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와무라 히로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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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와무라 히로카즈
澤村 拓一

Hirokazu Sawamura
요미우리 자이언츠 No.15
Giants sawamu15.JPG

사와무라 히로카즈(2016년)

기본 정보
국적 일본 일본
생년월일 1988년 4월 3일(1988-04-03) (28세)
출신지 도치기 현 도치기 시
신장 184 cm
체중 101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우투우타
수비 위치 투수
프로 입단 연도 2010년
드래프트 순위 1순위
첫 출장 2011년 4월 15일
연봉 1억 엔(2016년)
경력
일본 국가대표팀
WBC 2013년
프리미어 12 2015년
사와무라 히로카즈
일본어식 한자 표기: 澤村 拓一
가나 표기: さわむら ひろかず
국립국어원 표준 표기: 사와무라 히로카즈
통용 표기: 사와무라 히로카즈
로마자: Hirokazu Sawamura

사와무라 히로카즈(일본어: 澤村 拓一 (さわむら ひろかず), 1988년 4월 3일 ~ )는 일본의 프로 야구 선수이며, 현재 센트럴 리그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소속 선수(투수)이다.

언론에서는 ‘沢村 拓一’(동음)의 표기도 볼 수 있다.

인물[편집]

프로 입단 전[편집]

도치기 현 도치기 시 출신으로 초등학교 2학년 때 야구를 시작해 6학년 때부터 투수를 맡았다. 이때부터 자기 주장이 강했다고 한다.[1] 도치기 시립 도요 중학교에서도 야구부에 소속되면서 소속 현 대회에도 출전했고 사노 니혼 대학 고등학교 시절에는 팀의 세 번째 투수로서 여름을 맞이해 등판 기회가 없는 채로 소속 현 대회 결승에서 패했다.[2] 고등학교 선배이자 주오 대학 OB이기도 한 아이다 유시의 권유도 있어[1][3] 주오 대학 경식 야구부를 지원했다. 도카이 대학에도 지원하여 주오 대학과 도카이 대학에 모두 합격했지만 먼저 합격 통지를 받은 주오 대학(상학부)[4]에 진학하기로 결심했다.[1]

대학 진학 후 2학년 가을에는 도토 대학 1부 리그선발·첫 승리완봉으로 장식하여 팀내 에이스로 성장했고 2009년에 제37회 미일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 일본 대표와 제25회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일본 대표팀 선수로 발탁됐다. 3학년 때 추계 리그전인 아오야마가쿠인 대학과의 경기에서 1회에 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의 대학생으로서는 역대 최고 속도가 되는 시속 156km/h를 측정했다. 같은 해 11월 22일에 U-26 NPB 선발 vs 대학 일본 대표팀 선수로 출전, 3회말에 1이닝을 던지면서 사카모토 하야토를 직구로 루킹 삼진으로 잡는 등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4학년 때 춘계 리그전인 도요 대학과의 경기에서 대학생으로서의 역대 최고 성적을 경신하는 시속 157km/h[2]를 측정하는 등의 활약으로 최우수 투수상을 수상했다. 리그전이 종료된 후에는 세계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 일본 대표팀 선수로 발탁됐지만 부상 때문에 출전을 포기했다. 도토 대학 1부 리그 통산 41경기에 등판하여 19승 14패, 평균 자책점 1.31, 266개의 탈삼진을 기록했고 2부 리그에서는 7승 2패를 기록했다. 2011년에는 대학을 졸업했다.[5]

주오 대학에서도 직구에 매달린 2학년 가을에는 구속이 150km를 넘게됐지만 야구부 감독이던 다카하시 요시마사는 “너는 투수가 아니다. 단순한 ‘던지기’다!”라고 혹평하여 컨트롤과 변화구를 익히도록 반복적으로 지도했다. 3학년 가을 무렵부터 성장의 조짐이 보였고[6] 그해 완봉한 4학년 가을에 열린 아시아 대학과의 경기에서는 다카하시도 “완벽한 피칭이라고 부를 수 있는 투구”라고 평가했다.[3] 사와무라도 같은 해 봄부터 변화구를 익혀 투구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7]

