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토론:Lhrd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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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영합니다 (토론) 2014년 1월 6일 (월) 22:36 (KST)답변

낙랑군 관련 편집에 주의하여 주십시오[편집]

낙랑군대방군 문서는 대한민국 한국사학계의 공통된 의견을 다수설로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위치에 대한 이설은 소수설이므로 귀하와 같은 형태의 편집은 위키백과의 원칙상 인정될 수 없습니다. 학계 전반의 지지를 받는 학설을 추정 운운하면서 마치 소수설인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편집은 위키백과의 원칙에 어긋납니다.

또한 정인성의 논문을 서술하는데 있어 논문의 결론을 서술하지 않고, Lhrdrth 사용자의 개인적인 주장을 뒷받침하는데 논문을 근거로서 사용하는 행위는 명백한 독자연구입니다. 해당 논문은 결론부에서 신천리, 안악군, 은율군 등의 유적을 대방군 치소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저 세 지역은 엄연히 황해도에 위치한 곳들입니다. 즉, 저 논문을 근거로 대방군이 황해도가 아니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명백한 논문의 내용을 뒤집는 행위이며, 출처를 거짓으로 제시하는 것이라고 볼 소지도 있습니다.

이상과 같은 점에서 귀하의 편집은 위키백과에서 용납되기 어려우니 주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덧붙여, 귀하가 자작이라고 설명을 달고 올린 지도는 한겨레 신문사의 기사에 사용된 지도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명백한 저작권 위반이며 심지어 도용이라고 볼 여지도 있습니다. 지도를 삭제하시거나, 저작자를 명확하게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1월 8일 (수) 01:24 (KST)답변

낙랑군과 대방군의 위치는 확정적인 것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고 학계에서 엄청나게 이견이 갈려서 치열한 다툼이 있는 상황입니다. 한국 주류 사학계의 낙랑군의 평양 위치설은 크게 비판 받아서 중학교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는 실정이며 일제 식민사학의 잔재라고도 비판받는 상황입니다. 상황이 이럴진대 단지 다수설이라는 이유로 이 학설만이 진실인양 모든 상황을 단정해서 서술하는 것은 위키백과의 원칙과 크게 어긋납니다. 위키 백과는 아래와 같은 원칙을 분명히 공지하고 있으니 제발 똑똑히 좀 보시기를 바랍니다. "위키백과는 ‘중립적 시각’에서 바라봅니다. 어느 한쪽으로 편향되지 않은 글을 만들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위키백과의 글에는 다수 의견과 고려될 가치가 있는 소수 의견이 편견 없이 공평하게 반영되어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낙랑군 위치에 관한 이견이 있음을 알리는 지도를 삽입하고 귀하가 단정적인 사실로 확증하여 왜곡 설명한 그림 설명 부분을 적절히 수정하는 것은 위키 백과의 원칙 및 문서의 주제와 지극히 부합하는 합리적인 행위입니다.
그리고 대방군 문서에 사용된 논문을 귀하가 개인적인 주장이라고 치부하는데 엄밀한 연구를 거쳐서 합리적으로 결과를 도출해서 학계에 발표된 논문을 일개 개인적 주장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이해가 안가며 이 논문은 확인하면 알겠지만 요약과 결론 부분에서 "장무이묘를 구성하는 많은 속성에서 고구려적인 요소가 발견되는 것을 근거로 장무이묘가 4세기 중엽 이후의 고구려 무덤임을 분명히 했다. 결국 고고학적으로 보아도 장무이묘의 피장자가 대방태수라는 것은 허구의 자칭인 것이 분명하다."라고 하여 장무이묘는 고구려 무덤임을 분명히 하고 심지어 대방태수도 아니라고 확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장무이묘는 대방군과 관련 그 어떤 증거로도 사용이 될 수 없으므로 제 설명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사용한 지도는 한계레 신문에서 사용된 지도가 아니고 순수하게 제가 제작한 것으로 저작권 위반과 도용이라는 것은 귀하의 일방적인 주장입니다. 이 지도는 100% 제가 순수하게 제작한 것입니다.
귀하에게 경고하는데 더이상의 반달행위를 중지하지 않으면 관리자에게 신고하는 등 나름대로의 조치를 하겠습니다. 위키백과의 해당 문서는 귀하의 의견만이 반영되는 귀하의 문서가 아니고 일반적인 네티즌들이 보고 편집하는 모두의 것임을 알려드립니다.--Lhrdrth (토론) 2014년 1월 8일 (수) 13:04 (KST)답변
1. “학계에서 엄청나게 이견이 갈려서 치열한 다툼이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공인된 출처를 통해서 증빙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소위 재야사학이라는 부류가 주장한다고 해서 그것이 학계의 논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홀로코스트 부정론이나 피라미드 외계인 건축설, 월면나치설 같은 것들도 자신들의 주장에 따르면 학계의 논란이며 기존 학계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들의 주장을 무시하고 탄압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런 주장들은 일개 음모론으로나 취급될 뿐, 아무도 그것이 학계에서 논란의 대상이라 인정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위키백과에서 낙랑군 요서설과 같은 주장은 홀로코스트 부정론보다도 못한 수준의 소수설로 취급됩니다. 위키백과:비주류 이론을 참조하십시오. 이것은 위키백과의 지침으로서 《환단고기》와 같은 의사역사학을 비롯한 역사학에서의 소수설을 어떻게 서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2. 또한 장무이묘에 대한 정인성의 논문 개요에는 황해도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는데 말입니다. 인터넷 검색에서 나오는 논문 개요만 보지 마시고 논문의 본문을 보십시오. 논문의 본문에는 은율군, 안악군과 같은 황해도 소속 토성 유적을 대방군치로 검토해야 한다고 명백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일개 연구자 한 사람의 논문을 가지고 무엇무엇이 밝혀졌다라고 쓰는 것도 위키백과의 원칙에 어긋납니다. 해당 논문의 내용은 일개 연구자의 주장일 뿐, 학계 전반의 검토를 거쳐 공인된 정설이 아닙니다. 그러니 당연히 귀하의 편집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3. 그리고 귀하의 지도가 여기 한겨레 신문의 기사에 떡하니 나와 있는데도 자작이라고 주장하실 셈입니까? 한겨레 기사 저작권 위반으로 징계를 요청하기 전에 스스로 수정하시기 바랍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1월 8일 (수) 16:06 (KST)답변
낙랑군을 비롯한 한사군의 위치 논란은 앞서 언급한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도 열국시대의 위치를 설명하는 지도에조차 낙랑군을 평양에 표시하지않을 정도입니다. 고등학교 국사 검정 교과서 연구진, 집필진은 일선 학교와 학계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연구하는 검증받은 분들입니다. 또한 낙랑군 위치에 대한 논란이 치열한 것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도 쉽게 확인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낙랑군 요서설을 무슨 터무니없는 맹랑한 소설정도로 치부하는데 고조선학회 회장을 역임한 강단 사학자 윤내현 교수를 비롯, 인하대 복기대 교수, 상명대 박선희 교수, 중앙대 김종서 박사 등도 사료를 통한 합리적인 분석으로 주장하는 엄연한 학계의 이론이며, 또한 북한 학계는 낙랑군 요하 유역설이 통설인데 이것도 아무런 근거도 없는 황당한 이론입니까? 또한 낙랑군이 평양에 없었음은 신채호, 정인보 선생같은 존경받는 대사학자들이 일찌기 일제시대부터 주장한 학설입니다. 이같은 이론을 가지고 "피라미드 외계인 건축설", "월면나치설"같은 황당무계한 소리와 비교하는 귀하의 터무니없는 비약에 정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하여간 저는 이같이 낙랑군 위치에 대한 이견이 많은 상황에서 해당 지도의 삽입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인성님 논문에는 제가 상술한바와 같이 장무이묘는 고구려 무덤이고 피장자는 대방태수가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므로 이 논문에 따르면 위치 논란이 어떻든 장무이묘는 대방군 위치의 증거로는 아무런 효력이 없습니다. 그리고 자꾸 한사람의 주장이라고 무시해야한다고 억지 주장을 하는데 한국상고사학회에 정식으로 보고되고 해당 학보에 개제된 논문입니다. 이정도면 충분히 반론으로 인용 가능합니다.
그리고 제가 만든 지도를 자꾸 한겨레 것이라고 억지를 부리는데 그 지도는 제가 직접 그리고 제작한 것입니다. 이런 식의 억지 주장이면 귀하가 낙랑군, 대방군 문서에 올린 지도야말로 아틀라스 한국사를 표절한 지도이니 제가 징계를 요청하겠습니다. 제 지도에 문제를 삼을려면 귀하가 직접 한겨레에 연락해서 해당 지도가 저작권 위반이라는 답변이라도 받아오십시오. 그 지도는 다시한번 분명히 말하지만 제가 직접 그리고 제작한 순수한 100% 제 창작물입니다.--Lhrdrth (토론) 2014년 1월 8일 (수) 16:38 (KST)답변
1. 위키백과에서 인터넷 검색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인터넷에서는 홀로코스트 부정론에 대한 논란이 낙랑요서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수도 없이 검색됩니다. 그리고 홀로코스트 부정론을 주장하는 학자들 역시 다수 존재합니다. 그러나 제정신이 박힌 학자라면 아무도 홀로코스트 부정론을 제대로 된 학설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낙랑요서설은 하다못해 홀로코스트 부정론 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소수설로 귀하가 언급한 소수의 학자를 제외하면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주장입니다. 게다가 북한 학계의 통설에 대한 비판은 이미 1960년대에 끝난 것으로 여기서 언급할 가치조차 없습니다. 참고로 윤내현 교수는 북한의 고조선 연구를 그대로 베껴서 책을 썼다가 개망신을 당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의 주장을 대체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덧붙여 저는 지도의 삽입을 반대한 적이 없습니다. 귀하가 올린 지도는 엄연히 본문 하단에 나와 있습니다. 물론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조만간 삭제될테지만. 여하튼 제가 드릴 말씀은 하나입니다. 위키백과:비주류 이론을 읽어 보고 오십시오. 이곳에 모두 나타나 있습니다.
2. 저는 한사람의 주장이라고 무시해야 한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단지 한 사람의 주장이기 때문에 무엇무엇이 밝혀졌다는 식으로 단정적으로 서술하면 안된다고 말했을 뿐입니다. 이러이러한 주장도 있다는 것이 소위 반론의 올바른 서술방법입니다. 귀하의 머리 속에서야 저 논문 하나로 대방군치의 위치 논란이 끝난 것 같을지는 몰라도 실제 학계에서는 전혀 아닙니다. 정인성의 논문은 논란의 단초를 제공한 것 뿐, 어떤 것도 바꾸지 않았습니다. 역사학은 누가 논문 하나 썼다고 순식간에 뒤집어지는 학문이 아닙니다. 귀하의 단정적인 서술, 그리고 실제 논문의 결론을 뒤틀어서 자신의 입맛대로 서술하는 행동은 명백한 위키백과의 지침 위반입니다.
3. 그 지도가 귀하가 그린 것이라면 그것을 증명하시면 될 일입니다. 저는 분명하게 한겨레에 해당 지도가 올라와 있는 것을 증거로 제시했습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귀하가 한겨레의 지도를 저작권을 위반한 채 올린 것으로 판단하지 귀하가 직접 그린 지도를 한겨레가 무단으로 도용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현재 저작권을 위반한 것으로 보이는 사람은 귀하이지 한겨레가 아닙니다. 귀하는 한겨레가 아닌 본인이 저작권자라는 사실을 증명하시거나 아니면 지도를 삭제하십시오. 덧붙여 제가 올린 지도는 제가 직접 제작한 것으로 위키백과에 올린 날짜를 기준으로 그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는 명백한 자유저작물입니다. 게다가 아틀라스 한국사를 근거로 지도를 작성한 행위는 표절과 아무런 관련 사항이 없습니다. 귀하야말로 억지 주장을 하지 말고 저작권 문제를 어서 해결하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징계를 요청할 수밖에 없습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1월 8일 (수) 18:48 (KST)답변
귀하의 독단적인 주장은 반박할 가치조차 없습니다. 자기 마음에 안들면 다 황당무계한 괴설이고 심지어 윤내현 교수까지 표절자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모략, 비방하는 걸 보니 정말 상대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워낙 낙랑군 위치에 대한 이견이 많아서 인터넷 검색으로도 쉽게 확인될 문제라고 하였고, 낙랑군 요서설을 주장하는 강단 사학자들도 제시했습니다. 물론 이른바 재야 사학자들도 많지만 귀하가 재야 운운 트집을 잡을까봐 재야는 일부러 배제한 것입니다. 가장 통설로 구성되는 검정 국사 교과서에조차 이제는 언급이 안되는 낙랑군 평양설을 귀하는 어떻게 설명할 것입니까? 귀하의 주장대로 반박의 이론조차 없는 확정적인 사실이라면 왜 국사 교과서에서 언급이 안됩니까?
영남대 문화인류학과 정인성 교수가 쓴 장무이묘 관련 논문은 장무이묘 관련 논문이 수십년간 한편도 발표되지 않는 상황에서 발표된 획기적 논문으로 그논문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고고학적 이론으로 충분히 설득력있고 명백하게 논지를 풀어나갔으며 분명히 장무이묘는 고구려 무덤이고 대방태수가 아니다라고 결론짓고 있으므로 저의 추가 편집은 아무런 오류가 없습니다. 그리고 장무이묘 관련 정인성 교수 관련 글은 반드시 들어가야한다는 것이 제 입장이고 그 글 내용에 관해서는 귀하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할 의사가 있으니 귀하가 생각하는 적정한 문구를 알려주시면 보고 검토하여 적절한 절충선을 마련할 수도 있는 것이 제입장임을 알려드립니다.
그리고 자꾸 제가 그린 지도를 가지고 트집인데 그 지도는 제가 직접 그린 그림으로 저작권에 아무런 저촉 사항이 없는 순수 저의 창작물입니다. 그 지도를 제작할 때 만든 원본 포토샵 psd 파일도 가지고 있으며(해당 파일은 이곳 관리자에게 증거 자료로 얼마든지 보낼 용의가 있음) 귀하가 제시한 한겨레의 그 지도를 가지고는 단 0.001%도 제작한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두 지도의 그림 형태, 글씨체 등을 보면 금방 확인될 문제입니다. 따라서 징계를 요청하던 말던 그건 귀하의 자유니 마음대로 하시기바랍니다. 만약 내용이 비슷하다고 무조건 표절이라고 주장할 것이면 아틀라스 한국사 지도를 참조해서 그것을 바탕으로 지도를 그린 귀하도 당연히 표절이라는 것을 분명히 밝힙니다. 귀하가 그런 취지로 징계를 요청하면 저도 귀하의 지도에 대해서 징계를 분명히 요청할 것입니다. 귀하가 왜 다른 유저에게 "반달에 해당하는 행위를 서슴없이 하는 것은 지나친 행동이고 반성없이 계속 반복하는 것은 이곳 편집자분들에게 해악과 민폐를 주고 있는 행위입니다."라는 비판을 듣는지 가슴을 손에 얹고 생각해보시기를 바랍니다.--Lhrdrth (토론) 2014년 1월 8일 (수) 21:08 (KST)답변
1. 윤내현의 표절 시비는 1995년에 《역사학보》에 논문으로 제기되었을 만큼 심각한 문제로, 현재 한국사학계에서 윤내현의 주장은 아무도 참고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이런 소수의 학자들을 가지고 국사학계의 통설을 단순한 추측이라 서술하는 것이야말로 위키백과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임은 당연한 일입니다. 또한 국사교과서에 언급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통설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국사교과서에서는 고구려 미천왕 때 낙랑군을 축출하고 대동강 유역을 확보한 사실을 명백하게 서술하고 있으며, 단지 낙랑군 자체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을 뿐입니다. 그리고 다수의 역사학자들은 민족적 자존심 운운하면서 낙랑군을 비롯한 여러 역사적 사실을 삭제한 교과서의 서술 태도에 대해서 비판한 바 있습니다. 즉, 교과서에서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고 해서 그것이 통설이 아니라 볼 수는 없습니다.
2. 이미 제가 적절한 수준으로 편집을 한 바 있습니다. 귀하가 지극히 비중립적으로 편집한 무엇무엇으로 밝혀졌다는 것이 불가하다고 몇 번을 말씀드렸습니다. 정인성의 논문은 단지 주장일 뿐, 역사학계의 통설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무엇무엇이라고 주장하였다는 수준으로 서술해야 하는 것이 위키백과의 원칙에 부합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이미 편집하였습니다. 귀하께서 절충하실 것은 없습니다. 귀하의 편집은 위키백과의 원칙에 어긋나는 비중립적인 편집이니까요.
3. 지도 부분은 제가 잘못 본 것입니다. 워낙에 지도가 거의 똑같이 그려져 있어서 제가 착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똑같은 수준으로 베껴 그리는 것이 저작권 상으로 인정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못하겠군요. 제가 그린 지도는 배경이 되는 바탕 지도도 완전히 다르고, 문구나 영역 표시 방법 등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문제가 없습니다만, 귀하가 그린 지도는 한겨레의 지도와 배경, 문구, 영역 등이 너무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말입니다. 제가 착각을 할 정도로 비슷해서 저작권 문제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지도를 착각한 것은 사과드립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1월 9일 (목) 00:01 (KST)답변
윤내현 교수의 표절 시비는 이형구가 주도한 한국 주류 사학계가 자행한 파렴치한 모략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김상태저 "엉터리 사학자, 가짜 고대사") 자기 자신의 독단으로 윤내현 교수를 표절자로 모략, 비방하고 그의 학설을 완전한 소수설로 폄하하는 행위는 삼가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국사 교과서는 직접적으로 낙랑군 평양설을 지칭하지않고 있고 지도에도 표시하지않고 있어서 사실상 해당 학설을 부인하는 경향으로 서술되었고 귀하도 아실지모르겠지만 낙랑군을 비롯한 한사군 서술은 최신판으로 개정될때마다 부정하는 경향으로 서술되며 이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 수준입니다. 확실히 인정되는 통설이 아니라는 반증입니다.
그리고 해당 지도가 저작권 문제가 없는 만큼 그 지도를 삭제하는 반달은 중지하십시오. 정인성님 논문에 대한 귀하의 서술은 인정하겠습니다.
귀하가 상단에 붙어있던 저의 지도를 하단에 옮긴 것을 자세히 보지못하고 삭제한 것으로 생각해서 편집을 되돌렸습니다. 저의 부주의를 사과드립니다. 일단 해당 지도가 삽입된 이상 귀하가 제작한 지도에 대한 설명 수정은 필요없다고 생각되어 귀하의 편집을 인정하겠습니다. 조만간 한국 주류 사학계가 낙랑군 평양설의 유물이라고 주장하는 것 중 근거가 없음으로 밝혀진 유물들에 대한 비판을 낙랑군 문서에 추가할 예정입니다. 귀하의 무분별한 반달 행위가 없기를 바랍니다.--Lhrdrth (토론) 2014년 1월 9일 (목) 13:25 (KST)답변
김상태의 저 책의 내용은 위키백과의 원칙상, 그리고 상식이라는 측면에서도 전혀 참고사항이 못되는 음모론에 불과합니다. 위키백과는 소수설, 특히 탄압받는 소수를 자처하는 음모론급 소수설에 대해서 이렇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지지를 얻지 못하는 주장이나, 관련 학계의 주요 관점과 대치되는 주장. 지지자들이 그들을 침묵하게 하려는 음모가 있다고 주장할 때에는 특별히 주의.
강조한 부분과 김상태의 책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미 수차례 말씀드렸습니다만, 창조설진화론과 동등한 과학 이론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은 엄청나게 많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주장들은 과학계의 검증을 통과하지 못했고, 당연히 과학 이론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낙랑군요서설도 마찬가지입니다. 국사교과서는 민족주의적인 성향 덕분에 우리나라에 불리한 사실을 언급하지 않으려하는 경향이 있고, 그 때문에 명백한 역사적 사실로서 학계의 동의를 받고 있는 낙랑군에 대한 서술도 배제되어 가는 것일 뿐입니다. 정작 바로 그 국사교과서를 편찬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출판한 《신편 한국사》에는 낙랑군의 위치가 명확하게 표기되어 있습니다. 적어도 현재 한국사학계의 주류 통설을 일반대중을 위해서 가장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한 저서가 바로 국편위의 《한국사》인 만큼, 귀하의 국사교과서를 통한 주장은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간 다른 일이 바빠서 답변이 늦었습니다. 이점은 양해 부탁드립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1월 14일 (화) 13:28 (KST)답변
자신의 주장에 맞지않으면 무조건 음모론 운운하면서 무분별한 반달을 하는 행위를 당장 중지하십시오. 국사 교과서에도 나올 수 없을 만큼 지지를 못받는 음모론보다 못한 학설이나 추종하면서 무분별한 반달을 일삼는 귀하의 행위에 대해서 정말 황당합니다. 그냥 귀하가 따로 귀하가 운영하는 위키를 만드십시오.--Lhrdrth (토론) 2014년 1월 16일 (목) 14:07 (KST)답변
귀하야말로 지지자들이 그들을 침묵하게 하려는 음모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완벽한 소수설을 위키에 무분별하게 올리려 하는 행위를 중지하시기 바랍니다. 국사교과서 말고 학계의 공통된 지지를 받는 저서나 논문을 근거로 제시하지도 못하는 음모론을 추종하면서 무엇을 논한단 말입니까? 위키백과의 원칙이 무엇인지는 지금까지 수없이 설명드렸습니다. 귀하야말로 반달 행위를 중지하시기 바랍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1월 16일 (목) 15:21 (KST)답변
귀하는 음모론에 대한 개념부터 다시 정립하고 오시기를 바라며 분명히 경고하는데 한번만 더 반달하면 운영자에게 재제를 요청하겠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1월 16일 (목) 15:50 (KST)답변
현재 반달을 자행하는 사람은 바로 귀하입니다. 저는 이미 수차례나 위키백과의 원칙을 직접 설명하고 링크하여 귀하의 편집이 옳지 않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지금 경고를 받아야 하실 분은 귀하이지 제가 아닙니다. 주의하시기 바랍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1월 16일 (목) 15:59 (KST)답변
귀하의 입맛에 맞지않는 주장은 일방적으로 음모론이니 뭐니하면서 무분별한 반달을 자행하는데 일단 관리자에게 신고하겠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1월 16일 (목) 16:02 (KST)답변
입맛에 맞고 안맞고의 문제가 아니라고 벌써 몇 번이나 말씀드렸습니다. 귀하께서 낙랑군요서설에 대해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편집하시려면 요서설이 학계에서 정당한 학설로 취급되고 동등한 입장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증명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귀하는 그렇게 하지 못하셨습니다. 그리고 일개 소수설, 엄밀히 말해 음모론 수준에 불과한 내용을 근거로 학계의 통설을 추정으로 격하하려는 반달 행위만 지속하고 있을 뿐입니다. 귀하가 아무리 신고해봤자 위키백과의 어느 관리자도 그런 행동에 편들어줄 사람은 없습니다. 귀하야말로 주의하십시오.--Xakyntos (토론) 2014년 1월 16일 (목) 23:02 (KST)답변
귀하가 독단적으로 음모론 운운하면서 무분별한 반달을 자행하는 것에 대해서 매우 불쾌합니다. 나는 이 문서에서도 귀하에게 알아들을 만큼 충분히 설득을 시켰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는데에 대해서 정말 놀랍습니다. 불쾌하게 생각하실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부탁인데 앞으로는 이 문서에 글을 남기지마십시오. 토론의 상대가 아니니 토론을 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을 듯하여 드리는 말씀입니다. 앞으로는 귀하의 응대에 일절 반응을 하지않을 것입니다. 귀하에 대한 재제 요청 페이지를 만들었는데 누가 삭제 신청을 했는데 추후 상황을 보고 직접 관리자에게 제보할 것입니다. 하여간 나는 정당한 편집을 계속할 것입니다.--Lhrdrth (토론) 2014년 1월 17일 (금) 13:25 (KST)답변

