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비잔티움 제국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저작권 위반[편집]

과거 알찬글 토론에서 정안영민님께서 찾아주신 부분은 계속 근원을 찾아봤습니다. 비잔티움 제국의 행정, 법 등에 대한 글이지요. 이 글은 아마 원광대의 어느 경영학부생이 쓴 (아마 역사학 교양 수업이었을 듯) 숙제를, 그 학교 사학과에서 자료로 사학과 홈페이지에 모아둔 것이 네이버, 다음 등으로 퍼진 것 같더라구요. (정말 지식 문답, 웹 카페, 블로그 등에 널리 퍼져있는데, 아무도 제대로 출처를 모르고 그저 '네이버 펌글' 정도로 밝혀놓더라구요. 인터넷 지식의 신뢰성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됐지요.) 원광대 사학과 자료실의 원문을 보니 '비잔틴 제국의 역사'(미셸 카플란, 시공사), '비잔티움 제국사'(오스트로고르스키)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두산엔싸이버 백과사전 내용을 그대로 짜깁기한 내용이었습니다. 각주도 없이 참고문헌으로만 밝혀놓았던데 그 자체로도 괘씸한 일이지만, 그런 과제를 받아준 교수에 대해 더 화가 나더라구요.(그걸 또 사학과 자료실에 올리기까지 하였으니 말이죠.) 물론 이런 제 추론이 잘못된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만... 저작권 위반 문서가 위키의 비잔티움 제국 문서까지 넘어온 경위는 위와 같으리라 봅니다.

또 역사 부분에서 '중기', '후기'는 내용 대부분이 어느 레포트 자료(비잔틴 제죽(!!!!)의 발전역사와 문화)에서 퍼온 것 같습니다. 문단별로 몇 문장씩 구글링해보니 이곳 출처로 나오는 부분이 많더라구요. 이 레포트 출처는 '비잔틴 제국의 역사'(워렌 트레드골드), '비잔틴 세계의 미술'(데이비드 탤벗 라이스), 상술한 미셸 카플란 책, 네이버 백과사전이라고 나와있군요. 궁극적으로는 이 부분 전체를 지우는 것이 맞으리라 봅니다. Plinio (토론) 2009년 7월 11일 (토) 14:21 (KST)

저작권 문제되는 부분 모두 지웠습니다. 대충 어디에 나오는지 알겠는데, 나중에 시간나면 책 찾아서 본문 내용 보강하는데 쓰면 좋을듯하네요.

정치[편집]

이데올로기[편집]

비잔티움 제국은 스스로를 ‘로마 제국’이라고 칭하고 있었다. 그리고, 로마 제국은 ‘문명 세계 모두를 지배하는 대제국’이며 ‘하느님에 의한 최후의 심판이 일어날 때까지 계속 되는, 지상의 마지막 제국’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정치 체제[편집]

비잔티움 제국은 고대 로마 제국의 수준 높은 이념과 제도를 그대로 이어받으면서 거기에 종교적 권위와 오리엔트적인 전제 정치를 더하여 매우 엄격한 전제군주적 황제권과 관료 정치를 시행하였다.

비잔티움의 황제원로원, 시민, 군대에 의해 추대되어 지상을 책임지는 하느님의 대리자이고 제국은 천국의 예표이며, 최후의 심판이 올 때까지 정통 그리스도교 신앙을 지키도록 하느님이 임명한 단 하나의 후견인으로서 사도들과 대등한 종교적 권위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황제는 정치·군사·종교 등에 대해 무한적인 절대 권력을 휘둘러왔으며, 제국의 백성들은 스스로 황제의 노예임을 자청하며 오로지 그의 은혜만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하였다.

콘스탄티노폴리스는 로마와 마찬가지로 특별행정구로서 거리의 치안 유지, 식량 확보, 시민의 재판권, 상업 활동 규제와 보호 등 시민 생활에 관한 모든 행정상의 처리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독이 맡았다. 국가 정치의 중추인 궁정에서는 재상, 재무대신, 궁정재무장관, 궁정장관, 시종장 등이 황제를 도와 업무를 처리하였다. 원로원은 황제의 공식 자문기관으로서 정권 교체나 제위가 비게 되었을 때, 또한 새 황제의 등극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통치체제가 지배하는 비잔티움 제국은 대외적으로 언제나 2가지 정면 작전을 세워야만 하였다. 즉 동쪽의 사산조 페르시아와는 전시대부터 계속하여 전투 상태에 있었으며 이것은 율리아누스의 전사,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일시적 평화조약 체결에 이르기까지 단속적으로 계속되었다.

이 시대의 속령 통치 방식 및 중앙집권체제 안에서의 가장 큰 변화는 대외정세 변화에 촉구된 군사력의 강화와 문관 세력의 약화이다.

