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튀르크 전쟁
이탈리아-투르크 전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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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당한 아프리카인 이슬람교도들의 시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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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이탈리아 왕국 | 오스만 제국 | ||||||
지휘관 | |||||||
리비아 방면: 아우구스토 아우브리 카를로 카네바 에게 해 방면: 마르셀로 아메로 다스테 지오반니 아멜리오 |
네셰트 베이 이스마일 엔베르 무스타파 케말 | ||||||
병력 | |||||||
100,000명 | 24,000명 | ||||||
피해 규모 | |||||||
3,380명 사망 4,220명 부상 600명 실종 [1] |
14,000명 사망 5,370명 부상 |
이탈리아-투르크 전쟁은 1911년~12년에 이탈리아와 오스만 제국이 치른 전쟁으로 이탈리아가 아프리카의 식민지를 얻기 위해 싸워 승리해 오스만 제국의 허약함이 드러났고 제1차 발칸 전쟁의 계기가 되었다.
전쟁 과정
이탈리아는 1911년 모로코 위기 이후에 국제적인 불안정기를 이용해 오랜 숙원이던 북아프리카 식민지 개척을 이루고자 했고 오스만 제국의 두 속주가 이권이 침해당한다는 사실을 구실 삼아 1911년 9월 28일에 오스만 제국에 최후통첩을 보내고 다음날 9월 29일에 선전 포고를 했다.
이탈리아군은 신속하게 트리폴리, 다르나, 방가지 등의 도시를 점령했으나 이슬람교도들의 저항으로 이탈리아군 사령관 카를로 카네바는 작전을 해안 지역으로 국한시켜야 했다. 1912년 5월에 이탈리아 해군이 투르크 근해의 그리스 로도스 섬과 도데카니사 제도의 일부를 점령했으나 전쟁은 교착 상태에 들어갔다.
1912년 7월~12월에 북아프리카에서 이탈리아군의 공세가 승리를 거두고 이후에 제1차 발칸 전쟁이 일어나 발칸 국가들의 위협까지 받은 오스만 제국은 1912년 10월 18일 스위스 로잔에서 우시 조약을 맺었다.
이 조약으로 오스만 제국은 이탈리아에게 트리폴리와 키레나이카 등 리비아를 넘겨주고 이탈리아는 도데카니사 제도에서 철수할 것을 약속했으나 이탈리아는 계속 그 섬들을 점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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