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노 도모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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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노 도모유키
菅野 智之

Tomoyuki Sugano
요미우리 자이언츠 No.18
Giants suganotomoyuki19.JPG

2016년 촬영

기본 정보
국적 일본
생년월일 1989년 10월 11일(1989-10-11) (30세)
출신지 가나가와현 사가미하라시 미나미구
신장 186 cm
체중 95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우투우타
수비 위치 투수
프로 입단 연도 2012년
드래프트 순위 1순위
첫 출장 2013년 3월 30일
연봉 6억 5,000만 엔(2019년)[1]
경력
일본 국가대표팀
WBC 2017년
프리미어 12 2015년
스가노 도모유키
일본어식 한자 표기: 菅野 智之
가나 표기: すがの ともゆき
국립국어원 표준 표기: 스가노 도모유키
통용 표기: 스가노 토모유키
로마자: Tomoyuki Sugano

스가노 도모유키(일본어: 菅野 智之, 1989년 10월 11일 ~ )는 일본의 프로 야구 선수이며, 현재 센트럴 리그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소속 선수(투수)이다. 가나가와현 사가미하라시 미나미구[2] 출신이다.

외가 쪽 할아버지는 도카이 대학부속 사가미 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을 맡았던 하라 미쓰구이며 외가의 백부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감독인 하라 다쓰노리이다.

인물[편집]

프로 입단 전[편집]

가나가와현 사가미하라시 출신으로 초등학생이 되기 직전인 1995년 10월 8일에 숙부 하라 다쓰노리의 은퇴 경기를 관전한 것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했다.[주 1] 연식 소년 야구 클럽에 소속돼 당시부터 투수를 맡았다. 중학교 시절에는 3학년 때 소속 현(가나가와현) 대회에서 우승을 이끌었고 간토 대회에서도 8강에 진출했다.

도카이 대학부속 사가미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후에는 2학년 가을부터 주전으로 활약하여 최고 속도 148 km/h를 측정하는 등 프로 구단으로부터 주목을 받았으나 고시엔 대회에 한 번도 출전하지 못했다.[주 2] 3학년 때 하계 가나가와 대회(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가나가와 대회) 준결승전인 요코하마 고등학교와의 경기에서는 타자로서 ‘낫아웃 3점 홈런’이라는 진기록을 달성하는 등 6대 4로 승리했으나 이후 결승전에서는 도코가쿠엔 고등학교한테 8대 10으로 패했다. 고교 시절 야구부에서의 동기인 다나카 고스케, 1년 후배에 해당되는 오타 다이시가 있으며 특히 다나카와는 대학에서도 동기였다.

고교 졸업 후 도카이 대학에 진학하여 경식 야구부에 입단, 1학년 가을부터 주전으로 발탁돼 2학년 춘계 시즌부터 4시즌 연속으로 수도 대학 리그의 우수 투수로 선정됐고 2학년 때는 제37회 미일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 일본 국가대표와 제25회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일본 국가대표로 발탁됐을 뿐만 아니라 U-26 NPB 선발 vs 대학 일본 대표로도 발탁됐다. 3학년 봄에 열린 전일본 대학야구 선수권 대회에서는 준준결승전인 도시샤 대학과의 경기에서 7이닝 동안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고 준결승전인 게이오기주쿠 대학과의 경기에서는 최고 속도 155km/h를 측정하여 4피안타 17탈삼진의 호투로 완봉승을 얻었으나 결승에서 후지오카 다카히로가 소속된 도요 대학에게 패했다. 여름에 열린 제5회 세계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는 예선 리그인 쿠바전의 알프레도 데스파이그네에 대항해 타석에서 개인 최고 속도 기록인 157km/h을 기록했다. 4학년 추계 시즌에는 리그 신기록인 통산 14차례의 완투를 기록하여 팀의 리그 우승 달성에 기여했고 최고 수훈 선수와 최우수 투수, 베스트 나인, 특별 공로상을 연거푸 수상했다. 수도 대학 리그에서의 통산 성적은 37승 4패, 평균 자책점은 0.57, 347개의 탈삼진을 남겼다. 대학 시절 야구부에서의 1년 선배는 이시미네 쇼타, 동기로는 위에서 말한 다나카 고스케가 있으며 1년 후배는 사카구치 마사키, 후시미 도라이가 있다. 특히 포수인 후시미와는 2년 이상 배터리를 짜고 있었다.

드래프트 회의를 둘러싼 배경[편집]

2011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는 노무라 유스케(메이지 대학), 후지오카 다카히로(도요 대학)와 함께 ‘대학 빅3’로 불리며 주목을 받았다.[4] 숙부 하라 다쓰노리가 감독을 맡고 있는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단독 지명한다는 소문이 파다했으나[5]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도 1순위로 지명해 추첨 결과 닛폰햄이 교섭권을 획득했다. 드래프트 후에는 조부인 하라 미쓰구가 닛폰햄의 사전 인사없이 강행한 지명을 ‘인권 유린’이라고 비난하는 발언을 했다.[6]

11월 7일에는 닛폰햄의 지명 인사에 동석하여 진로에 대해서는 “눈앞의 일 뿐만 아니라 그 이후의 야구 인생을 생각하여 판단하고 싶다”고 말했으나[7] 21일에는 닛폰햄의 입단을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8] 사회인 야구와 일본 국내 독립 리그, 해외의 프로 리그 등에 진출할 경우 2년간 지명받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프로·아마 그 어떤 구단에도 소속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학 재수를 하기로 결심했다.[9] 도카이 대학의 졸업 연기 제도를 이용해서 그대로 대학에 남고[10] 도카이 대학의 연습 시설을 사용하여 자유 연습을 하는 등 다음 해 이후의 드래프트 지명을 기다리게 됐다.[8] 입단 거부의 이유로는 “닛폰햄으로부터 여러 이야기를 듣고 영광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나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꿈이 컸었다”라고 말했고[11] 결정적인 이유였던 ‘어렸을 적부터의 꿈’에 대해서는 “(말로하는 것은)어렵지만, 어떨까요…. 이해해주세요”라고 말했다.[12]

