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어 캐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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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워 캐나다
Province of Lower Canada
1791 ~ 1841
국기
국기
국가: 영국령 캐나다
의 위치
수도 퀘벡
공용어 영어, 프랑스어
조지 3세
빅토리아 여왕

 •
1791년 12월 26일
통화 캐나다 파운드

로워 캐나다(Lower Canada)는 현재 캐나다 퀘벡 주에 있었던 영국의 식민지이다. 공식적으로는 1791년에서 1841년까지 존재하였고, 영역은 현재 퀘벡 주 남부와 뉴펀들랜드 주, 래브라도의 래브라도 지방을 대락 합친 정도였다. 로워라는 이름은 위도가 낮다는 말이 아닌 해발에서 온 것이며, 어퍼 캐나다에서 세인트로렌스 강 하류(lower)에 위치해 있어서 온 이름이기도 했다. 위도에 관해서는 어퍼 캐나다의 위도가 로워 캐나다보다 남쪽에 있었다. 동쪽으로는 세인트로렌스 만대서양에 접해있다.

1841년에 이 식민지는 폐지되어 어퍼 캐나다와 합쳐서 캐나다 지방이 되었다.

역사[편집]

로워 캐나다는 1790년에 영국 의회를 통과한 식민지 통치법(Constitutional Act)에 의해, 지금까지의 퀘벡 식민지(1763-1791)가 어퍼 캐나다와 로워 캐나다 분할되어 1791년 12월 26일에 각각 하나의 정치 체제가 되었다.

로워 캐나다는 이전의 프랑스 식민지 누벨 프랑스의 일부이며, 7년 전쟁(또는 프렌치 인디언 전쟁)에서 영국이 승리한 후 조약에 의해 영국에 할양된 것으로, 프랑스계 캐나다인이 많이 살고에 있었다. 영국에 할양된 누벨 프랑스의 다른 지역은 노바스코샤, 뉴브런과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의 각 식민지가 되었다.

미영 전쟁(1812-1815) 때 로워 캐나다도 세인트로렌스 강 상류에서 미합중군의 침략을 받았지만 반전시키는데 성공했다.

반란[편집]

로워 캐나다에서도 어퍼 캐나다와 마찬가지로 자치 정부가 만들어져 있었지만 영국 정부의 통치에 대한 불만이 커져고, 정치적 불안정이 고조되어 반란으로 이어졌다. 어퍼 캐나다와의 차이는 프랑스계 캐나다인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정이 프랑스 시민법과 가톨릭 신앙을 계속할 수 있었다. 인구의 소수를 차지하는 영국인에게 시민이 좌지우지되고 게다가 영국 본국의 의향에 따라서 주류였던 정부에 1837년에 ‘책임있는 정부’를 요구하며, 애국자의 무장 봉기가 일어났다. 때를 같이하여 어퍼 캐나다 반란이 실패한 후에도 1838년까지 반항이 반복되었다. 이 반란이 영국군과 왕당파 지원병에게 제압된 후 식민지 통치법은 보류되었고, 영국 본국에서 ​​식민지를 관할하는 로우 캐나다 특별위원회가 지명되었다.

로워 캐나다와 어퍼 캐나다 정부는 1841년에 폐지되고 1840년 7월 23일에 제정된 연합법이 발효되었다. 그 결과, 로워 캐나다와 어퍼 캐나다는 캐나다 지방(1841-1866)이라는 하나의 정치 체계로 통일되었다.

헌법[편집]

1791년 제정된 헌법 체계

로워 캐나다는 이전 퀘벡 식민지 시대에 있던 프랑스와 영국의 제도를 혼합한 헌법을 계승했다. 이것은 캐나다 지방에서도 또 1867년의 영국령 북아메리카 법에 캐나다 연방이 만들어 졌을 때, 캐나다 지방은 다시 원래 경계로 나뉘어 온타리오퀘벡이 되었지만, 새로운 퀘벡 주에서도 인계되게 되었다.

주석[편집]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