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산리쿠 해역 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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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산리쿠 해역 지진
메이지 산리쿠 해역 지진 이후 쓰나미의 피해를 입은 가옥 사진.
메이지 산리쿠 해역 지진 이후 쓰나미의 피해를 입은 가옥 사진.
메이지 산리쿠 해역 지진 (일)
지진의 진앙을 나타낸 지도.
본진
발생일 1896년 6월 15일[1]
발생시간 오후 7시 32분 30초 (JST)
진앙 일본 산리쿠 연안
좌표

북위 39° 30′ 동경 144° 00′ / 북위 39.5° 동경 144°  / 39.5; 144좌표: 북위 39° 30′ 동경 144° 00′ / 북위 39.5° 동경 144°  / 39.5; 144

규모    모멘트 규모 Mw 8.2 -8.5[2], 표면파 규모 Ms7.2[3]
최대 진도    일본 기상청 진도 계급 4 : (강) : 가미키타 군, 아키타현 센보쿠 군 코와쿠비 촌, 센야 촌[4][5]
해일 오후나토 시 료리만 최대 38.2m[6]
지진의 종류 해구형 지진
피해
인명피해 사망자 21,915명
실종자 44명
부상자 4,398명
메이지 산리쿠 해역 지진 당시 일본 각지의 진도를 나타낸 지도.

메이지 산리쿠 해역 지진(일본어: 明治三陸地震, めいじさんりくじしん)은 1896년 6월 15일[1] 오후 7시 32분 30초에 일본 이와테현 가미헤이 군 가마이시 정(현 가마이시 시) 동쪽 200km 산리쿠 해역 에서 일어난 산리쿠 해역 지진이다. 모멘트 규모는 M8.2-8.5로 추정되는 거대지진이다. 지진 직후 일어난 쓰나미로 오후나토 시에 최대 38.2m의 쓰나미가 들이닥쳤으며 이는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 전까지 최대로 덮쳤던 쓰나미 높이였다.[7] 이 지진은 대표적인 해일지진으로 알려져 있다.[8]

산리쿠 연안이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쓰이게 된 지진이다.[9] 또한 1888년 반다이산 분화, 1891년 미노-오와리 지진 이후 일본 내 신문에 본격적으로 재난 보도가 집중적으로 등장하며 의연금 모집 문화가 생겨나기 시작한 지진이다.[10]

지진[편집]

낮은 각도의 역단층형인 충상단층 지진 형태의 해구형지진이다.[11][12][13] 산리쿠 해역 지진고유지진이지만 진원역이 확실하게 잡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진 발생 간격은 수십 년 사이에서 수백 년 사이로 추정된다.[14]

지진 당시 일본 각지에서 느낀 진도는 현대의 일본 기상청 진도 계급으로 환산할 시 2-3 정도로, 최대 진도가 아키타현 센보쿠군에서 느낀 진도4 정도[5]로 약간 오랫동안 흔들렸으나 거의 신경쓰지 않을 정도의 흔들림이었다.[15] 지진의 흔들림으로 인한 피해는 거의 없었으나 거대한 쓰나미가 일어나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15]

각지의 진도[편집]

1896년 당시 지진 관측은 일본 중앙기상대(현 일본 기상청) 기상관측소 외에 군, 관공서 위탁관측소에서 관측하고 있었다. 당시 일본 기상청 진도 계급은 '열진'(진도 6 정도), '강진'(진도 4-5), '약진'(진도 2-3), '미진'(진도 2 미만)으로 나눠져 있었다. 메이지 산리쿠 지진은 대부분 지역에서 약진-미진을 관측하였으나 일부 지역에선 강진을 관측하였다.

중앙기상대 기준 진도 관측소
강진 가미키타군, 센보쿠군(코와쿠비촌, 센야촌), 와타리군
약진 도카치 지청 (오쓰촌) 하코다테(관측소), 아오모리정(관측소), 산노헤군, 기타쓰가루군, 시모키타군, 이사와군, 가즈노군, 히에누키군, 아키타시(관측소), 센보쿠군, 야마모토군(노시로미나토정), 소마군, 이와키군, 기타무라야마군, 히가시타가와군, 유리군, 우쓰노미야시(관측소), 도쿄시(중앙기상소)
미-약진 미야코정(관측소)
미진 네무로(관측소), 니노헤군, 미나미이와테군, 니시이와이군, 미나미구노헤군, 니시헤이군, 게센군, 미나미아키타군, 히라카군 누마다테촌, 기타아키타군 타카노스촌, 후쿠시마정(관측소), 갓타군, 야마가타시(관측소), 니시오키타마군, 히가시무라야마군, 아쿠미군, 히가시이바라키군, 아와군, 고후시(관측소), 사카이정