이에 대해 닛폰햄은 “이 정도로 포기할 거면 애초부터 지명하지도 않았다. 교섭 기간이 거의 끝날 때까지 계속 설득할 생각이다”라고 했지만[13] 교섭 기간 마지막 날인 2012년 3월 31일에 스가노의 영입을 포기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14] 그 후 한때는 이듬해 드래프트에서 재지명할 가능성도 있다고 공언했지만[주 3][15] 나중에는 그 방침을 바꿔서 닛폰햄의 야마다 마사오 단장이 “우리로서는(1위는) 그 해에 가장 위력적인 선수이다. 1년간의 공백이 있었음을 감안할 때 (스가노가)제일 위력적인 투수는 아니라고 본다”라는 이유를 들어 지명을 안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실제로 오타니 쇼헤이를 1순위로 지명했다.[주 4][16] 동시에 그 해 드래프트에서 의중이 있던 구단 이외의 구단이 교섭권을 획득한 경우에 대해 요코이 히토키 도카이 대학 감독이 “미국에 갈 거라고 본다. 야구 유학도 포함해서 본인도 여러 모로 흥미가 있는 것 같다”라고 말하는가 하면,[17] 스가노 본인도 “작년하고 또다시 같은 일이 벌어지기라도 한다면… 뭐라고 해야 할까…. 일본에서 야구를 하기 싫어질지도 모르겠다”라고 발언한 것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로부터 발송된 조사서의 수취 거부한 적도 있는 등[18][19] 이러한 스가노의 행동에 대해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의 다카다 시게루 단장과 나카하타 기요시 감독,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호시노 센이치 감독 등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20][21]

도카이 대학의 졸업연기제도를 이용해서 계속 다니는 재수생이었지만 재수 생활하는 동안에는 대학 야구 규정에 따라 대외 경기 출전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도카이 대학 야구부를 연습 거점으로 삼아 공던지기나 팀 동료를 상대로 한 홍백전, 또는 시트 타격에 등판하는 등 실전 감각으로부터 멀어지지 않도록 애썼다. 다만 홍백전이나 시트 타격에서의 등판은 긴장감이나 중압감이 있는 점에서 실전과는 다르기 때문에 공백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22] 스가노 자신은 대학 야구뿐만 아니라 고교 야구나 일본 프로 야구, 미국 메이저 리그 등을 적극적으로 관전한 것이 야구 선수로서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한다. 2012년 1월 말부터 한 달 반 동안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체류하여 메이저 리그 선수들을 비롯한 여러 경기의 운동 선수들이 모이는 시설에서 천웨이인에게서 왕젠민을 소개받아 조언을 받기도 했다.[23]

그러다가 10월 25일에 열린 드래프트 회의에서 당초에는 DeNA나 라쿠텐도 지명 가능성을 공언했으나 결국은 요미우리의 단독 1순위 지명을 받아 예전부터 열망하던 요미우리와의 교섭권을 획득했다. 드래프트 회의 후에는 숙부이자 요미우리 감독이기도 한 하라 다쓰노리가 도카이 대학을 방문해서 등번호 19번과 이름이 들어간 요미우리 유니폼을 건네주었다.[24] 같은 해 11월 21일에 입단 계약을 맺었고[25] 11월 23일에 개최된 팬 감사 데이에서 입단을 공식 발표했다.[26]

프로 입단 후[편집]

2013년[편집]

스가노 도모유키(2014년)

3월 30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도쿄 돔)에서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선발 등판해 7이닝 동안 5피안타 9탈삼진 1실점의 내용으로 호투했으나 경기는 연장 12회에 1대 1 무승부로 끝나 승패는 연결되지 않았다.[27] 4월 6일 주니치 드래건스전(도쿄 돔)에서는 8이닝 동안 6피안타 4실점을 기록하여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승리 투수가 됐다.[28] 5월 4일 히로시마전(도쿄 돔)에서는 자신의 프로 첫 안타와 첫 타점을 기록했고 6월 15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전(후쿠오카 야후오쿠! 돔)에서 프로 첫 완투승을 달성했다.[29] 올스타전에서는 감독 추천으로 출전해[30] 2차전(메이지 진구 야구장)에 선발로 나와 2이닝 동안 2피안타 1실점을 기록했다.[31] 리그 우승이 걸린 9월 22일 히로시마전(도쿄 돔)에서는 8이닝 1실점의 호투로 승리 투수가 됐고 자신에게 있어서는 처음이자 팀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32]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오가와 야스히로, 한신 타이거스후지나미 신타로와의 신인왕 경쟁에 뛰어들었고[33] 그 해에는 팀내 1위 타이 기록에 해당되는 13승을 거두며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승률도 팀내 1위 타이, 평균 자책점, 탈삼진, 이닝 수는 팀의 최고 성적). 리그 신인왕은 놓쳤지만(16승을 거둔 오가와가 수상) 후지나미와 함께 신인 특별상을 수상했다. 히로시마와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도쿄 돔)에서는 2차전에 선발 등판하여 마에다 겐타와 투수전을 펼쳤는데 9이닝 동안 3피안타 11탈삼진의 호투로 센트럴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사상 초유의 완투, 완봉승을 거뒀고[34] 이 공로로 클라이맥스 시리즈 MVP를 수상했다.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의 일본 시리즈에서는 2차전과 6차전에 각각 선발로 나와 모두 금년 시즌의 공식전부터 무패를 기록했던 다나카 마사히로와 투수전을 펼쳐 2차전에서는 5이닝 동안 2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면서 라쿠텐에게 구단 최초의 일본 시리즈 첫 승리를 헌납했지만[35] 6차전에서는 7이닝 동안 2실점의 호투로 승리 투수가 되면서 다나카에게 그해 시즌 공식전과 포스트 시즌을 통해서 유일한 패배를 안겼다.[36] 하지만 팀은 7차전에서 패하여 3승 4패의 성적으로 일본 시리즈 우승을 놓쳤다. 11월에는 ‘2013 BASEBALL CHALLENGE 일본 VS 중화 타이베이’의 일본 대표팀에는 발탁되지 않아 데뷔 후 첫 대표팀 발탁에는 이루지 못했다.[37]