2010년 10월에 열린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같은 주오 대학 출신의 아베 신노스케·가메이 요시유키의 활약상을 보고 입단을 희망, 서로 마음에 두고 있는 관계라고도 말한[8] 요미우리 자이언츠로부터 단독 1순위로 지명을 받아 기자회견 석상에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드래프트에 지명된 직후의 기자회견에서 등번호 18번을 희망했지만 10월 30일에 인사차 방문한 구단 대표 기요타케 히데토시로부터 “사와무라(에이지)를 한 단계 뛰어넘는다는 의미로 15번을 택했으면 좋겠다. 18번은 실력으로 보여줬으면 한다”라고 말했지만[9] 결과적으로 2011년에 FA권을 행사하여 요미우리에 이적한 스기우치 도시야에게 18번이 주어졌다(사와무라 에이지의 등번호 14번은 요미우리의 영구 결번이다). 또한 드래프트 직전에는 스포츠 호치[10]스포츠 닛폰 등이 주니치 드래곤스와의 경합을 예상하고 있었는데[11] 닛칸 겐다이에 의하면 주니치는 입단 거부의 위험이 따를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당일 스카우트 회의에서 사와무라의 지명을 보류해 오노 유다이의 단독 지명으로 전환했다고 한다.[12]

드래프트 앞두고 복수의 메이저 리그 구단으로부터 메이저 리그 계약 오퍼도 있었기 때문에 요미우리 이외로부터 지명받았을 경우에는 미국에서의 프로 입단을 선택했을 가능성도 있었다고 말했다.[2]

프로 입단 후[편집]

2011년[편집]

개막을 1군에서 맞이한 4월 15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경기(마쓰다 스타디움)에서 프로 첫 등판이자 첫 선발 등판하여 7회 도중까지 2실점(무자책점)의 투구를 보여줬다. 이 경기에서는 첫 승리가 되진 않았지만 같은 달 21일 한신 타이거스와의 경기(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7이닝 1실점의 호투로 프로 첫 승리 투수가 됐다. 5월 31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와의 경기(세이부 돔)에서 프로 첫 완투승을 거두었고 6월 19일 세이부와의 경기(도쿄 돔)에서 7이닝 무실점의 호투로 홈구장에서의 첫 승리를 달성했다(그러나 첫 승리의 위닝볼은 이날 팀의 마지막 투수로 등판한 조나단 알발라데호가 관중석에 던져넣었기 때문에 사와무라 자신의 손에는 2011년 12월 현재까지 위닝볼은 전달되지 않고 있다).

시즌 초반부터 중반에 걸쳐서는 안정된 투구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해서 패전 수가 앞섰지만 9월 이후에는 5승 1패, 평균 자책점 1.10, WHIP 0.64를 기록하며 호투를 계속했다. 시즌 최종전에서 평균 자책점이 1점대를 놓쳤지만 센트럴 리그 신인으로서는 에나쓰 유타카 이래 200이닝 도달을 달성했다. 최종적으로 5차례의 완투를 포함한 11승 11패, 평균 자책점 2.03, 174탈삼진, WHIP 0.97 등의 좋은 성적을 남겨 센트럴 리그 신인왕을 차지하는 영예를 안았다. 사와무라의 수상에 의해 요미우리에는 2008년의 야마구치 데쓰야 이래 4년 연속으로 신인왕을 배출하게 됐고 같은 구단에서 4년 연속 신인왕 수상은 일본 프로 야구 사상 최초이다.

같은 해 10월 17일에는 닛폰 TV 아나운서 모리 마키와 시즌 종료 후 결혼하는 것을 공식 발표했다.

