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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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항쟁1987년 6월 10일부터 6월 29일까지 대한민국에서 전국적으로 벌어진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다. 6월 민주항쟁, 6월 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 등으로 불린다. 대통령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뽑는 간접 선거를 골자로 한 기존 헌법에 대한 전두환 대통령의 호헌 조치와, 경찰의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이한열이 시위 도중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사건 등이 원인이 되어 6월 10일 이후 전국적인 시위가 발생하였고, 이에 6월 29일 노태우의 수습 선언으로 마무리되어, 대통령직선제로의 개헌이 이루어졌다. 2007년 6월 10일 정부 차원의 첫 기념식이 열렸다.

목차

[편집] 경과

[편집] 항쟁 이전

[편집] 항쟁 기간

  • 6월 10일 -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주최로 대한 성공회 서울교구 성공회 서울주교좌대성당에서 "박종철군 고문치사 조작, 은폐 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 개최[4]. 시민들도 택시운전사들이 전두환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의 뜻으로 차를 세우고 경적을 울리거나, 여고생들이 민주화시위 참여자에게 마실 을 가져다 주는 등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원을 하여 서울도심에서 민주화 시위가 진행될 수 있었다. 당시 성공회서울대성당에서는 감사성찬례(성공회 미사)때 피아노를 연주할 예배 봉사자가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관계자가 경찰의 감시를 피해 교회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배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이후 시위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어 6월 26일 - 전국 37개 도시에서 국민평화대행진 시위가 전개되었고 3,467명이 경찰에 연행되었다.
  • 6월 29일 - 노태우 민정당 대표위원이 8개항의 시국수습 내용을 포함한 6·29 선언을 발표.
    •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와 재야 단체는 즉각적인 개헌작업착수와 양심수 전원석방 및 수배해제를 촉구하는 성명 발표.

[편집] 항쟁 이후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표의 6.29 수습 선언 이후 직선제 개헌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고, 제6공화국 새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를 거쳐 1987년 10월, 대통령 직선제로의 개헌이 이루어졌다.

대통령 직선제 개헌으로 16년만에 대통령선거가 직접선거로 치러졌지만, 정통 민주세력이자 당시 야당의 중심축이었던 김대중 당시 통일민주당 고문과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가 대통령후보 출마를 놓고 공식 선거전을 앞둔 1987년 10월에 분열을 일으키면서 독자 출마를 강행하게 되었다.

결국 6월 항쟁의 중심 역할을 했던 민주세력의 통합이 불발되면서, 제13대 대통령선거에서는 민주정의당노태우 후보가 당선되었다.

[편집] 기타

  • 6월 항쟁이 일어난 6월 10일일제시대1926년, 조선 마지막 임금 순종의 장례 때 독립운동세력과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6.10 만세운동이 일어난 날이기도 하다. 2007년 한국일보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학생 중 10명 중 6명은 6월 항쟁을 잘 모르는 것으로 밝혀졌다.[5]

[편집] 함께 읽기

[편집] 바깥 고리

[편집] 주석

  1. 상세한 것은 박종철 참조.
  2. 박종철 고문치사건이 경찰에 의해 축소은폐된 사실은 박종철의 삶을 소재로 정하여 제작한 문화방송 드라마에서 고발된 적이 있다.
  3. 향린교회에서는 이 사건을 기념패로 만들어 기념하고 있다.
  4. 현재 성공회 서울 주교좌 대성당은 이 사건을 6.10민주항쟁 발생지라고 새긴, 돌로 만든 조형물로 기념하고 있다.
  5. 대학생 10명 중 6명 "6·10항쟁 잘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