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제 마이트너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Frauen 130 Pf Lise Meitner.jpg

리제 마이트너(Lise Meitner, 1878년 11월 7일 ~ 1968년 10월 27일)은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로, 방사선핵물리학을 연구하였다.

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오스트리아 최초의 유대인 법률가 중 한 명인 유대인 법률가였다. 변호사 아버지가 마이트너의 재능을 존중해 준 덕분에 계속 공부할 수 있었지만, 상급 학교 진학 차별 때문에 김나지움에 진학하지 못하고 검정고시에 해당하는 고교 졸업 자격시험을 치러야 했다. 23살에 빈 대학교에 입학, 1905년 논문을 제출하고 구두시험을 최우등으로 통과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것으로 빈 대학교에서 마이트너는 여학생 가운데 박사학위를 받은 네 번째 학생이 되었다. 리제 마이트너는 유대교에서 개신교로 개종하여 1908년세례를 받았다.

이후 베를린 대학교에서 화학자 오토 한과 공동 연구를 시작했지만, 연구소장은 청소부를 제외한 여성의 연구소 출입을 금했다. 별도 출입구가 있는 지하실 목공소에 실험실을 꾸며야 했다. 주목받는 연구 성과를 연이어 내자 연구소장은 비로소 여성 화장실을 설치하고 연구소 출입도 허가했다. 1913년부터 베를린 카이저빌헬름 연구소에서 연구하다가 제1차 세계대전 때는 간호사로 일했으며, 1918년 91번 원소 프로트악티늄을 발견하고 1924년 원자선이 방출될 때 베타선감마선보다 먼저 나온다는 것을 증명했다. 1924-25년에는 프로트악티늄에 관한 연구로 오토 한과 함께 노벨화학상 후보로 추천됐다.

1926년에야 정교수가 아닌 ‘별정직’ 여성 교수가 됐지만 아버지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1933년 교수직을 박탈당했다. 불안한 상황 속에서도 1935년 초에 핵분열로 나아갈 수 있는 실험을 시작했다. 나치의 탄압을 피해 1938년 스웨덴으로 떠나 노벨연구소에서 일했지만 제대로 연구할만한 여건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도 마이트너와 오토 한, 프리츠 슈트라스만 등은 서신교환을 통해 우라늄 핵분열에 관한 연구 성과를 냈다. 1945년 오토 한은 우라늄 핵분열을 증명한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제대로 하자면 마이트너가 공동 수상자가 되어야 했다.

1962년 괴팅겐 대학교에서 도로테아 슐뢰처(독일 최초의 여성박사) 메달을, 1966년 미국 원자에너지청에서 엔리코 페르미상을 받았다. 마이트너는 90세 생일을 약 3주 앞두고 케임브리지에서 세상을 떠났다. 영국 남부의 교회묘지에 묻혔다. 1992년 독일 다름슈타트 중이온연구소에서 합성되고 증명된 109번째 원소가 마이트너륨으로 명명되었다.

출처[편집]

Lise, Atomphysikerin die Lebensgeschichte der Lise Meitner, Charlotte Kerner|Beltz & Gelbe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