2012년[편집]

2년 연속으로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했는데 요미우리에서 신인 투수가 2년 연속으로 두 자릿수 승리를 기록한 것은 1966년 ~ 1967년의 호리우치 쓰네오(각각 16승, 12승) 이래 45년 만이다.[13] 그해 시즌에서는 ‘상대를 제압하는 피칭’을 목표로 하여 작년 시즌 종료 이후부터 육체 개조에 전념했다. 시즌 당초에는 평균 자책점이 1점 대에 머물 정도로 안정돼 있었지만 교류전을 계기로 제구가 좋지 않을 정도의 컨디션이 무너져 이후에는 불안정한 투구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시즌 최종 등판인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와의 경기에서 5이닝 1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되어 가까스로 10승에 도달했지만 요미우리에서는 1979년 ~ 1980년의 에가와 스구루(각각 10패, 12패) 이래 32년 만이자 신인으로서 2년 연속 두 자릿수 패전을 기록, 투구 내용도 작년보다 좋지 못했다.

포스트 시즌인 센트럴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팀이 3연패를 당하여 패하면 클라이맥스 시리즈가 끝날지도 모르는 4차전에 선발 등판하여 무자책점(1실점)으로 호투, 승리 투수가 됐다. 이후 요미우리는 이 4차전을 포함한 3연승을 기록하여 일본 시리즈에 진출했다.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와 맞붙은 일본 시리즈에서는 2차전에 선발 등판해 8이닝 무실점의 호투로 일본 시리즈에서의 첫 등판·첫 선발과 동시에 첫 승리를 올렸다. 이 경기에서는 1회에 위기를 맞이하여 견제 사인을 놓친 바람에 포수 아베 신노스케로부터 마운드상에서 머리를 얻어맞는 장면도 있었는데 이후 정신을 차렸다는 것도 화제가 됐다.[14] 그해 일본 시리즈에서는 6차전에도 등판했지만 6회초에 나카타 쇼에게 3점 홈런을 맞고 동점이 된 뒤에 대타로 교체되면서 강판됐다. 팀은 4승 2패의 성적으로 일본 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그 후 11월 6일에 사무라이 재팬 매치 2012 ‘일본 대표 대 쿠바 대표’의 일본 대표팀 선수로 발탁됐다는 사실이 발표돼[15] 대표팀에 합류했다.[16] 또한 12월 4일에 제3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팀 후보 선수 34명의 명단이 발표되면서[17] 후보에 올랐다.[18]

2013년[편집]

2월 20일에는 제3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팀 선수 28명의 명단이 발표돼[19] 대표팀에 합류했고[20][21][22] 본선에서는 4경기에 중간 계투로 등판해 3과 1/3이닝 1실점의 성적을 남겼다. 같은 해 3월 말에 모리 마키와 이혼했다.[23]

그 해에는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와중에(그해 득점지원률은 규정 투구 이닝을 도달한 선수 중에서는 리그 최악이었다) 시즌 전반기는 4승 6패, 평균 자책점 2.46으로 어느 정도의 성적을 남겼다. 올스타전에서는 감독 추천으로 출장 선수로서 발탁[24]돼 1차전에서는 3이닝을 던져 MVP를 수상했다. 요미우리의 투수로서는 1984년 에가와 스구루 이래 29년 만의 수상이다. 그러나 후반기에서는 전반기에 이어 승리하지 못하는 경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투구 내용도 서서히 나빠졌다. 9월 12일 DeNA와의 경기(도쿄 돔)부터는 중간 계투로서 기용됐다. 중간 계투로서는 12경기에 등판해 1승 1패 6홀드, 평균 자책점 0.63의 성적을 남기며 호투했지만 시즌을 통해선 5승 밖에 거두지 못했고 3년 연속 두 자릿수 패전을 기록하는 등 전년도 이상의 부진에 시달렸다.

히로시마와의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1차전에 중간 계투로 등판해 무실점의 호투를 보였고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의 일본 시리즈에서는 4경기에 중간 계투로 등판했다.

