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고 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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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고 스타
Ringo Starr
Ringo Starr and all his band (8470866906).jpg
링고 스타 (2013년)
기본 정보
본명 리처드 스타키
(Richard Starkey)
출생 1940년 7월 7일(1940-07-07) (76세)
잉글랜드 머지사이드 주 리버풀
국적 영국 영국
직업 가수
드러머
장르
월드 뮤직
악기 보컬
드럼
퍼커션
활동 시기 1957년 ~
배우자 바바라 바크
가족 아들 잭 스타키
의붓딸 프란체스카 그레고리니
레이블 스완, 게펜
관련 활동 비틀즈
로리 스톰
플라스틱 오노 밴드
웹사이트 링고 스타 홈페이지

리처드 스타키(Richard Starkey[1]) 또는 예명 링고 스타(Ringo Starr, 1940년 7월 7일 ~ )는 비틀즈의 드러머로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영국의 음악가, 가수, 작곡가, 그리고 배우다. 스타는 비틀즈 시절 음반 하나당 한 곡의 리드 보컬을 맡았고, 이의 예시로는 〈With a Little Help from My Friends〉, 〈Yellow Submarine〉, 커버곡 〈Act Naturally〉 등이 있다. 그는 비틀즈에서 〈Don't Pass Me By〉, 〈Octopus's Garden〉를 써서 발표하였으며, 공동 작곡으로는 〈What Goes On〉, 〈Flying〉 등이 있다.

스타는 유년기 두 번 죽을 위기를 넘겼고, 그 결과 장기적으로 입원해 있어 학교에 진학하지 못하였다. 1955년 노동자로 처음 일하게 된 그는 영국 국유 철도에서 잠시 근무하였고, 이후 리버풀 장비 제조사에서 견습을 지냈다. 곧 있어 영국의 스키플 붐에 흥미를 가지게 된 그는 이 장르를 열렬히 사랑하게 된다. 1957년 자신의 첫 밴드, 더 에디 클레이턴 스키플 그룹을 공동 결성하였고, 이 밴드는 1958년 초 미국의 로큰롤에 무릎을 꿀기 전까지 현지에서 명망이 자자했다.

1960년 비틀즈가 결성될 당시 스타는 리버풀의 또다른 밴드인 로리 스톰 앤 더 허리케인스에 멤버로 있었다. 영국과 함부르크를 전전하면서 준수한 성공을 거둔 뒤로 스타는 허리케인스를 탈퇴하고 1962년 8월 피트 베스트를 대신하여 비틀즈에 합류한다. 스타는 비틀즈의 첫 주연 영화를 비롯한 여러 영상물에서 돋보이는 배역을 연기하였다. 1970년 비틀즈의 해체 뒤로 미국에서 4위에 오른 〈It Don't Come Easy〉과 정상에 오른 〈Photograph〉, 그리고 〈You're Sixteen〉를 배출하여 히트 싱글을 남기는 등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1972년에는 영국에서 가장 성공한 자신의 싱글 〈Back Off Boogaloo〉로 차트 2위까지 오른다. 이듬해 영미 모두에서 10위까지 오른 자신의 음반 《Ringo》로 대성공을 이룬다. 그는 수많은 다큐멘터리와 텔레비전 쇼에 등장했다. 그는 아동용 프로그램 《토마스와 친구들》의 시즌 1과 2에서 나레이터를 맡았고, PBS의 아동용 텔레비전 시리즈 《샤이닝 타임 스테이션》의 첫 시즌 〈Mr Conductor〉에서 연기했다. 1989년부터 링고는 열 두번의 변형이 있던 링고 스타 앤 히즈 올스타 밴드와 투어를 돌고 있다.

