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메옹프랑수아 베르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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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뇌의 초상

시메옹프랑수아 베르뇌(Siméon-François Berneux, 1814년 5월 14일 ~ 1866년 3월 7일) 는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의 프랑스인 선교사이다. 한국 이름은 장경일(張敬一)이다.

생애[편집]

샤토 뒤 루와에서 태어났으며 1840년 프랑스를 떠나 통킹만주에서 14년 동안이나 전도하였다. 조선 천주교회 교구장 페레올 주교가 병들어 죽자, 그 후임으로 제4대 교구장(카프사의 명의주교)이 되어 입국하였다.

박해받는 교회인 조선 천주교회의 특수성에 비추어 교황청의 비준 없이도 사제 서품을 줄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뮈텔 주교·리델 신부 등과 함께 천주교회의 세력을 넓혀, 고종이 즉위하기까지에는 신도수가 2만여 명에 이르렀으며, 왕실 안까지 복음을 전파하였다. 그러나 1866년 병인박해 때 서울에서 잡혀 순교하였고, 그를 비롯한 프랑스 선교사들의 처형은 프랑스병인양요를 일으켜 조선을 침략하는 구실이 되었다. 물론 프랑스가 병인양요를 일으킨 진짜 이유는 천주교 탄압을 구실로 전쟁을 일으켜 세력을 넓히려는 제국주의였다. 순교 후 그의 전기가 프랑스에서 발간되었다.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한국 천주교회 순교자 103위의 한 사람으로 시성되었다.

함께 보기[편집]

전 임
페레올
제4대 천주교 조선교구
1854년 - 1866년
후 임
다블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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