《요사》 관련 문제[편집]

중국의 서책에서 혹 요동의 여러 현을 한나라 때의 낙랑 지역이라고 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요사》 지리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동경 요양부(東京遼陽府)는 본디 조선의 지역으로, 한나라 때에는 사군(四郡)이 되었다. 진(晉)나라 때 고구려를 함락하였다. 원위(元魏)의 태무제(太武帝)가 사신을 보냈는데, 사신이 고구려 왕이 사는 평양성(平壤城)에 이르렀다. 요나라의 동경(東京)은 바로 이곳이다. ○ 요양현(遼陽縣)은 본디 한나라 때에는 패수현(浿水縣)이었다. ○ 자몽현(紫蒙縣)은 본디 한나라 때에는 누방현(鏤方縣) 지역이었다. ○ 흥주(興州)는 본디 한나라 때에는 해명현(海冥縣)이었으며, 동경에서 서남쪽으로 300리 되는 곳에 있다. ○ 숭주(崇州)는 본디 한나라 때의 장잠현(長岑縣) 지역이었으며, 동경에서 동북쪽으로 150리 되는 곳에 있다.
(중략)
진서가 삼가 살펴보건대, 《요사》에서 이미 요양주(遼陽州)를 평양성이라고 하였으므로 요동의 주현을 이로 인하여 낙랑의 여러 현에 꿰맞춘 것이다. 《요사》 지리지는 모두가 두찬(杜撰)된 것으로 많이 논변할 필요조차 없다. 그런데 《문헌비고(文獻備考)》에서는 이 설을 인용하여 요양의 이하(泥河)를 한나라 때의 패수(浿水)라고 하였으니, 몹시 잘못되었다. 그리고 원나라의 함평부는 지금의 성경(盛京) 근처 지역으로, 낙랑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성경통지》에서는 또 해성현(海成縣)을 한나라 때의 낙랑 지역이라고 하였다. -이에 대한 내용은 현도조(玄菟條)에 나온다.- 이런 것들은 모두 《요사》의 잘못된 설을 그대로 따라서 그런 것이다. - 한진서, 《해동역사》〈사군고〉

1. 《요사》〈지리지〉가 얼마나 형편없이 두찬으로 지어졌는지는 이미 당대의 중국 학자들도 잘 알고 있었던 일이며, 실학자들도 이를 위와 같이 통렬하게 비판한 바 있습니다. 귀하는 《요사》에 적혀있는 것을 그대로 신뢰하여서 “해당 요사 사료는 분명히 "한나라 때"라고 구체적인 시기를 밝히고 있음”이라 말씀하셨습니다만, 제가 올린 한치윤의 반박글은 오히려 바로 그점을 명백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서책에서 혹 요동의 여러 현을 한나라 때의 낙랑 지역이라고 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명백하게 지적되고 있는 사항을 대체 무슨 근거로 엉터리라 말하시는 것입니까? 확실하게 근거를 제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다면 귀하의 되돌림은 반달 행위에 해당합니다.

  • 고(구)려는 본래 부여의 별종이다. 그 나라는 평양성에 도읍하였으니, 곧 한 낙랑군의 옛 땅이다. -《구당서》〈동이열전〉고구려조
  • 그 임금이 평양성에 거처하는데, 한나라 때의 낙랑군이다. -《신당서》고구려전
  • 점제성(黏蟬城)은 평양 서남쪽에 있는 한나라의 현으로, 낙랑군에 속하였다. -《대청일통지》
  • 평양성(平壤城)은 곧 한(漢)의 낙랑군 왕검성(王儉城)이다. -《통전》
  • 무제(武帝)가 원봉(元封) 2년(B.C. 109)에 장수를 보내어 토벌하여 사군(四郡)으로 만들고 왕험성으로 낙랑군(樂浪郡)을 삼았고, 고구려 장수왕(長壽王) 15년(427)에 국내성(國內城)으로부터 옮겨와 도읍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평양부〉
  • 조선(朝鮮)현 : 응소(應劭)는 ‘무왕(武王)이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했다.’ 하였다. (곧 낙랑군치이다.) 한(漢)이 우거(右渠)를 멸하고 그 도읍을 격하하여 현(縣)으로 삼았는데, 지금의 평양(平壤)이다. - 안정복, 《동사강목》〈낙랑제현고〉
  • 진서가 삼가 살펴보건대, 조선현은 바로 낙랑군의 치소이다. 《수경주》에 근거하면 지금의 평양부(平壤府)가 이곳이다. -한진서, 《해동역사》〈사군고〉

2. 귀하는 《요사》의 정보를 신뢰하므로 제 편집이 잘못이라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실학자들의 논박을 근거로 제시하며, 필요하다면 학계 전반에서 《요사》의 정보가 엉터리라는 것을 지적하는 견해를 제시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귀하는 낙랑군이 지금의 평양임을 전하는 수많은 사료들을 대체 어떤 근거로 부정하십니까? 위에 인용한 것은 겨우 10여분 정도 검색해서 찾아낸 결과물들입니다. 아마도 귀하는 고작해야 《요사》를 비롯해서 극히 일부의 사료밖에 찾지 못할 겁니다. 99개가 같은 곳을 가리키고 1개가 다른 곳을 가리킬 때 정상적인 학자라면 1개가 왜 다른지를 찾지 99개가 틀렸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낙랑군을 요동이니 요서니 하는 곳으로 옮기려는 사람들이 소수설이자 음모론으로 취급받는 겁니다.
3. 여타와 같은 사유로 귀하의 《요사》 관련 정보는 낙랑군의 소속현 항목하에 거론될 가치가 없음을 밝히며, 위치에 대한 논란 가운데 하나로 편집함을 통보합니다. 귀하가 제대로 된 출처를 통해 《요사》의 정보가 확실한 논란의 대상이며, 학계에서 심각하게 논의되고 있음을 밝히지 않는 한, 귀하의 편집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1월 24일 (금) 10:28 (KST)답변

경고합니다. 귀하의 금번 행위는 명백한 반달입니다. 제가 분명하게 한나라 때라는 것이 명시되어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그런데도 같은 소리를 한다는 것은 명백한 토론 무시이고 엄존하는 정설을 삭제하는 반달 행위입니다. 다시 한 번 되돌릴시에는 제제를 요청할 것입니다. 주의하십시오.--Xakyntos (토론) 2014년 1월 24일 (금) 13:42 (KST)답변
요동 지역의 연혁이 고구려-> 발해-> 요나라로 이어진 만큼 요사는 요동 지역의 가장 정확한 기록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진서의 주장은 개인의 일방적인 추측으로 그것으로 정사인 요사의 해당 기록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한진서의 일방적 주장만으로 요사의 동경 요양부, 동경도에 속한 여러 현의 위치가 두찬되었다는 증거는 당연히 성립될 수조차 없습니다. 요사 지리지의 기록을 부인하려면 보다 확실한 납득할 수 있는 구체적인 근거를 거져오십시오. 그러면 당연히 승복할 것입니다. 또 귀하는 일부 실학자들의 추측으로 낙랑군 만주설을 부인하는데 박지원, 이익, 이규경 등의 실학자들은 낙랑군 만주설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문제는 실학자 일방의 주장만으로 옳다 그르다를 가릴 수 없습니다.
또한 제가 제시한 사료는 중국의 정사 중 유일하게 개별적인 낙랑 군현의 구체적인 위치를 밝히고 있는 실로 값어치있는 사료로 해당 사료는 분명히 "한나라 때"라고 그 구체적인 시기까지 밝히고 있습니다. 따라서 일부 실학자들의 추정만으로 위나라 때라고 착각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 사료는 분명히 낙랑군 문서의 낙랑군현의 위치에 관한 정보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귀하가 낙랑군 평양설에 관한 몇개의 사료를 근거라고 들고 왔는데 낙랑군이 평양에 없다는 근거로 사용할 수 있는 사료는 귀하도 아시다시피 훨씬 더 많습니다. 따라서 이 사료들도 요사의 사료를 부인할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낙랑군 문서에서 사라져야 할 불량, 함량 미달의 정보는 황해도 수안의 수자가 낙랑군 수성현의 수자와 같다고 수안을 수성현으로 비장한 이병도의 엉터리 추정입니다. 당장 이 코메디같은 엉터리 추정을 문서에서 삭제하십시오.
결론은 일부 실학자들의 단순 추정으로는 정사의 사료를 부인할 근거가 안되므로 귀하의 요사 반박 자료는 엉터리이므로 삭제했고 요사 사료는 무가치하다고 볼 확실한 근거가 없으므로 해당 낙랑군 문서에 삽입되어야 합니다. 귀하가 확실한 근거를 제시하기전에는 귀하가 반달을 하더라도 정당한 편집을 계속할 것입니다.--Lhrdrth (토론) 2014년 1월 24일 (금) 13:55 (KST)답변
  • 그런데 《일통지(一統志)》에는 전혀 고찰하지도 않고서 경솔하게 지금 해성현(海城縣)을 옥저의 옛땅이라고 하였으니, 이는 본래 《요사(遼史)》의 잘못된 점입니다. 《요사》에서, 발해 오경(渤海五京)을 잘못 요동(遼東) 지방에다 배열시켰기 때문에 옥저도 요동 지방에 있다고 하였으니, 이 역시 주착없는 짓이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말한다면 옥저는 넷이나 있는 셈이요, 셋뿐이 아닙니다. - 정약용, 《다산시문집》〈지리책〉
  • 압록강 이북은 모두 요동에 속하였는데, 낙랑의 여러 현(縣)이 어떻게 그 사이에 끼어들었겠는가? 대저 《요사》 지리지에는 믿을 수 없는 것이 많다. - 안정복, 《동사강목》〈패수고〉
  • 그런데 《요사》 지리지에서는 제대로 지리를 상고하지 않고서 드디어는 동경(東京)을 일러 곧바로 평양성이라고 하였으며, 또한 곧바로 홀한주라고 하고, 또다시 곧바로 중경 현덕부라고 하여, 서로 간에 거리가 각각 1000여 리나 되는 지역을 합하여 하나로 하였는바, 매우 잘못되었다. - 《대청일통지》
  • 또한 우리 역사를 청나라 역사에 포함시켜 해소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편찬한 청나라의 ≪요사 遼史≫ 지리지와 ≪대청일통지 大淸一統志≫·≪성경통지 盛京通志≫ 계통의 문헌의 오류를 비판하였다. - [네이버 지식백과] 해동기략 [海東紀略]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1. 분명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요사》가 두찬이라 비판하는 이는 겨우 한진서 한 명이 아닙니다. 다산 정약용, 순암 안정복을 비롯한 여러 실학자들은 물론이고 당대 중국의 사가들 역시 《요사》〈지리지〉의 오류를 지적한 바 있습니다. 물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내용에서 보듯이 현대 역사학계에서도 《요사》〈지리지〉는 오류 투성이인 책으로 거의 참고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 것이 증거가 아니면 대체 무엇이 근거란 말입니까?
2. 훨씬 많다는 그 사료 좀 보여주시지요. 그럼 제가 하나 하나 어디가 조작되었고 어디가 잘못인지 다 밝혀드리지요. 제가 웬만한 낙랑군 관계 사료는 다 뒤져봐서 거의 다 압니다. 자체적으로도 모순을 일으키는 정도는 애교고 심한 경우에는 “A와 B를 모두 소개하고 그 중 B가 옳다”는 내용의 기록 중에서 “A를 소개”하는 내용만 쏙 빼다 쓰는 파렴치한 사기 행각까지 있지요. 한 번 가져와 보세요. 그리고 귀하께서는 제가 제시한 사료가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반박 부탁드립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1월 24일 (금) 14:21 (KST)답변
요사를 폄훼하는 자료만 가져와서 잘못되었다는 증거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요사가 중국의 정사로 인정된다는 것은 상당부분 정확한 기록을 남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학계에서도 요사를 번역한 것입니다. 거란의 역사 '遼史' 완역된다 이 기사에서 단국대 북방문화연구소 이성규 소장은 "완역대상으로 요사를 고른 까닭에 대해 "한민족의 주된 활동 무대 중 하나인 북방지역의 역사 기록은 중국 측 기록이 대부분으로 중국의 동북공정에서 보다시피 중국 입장을 대변하고 있어 우리 시각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면서 "이런 점에서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에서 이 지역 역사를 기록한 요사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거란의 역사 '요사' 완역 대장정 이 기사에서도 북방문화연구소는 "한민족의 활동 무대 중 하나인 북방지역 역사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지만, 중국 측 기록은 동북공정에서 보인 중국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며 비교적 객관적 시각에서 쓰여진 '요사' 번역의 필요성을 설명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요사의 기록이, 특히 제가 제시한 사료 부분이 엉터러리라는 명백한 증거를 가져오기 전에는 귀하의 주장은 소수설의 입장으로 억지를 부리는 것에 불과합니다.
요사 지리지의 해당 기록이 정확한 것을 반증해주는 것은 동경 요양부조 숙신현 기록에는 "숙신현에는 발해 유민을 옮겨살도록 함으로써 숙신현이라고 했다."라고 하여 교치한 지명에는 그 연혁까지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으므로 귀하가 가져온 자료들이 추측하는 두찬이나 교치 지명을 잘못 적은 것이 아님이 명백히 입증됩니다. 이에 대한 반박 바랍니다.
귀하가 낙랑군 평양설의 증거라고 가져온 사료들은 전부 고구려가 지금의 평양으로 도읍을 옮긴 후에 고조선의 도읍이 지금의 평양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일반화되어 거기에 따른 오류에 의한 사료들로 근본적인 결함이 있습니다.
낙랑군이 평양에 없다는 사료는 많고 많으나 귀하가 요구하니 그중에 몇개만 올려봅니다.
  • 부여가 동한 영초 5년(서기 111년)에 보병과 기병 7천~8천 명으로 낙랑군을 공격했다는 『후한서』 「동이열전」의 기록
  • 조선성이 지금의 난하 하류지역 즉, 갈석산 부근의 영평부 경내에 있다는 대명일통지 기록
  • 낙랑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으며 만리장성의 기점이라는 태강지리지 주석
  • 패수는 요동 새외에서 나온다는 사기 정의 지리지 기록
  • 낙랑은 유주에 속했다는 한서 설선열전 기록
  • 장잠현은 낙랑군에 속했는데 그땅은 요동에 있다는 후한서 최인열전의 기록
  • 낙랑군은 옛 조선국이다, 요동에 있다는 후한서 광무제본기 기록
  • 사기의 기록에 대해서 지금의 북경 부근의 창려에 위만 조선의 도읍이 있다는 서광의 주석--Lhrdrth (토론) 2014년 1월 24일 (금) 19:55 (KST)답변

