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지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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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지바르
Zanzibar
Flag of Zanzibar.svg
국기
표어 없음
국가 하나님과 아프리카
Spice Islands (Zanzibar highlighted) sv.svg
수도 잔지바르 시
정치
공용어 스와힐리어, 영어
정부 형태 공화제
대통령 알리 모하메드 셰인
역사
독립  
 • 잔지바르
 • 탕가니카
 • 합병
영국으로부터 독립
1963년 12월 19일
1961년 12월 9일
1964년 4월 26일
지리
면적 1651km²
DST 없음
인구
2004년 조사 1,070,000명
인구 밀도 0.24명/km²
경제
통화 실링 (TZS)

잔지바르(영어: Zanzibar)는 동아프리카에 있는 탄자니아의 자치령이다. 은구자 섬(잔지바르 섬)과 펨바 섬의 두 섬을 중심으로 한 잔지바르 제도으로 이루어져 있다. 잔지바르의 구시가인 스톤 타운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육두구, 계피, 후추 등의 향신료 산지로 유명하다. 그곳은 아직도 이따금 향신료 섬 (Spice Islands)으로 언급된다.

잔지바르 붉은콜로부스가 잔지바르에서만 서식하며, 잔지바르 표범이 한때 잔지바르에서 살았었다.

역사[편집]

세석기 도구의 존재는 잔지바르 인간 거주의 20,000년을 입증한다. 섬이 아랍의 무역업자들에 의해 발견되었을 때, 그들은 아라비아, 인도아프리카 사이의 항해를 위한 토대로서 잔지바르를 이용하였다, 그러므로써, 잔지바르는 더 넓은 세계의 역사적인 기록의 일부가 되었다.

잔지바르가 방어 및 보호가 가능한 항구를 제공하므로, 아랍의 상인들은 잔지바르의 소량의 산물보다는 동아프리카의 해안 마을과 무역하기 편리한 지점인 현재의 잔지바르 시(스톤 타운)에 정착했다. 그들은 섬에 주둔지를 세우고 남반구 안에 최초의 모스크를 설립하였다.[1]

1503년부터 200년간 포르투갈인이 점령했으며, 그 이후에는 오만의 일부가 된다. 19세기 중엽에는 영국이 점령, 1861년 오만에서 분리되어, 이 나라의 왕은 술탄이라 일컫게 된다. 19세기 말 한때 독일이 영유권을 주장했었으나, 당시 영국령이던 북해헬골란트 섬을 영국이 독일에 양도하여 잔지바르 섬의 영국 영유권을 인정받았다. 1963년에 영국에서 독립을 인정받았다. 이듬해 술탄제가 폐지되고 탕가니카와 연합하여 탄자니아 공화국이 되었다.

1993년 1월에는 잔지바르만 따로 이슬람 회의 기구에 가입했으나, 같은 해 8월 탈퇴하였다.

2004년 당시에 조사한 인구는 100만 명으로, 수도는 잔지바르 시에 있다. 면적은 약 1,660㎢이다.

종교[편집]

잔지바르는 수니파 이슬람교 사회이다.

역사[편집]

아랍, 이란, 인도 ,포르투갈, 영국 및 아프리카 본토의 영향을 받았었다. 페르시아만의 예멘인들이 문화와 종교를 전해주었다고 한다.

문화[편집]

스톤 타운은 굽어지는 길들, 원형의 탑들, 무늬가 새겨진 나무 문들, 세워진 테라스, 아름다운 모스크의 장소이다. 중요한 고고학적 특징들은 리빙스톤 하우스, 굴리아니 브릿지, 하우스 오브 원더스이다. 키디취 타운터키식 목욕탕(hammam)적 특징으로 바르가쉬 빈 사이드의 통치 기간 동안 시라즈, 이란 출신 이주자들에 의해 세워졌다.

대중 매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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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지바르는 1973년에 컬러 텔레비전을 도입한 아프리카의 최초의 지역이었다. 현재 TV 방송국은 TvZ이다. 탄자니아 본토의 최초의 텔레비전은 약 20년 뒤까지 도입되지 않았었다.

출신 유명인[편집]

프레디 머큐리가 잔지바르 출신이다.

정치[편집]

'혁명 평의회'와 '하원'(50석을 가지며, 5년 임기로 직접 보통 선거에 의해 선출됨)이 있다. 잔지바르에는 많은 정치 정당이 있지만, 주요 정당은 여당인 CCM (Chama Cha Mapinduzi)과 CUF(Civic United Front)이다.

1990년대 초기 이래로, 잔지바르의 정치는 CCM과 CUF, 두 정당 사이 반복된 충돌에 의해 두드러진다. 2000년 후반 선거는 2001년 1월 잔지바르에 학살 (35명 사망 600명 부상)을 이끌었다.[2]

교육[편집]

잔지바르는 잔지바르 대학교, 1999년 잔지바르 주립 대학교(SUZA)로 변모한 이전의 스와힐리어 외국어 대학(TAKILUKI)의 소재지이며, 잔지바르에서 가장 유명한 학교는 루뭄바 단과대학으로서 알려진 루뭄바 제2학교이다. 또한 많은 사립 학교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인 SOS 학교1993년에 고아를 위하여 계획된 학교이다. 오늘날, SOS 학교는 다른 사립 학교들과 비교하여 적은 비용으로 모든 아이들에게 교육을 제공한다.

경제[편집]

잔지바르, 주로 펨바 섬은 한 때 1970년대 동안 세계 일류의 정향 생산지였지만 연례 정향 판매가 1970년대 이래로 80% 가량 폭락한 상태이다. 이것에 대해서 주어진 설명은 빠른 움직이는 세계 시장, 국제 경쟁과 정부가 정향 가격과 수출을 조절했을 때인 1960년대와 70년대에 탄자니아의 사회주의에 과한 실패한 실험으로부터 후유증이다. 잔지바르는 현재 잔지바르의 7%를 세계 정향의 75%를 공급하는 인도네시아와 비교하여 거리가 먼 3위를 랭크한다. [3]

잔지바르는 향신료, 해초, 품질이 좋은 라피아를 수출한다. 또한 큰 어장을 갖고 있으며 환목선 생산을 한다. 관광은 주요한 외화 수입원이다.

2008년 5월6월 동안 잔지바르는 정전으로 큰 고통을 겪었다. 섬주민들은 5월 21일에서 6월 19일까지 전력이 없거나 디젤 발전기같은 전기 생산의 대체 방안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거의 한달 동안 지내야만 했다. 이 정전은 주로 국제적인 관광 사업에 기반을 둔 섬의 빈약한 경제에 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일반적으로, 잔지바르인들은 탄자니아 본토보다 더 나쁜 조건 속에 산다. 잔지바르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 US $ .50 보다 적은 수입으로 생활해 나간다. 왜냐하면 관광 산업말고는 어떠한 고용이나 채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림[편집]

참고[편집]

  1. Else, David. 《Guide to Zanzibar》. isbn=1 898323 28 3
  2. Human Rights Watch report
  3. Zanzibar Loses Some of Its Spice. 《Los Angeles Times》. 2009년 1월 23일에 확인.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