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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비오 칸나바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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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006년 [[FIFA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고, [[2006년 발롱도르|2006년]] [[발롱도르]]로 석권해 10년 동안 이 상을 획득한 유일한 선수이자, 독일의 [[프란츠 베켄바워]]와 [[마티아스 잠머]]에 이어 이 상을 탄 3번째 수비수로 기록되었다.<ref>[http://www.footballaustralia.com.au/news-display/cannavaro-discusses-highs-and-lows/66691 "Cannavaro discusses highs and lows"]. Football Federation Australia. 2013년 11월 18일 확인.</ref><ref name="Cannavaro only third defender to win coveted Ballon d'Or">{{cite news|url=https://www.theguardian.com/football/2006/nov/28/newsstory.sport1 |제목=Cannavaro only third defender to win coveted Ballon d'Or|출판사=The Guardian |날짜=2006년 11월 27일 |확인일자=2014년 2월 15일 }}</ref> 2007년, 그는 [[라우레우스 세계 스포츠 올해의 스포츠인]]의 최종 후보 6인으로도 선정되었다.<ref name="Laureus"/> 그의 동생 [[파올로 칸나바로|파올로]]도 프로 추구 선수로, 현재 이탈리아의 [[US 사수올로 칼초|사수올로]] 소속이다.
그는 2006년 [[FIFA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고, [[2006년 발롱도르|2006년]] [[발롱도르]]로 석권해 10년 동안 이 상을 획득한 유일한 선수이자, 독일의 [[프란츠 베켄바워]]와 [[마티아스 잠머]]에 이어 이 상을 탄 3번째 수비수로 기록되었다.<ref>[http://www.footballaustralia.com.au/news-display/cannavaro-discusses-highs-and-lows/66691 "Cannavaro discusses highs and lows"]. Football Federation Australia. 2013년 11월 18일 확인.</ref><ref name="Cannavaro only third defender to win coveted Ballon d'Or">{{cite news|url=https://www.theguardian.com/football/2006/nov/28/newsstory.sport1 |제목=Cannavaro only third defender to win coveted Ballon d'Or|출판사=The Guardian |날짜=2006년 11월 27일 |확인일자=2014년 2월 15일 }}</ref> 2007년, 그는 [[라우레우스 세계 스포츠 올해의 스포츠인]]의 최종 후보 6인으로도 선정되었다.<ref name="Laureus"/> 그의 동생 [[파올로 칸나바로|파올로]]도 프로 추구 선수로, 현재 이탈리아의 [[US 사수올로 칼초|사수올로]] 소속이다.


== 선수 경력 ==
== 클럽 경력 ==
=== 초기 경력 ===
그는 [[1992년]] [[세리에 A]]의 [[SSC 나폴리|나폴리]]에서 데뷔하였고, 이후 [[파르마 FC|파르마]],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인테르나치오날레]]에서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이후 그는 [[2004년]] [[유벤투스 FC|유벤투스]]로 이적하였지만, [[2006년]] 팀의 승부 조작 사건으로 인해 2번의 [[스쿠데토]] 수상이 무효가 되었고, 그 직후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레알 마드리드 CF|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였다. 그는 그곳에서 2년간 활약한 뒤 2008-09 시즌 종료 후 친정팀인 [[유벤투스 FC|유벤투스]]로 복귀하였고, 한 시즌을 활약한 후 [[2010년]] [[UAE 1부 리그]]의 [[알아흘리 (두바이)|알아흘리]]와 2년간 계약하였다. 2011년 6월 21일 알아흘리는 칸나바로의 방출을 발표하였다. 결국 [[2011년]] [[7월]], 칸나바로는 무릎 부상을 이유로 선수 생활을 은퇴했다.
칸나바로는 [[나폴리]] 출신으로 겔소미나 콘스탄초와 파스콸레 칸나바로 사이에서 났다. 그의 모친은 종업원이었고, 부친은 은행원이었다. 그의 부친도 인근의 [[SSC 율리아노|율리아노]]에서 축구를 했었다. 그의 위에는 레나타 누나가 있는데, 15세에 결혼했다. 그는 남동생도 있는데, [[파올로 칸나바로|파올로]]로 그도 축구인이다.<ref name="family">[http://www.cannaddicted.com/New%20design/Fabio/family.html "Family"]. ''CannAddicted.com''.</ref> 소싯적, 칸나바로는 [[바뇰리]]에서 활약하다가 그의 유년 시절 선망의 구단인 [[SSC 나폴리|나폴리]]의 스카우터들에게 포착되었다.<ref name="Storie di Calcio: Fabio Cannavaro">{{cite web|제목=Storie di Calcio: Fabio Cannavaro|url=http://www.storiedicalcio.altervista.org/fabio-cannavaro.html|website=storiedicalcio.altervista.org|확인일자=2015년 4월 17일|언어=이탈리아어}}</ref><ref name="Il Pallone Racconta: Fabio CANNAVARO">{{cite web|제목=Il Pallone Racconta: Fabio CANNAVARO|url=http://ilpalloneracconta.blogspot.ca/2012/09/fabio-cannavaro.html|website=ilpalloneracconta.blogspot.ca|확인일자=2015년 4월 17일|언어=이탈리아어|날짜=2014년 9월 14일}}</ref><ref name="tuttojuve.com">{{cite web|url=http://www.tuttojuve.com/gli-eroi-bianconeri/gli-eroi-in-bianconero-fabio-cannavaro-62876|제목=Gli eroi in bianconero: Fabio CANNAVARO|website=tuttojuve.com|출판사=Tutto Juve|언어=이탈리아어|저자1=Stefano Bedeschi|날짜=2013년 9월 15일|확인일자=2015년 12월 15일}}</ref>
그는 2002,2006년 월드컵을 출천한 경험이 있고 특히 [[2006년 FIFA 월드컵]]에서는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며 1대1 돌파 허용횟수

