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준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유승준
Steve Sueng Jun Yoo
출생1976년 12월 15일(1976-12-15) (42세)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송파구 잠실동
국적미국
직업가수, 배우
활동 기간1997년 ~ 2001년
종교개신교
소속사JC그룹 인터내셔널
형제자매유승환(형)
배우자오유선(크리스티나 오)
자녀2남 2녀

스티브 승준 유(Steve Sueng Jun Yoo[1][2], 1976년 12월 15일 ~ )는 대한민국중화인민공화국에서 활동한 한국계 미국인 가수배우이다. 대한민국에서는 미국 시민권 취득 이전의 한국 이름인 유승준(劉承俊)으로 흔히 불린다.

생애[편집]

유승준은 1976년 12월 15일 서울특별시 송파구 잠실동에서 2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만 12세의 나이에 가족과 함께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오렌지 카운티로 이민을 떠났다.

1997년에 데뷔하여 타이틀곡 〈가위〉로 8월에 가요 순위 1위를 석권하였다. 2001년까지 대한민국에서 6장의 정규 음반을 발표하며 〈나나나〉, 〈열정〉, 〈비전〉, 〈찾길 바래〉 등의 곡으로 활동하였다.

원래 미국 영주권자였던 그는 방송을 통해 한국 군 입대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2002년 1월 대한민국 군입대가 확정되자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며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면서 병역을 면제받았다. 대한민국 병무청은 출입국관리법 11조에 의거해 입국 금지 조치를 내렸고, 법무부는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해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이유가 있는 자'에 해당한다며 입국을 제한했다. 2002년 2월 2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출입국관리법에 11조에 의거하여 입국이 금지되었다. 사건 이후 단 한차례, 2003년 6월 약혼녀 부친의 장례식에 참석을 하기 위해 3일동안 일시 입국을 허가받고 방문한 적이 있었다.

2004년 9월 25일 미국에서 결혼하였고, 중화인민공화국에서 배우와 가수로 활동했다.

2015년 9월 LA총영사관에 재외동포 비자(F-4)를 신청했으나 거부되자 10월 거부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그러나 1·2심은 "유승준이 입국해 방송·연예 활동을 할 경우 병역 의무를 수행하는 국군장병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병역의무 이행 의지를 약화시켜 병역기피 풍조를 낳게 할 우려가 있으므로 적법한 입국 금지 사유에 해당한다"며 비자 신청 거부는 출입국관리법 시행규칙에 따른 적법한 조치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2019년 7월 11일 대법원은 비자발급 거부 처분에 행정절차를 위반한 잘못이 있다며 항소심 재판을 다시 하라고 결정했다.

병역기피 논란[편집]

2001년까지 국내에서 가수로서 그리고 각종 연예 프로그램과 광고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던 유승준은 2002년에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면서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했다. 이민 1.5세대로서 만 12살의 어린 나이에 이민을 갔기 때문에 가족과 함께 살기 위한 필요에 의한 선택이자 적법한 권리 행사로 보이지만 병역을 기피하기 위해서라는 주장이 매체를 통해 확산되었다. 이는 2002년 2월 2일에 인천공항에서 유승준이 대한민국에 입국을 금지 당하면서 더욱 큰 이목을 불러일으켰다.

미 시민권 취득과 입국금지[편집]

유승준은 대구광역시 달서구 죽전동의 대구경북지방병무청 징병검사장에서 받았던 신체검사 결과 4급 판정으로 받아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할 예정[3]이었다. 그러나 미국 시민권을 취득함으로 인해 후천적 외국 국적 취득자의 이중 국적을 인정하지 않는 대한민국 법규상 대한민국 국적이 상실되었고 이로 인해 2002년 2월 2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출입국관리법상 제11조에 의거하여 입국이 금지되었다. 이는 대한민국 병무청대한민국에 입국하여 영리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법무부에 입국을 금지토록 협조를 요청한데 따른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 병무청은 그의[4] 입국을 영구히 금지할 방침이라고 입장표명하였다.