군사력의 강화는 제국령의 양두 지배에서 테마 제도로의 전환이며, 문관 세력의 약화는 〈디오클레티아누스-콘스탄티누스 제도에서 군사와 세무를 중시하는 로고시트 제도로의 전환이다. 이들 모두 옛 로마적 행정제도에서 변신한 것이다. 테마 제도는 헤라클리우스의 치하에서 비롯된 국령의 전체적 저하를 보충하기 위한 비상 수단으로, 지방 영지의 자급자족을 목적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이 제도는 점차 정비되어서 마케도니아 황조의 번영시대의 기초가 되었다. 제국의 성운은 테마 제도의 성쇠에 달려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즉, 지방 호족 및 중앙의 고급 관료, 군인, 성직자로 이루어지는 대토지 소유자층이 중소자유농민층을 흡수하여 테마 제도를 침식하였으며, 거듭되는 대외 위기에 따른 내정의 혼란이 테마 제도의 기능을 위협할 때 제국의 성운도 흔들렸다. 대토지 소유자층의 증대는 이미 8세기 무렵부터 현저하게 나타났다. 9세기 초, 니케포루스 1세 또는 니케포로스 1세는 대토지 소유자층의 재력을 강제적으로 정부에 되돌리려고 하였다.

10세기로마누스 1세 또는 로마노스 1세를 비롯한 여러 황제들은 중소자유농민 농지의 전매, 기증, 유증을 금지하여 대토지 소유자층의 증대를 막으려고 노력하였다. 또한 납세의 연대제 강화, 대토지 소유자의 선매권 금지 증의 보호책으로 중소자유농민층을 보호하려고 하였지만 이러한 정책은 결국 국세에 의한 수입 확보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11세기 초엽 대토지 소유자층 출신인 로마누스 3세 또는 로마노스 3세가 종래의 보호책을 폐지하고 대토지 소유자층을 옹호하는 정책을 펼쳐 중소자유농민층이 몰락하기 사작하였다.

또한 7세기~9세기에 걸쳐 외적들의 침임이 끊이지 않았으며 그 때문에 중앙정부 내부에서는 군사와 세무 관계를 다루는 부국의 중요성이 커졌다. 이들 부국장은 정치의 중추를 차지하여 〈디오클레티아누스-콘스탄티누스 제도〉 아래의 여러 관료들과 교체되었다. 즉 로고시트 제도가 등장한다. 이것은 원래 회계 담당을 뜻한다. 이 제도의 중심은 회계국장이며 외무대신직과 내무대신직을 겸하는 역체국장과 함께 큰 권력을 가졌다. 그런데 관료 기구의 정비와 함께 황제는 자신이 신임하는 사람을 이 관료 기구의 요소에 두어 이것을 장악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행정 기구의 개조는 대외적 요인에 따른 것으로, 그 첫 번째 요인은 7세기 전반부터 시작하여 9세기 후반까지 계속된 이슬람과의 싸움이며, 두 번째 요인은 불가르족의 등장이다. 7세기 중엽에 발칸 반도 북부에 나타난 불가르족은 제국령 안에 최초의 독립 국가인 제1차 불가리아 왕국을 세웠다. 세 번째 요인인 슬라브족은 일찍부터 남하하여 정주하고 있었는데 독립국가를 만들지 않고 선주민인 그리스계 주민들과 융화되어 그리스 민족을 슬라브화하였다. 그러나 9세기 초에는 슬라브족에게 점령된 지역을 그리스 남부에서 탈환하기 시작함에 따라 슬라브족이 그리스화 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9세기 중엽에는 나중에 키예프 공국을 세우게 되는 루스족이 처음으로 콘스탄티노폴리스 인근에 나타났는데 988년 키예프 대공 블라디미르 1세동방 정교회를 국교로 선언함에 따라 키에프 대공국도 동유럽의 유력한 일원이 되었다. 이렇게 대외 위기를 극복하고 행정·국방 기구의 정비와 중소자유농민층의 번영을 배경으로 비잔티움 제국은 바실리우스 2세 또는 바실리오스 2세 때, 아르메니아와 시리아의 연안지대, 다뉴브 강 이남 발칸 반도를 다시 제국령으로 편입시키키는 등 유스티니아누스 1세 이후 최대 영토를 얻었다.

바실리우스 2세가 죽은 후 비잔티움 제국은 내부에서는 혼란이 거듭되고, 이탈리아 지역에서는 노르만족이, 도나우 강 유역에서는 페체네그족이, 동쪽에서는 신흥 세력인 셀주크 투르크가 제국을 위협했다.

1071년 로마누스 4세 또는 로마노스 4세가 20만 병력을 이끌고 제국의 위협 세력으로 떠오른 셀주크 투르크를 침공했다. 전쟁 초기에는 압도적인 병력을 지닌 비잔티움군이 우세를 점했으나, 밀린 보수에 대한 불만으로 제국 영내를 약탈한 독일계 용병들의 반란, 투르크 계열의 유목민족의 이탈, 분산시킨 병력의 패배, 호위대를 지휘하던 안드로니쿠스 두카스의 배반, 결정적인 순간에서 명령계통의 혼란 등 겹쳐진 악재로 비잔티움군은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셀주크군의 4만 병력에 크게 패배한다. 이어 셀주크군은 비잔티움 제국의 주요 병력 제공 지역이었던 아나톨리아 등 동부 지역을 완전히 초토화시켜 제국을 철저하게 와해시켰다.

