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오 켐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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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 알베르토 켐페스
Mario Kempes 2006.jpg
개인 정보
전체 이름 Mario Alberto Kempes
출생일 1954년 7월 15일(1954-07-15) (63세)
출생지 아르헨티나의 기 아르헨티나 코르도바 주 벨비예
182cm
포지션 은퇴 (선수시절 스트라이커)
청소년 클럽 기록
1969 아르헨티나 인스티투토 아틀레티코 센트랄 코르도바
클럽 기록*
연도 클럽 출전 ()
1970-1973
1974-1976
1977-1981
1981-1982
1982-1984
1984-1986
1986-1987
1987-1990
1990-1992
1995
1996
아르헨티나 인스티투토 아틀레티코 센트랄 코르도바
아르헨티나 로사리오 센트랄
스페인 발렌시아
아르헨티나 리버 플레이트
스페인 발렌시아
스페인 에르쿨레스
오스트리아 퍼스트 비엔나
오스트리아 VSE 장크트푈텐
오스트리아 크렘저
칠레 페르난데스 비알
인도네시아 펠리타 자야
013 (11)
107 (86)
143 (95)
029 (15)
042 (21)
038 (10)
200(7)
096 (34)
390(7)
110(5)
국가대표팀 기록
1973-1982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430(20)
지도자 기록
1996
1996
1997-1998
1999
2000
2000-2001
인도네시아 펠리타 자야 (선수 겸 감독)
알바니아 KS 루쉬냐
베네수엘라 AC 미네로스 데 과야나
볼리비아 더 스트롱기스트
볼리비아 클럽 블루밍
볼리비아 클럽 인데펜디엔테 페트롤레로
* 성인 클럽 출장수와 골은 정규 리그 기록만 센다. 또한 출장수와 골은 2003년 1월 1일 기준이다.
‡ 국가대표팀의 출장수와 골은 2003년 1월 1일 기준이다.

마리오 알베르토 켐페스 (스페인어: Mario Alberto Kempes, 1954년 7월 15일 ~ )는 은퇴한 아르헨티나 출신의 축구선수다. 그는 전성기 시절을 발렌시아 CF에서 보냈는데, 그곳에서 투우사 (El Matador)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1978년 FIFA 월드컵 우승의 주역이었다. 2004년 3월에는 FIFA 100에 선정되었다.

켐페스는 7살때 유소년 클럽에 들어갔고, 15세때 인스티투토 아틀레티코 센트랄 코르도바의 유소년 클럽에서 활약했다. 그 후 로사리오 센트랄에서 뛰면서 107경기에 나와 86골을 넣어 주목을 받았다. 그는 하드워킹 포워드(Hardworking Forward)라고 불렸는데, 페널티 에리어 바깥쪽에서부터 달려들어와서 공격을 하는, 당시에는 흔하지 않던 공격법을 사용하였다.(당시 중앙공격수는 페널티 에리어 안에서 혼자 활동했다.) 수비수들은 그의 공격법을 제대로 대처해내지 못했었다.

그는 1973년부터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서 활약했었다. 그는 1978년 FIFA 월드컵의 아르헨티나 선수중 유일하게 외국에서 활약하던 선수였다. 그는 당시 발렌시아 CF에서 뛰고 있었다. 그는 1977시즌과 1978시즌 프리메라리가의 득점왕이었고, 월드컵에서도 그러할 것이라고 판단되었었다. 그러나 그는 1974년 FIFA 월드컵에서 득점을 하지 못했고, 1978년 월드컵의 토너먼트때까지 득점순위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1978년 FIFA 월드컵 토너먼트에서 아르헨티나는 페루와 폴란드를 연파하면서 결승에 진출하였으며 결승에서도 네덜란드와 연장 혈투끝에 신승을 거두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 과정에서 켐페스 자신도 6골을 넣었고, 그 월드컵의 득점왕이 되었다. 이로써 그에게는 투우사, 야생마 등의 별명이 붙었다.

그는 1981년 리버 플레이트로 이적했고, 1982년 다시 발렌시아로 돌아가 2시즌 동안 활약했다. 1982년 FIFA 월드컵에도 출전했는데 이 당시의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은 엔트리상으로 지상최강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였는데 켐페스와 마라도나가 주전으로 뛰고 있었기 때문이였다. 당시 세계 축구계에서는 켐페스와 마라도나 중에 한명만 보유해도 우승후보라 여겨졌는데 아르헨티나는 이 뛰어난 두 명의 선수를 모두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아르헨티나 대표팀이 스페인 현지에 도착했을 때 아르헨티나 국내에서 거짓선전하고 있었던 것과는 달리 포클랜드 전쟁이 영국의 승리로 끝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팀 전체가 너무나 큰 충격을 받은 탓에 이 월드컵기간 내내 울기만 했다. 하지만 디팬딩챔피언답게 엘살바도르를 10-1이라는 기상천외한 점수로 승리한 헝가리를 여유있게 물리쳤으며 엘살바도르에게도 승리를 거머쥐고 2라운드에 손쉽게 진출했으나 하필이면 2라운드에서 켐페스와 같이 팀의 기둥인 마라도나가 울분을 못참고 브라질과의 시합 도중 상대선수를 발로 차서 퇴장당하는 바람에 수적 열세로 무너졌고 아르헨티나는 그렇게 탈락했다. 그 후 여러 마이너 팀들에서 뛰다가, 1996년 인도네시아 팀인 펠리타 자야에서 은퇴하였다.

그는 펠리타 자야에서 선수겸 감독으로서 활약했었다. 그는 알바니아 팀인 KS 루쉬냐에서 감독으로 데뷔했는데, 그는 알바니아 축구 역사상 첫 외국인 감독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1년 후 베네수엘라 팀인 AC 미네로스 데 과야나의 감독이 되었고, 1999년에는 볼리비아의 더 스트롱기스트, 2000년에는 클럽 블루밍의 감독이 되었다. 그는 2000년 클럽 인데펜디엔테 페트롤레로의 감독이 되었으나, 2001년 감독직을 그만두었다.

현재 ESPN의 축구 분석가로 일한다.

기타[편집]

외부 링크[편집]

이 전
폴란드 그제고시 라토
제11대 FIFA 월드컵 골든슈
1978년
다 음
 이탈리아 파올로 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