슐리펜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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슐리펜 계획(독일어: Schlieffen-Plan 슐리펜플란[*])은 제1차 세계 대전 벽두인 1914년 8월 프랑스와 벨기에를 침공한 배경이 된 독일의 전쟁계획이다. 1891년에서 1906년 사이에 독일 제국 대장군참모총장을 역임한 알프레트 폰 슐리펜 야전원수가 1905년에서 1906년 사이에 수립한 계획으로서, 프랑스 제3공화국을 1개 전선에서 상대하여 승리하기 위한 공세계획이었다.

1차대전 종전 이후 국가기록보관소 등에 소속된 독일의 관제사학자들은 슐리펜 계획 자체는 필승의 청사진이었으나 슐리펜의 후임자 소 몰트케 상급대장(1906년 ~ 1914년 독일 육군 총사령관 역임)에 의한 계획 실행 단계에서 심각하게 훼손되었다고 자평했다. 이러한 조류를 이끈 것은 예비역 대령 볼프강 푀르스터로서, 그 외에도 헤르만 폰 쿠흘, 게르하르트 타펜, 빌헬름 그뢰너 등 독일군 고급장교들의 회고록으로 인해 속전속결로 끝났어야 할 슐리펜 계획이 4년간의 소모전으로 변질된 것은 순전히 몰트케의 잘못이지, 절대 독일의 전략적 계산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서사가 성립되었다.

그러나 1956년 게르하르트 리터의 《슐리펜 계획 미신 비판》(Der Schlieffenplan: Kritik eines Mythos)이 출판되면서 상술한 통설에 대한 재평가가 시작되었다. 슐리펜 계쇡의 세부사항들에 대한 철저한 검토와 맥락화가 이루어졌고, 슐리펜 계획이 승리를 위한 어떤 청사진이라는 관점은 기각당하게 된다. 필승의 설계도 따위가 존재한다는 생각은 군사작전은 선천적으로 예측불가능하다고 역설한 대 몰트케 이래로 정립된 프로이센의 전쟁계획 전통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동계획이나 배치계획은 만들어질 수 있으나, 전역계획 따위는 아무짝에도 의미가 없다. 전략이란 하부 지휘관 각각을 모두 조종할 수 있도록 짤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작전의 목적이 주어지면 지휘관들의 재량에 따라 임무형 전술로써 그 목적을 성취해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1970년대부터는 마르틴 반 크레베드, 존 키건, 휴 스트라찬 등이 벨기에-룩셈부르크를 통한 프랑스 침공작전의 실용적 측면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들에 따르면 독일-벨기에-프랑스 철도망과 벨기에-북프랑스 도로교통망은 그 물리적 한계로 인하여 충분한 수의 병력을 충분히 빠르게 이동시킬 수 없었고, 때문에 독일은 프랑스군을 국경지대 너머로 쫓아내기만 하면 결정적 전투를 벌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1914년 이전에 대장군참모들이 작성한 계획들은 대부분 기밀이었고 관련 문서들은 1945년 4월 포츠담 폭격으로 프로이센 육군기록보관소가 파괴댈 때 몽땅 소실되었다. 폭격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기록들은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이 무너지고 독일이 재통일 된 뒤에야 접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 자료들로 인해 최초로 독일의 전쟁계획에 대한 윤곽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1918년 1차대전 종전 이후에 나온 분석들이 대부분 틀렸다는 것이 밝혀졌다. 1930년대 독일에서 1차대전 이전 독일 참모본부의 전쟁계획을 연구하는 데 쓰인 문서 RH61/v.96 같은 경우 2000년대 들어서야 구 동독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테렌스 쥐베르는 1999년부터 《슐리펜 계획 만들기》(2002년), 《진짜 독일 전쟁계획》(2011년) 등의 저서를 발표하면서 슐리펜 계획 자체가 1차대전 종전 이후인 1920년대에 독일의 전쟁계획이 1차대전을 일으켰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자기변호자들에 의해 날조된 신화라는 매우 논쟁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 휴 스트라찬 등은 쥐베르의 이런 주장에 공감하고 있는 반면 테렌스 홈스, 아니카 몸바우어, 로버트 폴리, 게르하르트 그로스, 홀거 헤드비히 등은 쥐베르의 이론을 평가절하하며 그와 논쟁을 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