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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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목
兪賢穆
출생 1925년 7월 2일(1925-07-02)
일제 강점기 일제 강점기 황해도 봉산군 사리원읍
사망 2009년 6월 28일 (83세)
대한민국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다른 이름 호(號)는 영산(詠山)
직업 영화감독
영화 기획가
영화제작자
영화 각본가
영화 편집감독
활동 기간 1948년 ~ 2004년
학력 황해도 사리원 덕성보통학교 졸업
경성 휘문고등보통학교 졸업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유현목(兪賢穆, 1925년 7월 2일 ~ 2009년 6월 28일)은 대한민국영화감독이다. 본관은 기계(杞溪)이며 호는 영산(詠山)이다.

소속[편집]

생애[편집]

황해도 사리원 출생으로 서울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다. 동국대 재학 중인 1947년이규환의 조감독이 되어 영화계에 입문했다.

데뷔작은 1956년 발표한 《교차로》이다. 이후 대표작인 《오발탄》(1961)으로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부상했다. 이 영화는 이범선의 원작을 영화한 것으로, 한국 영화의 중흥기를 불러온 의미 있는 작품으로 꼽힌다.[1] 사회고발적인 비판의식이 포함된 영화로 해방촌에 살고 있는 월남 피난민 가족을 소재로 삼고 있다.

박경리 원작 《김약국의 딸들》(1963), 손창섭 원작 《잉여인간》(1964), 김은국 원작 《순교자》(1965), 황순원 원작 《카인의 후예》(1968), 윤흥길 원작 《장마》(1979), 이문열 원작 《사람의 아들》(1980) 등 대표작들은 대부분 소설을 영화한 것이었다.

주로 다룬 주제는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과 실향민이자 이산가족으로서 절실하게 느꼈던 이념 갈등에 대한 묘사이며, 《순교자》와 《사람의 아들》에서와 같이 구도와 신앙의 본질 문제에도 관심을 가졌다. 기법적 측면에서는 순수한 사실주의라기보다는 다양한 기법을 실험하여 모더니스트, 표현주의자라는 평을 들었다.

진지하고 장중한 주제 선택과 사회 비판을 위한 도구로서의 영화관, 그리고 세련된 연출 솜씨가 특징이다. "대한민국 영화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작품을 만들었다"는 평도 있을 만큼 한국 영화계의 거목으로 인정받고 있다.[2]

작품[편집]

감독[편집]

수상[편집]

주석[편집]

  1. 이정임 (2000년 5월 1일). 〈70. 영화의 등장〉, 《인류사를 바꾼 100대 과학사건》. 서울: 학민사. ISBN 89-7193-115-9
  2. 최세나. "'오발탄'의 유현목 감독, 공로상 수상", 《조선일보》, 2007년 12월 1일 작성. 2008년 6월 20일 확인.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