2014년[편집]

스프링 캠프 초반인 2월 3일에 발병한 오른쪽 어깨 통증으로 시즌 개막은 2군에서 맞이했다.[25] 7월에는 1군에 승격했지만 같은 달 30일에 등록이 말소되면서 8월에 재승격돼[26] 5승 3패의 성적으로 정규 시즌을 끝냈다. 10월 16일에 열린 한신과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에서는 2차전에 등판했지만 우에모토 히로키의 머리 부분에 몸에 맞는 볼을 던져 심판이 위협구로 간주하여 퇴장당했다.[27] 결과적으로 이 위협구로 인해서 한신 타선에 압도당하여 팀은 패했고 그 후 내리 4연패로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탈락했다. 11월 9일, 하라 다쓰노리 감독은 불안정했던 구원진을 강화하기 위해 사와무라를 중간 계투로 배치 전환하겠다고 밝혔다.[28]

2015년[편집]

2월 16일에 ‘GLOBAL BASEBALL MATCH 2015 사무라이 재팬 대 유럽 대표’의 일본 대표팀 선수로 발탁됐다는 사실이 발표돼 고쿠보 히로키가 일본 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하고 처음으로 일본 대표팀에 선출됐다.[29] 단지 본 대회에서 등판할 일은 없었다.[30]

정규 시즌에서는 3월 27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와의 개막전에서 9회에 등판, 세키네 다이키에게 홈런을 맞았지만 자신으로서는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31] 그 후에도 세이브를 쌓아 올리면서 7월 10일 한신과의 경기에서 세이브를 기록하는 등 전반기에서의 20세이브에 도달했다. 7월 16일에 제1회 WBSC 프리미어 12의 일본 대표팀 1차 후보 선수로 발탁됐다.[32] 9월 10일에는 제1회 WBSC 프리미어 12의 일본 대표팀 후보 선수로 발탁됐다는 사실이 발표됐다.[33] 후반기에도 마무리 투수의 지위를 유지해나가면서 최종적으로 시즌 36세이브를 기록했다. 그런 한편으로 주자를 내면서도 마무리로 등판하는 일이 많아지자, BB/9가 2.77, WHIP이 1.16(모두 30세이브 이상을 기록한 투수로서는 양대 리그에서 가장 높은 수치)으로 나타내면서 안정감이 결여된 모습을 보였다.

같은 해 10월 9일에는 제1회 WBSC 프리미어 12의 일본 대표팀 최종 로스터 28인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34] 11월 1일에는 재계약 협상 자리에서 연봉 1억 엔으로 갱신했다.[35]

플레이 스타일[편집]

사와무라의 투구폼(2012년)

오버스로로부터 평균 구속 약 145km/h,[36] 최고 속도 157km/h(프로 입문 후의 최고 속도는 155km/h[37])의 속구, 종횡의 슬라이더, 커브, 포크볼을 섞어 던지고[38] 퀵모션도 1.0초대로 빠르다.[39] 포크볼은 SFF와 같이 낙차가 작고 최고 속도 147km/h[40]의 스피드가 나오는 것에 더해져 슬라이더 회전을 하기 때문에 세로로 떨어지는 슬라이더와 혼동하는 경우도 있었다.[41] 또, 2012년 일본 시리즈로부터 투심을 추가했다.[42]

2013년에 구원 투수로서 기용됐을 때엔 평균 구속 약 148km/h를 기록하면서[43] 선발로서도 센트럴 리그 굴지의 구속을 자랑하지만 본인은 스피드에 구애되진 않고 높은 직구와 낮은 변화구가 생명선이라고 말하는가 하면[38] 한편으로 투구에 ‘젊음’을 드러내고 싶다고 말했다.[44][45] 또한 오른쪽 타자의 몸쪽을 찌르는 직구에 자신감을 갖고 있다.[1] 그런 반면에 직구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에 고집하지 않고 타자의 노림수나 타이밍을 벗어나는 투구를 배우는 것을 과제로서 자각하고 있다.[46]

탈삼진률은 2015년까지 통산 7.88로 특별히 높진 않지만, ‘삼진을 몇 개 뺏어냈다’와 ‘삼진을 잡을 수 있는 직구’보다도 타자를 잡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고 한다.[47]

에피소드[편집]