매커니즘[편집]

메이지 산리쿠 해역 지진은 진도가 작음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규모의 쓰나미가 일어났는데, 이는 지진이 모멘트 규모 Mw8.2-8.5에 달하는 거대한 힘으로 천천히 움직이는 지진이었기 때문이다.[16] 1989년 이뤄진 연구에서는 메이지 산리쿠 해역 지진 당시 북아메리카판태평양판의 폭 50km, 길이 210km 크기의 판 영역이 12-13m 정도 이동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17] 태평양판 경계면에서는 부드러운 퇴적물이 잔뜩 쌓여 있는데, 지진으로 이 퇴적물들이 천천히 움직인 것으로 추정된다. 퇴적물의 독특한 움직임이 지진파가 직접적으로 준 것보다 훨씬 크게 바다에게 영향을 주어 큰 에너지를 전달한 것이다.[16] 이 외에도 지진동의 주기 자체가 굉장히 길고 지진동의 크기에 비해 인간이 그다기 감지하기 어려운 수 초 주기의 장주기 지진동이 강했다. 이 때문에 인간이 실질적으로 체감하는 진도가 2-3 사이로 작아 별로 느끼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메이지 산리쿠 해역 지진으로 진원역 주변의 바닷물은 64km³ 영역이 해수면보다 더 올라가 거대한 지진 해일을 만들었다.[18][19]

2011년 일어난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의 지진파 분석 결과 지진 당시 판 경계의 대륙판 쪽 깊은 심층부에서 고주파 진동이 만들어졌으며, 단층이 미끄러지고 해구 축선 얉은 부분에서 동적 오버슈트 현상이라 부르는 저주파 지진이 만들어져 판에 쌓인 응력을 훨씬 넘는 판 미끄러짐이 교대로 일어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여기서 거대한 쓰나미를 만든 지진은 축 얉은 곳에서 일어난 미끄러짐으로 메이지 산리쿠 해역 지진도 고주파 진동 없이 이 저주파 지진만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20][21]

일본에서는 메이지 산리쿠 지진 및 1946년 알류샨 열도 지진과 같이 지진이 일어날 때 지각 변동이 보통에 비해 급격하지 않고 천천히 장기간 이루어지는 지진을 느린 지진이라고 부르며, 느린 지진으로 지진동이 작음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지진 해일을 만들어내는 지진을 해일지진이라고 부른다.[18][22]

지진 규모[편집]

진도 분포를 통해 가와스미 교수는 MK5.4로 두고 규모를 M7.6이라 계산했다.(M = 4.85 + 0.5 MK)[23] 또한 주기 약 20초의 지진파를 통한 표면파 규모는 Ms7.2[24]에서 7.4[25] 또는 MS7.9[22]로 추정하고 있다.

진원 단층 모델을 통한 모멘트 규모 계산에서는 지진 모멘트 M0을 5.9×1021N・m[26], 즉 Mw8.4 또는 M0 = 6.3×1021N・m[22]로 계산하여 Mw8.5로 추정하고 있다. 쓰나미 규모 Mt는 일본 내 최대소상고를 통해 8.2로 추정하였으며, 미국 등 해외에 영향을 준 쓰나미의 규모는 8.6 정도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한다.[25][27]

쓰나미[편집]

메이지 산리쿠 해역 지진 당시 가장 높은 쓰나미가 밀려온 장소를 표시한 전봇대.

쓰나미 첫 파도는 지진이 일어난 지 약 30분 후인 오전 8시 7분에 온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남쪽으로는 미야기현부터 북쪽으로는 홋카이도까지 쓰나미의 영향을 받았다.