2014년[편집]

3월 28일 한신전(도쿄 돔)에서 자신의 첫 개막전 선발 투수를 맡아 7이닝 동안 피안타 8개, 4실점(무자책점)을 남기면서도 타선의 지원을 받고 시즌 첫 승리 투수가 됐다. 입단 2년차까지의 투수가 개막전에서 승리를 거둔 사례는 요미우리에서는 1960년 이토 요시아키 이래 54년 만의 일이다. 4월 29일 야쿠르트전(도쿄 돔)에 선발 등판하여 9이닝 동안 7피안타 4실점의 호투로 완투 승리를 거둬 요미우리 구단에서 역대 4번째가 되는 ‘4월 중에 리그 전체 구단 승리’를 달성했다. 드래프트제 도입 이후로는 구단 사상 최초의 기록이다.[38] 이러한 활약을 인정받아 그해 3, 4월의 월간 MVP를 수상했다. 올스타전에서 자신으로서는 처음으로 선수간 투표에서 1위로 출전했다.[39] 8월 4일에는 오른손 가운뎃손가락의 염증으로 데뷔 후 처음으로 1군 등록이 말소됐고 8월 23일에도 허리 통증을 호소하여 불펜에서 회피했다. 9월에 복귀하면서 최종적으로 12승 5패, 평균 자책점 2.33의 성적으로 자신의 첫 타이틀인 최우수 평균 자책점을 차지했고 자신의 2번째인 팀의 리그 우승에 기여했지만 시즌 종반인 10월 2일 야쿠르트전(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 오른손 가운뎃손가락 염증과 오른쪽 팔꿈치 인대 손상의 영향으로 포스트 시즌(도쿄 돔에서 열린 파이널 스테이지의 한신전)에서의 등판은 이루지 못했다.[40] 그 결과 자신의 부상 이탈로 크게 영향을 주면서 팀은 클라이맥스 시리즈 사상 최초로 4연패를 당해 어드밴티지를 포함한 1승 4패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그 우승에 기여한 것을 인정받아 센트럴 리그 MVP베스트 나인을 석권했다.[41] 그 후 부상의 영향으로 11월에 개최된 미일 야구의 대표팀에는 선출되지 않았다.

2015년[편집]

3월 28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전(도쿄 돔)에서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개막전 선발 투수를 맡아 7이닝 동안 5탈삼진, 1실점의 호투로 시즌 첫 승리를 거뒀다. 5월 19일 한신전(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프로 3년 차에 첫 완봉 승리를 기록했다. 5월 31일에는 목 통증 때문에 등록이 말소했지만 6월 10일에 복귀했다.[42] 올스타전에서는 감독 추천으로 출전했다.[43] 정규 시즌에서의 최종 성적은 10승 11패, 평균 자책점 1.91을 남겨 프로 입단한 이후부터 3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기록했다. 하지만 호투해도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한 때가 많아지는 것과 승리 투수 자격을 얻고 강판된 후에 계투진들의 제구력 난조로 승리가 날아가는 일이 많아지면서 처음으로 승수보다 패전 수를 앞서는 암울한 시즌을 보냈다(평균 자책점은 센트럴 리그 및 양대 리그에서의 규정 투구 이닝을 채운 투수 중에서 2위에 해당되는 성적이었다). 팀도 리그 2위를 기록하며 우승을 놓쳤다.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 한신전에서는 2차전에 등판하여 랜디 메신저와 투수전을 펼쳤는데 4이닝 4실점(3자책점)으로 패전 투수가 됐다.[44] 하지만 팀은 2승 1패의 성적으로 파이널 스테이지에 진출했다. 야쿠르트와 맞붙은 파이널 스테이지에서는 3차전에 선발 등판하여 다테야마 쇼헤이와 투수전을 펼치는 등 6이닝 2실점의 호투를 보였지만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한 채 또다시 패전 투수가 됐고[45] 팀은 야쿠르트의 어드밴티지를 포함한 1승 4패의 성적으로 탈락했다. 10월 9일에는 제1회 WBSC 프리미어 12 일본 대표팀의 최종 로스터 28인 명단에 이름이 오르면서 데뷔 후 처음으로 일본 대표팀 멤버가 됐다.[46] 11월 21일 멕시코와의 3위 결정전에서 팀의 두 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해 프로 입문 후 자신의 최고 속도가 되는 155km/h를 측정했다.[47] 팀은 이 경기에서 승리했고 일본 대표팀은 프리미어 12를 3위로 마쳤다. 프리미어 12에서의 개인 성적은 1승 0패, 7이닝 3실점, 평균 자책점 3.86을 남겼다.