0이라는 활약을 보여주었다.4년뒤 [[2010년 FIFA 월드컵]]도 출전을 했지만 노쇠화로 인해 심각한 부진을 격었다.
=== 나폴리 ===
[[File:Fabio Cannavaro Napoli 1990.jpg|thumb|200px|right|나폴리 유소년 아카데미의 17세 칸나바로 ]]

칸나바로는 처음에 나폴리의 [[볼보이]]로 그의 우상인 [[디에고 마라도나]]와 [[치로 페라라]]의 활약상을 지켜보았다. 그는 나중에 구단의 유소년 아카데미에 합류했다. 젊은 파비오는 선수단에서 부동의 주전을 맡던 마라도나를 강한 태클로 저지해 나폴리 훈련에 임하던 도중 명성을 쌓았다. 이 거친 태클은 동료들과 나폴리 감독진을 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당사자 마라도나는 유망주를 변호하며 그가 원하는 방식으로 경기할 수 있도록 장려했다.<ref name="Storie di Calcio: Fabio Cannavaro"/><ref name="Il Pallone Racconta: Fabio CANNAVARO"/><ref name="tuttojuve.com"/>

그는 선수로 성장하여 유년 시절 우상이었던 선수들과 1군에 어깨를 나란히 해 출전하게 되었다. 칸나바로는 1993년 3월 7일, 3-4로 패한 [[유벤투스 FC|유벤투스]]와의 [[토리노]] 원정 경기에서 [[세리에 A]] 신고식을 치렀다.<ref name="treccani.it">{{cite web|저자1=Alberto Polverosi|제목=Cannavaro, Fabio|url=http://www.treccani.it/enciclopedia/fabio-cannavaro_%28Enciclopedia-dello-Sport%29/|출판사=Treccani: Enciclopedia dello Sport|확인일자=2015년 5월 20일|언어=이탈리아어}}</ref> 페라라와 중앙 수비를 맡은 그는 기대감에 부응하며 태클, 배급, 그리고 공을 뺏고 나서의 공격 전개 능력을 선보였다. 그는 1995년 1월 8일, [[AC 밀란|밀란]]과의 [[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차|산 시로]] 원정 경기에서 첫 골을 기록했다.<ref>{{cite web|제목=Milan-Napoli stagione 94/95, P.Cannavaro: "Che gol che fece Fabio! Vi racconto la sfida che ho impresso nella mente"|url=http://www.calcionapoli24.it/rassegna_stampa/video-milan-napoli-stagione-94-95-pcannavaro-che-gol-che-fece-fabio-vi-n120328.html|출판사=Calcio Napoli 24|확인일자=2015년 5월 18일|언어=이탈리아어}}</ref> 그러나, 그의 믿음직한 활약에도 불구하고, 마라도나가 떠난 나폴리는 재정난에 허덕였고, 칸나바로는 훗날 [[UEFA 유로파리그|UEFA컵]]과 [[코파 이탈리아]], 그리고 세리에 A [[그란 갈라 델 칼초|올해의 수비수]] 상을 획득하게 되는 [[파르마 FC|파르마]]로 매각되었다. 칸나바로는 1995년까지 나폴리에 남아 60번에 가까운 구단 경기에 출전해 1골을 기록했다.<ref name="Storie di Calcio: Fabio Cannavaro"/><ref name="Il Pallone Racconta: Fabio CANNAVARO"/><ref name="tuttojuve.com"/>

=== 파르마 ===
1995년 여름, 칸나바로는 파르마에 매각되었고, 그는 한 시즌 만에 1군의 주전 지위를 확보하여 29번의 리그 경기에 출전했다. 그는 구단에서 우승을 거둔 것은 물론, 여러 차례 개인 업적을 세워 선수단의 주장도 맡았다. 그는 파르마에서 [[잔루이지 부폰]]과 [[릴리앙 튀랑]]과 협력해 유럽 최고의 수비를 형성하는 것은 물론 축구 외 사적인 영역에서도 이들과 가까이 지냈다. 파르마의 전설적인 수비를 형성했던 선수들로는 [[루이지 사르토르]], [[로베르토 무시]], [[안토니오 베나리보]], [[루이지 아폴로니]], 그리고 아르헨티나의 [[로베르토 센시니]]가 있었다. 칸나바로는 파르마 시절부터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다. 그는 합류 첫 시즌에 소속 구단이 [[코파 이탈리아 1995-96|코파 이탈리아]] 2라운드에서 탈락했지만, 같은 시즌 [[세리에 A 1995-96|세리에 A]]에서 6위의 성적을 거두어 [[UEFA컵 1996-97|UEFA컵]] 진출권을 얻었다. 파르마는 [[UEFA 컵위너스컵]] [[UEFA 컵위너스컵 1995-96]]의 8강에도 올랐다. 파르마는 [[세리에 A 1996-97]]에서 [[유벤투스 FC|유벤투스]]에 이어 준우승을 차지하여, 그 다음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1997-98|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얻었다. 파르마는 또다시 [[코파 이탈리아 1996-97|코파 이탈리아]] 2라운드에서 탈락했고, 같은 시즌 [[UEFA컵 1996-97|UEFA컵]]에서는 1라운드에 탈락했다. [[세리에 A 1997-08|1997-98 시즌]], 파르마는 세리에 A 5위를 차지하였고, [[코파 이탈리아 1997-98|코파 이탈리아]]에서 준결승전까지 올라갔고, 같은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1997-98|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전 시즌 우승을 차지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도르트문트]]에 밀려 2위로 조별 리그에서 탈락하였다.<ref name="Storie di Calcio: Fabio Cannavaro"/><ref name="Il Pallone Racconta: Fabio CANNAVARO"/><ref name="tuttojuve.com"/>

