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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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성(侯成, ? ~ ?)은 중국 후한 말의 무장이다.

생애[편집]

여포의 부장(部將)이었다.

헌제(獻帝) 건안 3년(198년), 조조(曹操)가 하비(下邳)에서 여포(呂布)를 포위했을 때 후성의 빈객(賓客)이 여포의 말을 훔쳐 반란을 일으키자 그가 추격하여 빈객을 죽이고 말을 찾아와 이 사실을 여포에게 알렸다.

이에 여포가 오히려 화를 내고 책망하니 화가 난 그는 동료 위속(魏續), 송헌(宋憲)과 함께 진궁(陳宮)과 고순(高順)을 잡아 조조에게 항복했다. 그러나 같이 항복한 위속과 송헌과는 달리 죄책감을 느껴 벼슬을 받지 않고 낙향했다.

《삼국지연의》에서의 후성[편집]

여포(呂布)가 연주(兗州) 일대를 공격하였을때부터 등장하며, 팔건장(八健將)의 한 사람이였다.

여포와 조조(曺操)가 연주 일대를 두고 경쟁을 하고있을때 후성은 군량을 조달하였으나, 정도산(定都山)에서 여포가 조조에게 크게 패하자 여포를 따라 서주(徐州)로 떠났다.

그 후, 진규(陳珪) 부자가 여포의 가족들과 심복들을 하비(下邳)로 이주할것을 권하였기 때문에 하비로 옮겨져 여포의 가족들을 지켰다. 198년, 여포가 포위당하였을때 어느 군사가 여포의 말을 훔쳐 도망치는 것을 막아낸다.

후성은 여포에게 찾아가 그 일을 보고하고 군사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술을 빚어 마실 것을 권했다. 이에 대노한 여포가 자신을 얕잡아보고 반역을 꾸미는 것이 아니냐라며 후성을 끌어내 처형하라고 하지만 동료 위속(魏續),송헌(宋憲) 등이 중재해 곤장을 맞는 것으로 끝났다. 하지만 이로 인해 엉덩이에 피가 터져 집에서 몸져 누웠다. 후성은 여포에게 원한을 품고 위속, 송헌과 함께 반역을 모의했고, 후성은 여포의 애마인 적토마(赤兎馬)를 훔쳐 조조에게 갖다 받친다. (후에 이 적토마는 관우(關羽)가 타고 다닌다.)

그 후, 후성은 어디에서도 등장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