2016년[편집]

‘압도’(圧倒)를 주제로 내걸고 자율 훈련에선 원심을 습득하면서 시즌에 임했다.[48] 3월에는 ‘사무라이 재팬 평가전 일본 vs 일본 VS 중화 타이베이’의 일본 대표팀 26인 엔트리에 오르면서 첫 경기에 선발 등판해 3이닝 무실점의 호투로 승리 투수가 됐다.[49] 정규 시즌인 3월 25일 야쿠르트전(도쿄 돔)에서 3년 연속 개막전 선발 투수를 맡아 7이닝 무실점의 호투로 1993년부터 1996년에 걸쳐 사이토 마사키 이래가 되는 3년 연속 개막전에서의 선발 승리 투수가 되는 위업을 달성했다. 4월 6일 한신전(도쿄 돔)에서 자신으로서는 처음으로 무볼넷 및 도쿄 돔에서의 완봉 승리를 거두었고 4월 13일 야쿠르트전(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 2경기 연속 완봉 승리를 거둔 것과 동시에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길 수 없었던 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의 첫 승리를 기록했다. 4월엔 4경기에서 33이닝을 무자책점, 월간 평균 자책점 0.00을 기록한 공로로 월간 MVP에 선정됐다.[50] 5월 13일 야쿠르트전에서 33이닝 만에 볼넷을 내줬지만 구단 역사상 4번째가 되는 3경기 연속 두 자릿수 탈삼진을 기록했다.[51] 올스타전에도 처음으로 팬 투표 1위에 선정됐고 4년 연속으로 출전했다.[52]

8월 5일에 왼쪽 엄지 발가락 부상이 일어나면서 다음날에 등록이 말소했지만 8월 16일에 복귀했다.[53]이후에도 시즌 내내 평균 자책점은 1점 대 후반을 달리다가 마지막 등판인 주니치전(도쿄 돔)에서 5이닝 2실점으로 강판한 시점에서 평균 자책점이 2점 대로 접어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우수 평균 자책점과 최다 탈삼진 타이틀을 획득했고 골든 글러브상도 수상했다. 하지만 팀 타선의 지원이 없어서 승수가 늘어나지 않자 시즌 성적은 9승에 그쳤고 프로 입단 후 처음으로 두 자릿수 승리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팀은 리그 2위로 시즌을 마치면서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는데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 상대인 DeNA전에서는 컨디션 난조로 등판을 피했지만 팀은 1승 2패를 기록하여 파이널 스테이지 진출에는 실패했다. 오프인 10월 18일에 ‘사무라이 재팬 - 야구 네덜란드 대표, 야구 멕시코 대표 평가전’의 일본 대표로 발탁됐으나[54] 컨디션 난조로 출장 등록은 말소됐다. 경기에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팀에 함께하면서 대표팀의 뜨거운 충성심을 보였다.[55]

2017년[편집]

제4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팀 선수로 발탁돼 감독인 고쿠보 히로키에게서 에이스로 지명됐다.[56] 특히 준결승 상대인 미국전에서는 가랑비가 내리는 등 기상 상황이 좋지 않은 와중에 4번 놀란 아레나도를 삼진 3개로 잡는 등 6이닝 1실점(피안타 3개, 무자책점)으로 호투했다. 미국 대표팀 짐 릴랜드 감독은 “그는 메이저 리그의 투수와 같은 투구를 보여줬다”라고 찬사를 보냈다.[57] 또한 미국 대표팀의 크리스천 옐리치는 이날 등판한 스가노와 센가 고다이에 대해서 “팀내에서 화제가 될 정도로 대단했다. 당장이라도 메이저 리그에 진출할 수 있다”라고 칭찬했다.[58] WBC에서 개인 성적은 승패없이 14와 1/3이닝을 던져 6실점(5자책점), 평균 자책점 3.14를 기록했다.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 끝난 후에도 호조를 유지하고 개막전 선발 투수 자리를 마일스 미콜라스에게 내줬지만 그해 4월 18일 야쿠르트전에서 5월 2일 DeNA전까지 3경기 연속 완봉 승리를 달성했다. 리그에서는 1989년에 사이토 마사키가 달성한 지 28년 만의 기록이었다.[59] 올스타전에도 2년 연속 팬 투표 1위에 선정됐고 5년 연속 출전했다. 최종적으로 팀은 4위로 마치며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지 못했지만 개인 성적은 25경기에 등판하여 17승 5패, 평균 자책점 1.59의 높은 성적을 남겼는데 17승 이상으로 평균 자책점 1.60 미만은 센트럴 리그에서는 무라야마 미노루 이후 51년 만의 일이다.[60] 이 같은 좋은 성적으로 다승왕과 최우수 평균 자책점 타이틀을 동시에 석권했을 뿐만 아니라 베스트 나인과 골든 글러브상도 수상했다. 그리고 헤이세이 시대에 태어난 선수로는 처음으로 사와무라 에이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61] 요미우리 투수의 사와무라 에이지상 수상은 2002년의 우에하라 고지 이후 15년 만의 일이다. 시즌 오프인 12월 12일에 가진 인터뷰에서 앞으로의 메이저 리그 도전 가능성에 대해 “나는 아직 그(오타니 쇼헤이)만큼의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해외 FA권 취득까지)앞으로 3,4년은 있지만 착실하게 절대적인 실력을 쌓고 불평없이 갈 수 있도록 거기까지 해 둘 것이다”[62]라고 말했다. 더 나아가 2020년 도쿄 올림픽에 대해 “살아있을 때 한 번 있을까 말까, 꼭 나가고 싶고 그때까지 최전선에서 있고 싶다”[63]라고 의지를 보였다.

2018년[편집]

스프링 캠프에서는 새로운 싱커를 습득했다.[64] 3월 30일, 한신과의 개막전에서 2년 만이자 자신으로서는 네 번째 개막전 선발 투수를 맡았지만 제구력 난조로 7이닝 5실점을 기록하며 패전 투수가 됐고 시즌 두 번째 등판인 4월 6일 야쿠르트전에서도 6이닝 5실점이라는 부진한 성적으로 자신의 첫 개막 2연패 수렁에 빠졌다. 이에 따라 새로운 구종인 싱커를 봉인하고 나선 4월 13일 히로시마전에서는 8이닝 1실점의 호투로 시즌 첫 승리 투수가 됐다.[65] 이 성적으로 자신의 연패와 팀의 6연패를 동시에 끊었다. 5월 11일 주니치전에서는 피안타 5개를 비롯해 자신의 최다 타이 기록인 13탈삼진을 기록하여 완봉승을 거뒀다. 5월 18일 DeNA전(도쿄 돔)에서는 쓰쓰고 요시토모에게 홈런을 맞아 연속 이닝 무실점은 29와 2/3이닝으로 멈췄지만 타격면에서는 상대 투수 이시다 겐타로부터 프로에 입문한 지 320타석 만에 첫 홈런을 때려냈다.[66] 6월 15일 지바 롯데 마린스전(ZOZO 마린 스타디움)에서 완봉승을 따내며 자신이 소속돼 있는 요미우리를 제외한 전체 11개 구단을 상대로 승리를 달성했다.[67] 올스타전에서는 선수간 투표 1위에 선정됐고 6년 연속 출전했다.[68] 7월 28일 주니치전(도쿄 돔)에서 프로 통산 1000투구 이닝에 도달했다.[69]

