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즈의 문화적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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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암스데르담 스키폴 공항에 모인 비틀즈의 팬과 취재 기자

1960년 리버풀에서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가 결성한 영국의 록 밴드 비틀즈는 록의 시대에서 최선두 주자이자 가장 영향력 있는 활동을 한 것으로 널리 평가받고 있다.[1] 1960년대 초 그들의 막대한 유명세는 당초에만 해도 "비틀마니아" 현상으로 표출되었으나, 그룹의 음악이 주된 작곡가인 레논과 매카트니를 중심축으로 세련되게 성장하면서, 그들은 1960년대 반문화에 의해 공유된 사상의 한 전영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들의 계속된 상업적, 비평적 성공은 수많은 문화적 움직임에 그 영향력을 미쳤다. 미국의 세계적인 예술적 지배를 영국의 로큰롤(브리티시 인베이전)을 통해 전환하였으며, 1960년대 젊은 음악가들의 밴드 결성 급증을 촉발하였고, 싱글의 판매고를 LP 레코드가 앞지르게 하였고, 그들과 비슷한 사운드를 내는 아티스트는 "비틀즈크"라는 용어로 묘사되며, 여러 패션 트렌드에서 그 예시를 엿볼 수 있다. 그들의 유명세가 정점에 달하던 시기에 레논은 그룹이 "예수보다 유명하다"는 논쟁적 발언을 한다. 비틀즈는 지금까지도 비치 보이스, 밥 딜런, 롤링 스톤스 등으로부터 음반 판매량과 예술적 명망에 도전을 받고 있다. 헤아릴 수 없는 비틀즈의 실험들은 그 전례가 아주 없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주류 팝에서 비틀즈와 딜런의 활동보다 더 많은 변화를 부른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창조적 진보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자기 개발을 통해 불가능의 벽을 넘었다. 비틀즈의 특이한 제작 기술은 향후에 일반적인 녹음 연습의 일부가 되었다.

2009년이 되어, 비틀즈는 6억 장 이상의 음반을 전 세계적으로 판 것으로 추정되어 역사상 가장 많은 음반을 판 밴드가 되었다.[2][3] 그들은 영국 차트에 정상까지 오른 음반을 15개 이상 보유하고 있으며,[4] 영국에서만 2190만 장의 싱글을 팔았다.[5] 이들은 2008년 미국 싱글 차트 50주년을 기념해 빌보드가 선정한 역대 가장 성공하고 핫한 100인의 아티스트에서 1위에 올랐다.[6] 2016년 기준, 비틀즈는 빌보드 핫 100에서 스무 개의 음반을 정상에 올려놓아 가장 많이 올린 것으로 집계되었다.[7] 〈Yesterday〉가 역사상 녹음된 노래 중 가장 많이 커버된 노래 중 하나가 되는 등 이들의 노래는 수없이 많은 아티스트에 의해 커버되었다.[8] 1999년 비틀즈는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그 이름이 올랐다.[9]

머리 모양[편집]

몹톱 스타일로 머리를 정돈한 1964년경 비틀즈

리버풀에서의 초창기와 함부르크 클럽에서 보낸 나날들 내내 비틀즈는 테디 보이엘비스 프레슬리, 에디 코크런, 버디 홀리 같은 우상들의 로큰롤 헤어스타일을 따라했다. 앞머리는 머릿기름을 발라 올백으로 넘기고 뒷머리는 오리 꼬리처럼 모아 만든 머리었다. 가장 먼저 헤어스타일을 바꾼 멤버는 섯클리프였다. 여자친구 아스트리드 커처가 "그의 앞머리를 모두 빗어 내려 끝을 싹둑싹둑 자른 뒤 깔끔하게 정리"한 것이었다. 며칠 밤 괴롭힘을 당한 끝에 먼저 해리슨이, 그다음 매카트니가 같은 헤어스타일을 했다. 레논을 설득하는 데는 좀 더 시간이 걸렸다. 피트 베스트는 끝까지 헤어 스타일을 바꾸지 않고 비틀즈를 떠날 때까지 테디 보이 스타일을 고수했다.[10]

커처가 이 새로운 헤어스타일을 고안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그들과 잘 알던 독일 학생 위르겐 폴머는 훗날 비틀즈 음반을 디자인하는 클라우스 부어만처럼 앞머리를 빗어 내리고 다녔다. 파리에서 그를 만난 레논과 매카트니는 그의 헤어스타일을 따라하게 된다. "내가 묵고 있던 레프트 뱅크의 호텔에서 비틀즈의 머리를 잘라주었지요" 폴머는 말한다. 비틀즈의 새로운 헤어스타일은 널리 유행하게 되지만, 런던의 한 신문과 최초로 인터뷰를 할 때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이브닝 스탠더드》의 모린 클리브는 이들이 "괴상한 헤어스타일, 앞머리를 앞으로 빗어 내린 프렌치 스타일"을 하고 있다고 썼다. 1964년 비틀즈가 미국으로 건너가며 이 헤어스타일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뉴욕 타임스》가 대걸래가 이마를 덮은 모양이라고 묘사한 뒤 더벅머리, 또는 대걸래(moptop)라는 별명을 얻었다.[10]

잡지사들은 앞다퉈 비틀즈 헤어스타일 만드는 법을 다루었고 게임기 회사는 자석 막대와 철가루로 비틀즈의 머리카락을 꾸미며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신제품을 내놓았다. 또 미국 신문과 라디오 방송국에서는 가발 콘테스트를 개최해 독자와 청취자들이 비틀즈 가발을 쓴 사람 중 우승자를 뽑기도 했다. 가발업자들은 마구잡이로 가발을 생산했고 미국 전역에서 수십만 개의 비틀즈 가발이 팔려 나갔다.[10]

수상 및 후보[편집]

각주[편집]

  1. (영어) Unterberger, Richie. 비틀즈의 문화적 영향 - 올뮤직. Retrieved 5 July 2013.
  2. “Beatles' remastered box set, video game out”. CNNMoney.com. 2009년 9월 9일. 2011년 12월 1일에 확인함. 
  3. Hotten, Russell (2012년 10월 4일). “The Beatles at 50: From Fab Four to fabulously wealthy”. BBC News. 2013년 1월 28일에 확인함. 
  4. Glennie 2012.
  5. Official Chart Company 2012.
  6. Billboard 2008a.
  7. Trust, Gary (2016년 3월 21일). “Rihanna Rules Hot 100 for Fifth Week, Ariana Grande Debuts at No. 10”. 《Billboard. 2016년 3월 23일에 확인함. 
  8. “Most Recorded Song”. Guinness World Records. 2009. 10 September 2006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12 May 2009에 확인함. 
  9. Loder 1998.
  10. 브라이언 2014, 50쪽.

참고 문헌[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