슐리펜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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슐리펜 계획(Schlieffen Plan)은 1905년 12월 프로이센의 육군참모총장 A.G. 슐리펜이 수립한 프랑스에 대한 작전계획이다. 종래의 러시아·프랑스 양면작전의 원칙을 크게 개정하여 독일군의 전력을 서쪽으로 집중, 프랑스군을 급습해서 섬멸시킨다는 내용이다. 독일군의 좌익은 보주에서 지키고, 우익에 주력을 집중, 진격시켜 파리를 포함한 프랑스군을 포위하는 것으로, 그때 벨기에의 중립을 침범한다는 것이 처음부터 계획되어 있었다. 슐리펜 플랜은 러시아가 러·일전쟁의 패배와 제1차혁명으로 약화된 것을 전제로 작성된 것이었다. 그러던 중 슐리펜의 후임 헬무트 폰 몰트케(소小 몰트케)가 우익의 주력을 줄여 다른 곳을 보강하도록 하고, 프랑스군을 알자스·로렌 지역으로 끌어내는 계획은 취소하는 등 계획에 수정을 가했다.

논란[편집]

슐리펜 계획이 원안대로 진행되었을 경우의 진행에 관해 논란이 있다. 원안대로 했더라도 독일의 조기 승리가 어려웠으리라는 측에서 드는 근거로는, 보급의 어려움이나 계획이 당시의 현실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 등이다. 반면 원안대로 했다면 조기 승리가 가능했으리라는 측은, 프랑스의 제 17계획을 들기도 한다. 제 17계획은, 전 프랑스군의 병력을 독일과 국경을 접하는 곳에 배치하여 침공하는 독일군에 즉각적으로 대대적인 반격을 개시하려는 작전이었다. 이는 슐리펜 계획에서 알자스·로렌 지역으로 프랑스군의 주력을 유인해내는 작전에 딱 들어맞으며, 독일의 강력하고 많은(원안대로라면) 우익은 중립국 벨기에를 거쳐 프랑스 중심부를 우회하여 공격하므로 프랑스 주력이 독일과의 국경에서 독일을 향해 진군해오는 상황이기 때문에 프랑스군이 빠르게 대응하기 어려우며 혼란이 일어났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실제, 소 몰트케에 의해 우익은 대폭적으로 약화되었다. 또한 전쟁 발발 직전까지도 프랑스는 독일이 서부전선에 투입 가능한 병력의 수를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슐리펜 계획은 상대의 허를 찌르는 계획이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