시즌 종반인 9월 이후에는 3경기 연속 완봉 승리 등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을 놓고 경쟁하는 팀에 큰 기여를 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이 걸려있는 시즌 최종전인 10월 9일 한신전(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팀이 5점 차로 앞선 9회에 구원 등판해 1이닝 무실점으로 막아내면서 팀은 정규 시즌 3위로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진출했다.[70] 타이틀도 다승왕, 최우수 평균 자책점, 최다 탈삼진 등을 석권한 것을 비롯하여 기록면에서는 자신의 첫 투수 부문 3관왕(역대 19번째)에 더해 200투구 이닝과 200탈삼진을 달성했다(요미우리 구단에서는 1981년 에가와 스구루 이후 37년 만의 기록). 또한 3년 연속 최우수 평균 자책점은 1958년 이나오 가즈히사 이래 역대 두 번째, 시즌 8차례의 완봉 승리는 1978년 스즈키 게이시 이래 40년 만(요미우리 구단에서는 1963년 이토 요시아키 이래 55년 만의 기록)의 쾌거[71]를 이뤘다. 그리고 10월 14일에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 2차전인 야쿠르트전(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 하라 주리와 투수전을 펼쳐 자신의 첫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고 팀의 파이널 스테이지 진출에 큰 역할을 했다(참고로 노히트 노런은 클라이맥스 시리즈 사상 최초). 이 경기에서 출루를 허용한 것은 야마다 데쓰토에게 볼넷 한 개를 내준 것이 전부였다.[72] 팀은 2승 무패의 성적으로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승리했지만 계속되는 파이널 스테이지에서의 히로시마전에서 3연패를 당해 히로시마의 어드밴티지를 포함한 0승 4패라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며 탈락했다. 그리고 자신의 파이널 스테이지에서의 등판 기회는 없었다. 그 후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베스트 나인과 골든 글러브상도 수상했고 10월 29일에는 역대 5번째로 2년 연속 사와무라 에이지상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헤이세이 시대의 마지막 사와무라 에이지상을 수상했다(사와무라 에이지상의 여러 차례 수상은 역대 14번째). 또한 이 해에 본인으로서는 사와무라 에이지상 선정 기준의 전체 항목을 모두 채워서 수상한 것이었다.[73][74]

미일 야구 일본 대표팀 선수로 발탁됐지만 편도선 수술 때문에 출전을 포기했고[75] 12월 17일에 있은 연봉 협상에서는 6억 5,000만 엔으로 서명하면서 요미우리 구단 역사상 최고 연봉이자 일본인 선수 기준으로 사사키 가즈히로와 함께 역대 최고 연봉 타이 기록을 세웠다.

2019년[편집]

그 해부터 등번호를 18번으로 변경하면서 시즌을 맞이했고[76] 3월 29일 히로시마와의 개막전(마쓰다 스타디움)에서는 2년 연속으로 통산 5번째 개막전 선발 투수를 맡았지만 7이닝 동안 아베 도모히로의 솔로 홈런으로 1점을 막아냈으나 팀 타선이 히로시마의 개막전 선발 투수로 등판한 오세라 다이치에게 막혀 부진에 시달리는 등 전년도에 이어 개막전 패전 투수가 됐다. 4월 5일에 열린 DeNA전(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는 9이닝 동안 137개의 공으로 네프탈리 소토, 쓰쓰고 요시토모에게서 솔로 홈런을 맞았지만 2실점의 호투로 완투승을 올리는 등 시즌 첫 승리 투수가 됐다. 5월 1일 주니치전(도쿄 돔)에서는 9이닝을 10탈삼진 1실점으로 완투승을 따내 새 연호인 ‘레이와 제1호 승리 투수’와 함께 프로 통산 1000탈삼진을 기록했다. 5월 7일 DeNA전(니가타)에서는 6이닝 5실점(4자책점)으로 팀 타선의 지원을 받고 승리 투수가 됐다. 또한 스가노가 5실점 이상 중에서 승리를 기록한 것은 데뷔 후 처음있는 일이다.[77]

5월 21일에는 허리 통증으로 등록이 말소됐지만 센트럴·퍼시픽 교류전인 6월 9일 지바 롯데전(도쿄 돔)에서 복귀하여 6이닝 2실점의 호투로 승리 투수가 됐다.[78] 6월 16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전(삿포로 돔)에서도 7이닝 3실점의 호투로 승리 투수가 됐지만[79] 교류전 우승이 걸려있는 6월 23일 소프트뱅크전(도쿄 돔)에서는 첫회에 후쿠다 슈헤이에게서 선두 타자 홈런을 맞는 등 4실점(2자책점)을 내줬고 2회에 투수이자 선두 타자인 와다 쓰요시에게 볼넷을 내주는 등 제구력에 문제를 드러내며 패전 투수가 됐다. 이로써 팀은 5년 만의 교류전 우승을 놓쳤고 1과 3이닝에서 강판된 사례는 자신으로선 프로 입단 후 가장 짧은 기록이다.[80] 7월 2일 주니치전(도쿄 돔)에서는 단 한 개의 볼넷을 허용하지 않고 시즌 첫 완봉승을 거두었다.[81] 올스타전에서는 감독 추천으로 선정되면서 7년 연속 출전했는데 2차전에 선발 등판했다. 이 경기에서는 2이닝 무실점으로 타선의 지원을 받는 등 올스타전에 있어서 자신의 생애 첫 승리 투수가 됐다.[82][83]