홀한주는 바로 옛 평양성으로, 중경현덕부(中京顯德府)라고도 한다. - 《요사》〈지리지〉 동경요양부 조

1. 솔직히 저 한 문장만으로도 게임 끝인데 말입니다. 《요사》는 동경요양부와 고구려의 평양, 발해 중경현덕부(홀한주)를 모두 같은 곳이라 말하는 경천동지할 헛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중경현덕부가 어디인지 아시죠? 바로 동모산입니다. 물론 고구려 평양이 어딘지도 알겠지요. 서로 천리도 넘게 떨어져 있는 세 곳을 모두 같은 곳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수준의 사서를 대체 어디에 써먹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솔직히 이 문제 알고 계시죠? 그렇지 않고서야 뻔히 보이는 이 문장을 쏙 빼놓고 《요사》〈지리지〉에서 극히 드문 교치 기사만 따로 빼올리가 없을테니. 이딴 거나 붙잡고 있는 귀하가 참 안쓰럽습니다.
2. 귀하의 증거라는 것들이 어떤 모양인지 한 번 봅시다.
  • 부여의 공격 기사 : 그렇게 따지면 한강 유역에 있던 백제는 귀하의 주장에 따르면 요서에 있다는 낙랑군과 대체 무슨 방법으로 수차례나 전쟁을 했을까요? 뭐, 대륙백제 이딴거? 그거 학계에서 취급도 못받아요. 원래 고대 국가는 국경선이 현대와 달리 철저하지 않아서 국경을 맞대고 있지 않아도 군대 보내서 싸우는 일이 비일비재해요. 전국시대 연나라가 초나라와 전쟁한 건 아시나요? 진나라 상앙의 영지가 어디인지 아시면 기절하실걸요? 심지어 신라가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고구려와 백제가 전쟁을 한 적도 있어요. 선덕여왕 때 여근곡 관련 기록은 또 어떻구요? 백제군이 서라벌 바로 근처의 여근곡까지 진격했는데 신라에서는 그걸 전혀 모르고 있었답니다. 이딴 거 전혀 근거도 아니거든요?
  • 《대명일통지》의 기록 : 이를 비롯해서 조선현이 영주(남영주) 지역에 있었다는 기록들, 그게 다 북위 때 요서로 교치된 낙랑군을 이리저리 옮기는 과정에서 그렇게 된 거라고 대체 몇 번을 말해야 합니까? 《위서》 〈지형지〉에 그 교치된 기록 다 나와 있거든요? “조선현 : 양한과 진 때는 낙랑군에 속했으나 후에 폐지되었다. 연화 원년에 조선 백성들을 비여로 옮겨 다시 설치하여 속하게 하였다.”
  • 《사기색은》의 주석 : 이거 가져올 줄 알고 있었습니다. 이게 제가 말한 바로 그 사료 가지고 사기치는 부분이거든요. 귀하가 말한 저 《태강지리지》의 인용문 바로 다음 구절은 이렇습니다. “또 《수경》에 전하기를 “(갈석산은) 요서 임유현 남쪽 물에 있다.” 대개 갈석산은 둘이 있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갈석의 오른쪽을 끼고 바다로 들어간다”는 당연히 북평의 갈석을 가리키는 것이다.”낙랑에 있다는 갈석과 요서에 있다는 갈석 두 갈석이 있는데, 그 중에서 여기서 말하는 갈석은 요서에 있는 갈석이다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뒤에 결론부를 쏙 빼놓고 앞의 사료 인용 부분만 가져다 보여주는게 증거라구요? 그건 증거가 아니라 사기치는 겁니다.
  • 요동 새외의 패수 : 저기 새외(塞外)라는 말이 뭔지 모르세요? 국경 밖이라는 뜻이에요. 요동군 국경 밖에서 패수가 시작된다는게 대체 어떻게 요동에 패수가 있다는 의미가 됩니까? 국경 바깥이면 딱 봐도 한반도로 넘어가는데 말입니다?
  • 유주 소속의 낙랑군 : 저기요. 이상한데 뒤져보지 말고 그냥 《후한서》〈군국지〉 보세요. 거기에 유주 소속으로 북경 근처인 탁군부터 낙랑군까지 순서대로 다 나와 있어요. 유주를 비롯한 고대 9주, 후한 13주는 광역행정구역이에요. 애초에 베이징 일대는 그냥 주의 중심지일 뿐, 유주의 영역은 그보다 훨씬 크단 말입니다. 유주 지도를 보십시오. 지금 귀하의 주장을 그대로 한국 버젼으로 옮기자면, 강릉은 강원도에 속해 있었다고 한다. 강원도는 지금의 춘천이므로 강릉도 춘천 근처에 있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 요동에 낙랑/장잠이 있다는 기록 : 요동이라는 말은 요동군이라는 행정구역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만주와 한반도 일대를 통칭하는 개념이기도 했습니다. 귀하의 주장대로라면 신라도 요동에 있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건 어떻게 해석할 겁니까? 최인 열전이나 광무본기도 낙랑이 군(郡)이라는 사실을 명기하는데 반해 요동에는 아무런 표기도 하지 않아서 지리적 개념으로 요동을 사용했음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3. 결국 귀하가 증거랍시고 가져온 것들은 다 이모양이네요. 심지어 명백한 사기 행각도 있다는 사실도 이제 아셨습니까? 소위 낙랑요서설이라는게 이런 겁니다. 사료를 가지고 사기를 치지 않으면 성립조차 불가능한 헛소리들.--Xakyntos (토론) 2014년 1월 25일 (토) 22:05 (KST)답변
귀하의 반박은 역시 기대했던대로 수준이하이군요. 부여의 공격 기사에 대한 반박은 한마디로 횡설수설이고 백제가 요서에 있다는 것은 수많은 사서에 나와 있습니다. 대명일통지 기록이 교치된 것의 잘못이라고 하는데 툭하면 그걸 근거랍시고 내세우는데 교치됐다는 구체적인 증거나 가져오십시오. 그리고 누가 갈석산 두개 기록을 모르는 줄 아십니까? 북평이 한반도 대동강 유역에 있는 줄 아시나본데 요서군 서북쪽에 있는 군입니다. 귀하가 제시한 구절 어디에 한반도 대동강 유역에 갈석산이 있다고 했습니까? 만리장성의 기점이 되는 갈석산은 지금 하북성의 갈석산으로 고고학적으로도 증명이 됐고 심지어 중국 역사 지도집에도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귀하는 요동이 한반도 평양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까? 결국 할말이 없으니 요동이 한반도 일대를 통칭한다는 궤변을 들고 나오는데 이보세요, 좀 창피한 줄 아십시오. 일례로 당나라 이현은 후한서 주석을 달면서 "낙랑군이 요동에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아무런 근거없이 부인할 수 없다"라고 하여 중국의 낙랑군 평양설을 주장하는 자들도 한반도 평양의 낙랑군의 위치와 요동을 다르게 인식했다는 것은 언급하는 것이 이상할 정도의 당연한 상식입니다. 귀하의 독단적인, 전혀 근거가 없는 궤변으로 다른 주장을 사기니 음모론이니 하는 행태는 이제 지겨우니 제발 그만두십시오.
그리고 요사의 단 한구절로 모든걸 게임 끝이라고 하는데 진짜 우습습니다. 홀한주를 평양성이라고 한 것은 발해를 고구려의 후계국으로 생각하여 발해의 중심지역을 설명하면서 고구려의 수도인 평양성을 차용했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거기가 대동강 평양이라고 생각한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리고 어떤 사서도 오류가 있습니다. 만약 어떤 사서가 몇부분 오류가 있다고 하여 나머지 기록도 전부 오류일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히 억지이며 그런 식으로 억지를 부리면 이세상에는 믿을 수 있는 사서는 단 하나도 없게 됩니다.
자 이 문제에 대해서 결론을 얘기합니다. 귀하는 제가 제시한 요사 사료가 왜 엉터리인지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반박을 대주십시오. 물론 귀하가 주장한대로 위나라때의 낙랑군을 착각한 것이다라든지(사료에 엄연히 한나라 때라고 나와 있는데 위나라 때라고 착각했다니 이게 무슨 억지 중의 억지입니까?) 요사 자체가 믿을 수 없어서 엉터리다라는식의 억지는 절대로 안됩니다. 귀하가 그런 반박을 못하는 한 제가 제시한 사료는 낙랑군 문서에서 낙랑군현을 설명하는 항목이 있는한 개별적인 낙랑군현의 구체적 위치를 설명하는 유일한 정사의 시료인만큼 반드시 들어가야할 중요한 자료로서 절대로 삭제하지 못합니다.--Lhrdrth (토론) 2014년 1월 26일 (일) 20:08 (KST)답변
방금 확인했는데 귀하가 낙랑군 문서 보호를 요청하여 편집이 제한되었군요. 이런 귀하의 행적을 보건데 앞으로 귀하와는 일절 토론을 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판단을 내립니다. 또다시 요청드리는데 불쾌하게 생각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이 문서에 글을 남기지마십시오. 앞으로는 귀하의 응대에 일절 반응을 하지않을 것입니다.--Lhrdrth (토론) 2014년 1월 26일 (일) 20:23 (KST)답변

碣石山在漢樂浪郡遂成縣,長城起於此山。今驗長城東截遼水而入高麗,遺址猶存。按尚書云:「夾右碣石入於河。」右碣石即河赴海處,在今北平郡南二十餘里,則高麗中為左碣石。 - 《통전》

1. 여기 고구려 영내에 좌갈석이 있다고 떡하니 나와있는뎁쇼? 장성이 요수를 가로질러 고구려 영내로 뻗어 있는 유적이 아직도(당나라 당시) 남아 있다는뎁쇼? 이건 뭐 떠다 먹여줘도 모른척하네. 《태강지리지》가 말하는 낙랑 수성현의 갈석은 대동강 또는 청천강 유역에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수성현과 좌갈석을 말하는 겁니다. 현재 세계 학계 공통으로 만리장성이 청천강 인근까지 뻗어 있었다는 것은 널리 인정되고 있어요. 애초에 진나라 때의 만리장성은 하북성 북평의 바닷가 근처에도 안옵니다. 당연하죠. 당시 진나라의 영토는 요동 전체를 아우르고 있었는데 자기 영토 안쪽에다 장성을 쌓는 광인이 세상에 어디있습니까?
2. 교치됐다는 증거 가져다 줘도 모른척하네. 참 불쌍하구만요. 《위서》〈지형지〉에 딱 써 있잖아요. 조선 백성들을 비려로 이주시켜서 새로 설치했다고. 그럼 원래 비려 일대에는 조선현이 없었다는 거잖아요. 못알아듣는 척 하는거 참 불쌍해 보이는거 아세요?
3. 이현의 주석 어디에 그런 말이 있는지 알려주시지요. 제가 지금 《후한서》 전문을 다 뒤져봐도 저런 내용 없는뎁쇼. 어디서 사기를 치려고 하시나? 요동이 만주와 한반도 일대를 통칭하는 지리적 개념으로 사용된 예는 셀수도 없습니다. 하다못해 신라나 신라 사람들을 요동/요동인이라 칭한 경우가 부지기수인데 그럼 신라도 요동에 있었겠네요?
4. 일부분의 오류를 가지고 《요사》〈지리지〉가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쓰레기 사료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보여준 오류는 물론이고 조선시대 실학자들, 중국의 당대 학자들까지 한목소리로 《요사》가 엉망진창이라 쓸모가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보여드렸잖습니까? 귀하가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해서 《요사》가 갑자기 뛰어난 지리 고증을 보여주는 역사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귀하 혼자 아무리 엉터리가 아니라고 외쳐봤자 아무도 인정 안해줍니다. 원래부터 귀하의 인정 따위는 필요 없었어요. 귀하의 행동은 완벽한 반달행위일 뿐, 애초부터 학문적 논쟁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5. 결론적으로 토론이 무의미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귀하입니다. 수많은 증거를 직접 눈앞에 보여드렸고, 심지어 명백한 사기 행각까지 지적해 드렸습니다. 귀하는 제가 보여드린 수많은 증거에 대해서 믿지 못하겠다는 소리나, 아니면 뻔히 보이는 것을 일부러 모르는 척 계속 딴소리만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적어도 귀하의 소위 반박이라는 것들에 대해서 하나하나 성실히 답변을 드렸습니다. 대체 누가 토론이 안된다는 겁니까? 토론이 무의미한 사람은 귀하입니다. 마지막으로 통보합니다. 1주일 후 귀하가 제대로 된 토론 없이 다시 같은 편집을 강행할 시에는 징계를 요청할 것입니다. 주의하십시오.--Xakyntos (토론) 2014년 1월 26일 (일) 21:23 (KST)답변

상대를 더이상 안 하려다가 논파되어도 가루가 되도록 탈탈 논파된 황당한 사료를 근거랍시고 들고오셔서 떠먹여주네뭐네하면서 의기양양하는 모습이 하도 우습고 기가 막혀서 마지막으로 상대를 해드립니다. 귀하가 가져온 통전 사료는 통전 저자인 두우가 "협우갈석입어하"를 "갈석을 오른쪽으로 끼고 강으로 들어간다."라고 해석해야할 것을 "우갈석을 끼고 강으로 들어간다"로 잘못 해석해서 우갈석이 있으면 좌갈석이 있으려니하고 말도 안되는 망상을 한 것인데 그런 망상을 반박이라고 들고오십니까? 만리장성이 한반도 내까지 왔다는 헛소리를 주장하는 것은 동북공정을 주장하는 중국과 그를 추종하는 식민사학계 뿐인데 뭐가 널리 인정된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십니까? 만리장성은 산해관 갈석산까지라는 것은 사료는 물론이고 고고학적으로도 입증되었습니다.

그리고 위나라 때 교치된 것을 부정하는게 아니라 명나라 사료가 교치된 것을 보고 착각했다는 근거를 가져오라는 겁니다. 한글 독해가 안 되시는 것같아서 참 불쌍해보입니다. 그리고 이현 사료는 "기수연, 2005 후한서 동이열전 연구 101쪽(백산 자료원)"에서 확인되니 직접 확인하시고, 귀하가 못찾는다고 없는게 아니거든요? 그리고 요사 부분은 제가 제시한 요사 숙신현 사료에 대한 반박도 못하면서 무슨 말도 안되는 억지입니까?

누군가도 지적했지만 이제야 귀하의 패턴이 파악되네요. 자기 마음에 안드는 정당한 편집은 이런 식의 억지와 황당한 반박으로 끝도 없이 상대를 물고늘어져서 결국 편집을 포기하게 하거나 그것도 안 되면 이번같이, 자기가 무분별한 반달로 분쟁을 조장해놓고 문서 자체가 분쟁이 심한 것으로 관리자에게 신고해서 결국 해당 문서를 이전으로 돌리고 편집을 못하게 한다는 것. 그러나 언제까지 그렇게 해서 통할 것 같습니까? 저는 낙랑군 문서를 보호해제해 달라고 요청했으니 곧 풀릴 것이고 설혹 안 풀려도 1주일 후에도 정당한 편집을 계속 할 것입니다. 귀하가 징계를 요청하던 말던 그건 자유이니 말리지않겠습니다. 얼마든지 징계를 요청하십시오. 지금 문서가 보호됐다고 아주 의기양양하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

끝으로 귀하의 이런 패턴을 파악했으므로 귀하의 글에는 앞으로 절대로 일절 반응하지 않을 것이며 여기다가 또 글을 남긴다면 즉시 편집 취소하겠으니 그렇게 아시기를바랍니다.--Lhrdrth (토론) 2014년 1월 27일 (월) 00:43 (KST)답변

차단 재검토 요청[편집]

"문서 훼손 반복: 토론이 지속되는 중에도 독단적인 편집 강행."이라는 이유로 차단되었는데 정작 합의한 사항을 무시하고 문서 훼손을 하면서 독단적인 편집을 한 Xakyntos 사용자는 왜 아무런 조치도 안하시는지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저는 해당 사용자가 저지른 문서 훼손을 복원한 것인데 어째서 문서 훼손을 한 당사자는 아무런 재제도 받지않고 저만 이런 재제를 받아야 하는지 정말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아무리 관리자의 판단이라지만 저만 이런 재제를 당하는 것이 너무 억울하고 도무지 납득이 가지않습니다. 그러니 예전처럼 묵묵부답하지 마시고 저만 재제를 받는 그 이유가 뭔지 정말 구체적인 답변을 듣고 싶습니다. 만약 아무런 답변도 없다면 해당 조치를 한 관리자가 잘못을 인정한다고 생각하여 저는 이 조치가 매우 부당하다고 생각하므로 1주일 차단 조치가 풀리는 즉시 이 조치를 한 사용자:관인생략 관리자에 대한 재제를 요청하겠습니다. 정말 이럴 수가 있습니까? 이런 불공정하기 그지없는 조치를 하는 관리자가 있는데 어째서 위키백과가 열린 백과, 공정한 백과라는 말입니까?--Lhrdrth (토론) 2014년 2월 17일 (월) 16:53 (KST)답변