구단에서의 [[세리에 A 1998-99|4년차]]에, 칸나바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유럽대항전을 우승했는데, [[UEFA컵 1998-99|UEFA컵]] 정상에 올랐고, [[코파 이탈리아 1998-99|코파 이탈리아]]도 우승했다. 파르마는 그 시즌 세리에 A를 4위로 마쳐 3위를 거둔 [[ACF 피오렌티나|피오렌티나]]와는 1점차였다. [[세리에 A 1999-2000|그 다음 시즌]], 파비오의 동생 [[파올로 칸나바로|파올로]]가 구단에 합류했고, 칸나바로 형제는 이어지는 두 시즌 동안 협력했다. 파비오는 세리에 A 우승을 거둔 [[AC 밀란|밀란]]을 이기고 자신의 첫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을 차지했고, 파르마는 세리에 A를 4위로 마쳐,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인테르나치오날레]]와 마지막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놓고 승점에서 동률을 이루었다. 그러나, 파르마는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인테르나치오날레]]와의 세리에 A UEFA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1-3으로 패해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 리그 진출이 무산되었다. 파르마는 3차이자 최종 예선전에서 대회에 참가했지만 [[레인저스 FC|레인저스]]에 패해 탈락하였다. 파르마는 그 시즌의 [[UEFA컵 1999-2000|UEFA컵]]과 [[코파 이탈리아 1999-2000|코파 이탈리아]]에서 모두 16강에 떨어졌다.<ref name="Storie di Calcio: Fabio Cannavaro"/><ref name="Il Pallone Racconta: Fabio CANNAVARO"/><ref name="tuttojuve.com"/>

[[세리에 A 2000-01|2000-01 시즌]], 칸나바로는 파르마를 또다시 [[코파 이탈리아 2000-01|코파 이탈리아 결승]]행을 이끌었지만, [[ACF 피오렌티나|피오렌티나]]에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같은 시즌 [[UEFA컵 2000-01|UEFA컵]]에서는 3라운드에 탈락했다. 파르마는 리그에서 3시즌 연속 4위로 마감했고, 그에 따라 [[UEFA 챔피언스리그 2001-02|UEFA 챔피언스리그 예선전]] 진출 자격을 얻었지만, 최종적으로 대회 본선에 오르지 못했다. 칸나바로는 파르마에서의 마지막 시즌에 유벤투스를 이기고 [[코파 이탈리아 2001-02|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거두었지만, 파르마는 같은 시즌에 [[UEFA컵 2001-02|UEFA컵]] 16강에서 탈락하였고, [[세리에 A 2001-02|세리에 A]]는 10위의 성적을 거두었다. 1997년을 기점으로, 그는 파르마에서의 활약으로 성인 국가대표팀에 차출되기 시작했고, 그는 꾸준히 세리에 A 최고의 수비수들 중 한 명으로 꼽혔다. 파르마 시절, 칸나바로는 모든 대회를 통틀어 250경기 이상 출전했고, 5골을 넣었다.<ref name="Storie di Calcio: Fabio Cannavaro"/><ref name="Il Pallone Racconta: Fabio CANNAVARO"/><ref name="tuttojuve.com"/>

=== 인테르나치오날레 ===
2002년 여름, 칸나바로는 €23M에 4년 계약을 맺고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인테르나치오날레]]로 이적했다.<ref>{{cite web|url=http://www.uefa.com/uefachampionsleague/news/newsid=29672.html|제목=Inter complete Cannavaro swoop|확인일자=2015년 6월 16일}}</ref> 당시 파르마는 재정난에 빠졌고, 인테르는 극적으로 세리에 A 우승을 유벤투스에 내주었고, 4년 연속 무관을 차지한 구단은 거물 공격수 [[호나우두]]가 떠나면서 선수단 재조직에 집중하고 있었다. [[프란체스코 코코]]와 그의 파르마 동료 [[에르난 크레스포]]와 함께, 칸나바로는 [[엑토르 쿠페르]]가 이끄는 인테르나치오날레의 주요 신입생들 중 한 명이었다.<ref name="Storie di Calcio: Fabio Cannavaro"/><ref name="Il Pallone Racconta: Fabio CANNAVARO"/><ref name="tuttojuve.com"/>

그러나, 인테르나치오날레에서 그의 생활은 대게 조금씩 모자란 모습이었다. 그는 [[UEFA 챔피언스리그 2002-03]]에서 준결승까지 올랐고 [[세리에 A 2002-03|세리에 A]]는 유벤투스에 이어 준우승을 차지했다. [[세리에 A 2003-04|두 번째 시즌]]은 그보다 알차지 못한 시즌이었는데, 그는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 결장하였고, 주 임무 외의 다른 임무를 수행하곤 했다. 인테르나치오날레는 세리에 A 4위를 차지했고 [[코파 이탈리아 2003-04|코파 이탈리아]] 준결승전까지 올라갔지만, 승부차기 끝에 유벤투스에 패했다. 인테르나치오날레는 [[UEFA 챔피언스리그 2003-04]]에서는 조별 리그 3위를 차지했지만, [[UEFA컵 2003-04|UEFA컵]]에서는 8강까지 올라갔다. 구단에서 2년을 보낸 근느 [[유벤투스 FC|유벤투스]]로 깜짝 교환 이적을 하게 되었고, 인테르나치오날레에서의 생활은 50경기 출장 2골로 끝났다. 이탈리아를 떠나면서, 칸나바로는 인테르나치오날레에서의 생활을 부정적으로 보았고, 그가 속했던 다른 이탈리아 구단인 파르마와 유벤투스보다 안 좋게 회고했다.<ref name="Storie di Calcio: Fabio Cannavaro"/><ref name="Il Pallone Racconta: Fabio CANNAVARO"/><ref name="tuttojuve.com"/>