쓰나미의 최대소상고는 홋카이도부 호로이즈미군(현 홋카이도 에리모정) 에리모곶에서 최대 높이 4m를, 아오모리현 산노헤군 하치노헤정(현 하치노헤시 우치마루 부근)에서 3m, 미야기현 오시카군 오나가와촌(현 오나가와정 오나가와하마 오나가와)에서 3.1m를 기록하였다. 이와테현의 시모헤이군 다로정(현 미야코시 다로지구)에서 14.6m를, 같은 군 후나코시촌(현 야마다정 후나코시)에서 10.5m, 같은 군 오모에촌(현 미야코시 오모에)에서 18.9m, 가미헤이군 가마이시정(현 가마이시시 가마이시)에서 8.2m, 게센군 요시하마촌(구 게센군 산리쿠정 요시하마, 현 오후나토시 산리쿠초 요시하마)에서 22.4m를, 같은 군 료리촌(구 게센군 산리쿠정 료리, 현 오후나토시 산리쿠초 료리)에서 21.9m를 기록하였으며 전체적으로 평균 10m가 넘는 쓰나미가 몰아쳤다.[28]

특히 료리만에서는[29] 만 안쪽 뒤얽힌 골짜기 모양의 특이한 지형 때문에 쓰나미의 최대소상고가 당시 가장 높았던 38.2m를 기록하였다.[30]

일본 외에도 미국하와이에서도 2.4m에서 9.14m에 달하는 쓰나미가 도달하였으며[31] 부두가 파괴되고 해안가의 집들이 쓸려가는 피해를 입었다.[32] 미국 본토의 캘리포니아주 2.9m에 달하는 쓰나미가 도달했다.[32]

각지에 도달한 쓰나미 높이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국가 지역 쓰나미 높이 최대소상고
일본 홋카이도부 호로이즈미군 에리모곶 04m
아오모리현 산노헤군 하치노헤정 03m
이와테현 시모헤이군 다로정 14.6m
이와테현 시모헤이군 오모에촌 18.9m
이와테현 시모헤이군 후나코시촌 10.5m
이와테현 가미헤이군 가마이시정 08.2m
이와테현 게센군 요시하마촌 22.4m
이와테현 게센군 료리촌 21.9m
이와테현 게센군 산리쿠정 료리만 38.2m
미야기현 오시카군 오나가와촌 03.1m
미국 하와이주 30ft (약 9.14m)
캘리포니아주 09.5ft (약 2.90m)

피해[편집]

일본 내에선 인명 피해가 극심하여 사망자 21,915명, 실종자 44명, 부상자 4,398명이 발생하였다.[31][33][34] 이 중 홋카이도에서 6명이, 아오모리현에서 343명이, 이와테현에서 18,158명이, 미야기현에서 3,452명이 사망하였으며 대부분의 피해는 이와테현에 집중되었다.

한편 사상자수 중에서 실종자수가 매우 적은데, 처음에 미야기현 일부 및 아오모리현은 부검을 실시하여 사망자수와 실종자수를 별도로 집계하고 있었으나 "생존자가 적은 상황에서 복잡한 검시를 하기 힘들다"며 "부검을 꼭 하지 않는다"라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져 "실종자" 개념이 사라졌다. 또한 사망자로 간주되는 사람은 "익사" 또는 "사망"으로 간단하게 구분하였다.[35]

그 외 물적피해로는 가옥 유실 9,878채, 주택 붕괴 1,844채, 선박 유실 6,930척의 피해가 있었다.

유발지진[편집]

본진인 메이지 산리쿠 해역 지진의 영향으로 진원역 및 여진이 일어나는 지역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규모가 큰 유발지진이 몇 차례 일어났다. 아래는 주요 유발지진 목록이다.[36]

더 보기[편집]

각주[편집]