스타가 창조한 음악적 공로는 다른 드러머인 필 콜린스 등으로부터 찬사를 받아왔다. 필은 그를 "훌륭한 뮤지션"이라고 높이 평가했다.[2] 그리고 스티브 스미스는 "링고 이전까지 드럼 스타들은 솔로와 연주 기교로만 평가받았다. 링고의 유명세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낳았다 ... 우리는 작곡 등의 면에서 드러머를 동등한 참여자로 여기에 되었다 ... 그의 역할은 노래에서 너무나 두드러져서 링고의 드럼 외에는 음악을 듣지 않아도, 그 곡이 무엇인지 인식 가능할 것이다."[3] 링고는 1998년 《모던 드러머》 명에의 전당에 입회하였고,[4] 2011년 《롤링 스톤》은 링고를 역대 가장 위대한 드러머에서 5위로 선정했다. 1988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비틀즈로서 입성한 바 있던 그는 2015년 솔로 활동으로 다시 입성하게 되어 1번보다 많이 입성한 21인의 공연자 중 하나가 되었다.[5]

생애[편집]

A colour photo of a red-bricked house with boarded up windows and doors
리버풀 딩글 매들린 거리에 위치한 스타의 생가

링고 스타는 1940년 7월 7일에 태어났다. 난산이어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태어났으며, 어려서는 두 차례의 힘든 고비를 넘기는 등 건강이 무척 안 좋았다. 부모는 어릴 적 이혼해서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6] 건강 때문에 공부를 하지 못해 학창시절 언제나 다른 학생들보다 성적이 뒤처졌다. 그 무렵 비틀즈의 나머지 멤버들이 그러했듯, 링고 역시 스키플 음악에 푹 빠져들었고 용접공으로 함께 일 했던 기타리스트 에디 마일즈와 첫 번째 밴드 에디 클레이턴 스키플 그룹(The Eddie Clayton Skiffle Group)을 조직했다. 링고는 그 밴드에서 열쇠를 흔들거나, 의자나 상자를 두드려 리듬을 넣는 등 드러머라 부르기는 어렵지만, 로컬 씬에서 몇 차례의 공연을 펼쳤다. 그리고 1957년 크리스마스 이브, 새아버지가 사 준 중고 드럼세트로 드럼을 접하게 된다.[7]

1959년 링고 스타는 로리 스톰 앤 허리케인스(Rory Storm and the Hurricanes)에 가입한다. 당시 가입 조건은 '드럼 세트를 가진 드러머일 것'이었다. 로리 스톰 앤 허리케인스는 화려한 의상과 무대 매너로 순식간에 리버풀을 대표하는 밴드로 떠올랐다. 그는 무대에서 팔찌나 반지 같은 링(ring)을 많이 착용한 것에 착안하여 링고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리고 '스타 타임'을 통해 솔로 타임을 가질 만큼 드러머 링고 스타로서 역시 확실한 자신의 자리를 잡는다.

비틀즈[편집]

링고 스타와 비틀즈가 만난 건 1960년 로리 스톰 앤 허리케인스가 함부르크에서 공연을 할 무렵이었다. 이미 함부르크로 진출해 명성을 얻고 있던 허리케인스에 비해 뒤늦게 건너 온 비틀즈의 출연료는 더 쌌다.[7]

링고 스타와 나머지 비틀즈 멤버들(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은 당시 허리케인스의 보컬리스트였던 루 월터스의 싱글 녹음에서 처음으로 함께 연주했다. 그리고 존 레논은 1962년 8월 14일 링고 스타에게 밴드 가입을 요청했고 링고가 승락했다. 이틀 뒤엔 비틀즈의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이 "밴드는 네가 나가고 링고가 가입하길 원하고 있고, 프로듀서 조지 마틴과 밴드 멤버들은 네가 밴드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당시 드러머였던 피트 베스트를 해고했다. 이틀 뒤인 8월 18일 링고 스타가 비틀즈에 정식으로 가입했다.[7]

존 레논은 누군가 링고가 세계 최고의 드럼 연주자인지 물었을 때 “비틀즈 내에서도 최고의 드럼 연주자라 할 수 없다.”라고 했지만, 결국 “링고가 없었다면 비틀즈는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남긴 바 있다. 링고 스타는 드럼 연주 외에도 비틀즈 내에서 따뜻하고 원만한 인간성으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다른 멤버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았다. 앞서 언급한 존 레논의 언급은 바로 이러한 그의 성격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어쩌면 그 성격은 그가 비틀즈 시절 직접 불렀던 〈With a Little Help from My Friend〉나 〈Yellow Submarine〉 혹은 미국시장을 겨냥한 커버곡인 〈Act Naturally〉에서 들을 수 있는 음색과도 닮았다.

