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철 (192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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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철
생애 1924년 7월 9일 ~ 2005년 9월 18일
출생지 충청남도 공주군
본관 평산
종교 천주교(세례명 : 스테파노)
복무 War flag of the Imperial Japanese Army.svg 일본 제국 육군
Flag of the Republic of Korea Army.svg 대한민국 육군
복무 기간 1945년 ~ 1962년
최종 계급 帝國陸軍の階級―襟章―少尉.svg 일본군 육군 소위
소장.JPG 대한민국 육군 소장
주요 참전 태평양 전쟁,한국 전쟁
기타 이력 국회의원,장관

신상철(申尙澈, 일본식 이름: 永田達明, 1924년 7월 9일 ~ 2005년 9월 18일[1], 충남 공주)은 일제 강점기대한민국의 군인으로, 대한민국 제10대 국회의원도 지냈다.

생애[편집]

일제 강점기 말기인 1942년경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제58기로 졸업했다. 1945년 5월에 임관하여 약 3개월 동안 일본군 항공대 소위로 복무하다가 태평양 전쟁 종전을 맞았다. 정래혁, 안광수와 일본육사 동기이다.[2]

미군정 하에서 창설된 대한민국 국군에 참여하여 대한민국 육군의 육군헌병사령관을 맡았다. 1948년여순 14연대 반란사건이 일어났을 때 육군헌병사령관으로 반란 사건 처리를 담당했고, 이후 남조선로동당 계열의 장교를 숙청하는 숙군 작업에 참여했다.

이후 제6사단장과 제7사단장을 지냈다. 한국 전쟁 중인 1950년 10월에 백선엽의 제1사단과 신상철의 제7사단 산하 8연대가 동시에 평양을 점령하였다.[3] 당시 계급은 육군 준장이었다. 1953년부터는 공군사관학교 교장을 맡기도 했다.

5·16 군사정변 후 외교관으로 등용되어 1962년부터 베트남 주재 특명전권대사를 역임했다. 박정희1965년에 월남파병을 성사시켰을 때 주월대사였다.

베트남에서 8년 이상 근무한 끝에 1970년에는 대한민국 체신부의 장관에 임명되었고, 10월 유신 당시 비상국무회의에 참여했다. 1973년에 장관직에서 물러난 뒤 에스파냐 주재 대사를 거쳐 유신정우회 소속으로 국회의원을 지냈다. 말년에는 자유민주연합 고문을 맡았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군 부문에 포함되었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신상철 前국회의원 별세”. 조선일보. 2005년 9월 20일. A24면면. 
  2.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민족문화연구소 (2001년 6월 1일). 〈제4부 백남권 - 귀국과 창군 활동〉. 《내가 겪은 해방과 분단》. 서울: 선인. ISBN 89-89205-15-8. 
  3. 조갑제 (1998년 10월 1일). 〈제10장 전쟁과 사랑 - 압록강으로〉.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3》. 서울: 조선일보사. ISBN 89-7365-193-5. 

참고 자료[편집]

전임
박동진
제2대 주 월남 대사
1962년 10월 ~ 1970년 12월
후임
유양수
전임
김보현
제23대 체신부 장관
1970년 12월 21일 ~ 1973년 12월 3일
후임
문형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