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르칵타니 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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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to infobox prétendant à un trône.png
소르칵타니 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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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루이와 소르칵타니.
툴루이와 소르칵타니.
지위
몽골 카툰
이름
소르콕타니 (몽골어: ᠰᠥᠯᠺᠥᠺᠲᠠᠨᠢ
시호 현의장성황후 (顯懿莊聖皇后)
신상정보
출생일 1194년
사망일 1252년 2월
왕조 몽골 제국
가문 케레이트
배우자 툴루이 칸
자녀 뭉케, 쿠빌라이, 훌레구, 아리크부카
기타 친인척 삼촌 옹 칸
종교 네스토리우스파

소르쿡타니 베키(몽골어: ᠰᠥᠯᠺᠥᠺᠲᠠᠨᠢ
ᠪᠡᠺᠢ
Sorqoqtani Beki, 페르시아어: سرقویتی بیگی‎ Sūrqaqtanī Bīkī, , 한국 한자唆魯合貼尼妃 사로합첩니 비, 1194년 ~ 1252년)는 칭기스 칸의 4남 툴루이의 아내이며, 뭉케, 쿠빌라이, 훌레구, 아릭 부케의 어머니이다.

그녀는 케레이트족으로 케레이트 부족의 지도자였으며, 칭기즈칸의 의부였던 옹 칸의 질녀로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도였으며 현명하였다. 그러나 옹 칸이 칭기스 칸과 대립하다가 패하고 같은 기독교도였던 나이만인에게 살해당했다. 그녀는 툴루이에게 시집갔다.

칭시스 칸의 사후 쿠릴타이에서 몽골 족장들은 톨루이를 새로운 대칸으로 선출하였지만, 톨루이는 그것을 거절하고 아버지의 뜻대로 그의 형 우구데이에게 양위하였다. 몽골 족장들은 막내 아들이 아버지를 계승한다는 전통에 따라 이와 같이 결정하였으나, 톨루이가 당시 가장 강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톨루이보다 소르칵타니로부터 얻은 그의 네 아들로 이루어진 톨루이 가문 사람들은 몽골 제국의 운명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의 아들은 뭉케와 쿠빌라이, 훌레구, 아릭 부케였다. 뭉케는 제4대 이 되었고, 쿠빌라이는 제5대 카안 되었다.

그녀의 남편 툴루이는 동몽골과 북중국을 울루스로 하였는데 41세에 과음으로 사망하였다. 그리고 소르칵타니는 집정이되었고 우구데이는 그의 아들 구육을 그녀와 결혼시키려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거절하고 이 결정은 몽골제국의 형성에 가장 중요한 것중의 하나로 판명되었다.

소르칵타니는 뭉케 칸의 즉위 몇달 후인 1252년 2월 몽골의 신년 축제 중에 죽었다. 시호현의장성황후(顯懿莊聖皇后)이다.

가족 관계[편집]

전임
보르테 카툰
몽골 제국 황후(임시)
1227년~ 1229년
후임
보락친 카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