약혼녀 장인 부고로 인한 입국 그리고 문상으로 인한 입국허용[편집]

1년 후인 2003년 6월 26일 약혼녀 부친의 부고를 듣고 문상을 위해 한국에 입국을 신청하였다. 이에 법무부는 문상을 위한 목적하에 3일간 제한적으로 한국내 입국을 허용하였다. 일시적이지만 유승준은 결국 미국인으로 귀화를 한지 1년만에 드디어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는 방한 인터뷰를 통해서 이제서라도 잠시이지만 한국땅을 밟을 수 있어서 기쁘게 생각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법무부는 문상으로 인한 제한적인 입국허용이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연예활동은 할 수 없도록 조치하였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를 두고 인천공항에는 유승준을 환영하는 팬들과 유승준을 비난하는 군필 청년과 현역 군인으로 복무중인 청년들이 몰려오면서 환호와 야유를 보내면서 소란이 벌어졌다. 유승준 팬들은 유승준을 환영하여 그에게 환호를 하였지만 군필 및 현역병으로 있던 청년들은 유승준을 비난하여 미국으로 돌아가라고 야유를 보냈다. 여기에 취재를 나온 국내외 언론 기자들까지 경쟁하여서 인천공항이 복잡한 상황을 이루었다.

결국 이를 의식한 모양인지 유승준은 약혼녀 부친 문상을 마치고 입국 다음날인 6월 27일 밤에 미국으로 돌아갔다.[5]

입장표명[편집]

2002년에 연예계를 떠난 후, 5년 만인 2007년중화인민공화국에서 국내 언론과 인터뷰를 가진 그는 국적 포기라는 결정에 대해, 당시 어려서 대한민국 국민들의 감정을 잘 헤아리지 못한 결과라고 밝혔다.[6]

또한 월간지 《여성조선》 2009년 2월호에 실린 인터뷰에서 그는 "병역을 기피하기 위해 시민권을 취득한 것이 아니다."라고 발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권을 취득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시민권을 수령한 시점으로부터 2년 전에 이미 아버지에 의해 가족전체의 미국 시민권이 신청되어 있었지만 신체 검사를 받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여 공익근무를 하고자 했다. 따라서 신체 검사 이후에 있었던 시민권 취득을 위한 1차 시민권 선서식에 불참했으나 그럼에도 시민권을 취득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가족이었다. 신체검사를 받은 직후 미국에서 9.11 테러가 발생, 이 때문에 이민법이 강화되면서 기존에 신청되어 있던 시민권 취득을 거부할 경우 추후에 다시 신청하려고 해도 시민권은 물론이고 비자조차 쉽게 받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게 되었다. 따라서 공익근무로 인해 영주권 마저 상실되면 가족이 있는 미국에 잠시도 머물 수 없게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가족의 반대가 상당했다. 소속사 문제와 계약 이행에 대한 문제 또한 있었다. 당시의 소속사는 소속 연예인이 유승준 밖에 없어서 그가 공익근무로 인해 활동을 못하게 되면 문을 닫게 되는 상황이었고 2001년 초에 했던 앨범 계약을 이행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2007년 7집 《Rebirth of YSJ》 발매를 하면서 수익금 전액 사회환원과 같은 조치도 취하면서 국내 언론에 유승준에 대한 기사가 대두되기도 하고 중국에서 케이블 매체와 했던 눈물의 인터뷰가 방송되기도 하였으나 전반적인 국내의 여론은 냉담하였다.[7]

대한민국 병무청의 관계자는 아프리카 인터넷 TV 생방송에서 유승준이 말했던 2014년 7월에 입대문의를 했다는것도 거짓발언이며, 그는 작년에도 입대가 가능했다고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병무청의 이와 같은 발언에 대해 유승준은 지인을 통해 알게된 육군소장에게 입대 가능한지 여부를 물었다고 말하면서 본인의 일임에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본인의 잘못이라고 사과했다. 하지만 유승준은 80년대 이전 출생자로서 기존 병역법에 의해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입대 불가능, 1980년 1월 1일생 이후부터 바뀐 병역법에 의해 만 37세까지 입대가능하다. 이에 병무청 측근은 추후 정정하며 유승준이 작년에도 입대가 불가능했음을 시인했고 나이를 떠나 외국인이라 입대 불가능이라고 선언했다.

