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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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맹희(李孟熙, 1931년 [[6월 20일 ~ )는 경상남도 의령군출신이며 본관의 경주다.이인희.이맹희.이창희는 경상남도 의령군출신이며 이순희 이건희 이명희대구광역시 인교동에서 태어났다.CJ(제일제당)의 제2대 사주이다. 전(前) 제일비료 회장으로 이병철 삼성그룹 전 회장의 장남이다. 이병철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은퇴한 뒤 잠시 삼성그룹의 경영을 맡기도 했다. 새한미디어 회장 이창희의 형이고, 신세계 이명희의 오빠이다.

1987년에는 선데이 저널 등의 언론에 사카린 밀수 사건의 내막을 일부 공개하기도 했다.[1]

생애

이맹희는 대구 수창국민학교 경북중학교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 가쿠슈인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했다. 안국화재 상무이사와 미풍산업 상무이사를 지냈고 1966년 사카린 밀수 사건 이후 잠시 삼성그룹을 맡아보기도 했다. 1966년 5월 24일 삼성에서 경남 울산시에 공장을 짓고 있던 한국비료가 사카린 2259 포대(약 55t)를 건설자재로 꾸며 들여와 판매하려다 들통이 났다. 이 것이 누구의 지시에 의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뒤늦게 이를 적발한 부산세관은 같은해 6월 1059 포대를 압수하고 벌금 2천여만 원을 부과하였다. 삼성은 한국비료 공장을 짓기 위해 일본 미쓰이사로부터 정부의 지급보증 아래 상업차관 4천여만달러까지 들여왔다.

사카린 밀수를 현장지휘했다고 밝힌 이맹희가 1993년 발간한 《회상록 - 묻어둔 이야기》에서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사건은 박정희 대통령과 이병철 회장의 공모 아래 정부기관들이 적극 감싸고 돈 엄청난 규모의 조직적인 밀수였다고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다.

1965년 말에 시작된 한국비료 건설과정에서 일본 미쓰이는 공장건설에 필요한 차관 4200만 달러를 기계류로 대신 공급하며 삼성에 리베이트로 100만 달러를 줬다. 아버지(이병철 회장)는 이 사실을 박 대통령에게 알렸고 박 대통령은 “여러가지를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그 돈을 쓰자”고 했다. 현찰 100만달러를 일본에서 가져오는 게 쉽지 않았다. 삼성은 공장 건설용 장비를, 청와대는 정치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에 돈을 부풀리기 위해 밀수를 하자는 쪽으로 합의했다. 밀수현장은 내(이맹희)가 지휘했으며 박 정권은 은밀히 도와주기로 했다. 밀수를 하기로 결정하자 정부도 모르게 몇가지 욕심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이 참에 평소 들여오기 힘든 공작기계나 건설용 기계를 갖고 오자는 것이다. 밀수한 주요 품목은 변기, 냉장고, 에어컨, 전화기, 스테인레스 판과 사카린 원료 등이었다[2].

후일 이병철은 자신의 자서전 호암자전에서 정부가 삼성을 죽이려고 한 것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러나 이병철 등이 직접 개입되어 있는가, 정부의 재벌 죽이기식 표적수사였는가의 사실관계 여부 확인은 오리무중이다.

야당과 재야 단체에서는 사카린 밀수 사건의 진상 조사를 요구했고 이병철은 결국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모든 사업에서 손을 떼겠다”고 밝히고 사업에서 물러났다가 18개월 만인 1968년 2월에 다시 복귀하였다.[3] 이때 장준하 등 야당인사는 박정희 등이 특정 재벌을 비호한다며 비난하기도 했고, 국회에서도 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병철은 주변의 반대와 비난을 극적으로 극복하고 다시 경영에 복귀하게 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아들인 이창희 등만이 처벌되고 이병철에게는 아무런 제재도 가해지지 않았다. 이 기간 중 사카린 밀수 사건을 수습하고 삼성그룹의 안정을 위해 노력하였다. 아버지 이병철삼성의 경영에 복귀한 뒤에는 1968년 삼성전자 부사장이 되었다.

그 뒤 이맹희는 후계자에서 밀려났고 아버지 사후 그룹이 셋째 아들 이건희에게로 승계되면서 이맹희는 1993년 제일비료 회장이 됐다. 1987년 9월에는 선데이 저널 등의 언론에 사카린 밀수 사건의 내막을 일부 공개하기도 했다.

2013년에는 이병철 선대회장의 상속재산을 둘러싸고 이맹희와 이건희는 법정다툼을 벌였다. 이건희에 따르면 이맹희는 '30년전에 자신을 군대에 고소하고 아버지를 형무소에 넣겠다고 하고 청와대 그 시절에 박정희 대통령한테 고발했다가 가문에서 이미 퇴출당한 양반'이라며, '자기 입으로는 장손이다, 장남이다 그러지만 이미 아버지께서 "맹희는 완전히 내 자식 아니다"라고 못 박았으며, 지금도 자신을 포함해서 누구도 장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 소송에서 법원은 상속회복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지났고 재산의 동일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이건희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이맹희는 항소장을 제출하였다. 2013년 말 이맹희는 일본에서 폐암으로 투병중이다.

