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티시 인베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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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가 미국을 도착한 모습이다.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시작으로 평가된다.

브리티시 인베이전(영어: British Invasion)은 주로 영국 출신 , 가수들이 미국이나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서 흥행에 크게 성공을 거두는 경향을 말한다. 브리티시 인베이전은 특히 1964년부터 1966년 사이에 일어났던 음악적 조류를 가리키기도 하나, 보통은 그 당시를 포함하여 이후 여러 그룹에 의해 진행되었던 영국 음악의 세계적 대중화를 지칭한다.

1964년 1월 18일 비틀즈의 〈I Want to Hold Your Hand〉가 빌보드 핫 100 차트에 진입하고, 그해 2월 1일 차트에 정상 등극하면서 시작되었다고 역사가들에 의해 일반적으로 인용된다. 대표적인 아티스트로는 비틀즈를 선두로 롤링스톤스, 더 후, 애니멀스, 야드버즈, 크림 , 더 킹크스, 데이브 클럭 파이브, 더 무디 블루스 등이 있다. 이들 대부분은 미국 흑인 음악(록큰롤, R&B)에 큰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의 음악엔 이들 흑인 가수의 성향이 많이 드러났다. 이들은 비트를 강조한 리듬, 일렉트릭 기타, 장발 등으로 당시 미국 10대 대중을 사로잡게 되었다.

배경[편집]

1960년대의 미국의 팝 시장에서는 당대 최고의 로큰롤 스타들이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사라지다시피 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군입대를 하게되고, 척 베리는 갑작스럽게 옥살이를 하게 되었으며, 제리 리 루이스는 13살의 사촌 여동생과의 결혼으로 인해 많은 비난을 받으며 내리막을 걷고 있었고, 리틀 리처드 역시 목사가 되겠다고 선언하며 로큰롤 세계를 떠나버렸다. 또한 에디 코크런진 빈센트는 함께 교통 사고를 당해 에디 코크런은 사망, 진 빈센트는 그 사고에 대한 후유증으로 평생을 시달리며 살았다. 버디 홀리 역시 갑작스러운 경비행기 사고로 사망하면서 로큰롤계의 큰 별들이 우후죽순으로 져버렸고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미국 로큰롤 시장은 침체된 상태였다.[1]

침공[편집]

비틀마니아[편집]

1964년 스히폴 국제공항에 운집한 팬과 기자

당시의 미국 빌보드 차트의 벽은 미국인이 아닌 다른 나라 뮤지션들에겐 사실상 넘기 힘든 벽이었다. 많은 뮤지션이 그 벽을 넘으려 노력했으나 그다지 좋은 성과를 보이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1964년 2월 1일자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비틀즈는 〈I Want To Hold Your Hand〉을 올렸고, 그 뒤 며칠 뒤인 2월 7일에 본격적인 미국 활동을 위해 출국한 비틀즈를 미국에서는 그들의 출국 소식을 시작으로 이동 경로까지 생중계하며 비틀즈를 기다렸고 비틀즈가 존 에프 케네디 공항에 도착했을 때 공항에는 이미 만 명이 넘는 팬들이 운집해있었다. 또한 미국에 도착한 후 곧 당대 최고의 미국 예능 프로그램이었던 《에드 설리번 쇼》에 비틀즈가 출연하게 되는데, 이날 이 쇼의 시청률은 무려 60%를 넘었고 이는 곧 약 7천만 명 정도가 이 쇼를 시청한 격이다. 이 사건은 미국의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지에서 뽑은 '20세기 록 음악계의 역사적인 100가지 사건'중 1위로 기록되어 있다. 이때 비틀즈를 시작으로 롤링 스톤스, 더 후, 애니멀스 같은 영국의 록밴드들이 미국 차트를 점령하며 승승장구하던 시기를 평론가들은 '제1차 브리티시 인베이전'이라 일컫는다.[1]

비틀즈 이후[편집]

제1차 브리티시 인베이전이 비틀즈, 더 후, 롤링 스톤스의 삼파전이었다면 제2차 브리티시 인베이전은 레드 제플린, 블랙 사바스, 딥 퍼플의 삼파전이었다. 점점 더 강하고 무게감 있는 사운드와 퍼포먼스로 발전한 하드록의 선봉에 이 세 팀이 있었고 레드 제플린은 1973년 전미 투어 공연에 나서게 되는데, 이 투어 도중 탬퍼 스타디움에서 열린 투어 공연 때 무려 5만 6천여 명의 관객이 모여들었고, 이는 비틀즈의 미국 투어 기록을 깬 것이다. 또한 1975년 3월 29일자 빌보드 음반 차트에는 레드 제플린의 모든 음반 6장이 모두 음반 차트에 진입해 있었다. 이때 레드 제플린의 새 음반인 《Physical Graffiti》가 발표되면서 일어난 기현상이었다고 하며, 이 기록은 현재도 깨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1968년에 데뷔 음반 《Shades of Deep Purple》을 발표한 딥 퍼플은 이 데뷔 음반의 〈Hush〉라는 곡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4위에 진입하기도 했으며, 블랙 사바스의 데뷔 음반 《Black Sabbath》 역시 미국 빌보드 차트 23위에 오르는 등 영국밴드들이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가며 헤비메탈 음악의 선봉에 서게 된다.

90년대 들어 모던록이 유행하면서 또다시 브리티시 인베이전이라는 단어를 연상시킬 만큼 큰 성공을 거뒀던 밴드는 영국의 오아시스블러였다. 이때부터 사실 '더 이상의 브리티시 인베이전은 없다'라고 할 만큼 영국발 팝음악을 가리키는 '브릿팝'이 빌보드 차트의 지분을 나눠가지게 된다. 오아시스는 무려 7천만 장이 넘는 음반 판매량을 기록하는 팀이고, 1995년 발표된 2집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는 미국에서 400만 장의 판매고를 올렸으며, 3집 음반이었던 《Be here now》(1997) 음반은 영국 음반 차트 1위, 미국 음반 차트 2위까지 오르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2005년 발표한 6집 《Don't believe the truth》는 발매된 지 첫 주 만에 미국에서만 약 6만 5천 장의 판매되기도 했다. 갤러거 형제(노엘 갤러거, 리암 갤러거)를 주축으로 만들어진 이 팀은 형제간의 강도 높은 불화설이 음악만큼이나 큰 관심거리이기도 했으며, 결국 2009년 노엘 갤러거는 오아시스를 탈퇴해 자신만의 밴드를 재결성하고 활동하기에 이른다. 1995년 8월 14일에 오아시스와 블러는 동시에 새로운 싱글을 발표하며 일명 '브릿팝 전쟁'이 발발하게 되는데 결국 승자는 블러의 《Country House》가 되었고, 블러 역시 1995년 발표한 정규 음반 《The Great Escape》가 미국 빌보드 음반차트 150위에 오르기 시작하여 1997년에는 《Blur》라는 음반으로 61위, 1999년 발표한 음반 《13》은 80위, 2003년 발표한 《Think Tank》는 56위, 2015년 작인 'The Magic Whip》이 24위에 오르는 등 꾸준한 상승세를 보여왔다. 오아시스와 블러의 브릿팝 전쟁으로 시작된 제3차 브리티시 인베이전에는 이 두 팀 외에도 라디오헤드, 스웨이드, 뮤즈, 트래비스, 콜드플레이 등이 속해있다.[1]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김수영 (2016년 6월 23일). “[김수영의 음악잡수다] 전세계를 침공한 영국음악, 브리티쉬 인베이젼(British Invasion)”. 《문화뉴스》. 2016년 1월 16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