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어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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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어족
지리적 분포 고대 동북아시아한반도·만주·일본열도
계통적 분류 본문 참고.
하위 분류

부여어족(夫餘語族)은 고구려어, 백제어일본어족이 속한다는 가설상의 어족이다. 고구려어와 백제어의 공통 조어인 부여어(夫餘語)가 있다는 주장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논지[편집]

삼국 시대의 언어를 추정할 수 있는 근거는 역사서에 기록된 지명 · 관직 이름이나 향가 등 많이 제한되어 있다.

부여어족의 존재를 뒷받침해주는 근거로 표면적으로 부여의 관직 마가(馬加)·우가(牛加)·저가(猪加)·구가(狗加)에서 부여 귀족의 존칭 가(加)를 볼 수 있는데 고구려 고추가(古鄒加)의 관직과 그 쓰임이 같다. 3세기 무렵 쓰여진 사서인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는 부여와 언어가 같은 집단에 관한 간략한 기록이 남아있는데, “東夷舊語以爲夫餘別種, 言語諸事, 多與夫餘同(고구려는 부여의 별종으로 언어가 여러 가지이나 특히 부여와 같은 것이 많다)”고 쓰여 있으며, 옥저·동예 또한 고구려와 같은 언어 집단이라 되어 있다. 부여어와 고구려어가 현대 한국어의 형성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많은 연구 결과에도 불구하고 타이완, 중화인민공화국, 일본 등과 연계된 학회에서 소수의 해외 학자들은 현대 한국어는 신라어에서만 파생되었다고 주장하며 부여어와 한국어를 별개의 언어 더 나아가 별개의 역사로 보이게 하려는 시도가 보인다고 주장한다.[1]

한국어족[편집]

삼국사기, 삼국유사, 해동고승전 등 한반도의 문헌 기록들을 보면 직접적으로 고구려어, 백제어가 신라어와 같다고 서술한 구절은 없으나 고구려, 신라 간에는 다소 논란이 있으나 언어가 통하는 것처럼 묘사되고 백제와 신라는 언어가 확실히 통하는 것처럼 서술한 내용들이 많다. 단,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로 언어가 통한다고 서술한 기록들이 주로 5~7세기 사이의 삼국시대 중후반에 집중되고 그 이전 시기 기록은 나오지 않기 때문에 삼국시대 초반부터 같았는지 여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2010년대 이후로는 국내외 언어학계에서 부여어족은 일본어족, 퉁구스어 계통보다는 한국어-신라어족과 언어가 가깝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단, 부여어족과 신라어족은 같은 한국어족에 속하지만 언어 계통이 완전히 같은 건 아니고 어느 정도 차이가 있으며 부여어족은 언어 동조대 개념으로 퉁구스어나 일본어족과 언어가 비슷한 어휘가 많다. 삼국시대 초기 신라어 역시 고대 일본어와 유사한 어휘가 많다. 알렉산더 보빈은 고구려어의 수사가 신라어-한국어족과는 다르고 일본어족과 유사점을 보임에도 고구려어를 중세 한국어-현대 한국어의 직계 조상 또는 조상이 되는 언어 중 하나라고 결론내렸는데 이는 고대 서일본의 수사를 포함한 언어 중 상당수가 고구려어, 백제어를 차용한 사례가 많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일본어족과 유사한 고구려어 수사는 고대 한국어족의 수사 중 한 계통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해외 언어학자들은 고대 한국어족을 단일 어족으로 보지 않으며 그것을 부여어족과 신라어족을 모두 포함하는 언어 패밀리로 간주한다.

일본어족[편집]

몇몇 소수 해외 학자들은 현대 한국어는 신라어계통이며 고구려어와 부여어, 백제어는 한반도의 언어에서 철저히 분리시키고 일본어족계통이라고 주장하려 하였다. 하지만 역사 문헌에서도 일본서기, 속일본기 등 일본측 문헌에서는 고구려인(도래인 포함)들이 야마토인과 언어가 통하지 않는 것으로 묘사된다. 크리스토퍼 벡위스는 고구려어와 부여어는 일본어와 같은 계통이지만 한국어는 신라어에서만 기원했고 계통이 다르다고 주장하며 현대 한국어와 부여어, 고구려어를 철저히 떼어놓는 주장을 하였다. 고구려어와 한국어의 연관성에 대한 입장을 내놓은 알렉산더 보빈은 벡위스의 주장을 비판하였고 벡위스는 보빈의 연구 결과를 일부 수용해서 삼국시대 후기에는 삼국의 언어가 서로 유사해졌을 것이라는 가설을 제창했다.

퉁구스어족[편집]

부여어족은 후대 만주족의 조상에 해당하는 말갈·읍루·숙신의 퉁구스계 언어와는 통하지 않았다고 한다. 3세기경 읍루는 숙신의 후예로 “고구려와 언어가 같지 않다(言語不與句麗同)"는 기록[2]이 있으며, 6세기경의 말갈(勿吉, 靺鞨)은 "고구려 북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언어가 고구려와 다르다(在高句麗北 [...] 言語獨異)"고 기록하였다. 이에 따르면 삼국시대 초반부터 후반까지 부여어족은 퉁구스어족과 언어 계통이 달랐던 것이 된다. 알렉산더 보빈 교수에 의하면 고구려어는 초기 언어에만 퉁구스어와의 유사성이 보이고 이후로는 시종일관 한국어족하고만 유사성이 보인다고 한다. (특히 고구려의 관직명이나 인명 등에서) 또한 퉁구스어와 유사한 고구려어 어휘는 퉁구스어가 고구려어를 차용한 사례가 대부분이었고 그것이 전형적인 한국어족의 특성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만주 지역과 한반도 북부에서 일본어족의 영향을 받은 어휘를 찾을 수 없었다고 나온다. 이때문에 최근 서구권 언어학자들은 부여어족을 일본어족과 동계어로 보는 것에 상당히 회의적이다.

하위 언어[편집]

연관 언어[편집]

관련 항목[편집]

각주[편집]

  1. 장영준,언어학 101, 2014년 08월 30일, 한국문화사
  2. 삼국지 위지 동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