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중국)
도(刀)는 중국의 외날도검이다.
초기 역사[편집]
가장 이른 시기의 도 유물은 중국 청동기 시대 상나라에서 발견되며 이를 직배도(直背刀)라고 한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직선형이거나 만곡이 작은 편이며 외날이다. 본래 청동으로 만들어졌으나 전국시대 후기가 되면 무쇠 또는 강철 무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원래는 직선 양날칼인 검보다 사용례가 적었으나 한나라 때 기병들을 중심으로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도를 익히는 데는 1주, 창을 익히는 데는 1달, 검을 익히는 데는 1년이 걸린다는 말이 있다. 곧 보병에게도 도가 보급되었고 표준 무기로서 검을 대체하기 시작했다.[1][2] 후한 시기의 도는 둥근 칼자루에 고리 모양 검파두식을 가졌으며 길이는 85에서 114 센티미터 사이였다. 직사각형 방패와 함께 사용했다.[3]
삼국시대 말기가 되면 도는 검을 완전히 대체한다.[4] 이후 검은 귀족계급의 의장용 무기로서 호신 내지 자위용으로만 사용되고 전장에서는 도만이 사용되었다.[5]
수당송 시대[편집]
당나라 때 한반도와 일본으로 중국식 도가 유입되어 양국의 도검 제작에 영향을 미쳤다.[6] 수당시대에 휴대무기로 애용된 편수도인 횡도는 완전한 직선형으로 일본의 직도를 연상시킨다. 양수도인 장도도 특수한 용도로 사용되었다.[7]
송나라때는 수도(手刀)라는 보병도가 사용되었다. 몇몇 삽화에서는 수도를 직도로 그리지만 《무경총요》에는 곡도로 그려져 있다. 이는 중앙아시아 스텝 유목민들의 영향이있을 가능성도 있다. 송나라 때의 도로는 서양의 펄션을 닮은 대도(大刀),[8] 거대한 양수도인 참마도,[9] 칼자루와 칼날이 모두 긴 양수도인 보전도(步战刀)가 있다.
원명청 시대[편집]
13세기 초 몽골 제국이 중국을 정복하고 원나라를 세우자 유목민들의 곡도가 중국 도검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튀르크, 퉁구스를 비롯한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은 기원후 8세기경부터 곡도를 사용했으며, 몽골에서도 애용되었다. 곡도는 기마전에 효율적이었기에 몽골 제국 전역의 병사들에게 애용되었고 이후로도 지속되는 영향을 남겼다.[10]
원나라가 명나라에 무너진 뒤에도 몽골 도검의 영향은 중국에 계속 남아서 명나라와 청나라까지 이어졌다. 이에 따라 도는 더욱 유행했고 도에서 파생된 다양한 날붙이들이 만들어졌다. 만곡이 매우 큰 날붙이들이 유행했고 이러한 날붙이들을 모두 집합적으로 패도(佩刀)라 했다. 명나라 때가 되면 패도가 그때까지 남아있던 검을 완전히 퇴출시킨다.[11] 패도는 다음과 같은 네 종류로 크게 나눌 수 있다.[12][13]
- 안모도
- 안모도(雁毛刀)는 "거위털 칼"이라는 뜻으로 그 옛날 직배도처럼 만곡이 매우 작아 직선형에 가깝다. 칼날 끝 타격중심 지점에만 만곡이 있다. 이 때문에 찌르기를 비롯한 검과 유사한 사용이 가능하면서도 도 특유의 쪼개고 베는 능력을 유지했다.[14]
- 유엽도
- 유엽도(柳葉刀)는 "버들잎 칼"이라는 뜻으로 중국 도검 중 가장 흔한 종류이다. 명나라 때 처음 생겼으며 날 전체를 따라 중간 정도의 만곡이 있다. 기병과 보병 모두 사용하는 주무장이 되어 안모도를 대체했다. 또 여러 중국 무술 유파에서 다루는 무기이기도 하다.[15]
- 편도
- 편도(片刀)는 "쪼개는 칼"이라는 뜻이다. 만곡이 매우 커서 쪼개고 베는 데 특화되어 있다. 서양의 샴쉬르나 시미타와도 비슷하게 생겼다. 비교적 덜 흔한 무기로 산병들이 방패와 함께 사용했다.[16]
- 우미도
- 우미도(牛尾刀)는 "소꼬리 칼"이라는 뜻이다. 오늘날의 쿵후 영화 등에서 자주 보이는 전형적인 "중국도"가 이것이다. 19세기 초(청나라 하반기)에 처음 그 기록이 나타나며, 민간용으로만 사용되었다. 이것이 군대에서 사용되었다는 기록이나 관찬 무기목록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현대의 문학이나 영화 따위에서 이 칼을 들고 나오는 것은 고증오류인 경우가 많다.[17][18]