후기[편집]

수도를 빼앗긴 옛 비잔티움 제국 세력은 니케아 제국, 에페이로스 공국, 트라페주스 제국 등 곳곳에 망명 정부를 세웠다. 이 망명 정권 가운데 하나인 니케아 제국은 불과 반세기 사이에 주변의 외적들을 무찌르거나 화친을 하였으며, 1259년 미카일 8세팔라고니아 전투에서 승리하여 그 지위는 확고해졌다. 그리고 1261년 미카일 8세는 옛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라틴 제국에서 수복하여 팔라이올로고스 황조 시대를 열고 비잔티움 제국을 부활시켰다.

그러나 부활한 비잔티움 제국은 국내외적으로 많은 문제를 떠안게 되었다. 대외적으로는 13세기 후반에 콘스탄티노폴리스 탈환을 노리는 반(反)비잔티움 세력에게 시달렸다. 앙주 가문의 책동으로 옛 보두앵 2세는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략에 나섰는데 미카일 8세는 1282년에 일어난 시칠리아 만종 사건으로 위기를 넘겼다. 그러나 국내 봉건화에 따른 악폐는 더욱 심해졌으며 행정의 혼란, 경제활동의 부진, 외국인 용병의 증가는 신민들의 세금을 더욱 무겁게 하였다. 이러한 내정상의 악순환은 외정상의 실패로 이어졌다.

가장 큰 실패는 14세기 발흥한 오스만 제국에 대한 정책이었다. 소아시아의 부르사에 수도를 두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던 오스만 제국은 니코메데이아니케아 두 도시를 점령하였다. 이러한 상황에 당면했지만 국내 제위 계승 문제로 효과적인 대책을 세울 수가 없었다.

1365년 오스만 제국의 술탄 무라트 1세가 수도를 아드리아노폴리스로 옮기자 비잔티움 제국은 바다에서는 베네치아 공화국제노바 공화국에, 육지에서는 오스만 제국에게 둘러싸인 동지중해의 작은 나라로 전락하였다. 이때부터 비잔티움 제국은 오스만 제국에게 조공을 바쳐야만 했으며 이로써 비잔티움 제국은 정치적 독립을 상실하게 되었다. 계속해서 오스만 제국이 세르비아와 헝가리를 물리치자 발칸 반도에서 오스만 제국에 대항할 세력은 없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비잔티움 제국은 동방 정교회로마 가톨릭의 재통일을 조건으로 로마 교황청을 통해 서유럽으로부터 군사 원조를 얻으려고 하였지만 이마저도 실패로 끝났다. 무라트 2세 이후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략은 날로 심해졌으며, 1453년술탄 메흐메트 2세는 농성군의 10배나 되는 병력으로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포위하여 5월 총공격을 시작하였다.

이로써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되어 비잔티움 제국은 멸망하게 되었다. 뒤이어 아테네, 모레아, 트라페주스 제국이 차례로 오스만 제국에 점령당하였다.

Brahmsian (토론) 2010년 11월 17일 (수) 03:11 (KST)

자동 번역 투[편집]

첫 몇 문단은 그럭저럭 이해할 만한데, 이후로 갈 수로 이해가 안될 정도로 자동 번역 결과가 남아 있습니다. 편집이 필요합니다. --케골 2014년 9월 21일 (일) 01:14 (KST)

1번 주석을 어디서 확인할 수 있나요?[편집]

1번 주석 내용이

"James (2010), p. 5: “처음부터 로마 제국과 비잔티움 제국은 두 가지 주된 차이점이 있었다. 비잔티움은 존속 기간 대부분 라틴 문화가 아닌 그리스 문화와 가까웠고 그리스어를 쓰는 제국이었으며, 기독교 제국이었다.”"

인데 James를 클릭해도 아무 변화가 없습니다. 원래 책 제목 등등이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요?--잔글러 (토론) 2014년 11월 19일 (수) 16:22 (KST)

외부 링크 수정됨 (2018년 7월)[편집]

안녕하세요 편집자 여러분,

비잔티움 제국에서 11개의 링크를 수정했습니다. 제 편집을 검토해 주세요. 질문이 있거나, 봇이 이 문서나 링크를 무시하기를 바라신다면 간단한 자주 묻는 질문에서 더 많은 정보를 찾아보세요. 다음 변경사항을 적용했습니다:

봇의 문제를 수정하는 것에 관해서는 자주 묻는 질문을 참조해 주세요.

감사합니다.—InternetArchiveBot (버그를 제보하기) 2018년 7월 24일 (화) 09:53 (KST)

외부 링크 수정됨 (2019년 4월)[편집]

안녕하세요 편집자 여러분,

비잔티움 제국에서 2개의 링크를 수정했습니다. 제 편집을 검토해 주세요. 질문이 있거나, 봇이 이 문서나 링크를 무시하기를 바라신다면 간단한 자주 묻는 질문에서 더 많은 정보를 찾아보세요. 다음 변경사항을 적용했습니다:

봇의 문제를 수정하는 것에 관해서는 자주 묻는 질문을 참조해 주세요.

감사합니다.—InternetArchiveBot (버그를 제보하기) 2019년 4월 12일 (금) 17:01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