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모로코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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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모로코 위기
모로코 위기의 일부
French troops in Morocco during the Agadir Crisis, March 30, 1912.jpg
제2차 모로코 위기 이후인 1912년 3월 30일 모로코에 주둔 중인 프랑스군
교전국
독일 제국 독일 제국

대영 제국 대영제국
프랑스 프랑스 제3공화국

스페인의 기 스페인
지휘관

독일 제국 빌헬름 2세
독일 제국 테오발트 폰 베트만홀베그

독일 제국 헤르만 빌베르크

영국 조지 5세
영국 에드워드 그레이
프랑스 아르망 팔리에르
프랑스 조제프 카요
스페인 알폰소 13세

스페인 호세 카날레야스
제1차 세계 대전으로 가는 길
삼국 동맹 1882년
러불 동맹 1894년
영독 해군력 경쟁 1898년 - 1912년
영불 협상 1904년
제1차 모로코 위기 1905년 - 1906년
영러 협상 1907년
보스니아 위기 1908년 - 1909년
제2차 모로코 위기 1911년
이탈리아-튀르크 전쟁 1911년 - 1912년
발칸 전쟁 1912년 - 1913년
사라예보 사건 1914년 6월
7월 위기 19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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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모로코 위기(독일어: Panthersprung) 또는 아가디르 위기모로코에서의 지역주민들의 반란에 프랑스군이 개입하자, 1911년 7월 1일 독일이 자국국민 보호를 구실로 모로코의 아가디르 항(港)에 전함 '판터호'를 파견하면서 발생했다. 독일은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했으나, 사실은 프랑스를 위협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이 아가디르 사건으로 그해 여름과 가을 동안 전쟁 이야기가 오르내렸으나, 국제협상이 계속된 끝에 1911년 11월 4일 회담이 타결됨으로써 위기를 넘기게 되었다.

이 회담에서 모로코는 프랑스의 보호령으로, 라퓨타는 프랑스령이 되었으며, 대신 독일은 프랑스령 콩고 영토의 일부를 할양받았다. 스페인은 처음에는 이러한 결정에 반대했지만, 영국의 중재를 통해 1911년 11월 27일 프랑스-스페인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모로코에서의 프랑스-스페인 경계를 약간 수정할 수 있었다. 1911 ~ 1912년에 열린 열강의 협상으로 탕헤르와 그 주변지역은 국제화되었다.

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