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엘 노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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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엘 노이어
Manuel Neuer, Germany national football team (01).jpg
개인 정보
전체 이름 Manuel Neuer
출생일 1986년 3월 27일(1986-03-27) (31세)
출생지 서독 겔젠키르헨
193 cm
포지션 골키퍼
클럽 정보
현 소속팀 바이에른 뭔헨
등번호 1
청소년 클럽 기록
1991-2005 샬케 04
클럽 기록*
연도 클럽 출전 ()
2004-2008
2005-2011
2011-
샬케 04 II
샬케 04
바이에른 뮌헨
0260(0)
1560(0)
1900(0)
국가대표팀 기록
2004
2004-2005
2005-2006
2006-2009
2009-
독일 U-18
독일 U-19
독일 U-20
독일 U-21
독일
0010(0)
0110(0)
0040(0)
0200(0)
0710(0)
* 성인 클럽 출장수와 골은 정규 리그 기록만 센다. 또한 출장수와 골은 2016년 1월 22일 기준이다.
‡ 국가대표팀의 출장수와 골은 2015년 11월 3일 기준이다.

마누엘 노이어 (독일어: Manuel Neuer, 1986년 3월 27일, 서독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겔젠키르헨 ~ )는 독일축구 선수로, 포지션은 골키퍼이며, 현재 독일 분데스리가바이에른 뮌헨에서 활약하고 있다.

클럽 경력[편집]

FC 샬케 04[편집]

2005년, 노이어는 고향 클럽 FC 샬케 04의 전 연령대의 유소년팀을 거친 뒤 1군에 승격되었다. 그는 2006-07 시즌에 부상당한 프랑크 로스트 골키퍼를 대신하여 출전하며 분데스리가 첫 출전을 기록하였다. 이 20세 골키퍼는 FC 바이에른 뮌헨과의 경기 이후 로스트를 밀어내고 주전 자리를 꿰찼다. 그는 구단의 신뢰를 져버리지 않았고, FC 바이에른 뮌헨과의 경기에서 2-2 무승부를 이끌어냈다. 그는 신예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우상인 옌스 레만의 후계자로써 적임자임을 인증받고, 훗날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에 그의 자리를 가져가게 되었다.[1]

2008년 3월 5일, 그는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FC 포르투를 상대로 경기 내내 홀로 여러차례 환상적인 선방을 보이며, 승부를 승부차기까지 이어나갔다. 이후, 그는 브루누 알베스리산드로 로페스의 킥을 막아내며 팀의 8강행에 공을 세웠다. 그의 영웅적인 행위로, 그는 2007-08 시즌 최우수 골키퍼 후보 명단에 올랐으며, 그는 이 시즌 최연소임과 동시에 유일한 분데스리가 골키퍼였다.[2]

2008-09 시즌은 FC 샬케 04에게 있어 실망스러운 시즌으로 리그를 8위로 마무리하여 UEFA 유로파리그 진출권조차 얻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는 2009 UEFA U-21 챔피언쉽에서 우수한 활약을 선보이며 FC 바이에른 뮌헨과 링크되었고, 구단 이사장 카를하인츠 루메니게는 이 신예 골키퍼에 관심을 표했다. 샬케의 펠릭스 마가트 신임 감독은 그러나, 노이어가 "다음 시즌에도 샬케에 머물것"이라 하며 이적설을 일축하였다".[3] 11월, 그는 UEFA 올해의 팀 후보로 명명된 다섯명의 골키퍼들 중 유일한 독일 골키퍼였다.[4]

10-11 시즌[편집]