2012년에 요미우리가 일본 시리즈 정상에 올랐을 때 출연한 TV 프로그램에서 ‘일본 시리즈에 우승하면 무엇을 할까’라고 묻자, 동료 아베 신노스케, 우쓰미 데쓰야가 ‘가족 서비스’라고 대답하는 와중에 자신은 ‘트레이닝’이라고 대답할 정도로 연습을 좋아하는 선수로도 알려져 있다.[48] 특히 대학 시절부터 계속해온 웨이트 트레이닝을 열심히 해서 2011년 시점에서는 스쿼트를 240kg의 중량을 10회나 들어 올렸다.[49] 그러나 2014년 자주 트레이닝의 단계에는 “3년은 했지만 뚜렷한 결과를 남길 수 없었다. 올해 진가를 발휘해야 하는 시즌이라고 하는데 같은 것을 반복하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다”라는 이유로 고중량의 바벨을 사용하는 연습은 하지않고 몸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기술을 추구하기로 모색하기 시작했다.[50]

동경하는 선수는 사이토 가즈미,[45] 좌우명은 ‘저돌맹진’(猪突猛進)이다. 취미는 가전으로 ‘말하기 시작하면 몇 시간도 말할 수 있다’라고 호언장담할 정도이다.[51]

2012년부터 언더아머와 계약을 맺어 이 회사의 글러브와 스파이크, 웨어를 사용하고 있다.[52]

중학교 때부터 대학 시절까지의 감독들은 모두 ‘열심히 연구하는 선수’라고 평가해 본인도 어렸을 때부터 투구폼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말한다.[44][45] 고교 시절에 비해 대학에서는 주위의 영향을 받아 연습에 임하는 의식이 변하면서 1부 리그로 올라갔던 것이 전환점이 됐고[38]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보게 되므로 자신에게 압박을 가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7]

주오 대학 야구부 감독인 다카하시 요시마사는 ‘자신을 위해 야구를 한다’라는 의식을 주입시켰다. 이것은 자신이 좋은 플레이를 하면 팀의 승리로 연결돼 양쪽에 있어서 플러스가 된다는 것으로 자기 팀이 치지 못한다면 내가 막으면 된다라는 생각과 연결된다.[1] 사와무라는 다카하시와의 만남 자체가 자신을 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대학 시절에 구속이 올라간 이유로 하반신을 단련한 것이라 하며, 누군가에게 듣고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면서 연습하는 것이 타인과의 차이를 만들었다라는 견해를 밝혔다.[1]

상세 정보[편집]

출신 학교[편집]

선수 경력[편집]

프로팀 경력
국가 대표 경력

수상·타이틀 경력[편집]

개인 기록[편집]

투수 기록[편집]

타격 기록[편집]

  • 첫 타석 : 2011년 4월 15일, 대 히로시마 도요 카프 1차전(MAZDA Zoom-Zoom 스타디움 히로시마), 2회초에 디오니 소리아노로부터 삼진
  • 첫 안타·첫 타점 : 2011년 5월 11일, 대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5차전(도쿄 돔), 5회말에 클레이튼 해밀턴으로부터 좌전 적시타

기타[편집]

  • 올스타전 출장 : 2회(2011년, 2013년)
  • 1이닝 4개의 탈삼진 : 2012년 4월 13일, 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 1차전(요코하마 스타디움)[53]
  • 신인으로부터 2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 : 요미우리에서는 1966년 ~ 1967년의 호리우치 쓰네오(16승, 12승)가 기록한 이래 45년 만이다.

등번호[편집]

  • 15(2011년 ~ )

연도별 투수 성적[편집]






















































W
H
I
P
2011년 요미우리 29 29 5 1 1 11 11 0 0 .500 786 200.0 149 14 45 1 5 174 5 3 53 45 2.03 0.97
2012년 27 26 2 1 0 10 10 0 0 .500 716 169.2 172 12 54 0 4 138 2 0 56 54 2.86 1.33
2013년 34 22 3 1 0 5 10 0 6 .333 654 158.1 138 18 43 0 5 148 5 0 58 55 3.13 1.14
2014년 12 12 2 1 0 5 3 0 0 .625 299 72.2 69 3 14 0 2 66 5 0 31 30 3.72 1.14
2015년 60 0 0 0 0 7 3 36 3 .700 282 68.1 58 4 21 0 3 60 2 0 12 10 1.32 1.16
통산 : 5년 162 89 12 4 1 38 37 36 9 .507 2737 669.0 586 51 177 1 19 586 19 3 210 194 2.61 1.14
  • 2015년 시즌 종료 기준.

