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우경
순우 경(淳于瓊, ? ~ 200년)은 중국 후한 말의 무장으로, 자는 중간(仲簡)[1]이며 예주(豫州) 영천군(潁川郡) 사람이다.
생애[편집]
이름 | 순우 경(淳于瓊)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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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후한 |
생몰 | ? ~ 건안 5년(200년) |
자 | 중간(仲簡)[1] |
본관 · 출신 | 예주 영천군 |
관직 | 우교위(右校尉)〔영제〕[2] → 도독(都督)〔원소〕 |
작위 | |
소속 | 영제 → 소제 → 원소 |
초기의 행적[편집]
영제(靈帝) 대에 서원팔교위(西園八校尉)의 한 사람으로, 우교위(右校尉)였다.[2] 영제가 죽은 후에는 소제(少帝)를 섬겼으나, 동탁(董卓)의 전횡이 시작되자 원소(袁紹)를 따라가 그를 섬겼다.
흥평(興平) 2년(195), 감군(監軍) 저수(沮授)가 헌제(獻帝)를 영접할 것을 원소에게 주장하였으나 순우경은 곽도(郭圖)와 함께 이에 반대하였으며[3], 원소 또한 듣지 않았다.
건안(建安) 4년(199), 곽도는 감군의 권한이 지나치게 크다고 주장하였으며, 이를 옳게 여긴 원소는 감군을 폐지하고 순우경 · 저수 · 곽도를 도독(都督)에 임명하여 권한을 나누었다.
관도대전[편집]
건안 5년(200), 관도대전(官渡大戰)이 시작되어 순우경은 백마(白馬)에 주둔한 동군태수(東郡太守) 유연(劉延)을 곽도 · 안량(顔良)과 함께 공격하였으나, 조조(曹操)에 의해 안량과 문추(文醜)가 전사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였다.
같은 해 10월, 순우경은 군량 수송 임무를 맡아 독장(督將) 수원진(眭元進) · 기독(騎督) 한거자(韓莒子) · 여위황(呂威璜) · 조예(趙叡) 등과 함께 오소(烏巢)에 주둔하였다. 그러나 방비는 허술하였고, 원소의 모사 허유(許攸)가 조조에게 이 사실을 밀고하였다. 이에 조조는 오소를 급습하였으며, 당시 잠을 자고 있던 순우경은 조조에게 오소를 잃었다.
죽음[4][편집]
조조는 순우경을 생포하여 코를 베었으나, 순우경은 죽지 않았다. 이후 조조는 사졸 8천여 명을 죽이고, 마소의 혀와 입술을 베어 이를 원소에게 보냈다.
밤이 되고, 조조는 순우경을 불러 그에게 말하였다.
“ | 어쩌다 이런 꼴이 되었소? | ” |
순우경이 대답하였다.
“ | 이기고 지는 것은 하늘의 뜻에 달린 것인데,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소! | ” |
조조는 순우경을 살리고 싶어하였으나, 허유가 조조에게 말하였다.
“ | 아침에 거울을 볼 때마다 (당신을) 원망함이 나날이 더해질 것입니다. | ” |
이에 조조는 어쩔 수 없이 순우경을 죽였다.
《삼국지연의》 속 순우경[편집]
무능하고 난폭한 인물로 등장한다. 술을 좋아한 순우경은 매일 연회를 열어 술을 마시며 임무를 소홀히 하였다. 조조는 순우경을 잡아 귀 · 코 · 손을 베어 말의 등에 실은 뒤 원소에게 보냈고, 살아남은 병사로부터 상황을 전해들은 원소는 격노하여 순우경을 잡아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