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유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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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유중(閔維重, 1630년~1687년)은 조선후기의 문신, 척신, 정치인으로 인현왕후의 친정아버지, 곧 숙종의 장인이다. 명성황후여흥부대부인 민씨의 6대조이다. 호조참의 민광훈의 아들이자, 민시중민정중의 친동생이다.

당색으로는 서인(西人) 노론(老論)이었고, 동춘 송준길우암 송시열의 문인이다.

생애[편집]

본래 동춘당 송준길의 문하였지만 송준길의 딸 은진 송씨를 계실로 맞이함으로써 송시열의 문하가 되었다. 이후 송준길송시열을 사표로 받들고 그들의 예론을 지지했다.

1651년 증광시 문과에 병과 15위로 급제, 1656년(효종 7년) 병조 정랑, 1665년 전라도 관찰사, 1671년 형조 판서, 대사헌, 호조 판서 등을 역임했다. 당파는 서인, 그 중에서도 송시열송준길을 주축으로 하는 산당(山黨)에 속하였으며 이에 김육을 주축으로 한 한당(漢黨)을 공격하여 김육의 아들인 김좌명·김우명(명성왕후 김씨의 아버지) 형제와 김석주(김좌명의 아들)과 크게 불화하였다. 1674년 2차 예송논쟁으로 송시열을 위시한 산당이 실각하게 되었고, 곧 숙종이 즉위하여 남인을 집권당으로 교체하자 분개하여 벼슬을 내놓고 충주에서 지냈다. 이후 남인의 탄핵을 받아 흥해(경상북도 영일군의 읍)에 유배되었다. 1680년 경신환국으로 다시 등용되어 송시열의 최측근이자 김석주와 연계한 형 민정중을 도와 남인을 출척하는데 앞장서 실세가 되었으며, 이 과정 중에 서인이 다시 분열하여 노론소론으로 분당하자 노론이 되었다.

1681년 병조판서로 역임할 당시 계실 은진 송씨의 소생 둘째 딸(인현왕후)이 송시열김석주의 추천을 받아 숙종의 계비가 되었다. 이에 국구로 등극하여 여양부원군과 영돈녕부사가 되었고, 이듬해 금위영 창설을 주도하여 금위대장을 역임했다. 국구로서 병권과 재권을 독점장악하고 공사를 마음대로 처리하며, 친인척이 관직을 독점한다는 비판 상소가 쇄도했고, 소론 종주인 윤증숙종에게 제수받은 관직을 고사하면서 그 이유로 삼척(三戚: 청풍김씨, 광산김씨, 여흥민씨)의 위세를 대놓고 꼬집기도 했다.[1] 급기야 같은 노론인 이징명조차 "연이은 재해의 원인은 외척의 세도가 기승한 탓이니 곤성(坤聖: 왕비. 인현왕후)을 면계하라(勉戒: 주의를 주어 깨우치게함)"는 비판상소를 올려 이징명이 국모의 명예를 훼손한 죄목으로 엄형을 받아[2] 노론측의 동요가 컸다. 분개한 민유중은 사위인 숙종에게 면담을 청하여 자신을 모독한 이징명윤경교(소론)를 엄벌할 것을 종용하였다가 이후 숙종을 사적으로 만나지 못하게 되었고[3], 곧 모든 관직을 내어놓고 자택에서 두문불출하다가 다음해인 1687년에 사망하였다.

죽은 뒤 여주 섬락리에 안장되고,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효종의 묘정과 장흥의 연곡서원, 벽동의 구봉서원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고, 경학에 매우 밝은 유학자였다.

가족 관계[편집]

인현왕후의 친정아버지이며 명성황후, 순명효황후의 6대조, 7대조가 된다.[4]

  • 고조부 : 민사용(閔思容)
  • 증조부 : 민여건(閔汝健)
  • 할아버지 : 민기(閔機)
  • 아버지 : 민광훈(閔光勳)
  • 어머니 : 연안 이씨
    • 형님 : 민시중(閔蓍重)
    • 형수 : 풍산 홍씨
    • 형님 : 민정중(閔鼎重), 여흥부대부인 민씨의 5대조
    • 형수 : 평산 신씨(선조의 외증손녀, 정숙옹주와 신익성의 손녀), 남양 홍씨(홍처윤의 딸, 윤지(정혜옹주의 장남. 김만기·김만중의 외조부)의 처질녀)
    • 누이 : 여흥 민씨
    • 자형/매제 : 홍만형(정명공주의 아들, 선조의 외손자)
    • 정실(正室) : 해풍부부인(海豊府夫人) 덕수 이씨(德水 李氏)(순화군의 외손녀,이경증의딸)
    • 1계실(一繼室) : 은성부부인(恩城府夫人) 은진 송씨(恩津 宋氏)
      • 장남 : 민진후(閔鎭厚) - 명성황후의 5대조
        • 손자 : 민익수(閔翼洙) - 민기현의 증조부, 민치록의 고조부
          • 증손자 : 민백분(閔百奮) - 민기현의 조부, 민치록의 증조부
      • 차남 : 민진원(閔鎭遠) - 순명효황후의 6대조
        • 손자 : 민창수(閔昌洙)
          • 증손자 : 민백순(閔百順)
        • 손자 : 민형수(閔亨洙)
          • 증손자 : 민백상(閔百祥)
          • 증손자 : 민백흥(閔百興)
        • 손자 : 민통수(閔通洙)
          • 증손자 : 민백선(閔百善)
      • 장녀 : 여흥 민씨 - 이만창에게 출가
      • 차녀 : 인현왕후
      • 삼녀 : 여흥 민씨- 신석화에게 출가
    • 2계실(二繼室) : 풍창부부인(豊昌府夫人) 풍양 조씨(豊壤 趙氏)
      • 삼남 : 민진영(閔鎭永)
        • 손자 : 민낙수(閔樂洙)
          • 증손자 : 민백술(閔百述)
        • 손자 : 민각수(閔覺洙)
          • 증손자 : 민백준(閔百準)
      • 사녀 : 여흥 민씨 - 이장휘에게 출가
      • 오녀 : 여흥 민씨 - 홍우조에게 출가
    • 첩실(妾室)
      • 서자 : 민진창(閔鎭昌: 민진영의 서형)
      • 서자 : 민진오(閔鎭五: 민진영의 서제)

관련 작품[편집]

드라마[편집]

기타[편집]

남인 온건파 영수인 허적(許積)은 민유중의 외가 쪽으로 당숙뻘 되는 외척으로, 그의 외할머니 양천허씨의 친정 조카였다.

주석[편집]

  1. 《조선왕조실록》숙종 14권, 9년(1683 계해 / 청 강희(康熙) 22년) 5월 5일(병오) 2번째기사
  2. 《조선왕조실록》숙종 17권, 12년(1686 병인 / 청 강희(康熙) 25년) 7월 6일(무자) 1번째기사
  3. 《조선왕조실록》숙종 17권, 12년(1686 병인 / 청 강희(康熙) 25년) 8월 6일(무오) 3번째기사
  4. 흥선대원군의 외할아버지이자 남연군부인의 친정아버지는 형 민정중의 4대손이다.

참고 자료[편집]

  • 한영우 (2001년 10월 20일). 《명성황후와 대한제국》, 초판 1쇄, 서울: 효형출판, 15쪽. ISBN 89-86361-57-4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