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린교회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향린교회

향린교회(香隣敎會)는 대한민국장로교 교회이다.

개요[편집]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은 개신교 교회이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이며 서울 중구 을지로2가에 있다.

초창기의 엄격한 모습에서는 점차 이탈했으나, 여전히 기독교 정신에 따른 활발한 사회 참여와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관심, 민주적인 교회 운영 방식으로 유명하다. 남북 관계와 통일 문제에 대한 진보적 시각을 유지하고 있고, 국악 찬송가를 사용함으로써 국악예배를 보급하는 일에도 앞장서 왔다. 2008년 기준으로 담임목사를 맡고 있는 조헌정목사는 할아버지이자 장로교 목사인 조승제목사가 일제 강점기 말기에 장로교회가 친일화될 때 이에 협조한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1]

역사[편집]

향린교회는 1953년 5월 17일안병무홍창의 등 12명의 평신도들이 새로운 신앙공동체 운동의 일환으로 창립하여 그 시작이 독특하다. 이러한 운동이 일어나게 된 것은 한국 전쟁 중 기성 교회가 교파 분열과 교권 다툼으로 많은 불신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개혁적 사고를 가진 젊은 신도들은 1) 생활공동체, 2) 입체적 선교공동체, 3) 평신도교회, 4) 독립교회라는 창립 정신을 내걸고 교회를 창립하면서 "향기 나는 이웃"(香隣)이 되겠다는 의미에서 향린교회라는 이름을 붙였다.

서울 중구 남산 기슭에 자리잡은 향린교회는 초대교회처럼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수도원과 유사한 형태의 생활공동체를 형성하고, 기성 교파에 속하지 않은 초교파교회이자 목회자가 없는 평신도교회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차츰 교회가 성장하고 신도 수가 늘어나면서 공동체교회는 무너졌고, 1959년에 한국기독교장로회에 가입했다. 1974년에는 김호식을 초대 담임목사로 초빙하여 21년 만에 일반교회 형태로 전환했다.

김호식의 노력으로 향린교회는 크게 성장했으나, 향린교회가 창립 당시의 정신을 잃어버렸다는 비판이 나오면서[누가?] 1983년 창립 30주년을 계기로 내부에서 창립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내분 끝에 결국 1986년에 담임목사 김호식이 사직하였다. 김호식을 지지하는 파벌과는 대립 관계에 있었던 제2대 담임목사인 홍근수민중신학과 진보적 신앙관을 내세우다가 1991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향린교회는 1987년 5월 27일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발기인 대회가 열린 장소이기도 하다.[2] 향린교회는 대한성공회 서울교구의 주교좌성당인 성공회 서울주교좌대성당과 더불어 6월 항쟁이 시작된 곳이기 때문에, 향린교회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민주화 운동에서도 중요한 뜻이 있는 장소이다.

기타[편집]

함께 보기[편집]

참고자료[편집]

주석[편집]

  1. 조호진. ""한국 교회 친일행적 말할 때 됐다" - CBS-TV 8·15특집 다큐 '한국교회의 친일을 말한다'", 《오마이뉴스》, 2004년 8월 14일 작성. 2008년 2월 14일 확인.
  2. "[실록민주화운동] (82). 6월항쟁의 서막", 《경향신문》, 2004년 12월 19일 작성. 2008년 7월 2일 확인.
  3. 강정구 교우 필화 사건 대법원 판결에 대한 우리의 입장
  4. 긴장 속 6·10 범국민대회 진행

바깥 고리[편집]

좌표: 북위 37° 33′ 56.25″ 동경 126° 59′ 12.75″ / 북위 37.5656250° 동경 126.9868750° / 37.5656250; 126.98687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