팀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주장으로서 샬케의 최후 방어선을 수호했다. 전반기 FC 샬케 04는 거의 강등권 직전인 14위까지 떨어지는 부진을 겪었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레비어 더비에서도 무력한 경기끝에 2-0으로 패하였으며 결국 샬케는 시즌을 9위로 마감하고 만다. 하지만 15라운드 FC 바이에른 뮌헨과의 홈 경기에서 노이어는 연이은 선방을 펼쳐 2-0 승리에 일조하기도 하였다. 특히 토니 크로스의 페널티 박스 안에서의 두 번의 슈팅과 마리오 고메스의 1대1 기회를 모두 막아내며 여러 위기를 파훼했다. 21라운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원정에서 노이어는 상대의 일방적인 공격을 모두 선방해내며 0-0 무승부를 만들었다.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도 꾸준히 좋은 선방을 보여주며 발렌시아인테르나치오날레를 격파하는데 기여하였다. 2011년 4월 27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에서 노이어는 전반전 내내 맨체스터의 공격을 막아내며 팀 골대를 무실점으로 지켰다. 전반 1분 웨인 루니의 중거리 슈팅을 몸을 던져 쳐낸 것을 시작으로, 하비에르 에르난데스의 두 번의 1대1 기회와 박지성의 아크 부근에서의 슈팅을 모두 쳐냈으며, 안토니오 발렌시아의 페널티 박스 슈팅과 라이언 긱스의 헤딩슛, 그리고 전반 종료직전 긱스의 1대1 기회를 모두 선방해냈다. 팀 수비진의 붕괴 속에서 후반전에 2실점을 내주며 패배했으나 골닷컴과 BBC, 빌트, 키커등 대부분의 언론사는 노이어를 MVP로 선정했다. 올드 트래퍼드에서의 2차전에서도 안데르송과 마이클 오언의 슈팅을 선방해내는 등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나 팀의 패배를 막진 못했다.

DFB-포칼 4강에서도 다시한번 FC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수 차례 선방을 보여주며 1-0 승리를 이끌었다. 샬케는 결승전에서 2부 리가의 뒤스부르크를 5대 0으로 격파하며 DFB-포칼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바이에른으로의 이적[편집]

2011년 4월 20일, 그는 샬케와 재계약 하지 않을 것이며 2011-12 시즌에 계약이 만료될 것임을 발표하였다.[5] 유력한 행선지는 올리버 칸의 은퇴 이후 후계자를 찾는 FC 바이에른 뮌헨이었으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또한 은퇴를 눈앞에 둔 에드빈 판 데르 사르의 대체자로 노이어를 지목하였다. 더구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UEFA 챔피언스리그 4강에서 샬케와 대결하며 노이어의 기량을 직접 확인하며 경기 후 노이어에게 직접 다가가 악수를 청한데다 "노이어 같은 골키퍼는 처음이다."라고 인터뷰까지 했다. 그러나 노이어는 해외 진출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선수 캐리어에서 분데스리가 타이틀을 꼭 획득하고싶다. 해외 여행은 일 년에 두 번이면 충분하다."라고 인터뷰하며 바이에른으로의 이적을 암시했다.[출처 필요]

2011년 6월 1일, 샬케와 FC 바이에른 뮌헨은 2011년 7월에 노이어가 바이에른으로 이적할 것임을 합의하였다.[6] 노이어는 2016년 6월까지 유효한 5년 계약을 체결하였다. 이적료는 €22M으로 책정되었으며, 노이어는 역사상 두 번째로 비싼 골키퍼로 이름을 올렸다. 바이에른 팬들은 그에게 처음에 적개심을 보였고 2011년 7월 2일에 바이에른 팬그룹 우두머리들의 회의가 있었다. 다른 것을 제쳐놓고, 이 회의에서 마누엘 노이어는 "정식적인 FC 바이에른 뮌헨의 일원으로 인정되었고, 지지하여야 한다는 주장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또한, 그에 대한 적개심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고 하였다."[7]

11-12 시즌[편집]