각주[편집]

  1. 세쓰마루 유이치 저 《최강 세대 1988 : 다나카 마사히로, 사이토 유키, 사카모토 하야토, 마에다 겐타·········· 11명의 고백》, 고단샤, 2011년. ISBN 978-4-0629-5066-4
  2. 沢村 涙の理由は…巨人でなければ、ヤンキースだった - 스포츠 닛폰, 2010년 12월 1일
  3. <本格派誕生秘話> 澤村拓一 「不器用さが生んだ剛速球」(3/4) - Number Web, 2011년 4월 15일
  4. 硬式野球部の澤村 拓一さん(商学部4年)がプロ野球ドラフト会議において読売ジャイアンツから1位指名されました - 주오 대학 홈페이지
  5. 沢村拓一選手(読売巨人軍・2011年卒業)が新人賞(新人王)に選ばれました’ - 주오 대학 홈페이지
  6. 野球 : 中大・高橋監督「巨人・沢村が2ケタ勝つ条件」 - SPORTS COMMUNICATIONS, 2011년 3월 16일
  7. 「1年目から最低10勝」――157キロ右腕・澤村の決意と覚悟 2010年プロ野球ドラフト注目選手’ - sportsnavi, 2010년 10월 22일
  8. 巨人の沢村、相思相愛実った!/ドラフト - 산케이 스포츠, 2010년 10월 29일
  9. 巨人 沢村にあいさつ 用意した背番号15の意味は? - 스포츠 닛폰, 2010년 10월 30일
  10. 佛教大・大野、登板0でドラフト…8月 左肩棘下筋炎症発覚
  11. ドラ1は沢村を基本線…直前に指揮官の意向確認 - 스포츠 닛폰, 2010년 10월 28일
  12. 沢村に花道を邪魔される落合監督の皮肉 - 닛칸 겐다이, 2011년 10월 15일
  13. 沢村入団後連続10勝 Gは堀内氏以来 - 데일리 스포츠, 2012년 10월 6일
  14. 阿部「バシッ」公開説教!沢村 その後は別人8回無失点 - 스포츠 닛폰, 2012년 10월 29일
  15. 侍ジャパンマッチ2012 日本代表メンバー - 일본 야구 기구 홈페이지, 2012년 11월 6일
  16. 侍ジャパンマッチ2012「日本代表 VS キューバ代表」 日本代表メンバー - 일본 야구 기구 홈페이지, 2012년 11월 6일
  17. 2013WBC日本代表候補選手発表 - 일본 야구 기구 홈페이지, 2012년 12월 4일
  18. 2013 WORLD BASEBALL CLASSIC 日本代表候補選手 - 일본 야구 기구 홈페이지, 2012년 12월 4일
  19. 2013WBC日本代表28選手の発表 - 일본 야구 기구 홈페이지, 2013년 2월 20일
  20. 2013 Tournament Roster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홈페이지, 2015년 4월 2일 확인
  21. 2013 WORLD BASEBALL CLASSIC 日本代表メンバー - 일본 야구 기구 홈페이지, 2013년 2월 20일
  22. WBC日本代表 最終メンバーにG戦士7選手 - 요미우리 자이언츠 홈페이지, 2013년 2월 20일
  23. 沢村が離婚 昨年から協議、先月末届け出 - 스포츠 호치, 2013년 4월 13일
  24. オールスターの監督推薦に、西村、澤村、菅野の3投手 - 요미우리 자이언츠 홈페이지, 2013년 7월 1일
  25. 澤村拓一投手・日本シリーズ以来の一軍マウンドへ、明るい兆し - 슈칸 베이스볼 ONLINE, 2014년 6월 12일
  26. 沢村、18日1軍合流 21日・ヤクルト戦先発へ - 스포츠 호치, 2014년 8월 18일
  27. プロ野球:巨人・沢村が危険球退場 CS第2戦 - 마이니치 신문, 2014년 10월 16일
  28. 沢村 中継ぎ決定!不安救援陣の起爆剤へ 守護神“ガチバトル” - 스포츠 닛폰, 2014년 11월 10일
