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다오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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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다오 전투
제1차 세계 대전의 일부
Beijing students protesting the Treaty of Versailles (May 4, 1919).jpg
날짜 칭다오 봉쇄
1914년 8월 27일 ~

해상 작전
1914년 10월 17일 ~ 11월 7일

포위전
1914년 10월 31일 ~ 11월 7일
장소 독일령 자오저우 만 칭다오
결과 연합국의 승리
교전국
일본 제국 일본 제국
대영 제국 대영 제국
독일 제국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지휘관
일본 제국 사다키치 카토
일본 제국 카미오 미쓰오미
대영 제국 나타니엘 발터 베르나디스톤
독일 제국 알프레드 메이어발데크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리차드 마코비치

칭다오 전투(독일어: Belagerung von Tsingtau)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군이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하면서 영국군, 이탈리아군과 연합으로 중국 칭다오에 머물고 있던 독일*오스트리아군을 침략해 몰아낸 사건을 말한다. 이 전투로 일본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공로를 인정받게 되었다. 후에 칭다오는 일본의 조차지가 되었고, 이는 5·4 운동이 일어나는 원인이 된다.

배경[원본 편집]

1912년, 청나라가 붕괴하고 중화민국이 건립된 이후, 중국은 일본, 독일 등 열강으로부터의 해방을 추진했으나 번번이 실패하였다. 1914년, 중화민국은 독일 제국이 강탈한 칭다오산둥 반도를 탈환하고자 제 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였고, 중국으로 진출하려던 일본 제국이 독일과 싸우고 있던 영국이탈리아와 연합하여 중화민국의 전쟁에 참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