8월 21일 주니치전(나고야 돔)에서 시즌 10승을 거두며 3년 연속 6번째로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했다. 하지만 9월 4일 주니치전(마에바시)에서 경기 도중 허리 통증이 재발하여 2이닝 4실점으로 강판됐고 다음날에는 등록이 말소됐다.[84] 9월 15일 한신전(도쿄 돔)에 다시 복귀했지만 허리 통증이 재발하여 4이닝 4실점으로 강판됐고 이후 경기에서는 팀 동료인 알렉스 게레로의 역전 홈런 등도 있어서 자신의 패배는 없어졌고 팀은 승리하여 우승 매직 넘버도 줄어들었지만 다음날에 등록이 말소했다. 이 경기가 정규 시즌에서의 마지막 마운드가 됐다. 최종적으로는 시즌 11승을 올리며 자신의 세 번째로 팀의 리그 우승에 기여했지만 평균 자책점은 개인 최저 성적인 3.89를 기록해 프로 입단한 이후부터 6년 연속으로 도달했던 규정 투구 이닝을 채우지 못했다.[85]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인 한신전(도쿄 돔)에서는 허리 통증의 영향으로 등판을 피했지만 팀은 어드밴티지를 포함한 4승 1패로 일본 시리즈에 진출했다. 소프트뱅크와 맞붙은 일본 시리즈에서는 팀이 0승 3패로 맞이한 상황에서 4차전에 선발 등판하여 와다 쓰요시와 투수전을 펼쳤다. 4회에 유리스벨 그라시알에게서 3점 홈런을 맞으면서도 그 후에도 호투를 이어나갔지만 7회에는 두 차례의 실책에 의한 실점을 내주는 등 6과 1/3이닝을 던져 4실점(3자책점)에서 강판됐다. 팀도 3대 4로 패하면서 자신도 패전 투수가 됐고 팀은 0승 4패라는 최악의 성적을 남겨 일본 시리즈 우승을 놓쳤다.[86] 시즌 종료 후 FA권을 취득했지만 요미우리에 잔류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고[87] 11월에 열린 WBSC 프리미어 12는 허리 통증의 영향으로 일본 대표팀 엔트리에서 제외됐다.[88]

플레이 스타일[편집]

투구 연습 중인 스가노 도모유키(2013년 2월)

스리쿼터에서 던지는 평균 구속이 약 147 km/h,[89] 최고 속도 157 km/h(프로 데뷔 이후의 최고 속도는 155 km/h[90])의 속구,[주 5] 평균 146 km/h의 슈토,[89][91][주 6] 평균 131km/h의 헛스윙을 잡아내는[92] 슬라이더[89], 평균 약 123 km/h의 커브,[89] 평균 약 136 km/h의 컷 패스트볼,[89] 평균 약 136 km/h의 포크볼[89][93] 등 다채로운 구종으로 공을 던진다.[94] 주로 직구, 슈토, 슬라이더 등 3개 구종으로 전체 투구 수의 약 8할을 차지하여 그 중에서도 슬라이더가 높은 평가를 받았다.[95] 그 외에도 시즌 종료 후 자주 트레이닝으로 싱커체인지업도 습득했지만 정작 경기에서는 거의 사용하고 있지 않다.[96]

2013년 ~ 2015년에는 때려 잡는 스타일이었지만 2016년 이후에는 ‘파워 피처 스타일’로 돼있다.[97] 2016년부터 지력을 단련한 것에 의해 스핀이 커지면서 직구의 질이 올랐다.[98] 2017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준결승전인 미국전에서 이 경기의 직구 평균 회전 수는 2,513rpm, 또 커브도 평균 2,859rpm을 측정하면서 메이저 리그의 평균치보다 높았다.[99]

요코이 히토키 도카이 대학 감독은 스가노의 다채로운 구종에 대해 “손끝 감각이 여태 봐 왔던 어떤 투수보다도 탁월하다”고 평가했고[3] 스가노 자신도 “기억하고자 생각해서 기억되지 않은 구종은 없다”고 말해[100] 슈토는 잡지에서 와쿠이 히데아키가 공을 손에 쥐는 법을 보고 바로 던질 수 있게 됐다고 한다.[3][101][102] 그런 한편으로 2013년에 하라 다쓰노리에게서는 잔재주에 의지하지 말고 “좀더 역투파, 속구파라는 부분으로 마운드에 올라야 한다”라는 과제를 지적받았다.[103]

요미우리에 입단한 애당초부터 제구력을 높이 평가받고 있으며[104] 본인 스스로도 “경기에서 볼이 컨트롤 안돼서 당황했던 적은 거의 없다”라고 말할 정도로 제구에 대한 자신감을 가졌다.[3] 일례로 2016년 시즌을 들자면, 제구력을 나타내는 볼넷 허용률(1.47)이나 K/BB(7.27)는 모두 리그 1위를 기록했다.[105] 소속팀이 없었던 2012년에는 메이저 리그 TV 중계에 푹 빠져 있었는데 그레그 매덕스의 “27개를 던져 27개의 아웃을 잡아내는 게 이상”이라는 생각을 자신도 이상으로 삼았다고 한다.[18] 또한 로이 할러데이의 투구를 보고 “피칭은 역시 컨트롤이 생명”임을 재인식했다고 하여 재수 생활하는 동안 공 1개 분의 출납이 가능한 정밀도가 높은 제구력을 목표로 해서 줄곧 연습해 왔다고 한다.[18][106]

민첩한 견제와 타구 처리도 갖췄다.[102] 지론은 ‘투수는 던지는 것만이 아니다’여서 타격에도 구애를 받았다.[107] 2017년 12월에는 “홈런을 치고, 1-0으로 완봉승하고 싶다. 그건 이제 내 꿈이다”[108]라고 말했다.

