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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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옥
申相玉
출생 1926년 10월 18일(1926-10-18)[1]
일제 강점기 일제 강점기 함경북도 청진
사망 2006년 4월 11일 (79세)
대한민국 대한민국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다른 이름 아명(兒名)은 신태서(申泰瑞)
직업 영화감독
영화 미술감독
영화 편집감독
영화 기획가
영화제작자
영화연출가
영화 각본가
영화 각색가
대학 교수
활동 기간 1948년 ~ 2004년
학력 함경북도 경성고등보통학교 졸업
일본 도쿄 미술전문학교 중퇴
친척 최경옥(손아랫처남)
배우자 최은희(재결합), 오수미(이혼)
자녀 신정균(장남)
신지영(장녀)
신상균(차남)
신승리(차녀)
소속사 신필름
수상 부일영화상 감독상
대종상영화제 최우수작품상
대종상영화제 감독상
백상예술대상 영화감독상

신상옥(申相玉, 1926년 10월 18일[2] ~ 2006년 4월 11일)은 대한민국영화감독이다.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아명(兒名)은 신태서(申泰瑞)이다.

약력[편집]

함경북도 청진 출생이며 한때 함경북도 회령함경북도 경성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함경북도 경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도일하여 1945년 일본 도쿄 미술전문학교를 중퇴했다. 1952년에 16mm 영화인 《악야》로 본격적인 영화감독으로 데뷔한다. 영화배우였던 부인 최은희1953년에 결혼하여 2남 2녀를 두었으며, 장남인 신정균 역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영화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아내인 최은희1978년 1월 14일홍콩에서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북된 이후, 그녀의 행방을 찾다가 그 역시 같은 해 7월 19일홍콩에서 납북되었다. 북한에서 신필름영화촬영소 총장을 맡으면서 《소금》, 《불가사리》 등의 영화를 제작했다. 1986년 3월 13일최은희와 함께 오스트리아 에 있던 도중에, 미국 대사관으로 탈출하여 탈북에 성공했다. 1987년 김현희가 일으켰던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이 일어난 후에는 이 사건을 다룬 반공 영화인 《마유미》를 제작하기도 했다. 1994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을 지냈다. 2000년미국에서 대한민국으로 돌아왔다. 이후 간 이식 수술을 받았지만 건강이 악화되어 2006년 4월 11일 지병으로 사망했다. 묘소는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북가현리 소재 천주교 공원묘지이다.[3]

소속[편집]

사후[편집]

그를 기리는 《공주 신상옥 청년 영화제》가 2007년부터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해마다 열리고 있다.[4]

작품[편집]

감독[편집]

각본[편집]

연출[편집]

기획[편집]

제작[편집]

편집[편집]

  • 1952년 《악야》(16mm 영화)

수상[편집]

함께 보기[편집]

주석[편집]

  1. 1920년 9월 12일생이라는 설도 있고 한국영화감독사전에는 1925년 9월 12일생으로 기록되어 있음.
  2. 1920년 9월 12일생이라는 설도 있고 한국영화감독사전에는 1925년 9월 12일생으로 기록되어 있음. 1926년생이면 2년제 대학인 도쿄미술전문학교를 만 19세에 졸업한 셈이어서 어색함.
  3. 권혁재 기자. "[week&커버스토리] 추모여행, 세상에서 가장 경건한 ‘소풍’", 《중앙일보사》, 2009년 6월 4일 작성. 2009년 6월 17일 확인.
  4. 양세민. "신상옥 영화제 개최 축하의 장 - 고인의 뜻 동참하는 전,현직 영화인들 참여", 《뉴스컬쳐》, 2007년 2월 16일 작성. 2009년 2월 18일 확인.

바깥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