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다오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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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다오 전투

제1차 세계 대전의 일부

Beijing students protesting the Treaty of Versailles (May 4, 1919).jpg
장소 중화민국 칭다오
결과 독일의 패배, 일본의 칭다오 조차, 5·4운동의 원인
교전국
일본 일본

대영 제국 대영 제국
이탈리아 왕국 이탈리아 왕국[1]
중화민국 중화민국
홍콩 영국령 홍콩

독일 제국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칭다오 전투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군이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하면서 영국군, 이탈리아군과 연합으로 중국 칭다오에 머물고 있던 독일*오스트리아군을 침략해 몰아낸 사건을 말한다. 이 전투로 일본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공로를 인정받게 되었다. 후에 칭다오는 일본의 조차지가 되었고, 이는 5·4 운동이 일어나는 원인이 된다.

배경[편집]

1912년, 청나라가 붕괴하고 중화민국이 건립된 이후, 중국은 일본, 독일 등 열강으로부터의 해방을 추진했으나 번번이 실패하였다. 1914년, 중화민국은 독일 제국이 강탈한 칭다오산둥 반도를 탈환하고자 제 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였고, 중국으로 진출하려던 일본 제국이 독일과 싸우고 있던 영국이탈리아와 연합하여 중화민국의 전쟁에 참전하였다.

발발[편집]

주석[편집]

  1. 이탈리아 왕국은 당시 톈진을 점령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