볼배합에 대해서는 “흔히 볼배합이라고 말하지만 볼배합에 정답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나로서는 포수의 리드로 막아내는 일은 있어도 리드로 인해 안타를 맞는 일은 별로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투수가 제대로 던지면 막을 수 있다. 맞으면 투수의 책임이다. 포수의 사인에 고개를 저을 권리도 있기 때문이다”라는 견해를 밝혔다.[109]

야구 해설가 노무라 가쓰야는 스가노를 “자신을 잘 알고 있고 머리를 쓸 줄 아는 투수”라고 평가했다.[110] 특히 2018년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의 투구를 지켜봤을 때는 “피칭과 대화가 가능한 투수이며 그 이상으로 즐거운 투수는 없다. 나도 은퇴했지만 한번 공을 받아보고 싶은 투수”라고 찬사를 보냈다.[111]

또한 다르빗슈 유가 어느 트위터 유저로부터 “헤이세이 시대 최강의 투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다르빗슈는 “우에하라, 마쓰자카, 사이토 가즈미, 스기우치, 와다, 다나카 마사히로, 스가노 도모유키 등을 비롯한 대단한 투수들이 나와서 좋았는데 아쉽게도 누구를 꼽아야 할지는 결정하지 못했다”라고 되받아쳐 스가노의 이름까지 거론했다.[112]

에피소드[편집]

  • ‘하라 미쓰구의 손자, 하라 다쓰노리의 조카’라는 입장에 대해서는 “안 좋았던 적이 더 많았다”라고 말했고 “거기는 내 마음 속의 모티베이션이기도 하다. ‘스가노 도모유키’로서 인정받는 것을 계속 목표로 삼고 있다”라고 말했다.[3][102][113] 고교 3학년 때에는 주변에서 프로 입단도 권유받았었지만 “하라 감독의 조카이기 때문에 프로에 들어갈 수 있었다라고 생각되는 것이 싫었다. 대학에서 더할 나위 없는 실력을 쌓아 프로에 가고 싶다”라는 이유로 진학을 선택했다고 밝혔다.[3][113] 숙부 밑에서 플레이하는 것에 대해서는 2011년의 드래프트 회의 이후에 “어렸을 적에는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로 그 외 것은 생각하지 않았는데 대학에 가서 어느 정도 실적을 남길 수 있게 됐고 그것이 꿈이 아닌 현실이 되도록 내 마음속으로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은 있다”라고 말했다.[114]
  • 프로 입단 후에는 매년 하와이에서 자주 트레이닝을 실시하고 있어서 요미우리 후배인 미야구니 료스케, 하타케 세이슈, 나카가와 고타, 사쿠라이 도시키, 한신 타이거스니시 유키 등과 함께 트레이닝을 하고 있다.[115]
  • 식사는 시즌 중의 컨디션을 좋게 하기 위해 ‘글루텐 프리’를 도입했고 밀가루, 국수, 튀김, 유제품 등을 섭취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116]
  • 동갑내기인 고바야시 세이지와 배터리를 구성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고바야시와 배터리를 구성할 때는 언론에서 ‘스가코바’(スガコバ)라는 애칭이 붙여졌다.[117]
  • 고교 야구에 관해서는 투구수 제한을 정하고, 나무 배트 사용, 타이 브레이크를 연장 10회초부터 도입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투구수 제한으로 투수들 각자의 적성을 살린 역할이 명확해져서 최대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 가능해져 빠른 시기부터 나무 배트에 적응함으로써 야구의 저변 기술 향상 등의 이점을 꼽았다.[118]
  • 취미는 골프이며, 대학 4학년 때에는 100점이라는 최고 득점을 기록했다.[119]
  • 배우 테라지마 스스무의 열혈팬이다.
  • 향수는 루이비통을 사용하고 있다.[120]
  • 자원봉사활동으로는 안내견에 대한 지원을 2015년부터 계속하고 있다.[121]

상세 정보[편집]

출신 학교[편집]

선수 경력[편집]

프로팀 경력
국가 대표 경력

수상·타이틀 경력[편집]

타이틀[편집]

수상[편집]

개인 기록[편집]

투수 기록[편집]

타격 기록[편집]

기록 달성 경력[편집]

  • 통산 1000투구 이닝 : 2018년 7월 28일, 대 주니치 드래건스 13차전(도쿄 돔), 1회초에 다얀 비시에도를 2루 뜬공 ※역대 350번째
  • 통산 1000탈삼진 : 2019년 5월 1일, 대 주니치 드래건스 4차전(도쿄 돔), 7회초에 히라타 료스케로부터 헛스윙 삼진 ※역대 148번째

기타[편집]

  • 투수 부문 3관왕 : 1회(2018년) ※역대 19번째
  • 클라이맥스 시리즈 노히트 노런 : 2018년 10월 14일, 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전(메이지 진구 야구장) 퍼스트 스테이지 2차전 ※클라이맥스 시리즈 사상 최초, 포스트 시즌 사상 최초
  • 센트럴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완투·완봉 승리 : 2013년 10월 17일, 대 히로시마 도요 카프 전(도쿄 돔) 파이널 스테이지 2차전, 9회 3피안타 11탈삼진 ※센트럴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사상 최초[34]
  • 올스타전 출장 : 7회(2013년 ~ 2019년)[주 7]
  • 개막전 선발 투수 : 5회(2014년 ~ 2016년, 2018년, 2019년)

등번호[편집]

  • 19(2013년 ~ 2018년)
  • 18(2019년 ~ )
일본 대표

연도별 투수 성적[편집]






















