애초에 "합의된 사항"이라는 것이 존재하나요? 제가 보았을 때에는 굳이 "주류 사학"이라는 주장을 굳이 담아야 할 필요를 못느꼈으며, 자극적인 토론 말투와 지속적인 되돌리기 싸움에는 Lhrdrth님의 잘못이 더 크다고 판단했습니다 (물론 Lhrdrth님께도 되돌리기 분쟁을 하지 않도록 주의를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기존에 Lhrdrth님과 사학 분쟁을 벌이던 사용자:Gfsieoor와 패턴이 유사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관인생략 토론·기여 2014년 2월 17일 (월) 22:32 (KST)답변
아니 사용자간의 치열한 토론을 거쳐서 합의된 사항을 마음대로 문서 훼손한 것이 그럼 정당하다는 말씀입니까? 정말로 문서 훼손한 사람은 그대로 놔두면서 저만 문서 훼손이라고 일방적으로 차단하다니 이게 도대체가 말이 됩니까?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는 수차 문서 훼손에 대한 복구를 요청하면서 관리자분들이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관인생략님을 비롯한 그 어떠한 관리자분께도 주의를 받은 적이 없어서 다시 문서 훼손 복구를 해도 된다고 판단해서 다시 시도한 것입니다. 만약 어떤 주의라도 받았다면 신중했겠지요. 그리고 패턴이 유사한 것이 무슨 차단 이유입니까? 그럼 비슷한 주장을 하면 전부 차단 대상입니까?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또한 관리자님의 판단이라면 똑같이 문서 훼손을 했는데 왜 저만 일방적으로 재제를 받습니까? 같이 받았다면 제가 억울하지나 않겠습니다. 이건 너무 불공평한 처사아닙니까?
그리고 제가 그동안 올린 글들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합의된 사항을 일방적으로 삭제한 문서 훼손 복구를 한 것이 도대체 뭐가 잘못되었다는 말씀이십니까? 이 부분에 대해서 구체적인 답변을 정말로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가 차단된 틈을 타서 Xakyntos 사용자는 다시 그동안 합의된 사항을 무시하고 일방적인 편집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저의 재제를 풀어줄 수 없으면 이런 짓을 못하도록 Xakyntos 사용자도 동일한 기간 편집 제한 조치를 해주십시오. 하여간 저만 일방적으로 이런 조치를 하신다면 저는 추후 이 재제에 대한 불공정성을 알리고 그에 대한 책임을 묻도록 할 것입니다.--Lhrdrth (토론) 2014년 2월 17일 (월) 22:50 (KST)답변
그런데 지금 답변 내용을 곰곰히 보니 "굳이 "주류 사학"이라는 주장을 굳이 담아야 할 필요를 못느꼈으며"라고 말씀하신 것이나 저와 Xakyntos 사용자를 구분하지 않고 말씀하시는 걸로 봐서 혹시 저와 Xakyntos 사용자를 착각하여 저를 잘못 차단하신 것이 아니십니까? 그게 아니더라도 Xakyntos 사용자에게 되돌리기 분쟁을 하지 않도록 주의를 드렸다고 하셨는데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해당 사용자는 제가 차단된 틈을 타서 지금 낙랑군, 한사군 문서에 대해서 합의없는 일방적인 편집을 하고 있습니다. 이경우 제가 받은 차단 기간만큼 편집 제한 조치라도 필요한 것 아닙니까? 부디 관리자님의 공정한 조치를 바랍니다.--Lhrdrth (토론) 2014년 2월 18일 (화) 00:35 (KST)답변
1. 치열한 토론이니 뭐니 해봤자 위키백과의 지침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게다가 애초에 토론 자체도 귀하의 다중 계정 딱 한 사람이 온갖 억지를 부려서 성립된 것이었지 제대로 된 토론이 아니었다는 건 위키백과 사용자라면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사용자의 모든 의견을 싹 다 무시하고 아무런 증거도 없이 혼자 강짜를 부려서 변경하게 마든 사항이 대체 어떻게 토론을 거쳐서 합의된 사항입니까? 애초에 그 합의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고, 결국 위키백과는 위키백과:비주류 이론을 지침으로 채택하면서 합의 자체가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지금 현재 귀하 말고 대체 누가 귀하의 훼손이라는 주장에 동의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귀하가 훼손이라는 주장에 대해서 단 한가지라도 제대로된 근거를 들어 보인 것이 있습니까? 국사교과서요? 국사교과서보다 훨씬 더 권위있는 국사편찬위원회는 멀쩡하게 정설로 채택하고 있다는 걸 보여드렸습니다. 전세계 학계가 요하에서 국경이 끝난다구요? 귀하가 삭제하신 다른 언어판 위키백과를 다시 적어 드릴까요? 대체 귀하가 훼손이라 주장하는 근거가 뭡니까? 누가 보아도 귀하의 억지 말고는 없습니다.
2. 관인생략 님께서는 애초에 귀하가 주장하는 형태의 훼손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한 적이 없습니다. 관인생략 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편집분쟁이고, 그 분쟁의 결과 문서 훼손의 수준에 이르렀다는 판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쟁에서 귀하의 잘못이 더 크다고 합니다만? 그런데 어떻게 “또한 관리자님의 판단이라면 똑같이 문서 훼손을 했는데 왜 저만 일방적으로 재제를 받습니까?”이라는 말이 나옵니까? 애초에 훼손 운운은 귀하 혼자의 주장일 뿐이라고 대체 몇 번을 말씀드려야 합니까?
3. 다시 한 번 말씀드리죠. 제 편집이 훼손이라는 것을 확실한 근거를 통해 증명하십시오. 그러면 끝날 간단한 문제입니다. 물론 또 이 글을 되돌리시겠지요. 그럴수록 귀하에게 불리할 뿐입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2월 18일 (화) 10:13 (KST)답변
"귀하의 다중 계정"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다시 한번 되묻겠습니다. 사용자:Gfsieoor다중 계정으로 사용한 사실이 없으신가요? --관인생략 토론·기여 2014년 2월 18일 (화) 11:19 (KST)답변
Xakyntos 사용자가 제가 다중 계정을 사용하여 토론을 했다고 모략하여 일단 그 문제부터 답변드리겠습니다. Gfsieoor 계정은 제가 2010년 토론 당시 처음 만들었던 계정인데 4년여가 지나서 2014년에 다시 위키를 사용하려니 도대체 비밀번호를 찾을 수가 없어서 부득이 지금 이 계정을 다시 만들었습니다. 확인해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러므로 2010년 토론 때는 Gfsieoor 계정, 올해 토론 때는 지금 이 계정만을 가지고 토론했을 뿐 두 계정을 동시에 사용하여 다중 계정으로 토론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Xakyntos 사용자의 주장은 전혀 근거없는 모략입니다. 최근, 자료를 백업해둔 시디에서 Gfsieoor 계정의 비밀번호를 찾아내어 탈퇴하려고 했으나 위키는 아무리봐도 탈퇴 메뉴가 없어서 부득이 2개의 계정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제 저만 이 계정의 차단을 당하고 그틈을 타서 Xakyntos 사용자가 또다시 합의를 무시하고 자의적인 편집으로 문서 훼손을 하는 바람에 이성을 잃고 잠시 Gfsieoor 계정을 사용했다가 해당 계정은 영구 편집 차단을 당한 것입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그외에는 이 두계정을 동시에 사용하여 다중 행위를 한 적이 절대로 없습니다. 그러나 이유가 어쨌든 이경우는 명백한 저의 과오이므로 추가 1주일 차단은 달게 받아들이겠고 이 부분에 대한 재제는 전혀 이의가 없습니다.
그리고 낙랑군 토론 문서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Xakyntos 사용자는 관리자분도 개입하여 여러 사람들이 치열하게 합의하여 토론 한 부분을 아무런 상의없이 혼자만의 독단적 생각으로 마음대로 삭제했습니다. 이것이 문서 훼손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저는 당연히 이런 문서 훼손을 복원하고자 했는데 오히려 제가 문서 훼손 사유로 차단을 당하고 문서 훼손을 한 Xakyntos 사용자는 아무런 재제도 받지않았으니 제가 부당함과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확인해보시면 아시겠지만 제가 차단을 당해서 편집이 불가능한 틈을 타 Xakyntos 사용자는 관리자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독단적인 편집, 되돌림을 다시 자행하고 있습니다. Xakyntos 사용자에 대한 재제가 없다면 도무지 말이 안되는 것입니다.--Lhrdrth (토론) 2014년 2월 18일 (화) 11:55 (KST)답변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하고 계시는군요. 비밀 번호를 잊어버렸다고 하셨는데 차단 후에 어떻게 해당 계정으로 활동하셨나요? 그럼에도 다중 계정을 인정하셨다면 차단 회피로 간주되어 차단이 더 길어질 수 있습니다. 덧붙여서, 예전 Gfsieoor 계정의 기여를 살펴본 결과, 지나친 백:방해 편집이 현재까지 지속됨을 파악하였습니다. --관인생략 토론·기여 2014년 2월 21일 (금) 23:12 (KST)답변
제가 두 계정을 사용하게 된 이유는 위에서 충분히 말씀드렸습니다. 자세히 읽어보시기를 바랍니다.그리고 Gfsieoor은 이미 관리자님에 의해서 무기한 편집 차단이 되었는데 제가 무슨 방해 편집을 하고 있다는 것인지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편집을 못하게 차단된 계정으로 어떻게 편집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자세하게 말씀해주시기를 바랍니다. Gfsieoor 계정은 2014년 2월 17일 (월) 22:32에 관리자님에 의해서 무기한 편집 차단되었고 그 이유가 동일한 날에 편집을 시도하다가 다중 계정 악용으로 적발되었고 그래서 1주일 차단 연장되었으므로 거기에 대한 제재는 이미 받은 상황입니다. 이후로는 편집 차단으로 편집 자체가 불가능 상황인데 어떻게 제가 또 편집을 했다는 것입니까?--Lhrdrth (토론) 2014년 2월 22일 (토) 21:43 (KST)답변
이런 지침도 있었군요. 명백하게 이 사용자에게 해당하는 지침이네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2월 22일 (토) 21:51 (KST)답변
지침이나 잘 읽어보십시오. 그리고 예전 기여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귀하가 예전에 토론:낙랑군에서 저에게 지적받았던 명백한 증거 확인 의무 무시근거 없는 삭제 요구는 명백하게 저 지침이 지적하는 행위에 해당합니다. 누가 봐도 경고감인데요?--Xakyntos (토론) 2014년 2월 22일 (토) 21:53 (KST)답변
"비밀 번호를 잊어버렸다고 하셨는데 차단 후에 어떻게 해당 계정으로 활동하셨나요?"라는 관리자님의 말씀은 도저히 무슨 말씀이신지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Gfsieoor 계정은 2014년 2월 17일 (월) 22:32에 차단된 것 말고는 예전에 차단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증거 확인 의무 무시와 근거 없는 삭제 요구를 하지않았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그당시에 이미 제재를 받았겠지요. 만약 여기서 다시 추가 제재가 이뤄진다면 저는 할 수 없이 다른 관리자분께 이메일로 차단 재심의 요청을 할 수 밖에 없음을 밝혀드립니다.--Lhrdrth (토론) 2014년 2월 22일 (토) 22:02 (KST)답변
토론:낙랑군#2만 봐도 귀하의 증거 확인 의무 무시는 명백합니다만? 제가 셀수도 없이 근거가 제시된 출처를 제공했는데, 귀하는 제 말은 전혀 듣지 않고 계속 증거가 없다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저는 저때 일부러 계속 귀하의 증거 요구와 저의 증거 제시 상황을 누적해서 한방에 귀하를 차단시켜 버리려고 하던 참이었는데, 마침 비나리 님께서 개입하시는 바람에 흐지부지되었죠.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시는게 나을 겁니다. 뭐, 이번에는 성공했으니 저한테는 다행입니다만.--Xakyntos (토론) 2014년 2월 22일 (토) 22:16 (KST)답변
그건 귀하의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이므로 제가 무슨 입장을 표명할 사항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Lhrdrth (토론) 2014년 2월 22일 (토) 22:23 (KST)답변

지금 관인생략 관리자의 계속되는 행동은 저로서는 도무지 납득이 가지않습니다. 일단 예전부터, 올린 글이 제가 올린 것인지 Xakyntos 사용자가 올린 것인지의 가장 기본적인 사항조차 구분도 못하면서 엉뚱한 질문을 계속 하고 있고 귀하가 이번에 되물은 비밀 번호 문제도 마찬가지 범주입니다. 제가 앞서서 철저하게 해명을 하지않았습니까? 관리자시라면 글 내용을 신중히 파악하시는 것은 기본 아니겠습니까? 자 다시 한번 정리해드리죠.

1. Gfsieoor 계정은 제가 2010년 토론 당시 처음 만들었던 계정인데 4년여가 지나서 2014년에 다시 위키를 사용하려니 도대체 비밀번호를 찾을 수가 없어서 부득이 지금 이 계정을 다시 만들었다.

2. 그러므로 2010년 토론 때는 Gfsieoor 계정, 올해 토론 때는 지금 이 계정만을 가지고 토론했을 뿐 두 계정을 동시에 사용하여 다중 계정으로 토론한 적이 없다.

3. 최근, 자료를 백업해둔 시디에서 Gfsieoor 계정의 비밀번호를 찾아내어 탈퇴하려고 했으나 위키는 아무리봐도 탈퇴 메뉴가 없어서 부득이 2개의 계정을 가지고 있었는데 저만 이 계정의 차단을 당하고 그틈을 타서 Xakyntos 사용자가 또다시 합의를 무시하고 자의적인 편집으로 문서 훼손을 하는 바람에 이성을 잃고 잠시 Gfsieoor 계정을 사용했다가 해당 계정은 영구 편집 차단을 당했다.

자, 귀하의 질문에 이렇게 다시한번 정리해드렸습니다. 이랬는데도 이해를 못하신다면 저로서는 더이상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다중 계정을 악용한 사실때문에 귀하로부터 이미 추가 1주일 차단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이 계정이나 Gfsieoor 계정 모두 지금 차단 상태라 활동할래야 활동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인데 무슨 방해 편집을 했다고 추가 차단 경고를 하는 것입니까? 그러니까 무려 4년전에 있었던 아무런 제재도 받지않았던 시절의 활동을 귀하 마음대로 방해 편집으로 문제 삼아서 추가 차단하겠다는 것입니까? 이게 도대체 말이나 됩니까? 이건 분명히 관리자의 권한 남용 행위입니다. 그리고 자꾸 저의 편집만 문서 훼손, 방해 편집으로 일방적으로 간주하는데 도대체 그 이유가 뭡니까? 안그래도 지금 저만 일방적으로 부당하게 제재를 받은 것 같아서 억울하기 그지없는데 계속 이러니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저는 더이상의 추가적인 제재를 당할 행동 자체를 할 수도 없었고 따라서 더이상 제재를 받을 이유 그자체가 없으므로 만약 귀하가 다시 추가 제재를 한다면 다른 관리자에게 차단 재심의 요청을 하는 등 제가 사용자로서 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여 대처하겠습니다. 만약 그 요청이 무시된다면 이런 불공정한 처사가 계속되는 곳에서는 더이상 활동을 하라고 해도 할 마음이 전혀 없으므로 저로서는 미련도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관인생략 관리자의 이런 일련의 행동을 보고 과연 관리자로서의 자질을 제대로 가지고 있고 공정한 관리를 할 능력이 있는지 심히 의심되는 상황이므로 차단이 풀리는대로 귀하의 대한 관리자 권한 회수 요청 등의 의견을 내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여러 사용자로부터 관리자로서 부적절함을 지적받아 관리자 권한 회수 선거까지 치른 전례도 있으시네요.

다시한번 부탁드리지만 관리자시라면 가장 기본적인 사항인 사용자 구분, 글 내용의 파악부터 좀 제데로 해주시고 나아가 한쪽에 치우치지않은 공정한 관리를 부탁하는 바입니다.--Lhrdrth (토론) 2014년 2월 23일 (일) 00:56 (KST)답변

그리고 관인생략 관리자님께서는 제가 이 요청에서 누누히 되물은 Xakyntos 사용자를 제재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왜 더이상의 답변이 없으십니까? 분명히 저의 잘못이 더크다고 판단했다고 하셔서 Xakyntos 사용자도 잘못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다면 제가 1주일 차단이라면 해당 사용자도 다만 며칠간의 차단 처분이 있어야 하지않습니까?
그리고 맨 밑의 추가 요청인 사실을 왜곡하여 부당하게 저를 계속 모략하는 Xakyntos 사용자에 대한 차단 조치를 드린 사항에 대해서도 왜 아무런 답변이 없으십니까? 사용자가 나름대로 억울하고 이유가 있어서 관리자에게 요청을 했다면 이에 대해서 뭐라도 가타부타 답변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 아닙니까?--Lhrdrth (토론) 2014년 2월 23일 (일) 01:31 (KST)답변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문서 훼손을 한 당사자인 Xakyntos 사용자의 무문별한 되돌림, 반달 행위에는 아무런 재제도 없으면서 문서 훼손을 복원하려는 저의 되돌림 편집은 무조건 문서 훼손으로 규정하여 저만 차단을 한 관인생략 관리자님의 현재까지의 처분에는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어째서 저만 일방적으로 불법으로 규정하셔서 재제를 가하십니까? 만약 이대로 저만 재제를 받는 상황으로 끝이 난다면 저는 너무도 억울하고 부당한 처사라고 생각되므로 제 차단이 풀리는대로 이 문제에 대해서 공론화를 시키고 관리자님의 문제에 대해서 책임을 묻도록 할 것입니다. 위키 백과의 발전을 위해서도 관리자의 이런 일방적인 처사는 분명히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만 보니 저와 Xakyntos 사용자의 글을 구분 못하시는 것 같은데 이 부분도 매우 당황스럽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2월 18일 (화) 12:55 (KST)답변

반대 자신에 대한 합리적인 반박을 일방적으로 삭제하면서 토론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차단 사유입니다. 또 다시 이 글을 삭제할 시에는 차단 연장을 요청하겠습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2월 18일 (화) 18:16 (KST)답변
Xakyntos 사용자는 이번 조치 외에도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제가 차단을 당해서 편집이 불가능한 틈을 타 관리자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독단적인 편집, 되돌림을 다시 자행하고 있고 이 요청 문서에서만도 "토론 자체도 귀하의 다중 계정 딱 한 사람이 온갖 억지를 부려서 성립된 것이었지 제대로 된 토론이 아니었다는 건 위키백과 사용자라면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사용자의 모든 의견을 싹 다 무시하고 아무런 증거도 없이 혼자 강짜를 부려서 변경하게 마든 사항이 대체 어떻게 토론을 거쳐서 합의된 사항입니까?"라고 전혀 근거없는 모략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해당 토론에서 다중 계정을 사용한 적이 전혀 없으며 낙랑군 토론 문서의 "아무런 근거없는 일방적 위치 비정 삭제 요청", "낙랑군 위치 비정에 대한 주류 사학계의 의견"에서 보시면 아시겠지만 해당 토론은 Erio-h님 등 관리자님의 개입하여 그야말로 여러 사용자가 치열한 토론끝에 합의한 것입니다. 사실을 왜곡하여 부당하게 저를 계속 모략하는 Xakyntos 사용자에 대해서 사용자 관리 신청에서 차단 요청을 하고 싶지만 지금 편집 제한 기간이라 부득이 여기서 이 요청을 보시는 관리자분들께 차단 요청드립니다. 제가 차단을 당한 틈을 타서 계속 이러는데 정말 참기 힘듭니다.--Lhrdrth (토론) 2014년 2월 18일 (화) 19:38 (KST)답변

차단기간이 종료되어 재검토 틀을 뗍니다. --관인생략 토론·기여 2014년 3월 16일 (일) 20:43 (KST)답변

지도 수정 요청[편집]

낙랑군 위치에 관한 여러 주장

위 지도의 대동강유역설의 설명에 남한 학계 통설이라는 문구가 있는데, 이 문구가 틀렸음은 이미 제가 수차례 증거를 들어 밝힌 바 있습니다. 국제 학계 통설이라 고쳐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을 시에는 문서에 노출될 수 없습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3월 7일 (금) 14:39 (KST)답변

토론:낙랑군에서 논의하십시다.--Lhrdrth (토론) 2014년 3월 7일 (금) 15:19 (KST)답변

'국제 역사 학계'가 존재하기나 합니까? 여러 번 찾아봐도 결과는 나오지 않았습니다.--182.212.6.95 (토론) 2014년 5월 26일 (월) 01:10 (KST)답변

이유립윤내현 문서에서의 이중잣대[편집]

귀하가 윤내현 문서에서 제가 한 편집을 재수정 할 때와 이유립 문서를 수정할 때의 표현 수위에 대한 기준이 이렇게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학계의 검토조차 받지 못한 김상태의 서적을 근거로 한 내용을 일각이라 표현한 것은 삭제하면서, 철저하게 학계의 논의에 입각한 이문영의 서적을 근거로 한 내용에는 일각이라 표현하고 있다는 것, 참 우스운 이중잣대 아닙니까? 둘 중 하나를 선택하십시오. 김상태의 서적을 일각으로 표현하던가, 아니면 둘 다 일각이라는 표현을 하지 말던가 말이죠.

ps. 사실 이것도 제가 크게 양보한 것입니다만. 위키백과의 대원칙에서 명명백백하게 경계해야 할 것으로 명시하고 있는 지지자들이 그들을 침묵하게 하려는 음모가 있다고 주장하는 경우에 해당하는 김상태의 음모론을 다른 정당한 근거와 동급으로 취급하도록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귀하는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 겁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3월 25일 (화) 14:26 (KST)답변

그럼 둘다 일각이라고 합시다. 그리고 귀하는 이유립 문서에서 이문영의 일방적인 주장을 가지고 "주장도 있다"라고 하면서 왜 김상태님의 주장은 "주장하기도 한다."라고 합니까? 이는 전혀 중립에 맞지 않으므로 '주장도 있다"라고 수정합니다. 그리고 제가 귀하에게 감사해야 할 일은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또 이문영의 주장이 무슨 철저하게 학계의 논의에 입각했습니까? 이글루스에서 자기와 한통속인 자들과 불순한 목적으로 담합한, 근거도 없는 모략에 불과한데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이러한 저질 선동을 위키백과에 취급하도록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귀하는 감사하게 생각하십시오.--Lhrdrth (토론) 2014년 3월 25일 (화) 14:50 (KST)답변

낙랑군 위치 논란에 대한 주류 학계의 반론[편집]

1. 해마다 수도 없이 재생산되는 소수설에 대해서 주류 학계 차원에서 하나 하나 논박이 없다고 해서 주류 학계가 반박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판단일 것입니다. 이미 아래에서 서술했다시피, 진화론은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창조설의 무가치한 주장을 일일히 반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정상적인 사고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진화론 측의 무대응이 창조설에 대한 패배의 인정이라 판단하지 않을 것입니다.

2. 마찬가지로 특정한 경향을 띈 주장에 대해 대승적, 원론적 차원에서 주류 학계의 논박이 있었을 경우, 이는 논박의 시기와 무관하게 주류 학계의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충분한 생명력을 가집니다. 이에 대해 최신의 주장을 직접적으로 반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존의 원론적인 차원의 반박을 삭제하는 행위는 엄연한 중립성 위반이며 반달 및 방해편집에 해당합니다. 주의하여 주십시오.--Xakyntos (토론) 2014년 3월 25일 (화) 22:53 (KST)답변

이 논쟁은 낙랑군 토론 문서에서 하는 것이 올바를 것 같아서 낙랑군 토론 문서로 옮기겠습니다. 동의하시리라 믿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3월 26일 (수) 12:00 (KST)답변

아래 두글에서 3자의견을 받고 있습니다. 참여부탁합니다.[편집]

고조선과 관련하여[편집]

안녕하세요,

서강대 사학과 이종욱 교수는 “중국이 고조선 건국 장소인 중국 요동지역 청동기 도입 시기를 앞당기고 있는데 한반도 청동기 도입 시기를 앞당기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또 “단군조선 초기 역사 형성 시기는 기원전 12세기다. 신화를 역사적인 시각으로 전환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위 내용은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70224001006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고조선에서 수정하신 내용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서울신문의 출처가 있는데 수정하심으로 인하여 차단당한 Xakyntos 사용자의 차단 기간이 끝나고 소모적인 논쟁에 돌입할 여지를 배제할 수 없어서 혹시 알고 계시는지 말씀드렸습니다.