바이에른에서의 첫 주에서 TSG 1899 호펜하임에 0-0으로 비기기까지, 노이어는 구단 역사상 최장시간 클린시트를 기록하였고, 1000분이 넘게 실점하지 않았다. 그의 클린시트 기록은 올리버 칸이 보유하고 있었다.[8] 특히 호펜하임 원정에서는 콤퍼의 백헤딩슛을 재빠르게 몸을 던져 선방해내며 팀을 구해냈다. 12라운드 FC 아우크스부르크와의 원정 경기에서 후반 막판 사샤 묄더스의 1대1 기회를 온몸을 뻗어 선방해내며 1점차 리드를 끝까지 지켜내며 승리했다. 13라운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더비 경기에서 카가와 신지의 1대1 상황에서의 칩샷을 재빠른 상황판단으로 선방해내는등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나 경기 막판 마리오 괴체에게 다소 불운한 실점을 하며 1대 0으로 패하고 만다.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상대였던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를 상대로 1,2차전을 통틀어 브란당의 강력한 중거리슛을 역동작이 걸린 상황에서 끝끝내 쳐내는 등 수차례 좋은 선방들을 보여주며 FC 바이에른 뮌헨은 두 경기 모두 클린싯으로 4강에 진출했다. DFB-포칼 4강에서 만난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를 상대로 마르코 로이스의 두 번의 1대1 찬스를 선방해낸데 이어 승부차기에서도 선방쇼를 보여주며 팀의 결승행을 이끌어냈다.

2012년 4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리그 원정 경기에서, 노이어는 도르트문트 팬들의 바나나 세례를 받았다. 이 행위는 전 바이에른 골키퍼 올리버 칸에게 행해졌던 풍습이 노이어에게 이어진 일이다.[9] 이 경기에서 케빈 그로스크로이츠의 슈팅을 온몸을 던져 막아내는 슈퍼세이브를 보여주었으나 역시 경기막판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에게 통한의 실점을 하며 분데스리가 우승을 거의 내주게 되었다. 눈앞에서 백힐로 굴절되었기 때문에 노이어로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2012년 4월 17일, 레알 마드리드 CF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4강전에서 카림 벤제마의 두 번의 슈팅과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1대1 찬스를 막아내는등 연거푸 슈퍼세이브를 보여주며 팀의 2대 1 승리에 공헌했다. 2012년 4월 25일, 다시 한번 레알 마드리드 CF를 상대로 혈전끝에 경기는 승부차기까지 이어졌고, 노이어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카카의 승부차기를 모두 선방하며, 팀의 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노이어는 빌트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그 상황에 준비했다. 우리 골키핑 코치 토니 타팔로비치는 랩톱 컴퓨터로 호날두가 어떻게 페널티킥을 차는지 보여주셨다. 나는 호날두가 좌측 하단을 노린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승부차기에서, 나는 그가 이곳을 노릴 것이라고 예측했다." 라고 그는 말하였다.[10]

2012년 5월 13일, 베를린 올림피아슈타디온에서 있었던 DFB-포칼컵 결승전에서 노이어는 매우 저조한 컨디션을 보이며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전의 치욕적인 대패를 막지 못했다.

2012년 5월 20일, 홈 구장인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열린 첼시 FC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FC 바이에른 뮌헨은 압도적인 경기를 펼치고도 디디에 드록바에게 통한의 동점골을 내준데다 연장전에서 아르연 로번의 페널티킥 실축 등 악재가 겹치며 승부차기까지 가게되었다. 노이어는 첼시 FC의 첫 번째 키커 후안 마타의 오른쪽 구석을 향한 아웃사이드 슈팅을 바로 선방해냈으며, 본인이 직접 FC 바이에른 뮌헨의 승부차기 세 번째 키커로 나서 상대 골키퍼 페트르 체흐를 상대로 낮게 깔린 슛을 성공시켰다. 그러나 바이에른의 4,5번째 키커 이비차 올리치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가 연이어 실축함으로 인해 홈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통한의 패배를 당하게 되며 분데스리가, DFB-포칼, UEFA 챔피언스리그 3개 대회 모두 준우승에 그치는 비극을 맛보고 말았다.