  29. 欧州代表戦、侍ジャパン出場選手発表!6選手が小久保体制下で初招集 - 사무라이 재팬 공식 홈페이지, 2015년 2월 16일
  30. “守護神・沢村”お披露目はお預け…裏なしで終わり登板流れる - 베이스볼 킹, 2015년 3월 11일
  31. 巨人 4安打3点 開幕3年連続白星発進 DeNA 倍打って負けた - 스포츠 닛폰, 2015년 3월 27일
  32. トップチーム第一次候補選手発表!11月に行われる「WBSC世界野球プレミア12」へ向けて65名が名を連ねる - 사무라이 재팬 공식 홈페이지, 2015년 7월 16일
  33. 「WBSC世界野球プレミア12」侍ジャパントップチーム候補選手45名を発表 - 사무라이 재팬 공식 홈페이지, 2015년 9월 10일
  34. 「WBSC プレミア12」侍ジャパントップチーム最終ロースター28名発表!! - 사무라이 재팬 공식 홈페이지, 2015년 10월 9일
  35. 【プロ野球】巨人・沢村が1億円で更改 年俸倍以上に「今後も抑えで」 - 산케이 뉴스(산케이 신문), 2015년 12월 1일
  36. 변화구 러닝 : 슬라이더편 - 사와무라 히로카즈, 《슈칸 베이스볼》, 2011년 26호, 베이스볼 매거진사, 잡지 20441-6/20, p.24 ~ 25
  37. 沢村 160キロ出る!?捕手圧倒のブルペン「悪くはなかった」 - 스포츠 닛폰, 2015년 1월 30일
  38. 《아마추어 야구》 제29호, 닛칸 스포츠 출판사, 2010년, 잡지 66835-98, p.12 ~ 14
  39. 고세키 준지, 니시오 노리후미, 이시카와 데쓰야, 바노 모리야스 저 《프로 야구 스카우팅 리포트 2011》, 고사이도 출판, 2011년, p.2. ISBN 978-4-331-51519-8
  40. 沢村“147キロフォーク”封印解く!「自信ある」最終兵器 - 호치 신문, 2011년 2월 14일
  41. ドラフト候補をたっぷり語る 『アマチュア野球』第29号’, 닛칸 스포츠 출판사, 2010년, 잡지 66835-98, p.47
  42. 沢村「魔球」解禁で先発再浮上/WBC - 닛칸 스포츠, 2013년 2월 19일
  43. 《야큐타로 2014 프로 야구 & 드래프트 후보 선수 명감》, 고사이도 출판, 2014년, p.175. ISBN 978-4-331-80255-7
  44. 《야큐코조》 2010년 10월호, 뱌쿠야쇼보, 잡지 18801-10, p.172 ~ 175
  45. 드래프트 지명 선수의 야구 인생 다큐멘터리 《야큐코조》, 2010 드래프트 총결산호, 뱌쿠야쇼보, 잡지 67614-98, p.84 ~ 89
  46. 沢村、覚悟のオフ「笑い者で終わるのか、そうでないか」 - 스포츠 호치, 2013년 11월 18일
  47. ‘권두 독점 인터뷰 2 - 사와무라 히로카즈’, 《슈칸 베이스볼》, 2011년 9호, 베이스볼 매거진사, 잡지 20441-2/28, p.10 ~ 13
  48. G澤村、離婚発表も筋肉ツイ連投’ - R25.jp, 2013년 4월 19일
  49. <本格派誕生秘話> 澤村拓一 「不器用さが生んだ剛速球」(1/4) - Number Web, 2011년 4월 15일
  50. 巨人沢村がバーベルと決別「土台できた」 - 닛칸 스포츠, 2014년 1월 16일
  51. 沢村、救援陣打たれ白星消滅も「僕の力不足」 - 스포츠 닛폰, 2011년 4월 16일
  52. 巨人沢村“社運”託された契約 - 닛칸 스포츠, 2012년 1월 29일
  53. 5회말에 이시카와 다케히로, 구로바네 도시키, 고바야시 후토시(낫아웃), 긴조 다쓰히코로부터 달성(역대 14번째이자 센트럴 리그에서는 7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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