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보다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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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보다 유명하다(More popular than Jesus)" (또는 "bigger than Jesus")[a]는 1966년 비틀즈존 레논에 의한 논쟁적 발언이다. 인터뷰 도중, 그는 기독교가 쇠퇴중에 있으며 어쩌면 록 음악보다 그 수명이 짧을 것이라고 논했다. "우리는 현재 예수보다도 인기가 많아요. 로큰롤과 기독교 중 어느 것이 먼저 사라질 지는 나도 모릅니다. 예수는 옳았지만 그의 제자들은 우둔하고 범상했죠. 기독교를 왜곡하고 망치게 한 것은 바로 그들입니다." 이 발언은 영국에서 출간될 당시 아무런 논란도 일으키지 않았다. 그러나 다섯 달 후 미국에서 이 발언이 재출간되자 폭발한 기독교 단체들이 거세게 반응했다.

발언은 기자 모린 클리브가 시행한 인터뷰에서 기원한다. 인터뷰어는 1966년 3월의 《런던 이브닝 스탠더드》의 기사에서 그 진술을 개재했으나 당시 아무런 대중적 관심도 얻지 못했다. 미국의 청소년 잡지 《데이트북》이 그로부터 다섯 달 후인 8월 레논의 발언을 인용했고, 미국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시위가 발발했다. 일부 라디오 방송국이 비틀즈 노래의 재생을 중단했고, 그들의 음반이 공개적으로 소각됐고, 기자회견이 취소됐고, 그들에게 위협이 가해졌다. 논란은 비틀즈의 1966년 8월 진행된 미국 투어와 맞물려 있었기에 레논과 브라이언 엡스타인은 이 논란을 일련의 기자회견을 통해 잠재우려 노력했다. 몇몇 투어에서 그들은 쿠 클럭스 클랜의 피켓시위와 같은 혼란과 협박을 경험했다.

논란의 발발에서 아주 잠시 뒤, 레논은 결국 마지못해 발언에 대한 사과를 했다. "제가 만일 텔레비전이 예수보다 인기있다고 했다면, 그냥 넘어갈 수 있었을 겁니다." 그는 단순히 다른 사람들의 시각과 밴드가 가진 유명세에 대해 논한 것이었고, 때문에 중압감에 시달렸다. 사건은 비틀즈가 대중 라이브 공연에서 흥미를 잃게하는 데 일조했고, 미국 투어가 그들이 수행한 마지막 투어가 되었다. 그 이후부터 비틀즈는 완전한 스튜디오 밴드로 변모했다.

배경[편집]

1966년 3월 《런던 이브닝 스탠더드》는 "비틀즈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일련의 기사를 한 주간 연재했다.[3] 존 레논, 링고 스타, 조지 해리슨, 폴 매카트니가 차례로 취재를 받았다. 기사는 기자 모린 클리브가 담당했는데,[3] 그는 비틀즈를 잘 알고 있었을 뿐더러 영국에서 비틀마니아가 시작됐을 때부터 정기적으로 인터뷰를 진행한 바 있었다. 또한 그로부터 3년 전부터 그는 비틀즈에게 "머지사이드의 달링"이라는 별칭으로 불렸고,[3] 1964년 2월의 첫 미국 투어에서는 비행기에서 그들과 동승하기도 했다.[3][4] 1966년 자신만의 생활상 시리즈를 연재하기 위해, 그는 표준방식인 모두 함께 인터뷰하기 보다 그룹 개개인을 인터뷰하기로 결심했다.[3]

클리브는 1966년 3월 4일에 레논과 인터뷰했다. 웨이브리지 켄우드에 소재한 그의 집에서 클리브는 실제 크기의 십자가상, 고릴라 복장, 중세 갑옷,[5] 잘 정돈된 도서관을 발견했다. 도서관에 구비된 도서로는 앨프리드 테니슨, 조너선 스위프트, 오스카 와일드, 조지 오웰, 올더스 헉슬리,[2] 그리고 기독교에 대한 레논의 생각에 영향을 끼친 휴즈 J. 숀필드의 《무시된 플롯》(The Passover Plot)이 있었다.[6] 클리브의 기사는 레논이 "종교에 대한 광범위한 독서"를 했음을 언급했고,[2] 그의 발언을 다음과 같이 인용했다.

기독교는 소멸할 거예요. 사라지고 오그라들 겁니다. 거기에 대해 논쟁할 필요가 없어요. 제가 맞고 그게 증명될 겁니다. 우리는 현재 예수보다 인기가 많아요. 로큰롤과 기독교 중 어느 것이 먼저 사라질 지는 나도 모릅니다. 예수는 옳았지만 그의 제자들은 우둔하고 범상했죠. 기독교를 왜곡하고 망치게 한 것은 바로 그들입니다.[2][7]

존 레논과 함께한 클리브의 인터뷰는 1966년 3월호 《이브닝 스탠더드》에 실렸는데 영국에서는 대중적 반응을 일으키지 못했다.[8] 당시 영국에서 예배 참석의 빈도는 줄고 있었으며 기독교 교회는 자기들의 이미지가 무언가 더 현대에 맞는 스타일로 변형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8] 음악 역사학자 조너선 구드는 썼다. "한 야외 행사에서, 풍자적 코미디언이 자기들을 의의가 있는 것으로 만드려는 교회의 점차로 증가하는 자포자기식 시도와 함께했다. (나를 목사가 아닌, 바보라고 칭하라 ...)"[8] 1963년, 영국 성공회교도 울위의 주교 존 A.T. 로빈슨은 논쟁적이나 대중화되지 않은 책 《신의 본질》(Honest to God)을 출간했다. 책은 국가에게 도덕성을 가르치는 해묵은 교회 강의에서 벗어나, 신의 콘셉트를 "하늘 위의 노인"로 정해, 전 세계적인 사랑의 윤리를 강조할 것을 역설했다.[8] 브라이언 R. 윌슨은 1966년 글 《세속적 사회 내 종교》(Religion in Secular Society)에서 증가하는 세속성은 영국 교회의 버려짐이 주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교회의 인기는 계속되었다.[9]

매카트니와 해리슨은 모두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기독교를 따르려 하지는 않았다.[10] 비틀마니아가 시작될 무렵, 그룹은 레브드 로날드 깁슨의 접근을 받았다. 그는 비틀즈 버전의 〈O Come All Ye Faithful〉가 어쩌면 영국의 교회에게 "그것이 필요한 도움을 크게 줄 지도 모른다"고 기자에게 말했다.[8]

각주[편집]

내용주

  1. 논란의 분석에 "Bigger than Jesus"가 쓰인 바 있지만,[1] 정확한 문장은 "more popular than Jesus"이다.[2]

참조주

  1. Womack & Davis 2012, 103쪽.
  2. Gould 2008, 308–309쪽.
  3. Gould 2008, 307쪽.
  4. Pawlowski 1990, 175쪽.
  5. Harry 2000, 449쪽.
  6. Cadogan 2008, 4쪽.
  7. Cleave, Maureen (2005년 10월 5일). “The John Lennon I knew”. 《The Daily Telegraph. 2014년 8월 5일에 확인함. 
  8. Gould 2008, 342쪽.
  9. Brown, Callum G.; Snape, Michael Francis, 편집. (2010). 《Secularisation in the Christian World: Essays in Honour of Hugh McLeod》. Ashgate Publishing. 205쪽. ISBN 978-0-7546-6131-3. 
  10. Pisa, Nick (2010년 4월 11일). “Vatican forgives The Beatles for 'bigger than Jesus' comment”. 《The Daily Telegraph》. 2014년 8월 5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