 받을 고난은 분명히 예사롭지 않을지라
그대 신민의 충정을 짐은 족히 아노라
그럼에도 짐은 시운이 향하는 바 견디기 어려움을 견디고 참기 어려움을 참아 만세를 위하여 태평을 열고자 하노라
짐은 이에 국체를 호지하며 충량한 그대 신민의 적성(赤誠)을 신의하여 언제나 그대 신민과 함께하노니
만일 감정이 격해지는 바 함부로 사단을 번잡케 하고 또는 동포를 배제하여 서로 시국을 어지럽힘으로써 대도를 벗어나고 신의를 세계에서 잃게 되는 따위는 짐이 가장 경계하는 바이니라
모름지기 거국 일가 자손 상전(相傳)하여 굳게 신주(神州)의 불멸을 믿고 소임을 무겁게 여기고 갈 길의 멂을 생각하고 총력을 장래의 건설에 기울여 도의를 두텁게 하고 지조를 굳건케 하고 맹세코 국체의 정화를 발양하여 세계의 진운(進󠄁運󠄁)에 뒤떨어지지 않게끔 기약하라
그대 신민은 짐의 뜻을 잘 명심하고 지키라

이 다음, 다시 한번 기미가요가 방송되면서 종료되었다.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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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K에서 녹음을 틀어 방송했을 당시 소리의 질이 매우 안 좋았으며, 그 때문에 목소리에 잡음이 너무 많이 섞이고 라디오 수신이 너무 약해서 방송을 알아 듣기 매우 힘들었다고 전해진다.

또는 히로히토가 선언에 이용한 단어들과 언어 계급이 너무 높아, 대부분 사람들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일반 일본어 대신 일본어의 문어를 이용했고, 매우 선언적인 말투를 이용해서 대부분 사람들은 아예 못 알아들었다.[3]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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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 6쪽 5쪽 - 4쪽 3쪽 - 2쪽 1쪽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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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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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중앙일보-70년 전 히로히토 일왕 항복 선언 방송 들어보니…)https://www.joongang.co.kr/article/18370447
  2. (조선일보 - 日王의 항복선언 안믿어… 8월 15일 당일 서울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1/01/2015010100231.html Archived 2019년 3월 7일 - 웨이백 머신
  3. O'Flynn, Elaine (2015년 8월 1일). “Crumbling walls that witnessed the end of World War II: Eerie images reveal the bunker where Emperor Hirohito announced Japan's surrender after 'cruel' bombing of Hiroshima and Nagasaki”. 《DailyMail.com》.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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