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와 산리쿠 해역 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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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와 산리쿠 해역 지진
쇼와 산리쿠 해역 지진 이후 쓰나미의 피해를 입은 가미헤이군 가마이시(현 가마이시시)의 사진.
쇼와 산리쿠 해역 지진 이후 쓰나미의 피해를 입은 가미헤이군 가마이시(현 가마이시시)의 사진.
쇼와 산리쿠 해역 지진 (일)
지진의 진앙을 나타낸 지도.
본진
발생일 1933년 3월 3일[1]
발생시간 오후 2시 30분 48초 (JST)
진앙 일본 산리쿠 연안
좌표

북위 39° 7.7′ 동경 145° 7′  / 북위 39.1283° 동경 145.117°  / 39.1283; 145.117좌표: 북위 39° 7.7′ 동경 145° 7′  / 북위 39.1283° 동경 145.117°  / 39.1283; 145.117

규모    모멘트 규모 8.1 -8.4[1]
최대 진도    일본 기상청 진도 계급 5 : 미야코시, 센다이시, 이시노마키시
해일 오후나토시 최대 28.7m[2]
지진의 종류 해구형 지진
피해
인명피해 사망자 1,522명
실종자 1,542명
부상자 12,503명

쇼와 산리쿠 해역 지진(일본어: 昭和三陸地震, しょうわさんりくじしん)은 1933년 3월 3일[1] 오후 2시 30분 48초에 일본 이와테현 가미헤이군 가마이시 정(현 가마이시시) 동쪽 200km 산리쿠 해역 에서 일어난 산리쿠 해역 지진이다. 모멘트 규모는 M8.1-8.4로 추정되는 거대지진으로 2011년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M9.1) 전까지 일본 관측 사상 최대 규모의 지진이었다. 오후나토 시에 최대 28.7m의 쓰나미가 덮쳤으며 직후 규모 M6.8의 여진이 닥쳤다. 본진 발생 후 6개월간 규모 M5 이상의 지진이 76회 일어났다.[3]

지진[편집]

진원은 일본 해구 축을 기준으로 태평양판 쪽에 있는 지역에서 일어났으며 산리쿠 연안의 가장 가까운 육지에서 진앙까지 거리는 200km가 넘는다. 도호쿠 지방 태평양 연안 지역에서 일본 기상청 진도 계급 기준 5 정도의 강한 흔들림이 있었으나 메이지 산리쿠 해역 지진 때와 마찬가지로 지진 규모에 비해 흔들림으로 인한 피해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지각 변동으로 생긴 지진 해일의 피해가 매우 큰 지진이었다.[4]

각지의 진도[편집]

진도 4 이상을 관측한 곳은 다음과 같다.[5]

진도 도도부현 시구정촌
5 이와테현 미야코시
미야기현 센다이시 이시노마키시
후쿠시마현 후쿠시마시 이나와시로 기상대
이바라키현 이시오카시
4 홋카이도 하코다테시 우라카와정 구시로시
아오모리현 아오모리시
이와테현 모리오카시 미즈사와 기상대
후쿠시마현 이와키시
이바라키현 미토시 쓰쿠바산 기상대
도치기현 아시로 기상대
군마현 마에바시시
사이타마현 구마가야시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야마나시현 고후시

매커니즘[편집]

쇼와 산리쿠 해역 지진은 태평양판 안에서 애스패리티가 하나만 파괴되어 일어난 정단층형 아웃터라이즈 지진(해양판 내 지진)이며 1896년 일어난 메이지 산리쿠 해역 지진의 영향을 받은 유발지진인 것으로 추정된다.[6] 보존된 지진파 및 쓰나미 기록을 이용한 분석에서는 1971년 계산하였던 진원 위치보다 100km 더 북쪽인 북위 40.13° 동경 144.52° 지점에 깊이 20km로 단층 파괴 시간은 약 60초였다. 지진파 해석을 통한 분석에서는 모멘트 규모 Mw7.9, 최대 단층 미끄럼량은 5.4m이며 쓰나미 분석에서는 모멘트 규모 Mw7.8, 최대 단층 미끄럼량은 3.2m로 추정되었다.[7]

피해[편집]

쇼와 산리쿠 해역 지진의 피해[8][9]
도도부현 인적 피해 (명) 주택 피해
사망자수 실종자수
이와테현 1,316명 1,397명 4,035채
미야기현 170명 138명 1,474채
아오모리현 23명 7명 264채
홋카이도 13명 0 0
총 합 1,522명 1,542명 5,773채

사상자수는 자료 편찬자나 수집 시기에 따라 변동될 수 있다.[9]

총 부상자는 12,053명, 가옥 완전 붕괴 7,009채, 쓰나미에 유실 4,885채, 화재로 소실 294채에 이르었다. 실종자수의 대부분은 쓰나미에 휩쓸려 외해로 쓸려버려간 사람들로 추정된다.[9] 피해가 가장 심했던 이와테현 시모헤이군 다로정(현 미야코시)에서는 정 하나에서만 사망자 520명, 실종자 452명의 인명 피해를 낳았다.[10] 쓰나미가 밀고 간 후의 다로정 거의 대부분은 집이 거의 없는 공터와 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다.

유발지진[편집]

쇼와 산리쿠 지진 이후에도 지진동의 영향으로 유발지진을 일으켰다고 주장하는 몇몇 연구들이 있다. 아래는 유발지진으로 추정되는 지진 및 군발지진의 목록이다.[11]

  • 아키타현 가즈노군 미야카와촌 군발지진 : 1933년 3월 26일부터 땅울림을 포함한 지진이 일주일 이상 지속되었다.
  • 이와테현 니노헤군 이치노헤정 오쿠나카산 군발지진 : 1933년 8-9월 사이 군발지진이 일어났다.
  • 아키타현 가즈노군 하나와-오사리자와정 군발지진 : 1936년 8월경서부터 시작되어 11월 중순에는 유감지진도 다수 일어났다. 11월 20일 지진으로 오사리자와 광산의 댐이 무너져 백여명이 사망했다.
  • 미야기현 갓타군 시치카슈쿠정 군발지진 : 1935년 6월 18일부터 자오산에 땅울림이 시작되어 6월 26일 오전 9시 30분경 및 40분에 국소적인 지진이 일어났다. 땅울림은 7월 1일경까지 계속되었다.

이 외에도 본진이 일어난 전후로 심발지진 활동이 급격하게 증가한 것이 관측되었다.[11]

더 보기[편집]

각주[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