=== 유벤투스 ===
인테르나치오날레에서의 2년 후, 그는 여름 이적 시장 말일에 [[유벤투스 FC|유벤투스]]와 계약했다. 계약 조항에는 후보 골키퍼 [[파비안 카리니]]의 교환도 끼어 있었고, 그는 인테르나치오날레로 떠났는데, 두 이적건 모두 €10M짜리였다.<ref>[https://web.archive.org/web/20081207070045/http://www.juventus.com/site/filesite/finance/comunicatipricesensitive/31_ago_2004_eng_can.pdf "Operations concerning players' registration rights"] (PDF). Juventus Football Club. 2004년 8월 31일.</ref> 토리노 이주로, 그는 파르마 시절 동료였던 [[릴리앙 튀랑]]과 [[잔루이지 부폰]]과 재회했고, 셋은 다시 세리에 A의 가장 공포스러운 수비를 재결성했다. 그들과 함께 [[잔루카 참브로타]], [[잔루카 페소토]], [[알레산드로 비린델리]], [[조나탕 제비나]], 그리고 [[페데리코 발차레티]]가 조합되었다. 이 선수단은 [[세리에 A 2004-05|2004-05 시즌]]과 [[세리에 A 2005-06|2005-06 시즌]]에 2시즌 연속으로 ''[[스쿠데토|작은 방패]]''를 획득했지만,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2시즌 연속으로 8강에서 탈락했다. 전자의 시즌에 칸나바로는 구단의 상징적인 존재들인 [[파올로 몬테로]]와 [[치로 페라라]]와 조합되었다. 칸나바로는 토리노 거함에서 훌륭게 시즌을 보내며 이탈리아 축구 오스카상인 ''[[그란 갈라 델 칼초|오스카르 델 칼초]]''를 4차례 차지했는데 2005년과 2006년에 올해의 수비수와 이탈리아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ref name="Storie di Calcio: Fabio Cannavaro"/><ref name="Il Pallone Racconta: Fabio CANNAVARO"/><ref name="tuttojuve.com"/>

[[2006년 FIFA 월드컵]] 이후, ''[[2006년 이탈리아 축구 스캔들|칼초폴리]]'' 판결에 따라 유벤투스는 [[세리에 B]]로 강등되었다. 유벤투스가 [[UEFA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지 못하게 됨에 따라 칸나바로는 이적을 결정했다. "이 사실을 믿기 힘들수도 있겠지만, 저는 유벤투스가 세리에 A에 남았으면 30점이 감점된다 하더라도 잔류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파비오 카펠로]] 유벤투스 감독과 함께 2006년 여름에 [[레알 마드리드 CF|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그가 2년 동안 유벤투스에서 활동하며 ''작은 방패'' 2개를 차지했고, 칸나바로는 모든 대회를 통틀어 100경기 넘게 출전했다. 그의 이적은 그를 자신들의 일부로 생각한 유벤투스 지지자들의 실망을 표출하게 만들었다.<ref name="Storie di Calcio: Fabio Cannavaro"/><ref name="Il Pallone Racconta: Fabio CANNAVARO"/><ref name="tuttojuve.com"/>

=== 레알 마드리드 ===
[[Image:Forcejeo Real Madrid - FC Barcelona.jpg|thumb|[[FC 바르셀로나|바르셀로나]]와의 경기에 임하는 [[레알 마드리드 CF|레알 마드리드]]의 칸나바로 (왼쪽 흰 유니폼) ]]

[[레알 마드리드 CF|레알 마드리드]]는 칸나바로 영입을 위해 €7M을 지불하였고,<ref>{{cite web |제목=Agreements with the Spanish club Real Madrid CF |url=http://www.juventus.com/site/filesite/finance/comunicatipricesensitive/27_lug_2006_eng.pdf |format=PDF |출판사=Juventus Football Club |날짜=2006년 7월 27일 |확인일자=2010년 6월 7일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081207072405/http://www.juventus.com/site/filesite/finance/comunicatipricesensitive/27_lug_2006_eng.pdf |archivedate=2008년 12월 7일 }}</ref> 마드리드와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프랑스 국가대표팀]]의 전 선수인 [[지네딘 지단]]이 사용한 등번호 5번을 받았다. 칸나바로는 [[마드리드]]에서 3시즌을 보내며 [[라리가 2006-07|2006-07 시즌]]과 [[라리가 2007-08|2007-08 시즌]]에 [[라리가|라 리가]] 우승을 거두었고, 2006년 [[FIFA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고,<ref name="Cannavaro stands alone amid attacking dominance">{{cite web|url=http://www.fifa.com/ballon-dor/news/y=2015/m=10/news=cannavaro-stands-alone-amid-attacking-dominance-2720898.html|제목=Cannavaro stands alone amid attacking dominance|출판사=FIFA.com|날짜=2015년 10월 23일|확인일자=2015년 12월 22일}}</ref> [[2006년 발롱도르]]의 주인공도 되었다.<ref name="Cannavaro only third defender to win coveted Ballon d'Or"/> 칸나바로는 2006년과 2007년의 [[국제 축구 선수 협회|FIFPro 세계 XI]]의 일원으로 명명되었고, 2006년 [[UEFA 올해의 팀]] 일원으로도 선정되었다. 그는 2007년 [[라우레우스 세계 스포츠 올해의 스포츠인]]의 최종 후보 6인에도 이름을 올렸다.<ref name="Laureus">[http://www.elmundo.es/elmundodeporte/2007/02/27/masdeporte/1172595388.html "Seis candidatos españoles a los premios Laureus 2007"]. El Mundo. 2015년 1월 17일 확인.</ref>

