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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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훈제
桂勳梯
前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청 시민참여행정특임고문
임기 1993년 6월 13일 ~ 1994년 1월 1일
대통령 김영삼
신상정보
국적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출생일 1921년 12월 31일(1921-12-31)
출생지 일제 강점기의 기 일제 강점기 평안북도 선천군
사망일 1999년 3월 14일 (77세)
사망지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본관 수안
학력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경력 前 신민당 특임행정촉탁위원
前 평화민주당 특임고문
정당 무소속
부모 계봉집(부), 이형저(모)

계훈제(桂勳梯, 1921년 12월 31일 ~ 1999년 3월 14일)는 대한민국언론인이자 사회운동가이고 호(號)는 산우(山芋)이다.

1999년 3월 14일에 별세한 그의 유해는 대한민국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 모란공원에 안장되어 있다.

생애[편집]

1921년 아버지 계봉집(桂鳳集)과 어머니 이형저(李亨姐)의 5남매 중에 막내로 출생하였다. 1943년 경성제국대학 재학 당시 일제의 강제징용 학병에 거부하다 제적당하고 강제노역을 하던 중 8·15 광복을 맞이했다. 해방 이후 서울대학교에 복학하여 문리대학생회장을 지내면서 남북협상의지지,반탁운동에 앞장섰고, 미군정에 의한 서울대학교의 국립화에 반대하기도 하였다. 63년 한일회담, 68년 월남파병, 69년 3선개헌 등 박정희 정권 시절 정치적 고비마다 반대투쟁에 앞장섰다. 교육자로 일하기도 하고 언론인으로서 사상계 편집장과 씨알의소리 편집위원을 맡으면서 군사독재에 반대하는 민주화 운동과 통일운동에 앞장섰다. 80년 '서울의 봄' 때는 계엄령 해제를 촉구했고,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에 휘말려 2년 여의 피신과정 후 체포되어 구속되었다. 그리고 이로 인해 1970년대와 1980년대 수차례 투옥되었다. 제5공화국 시절 내내 민주화투쟁을 이끌었고, 1987년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선도했다. 1999년 고문후유증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향년 77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계훈제는 도봉구 방학동에서(1990년 5월 ~ 1999년 3월)거주하였다. 매장지는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 모란 공원에 안장되었다.

학력[편집]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