12-13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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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12일,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있었던 DFL-슈퍼컵에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경기 후반 네벤 수보티치의 헤딩슛을 안정적으로 펀칭해내며 팀의 2-1 승리에 일조하였고, 노이어는 이적 후 첫 타이틀을 획득하는데 성공했다. 분데스리가 2라운드 VfB 슈투트가르트를 상대로 역습 상황에서 토마스 뮐러의 네 번째 골의 시발점이 되는 정확한 던지기 패스를 제공하였다. 바이에른은 이 더비 매치에서 6-1로 크게 이겼다. 리가 4라운드 친정팀 FC 샬케 04 원정에서도 헤페르손 파르판의 두 번의 날카로운 슈팅을 모두 펀칭해 냈으며 클라스 얀 훈텔라르의 쇄도까지 안정적으로 방어해냈다. 바이에른은 2대 0으로 승리하며 리가 선두를 유지했다. 팀의 16강 진출 여부가 불투명했던 위기속에서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5라운드에서도 발렌시아 CF의 거센 공격을 안정적으로 막아냈으나 후반 페굴리에게 다소 불운한 실점을 내주며 1대1 무승부에 만족해야했다. 바이에른은 6차전에서 바테 보리소프를 4대1로 격파하며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리가 14라운드 SC 프라이부르크를 상대로 안정적인 방어로 클린싯 승리를 이끌었다. 바이에른은 분데스리가 역대 최단기록으로 단 14라운드만에 전반기 챔피언에 등극한다. 리가 15라운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더비전에서 마르코 로이스의 발리슛과 마츠 훔멜스의 빠른 쇄도를 슈퍼세이브해내며 팀의 골문을 지켰으나 마리오 괴체에게 통한의 동점골을 허용하며 1대1 무승부에 만족해야했다. 전반기 내내 마누엘 노이어가 지킨 바이에른은 리가 17경기 7실점, DFB-포칼UEFA 챔피언스리그등 컵대회를 포함해 26경기에서 15실점에 그쳤다.

