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차승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백차승
Baek Cha-Seung
Cha Seung Baek 2008.jpg
기본 정보
국적 미국
생년월일 1980년 5월 29일(1980-05-29) (39세)
출신지 대한민국 부산광역시
신장 191 cm
체중 100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우투우타
수비 위치 투수
프로 입단 연도 1999년
드래프트 순위 아마추어 FA 계약
첫 출장 MLB / 2004년 8월 8일
마지막 경기 MLB / 2008년
경력

선수 경력

프런트 경력


백차승(Cha Seung Baek, 1980년 5월 29일 ~ )은 한국계 미국인으로, 전 일본 퍼시픽 리그 지바 롯데 마린스투수이다.

선수 시절[편집]

아마추어 시절[편집]

송승준, 김사율과 함께 부산 지역 고교 야구 트로이카로 불렸으나, 대한민국에서는 불의의 사건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부산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이던 1998년 9월 제 3회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 참가했으나 2차 리그 대만전에서 5이닝 동안 3실점한 뒤 팔꿈치가 아프다는 이유로 자진 강판을 요구했고, 급기야는 감독의 1루 수비 지시마저 무시한 채 돌연 더그아웃으로 들어가 버렸다.[1] 대회 후 1998년 9월 24일 대한야구협회는 상벌 위원회를 열어 그에게 무기한 자격 정지 중징계를 내렸다.[2] 그는 불과 하루 뒤인 1998년 9월 25일에 미국으로 건너가 시애틀 매리너스와 입단 계약을 맺었다.[3] 이후 그의 자격 정지 조치는 2006년 WBC 차출 문제로 KBO의 요청으로 완전히 해제됐다.[4] 부산고등학교 졸업 후 1999년 6월에 곧바로 팔꿈치 수술을 받았다.

미국 프로야구 시절[편집]

2004년에 시애틀 매리너스에 입단하였다. 2004년MLB에 승격되됐다.[5] 그 해 MLB 7경기에 출장해 2승 4패의 성적을 기록했다. 2005년 4월에 미국 시민권을 얻어 귀화했는데, 이로 인해 2009년 WBC 엔트리 구성 때 논란이 크게 일었다.[6] 2008년에는 샌디에이고의 5선발로 등판해 역대 최고 성적인 6승 10패, 4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일각에서는 부모의 국적을 따라 대표팀 출전이 가능한[7] 2009년 WBC에 그를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에 선발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2008년 엔트리 구성 때 병역 기피 논란 등이 일어 결국 합류하지 않았다.[8] 2009년에는 팔꿈치 부상이 재발해 단 1경기에도 출장하지 못했고, 10월에 방출됐다.[9] 2010년에 친정 팀 시애틀 매리너스에 복귀하려 했으나, 팔꿈치 때문에 실패했다.[10]

미국 독립야구 시절[편집]

2010년 5월 10일에 미국 독립 리그 팀 중 하나인 골든 베이스볼 리그 소속 팀 유마 스코피언스에 입단하였다.[11] 전반기를 마친 후 그 해 7월 17일 오렌지 카운티 플라이어스로 이적했다.[12]

일본 프로야구 시절[편집]

2011년 11월 일본 프로 야구 팀 오릭스 버펄로스에 입단했지만 2012년 시즌 1군 등판이 한 번도 없었고 2012년 10월 5일에 방출됐다. 이후 2015년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의 스프링 캠프장에 찾아가 입단 테스트를 받았지만 불합격했다.

일본 독립야구 시절[편집]

2015년 4월 10일 일본의 독립 리그 중 하나인 베이스볼 챌린지 리그무사시 히트 베어스에 입단하였다.

일본 프로야구 복귀[편집]

2015년 7월 28일 지바 롯데 마린스의 입단 테스트에 참가했고 2일 뒤인 7월 30일 정식 입단했다. 그 후 1군에 부름을 받지 못하고 방출됐다. 2015년 11월 한신 타이거스의 입단 테스트를 받았으나 탈락했다.

야구선수 은퇴 후[편집]

2018년 6월부터 두산 베어스의 2군 투수 인스트럭터로 활동했다.

출신 학교[편집]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