두 번째로, 저는 고조선]]의 초기 부분에서 아래와 같은 내용을 추가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자문을 구하고 싶습니다. 이를 분명 학계의 정설에 위배된다고 매도할 수 있겠지만, 이러한 다양한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추가하고 싶지만 앞으로 있을 일이 정말 기대가 되는군요. http://blog.naver.com/hankwu/90086620858

[김정배 교수는 위와 같은 전통시대의 사학자였던 당나라 시대의 유지기(劉知幾, 661~721)나 유협(劉勰, 466~520)과 같은 학자들이 위략을 혹평했다는 것을 근거로 연나라 침공 기사에 대해 부정하는 견해를 내놓은 바 있습니다.] 좋은 하루 되시기를 빕니다.--182.212.6.95 (토론) 2014년 6월 27일 (금) 06:19 (KST)답변

출처가 있다고 해도 이종욱 교수 한명의 주장으로 전체 사학계가 12세기를 고조선의 건국 연도로 본다고 편집한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제가 수정한 것은 2007년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의 내용에 입각한 것이이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으므로 차후 소모적인 논쟁이 발생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두 번째로 물어봐주신 문제는 해당 블로그를 출처로 하시면 신뢰성 있는 출처의 원칙에 어긋나서 안될 것 같습니다. 블로그 글은 위키에서는 출처로 사용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판단됩니다. 따라서 김정배 교수의 주장을 출처로 하시면 될 것입니다. 신뢰할 수 있는 출처가 있다면 당연히 그런 주장은 추가해도 됩니다. 좋은 의견 감사드리며 앞으로 위키 백과에 많은 기여해주시기를 바랍니다.--Lhrdrth (토론) 2014년 6월 27일 (금) 14:38 (KST)답변

안녕하세요, 갑자기 한 생각이 나서 혹시 실현 가능할련지 질문 드리려고 합니다. 먼저 Xakyntos 사용자의 '한국 위키백과가 아닌 한국어 위키백과' 발언이 뇌리를 스쳤습니다. 이곳은 한국어 위키백과인데, 또 주류 사학계의 주장에 따르면 낙랑군의 위치는 북한입니다. 또 고구려의 수도 평양도 북한에 위치합니다, 물론 주류사학계의 의견을 따르자면 말입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런 사안에 대해서는 실제 낙랑군과 평양성이 위치한 북한의 역사학계의 '주장'이 우선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남한과 북한은 하나였고, 하나여야 하지만 지금은 낙랑군이 위치하지 않은 남한 역사학계의 주장이 실제 낙랑군이 위치한 북한의 주장보다 우선권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생각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따라서 남한 역사학계의 주장이 비주류 이론이 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떠한 견해를 가지고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이곳은 한국어 위키백과이고, 제가 말씀드린 것은 Xakyntos 사용자가 만리장성에서 말한 것과 같은 논리입니다. 제 취지를 파악하셨으리라 믿습니다. 좋은 밤 되십시오.--182.212.6.95 (토론) 2014년 7월 1일 (화) 23:49 (KST)답변

Xakyntos 사용자의 해당 발언은 중국 측의 아무런 근거없는, 평양 유역까지 만리장성을 표시한 지도를 수록하려고 무리한 주장을 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제 생각은 위키백과는 한국의 의견만 수록하는 백과사전이 아니라고 한 것은 틀린 것은 아니지만 한국 위키백과는 특성상 한국 측의 의견이 더 강조되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북한 사학계의 주장을 주류로 해서 낙랑군 문서를 편집하는 것은 힘들지않나 생각됩니다. 물론 저는 낙랑군이 평양 유역에 없었다는 입장이지만 어쨌거나 우리나라 주류 사학계라는 곳이 낙랑군을 평양 유역이라고 주장하며 이것이 아직도 다수설이라는 엄연한 현실을 볼때 불가피하게 한국 위키백과에서는 낙랑군 평양설을 주류 이론으로 취급하지않을 수 없다고 생각됩니다. 답변이 되었다면 좋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Lhrdrth (토론) 2014년 7월 2일 (수) 13:49 (KST)답변

반스타[편집]

도우미 반스타
신규 사용자인 사:Aubelumiere 님에게 IP 대신 계정명을 사용하도록 친절히 안내하여 백:차단을 당하지 않도록 도움을 주신 사:Lhrdrth 님에게 이 반스타를 드립니다. -- -- 아사달(Asadal) (토론) 2014년 7월 20일 (일) 14:53 (KST)답변
감사합니다. Asadal님의 하시는 일 모두 다 잘되시고 항상 건강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7월 20일 (일) 16:34 (KST)답변

낙랑군, 고조선 문서[편집]

1. 위키백과:비주류 이론#비주류 이론의 부적절한 부각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저명하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그 학설이 제시된 단체가 아닌 다른 단체에서 그 학설에 대해 논평하거나 토론하거나 부정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학설은 위키백과에 실릴 수 있을 만큼 저명하지 못한 것입니다.” 엄밀히 말해 북한 학계의 학설을 제외하면 낙랑군에서 제기된 논란 운운하는 것들은 저명성조차 부족합니다. 학계에서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는 것들에 불과하니까요. 일개 신문 기사 따위로 주류 학설을 대체하기라도 한듯한 서술은 엄연히 위키백과의 지침 위반입니다. 이에 대한 해명 없이 되돌릴 시에는 반달 행위로 제제를 요청하겠습니다.

최광식 고려대 교수(한국사학)는 “한반도의 청동기 시대는 아무리 올려 잡아도 기원전 13세기”라며 “학계에서 검증되지 않은 내용을 국정 교과서에 무리하게 담았다”고 말했다. 송호정 한국교원대 교수(역사교육)는 “기원전 2333년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했다고 확정지을 수 없다”며 “사료에 바탕해 엄밀해야 써야 할 교과서를 이렇게 서술하는 것은 큰 문제”라고 말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는 한 고고학 교수도 “청동기의 본격화는 기원전 1000년께로 보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한겨레 신문 기사 중

2. 고조선 문서 역시 마찬가지로, “삼국유사와 동국통감에 따르면”이라는 단서를 붙이고 있는 것을 단정하였다라고 서술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해당 교과서의 서술에 대해서 학계의 수많은 비판이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런 해석은 옳지 않습니다. 해당 내용이 단정에 해당한다는 근거를 제시하십시오.--Xakyntos (토론) 2014년 7월 24일 (목) 14:09 (KST)답변

1번에 관해서 해당 내용은 논란 부분에만 수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Xakyntos 사용자의 반복적인 편집 되돌리기(심지어 문제삼지 않은 부분도 되돌림)는 엄연히 반달 행위이며 제재 사항입니다. 단적인 예로 전후 관계를 제대로 파악해 보지 않은 채 저명하지 않다는 결론을 비약적으로 내려버리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당서』를 상고해보면, 안시성은 평양의 거리가 5백 리요, 봉황성은 왕검성(王儉城)이라고도 하였고,『지지地志』에는 봉황성을 평양이라 하기도 한다고 하였으니, 이는 무엇으로 이름한 것인지 모르겠다. 또『지지』에 옛날 안시성을 개평현(蓋平縣)의 동북쪽 70리에 있다고 하였는데, 대체로 개평현에서 동으로 수암하(秀巖河)까지가 3백 리이고, 수암하에서 다시 동으로 2백 리를 가면 봉황성이다. 그러니 만일 이 성을 옛 평양이라고 한다면『당서』에 이른바 5백 리라는 말과 서로 부합된다(『열하일기』)."

지지, 열하일기의 도강록에 이어 조선상고사. 또 윤내현의 고조선 연구. 수록되지 못할 논리적인 이유가 있나요? --Aubelumiere (토론) 2014년 7월 24일 (목) 16:15 (KST)답변
해당 내용들은 엄연히 비주류 이론이고, 그러한 비주류 이론은 주류 이론과 저명성에 따른 비중의 차등을 둘 것을 위키백과는 지침을 통해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소수 견해가 아무리 많아도 그 하나 하나를 모두 서술할 가치가 없으며, 소수 견해가 표방하고 있는 핵심 내용만 서술하고 나머지는 출처를 통해 제시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즉, 박지원, 신채호, 윤내현 등의 주장은 낙랑군이 한반도에 없고 요동 또는 요서에 있었다는 주장이 있다는 문장으로 모두 끝납니다. 정확히 요서 어디에 있었는지, 요서에 있다는 주장의 근거가 무엇인지를 모두 서술하는 것은 소수설을 과도하게 부각함으로써 정설을 약화시키는 비중립적인 내용에 해당합니다. 위키백과:비주류 이론#비주류 이론의 부적절한 부각이라도 제발 읽어보십시오. 위키백과:중립적 시각#비중의 이 한 문장으로 끝나는 문제입니다. --Xakyntos (토론) 2014년 7월 24일 (목) 17:00 (KST)답변
문서의 구성이나 설명에서 소수 의견이 다수 의견보다 두드러져서는 안 됩니다.
"낙랑군의 위치 및 성격에 대한 논란"은 낙랑군에 대한 논란을 다루라고 편성된 섹션입니다. 이 섹션에 저는 합당한 출처로 합당한 내용을 추가했습니다. 따라서 Xakyntos 귀하의 비주류 부각주장은 전혀 성립되지 않습니다.
또한 국사 교과서에서 건국 연대 뿐만 아니라 "삼국유사와 동국통감에 따르면'이라는 정확한 출처까지 제시하면서 기존의 "건국하였다고 한다"를 "건국하였다(기원전 2333)"로 수정한 것은 명백한 단정입니다. 그리고 국사 교과서의 내용을 언급하는데 다른 학자들의 반대 주장이 사용될 근거는 없습니다. 출처로서 명백히 해당 편집이 근거가 있음을 밝혔으니 고조선 문서에서 직접 확인하십시오.
편집 요약에도 밝혔고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기존의 편집 내용에 분쟁이 있다면 일단 토론을 하고 그 토론의 합의결과에 따라서 편집을 해야합니다. 토론이 끝나지않았는데도 일방적으로 되돌리는 것은 명백한 제재 사유입니다. 계속 토론의 합의없이 일방적으로 문서 편집을 하거나 되돌린다면 협업정신 위반, 문서훼손 등의 사유로 차단 요청을 할 것임을 명백히 밝힙니다.--Lhrdrth (토론) 2014년 7월 24일 (목) 20:40 (KST)답변

제가 보기에는 해당 내용은 문서의 하단인 논란을 수록하라고 편성된 부분에만 있으므로 '문서의 구성이나 설명에서 소수 의견이 다수 의견보다 두드러져서는 안 됩니다.'라는 위키백과의 지침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논란이 있으니 환단고기#진위 논란 등의 선례와 같이 수록해야 하는 것은 어떠십니까?. 물론 Xakyntos 사용자의 논리대로라면 이는 짧은 언급으로 대체되어 나머지 부분이 삭제되어야 하지만 말입니다..--Aubelumiere (토론) 2014년 7월 25일 (금) 01:33 (KST)답변

1. 《환단고기》는 학계에서 진서인지 위서인지를 실제로 판명한 다양한 논문이 제출된 바 있습니다. 그리고 그 논문이나 저서들은 소위 진서론의 주장들을 하나하나 직접 언급하며 반박한 것들도 있으며, 바로 그렇기에 위에 인용된 저명성 기준에 부합됩니다. 주장한 단체가 아닌 다른 단체에서 직접 논박한 사실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낙랑군 요서설은? 복기대, 김종서, 이덕일 등의 주장은 학계에서 아예 취급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학계에서 언급이라도 되는 주장은 북한과 윤내현 정도일 뿐이죠. 해당 내용들을 하나하나 일일히 싣고 싶으시면 두 분께서 직접 주장한 단체가 아닌 다른 단체에서 논평하거나 토론하거나 부정한 사실을 찾아 오십시오. 엄밀히 말해서 북한과 윤내현을 제외하면 모두 삭제되어도 위키백과의 원칙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것들입니다.
2. 덧붙여 사용자토론:Xakyntos#낙랑군 문서 역도원 부분의 귀하의 편집의 문제점에서 이미 언급했습니다만, Lhrdrth 사용자가 아무런 근거도 없이 삭제한 내용을 지금 계속 삭제하는 것부터가 엄연한 반달행위입니다. 저는 적어도 두 분의 편집에 대해 비중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편집했을 지언정 최소한 아무 근거 없이 무조건 삭제는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Lhrdrth 사용자는 해당 내용에 대한 명확한 해명이 있고 문제가 된 사항에 대해 모두 수정한 것임에도 이를 아무 근거 없이 무조건 삭제했고, 지금도 삭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누가 반달 행위를 하고 있는 겁니까? 다시 이를 되돌릴 시에는 차단을 요청할 것입니다. 주의하십시오.
3. 국사교과서의 표현이 단정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권한은 위키백과 편집자에게 없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신문기사에 적힌 표현 그대로 서술하였습니다. 조금 더 확정적으로 서술했다는 문장은 신문기사 그대로입니다. 물론 해당 내용이 어떻게 수정된 것인지도 모두 신문 기사에 따라 첨부했습니다. Lhrdrth 사용자 혼자만의 생각으로 단정이라 주장하는 것이 옳습니까? 아니면 신문기사에 적힌 내용을 옮긴 것이 옳습니까? 고조선 문서에서 두 분이 하는 되돌림은 빼도박도 못하는 반달 행위입니다. 이에 대한 명확한 해명과 토론을 거치지 않고 되돌릴 시에는 문서 보호와 함께 차단을 요청할 것입니다. 주의하십시오.--Xakyntos (토론) 2014년 7월 25일 (금) 10:43 (KST)답변
Xakyntos 사용자는 "낙랑군의 위치 및 성격에 대한 논란"은 낙랑군에 대한 논란을 다루라고 편성된 섹션에 합당한 출처로 합당한 내용을 추가한 것을 자꾸의 비주류 부각주장이라고 하시는데 낙랑군에 대한 논란을 다루라고 한 부분에 그에 대한 내용을 추가한 것이 뭐가 비주류 부각입니까? 자꾸 이러시면 이것은 명백한 위키백과:중립적_시각 위반입니다.
그리고 Xakyntos 귀하의 역도원 편집 문제점은 제가 이미 사용자토론:Xakyntos#낙랑군 문서 역도원 부분의 귀하의 편집의 문제점 여기서 철저히 지적했습니다. 귀하도 반론이 없었습니다. 그외에 역도원의 주장은 위만조선 수도=고구려 장수왕 시절 평양이라는 근거없는 출처에 의한 역도원의 명백히 잘못된 오류이고 이런 정도의 주장을 일일히 수록한다면 저도 끝도 없이 수록할 수 있습니다. 애초에 귀하가 역도원 주장을 실은 이유가 고구려 사신이 스스로 위만조선 수도=고구려 장수왕 시절 평양이라고 말했다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제가 이미 그부분은 사실이 아님을 밝혔기 때문에 실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귀하는 역도원의 이런 주장을 "낙랑군 위치에 대한 후세의 최초 언급"이라고 하시는데 그 근거가 도대체 뭡니까? 귀하가 그 수많은 사서의 내용을 일일히 확인이라도 하셨습니까? 이부분도 근거가 없고 이정도면 왜 역도원 주장이 실려서는 안되는지 납득을 하셨으리라 봅니다.
그리고 국사 교과서 고조선 건국 시기 문제는 저혼자 판단한 것이 아니고 객관적인 자료로 서술한 것이고 이부분은 이미 앞서서 말씀드렸고 고조선 문서에서 이미 명백한 출처와 근거를 제시한 부분입니다. 더이상의 이해가 안되는 반론을 삼가하시기 바랍니다.--Lhrdrth (토론) 2014년 7월 25일 (금) 13:19 (KST)답변
1에 대해서,

The neutral point of view policy requires that all majority and significant-minority positions be included in an article. However, it also requires that they not be given undue weight. A conjecture that has not received critical review from the scientific community or that has been rejected may be included in an article about a scientific subject only if other high-quality reliable sources discuss it as an alternative position. Ideas supported only by a tiny minority may be explained in articles devoted to those ideas if they are notable.

라는 한국어 위키백과에서 한국어로 번역된 영문판 위키백과의 지침이 있더군요. 해석해 보면 아시겠지만, 답이 나옵니다. 반박해 보십시오.
2,3 에 대해서 견해 차가 생기는 것은 수많은 토론을 거친 후에 서로 협의한 다음 수정하는 것이 옳습니다. 토론을 거치라고 거듭 말씀드렸습니다만 Xakyntos 사용자 혼자서 독단적인 편집을 반복해서 강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명백한 협업 정신 위반이지요. 거듭 말씀드리는데, 토론을 거친 후 편집하세요. 그리고 사람이 말을 하면 좀 제대로 보시기 바랍니다.--Aubelumiere (토론) 2014년 7월 25일 (금) 14:04 (KST)답변
Aubelumiere님의 말씀에 적극 동의합니다. Xakyntos 사용자가 자꾸 편집 분쟁으로 몰고가서 저나 Aubelumiere님께서는 "토론을 하고 그 결과에 따라 편집하자"는 지극히 정상적인 중재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Xakyntos 사용자는 계속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일방적인 편집을 강행하고 있는데 이는 분명히 협업 정신 위반과 문서 훼손으로 명백한 제재 사유입니다. 만약 해당 사용자가 한번만 더 이런 권고를 무시하고 일방적인 편집을 강행할 경우에는 즉시 차단 요청에 들어가겠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7월 25일 (금) 14:14 (KST)답변
1. 논란을 다루라고 편성된 섹션이면 저명성에 상관 없이 아무 주장이나 다 실어야 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소제목이 무엇이든 위키백과는 엄정한 출처와 저명성을 요구합니다. 진화론에 대한 논란을 다루는 소제목 하에서 과연 창조설을 논란이라고 쓰는 경우가 있을까요? 그런 일은 절대 없습니다. 진화론에 대한 논란은 정식으로 과학계에서 제기되고 검토된 다양한 견해들, 예를 들어 단속평형설이나 점진론 같은 것들을 말합니다. 창조설은 논란의 대상조차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정식으로 역사학계에서 논의의 대상이 되는 견해가 아닌, 일개 재야사학자들의 주장이나 저서는 엄연히 논란의 대상 자체가 아닙니다. 이를 논란에 해당한다고 실어놓고 있는 현 상황부터가 웃기는 일입니다. 그나마 저런 말도 안되는 주장들을 소수설이라고 존중해서 이 정도라도 실어놓고 있는 겁니다. 두 분의 주장은 피라미드 문서에 피라미드를 외계인이 건설했다는 주장을 하나 하나 논증까지 하면서 실어야 한다는 것과 전혀 차이가 없습니다.
2. 영문판 위키백과의 지침은 참고사항은 될지언정 한국어 위키백과의 지침은 아닙니다. 물론 귀하가 인용한 내용도 한글판과 전혀 차이가 없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아니, 오히려 영문판보다 더 상세하게 저명성(notable)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영문판은 “저명할 때만 실릴 수 있다(may be explained in articles devoted to those ideas if they are notable.)”는 문장으로 끝나고 있지만, 한글판은 그보다 더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답이 나오긴 커녕, 전혀 엉뚱한 내용을 가져오셨습니다.
3. 국사교과서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 어디에 단정했다고 서술되어 있는지 그 출처부터 제시하시지요. 귀하 혼자 단정했다라고 주장하고 있을 뿐, 어디에도 단정했다는 표현이나 그렇게 해석할 내용은 없습니다. 게다가 귀하가 단정인지 아닌지를 가지고 분쟁을 일으킬 수 있기에 저는 적어도 신문기사 상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된 문장, “조금 더 확정적으로 서술했다”는 문장으로 편집했습니다. 그런데도 귀하는 이를 전혀 신경도 안쓰고 무조건 되돌리더군요. 이게 반달 행위가 아니면 무엇입니까?
4. “그외에 역도원의 주장은 위만조선 수도=고구려 장수왕 시절 평양이라는 근거없는 출처에 의한 역도원의 명백히 잘못된 오류”라는 학계 전반의 동의가 있는 출처를 가져오십시오. 저 말이 오류라는 귀하의 주장이야말로 빼도박도 못하는 오류라는 것은 귀하가 지금 붙잡고 있는 국사교과서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위만조선의 수도가 고구려의 수도 평양(현재의 평양)이라는 것은 귀하와 같은 소수설 추종자를 제외하면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 명명백백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최소한 귀하 본인도 그것이 주류 학설이라는 것은 알고 있을텐데요. 이를 오류라고 주장하는 귀하의 행동은 명백한 거짓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엄연한 위키백과 지침 위반입니다만.--Xakyntos (토론) 2014년 7월 25일 (금) 18:14 (KST)답변
Xakyntos 귀하의 추가 질문에 대한 답변은 지금 시간이 없어서 차후에 곧 달기로 하고 한가지 여쭙겠는데 고조선 문서의 "2014년 6월 4일"판에서 편집 요약에 귀하는 "경고합니다. 토론을 거친 후에 편집하십시오."라고 하셨던데 왜 그렇게 말씀하신 본인은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토론을 안하시고 일방적으로 되돌리셔서 결국 문서들이 보호조치되는 상황까지 야기하셨는지 궁금합니다.--Lhrdrth (토론) 2014년 7월 25일 (금) 18:57 (KST)답변
1. 위키백과에서 요구하는 저명성을 만족합니다. 일개 재야사학자 뿐만 아니라 민족사학자, 심지어 북한에서도 이러한 주장을 하지요. 그런데 어쩌죠? 한사군의 위치를 중국의 요동지역으로 비정하는 견해도 있으나:민족문화대백과 논란이 있는데요? 논란 자체가 없으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아예 기록되지도 않았습니다. 따라서 근거 없는 주장은 삼가세요. 창조론과 진화론을 포함해 관련 없는 주제를 일일이 열거하여 교묘하게 이번 토론과 짜 맟추려하는 허수아비 논법도 그만하세요. 잘못된 비유입니다만. 말도 안되는 주장이라는 것도 귀하의 독단적인 견해에 불과합니다. 귀하만의 독단적인 판단일 뿐이죠.
2. notable 은 저명성을 뜻하는 명사가 아니라 '저명한'을 뜻하는 형용사입니다. 네이버 영어 사전에 그대로 언급되어 있죠. 과연 내용을 제대로 읽어보셨는지 의문이군요. 영문판과 한글판의 내용이 같다고 주장하셨나요? 조금씩 다릅니다만.
그리고 전체적으로, 주류설과 소수설에 대하여 왈가왈부 하기 위해서 토론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주장이 있다고 공신력 있는 출처와 더불어 표기하는 것이 위키백과의 편집에서 해야할 일이지요. 그것에 대하여 토론을 거쳐 알맞게 편집해야 하므로 귀하의 판단은 무의미합니다.--Aubelumiere (토론) 2014년 7월 25일 (금) 18:44 (KST)답변

마지막으로,

  • A conjecture that has not received critical review from the scientific community or that has been rejected may be included in an article about a scientific subject only if other high-quality reliable sources discuss it as an alternative position.