드럼 연주에 있어서 링고 스타는 스스로 밝힌 것처럼 테크니션이 아니었다. 하지만 최대한 밴드에 어울리는 연주로 초창기 록 드럼의 기본을 개척했다. 그리고 사이사이 특유의 번뜩이는 유머감과 재치로 예상치 못한 패턴을 늘어놓기도 했다. 이는 단순히 왼손잡이인 그가 오른손 잡이용 드럼세트를 사용했기 때문에 그런 것만은 아니고, 타고난 그의 성품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비틀즈는 일종의 맬러프라피즘(malapropism: 우습게 잘못 쓰인 말)이라고 할 수 있는 링고이즘(Ringoism)이란 단어를 만들어냈다. 〈Hard Day's Night〉, 〈Eight Days a Week〉, 〈Tomorrow Never Knows〉와 같은 비틀즈의 대표곡은 엄밀히 말해서 문법적으로 어긋난 제목들이다. 바로 이 제목들을 만든 멤버가 링고 스타다. 이렇게 문법이 맞지는 않지만 특유의 재치로 말을 새롭게 만들어 내는, 그래서 듯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링고의 또 다른 재능을 특히 존 레논이 높이 샀다고 전해진다.

솔로 활동[편집]

A black and white photo of about a dozen musicians performing on a stage.
1976년 11월 밥 딜런더 밴드의 드럼을 맡은 스타

하지만 낙천적이고 온화한 성격으로 언제나 비틀즈를 화합으로 감싸던 링고 스타도 1968년경 밴드에서 비공식적으로 이탈했다가 다시 합류할 정도로 비틀즈의 상태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그런 상황 아래서 비틀즈가 해산한 1970년 링고 스타는 두 장의 앨범을 발표하며 솔로로 독립했다. 두 장의 앨범은 각각 스탠더드 팝 성향과 컨트리 성향의 《Sentimental Journey》와 《Beaucoups of Blues》다.

솔로 활동 가운데 링고의 진가가 가장 잘 드러난 음반은 세 번째 앨범인 《Ringo》 (1973)다. 이 앨범은 빌보드 싱글차트 넘버원을 차지한 〈Photograph〉, 〈You're Sixteen〉 등 지금까지도 링고 스타의 대표곡을 군림하는 넘버들을 담고 있으며, 앨범차트에서도 2위를 기록할 만큼 숫자상으로도 그가 발표한 최고의 앨범이란 걸 증명한다. 하지만, 비틀즈에서 화합을 담당했던 그의 성격이 다시금 비틀즈 멤버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만든 앨범이란 데 앞서 말한 진가가 있는 앨범이다. 앨범 재킷에 관객석에 만화로 그려진 인물들을 살펴보면, 중앙에 존 레논과 오노 요코(Ono Yoko),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와 린다 매카트니(Lindal McCartney) 그리고 조지 해리슨(Geroge Harrison)의 모습이 보인다. 그런가 하면 비틀즈 시절 제5의 멤버라 불리던 빌리 프리스턴(Billy Preston), 함부르크 시절부터 비틀즈와 인연을 맺어왔던 크라우스 부어만(Klaus Voormann)도 등장한다. 이 모든 멤버가 한 장의 음반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이 외에도 수많은 스타들이 링고 스타의 세 번째 음반에 참여했다. 인기의 여세는 다시 존 레논이 참여한 다음 앨범 《Goodnight Vienna》 (1974)로 이어졌다. 국내에도 〈No No Song〉으로 잘 알려진 이 앨범 역시 앨범차트 8위에 랭크되며 준수한 성적을 낚았다. 하지만 이후 링고 스타의 음반들은 그렇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링고 스타란 별의 밝기는 점점 약해져 갔다.