마드리드에서의 마지막 시즌인 [[라리가 2008-09|2008-09 시즌]]에 들어, 칸나바로의 기량은 빠르게 하락하였다. 노쇠화로, 그는 [[리오넬 메시]]와 [[페르난도 토레스]] 같은 발빠른 선수들을 상대로 고전하며 레알 마드리드의 다실점의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2009년 5월 19일, 칸나바로는 계약 종료와 함께 [[세리에 A 2009-10|2009-10 시즌]]을 앞두고 유벤투스로 복귀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ref>{{cite news|url=http://www.skysports.com/story/0,19528,11827_5336459,00.html |제목=Juve confirm Cannavaro deal |work=Sky Sports |날짜=2009년 5월 19일|확인일자=2010년 6월 7일}}</ref> 베르나베우에서의 마지막 경기에, 그는 지지자들의 기립 박수를 받았다.<ref>{{cite web|제목=Il Bernabeu in piedi per salutare Cannavaro|url=http://www.tuttosport.com/calcio/serie_a/juventus/2009/05/24-28536/Il+Bernabeu+in+piedi+per+salutare+Cannavaro|확인일자=2014년 7월 23일 }}</ref> 2013년 4월, 칸나바로는 ''[[마르카 (신문)|마르카]]''지에 의해 "[[레알 마드리드 CF의 역사|레알 마드리드 역사]]상 최우수 11인"의 일원으로 꼽혔다.<ref>{{cite news|url=http://www.marca.com/2013/04/11/en/football/real_madrid/1365709938.html|제목=The best foreign eleven in Real Madrid's history|날짜=2013년 4월 12일|출판사=Marca.com}}</ref>


== 수상 ==
== 수상 ==

2016년 12월 30일 (금) 21:01 판

파비오 칸나바로
2015년의 칸나바로
개인 정보
본명 Fabio Cannavaro[1]
출생일 1973년 9월 13일(1973-09-13)(50세)
출생지 이탈리아 나폴리
1.76m[2]
포지션 은퇴 (과거 중앙 수비수)
구단 정보
현 소속팀 톈진 취안젠 (감독)
청소년 구단 기록
1988-1992 나폴리
구단 기록*
연도 구단 출전 (득점)
1992-1995
1995-2002
2002-2004
2004-2006
2006-2009
2009-2010
2010-2011
합계:
나폴리
파르마
인테르나치오날레
유벤투스
레알 마드리드
유벤투스
알아흘리
058 00(1)
212 00(5)
050 00(2)
074 00(6)
094 00(0)
027 00(0)
016 00(2)
531 0(16)
국가대표팀 기록
1993-1996
1997-2010
이탈리아 U-21
이탈리아
021 00(0)
136 00(2)
지도자 기록
2013-2014
2014-2015
2015-2016
2016-
알아흘리 (수석 코치)
광저우 에버그란데
알나스르
톈진 취안젠
* 구단의 출전횟수와 득점기록은 정규 리그의 공식 리그 경기 기록만 집계함.

파비오 칸나바로, 장교 OMRI (이탈리아어: Fabio Cannavaro ˈfaːbjo kannaˈvaːro[*], 1973년 9월 13일, 나폴리 ~) 는 이탈리아의 전 프로 축구 선수이며, 현재 중화인민공화국 톈진 취안젠감독이다.

칸나바로는 역대 최고 수비수들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는 주로 이탈리아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나폴리에서 신고식을 치른 후 파르마에서 7년을 보내며 코파 이탈리아를 두 차례 우승하고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1999UEFA컵 1998-99 우승을 거두었다. 이후, 인테르나치오날레유벤투스를 거친 그는 2006년에 파비오 카펠로 감독과 유벤투스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해 2007년과 2008년에 라 리가 2연속 우승을 거두었다. 유벤투스에 2009-10 시즌 동안 1년 복귀한 후, 그는 두바이알아흘리에 입단하였고, 2011년에 잦은 부상을 당한 뒤 은퇴했다. 은퇴 후, 그는 알아흘리의 감독직 일원으로 합류했고, 2011년부터 2013년까지는 전세계적 홍보대사와 기술 고문을 겸직하였고, 2013년부터 2014년까지는 수석 코치를 역임했다. 2014년 11월, 그는 광저우 에버그란데 감독으로 취임했다. 2016년 6월 9일, 그는 중국 2부 리그 톈진 취안젠의 감독으로 취임했다.