뭐 해당 내용에 대해서 언급하셨으니 이 부분도 해석하셨겠지요. {때, 이유, 원인, 조건, 양보 결과 등}의 기법을 가지는 무생물 주어 구문이네요. 뜻이 무엇인가요? --Aubelumiere (토론) 2014년 7월 25일 (금) 18:54 (KST)답변

1. 그 견해가 북한과 윤내현의 견해입니다만. 학계에서 논평이라도 하고 있는 북한과 윤내현의 견해 말고, 이덕일, 복기대, 김종서 등의 다른 견해들에 대해 위에 인용된 저명성 기준에 맞는 출처를 가져오십시오. 물론 그러한 논평이 있다고 해도 사회적 저명성에 따른 비중의 차등을 두어야 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저런 소수설들의 주장의 모든 내용이 실린다면, 이것이야말로 주류 학설을 약화시키는 비중립적인 편집임은 명백합니다. 해당 주장들의 핵심은 모두 낙랑군은 요동 또는 요서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 이외의 내용은 해당 주장들을 강화하기 위한 논거일 뿐입니다. 저 같은 일개 학사에게도 헛점이 드러나는 논거를 하나하나 실어 놓는 것이 과연 중립적인 편집입니까? 이는 중립이 아니라 소수설을 편드는 일입니다.
2. notable을 클릭해서 들어가 보시지는 않으신 모양입니다. 해당 형용사가 가리키는 페이지가 바로 저명성에 대한 영문 위키백과의 지침입니다. 마찬가지로, 귀하가 언급한 구문은 볼 필요가 없군요. 한글 위키백과의 지침에 모두 나와 있는 내용이니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 없습니다. 한국어 위키백과는 영문 위키백과가 아닙니다. 한국어 위키백과의 지침은 영문 위키백과와 완벽하게 독립되어 있습니다. 해당 구문을 귀하가 어떻게 해석하건, 그것이 현재 한국어 위키백과의 지침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3. “그러한 주장이 있다고 공신력 있는 출처와 더불어 표기하는 것”이야말로 제가 수행하고 있는 일입니다만. 그리고 그러한 주장을 사회적 저명성에 따른 비중의 차등을 두어 서술하는 것 또한 중요한 문제인데 말입니다. 문제는 두 분께서 공신력 있는 출처를 거의 가져오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신문기사 같이 역사학에서 공신력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출처 말고 학계에서 정식으로 발표되고 정식 학술 회의에서 토론의 대상이 되었던 논문이라도 제발 좀 가져와 주십시오.--Xakyntos (토론) 2014년 7월 25일 (금) 20:17 (KST)답변
그것은 관점의 문제입니다. 관점의 문제를 귀하가 난데없이 공신력 없다는 주장을 펼칠 뿐이지요. 귀하의 눈에는 여러 공신력 있는 출처가 신문기사로만 보이나보죠? 이런 것에 대해서는 평행선만 달리고 있으니 더 이상 저는 하지 않으렵니다.
바로 한국어 위키백과의 지침이 영문 위키백과를 번역한 것이라니깐요? 써 놓았는데도 안 읽어보셨습니까?
그리고 계속 영어에 관련된 부분에 대한 언급을 회피하시는 것으로 보아 영어가 귀하의 분야가 아닌 것으로 생각되어 말씀드립니다만
  • 귀하가 언급한 구문은 볼 필요가 없군요. 한글 위키백과의 지침에 모두 나와 있는 내용이니 말입니다.

→ 그렇게 성급히 단정지으시면 어떡합니까? 긍정문과 부정문이 바뀌어 버린 전혀 다른 내용인데도 귀하의 영어는 이를 똑같은 뜻의 문장이며 모두 나와있다고 주장합니까? 앞뒤 내용이 상반되는 것으로 보아 해석을 안하셨으리라 생각되며, 차후에는 제대로 된 해석과 더불어 정확하고 옳은 내용만 서술하시기 바랍니다. --Aubelumiere (토론) 2014년 7월 25일 (금) 20:39 (KST)답변

“과학계에서 비판적인 검증을 받지 못하였거나 거부된 가설은(A conjecture that has not received critical review from the scientific community or that has been rejected) 다른 수준 높은 신뢰성을 가지는 출처가 그것을 대안적인 가설로서 논평했을 때만(only if other high-quality reliable sources discuss it as an alternative position.) 학술적인 대상으로 문서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may be included in an article about a scientific subject)”
보시다시피 한국어판 지침과 전혀 차이가 없는 내용입니다만. 귀하가 어떻게 해석하셨는지는 궁금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귀하가 어떻게 뒤집어서 해석했든 그것은 귀하의 주장일 뿐, 위키백과의 지침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으니까요. “바로 한국어 위키백과의 지침이 영문 위키백과를 번역한 것”이 아니라는 것부터 좀 아시기 바랍니다. 위키백과의 지침은 위키백과의 5가지 대원칙을 기초로 사용자들의 총의를 통해 수립되는 것입니다. 위키백과를 번역한 것에서 시작된 지침일지라도 한국어 위키백과 사용자들의 의견에 따라 그 내용은 충분히 바뀔 수 있고, 더 추가될 수도 있습니다. 바로 귀하가 인용한 이 항목도 그렇게 영어 원문을 토대로 더 상세한 내용까지 포함한 한국어 위키백과만의 지침으로 재탄생된 것입니다. 그러니 영문판 지침을 아무리 가져와봤자 소용 없습니다. 아니면 귀하께서 귀하의 해석을 토대로 사용자들의 총의를 모아 지침이 수정되도록 만들어 보시던가요.--Xakyntos (토론) 2014년 7월 25일 (금) 21:44 (KST)답변

더 이상 언급할 필요성을 못느끼지만 scientific은 '과학계' 뿐만 아니라 체계적인 이라는 뜻도 함께 가지고 있고, 영어사전에서도 '저명한'이라는 형용사를 뜻한다고 설명하는 notable을 저명성이라는 명사로 해석하셨으니 제대로 된 해석이 되었는지부터 의문입니다.--182.212.6.95 (토론) 2014년 7월 26일 (토) 06:33 (KST)답변

긍정문과 부정문이 바뀌어 버린 전혀 다른 내용”이라고까지 쓰신 분께서 겨우 이런 사소한 것만 언급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군요. 과학이 아니라 체계적이든, 저명한을 형용사이건 아니건 전체 내용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트집을 잡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은데 말입니다.--Xakyntos (토론) 2014년 7월 26일 (토) 07:57 (KST)답변

견해를 부탁드립니다.[편집]

안녕하세요, 기원전 24세기 문서에 대해 '기원전 2333년 단군 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한 것으로 전한다'라는 표현을 삭제할 지, 혹은 유지시킬지에 대한 견해를 요청하고 싶습니다. 이미 사용자:Asadal님과 한 차례 토론이 행해진 바가 있고 결론이 도출되어 이 결론을 토대로 수정한 바가 있으나 사:Salamander724는 토론을 거치지 않은 채 편집 되돌리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토론:기원전 24세기에서 토론을 요청하며 소중한 견해를 말씀드려 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Aubelumiere (토론) 2014년 8월 2일 (토) 21:53 (KST)답변

알겠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여쭙고 싶은 점이 있는데 행여 불쾌하시거나 답변하실만한 사항이 아니시면 당연히 답변을 안하셔도 됩니다. 물론 저도 비로그인으로 실수로 편집을 하고는 하지만 Aubelumiere님께서는 유독 비로그인으로 많이 편집을 하시는데 무슨 그럴만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신 겁니까?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행여 불쾌하시거나 답변하실만한 사항이 아니시면 당연히 답변을 안하셔도 됩니다. Aubelumiere님께서 이로 인해 다중계정 사용으로 인한 제재를 계속 받으실까 우려되어 한번 여쭙는 말씀입니다. 불쾌하셨다면 정말로 죄송합니다.--Lhrdrth (토론) 2014년 8월 3일 (일) 00:02 (KST)답변
아닙니다, 불쾌하지 않습니다. 제가 크롬, IE, 파이어폭스를 포함하여 다양한 앱을 사용하는데 노트북이 초기화 된 후 로그인이 된 상태라 착각한 상태에서 편집하기도 하였고 후에 접속 후 로그인 상태 유지 박스를 체크하는 것을 간과하여 수 차례 이와 같은 일을 행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기회로 새로운 습관이 형성되어 방식이 바뀌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매번 폐를 끼치게 해드려서 정말 죄송하고 항상 제 입장에서 서 주셔서 변호해 주시는 것에 대하여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Aubelumiere (토론) 2014년 8월 3일 (일) 15:28 (KST)답변

지금 토론은 문제가 많은 것 같습니다.[편집]

후에 들어오신 분들께서 토론을 상상해보지 못한 방향으로 파란만장하게 전개하시고 계시는데 이를 어찌해야 할지 상당히 고민됩니다. 동국통감과 제왕운기 사료는 왜 기각시키는지, 또 관자 내용을 기원전 24세기 문서에 왜 추가시키는지. 순전히 그들만의 논리로 무장하여 백과사전과 역사학자의 저서, 국사편찬위원회를 무너뜨리고 심지어 학계에서 논의되고 있는 사항까지 독자적으로 규정지으러 한다는 게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이해를 시켜드리려 여러 번 설명드렸는데도 변한 것이 없더군요.. 애초에 Xakyntos 사용자와 토론하였으면 더 올바른 방향으로 전개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네요. 어떻게 해야 합니까..혹시 제가 틀렸으며 멍청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Aubelumiere (토론) 2014년 8월 3일 (일) 21:31 (KST)답변

절대로 잘못된 주장을 하고계신 것은 아니며 토론이 문제가 많다는 사실은 동의합니다. 기원전 2333년 고조선 건국 시기를 신화적 영역으로 보내버리는 것은 정말 찬성할 수가 없습니다. 저도 확정적 사실이라고는 단언 못하지만 나름대로 많은 근거가 있는데 말입니다.--Lhrdrth (토론) 2014년 8월 3일 (일) 21:35 (KST)답변
옳은 말씀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있었던 조선사편수회(朝鮮史編修會)에서 만든 자의적 역사이론에 따라 교육을 받았던 이병도와 신석호 그리고 그의 제자들이 교과서를 만드는데 일조를 했기에 지금까지 이어지는 역사계의 고질병입니다. 이것은 금형처럼 하나의 틀이 되어 똑같은 모습으로 아직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광복이후 중국도 변하고 일본도 변하고 있는데 어째서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같은 한국인으로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더구나 홍산문명이라는 세계4대문명보다 1천년이나 앞서는 문명을 확대하여 고조선, 고구려, 발해의 역사를 중국인들은 자국의 역사로 만드는데 골몰하고 있는데 우리 한국인들은 서로의 얼굴에 침을 뱉고 있는 격입니다. 일본은 아직도 고대 가야지역의 통치를 들먹이면서 식민지의 지배를 정당화하며 위안부나 독도문제에 한치의 양보도 없이 대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에 울분을 느끼며 지방신문에 올려져 있는 다음의 내용을 참조하시길 권해 드립니다. 모쪼록 건필하십시요. 220.78.65.244 (토론) 2014년 8월 16일 (토) 08:11 (KST)답변

"일제 강점기 조선사편수회의 쓰다 소우키치와 그의 와세다대 제자인 이병도로 전수된 식민사관은 상당기간 한국 사학계의 주류로 행세할 정도로 그 뿌리가 깊다. 노론→친일→반공·친미→이승만·박정희 숭배로 면면히 이어진 기득권 세력 일각의 정서와도 맥이 닿는다. 다음은 일제의 마지막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의 말이다. - 이병도와 이태진, 그리고 문창극 무등일보(2014.07.08) 기사 참조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대, 조선민이 제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백년이란 세월이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다."

좋은 글을 남겨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Lhrdrth (토론) 2014년 8월 16일 (토) 13:47 (KST)답변

한국사 틀 토론[편집]

한국사 틀은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등 수많은 국가 문서에서 공통으로 불러와서 사용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틀입니다. 이 틀에서 일제 강점기와 미소 군정기를 강조할 것인지 여부에 대해 토론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바쁘시겠지만 토론에 참여하여 좋은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4년 9월 9일 (화) 18:45 (KST)답변

감사합니다. 참여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Lhrdrth (토론) 2014년 9월 9일 (화) 18:53 (KST)답변

문서 보호[편집]

요즘 한국사 관련 여러 문서에서 발생한 편집 분쟁으로 인해 저 역시 답답한 마음입니다. 다만, 문서 보호 조치에 대해서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위키백과 정책과 지침에 따르면, 편집 분쟁이 심한 경우 관리자는 문서 보호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이 때 보호되는 버전은 랜덤(random)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즉, 관리자가 생각하기에 옳다고 믿는 버전으로 보호하는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하여 편집 분쟁이 발생하기 전 상태가 어떤 것인지 일일이 찾아내서 보호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관리자가 보호할 시점에서 아무 버전(?)이나 보호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나중에 토론에서 의견이 모아지면, 그 모아진 의견대로 편집하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어느 버전으로 보호되었느냐 하는 것은 그다지 크게 신경 쓸 부분은 아닙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4년 9월 12일 (금) 23:23 (KST)답변

말씀 감사드립니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그냥 랜덤하게 보호하는 정책은 많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의견이 모아지는 것이 쉬운 것도 아니고 일단 보호를 한다면 편집 분쟁이 일어나기 바로 직전의 판으로 보호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판단됩니다. 그렇지않는다면 이를 악용하여 막무가내식 되돌리기로 편집분쟁을 야기, 이전의 모든 편집을 무시하고 자신의 편집으로 문서로 보호하려는 사용자가 있는 경우는 만약 문서 보호가 장기간일 때는 사실상 그 편집으로 위키백과가 계속 노출되는 것이므로 실로 많은 문제점이 야기되며 최근 낙랑군 문서에도 그런 예가 실제로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좋은 하루되십시오.--Lhrdrth (토론) 2014년 9월 13일 (토) 00:58 (KST)답변

틀토론:한국사 보존 안내[편집]

틀토론:한국사를 9월 18일자로 보존 처리하고, 틀 개편을 중심으로 논의를 새로 개시합니다. 본 안내는 틀토론:한국사에 참가한 모든 사용자에게 남겨졌습니다. --이강철 (토론) 2014년 9월 17일 (수) 01:12 (KST)답변

알겠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9월 17일 (수) 14:47 (KST)답변

어거지 그만 부리시죠.[편집]

자기 자신이 비주류라 자인한 마당에 지금 강짜부리십니까? -- S.H.Yoon · 기여 · F.A. 2014년 9월 24일 (수) 13:50 (KST)답변

아주 친절하게 "자기 자신이 학계에서 배척받는 비주류라고 내세우며 동시에 현 정부의 역사인식도 가장 근본적으로 공격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이가 일면 매력적일 수도 있다.", "이덕일 같은 자칭 비주류가 현 정부의 상고사 프로젝트를 밀어붙일 것을 요구하고 있기까지 하다. 사면초가와 같은 형국이다." 이덕일 자신이 비주류를 자처하는데 지우시는건 뭐죠? -- S.H.Yoon · 기여 · F.A. 2014년 9월 24일 (수) 13:53 (KST)답변
@Shyoon1:자,자. 감정 싸움은 둘다 여기까지 하고 잠시 숨 좀 돌립시다. 개인적으로 되돌리기 분쟁을 별로 좋게 보지 않습니다.
숨 돌리는 새에 되돌려지는데 어쩔수 없죠. -- S.H.Yoon · 기여 · F.A. 2014년 9월 24일 (수) 13:57 (KST)답변
어거지, 강짜라는 표현이 매우 불쾌하네요? 수많은 신문기사의 예로도 탁월한 평가를 듣는 분을 유사역사학자라고 매도하는 쪽이 도대체 누구입니까?--Lhrdrth (토론) 2014년 9월 24일 (수) 13:55 (KST)답변
그리고 이덕일은 스스로도 '비주류 역사학자'라고 말하는, 일부에선 유사역사학자라고도 평하는 사람입니다. 이제 끝냅시다. Reiro (토론) 2014년 9월 24일 (수) 13:54 (KST)답변
일부의 유사역사학자 평가로 그렇게 매도할 수는 없습니다.--Lhrdrth (토론) 2014년 9월 24일 (수) 13:55 (KST)답변
참나, 비주류로 자신을 자처하는 판에 그쪽 혼자서 비주류로 인정안하시겠다면은 여태까지 되돌리면서 했던 말 받아쳐드리죠. 그건 그쪽 생각이십니다. 그럼요. -- S.H.Yoon · 기여 · F.A. 2014년 9월 24일 (수) 13:56 (KST)답변
'스스로도 비주류 역사학자라고 말하는'이란 문장은 왜 빼먹으십니까. 이제 그만 해 주세요.
@Shyoon1:이제 머리 식히시고, 문서 관리 요청만 넣어주세요. 더 이상 감정싸움으로 번질까 우려스럽습니다.--Reiro (토론) 2014년 9월 24일 (수) 13:58 (KST)답변
하는 행태를 보아하니 못 식힙니다. 전 철저한 강단사관이라서요. -- S.H.Yoon · 기여 · F.A. 2014년 9월 24일 (수) 13:59 (KST)답변
@Shyoon1:이제는 유사역사학자라고는 차마 말을 못하시니 비주류라고 하시는데 비주류=유사역사학자라는 등식은 도대체 어떻게 성립됩니까?--Lhrdrth (토론) 2014년 9월 24일 (수) 14:00 (KST)답변
자기가 비주류라는 걸 차치하고서라도 세월호 참사가 노론의 망국적인 당파 싸움에서 비롯되었다고 망상을 쓰는게 유사역사학이 아니면 뭡니까? 뻑하면 조선의 왕들이 독살되었다고 하는게 유사역사학이 아니면 뭐죠? -- S.H.Yoon · 기여 · F.A. 2014년 9월 24일 (수) 14:01 (KST)답변
그리고 현재 주류 역사계는 노론과 친일 역사관에서 비롯되었다고요? 어떻게 그렇게 잘안답니까 족보조사라도 해보지 않는 이상. -- S.H.Yoon · 기여 · F.A. 2014년 9월 24일 (수) 14:06 (KST)답변
@Shyoon1:그러니까 여기서 이래봐야 문제는 문제대로 안 풀리고, 토론은 토론대로 공회전한다는 말입니다. 이건 강단사관이 아니라 그냥 소모적인 언쟁입니다. 정말 강하게 하시려면 여기 절차에 맞춰 문서 보호 요청을 넣어주세요. 시스템적으로 처리하는 게 정말 강한 겁니다.--Reiro (토론) 2014년 9월 24일 (수) 14:02 (KST)답변