후반기에 들어서자마자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아스날 FC 원정에서 루카스 포돌스키에게 허무하게 만회골을 내주기 전까지 5경기 연속 클린싯을 기록했다. 특히 VfL 볼프스부르크 원정에서는 디에구의 골문 구석을 향하는 날카로운 프리킥을 쳐내는 슈퍼세이브를 보여주었다. 아스날 FC를 상대로도 잭 윌셔의 페널티 박스 안에서의 슈팅과 올리비에 지루의 골이나 다름없던 논스톱 슈팅을 모두 펀칭해냈다. 그러나 포돌스키에게 내준 실점상황에서 판단 미스를 저지르며 비난을 감수해야했다.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있었던 아스날 FC와의 2차전에서는 주전 일부가 결장한 상태에서 두 골을 실점하며 하바터면 8강진출이 좌절될뻔 했으나 1,2차전 합계 스코어 동률을 끝끝내 유지하며 원정 다득점 우선순위에 따라 8강에 진출하게된다. DFB-포칼 8강에서 다시 만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상대로도 안정적인 선방을 보여주며 팀의 무실점 승리를 이끌었다. 바이에른은 아르연 로번의 결승골로 1대0으로 도르트문트를 침몰시키고 4강에 진출한다. 리가 26라운드는 전반기 8연승 행진에 제동을 걸었던 바이어 04 레버쿠젠 원정. 경기 초반 날카로운 땅볼 중거리슛을 쳐내는 등 안정적인 방어를 보여주며 2대1 승리를 이끌었고, 전반기 홈에서 당한 패배의 복수에도 성공했다. 27라운드 함부르크 SV와의 홈경기에서도 라파엘 판 데르 파르트의 두 번의 바운드 중거리슛도 모두 안정적으로 쳐냈다. 경기 막바지에 세트피스에서 실점하기는 했으나 바이에른은 이 경기를 9대2로 크게 이겼다. 이 기록은 12-13 분데스리가의 최다 득점 경기이자 최다 점수차 승리로 기록되었다. UEFA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만난 유벤투스를 상대로도 안정적인 선방을 보여주었고, 바이에른은 1,2차전 모두 클린싯으로 승리한다. 노이어는 아르투로 비달의 두 번의 기습적인 슈팅을 모두 쳐냈으며 오프사이드 상황이기는 했으나 파비오 콸리아렐라의 페널티 박스 안에서의 슈팅을 펀칭해내기도 하였다. 리가 28라운드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원정에서 노이어는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의 선제골을 끝까지 지켜내는 슈퍼세이브를 연발하며 바이에른의 무실점 승리를 이끈다. 이 승리로 FC 바이에른 뮌헨분데스리가 역대 최단기간 우승기록을 갈아치우며 28라운드만에 분데스리가 챔피언에 등극한다.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상대는 4년전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바이에른에 치욕을 안겼던 당대 최강 FC 바르셀로나. 바이에른은 경기 내용이나 결과 면에서도 FC 바르셀로나를 일방적으로 압도하며 1,2차전 각각 4:0, 3:0으로 합계 7:0이라는 엄청난 스코어로 승리한다. 노이어는 1차전에서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의 1대1 쇄도를 빠른 상황판단으로 앞으로 나와 캐치해냈으며, 2차전에서 페드로 로드리게스의 골문 구석을 향하는 기습적인 중거리슛팅도 몸을 던져 쳐내며 팀의 클린싯 패배를 이끌었다. 바이에른은 두 시즌 연속, 최근 4시즌동안 3번째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에 성공한다. DFB-포칼컵 4강 VfL 볼프스부르크를 상대로도 디에구의 회심의 슛에 만회골을 허용했으나 6대1로 크게 이기며 결승진출에 성공한다.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의 전초전이었던 분데스리가 30라운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원정에서 노이어는 슈퍼세이브를 연발해내며 주전 대부분이 결장한 바이에른에 승점 1점을 안긴다. 경기 초반 케빈 그로스크로이츠의 발리슛에 실점하긴 했으나 뮌헨은 곧바로 마리오 고메즈의 헤딩골로 응수했다. 노이어는 전반전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의 두 번의 1대1 찬스를 모두 선방해냈으며, 후반전에도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의 페널티킥을 선방해내며 패배 위기의 팀을 구해냈다.

2013년 5월 26일,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다시 조우한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경기는 골키퍼간의 선방 대결로 불렸을 만큼 노이어와 로만 바이덴펠러의 전쟁이었다. 전반전 바이에른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오버페이스로 나오는 압박에 주도권을 내주며 수많은 유효슈팅을 허용하지만 노이어는 이를 모두 선방해냈다. 전반 11분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의 골문 구석을 향하는 중거리슛을 쳐낸것을 시작으로, 바로 1분 뒤 야쿠프 브와슈치코프스키의 골이나 다름 없던 페널티 박스 안에서의 슈팅을 동물적인 반사신경으로 쳐냈으며, 스벤 벤더의 페널티 박스 안에서 감아찬 것도 안정적으로 잡아냈다. 전반 23분 역습상황에서 나온 마르코 로이스의 중거리슛도 몸을 던져 쳐냈으며,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와의 1대1 찬스도 환상적으로 막아냈다. 노이어의 활약에 힘입어 바이에른은 전반전을 무실점으로 마치는데 성공했고, 오버페이스로 나오며 강력한 압박을 가했으나 선제골을 얻는데 실패한 도르트문트는 차츰 체력적으로 바이에른에 밀리기 시작했다. 경기는 63분 마리오 만주키치가 선제골을 넣었으나 8분만에 일카이 귄도간이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며 예상하기 힘든 기류로 흐른다. 로만 바이덴펠러의 연이은 선방에 바이에른도 결승골을 넣는데 애를 먹었으나 89분 아르연 로번의 결승골에 힘입어 승리한다. 노이어는 생애 첫 빅이어를 드는데 성공한다.