칸나바로는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서도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1994년과 1996년에 UEFA U-21 축구 선수권 대회 2연패를 기록한 이탈리아 대표팀의 주역이었다. 1997년, 성인 대표팀 경기에 처음으로 출전한 그는 UEFA 유로 2000에서 조국의 결승행에 일조해 대회의 팀 일원으로 선정되었고, 2002년에 파올로 말디니가 은퇴한 이후부터 주장을 맡았다. 칸나바로는 독일에서 열린 2006년 FIFA 월드컵에서 이탈리아의 우승을 이끌었고, 수비에서의 뛰어난 활약으로 이탈리아 대표팀 지지자들로부터 "베를린 장벽" (이탈리아어: Il Muro di Berlino) 의 별명을 얻었는데, 이탈리아는 5경기를 무실점으로 마쳤고, 단 2골만 허용했으며, 두 골 모두 정상적인 방법으로 실점한 골이 아니었다. 그는 대회 후 최우수 선수 부문에서 2위로 선정되어 실버 볼을 받았다. 2009년, 그는 말디니를 제치고 국가대표팀 역사상 최다 출전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2010년 6월 25일, 2010년 FIFA 월드컵에서 이탈리아가 조별 리그에서 조기에 탈락하면서, 그는 136경기 출전 2골 득점을 기록하고 성인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3] 도합하여, 그는 이탈리아를 대표로 4번의 FIFA 월드컵, 2번의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1996년 하계 올림픽, 그리고 2009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 참가했다. 그는 현재 잔루이지 부폰에 이어 최다 경기 출장 2위를 기록하고 있고, 79경기로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최다 출전 주장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는 2006년 FIFA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고, 2006년 발롱도르로 석권해 10년 동안 이 상을 획득한 유일한 선수이자, 독일의 프란츠 베켄바워마티아스 잠머에 이어 이 상을 탄 3번째 수비수로 기록되었다.[4][5] 2007년, 그는 라우레우스 세계 스포츠 올해의 스포츠인의 최종 후보 6인으로도 선정되었다.[6] 그의 동생 파올로도 프로 추구 선수로, 현재 이탈리아의 사수올로 소속이다.

클럽 경력

초기 경력

칸나바로는 나폴리 출신으로 겔소미나 콘스탄초와 파스콸레 칸나바로 사이에서 났다. 그의 모친은 종업원이었고, 부친은 은행원이었다. 그의 부친도 인근의 율리아노에서 축구를 했었다. 그의 위에는 레나타 누나가 있는데, 15세에 결혼했다. 그는 남동생도 있는데, 파올로로 그도 축구인이다.[7] 소싯적, 칸나바로는 바뇰리에서 활약하다가 그의 유년 시절 선망의 구단인 나폴리의 스카우터들에게 포착되었다.[8][9][10]

나폴리

나폴리 유소년 아카데미의 17세 칸나바로

칸나바로는 처음에 나폴리의 볼보이로 그의 우상인 디에고 마라도나치로 페라라의 활약상을 지켜보았다. 그는 나중에 구단의 유소년 아카데미에 합류했다. 젊은 파비오는 선수단에서 부동의 주전을 맡던 마라도나를 강한 태클로 저지해 나폴리 훈련에 임하던 도중 명성을 쌓았다. 이 거친 태클은 동료들과 나폴리 감독진을 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당사자 마라도나는 유망주를 변호하며 그가 원하는 방식으로 경기할 수 있도록 장려했다.[8][9][10]

그는 선수로 성장하여 유년 시절 우상이었던 선수들과 1군에 어깨를 나란히 해 출전하게 되었다. 칸나바로는 1993년 3월 7일, 3-4로 패한 유벤투스와의 토리노 원정 경기에서 세리에 A 신고식을 치렀다.[11] 페라라와 중앙 수비를 맡은 그는 기대감에 부응하며 태클, 배급, 그리고 공을 뺏고 나서의 공격 전개 능력을 선보였다. 그는 1995년 1월 8일, 밀란과의 산 시로 원정 경기에서 첫 골을 기록했다.[12] 그러나, 그의 믿음직한 활약에도 불구하고, 마라도나가 떠난 나폴리는 재정난에 허덕였고, 칸나바로는 훗날 UEFA컵코파 이탈리아, 그리고 세리에 A 올해의 수비수 상을 획득하게 되는 파르마로 매각되었다. 칸나바로는 1995년까지 나폴리에 남아 60번에 가까운 구단 경기에 출전해 1골을 기록했다.[8][9][10]

파르마

1995년 여름, 칸나바로는 파르마에 매각되었고, 그는 한 시즌 만에 1군의 주전 지위를 확보하여 29번의 리그 경기에 출전했다. 그는 구단에서 우승을 거둔 것은 물론, 여러 차례 개인 업적을 세워 선수단의 주장도 맡았다. 그는 파르마에서 잔루이지 부폰릴리앙 튀랑과 협력해 유럽 최고의 수비를 형성하는 것은 물론 축구 외 사적인 영역에서도 이들과 가까이 지냈다. 파르마의 전설적인 수비를 형성했던 선수들로는 루이지 사르토르, 로베르토 무시, 안토니오 베나리보, 루이지 아폴로니, 그리고 아르헨티나의 로베르토 센시니가 있었다. 칸나바로는 파르마 시절부터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다. 그는 합류 첫 시즌에 소속 구단이 코파 이탈리아 2라운드에서 탈락했지만, 같은 시즌 세리에 A에서 6위의 성적을 거두어 UEFA컵 진출권을 얻었다. 파르마는 UEFA 컵위너스컵 UEFA 컵위너스컵 1995-96의 8강에도 올랐다. 파르마는 세리에 A 1996-97에서 유벤투스에 이어 준우승을 차지하여, 그 다음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얻었다. 파르마는 또다시 코파 이탈리아 2라운드에서 탈락했고, 같은 시즌 UEFA컵에서는 1라운드에 탈락했다. 1997-98 시즌, 파르마는 세리에 A 5위를 차지하였고, 코파 이탈리아에서 준결승전까지 올라갔고, 같은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전 시즌 우승을 차지한 도르트문트에 밀려 2위로 조별 리그에서 탈락하였다.[8][9][10]