@Shyoon1: 그건 귀하의 생각이고
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SCD=JI31&newsid=01872886606186336&DCD=A403&OutLnkChk=Y "동시대 가장 빼어나고 도전적인 역사학자"라는 평을 받는 분이 유사역사학자입니까?
http://ch.yes24.com/Article/View/26060 "식민사관 극복과 역사대중화에 힘쓰고 있는 역사학자이자 저술가""라는 평을 받는 분이 유사역사학자입니까?
http://www.naeil.com/news_view/?id_art=116837 "역사 대중화의 선두에 있는 우리 시대의 탁월한 역사학자""라는 평을 받는 분이 유사역사학자입니까?
http://www.naeil.com/news_view/?id_art=116837 "글로 승부하는 역사 분야 최고의 저술자"라는 평을 받는 분이 유사역사학자입니까?
http://www.naeil.com/news_view/?id_art=116837 "고대사부터 근현대사까지 아우르는 파워라이터"라는 평을 받는 분이 유사역사학자입니까?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307161624a "시대와 인물을 읽어내는 뛰어난 통찰력으로 우리 역사를 바로잡는 저술에 힘쓰고 있는 역사학자"라는 평을 받는 분이 유사역사학자입니까?
http://www.vop.co.kr/A00000778850.html "과거의 역사로 현재를 모습을 비춰낸 역사학자"라는 평을 받는 분이 유사역사학자입니까?
http://www.wowtv.co.kr/newscenter/news/view.asp?bcode=T30001000&artid=A201308300175 "대중과 소통하는 우리 시대의 역사학자"라는 평을 받는 분이 유사역사학자입니까?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90985" 역사의 대중화와 역사 서술의 질적 전환을 이끌어낸 우리 시대 대표적 역사"라는 평을 받는 분이 유사역사학자입니까?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90985" 한국사의 핵심 쟁점들을 명쾌하게 풀어내며"라는 평을 받는 분이 유사역사학자입니까?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40906016007" 방대한 문헌 사료를 바탕으로 조선 후기 노론사관과 일제 식민사관이 변형시킨 한국사의 원형을 되살리는 노력을 경주해 온 역사학자다"라는 평을 받는 분이 유사역사학자입니까?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50&aid=0000034306 "역사 대중화의 선두에 서 있는 역사학자"라는 평을 받는 분이 유사역사학자입니까?--Lhrdrth (토론) 2014년 9월 24일 (수) 14:08 (KST)답변

아니 그걸 다 차치하고라서도 이덕일 본인이 "나는 비주류다!"라고 했습니다. 평가 따위 필요없구요, 이덕일의 썰은 독살 매니아, 노론 극렬안티입니다. 한쪽으로 치우친 POV에 환단고기에 우호적인 자가 무슨 정통 역사학자입니까. -- S.H.Yoon · 기여 · F.A. 2014년 9월 24일 (수) 14:10 (KST)답변
도대체 비주류=유사역사학자라는 등식은 어디서 성립하며 평가가 뭐가 필요없습니까? 저는 적어도 수많은 신문기사를 예로 들었는데 귀하는 뭡니까?--Lhrdrth (토론) 2014년 9월 24일 (수) 14:12 (KST)답변
신문기사에서 이덕일 본인이 비주류라고 언급한거 소개해줬잖아요. 뭐가 문제죠? 그동안 억지부리며 마구잡이로 돌려서 문서 보호 만든 사람이 누구죠? -- S.H.Yoon · 기여 · F.A. 2014년 9월 24일 (수) 14:14 (KST)답변
비주류하고 유사역사학자고 무슨 상관이냐고요? 그리고 억지는 누가 부렸다는 겁니까?--Lhrdrth (토론) 2014년 9월 24일 (수) 14:21 (KST)답변

안녕하세요? 인사드립니다.[편집]

처음 뵙겠습니다. 우연히 역사 관련 토론을 보다가 HanKooKin님을 알게 되어 인사드립니다. 요즘 활동을 안하시는 것 같은데 활동을 재개하셔서 위키백과에 많은, 훌륭한 기여를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좋은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Lhrdrth (토론) 2014년 9월 30일 (화) 13:31 (KST)답변

감사합니다. 이제사 읽게되어 소견을 전합니다. 우연히 인터넷을 서핑(surfing)하다가 귀하가 남긴 글을 읽고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위키백과의 모습에 이해를 제공하려 했던 지난날이 생각이 납니다.

특히 한국사부분에서 조선사편수회(朝鮮史編修會)에서 만들어낸 한국사를 근거로 교과서가 만들어져 왔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강단사학에 몰입하여 있는 몇몇 사람들에 의해 편집되어 지는 것을 보고 이러한 몰가치(value-blind)로 매도하는 일에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을까하는 회의감에 참여를 기피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Lhrdrth (토론) 같은 몇몇 분들이 비분강개(悲憤慷慨)하여 바로잡아가는 모습에 감동이 되어지고 있습니다만 이미 오래전에 접었던 마음을 되돌리기에는 좀더 시간이 소요될 것같습니다. 이점을 양해하시고 앞으로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시길 바랍니다. 풀잎사랑 2014년 10월 22일 (수) 18:44 (KST)답변

다음 참고자료에서 한국역사의 실태와 역사에 대한 개념을 잘 설파한 도올 김용옥 선생의 이야기를 찾아 경청해보시길 바랍니다. 세간에서 거친 표현들과 충동적 생각, 그리고 돌발적인 행동으로 물의가 많은 분이지만 그래도 옥석속에 올바른 비판들을 가려내 이해하시면 됩니다. 참고자료 도올 김용옥의 역사란 무엇인가? 인터넷 유튜브 일부 내용 참조 풀잎사랑 2014년 10월 24일 (금) 12:25 (KST)

좋은 글을 남겨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Lhrdrth (토론) 2014년 11월 2일 (일) 23:15 (KST)답변

차단 알림[편집]

협업 정신을 위반한 토론 태도를 사유로 1개월간 차단하였음을 알립니다. 자세한 사항은 위키백과:사용자 관리 요청/2014년 제47주#사:Lhrdrth 차단 요청을 참조해 주세요. 죄송합니다.--분당선M (토론) 2014년 11월 17일 (월) 12:54 (KST)답변

심각한 인신공격이나 욕설도 아니고 저로서는 충분한 이유를 들어서 정당한 의견 개진을 했는데도 상대방이 사과를 요구하기에 사과를 하지않은 것이며 또한 해당 차단 요청에서 누누히 해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제 해명은 전혀 받아들여지지않고 단지 상대방의 사과 요구에 사과를 안했다는 것만이 협업정신 위반으로 간주되어서 심히 유감입니다. 그리고 다수결로 여론몰이식으로 차단이 결정되는 것 같아서 그점도 참으로 앞으로 위키백과에서의 활동에 회의감을 느끼게 합니다. --Lhrdrth (토론) 2014년 11월 17일 (월) 16:11 (KST)답변
Lhrdrth 님이 차단되었다는 말을 듣고 사실 많이 놀랐습니다. 위 링크를 읽어보았더니, 특정 사용자에게 한 말에 대해서 사과를 하느냐 마느냐를 가지고 논란을 벌이다가 차단된 것으로 보이는데,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차단이 좀 과도한 면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백:차단은 관리자의 고유한 권한이 맞습니다. 물론 '차단 재검토 요청'을 통해 차단을 해제하거나 차단 기간을 단축하는 방법도 있겠으나, 시간이 많이 걸리고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위키백과에 크고 중요한 일이 참 많습니다. 몇몇 사용자들과 사소한 언쟁을 벌이기보다는 앞으로 더 크고 중요한 문제에 대해 힘을 기울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 일로 상심이 크시겠지만, 제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결국 이겨내고 다시 돌아와 웃는 얼굴로 열심히 편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4년 11월 17일 (월) 19:55 (KST)답변
아사달님의 위로의 말씀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솔직히 저로서는 도대체 왜 사관 요청이 됐는지조차 납득이 안가는 상황에서 그를 넘어서 갑자기 1달이나 차단을 당하다보니 정말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서 아직도 어안이 벙벙 합니다. 좋은 하루되시고 그동안 항상 하는 일 다 잘되시고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Lhrdrth (토론) 2014년 11월 17일 (월) 19:59 (KST)답변
이번 차단이 좀 과도한 면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1개월의 차단 기간을 잘 인내하고 다시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5년 1월 24일 (토) 15:12 (KST)답변
이렇게 배려해주심에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좋은 하루되십시오.--Lhrdrth (토론) 2015년 1월 24일 (토) 20:37 (KST)답변

닉이 일단술먹고합시다니까 일단술먹고 쓰겠슴다(이게 무슨 행패야?!!!)[편집]

저어... 낙랑군 토론 문서에서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슴다. "한가지 더 첨언하자면 일단술먹고님같이 낙랑군 재평양설이 맞다고 생각하시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북한의 주장이나 윤내현, 복기대 교수 등의 주장이 말도 안된다고 생각해서 낙랑군 문서에서 당장 삭제하고 싶을 겁니다." ;;;; 저는 뭘 당장 삭제하고 싶다고 한 적이 없는데요...?;;; ;;; 제 편집은 '간결, 일원화, 중립, 문법, 지금까지의 수정전쟁 집대성'을 목표로 했었습니다........ 본항목도 그렇지만 토론문서조차 엄청나게!!(이럴때 수사어구 좀 써봅시다ㅋ) 공들여서 썼는데 좀 읽어주십쇼orz(사실 님을 겨냥한 글이었다는ㅋ) 저 같은 경우엔 사학 전공은 아닙니다만 어렸을 때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낙랑군 문서를 보았는데 감정적ㆍ과장적 표현이 너무 많았고 비문법에;; 중복되는 표현도 있었슴다. 그래서 좀 매끄럽게 수정하려고 하는데... 이게 심상치가 않습니다. 토론문서가 경악스런 길이야!!!ㅇ_ㅇ 그래서 좀 보다보니... '며칠간'(<- 이거 레알임) 본항목토론, 대표 3인방(?) 사용자토론, 고조선토론(!!)까지 전부 읽어보았고 해당 출처들도 그 과정에서 확인해보았슴다. (솔직히 백산학회;;; 논문이며 복기대 논문을 머리털나고 첨 봤슴다) 그렇게 확인한 내용들을 전부 그대로 중립적 시각과 비주류 이론을 상호 조화시켜 서술했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걍 되돌림되서 저야말로 좀 당황했슴다ㅋ 제가 편집한 문서를 다시 보세요;; 제 주장은 없습니다;;;;; 그냥 사실만 서술했는데요? ........ 제가 술이 취해서 짐 토론문서와 낙랑군문서를 수정하면 혹여 님께 책잡힐까봐(뜨든!!) 못하겠고 여기다가 걍... 잡담 하고 감다ㅋ(이것조차 억지부리심 진짜 곤란! 혹여 차단의 재료로 활용하시는 건?;;) 그리고 이건 좀 궁금한데 한반도에 낙랑군이 있다고 뭔 큰일이라도 납니까? 있든 없든 그게 현재의 지금과 뭔 상관입니까? 과거야 어쨌든 지금 내가 술만 잘먹으면 그만이지ㅋ 그리고 전체적으로 읽어봤는데... 솔직히 협박처럼 느껴졌슴다;;;;(피해망상인가?) 그래도 '틀린 내용은 적지 말라는' 좋은 뜻으로 받아들이고 제가 편집했던 걸 기본으로 해서 일부 표현만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ㅇㅇ 항상 건강하십쇼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2월 5일 (목) 02:02 (KST)답변