  1. “Today in Earthquake History On June 15th...”. USGS. 2018년 5월 19일에 확인함. 
  2. Masayuki Nakao. “The Great Meiji Sanriku Tsunami”. Failure Knowledge Database. 2쪽. 2008년 12월 23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8년 5월 19일에 확인함. 
  3. Nishimura, T.; Miura S.; Tachibana K.; Hashimoto K.; Sato T.; Hori S.; Murakami E.; Kono T.; Nid K.; Mishina M.; Hirasawa T. & Miyazaki S. (2000). “Distribution of seismic coupling on the subducting plate boundary in northeastern Japan inferred from GPS observations”. 《Tectonophysics》 323 (3–4): 217–238. Bibcode:2000Tectp.323..217N. doi:10.1016/S0040-1951(00)00108-6. 2011년 11월 14일에 확인함. 
  4. 中央気象台 地震報告原簿明治廿九年六月十五日
  5. 大森(1901)
  6. Masayuki Nakao. “The Great Meiji Sanriku Tsunami”. Failure Knowledge Database. 4쪽. 2008년 12월 23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8년 5월 19일에 확인함. 
  7. 米地 文夫; 今泉 芳邦 (2003년 3월 8일). “地名「三陸地方」の起源に関する地理学的ならびに社会学的問題” (일본어). 紀要論文. 2018년 5월 19일에 확인함. 
  8. Hiroo Kanamori (1972년). “Mechanism of tsunami earthquakes” (PDF). 《Phys. Earth Planet. Inter.》 6 (5): 346-359. doi:10.1016/0031-9201(72)90058-1. 2011년 6월 14일에 원본 문서 (PDF)에서 보존된 문서. 
  9. 米地文夫、今泉芳邦 (1994년 10월). “地名「三陸地方」の起源に関する地理学的ならびに社会学的問題”. 岩手大学教育学部. 131-144쪽. 2011년 5월 28일에 확인함. 
  10. 北原糸子他 座談会(後編)「災害の歴史から何を学び、どう向き合うか 災害列島に生きた人々」/ 保立道久・成田龍一監修、北島糸子他著『津波、噴火、、、日本列島地震の2000年史』 朝日新聞出版 2013年 110-111ページ
  11. 明治三陸津波 Archived 2011년 3월 24일 - 웨이백 머신 中央防災会議 「第2章 明治三陸津波」
  12. 谷岡 『月刊地球』 Vol.25
  13. 力武(1994)
  14. 宇佐美龍夫、歴史地震史料と現代地震学 地學雜誌 1986年 94巻 7号 p.656-664, doi 10.5026/jgeography.94.656
  15. 首藤ほか(2007)
  16. 土井(2005)
  17. 佐藤・安部ほか(1989)
  18. 金森(1991)
  19. Abe,K(1973)
  20. Ide,S(2011)
  21. 井出哲 (2011년 5월 20일). “東北沖地震の二面性 -浅部のすべり過ぎと深部の高周波震動-”. 《(公式ウェブサイト)》. 東京大学大学院理学系研究科・理学部. 2011년 5월 27일에 확인함. 
  22. Kanamori(1972) Kanamori(1972):MECHANISM OF TSUNAMI EARTHQUAKES, Earth Planet. Interiors, 6, 346-359.
  23. 河角廣(1951)、「有史以來の地震活動より見たる我國各地の地震危險度及び最高震度の期待値」 東京大學地震研究所彙報 第29冊 第3号, 1951.10.5, pp.469-482, hdl:2261/11692
  24. 阿部勝征、日本付近に発生した津波の規模(1498年-2006年)
  25. 阿部勝征(1988)、「津波マグニチュードによる日本付近の地震津波の定量化」 地震研究所彙報、1988年 63巻 3号 p.289-303.hdl:2261/13019
  26. 相田勇(1977)、「三陸沖の古い津波のシミュレーション」 『地震研究所彙報』 1977年 52号 p.71-101, hdl:2261/12623
  27. 安部 『月刊地球』 Vol.25
  28. “宮古の津波遡上38.9メートル 明治三陸超える”. 《岩手日報(ウェブサイト)》 (岩手日報社). 2011년 4월 16일. 2011년 4월 21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1년 4월 19일에 확인함. 
  29. “綾里漁港”. 2011년 5월 26일에 확인함.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30. “現地調査結果”. 東北地方太平洋沖地震津波合同調査グループ. 2012년 1월 14일. 2012년 2월 9일에 확인함. 
  31. 宇津ほか(2001)
  32. USGS. “Sanriku, Japan 1896 June 15 UTC Magnitude 8.5 - Historic Earthquakes”. 2011년 5월 27일에 확인함. 
  33. 宇佐美(2003)
  34. 『理科年表』
  35. 津波における「引き波の恐怖」―昭和三陸津波の死者数と行方不明者数の比率の意味するもの― 歴史地震研究会〔歴史地震・第18号8(2002)〕
  36. “2011年 東北地方太平洋沖地震 過去に起きた大きな地震の余震と誘発地震”. 《(公式ウェブサイト)》. 東京大学地震研究所 広報アウトリーチ室. 2011년 4월. 2012年3月28日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1년 5월 26일에 확인함. 

참고 문헌[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