구단에서의 4년차에, 칸나바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유럽대항전을 우승했는데, UEFA컵 정상에 올랐고, 코파 이탈리아도 우승했다. 파르마는 그 시즌 세리에 A를 4위로 마쳐 3위를 거둔 피오렌티나와는 1점차였다. 그 다음 시즌, 파비오의 동생 파올로가 구단에 합류했고, 칸나바로 형제는 이어지는 두 시즌 동안 협력했다. 파비오는 세리에 A 우승을 거둔 밀란을 이기고 자신의 첫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을 차지했고, 파르마는 세리에 A를 4위로 마쳐, 인테르나치오날레와 마지막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놓고 승점에서 동률을 이루었다. 그러나, 파르마는 인테르나치오날레와의 세리에 A UEFA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1-3으로 패해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 리그 진출이 무산되었다. 파르마는 3차이자 최종 예선전에서 대회에 참가했지만 레인저스에 패해 탈락하였다. 파르마는 그 시즌의 UEFA컵코파 이탈리아에서 모두 16강에 떨어졌다.[8][9][10]

2000-01 시즌, 칸나바로는 파르마를 또다시 코파 이탈리아 결승행을 이끌었지만, 피오렌티나에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같은 시즌 UEFA컵에서는 3라운드에 탈락했다. 파르마는 리그에서 3시즌 연속 4위로 마감했고, 그에 따라 UEFA 챔피언스리그 예선전 진출 자격을 얻었지만, 최종적으로 대회 본선에 오르지 못했다. 칸나바로는 파르마에서의 마지막 시즌에 유벤투스를 이기고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거두었지만, 파르마는 같은 시즌에 UEFA컵 16강에서 탈락하였고, 세리에 A는 10위의 성적을 거두었다. 1997년을 기점으로, 그는 파르마에서의 활약으로 성인 국가대표팀에 차출되기 시작했고, 그는 꾸준히 세리에 A 최고의 수비수들 중 한 명으로 꼽혔다. 파르마 시절, 칸나바로는 모든 대회를 통틀어 250경기 이상 출전했고, 5골을 넣었다.[8][9][10]

인테르나치오날레

2002년 여름, 칸나바로는 €23M에 4년 계약을 맺고 인테르나치오날레로 이적했다.[13] 당시 파르마는 재정난에 빠졌고, 인테르는 극적으로 세리에 A 우승을 유벤투스에 내주었고, 4년 연속 무관을 차지한 구단은 거물 공격수 호나우두가 떠나면서 선수단 재조직에 집중하고 있었다. 프란체스코 코코와 그의 파르마 동료 에르난 크레스포와 함께, 칸나바로는 엑토르 쿠페르가 이끄는 인테르나치오날레의 주요 신입생들 중 한 명이었다.[8][9][10]

그러나, 인테르나치오날레에서 그의 생활은 대게 조금씩 모자란 모습이었다. 그는 UEFA 챔피언스리그 2002-03에서 준결승까지 올랐고 세리에 A는 유벤투스에 이어 준우승을 차지했다. 두 번째 시즌은 그보다 알차지 못한 시즌이었는데, 그는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 결장하였고, 주 임무 외의 다른 임무를 수행하곤 했다. 인테르나치오날레는 세리에 A 4위를 차지했고 코파 이탈리아 준결승전까지 올라갔지만, 승부차기 끝에 유벤투스에 패했다. 인테르나치오날레는 UEFA 챔피언스리그 2003-04에서는 조별 리그 3위를 차지했지만, UEFA컵에서는 8강까지 올라갔다. 구단에서 2년을 보낸 근느 유벤투스로 깜짝 교환 이적을 하게 되었고, 인테르나치오날레에서의 생활은 50경기 출장 2골로 끝났다. 이탈리아를 떠나면서, 칸나바로는 인테르나치오날레에서의 생활을 부정적으로 보았고, 그가 속했던 다른 이탈리아 구단인 파르마와 유벤투스보다 안 좋게 회고했다.[8][9][10]

유벤투스

인테르나치오날레에서의 2년 후, 그는 여름 이적 시장 말일에 유벤투스와 계약했다. 계약 조항에는 후보 골키퍼 파비안 카리니의 교환도 끼어 있었고, 그는 인테르나치오날레로 떠났는데, 두 이적건 모두 €10M짜리였다.[14] 토리노 이주로, 그는 파르마 시절 동료였던 릴리앙 튀랑잔루이지 부폰과 재회했고, 셋은 다시 세리에 A의 가장 공포스러운 수비를 재결성했다. 그들과 함께 잔루카 참브로타, 잔루카 페소토, 알레산드로 비린델리, 조나탕 제비나, 그리고 페데리코 발차레티가 조합되었다. 이 선수단은 2004-05 시즌2005-06 시즌에 2시즌 연속으로 작은 방패를 획득했지만,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2시즌 연속으로 8강에서 탈락했다. 전자의 시즌에 칸나바로는 구단의 상징적인 존재들인 파올로 몬테로치로 페라라와 조합되었다. 칸나바로는 토리노 거함에서 훌륭게 시즌을 보내며 이탈리아 축구 오스카상인 오스카르 델 칼초를 4차례 차지했는데 2005년과 2006년에 올해의 수비수와 이탈리아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8][9][10]