제 표현 중에 마음에 걸리셨거나 기분이 나쁘신 부분이 있었다면 죄송합니다. 본의는 아니었으니 양해해주시고 토론 문서 등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동안 낙랑군 문서에서 워낙 편집 분쟁이 심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편집 분쟁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앞으로 낙랑군 문서를 비롯해서 위키백과에서 좋은 기여 부탁드리겠습니다.--Lhrdrth (토론) 2015년 2월 5일 (목) 02:35 (KST)답변
최대한 이해하시기 좋도록 낙랑군 토론 문서에서 차근차근 알려드렸다고 생각했으나 님께서 정책과 지침대로 하시기를 원하시기에 꼭 정독해주셨으면 하는 정책과 지침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① 독자연구 금지, ② 신뢰할 수 있는 출처, ③ 비주류이론, ④ 확인가능, ⑤ 방해편집
독자연구란 공개 발표되지 않은 사실, 주장, 개념, 진술 또는 이론을 의미합니다. 믿을 수 있는 출처가 없는 주장을 소개하고 이를 다른 아이디어, 이론, 주장, 입장을 반박하거나 지지하는 데 사용하거나 믿을 수 있는 사실, 아이디어, 이론, 주장을 편집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분석하거나 종합한 자료를 소개하고 이에 대한 믿을 수 있는 출처를 밝히지 않는 행위는 금지됩니다. 의심받고 있거나 의심받을 만한 문서 내용에는 반드시 믿을 수 있는 출처가 있어야 합니다. 믿을 수 있는 출처가 발견되지 않아서, 글쓴이의 고유한 생각으로 여겨지는 내용은 “독자 연구”로 간주합니다. 님의 편집본에서 해당하는 부분은 ① 수경에는 강의 흐름만 나와있을 뿐 평양이 아니라고 고증한다는 내용은 없는데도 실은 부분 ② 한서 지리지를 수경보다 후대의 기록이라 한 부분 ③ SBS에서 왜곡 가능성을 제시한 유물들이 낙랑군 재평양설의 강력한 증거로 제시된다고 쓴 부분 ④ 사진만을 보고 왜곡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었음에도 검증, 조사한 결과라고 확정한 부분 ⑤ 금성현이라는 미지?의 지명과 복기대 논문의 발표 년수의 오류입니다.
신뢰할 수 있는 출판물은 사실의 검증과 편집상 감독의 체계가 확립되어 있어야 합니다. 본문의 내용은 가장 신뢰할 수 있고 적절히 출판된 출처를 사용하여야 하며, 중립적 시각에 따라 모든 대다수의 주장과 주목받는 소수의 주장을 포함하여야 합니다. 신뢰할만한 출처에 공표된 다수의 관점과 주요한 소수의 관점을 공평하게 제시해야 합니다. 극소수의 관점이나 비주류 이론은 문서가 그 내용을 주제로 한 것이 아니라면 포함되지 않아도 됩니다. 신뢰받는 출처란 주로 전문가 검토(peer review)를 거친 학술지, 대학출판부에서 출간된 도서, 대학교 수준의 교과서, 그리고 평판 있는 출판사에서 출간된 잡지, 정기간행물, 도서입니다. 만일 당신이 투고하고자 하는 내용이 신뢰도가 낮은 출처에서밖에 뒷받침되지 못한다면 해당 내용은 위키백과에 포함되기에 부적당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관계와 정확성을 제대로 지키기로 명성이 높은 출처에 기반을 두어 작성하십시오 어떤 분야의 일반적인 내용을 다루는 문서에 그 분야의 학계에서 널리 지지받지 못하는 학설을 필요 이상 중점적으로 서술하면 안 되며, 예외적인 주장은 예외적인 출처를 요구합니다. 놀랍거나 중요한 주장임에도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거나, 논쟁을 일으킬 여지가 있거나, 이전에 지지를 얻었던 내용과 반대되는 주장을 담은 보고서, 지지를 얻지 못하는 주장이나, 관련 학계의 주요 관점과 대치되는 주장. 지지자들이 그들을 침묵하게 하려는 음모가 있다고 주장할 때에는 특별히 주의하셔야 합니다. 예외적인 주장을 위키백과에 싣기 위해서는 그 주장을 하는 자 자신들 이외의 다른 신뢰할 수 있는 2,3차 출처에서도 그 주장을 언급했어야 합니다. 님의 편집본에서 해당하는 부분은 ① 복기대의 주장과 ② 박선희의 주장입니다. 복기대 같은 경우엔 이 점을 인지하였는지는 몰라도 스스로 2004년도 논문에서 기존의 논리를 폐기하였습니다. 그러면 그 최신본의 내용에 따라야지 자꾸 구판을 고집하는 것은 편집방해입니다. 〈기원전 7~4세기 요서지역의 정치적 변화에 관하여〉《문화사학》, 2004라고 확인 가능한 출처까지 제시해드렸습니다. 박선희의 주장은 극소수의 관점이나 비주류 이론입니다. 해당 주장은 수천~수만명의 학자가 포진해있는 학계 어디에서도 언급되지 않습니다. 즉 주목받는 소수의 주장조차 되지 못합니다. 더구나 그 주장은 고조선단군학회에서 낸 논문인데 박선희 자신이 그곳의 부회장입니다;; 이것은 (위키 편집은 아니지만) 독자연구의 홍보에 해당됩니다. 실제로도 박선희는 논문을 거의 고조선단군학회에서만 내고 있으며 학계의 검증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싣겠다고 고집하신다면 역시 방해편집에 해당됩니다. 이런 주장들은 더욱 예외적인 출처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어떤 특정한 분야의 지배적인 혹은 제도권의 학설에서 아주 크게 빗나가는 학설을 일반적으로 비주류 이론(영어: Fringe Theories)이라고 부릅니다. 해당 분야의 학계에서 검증받지 못한 내용은 학계의 정설을 다루는 글에서 부적절하게 강조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내용을 다루는 문서는 더 심화된 검증을 통과해야 하며, 이 과정은 중립성의 원칙에 부합해야 합니다. 비주류 이론을 다룰 때에는 그 학설이 갖는 실제 비중보다 더 저명한 것처럼 보이게 쓰면 안 됩니다. 논쟁의 소지가 있거나, 거부되고 폄하된 주제를 다루는 글은 그 주제가 관련된 학계에서 그 주제가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받아들여지는지를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제시해서) 명기해야 합니다. 그 주제가 속해 있는 분야의 신뢰할 수 있는 출처에서 그 주제에 대한 적절한 논평을 인용할 수 없는 경우에는 그 주제가 학계에서 논의된 적이 있거나 학계에 받아들여졌다는 식으로 서술하지 마십시오. 잘 알려진 주제를 다루고 있는 문서라면, 비록 비주류 이론이 해당 주제와 관련이 있어 보일지라도, 전문가의 검토가 없는 잘 알려지지 않은 문헌에 의해서만 뒷받침되고 있다면, 이 비주류 이론은 해당 주제를 다루는 문서 안에 서술할 수 없습니다. '비주류 저널' 역시 존재함을 유의하십시오. 이들 중 어떤 것은 자신들이 전문가의 감수를 받았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런 저널 중 그들이 주장하는 비주류 이론을 추천하는 것 이외의 실제로 의미가 있는 전문가의 검증을 받은 것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은 믿을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하여야 합니다. 비주류 관점에 대한 서술은 제도권에서 논해지는 주제를 다루는 문서에서는 아예 제거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관점은 그런 주제를 다루는 신뢰할 수 있는 출처에서는 언급되더라도 극히 가끔만 언급되기 때문입니다. 비주류 이론을 다른 문서에 수록할 수 있는 경우는, 믿을 수 있는 독립된 출처가 그 주제를 진지하고 비중 있게 다룬 경우로 한정됩니다. 하지만 그런 기준을 충족시킨다는 것은 그 주제가 다른 글에서 다뤄질 수 있다는 이야기이지, 어떤 특정한 주제에서 다뤄져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만일 비주류 이론을 다른 문서에서 언급하는 것이 그 학설에 부적절한 비중을 실어 준다면, 그 학설에 대한 언급은 제한된 수준에서만 가능하거나, 아니면 아예 불가능합니다. 그 어떤 믿을 수 있는 독립된 출처도 그 비주류 이론을 제도권의 주제에 결부해서 설명하지 않는다면, 그 학설은 같이 보기 란에 링크하는 것조차도 금지됩니다. 님의 편집본에서 해당하는 부분은... 전부입니다. 스스로 비주류 이론이 아님을 증명하지 못하신다면 전부 삭제가 맞습니다.
출처는 주장을 뒷받침하기에 적절해야 합니다. 즉, 대단한 주장에는 대단한 출처가 필요합니다. 모든 문서는 위키백과의 중립적 시각에 충실하여, 신뢰할 만한 출처에 공표된 모든 다수 관점과 주요한 소수 관점을 공평하게 제시해야 합니다. 극소수의 관점이나 비주류 이론은, 그 내용을 주제로 한 문서가 아니라면 포함되지 않아도 됩니다. 위키백과에서는 "출처"라는 말이 3가지 뜻을 가집니다. 문헌 그 자체 (여기서 '문헌'이란 말은 담긴 정보를 기록하는 방법과 정보가 담긴 위치에 상관을 두지 않습니다.), 문헌을 작성한 사람, 문헌을 출판한 곳. 이 세 가지 모두가 그 출처의 신뢰성을 판단하는 지침이 될 수 있습니다. 문서를 작성할 땐 신뢰할 수 있고, 제3자가 작성했으며, 이미 출판된, 그리고 사실 관계와 정확성을 제대로 지키기로 명성이 높은 출처에 기반을 두어 작성하십시오. 일반적으로 '최고의 출처'라고 일컬어지는 것들은 사실의 확인 혹은 분석, 법적 문제, 제기된 논쟁, 자신의 말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는 데 있어 체계적이고 능숙한 모습을 보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이러한 것들에 있어 더 철저한 검토를 거친 출처일수록 더욱 더 신뢰성이 높습니다. 비주류 이론의 제안자 자신이 자신의 학설을 홍보하는 행위 금지됩니다. 전문가의 검토를 받는 것은 과학이나 역사, 혹은 다른 학문적인 내용에 대한 믿을 수 있는 출처를 선별함에서 중요한 요소입니다만, 전문가에게 인정받았다고 해서 그것이 과학계에서 인정받은 자료라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위키백과에서는 전문가의 검토를 받은 자료라고 해서 무조건 과학계의 총의를 담은 자료 혹은 사실이라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비주류 이론'을 서술하는 문서가 단 하나의 1차 자료를 참고하고 있다면, 그 자료를 다른 전문가가 인정했다고 하더라도, 저명성의 기준에 의해서 위키백과에서 삭제될 수 있습니다. 비슷하게, 아주 예외적인 주장을 위키백과에 서술하기 위해서는 아주 높은 수준에서 신뢰할 수 있는 출처가 필요합니다. 비주류이론, 신뢰할 수 있는 출처, 독자 연구와 연계되는 부분입니다. 님께서 추가하고 싶은 부분들은 아주 예외적인 주장이기에 확인 가능한 '아주 높은 수준에서 신뢰할 수 있는 출처'들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사실 여기까지 갈 것도 없이 고조선단군학회 자체가 크게 신뢰할 수 있는 출처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비주류이론의 생산자들이 주로 모여있고 이들의 권한이 강한 학회이기 때문입니다.(ex.윤내현, 복기대, 박선희, 우실하, 이재원, 서영대, 이강식, 민영현 등) 학계 어디에서도 이 학회 내에서 발표한 논문에는 별로 귀기울이지 않습니다.
문서를 향상시켜 백과사전을 완성해 가는 과정을 지속적으로 방해하는 비생산적인 편집을 말합니다. 방해 편집은 일회적 행동이라기보다는 충분히 긴 기간 동안 여러 문서에 걸쳐 지속되는 '편집의 경향'입니다. 방해 편집은 일반 문서에 대한 편집뿐 아니라 위키백과의 정책과 지침 등 여러 문서에 대한 편집 및 토론 과정에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소수 의견에 지나친 비중을 둘 것을 고집하여 장기적인 문제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전체적으로, 방해 편집자들은 위키백과의 출처로서의 신뢰성을 저하시키고 생산적인 편집자들의 인내심을 소진하여 - 지친 편집자들이 해당 편집자가 처벌을 받지 않고 계속 방해하면 절망하여 프로젝트를 떠날 수도 있습니다. - 위키백과에 해를 끼칩니다. 생산적인 기여자들을 몰아내기 위해 활동합니다. 아주 조금씩 위반함으로써 일반적인 공동체 전체의 인내심을 소진시키지는 않지만, 특정한 글에서 생산적이고 규칙을 지키는 편집자들의 인내심을 소진시킵니다. 단지 스스로 생각했을 때 자기 의견에 타당성이 있다고 해서 공동체가 반드시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처럼 행동할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글이 매우 길어져서 미안합니다만 중요한 정책과 지침들이라서 되는대로 긁어왔습니다. 님께서는 님이 하신 편집본이 이상의 정책과 지침들을 어기지 않았다는 합당한 답변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그것이 힘들 경우 이전의 편집본으로 되돌려주시기를 권유드리겠습니다. 님께서는 지난 4년간 소모적인 토론을 지속하였습니다. 더이상은 증명할 수 없는 주장을 반복하시지 않을 것이라 믿고 이번 기회에 지리했던 낙랑군 분쟁이 근절되기를 희망합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2월 9일 (월) 01:11 (KST)답변
제 3자가 보기에 귀하의 표현은 매우 과격해 보입니다. 예절을 지켜주세요. --양념파닭 (토론 · 기여) 2015년 2월 9일 (월) 01:18 (KST)답변
님께서 삭제하신 박선희, 복기대 교수 주장은 모두 신뢰할만한 출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주장이 실린 부분은 논란 부분으로 그 주장들을 수록하는데 비주류 이론에도 해당되지 않습니다. 결국 이부분을 복구하는 것은 한마디로 독자연구 금지, 신뢰할 수 있는 출처, 비주류이론, 확인가능, 방해편집 그 어느 부분에도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외 님께서 지적하신 부분들에 대한 답입니다.
① 수경에는 강의 흐름만 나와있을 뿐 평양이 아니라고 고증한다는 내용은 없는데도 실은 부분은 독자연구가 아닙니다. 서쪽으로 흐르는 대동강의 강의 흐름을 보고 패수는 동쪽으로 흐르므로 이 부분이 패수 대동강설의 반박 자료로서 널리 사용되고 있으니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② 한서 지리지를 수경보다 후대의 기록이라 한 부분은 오류가 아닙니다. 수경은 전한, 한서지리지는 후한 시대에 나왔습니다.
③ SBS에서 왜곡 가능성을 제시한 유물들이 낙랑군 재평양설의 강력한 증거로 제시된다고 쓴 부분은 맞습니다. 효문묘 동종등은 전부 낙랑군 재평양설의 강력한 증거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④ 사진만을 보고 왜곡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었음에도 검증, 조사한 결과라고 확정한 부분도 틀린 부분이 없습니다. 담당 피디는 해당 유물들이 조작되었다고 얘기했고 그 유물들을 다각도로 검증 조사했습니다.
⑤ 금성현이라는 미지?의 지명과 복기대 논문의 발표 년수의 오류부분은 그 부분이 맞다면 수정해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해당 정책들은 저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고 정책들에 대해서 그냥 링크만 해주셔도 됐을텐데 굳이 내용들을 전부 복사하신 것은 님께서 주장하시는 내용을 간파하는데 너무 복잡한 느낌이 듭니다. 다음부터는 간단히 링크로 올려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Lhrdrth (토론) 2015년 2월 9일 (월) 01:35 (KST)답변
항목 제목이 레알 오해하기 쉽게 되어있네요;; 그 행패는 저 스스로한테 하는 혼잣말이었는데;;; 농담따먹기였습니다;;;;; 그건 Lhrdrth사용자도 알고 계신 것 같았는데... 아, 아닌가!?orz 어... 어쨌든 복기대와 박선희의 해당 주장은 비주류 이론입니다;; 학계 내에서는 아예 논의되지도 않는 사항입니다. 국사편찬위원회, 동북아역사재단, 주류 학계 어디에서도 언급조차 되지 않습니다. 스스로 주장하는 논문 그 자체 말고 다른 신뢰성 높은 출처에서 그것을 진진하게 논의하는 것을 보신 것이 있으십니까? 그리고 복기대는 2004년 논문에서 기존의 논리를 폐기하였습니다. 수경은... 언제 지어졌는지 정확히 모릅니다. 전한, 후한, 삼국시대, 진나라까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후대의 기록이란 표현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수경에서는 '낙랑군은 평양에 없다'는 문장은 없습니다. 단지 강이 동쪽으로 흐른다고만 하였을 뿐입니다. 원문 확인을 바랍니다. 그리고 효문묘 동종은 '강력한' 증거는 아닙니다. 낙랑군한반도설을 입증하는 수많은 증거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강력한'이라는 표현은 Lhrdrth사용자의 감정 아닙니까? 그리고 담당 피디가 언제부터 전문가였는지; 담당 피디가 출현하며 얘기하는 부분도 없습니다. 님께서는 '다각도'로 검증조사했다고 하셨으나 오직 사진만으로 합니다. 님께서는 사진만으로 하는 검증이 '다각도검증'이란 말씀이십니까? 해당 정책과 지침들을 인지하고 계시다면 합당한 근거와 출처를 바랍니다. 근거 제시 없는 4년 간의 반복되는 주장은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2월 9일 (월) 02:10 (KST)답변
지금 생각해보니 새주제로 해서 쓸 걸 그랬습니다... 며칠 전에 농담따먹기하던 주제에 덧붙이니까 오해하기 딱 좋네요............orz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2월 9일 (월) 02:13 (KST)답변
누누히 말씀드리지만 해당 교수분들의 주장이 실린 부분은 낙랑군 위치에 관한 논란 부분을 다루라고 편성된 섹션에 실려있습니다. 따라서 비주류 이론에 해당되지않는다고 몇번을 말씀드립니까? 그리고 복기대 교수가 기존의 주장을 폐기했다는 것도 님의 일방적인 추측아닙니까? 복기대 교수가 직접 그런 입장을 밝히거나 님께서 직접 질문하셔서 그런 답변을 받아오신다면 해당 부분 삭제에 얼마든지 동의하겠습니다. 그리고 물론 수경 원문에는 낙랑군은 평양에 없다라는 문장은 없지만 패수가 서쪽으로 흐른다고했으니 동쪽으로 흐르는 대동강이 패수일리가 없다는 것은 자연히 증명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 이유로 대동강 패수설의 반박자료로 아주 널리 사용되는데 그게 뭐가 독자연구라는 말씀입니까? 그리고 수경의 편찬 연대가 정확지않다면. 그러면 "후대의 기록"이라는 부분만 삭제하면 될 문제입니다. 그리고 너무 세세하게 말꼬리를 잡으시는데 효문묘동종(孝文廟銅鐘)과 점제현신사비(秥蟬縣神祠碑) 등은 낙랑군 재평양설의 유력한 증거로 사용되는데 이것까지 제가 일일히 증명해드려야합니까? 그리고 SBS 해당 다큐멘터리 부분 출처를 보십시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이 유물은 진짜가 아니다. 심지어 낙랑군의 속현 중의 하나로 있었다는 점제현을 입증해준다는‘점제현신사비(秥蟬縣神祠碑)’ 또한 그 의심스러운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그들은 낙랑군을 입증할만한 증거가 부족한 듯하자 역사조작을 자행한 것으로 보인다. 두 유물의 진위 여부 : 이 프로그램은 특히 이 두 유물이 조작 또는 조작되었을 가능성을 현대의 다양한 분석기법 및 관련 전문가들을 동원하여 파헤칠 것이다." 라고 여러 분야의 전문가를 동원해서 아주 다각도로 조사 검증했습니다. 이것도 정 못믿으시겠다면 그 다큐멘터리가 유튜브에도 올라와 있는 것으로 아니 직접 보시기를 바랍니다. 도대체 뭐가 근거가 없다는 것인지 납득을 할 수가 없습니다.--Lhrdrth (토론) 2015년 2월 9일 (월) 02:27 (KST)답변
낙랑군 토론 문서 확인했습니다. 사랑합니다. 뭐어... 지금 술먹고 행패 부리는 거 맞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잉♡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2월 10일 (화) 20:37 (KST)답변

각 사용자 토론문서와 낙랑군토론 문서를 다시 찬찬히 읽어봤습니다만[편집]

사:Aubelumiere님은 저와 생산적인 토론을 의도했던 것이 아니라 분란 조장이 목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백:중재를 확인해봤는데 의견 요청과 백:조정이 먼저입니다. 사실 전 이 의도로 두 분께 제안을 드렸었고 또 다른 제안으로 북한의 지도를 논란 항목으로 이동시키는 것이 어떤지 여쭈어봤었습니다. 그런데 님께서는 (이전의 결정이 내심 맘에 안 들었다 하시더라도) 기존 판에 대해서 저와 합의를 보셨었고, 한편으로 Aubelumiere님께는 최대한 정중하게 대하고 백:분쟁도 발생시키지 않기 위해 토론에만 임했으며, 본항목 토론문서에 불필요한 내용들이 너무 많아진 것 같아 Aubelumiere님의 사용자토론문서에 글을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Aubelumiere님은 자신의 사용자토론문서에서 저를 무시하는 것으로 일관하시므로 사용자 관리 요청을 하는 것으로 이번 건을 매듭짓겠습니다. 덧붙여 '필사적(?)'이라는 표현은 정말 거슬립니다. 님께서도 은근히 도발적인 표현들을 끼워넣으시는데 이런 태도들 불편합니다. 위키백과 내에서 토론을 할 때는 원래 이렇게 중간중간에 남에 대한 공격적 표현들을 끼워넣어야 하는 겁니까...?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2월 26일 (목) 07:34 (KST)답변

필사적이라는표현이 거슬렸다면 사과드리지만 솔직히 저로서도 일단술먹고님의 표현중에 거슬리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그렇다고해도 한창 토론이 진행중인데 사관 요청을 하신 것은 정말 납득을 할 수 없습니다. 저도 님에 대해서 사관 요청을 못해서 그냥 있은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결국 편집 분쟁에 전혀 도움이 되지않는다고 판단됩니다. 합의없이 일시적으로 토론 상대방을 차단시킨들 그것이 도대체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결국 언제가는 다람쥐 쳇바퀴돌듯 다시 분쟁이 발발할 것 아니겠습니까? 하여간 님의 토론 페이지에 건의드린대로 Aubelumiere님의 2주 차단 기간동안 일체의 논쟁이나 편집을 중단합시다. 만약 이틈을 타서 낙랑군 문서를 편집하신다면 분쟁을 이용해서 합의없이 문서 편집을 강행하는 경우는 명백히 차단의 사유가 되므로 즉시 사관 요청할 것입니다.--Lhrdrth (토론) 2015년 2월 27일 (금) 00:29 (KST)답변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다면 사과합니다. 그때그때 말씀해주셨으면 더 좋았을텐데..... 제 사용자토론 문서에 글 남겼습니다. 항상 좋은 일이 있기를 바랍니다. 일단술먹고합시다 (토론) 2015년 2월 27일 (금) 02:11 (KST)답변

차단 알림[편집]

Stop icon with clock
이 사용자는 방해 편집으로 1년동안 차단되었습니다. 차단이 만료된 후에, 생산적인 기여를 하실 수 있습니다. 자신이 차단 해제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차단 재검토에 관한 내용을 읽은 후에, {{차단 재검토 요청}} 틀을 사용하여 차단의 재검토를 요청해 주세요.  — regards, Revi 2015년 3월 6일 (금) 17:46 (KST)답변
아니 지금 들어오니 갑자기 1년 차단이라니 정말 황당하군요. 본인의 반론 기회도 없이 일방적 여론 재판으로 1년 차단이라? 뭘보고 귀하가 방해편집이라고 하는지는 몰라도 저는 양보할 때는 하고 하나하나의 반론에 충분한 근거를 댔습니다. 저번 차단에도 다수결로 여론몰이식으로 차단이 결정되는 것 같아서 참으로 위키백과에서의 활동에 회의감을 느꼈는데 어차피 지겨운 편집분쟁에도 지칠만큼 지쳤고 이런 일까지 당하고 보니 정말 당분간은 여기 얼씬도 하기 싫어지는군요. 그동안 여기서 저를 도와주신 분들께는 그동안 진심으로 감사했다는 말씀 올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오.--Lhrdrth (토론) 2015년 3월 6일 (금) 19:27 (KST)답변

차단 기간 1년동안 위키백과를 완전히 떠납니다.[편집]

개인적으로 이번 1년 차단이 매우 어이가 없고 도저히 납득이 안가서 차단 재검토 요청을 심각히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이런 환경 속에서 위키백과에서 활동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차단 기간 1년동안 위키백과를 완전히 떠납니다. 그러므로 그동안은 행여 여기에 글을 남기셔도 답변이 없을것임을 미리 양해드리며 글을 남기시지않는 것이 좋겠습니다.--Lhrdrth (토론) 2015년 3월 7일 (토) 22:46 (KST)답변

개인적으로 1년 전에 낙랑군 등 한국고대사 관련 토론 내용을 살펴보았고, Lhrdrth 님이 1년간 차단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Lhrdrth 님이 관리자의 장기 차단 조치에 대해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위키백과를 1년간 떠나시는 바람에, 제가 별다른 의견을 내지 못하였습니다. 어느새 이미 1년이 훨씬 넘는 긴 시간이 흘렀군요. 혹시 지금이라도 위키백과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다시 돌아오신다면 위키백과 공동체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6년 8월 20일 (토) 04:17 (KST)답변
아사달님 정말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동안 잘지내셨는지요? 솔직히 그때 변변한 변론 기회도 없이 아무런 제재도 받지않았던 예전의 모든 토론까지 문제삼아 방해편집이라는 명목으로 갑자기 1년이나 차단당하고 나니 정신적 충격이 정말 너무 커서 차단 재검토 신청이고 뭐고 도대체 이럴 수가 있나 환멸이 느껴져서 그냥 위키백과를 떠나고만 싶었습니다.
지금 보니 Aubelumiere님께서도 위키백과를 떠나신 것 같은데 그분이 그때 차단신청 등 상대방에 강경 대응하라고 많은 조언을 해주셨는데 결국 결과가 이렇게되고 보니 그분께서 위키백과를 떠나신 것도 다 제탓 같아서 너무 그분께 송구한 마음입니다.
그때의 차단에 대한 재검토 신청을 하면서 활동을 다시 재개하려고 하는데 제가 팔꿈치 척골 신경이 최근에 조금 다쳐서 가능하면 마우스를 잡지말고 스마트폰 사용을 자제하라는 처방을 받아서 다소 약간의 시간이 걸리는 등 차질이 생길 것 같습니다.
예전부터 항상 이렇게 배려해주심에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좋은 하루되십시오.--Lhrdrth (토론) 2016년 8월 20일 (토) 12:59 (KST)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