상술한 네 가지 주요 형태 외에도 단도(短刀)도 있었는데 이는 유엽도와 모양이 거의 같고 크기만 축소시킨 것과 비슷하다.[19] 대도도 계속 사용되어서 명나라는 북방의 유목민족 및 남해안의 왜구를 상대할 때 장도나 참마도 같은 대형 양수도를 사용했다. 이 무기들은 청나라 때도 제한적이지만 계속 사용되었다(이름은 바뀌는 경우도 있었다).[20] 청나라 때 출현한 남도(南刀) 등은 상술한 도들이 각 지역에 따라 모양과 명칭에 변종이 일어난 것이다. 박도나 월도처럼 도검이라기보다 장병무기에 가까운 무기들도 날이 외날이기에 도라는 명칭이 사용되었다.
근현대[편집]
청나라 때 사용되던 도검 중 일부는 20세기가 되어도 살아남음은 물론 실제 군사 용도로도 사용되었다. 중일전쟁 당시 일본 침략군에 맞서 싸운 중국 민병들은 항일대도를 사용했으며 대도진행곡이라는 제목의 행진곡도 있었다. 장도의 후계도검인 묘도 역시 사용되었다.
각주[편집]
- ↑ Tom 2001, 207쪽
- ↑ Graff 2002, 41쪽
- ↑ Lorge 2011, 69–70쪽.
- ↑ Lorge 2011, 78쪽.
- ↑ Lorge 2011, 83–84쪽.
- ↑ Grancsay 1930, 194쪽
- ↑ Lorge 2011, 103쪽.
- ↑ Tom & Rodell 2005, 84쪽
- ↑ Hanson 2004
- ↑ Tom 2001, 207쪽
- ↑ Tom 2001, 207–209쪽
- ↑ Tom 2001, 211쪽
- ↑ Tom & Rodell 2005, 76쪽
- ↑ Tom & Rodell 2005, 77쪽
- ↑ Tom & Rodell 2005, 77–78쪽
- ↑ Tom & Rodell 2005, 78쪽
- ↑ Tom 2001, 211쪽
- ↑ Tom & Rodell 2005, 78–79쪽
- ↑ Tom & Rodell 2005, 80, 84쪽
- ↑ Tom & Rodell 2005, 85쪽
참고 자료[편집]
- Graff, David A. (2002), Medieval Chinese Warfare, 300-900, London: Routledge, ISBN 0-415-23955-9
- Grancsay, Stephen (1930), “Two Chinese Swords”,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Bulletin 25 (9): 194–196, doi:10.2307/3255712
- Hanson, Chris (2004), The Mongol Siege of Xiangyang and Fan-ch’eng and the Song military, 2014년 8월 23일에 확인함
- Lorge, Peter A. (2011), Chinese Martial Arts: From Antiquity to the Twenty-First Century,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ISBN 978-0-521-87881-4
- Tom, Philip M. W. (2001), “Some Notable Sabers of the Qing Dynasty at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Metropolitan Museum Journal 36: 11, 207–222, doi:10.2307/1513063
- Tom, Philip M. W.; Rodell, Scott M. (February 2005), “An Introduction to Chinese Single-Edged Hilt Weapons (Dao) and Their Use in the Ming and Qing Dynasties”, Kung Fu Tai Chi: 76–85
- Werner, E. T. C. (1989), Chinese Weapons, Singapore: Graham Brash, ISBN 9971-4-91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