2006년 FIFA 월드컵 이후, 칼초폴리 판결에 따라 유벤투스는 세리에 B로 강등되었다. 유벤투스가 UEFA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지 못하게 됨에 따라 칸나바로는 이적을 결정했다. "이 사실을 믿기 힘들수도 있겠지만, 저는 유벤투스가 세리에 A에 남았으면 30점이 감점된다 하더라도 잔류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파비오 카펠로 유벤투스 감독과 함께 2006년 여름에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그가 2년 동안 유벤투스에서 활동하며 작은 방패 2개를 차지했고, 칸나바로는 모든 대회를 통틀어 100경기 넘게 출전했다. 그의 이적은 그를 자신들의 일부로 생각한 유벤투스 지지자들의 실망을 표출하게 만들었다.[8][9][10]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와의 경기에 임하는 레알 마드리드의 칸나바로 (왼쪽 흰 유니폼)

레알 마드리드는 칸나바로 영입을 위해 €7M을 지불하였고,[15] 마드리드와 프랑스 국가대표팀의 전 선수인 지네딘 지단이 사용한 등번호 5번을 받았다. 칸나바로는 마드리드에서 3시즌을 보내며 2006-07 시즌2007-08 시즌라 리가 우승을 거두었고, 2006년 FIFA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고,[16] 2006년 발롱도르의 주인공도 되었다.[5] 칸나바로는 2006년과 2007년의 FIFPro 세계 XI의 일원으로 명명되었고, 2006년 UEFA 올해의 팀 일원으로도 선정되었다. 그는 2007년 라우레우스 세계 스포츠 올해의 스포츠인의 최종 후보 6인에도 이름을 올렸다.[6]

마드리드에서의 마지막 시즌인 2008-09 시즌에 들어, 칸나바로의 기량은 빠르게 하락하였다. 노쇠화로, 그는 리오넬 메시페르난도 토레스 같은 발빠른 선수들을 상대로 고전하며 레알 마드리드의 다실점의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2009년 5월 19일, 칸나바로는 계약 종료와 함께 2009-10 시즌을 앞두고 유벤투스로 복귀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17] 베르나베우에서의 마지막 경기에, 그는 지지자들의 기립 박수를 받았다.[18] 2013년 4월, 칸나바로는 마르카지에 의해 "레알 마드리드 역사상 최우수 11인"의 일원으로 꼽혔다.[19]

수상

이탈리아 파르마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
이탈리아
개인

훈장

각주

  1. “FIFA World Cup South Africa 2010 – List of Players” (PDF). 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 Football Association (FIFA). 2013년 6월 5일에 확인함. 
  2. “Player Profile: Fabio Cannavaro”. UEFA. 2012년 5월 25일에 확인함. 
  3. “Cannavaro quits Italy duty”. 《Sky Sports》. 2010년 6월 25일. 2010년 6월 28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0년 7월 5일에 확인함. 
  4. "Cannavaro discusses highs and lows". Football Federation Australia. 2013년 11월 18일 확인.
  5. “Cannavaro only third defender to win coveted Ballon d'Or”. The Guardian. 2006년 11월 27일. 2014년 2월 15일에 확인함. 
  6. "Seis candidatos españoles a los premios Laureus 2007". El Mundo. 2015년 1월 17일 확인.
  7. "Family". CannAddicted.com.
  8. “Storie di Calcio: Fabio Cannavaro”. 《storiedicalcio.altervista.org》 (이탈리아어). 2015년 4월 17일에 확인함. 
  9. “Il Pallone Racconta: Fabio CANNAVARO”. 《ilpalloneracconta.blogspot.ca》 (이탈리아어). 2014년 9월 14일. 2015년 4월 17일에 확인함. 
  10. Stefano Bedeschi (2013년 9월 15일). “Gli eroi in bianconero: Fabio CANNAVARO”. 《tuttojuve.com》 (이탈리아어). Tutto Juve. 2015년 12월 15일에 확인함. 
  11. Alberto Polverosi. “Cannavaro, Fabio” (이탈리아어). Treccani: Enciclopedia dello Sport. 2015년 5월 20일에 확인함. 
  12. “Milan-Napoli stagione 94/95, P.Cannavaro: "Che gol che fece Fabio! Vi racconto la sfida che ho impresso nella mente" (이탈리아어). Calcio Napoli 24. 2015년 5월 18일에 확인함. 
  13. “Inter complete Cannavaro swoop”. 2015년 6월 16일에 확인함. 
  14. "Operations concerning players' registration rights" (PDF). Juventus Football Club. 2004년 8월 31일.
  15. “Agreements with the Spanish club Real Madrid CF” (PDF). Juventus Football Club. 2006년 7월 27일. 2008년 12월 7일에 원본 문서 (PDF)에서 보존된 문서. 2010년 6월 7일에 확인함. 
  16. “Cannavaro stands alone amid attacking dominance”. FIFA.com. 2015년 10월 23일. 2015년 12월 22일에 확인함. 
  17. “Juve confirm Cannavaro deal”. 《Sky Sports》. 2009년 5월 19일. 2010년 6월 7일에 확인함. 
  18. “Il Bernabeu in piedi per salutare Cannavaro”. 2014년 7월 23일에 확인함. 
  19. “The best foreign eleven in Real Madrid's history”. Marca.com. 2013년 4월 12일. 

바깥 고리

전임
파올로 말디니
이탈리아 주장
2002년– 2010년
후임
잔루이지 부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