2013년 6월 1일, 베를린 올림피아슈타디온에서 열린 DFB-포칼컵 결승전에서도 수차례 팀을 구해내는 세이브를 보여주었다. 팀은 3대2로 VfB 슈투트가르트를 격파하고 우승한다. 노이어는 바이에른으로 이적한지 2시즌만에 독일 구단 최초로 트레블 우승을 달성하는데 일조하였다. 리가 후반기와 DFB-포칼에서는 톰 슈타르케가 간혹 기용되기도 했으나 대부분 노이어가 지켰던 바이에른의 12-13시즌 실점은 53경기 31실점에 불과했다.

국가대표팀 경력[편집]

청소년 국가대표팀[편집]

다양한 연령대의 청소년 국가대표팀을 거친 그는 2006년 8월 15일에 네덜란드를 상대로 U-21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루었다. 그는 스웨덴에서 열린 2009년 UEFA U-21 챔피언쉽을 4강에서 이탈리아를 상대로 마리오 발로텔리의 두 번의 강력한 프리킥을 모두 선방해냈고, 결승전에서 잉글랜드를 상대로도 클린시트를 기록하며, 4-0 스코어로 승리하였다.[11]

2010년 FIFA 월드컵[편집]

2009년 5월 19일, 노이어는 아시아 투어를 위해 독일 성인 국가대표팀에 처음으로 차출되었다.[12] 그는 6월 2일 아랍에미리트와의 아시아 투어 친선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루었다.[13] 그는 코트디부아르와의 11월 친선경기에도 출전하였고, 이 경기는 2-2 무승부로 종료되었다. 그는 첫 번째 골을 실점한 것에 대해 자책하였으나, 요아힘 뢰프 감독은 그를 책망하였고, 오히려 그가 사퇴 할 것을 촉구하였다.[14]

2009년 11월, 로베르트 엥케의 별세로 인해 그는 레네 아들러의 백업 골키퍼로 승격되었다. 그러나, 아들러 또한 갈비뼈에 중상을 당하여 2010년 FIFA 월드컵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노이어는 대회 기간동안 팀 비제한스외르크 부트를 백업으로 둔 독일의 주전 골키퍼가 되었다.[15]

노이어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23인 엔트리에 들었고, 등번호 1번을 받게 되었다.[16] 독일은 이 대회의 죽음의 조로 불리는 D조에 편성되었는데, 노이어는 세르비아와의 2차전에서 밀란 요바노비치의 근거리 슈팅에 실점한 것을 제외하면, 단 한골도 내주지 않았다. 그는 잉글랜드와의 16강전에서 미로슬라프 클로제의 선재골을 어시스트하였고, 프랭크 램파드의 쇄도 슈팅과 후반 막판 스티븐 제라드의 회심의 슛을 선방해냈다. 독일은 이 경기에서 4-1 대승을 거두었다.

8강에서 마주친 아르헨티나를 상대로도 그는 곤잘로 이과인의 두 번의 슛을 모두 안정적으로 캐치해내는 등 안정적인 선방능력을 보여주며 팀의 4-0 대승에 일조했다. 스페인과의 4강전에서 다비드 비야의 1대1 찬스와 페드로 로드리게스의 중거리슛을 쳐내는등 경기내내 분전했으나 후반 막판 카를레스 푸욜의 헤딩골에 실점하며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우루과이와의 3위 결정전에서 그는 국가대표팀의 마지막 고별경기를 치르는 한스외르크 부트에게 선발 자리를 양보하였다.[17]

UEFA 유로 2012[편집]