루머[편집]

일본 콘서트 때문에 병무청 직원 2명이 보증을 섰다는 논란에 대해 병무청은 유승준이 일본 콘서트를 앞두고 직접 지인 2명을 보증인으로 세우고 콘서트가 끝나면 대한민국에 돌아오겠다고 서약하는 조건으로 병무청의 허가를 받은 뒤 일본으로 출국했다고 전했다.

해병대 홍보대사로 활동했다는 논란에 대해서도 해병대 홍보대사로 운용된 바가 없고 그런 활동을 할 자격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고 답변했다.

6개월 단기 공익 요원 근무 여의도 배치 공익근무 시간 외 영리 목적으로 공연 및 콘서트 허용에 대해 병무청 부대변인은 영리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법률에 나와 있다며 법에서 허용하지 않는 부분을 병무청에서 무슨 보장을 해주냐고 연예가중계에서 언급하였다.

학력[편집]

음반 목록과 대표곡[편집]

  • 1997년 1집 《West Side》: 〈가위〉, 〈사랑해 누나〉
  • 1998년 2집 《For Sale》: 〈나나나〉, 〈내가 기다린 사랑〉
  • 1999년 3집 《Now Or Never》: 〈열정〉, 〈슬픈 침묵〉
  • 1999년 삼성전자 매직 스테이션 이미지송 〈매직 인터페이스〉
  • 1999년 4집 《Over And Over》: 〈비전〉, 〈연가〉
  • 1999년 CD-Inhanced “표범”
  • 2000년 5집 《고지탈환(高地奪還)》: 〈찾길 바래〉, 〈어제 오늘 그리고...〉
  • 2001년 6집 《Infinity》: 〈Wow〉, 〈성원〉
  • 2006년 Promise to Jun (중국 발매반)
  • 2007년 7집 《Rebirth of YSJ》: 〈My world〉, 〈잊지못해서; Missing U〉
  • 2019년 《Another Day》: 〈Another Day〉

기타[편집]

수상 경력[편집]

가요 프로그램 1위[편집]

연도 수상 내역 (총 46회)
1997년 (총 7회)
1998년 (총 7회)
1999년 (총 15회)
2000년 (총 10회)
2001년 (총 7회)

출연작[편집]

영화[편집]

방송[편집]

시트콤, 드라마[편집]

광고 활동[편집]

각주[편집]

  1. 이제부터는 '스티브 승준 유(Steve Seung Joon You)'다 - 노컷뉴스
  2. 방송:공항서 쫓겨난 유승준 "비난 감수", 동아일보, 2002년 2월 3일. 그의 이름 철자는 기사 속 여권 사진을 참조.
  3. 연합뉴스 (2001년 9월 1일). “가수 스티븐 유씨, 공익요원 판정”. 한겨레신문. 
  4. 정기철 (2007년 11월 15일). “유승준 측 "모든 걸 말할 기회가 있지 않겠는가". 동아일보. 
  5.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2003/1905799_19578.html
  6. 최정윤 (2007년 6월 20일). "한국 팬 너무 보고 싶다." 스티브 유 눈물고백”. TV리포트. 2015년 5월 18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9월 1일에 확인함. 
  7. 이미나. “스티브 유 7집 국내 상륙‥'수익금 환원' 고국팬 환심사려 안간힘”. 한국경제. 
  8. 새방영 음악프로, 10대위주 편성아직 못벗어 동아일보
  9. https://www.youtube.com/watch?v=GpaCyo1GCdo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