인기의 사정권에서 멀어지며 링고 스타는 질병에 시달리기도 했고, 집이 화재로 불타기도 하는 악재에 시달렸다. 이런 그를 추스르게 만든 건 그의 이름을 딴 링고 스타 앤 히즈 올 스타 밴드(Ringo Starr & His All-Starr Band)였다. 이 밴드의 아이디어는 데이빗 피쇼브(David Fishof)에게서 나왔다. 초기 올 스타 밴드의 공연 프로듀서를 담당하게 되는 그는 〈링고 스타를 중심으로 클래식 락 시대부터 가장 유명하고 재능 있는 뮤지션들이 어우러져 함께 공연하는 것〉이라는 아주 단순한 구상을 세웠다. 하지만 이는 앞선 링고 스타의 활동에서 볼 수 있었던 타고난 친화력과 인간성을 통해 놀라운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동시대에 활동했던 뮤지션들은 함께 활동했던 인연으로 밴드에 참여했고, 그의 활동을 바라보며 뮤지션으로서의 꿈을 키웠던 후배 뮤지션들은 그저 링고와 같은 무대에 서는 영광을 위해서라도 밴드의 일원이 되길 자처했다. 1989년, 그렇게 공연으로 시작된 링고 스타 앤 히즈 올 스타 밴드는 숱한 화제를 뿌렸고, 참여한 뮤지션들은 링고 스타라는 별의 밝기를 그 어느 때보다 환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1983년 《Old Wave》를 발표한 후 끊겼던 링고 스타의 활동은 든든한 동료들과 함께 다시 시작됐다. 그리고 그 활동은 2000년대 들어서도 평균 2년에 한 장씩의 신보를 발표할 정도로 그에게 활력을 더해줬다. 그리고 2015년 새로운 앨범 《Postcards from Paradise》가 발표되었다. 링고 스타는 같은 해 비틀즈의 멤버 가운데 개인적으로는 마지막으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다.

디스코그래피[편집]

스튜디오 앨범[편집]

  1. Sentimental Journey (1970년 3월 27일) 영국 #7, 미국 #22
  2. Beaucoups of Blues (1970년 9월 25일) 미국 #65
  3. Ringo (1973년 11월 9일) 영국 #7, 미국 #2
  4. Goodnight Vienna (1974년 11월 15일) 영국 #30, 미국 #8
  5. Ringo's Rotogravure (1976년 9월 17일) 미국 #28
  6. Ringo the 4th (1977년 9월 30일) 미국 #162
  7. Bad Boy (1978년 6월 16일) 미국 #129
  8. Stop and Smell the Roses (1981년 11월 20일) 미국 #98
  9. Old Wave (1983년 6월 16일)
  10. Time Takes Time (1992년 5월 22일)
  11. Vertical Man (1998년 6월 15일) 미국 #61
  12. I Wanna Be Santa Claus (1999년 10월 24일)
  13. Ringo Rama (2003년 3월 24일) 미국 #113
  14. Choose Love (2005년 6월 7일)
  15. Liverpool 8 (2008년 2월 15일)
  16. Y Not (2010년 2월 19일)

컴필레이션 앨범[편집]

라이브 앨범[편집]

서훈[편집]

바깥 고리[편집]

각주[편집]

  1. “Ringo Starr Biography”. Biography.com. 
  2. Singh, Anita (2011년 7월 22일). “Mojo Awards 2011: Ringo Starr honoured”. 《The Daily Telegraph》. 2014년 8월 2일에 확인함. 
  3. 인용 오류: <ref> 태그가 잘못되었습니다; PAS라는 이름을 가진 주석에 제공한 텍스트가 없습니다
  4. “Modern Drummer’s Readers Poll Archive, 1979–2014”. 《Modern Drummer. 2015년 8월 10일에 확인함. 
  5. “2015 Rock Hall inductees”. Radio.com. 2014년 12월 16일에 확인함. 
  6. “링고 스타와 올스타 - 비틀스의 멋진 청년”. 《네이버 매거진캐스트》. 여성중앙. 2016년 11월 1일. 
  7. “아티스트 읽기 #22 - Ringo Starr(링고스타)”. 《벅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