그는 UEFA 유로 2012의 예선전에서 1분 1초도 빠지지 않고 출전하였는데, 독일은 예선전에서 10전 10승이라는 경이로운 성적을 내며 조 1위로 본선을 통과하였다. 터키와의 원정경기에서 3-1 승리를 거둔 후, 그는 놀라운 성과를 보인 것에 대해 찬사를 들었다. 그는 하밋 알튼톱의 근거리 발리슛을 막아내었고, 그 후 토마스 뮐러의 발까지 재빨리 공을 하프라인을 너머 던졌고, 뮐러는 마리오 고메스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하였다. 노이어는 이후 두 번째골을 어시스트하였다. 터키가 계속해서 압박하는 와중에 그는 마리오 괴체에게 멀리 패스하였고, 이후 토마스 뮐러는 괴체의 패스를 받아 페널티 박스 한쪽 구석에서 득점을 올렸다.

본선에서도 노이어는 포르투갈을 상대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중거리슛과 실베스트레 바렐라의 1대1 상황을 선방해냈으며 네덜란드로빈 반 페르시의 중거리슛도 재빠른 반사신경으로 쳐내며 골문을 안정적으로 지켰다.

천적 이탈리아에게 전반에만 마리오 발로텔리에게 헤딩골과 1대1 찬스에서 실점하며 독일은 2대 1로 패했고, 결승진출행이 좌절되며 많은 자국 팬들의 비난에 시달리기도 했다.[18]

2014년 FIFA 월드컵[편집]

16강 알제리전에서 노이어는 아주 노골적으로 하프라인까지 튀어나와서 알제리의 공격을 수비해내서 독일 축구 팬들의 가슴을 내려앉게 하는 등 거의 기행에 가까운 방법으로 수비를 했다. 알제리전에서 노이어는 골키퍼라기 보다는 최후방 수비수에 훨씬 가까운 행보를 보였다. 이런 기행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실점을 내주지 않는 등 활약하다가 연장 후반 막판에 2-0으로 앞서고 있을 때 압델무멘 자부에게 한 번 실점하면서 경기가 종료되었고 독일은 2-1의 점수로 알제리에게 승리하며 8강에 진출했다. 8강전에서 프랑스전에서 마츠 훔멜스가 전반 12분에 터뜨린 결승골로 1:0으로 이겨 4강 진출에 성공하였고 이번엔 개최국 브라질과 만났는데, 전반에만 5골 후반에 2골로 브라질을 7:1로 대승을 거두고 결승에 진출했다. 브라질 월드컵 최다득점. 결승에서 아르헨티나를 만나 연장 후반에 터진 마리오 괴체의 결승골로 1:0으로 이기고 통산 4번째 우승을 차지했고 노이어는 야신상을 수상하였다.

사생활[편집]

노이어는 메수트 외질을 비롯한 여러 주요 선수들을 배출한 게잠츌레 베어거 펠트를 졸업하였다. 그의 형제 마르셀은 현재 페어반츨리가의 심판으로 활동하고 있다.[19] 그는 고작 2세의 나이에 축구를 시작하였다. 1991년 3월 3일, 그는 그의 5번째 생일을 24일 앞두고 첫 축구경기를 치루었다.[20] 노이어의 어린 시절 우상은 같은 독일 국적이자 전 샬케 골키퍼였던 옌스 레만이다.[21]

2011년 11월, 노이어는 누가 백만장자가 되길 원합니까? (Wer wird Millionär?) 라는 프로그램에서 €500,000의 상금(한화로 약 6억5천만원)을 획득하였다.[22]

경력 통계[편집]

2012년 5월 12일

클럽 경력 리그 클럽대항전 합계
시즌 클럽 리그 출장 출장 출장 출장
독일 리그 DFB-포칼 유럽대항전 합계
2006–07 FC 샬케 04 푸스발-분데스리가 27 0 0 0 0 0 27 0
2007–08 34 0 3 0 10 0 47 0
2008–09 27 0 2 0 5 0 34 0
2009–10 34 0 5 0 - - 39 0
2010–11 34 0 6 0 12 0 52 0
2011–12 FC 바이에른 뮌헨 33 0 5 0 13 0 51 0
경력 합계 189 0 21 0 40 0 250 0