W
H
I
P
2013년 요미우리 27 26 1 0 0 13 6 0 0 .684 729 176.0 166 10 37 0 5 155 2 0 70 61 3.12 1.15
2014년 23 23 3 0 1 12 5 0 0 .706 640 158.2 138 12 36 3 2 122 6 0 50 41 2.33 1.10
2015년 25 25 6 2 0 10 11 0 0 .476 710 179.0 148 10 41 4 7 126 3 0 46 38 1.91 1.06
2016년 26 26 5 2 3 9 6 0 0 .600 726 183.1 156 12 26 0 4 189 1 0 46 41 2.01 0.99
2017년 25 25 6 4 3 17 5 0 0 .773 713 187.1 129 10 31 0 1 171 1 0 36 33 1.59 0.85
2018년 28 27 10 8 4 15 8 0 0 .652 801 202.0 166 14 37 1 3 200 3 0 52 48 2.14 1.00
2019년 22 22 3 1 1 11 6 0 0 .647 577 136.1 138 20 32 2 3 120 0 0 65 59 3.89 1.25
통산 : 7년 176 174 34 17 12 87 47 0 0 .649 4896 1222.2 1041 88 240 10 25 1083 16 0 365 321 2.36 1.04
  • 2019년 시즌 종료 기준.
  • 굵은 글씨는 시즌 최고 성적.

연도별 투수(선발) 성적 소속 리그내에서의 순위[편집]















투구
이닝




2013 24 센트럴 리그 - - 3위 2위 4위 3위 6위
2014 25 1위 - 3위 2위 - 6위 1위
2015 26 2위 3위 10위 10위 6위 8위 2위
2016 27 1위 2위 8위 4위 2위 1위 1위
2017 28 1위 1위 1위 2위 2위 2위 1위
2018 29 1위 1위 1위 4위 1위 1위 1위
2019 30 2위 5위 3위 - - 9위 -
  • ‘-’는 10위 미만

WBSC 프리미어 12에서의 투수 성적[편집]












































2015 일본 2 0 1 0 0 28 7.0 6 2 2 0 1 6 0 0 3 3 3.86

WBC에서의 투수 성적[편집]












































2017 일본 3 3 0 0 0 58 14.1 14 2 1 0 1 16 0 0 6 5 3.14

연도별 수비 성적[편집]

연도 소속 투수












2013 요미우리 27 9 36 2 2 .957
2014 23 9 35 1 2 .978
2015 25 11 39 1 1 .978
2016 26 11 37 0 3 1.000
2017[122] 25 11 36 2 2 .959
2018 28 5 23 1 0 .966
2019 22 3 14 1 0 .944
통산 176 59 220 8 10 .972

각주[편집]

주해[편집]

  1. 다만 본인은 이후 《Sports Graphic Number》와의 인터뷰에서 “(당시에는)유치원생이어서 구체적으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것이 계기였다고 하는 것은 조금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은퇴식을 본 것은 기억하고 있다.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3]
  2. 더욱이 고등학교 시절에 팀은 고시엔 대회에 출전(2006년의 선발)했지만 그 때는 벤치에 들어갈 수 없었다.
  3. 일본의 야구 협약에는 ‘한번 입단 거부를 한 선수는 재지명하려면 본인의 동의가 필요’라고 명시돼있지만 ‘진학과 그 외의 사유로 인해 그 선수가 다시 취학했을 경우에는 그에 해당하지 않는다’라고도 적혀 있어 재수한 걸로 해서 도카이 대학에 계속 학생으로 있는 스가노는 ‘재취학’에 해당하기 때문에 본인의 동의가 없어도 재지명이 가능하다고 닛폰햄측은 주장하고 있었다.
  4. 닛폰햄은 2012년 드래프트에서 메이저 리그를 지망한다고 공언했던 오타니 쇼헤이를 1순위로 ‘강행’ 지명해 오타니를 설득하는 데 성공하면서 입단이 성사됐다.
  5. 포심으로도 표기된다.
  6. 싱커 등과도 표기된다.[18]
  7. 출장 내역은 다음과 같다.
    • 팬 투표 선출 : 2016년, 2017년
    • 선수간 투표 선출 : 2014년, 2018년
    • 감독 추천 : 2013년, 2015년, 2019년

출전[편집]

  1. 巨人 - 契約更改 - プロ野球 - 닛칸 스포츠, 2018년 12월 17일 확인
  2. 巨人菅野「皆さんに感謝」故郷相模原へ寄付で恩返し Archived 2017년 4월 13일 - 웨이백 머신 - 닛칸 스포츠, 2015년 12월 7일
  3. 와시다 야스시, ‘하라家 3대’, 《Sports Graphic Number》 제790호, 분게이슌주, p.78-83, 잡지 26852-11/10.
  4. G菅野、野村超え宣言!10勝&防御率1点台’ - 산케이 스포츠, 2012년 11월 22일
  5. ‘2011 드래프트 총결산’, 《슈칸 베이스볼》2011년 11월 14일자, 베이스볼 매거진사, p.6-7, 잡지 20442-11/14.
  6. 祖父・原貢氏軟化 決断は菅野次第「最後は自分で」 - Sponichi Annex(스포츠 닛폰), 2011년 11월 10일
  7. 菅野、初交渉で軟化 ダルと「一緒にやってみたい」 - Sponichi Annex(스포츠 닛폰), 2011년 11월 8일
  8. 日ハム入団拒否宣言…東海大の菅野’ - 요미우리 신문, 2011년 11월 21일
  9. 菅野浪人決断ハム拒否 巨人愛貫き通す Archived 2013년 4월 4일 - 웨이백 머신 - 닛칸 스포츠, 2011년 11월 4일
  10. <空白の1年、再びのドラフトへ> 菅野智之 「待ち焦がれた始まりの地へ」(2/3) Archived 2015년 2월 24일 - 웨이백 머신 - Number Web(분게이슌주), 2012년 10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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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