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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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6월 15일, 히비야 공원에서 국회로 향하는 시위대

안보투쟁(일본어: 安保闘争 (あんぽとうそう) 안포토소[*])은 1960년 일본에서 미국 주도의 냉전에 가담하는 미일상호방위조약 개정에 반대하여 일어난 시민주도의 대규모 평화 운동을 말한다.

경과[편집]

미일상호방위조약 개정에 반대하는 시민 운동으로 시작한 안보투쟁은 1960년 5월 19일자유민주당이 경찰대를 국회 내에 배치시킨 가운데 단독으로 신안보조약 승인을 강행함에 따라 자민당의 비민주주의적인 행위에 대한 저항으로 의미가 확대되었다.[1]

당시 시민들과 기독교 평화주의자들은 국회 앞에서 모여서 안보투쟁에 참여하였고, '보이지 않는 손'이 시민들을 움직인다는 색깔론이 보수 정치인들에 의해 제기되자, 일부 시민들은 침묵시위로 이에 저항하기도 했다.

의의[편집]

안보투쟁은 기시 노부스케 내각이 물러나게 할 정도로 일본 정치계에 압박을 주었고, 일본 보수주의는 경제발전정책위주의 정책 실시로 국가운영방향을 바꾸었다. 하지만 안보투쟁과 도쿄대 사건 등의 극렬 학생 운동 이후에는 시민들이 사회개혁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되면서, 일본 사회운동은 물밑에 가라앉게 된다.

각주[편집]

  1. '조직' 대신 '시민' 만든 일본 시민사회, 《프레시안》, 2007-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