수상[편집]

독일 샬케 04
독일 바이에른 뮌헨
독일 독일
개인

각주[편집]

  1. fifa.com (2007년 2월 14일). “Neuer good news for Germany”. 
  2. uefa.com (2008년 8월 22일). “UEFA Club Goalkeeper of the Year”. 
  3. fifa.com (2009년 6월 4일). “Rummenigge talks Neuer interest”. 
  4. Schalke04.com (2009년 12월 7일). “Neuer nominated for UEFA Team of the Year”. 
  5. ESPN Soccernet (2011년 4월 20일). “Neuer turns down Schalke deal”. 2011년 5월 31일에 확인함. 
  6. FC Schalke 04 (2011년 6월 2일). “Schalke give green light to Neuer's Bayern move”. 2011년 6월 2일에 확인함. 
  7. FC Bayern Munich (2011년 7월 7일). “FCB and fans condemn anti-Neuer protest”. 2011년 7월 7일에 확인함. 
  8. Schäling, Ben (2011년 10월 4일). “Kahn: Gegentor wie Erlösung” (독일어). 2011년 10월 21일에 확인함.  필요 이상의 변수가 사용됨: |저자=|성= (도움말)
  9. inside World Soccer (2012년 4월 12일). “Маnuel Nеuеr showered with bananas by Dortmund fans”. 
  10. Goal.com (2012년 4월 28일). “Neuer: I knew how Cristiano Ronaldo would take his penalty”. 2012년 5월 4일에 확인함. 
  11. transfermarkt.de (2009년 7월 14일). “Rückkehrer Neuer bekennt sich zu Schalke” (독일어). 2009년 7월 14일에 확인함. 
  12. “Löw nominiert Neuer, Träsch, Gentner und Cacau”. 《DFB.de》. 2009년 5월 19일. 2009년 5월 19일에 확인함. 
  13. Kicker.de (2009년 6월 2일). “Gomez ist wieder da – Neuer überzeugt voll und ganz”. 2009년 6월 2일에 확인함. 
  14. Westdeutsche Allgemeine Zeitung (2009년 11월 30일). “Neuers schwerer Patzer bleibt ohne Folgen” (독일어). 
  15. Sify News (2010년 5월 28일). “Lahm to Skipper Germany at World Cup; Neuer is Keeper”. 
  16. BBC Sport. “Manuel Neuer”. 2010년 6월 24일에 확인함. 
  17. GhanaWeb (2010년 7월 10일). “Germany beat Uruguay to win bronze”. 《Ghana Sports - Soccer News》. 2010년 7월 11일에 확인함. 
  18. welt.de (2011년 10월 8일). “Manuel Neuer begeistert sogar seine Gegner”. 2011년 11월 8일에 확인함. 
  19. reviersport.de (2007년 6월 18일). “Der eine ist Schiedsrichter, der andere kickt bei Heßler 06” (독일어). 2009년 11월 8일에 확인함. 
  20. manuel-neuer.com. “Steckbrief” (독일어). 2010년 9월 28일에 확인함. 
  21. RP-Online.de (2008년 3월 7일). “Neuer – so gut wie sein Idol Lehmann” (독일어). 2008년 10월 28일에 확인함. 
  22. inside World Soccer (2011년 11월 19일). “Manuel Neuer wins €500k on 'Who Wants To Be A Millionaire?'. 
  23. “DFB-Elf erhält Silbernes Lorbeerblatt”. 《Rheinische Post》 (독일어). 2010년 12월 19일에 확인함. 
  24. transfermarkt.de (2011년 7월 31일). “Manuel Neuer Fußballer des Jahres 2011” (독일어). 2011년 8월 2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편집]

이 전
스페인 이케르 카시야스
제6대 FIFA 월드컵 골든 글러브
2014년
다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