삼성 정통성

1966년 '사카린 밀수사건'이 터지자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은 잠시나마 장남인 이맹희에게 그룹경영을 맡겼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6개월도 안 돼 물러나고 말았다. [4] 삼성의 대권이 장남인 이맹희가 아닌 삼남 이건희 회장에게 넘어간 것은 이병철-이맹희 부자간의 불화 때문이었다. [5] 한국비료 밀수 사건에 뿌리를 둔 부자간의 불화는 삼남 이건희의 대권 승계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5]아버지와 불화를 겪으며 삼성에서 쫓겨난 이맹희는 대구와 부산 국내 산간벽지를 떠도는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맹희는 '묻어둔 이야기'에서 이병철 회장과 가족이 자신을 정신병 환자로 몰아갔다는 점을 회상했다. 그는 "부산의 어느 양심 없는 의사를 찾아가 당시 돈으로 300만원인가를 주고 내가 정신병이라는 의사 소견서를 받아냈다고 한다"고 적었다. 또 "용인의 가족회의 석상에서 공개적으로 이야기를 진행했던 바 집안 식구들끼리 일을 분담했다. 물론 아버지의 지시였다. 누구는 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누구는 경찰에 가서 형사 지원 요청을 하고 심지어는 내가 나중에 은행 대출을 하려고 하자 그것까지 집안 식구라 막고 나섰다. 당시 누구라도 아버지의 명령을 거역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회상했다. [6]

1984년 9월 중순 어느 날 밤, 아버지 이병철 회장의 부산 해운대 별장에서 장남 이맹희는 이를 악물며 분노를 삼키고 있었다고 한다. 그의 한 손엔 브라우닝 6연발 엽총이 들려 있었다. 이윽고 현관문에서 건장한 사내 둘이 들어오더니 주춤거리며 말했다. “삼성 비서실에서 왔습니다.” 이맹희는 방아쇠를 당겨댔고, 사내들은 문이 부서져라 달아나기 바빴다. 이맹희를 정신병자로 몰아 격리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다. [7]

가족 관계

  • 할아버지 : 이찬우
  • 할머니 : 권재림
    • 아버지 : 이병철
    • 어머니 : 박두을
      • 누님 : 이인희
      • 매형 : 조운해
        • 조카 : 조동혁
        • 조카 : 조동만
        • 조카 : 조동길
      • 부인 : 손복남 - 경기도지사 손영기의 딸
        • 장녀 : 이미경(李美京)
        • 장남 : 이재현(李在賢)
        • 자부 : 김희재 - 김치박사 김만조의 딸
          • 손녀 : 이경후(李景厚, 1986년 ~ )
          • 손서 : 정종환
          • 손자 : 이선호(李善鎬, 1991년 ~ )
        • 차남 : 이재환(李在桓)
        • 자부 : 민재원 - 국회의원 민기식의 딸
          • 손녀 : 이소희 또는 이소혜(1994년 ~ )
          • 손자 : 이호준(李鎬俊, 2002년 ~ )
      • 동생 : 이창희
        • 조카 : 이재관
        • 조카 : 이재찬
        • 조카 : 이재원
        • 조카 : 이혜진
      • 동생 : 이숙희
      • 매제 : 구자학
        • 조카 : 구명진
      • 동생 : 이순희
      • 동생 : 이덕희
      • 동생 : 이건희
      • 제수 : 홍라희
      • 동생 : 이명희
      • 매제 : 정재은

기타

학력

동창생

논란

  • 이맹희씨의 숨겨진 아들[8]

저서

  • 1993년 6월 1일 하고싶은 이야기
  • 1993년 6월 1일 묻어둔 이야기

주석

  1. 선데이 저널, 1987년 9월 13일자, 196호
  2. “(언론권력) 중앙일보 '삼성' 감싸기”. 한겨레. 
  3. 김영욱 경제전문기자. “지휘봉 다시 잡은 이병철, 삼성전자 설립해 돌파구”. 중앙SUNDAY. 2011년 11월 10일에 확인함. 
  4. “이맹희, 국내외 유랑… 최근 7년간 베이징 140억원대 별장서 거주”. 서울경제TV. 
  5. “형제자매 애증 따라 ‘내 편, 네 편’? 4남6녀 중 일부는 이건희 회장 지지 의사 표명…상속 때 홀대받은 쪽에서 어떤 입장 취할지 관심”. 시사저널. 
  6. “내밀한 집안 사정까지 공개… 소송 불씨 근원 차단 의지”. 서울경제. 
  7. “6연발 엽총 난사한 이맹희? 삼성가의 진실은”. 한겨레신문. 
  8. 연세영 선임기자 '독점인터뷰' 삼성家 장남 이맹희씨 상대 양육비 소송중인 박모씨 이투뉴스 2010년 08월 12일

참고 자료

  • 선데이 저널, 1987년 9월 13일자, 196호
  • 이맹희, 《하고싶은 이야기》 (청산, 1993)
  • 이명희, 《묻어둔 이야기》 (청산, 1993)
  • 황명수, 《삼성의 기업문화 연구》 (황명수 편저, 신양사, 1993)
  • 홍하상, 《카리스마 VS 카리스마 이병철 VS 정주영》 (한국경제신문, 2001)
  • 김용철, 《삼성을 생각한다》 (사회평론, 2010)
  • 이병철, 《호암자전》(중앙일보사, 1986)
  • 삼성그룹 비서실, 《삼성 50년사》(삼성그룹 비서실, 1989)
  • 김병하, 《재벌의 형성과 기업가활동》 (한국능률협회, 1991)

바깥 고리

전임
이병철
제2대 삼성그룹 회장
1966년 8월 ~ 1968년 2월
후임
이병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