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파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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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파 이탈리아
Coppa Italia - Logo 2019.svg
대륙 UEFA
축구 협회 FIGC
국가 이탈리아의 기 이탈리아
주최 기관 레가 세리에 A
개최 주기 매년
시즌 시작 7월
시즌 종료 5월
팀수 78개 구단(2008-09시즌 부터)
대륙 대회 UEFA 유로파리그
국내 대회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홈페이지 코파 이탈리아
역사
설립 연도 1922년
역대 시즌 수 72회
최근 우승 라치오
최다 우승 유벤투스 (13회)
최근 시즌 코파 이탈리아 2019-20
Coccarda Coppa Italia.svg
코카르다 이탈리아나 트리콜로레

코파 이탈리아(Coppa Italia, 이탈리아 컵)는 스폰서십으로 TIM 컵으로 불리며[1] 이탈리아 축구의 최상위 컵 대회이고, 이탈리아 프로 축구대회 중 세리에 A 다음으로 2번째의 위신을 가지고 있는 대회다. 본 대회는 FIGC의 관할아래에 열리며 잉글랜드FA컵과 비슷하게 "연맹(혹은 협회) 컵"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구조적인 측면에서 봤을때는, 실질적으로는 EFL컵과 비슷한 "리그 컵"에 더 가깝다.

1922년에 첫 대회가 열렸으며, 연맹애서 직접 주관하는 유일한 대회였다. 1926-27시즌(16강 중 중단)에 본 대회가 부활했었고, 1935-1936시즌부터 매년 재구성 하게됐으며, 이 기간동안에 대회는 디레토리오 디비시오니 수페리오리(DDS)주관 하에 열렸다. 1943년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대회가 중단됐으며, 1958년 재개됐고 2019-10시즌까지 레가 나치오날레 프로페시오니스티주관이었으며 2010-11시즌부터 레가 세리에 A 주관하에 열린다.

최다 우승 구단은 13번의 우승을 기록한 유벤투스이며, 지금까지 총 16개의 구단이 코파 이탈리아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1936년부터 본 대회 우승 구단은 트로피, 우승 상금과 더불어, UEFA 컵진출권을 줬으며, 2009년부터는 UEFA 유로파리그 진출권이 주어진다. 1988년부터 코파 이탈리아 우승 구단이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에서 세리에 A 우승 구단과 맞붙을 자격을 갖게됐다.

역사[편집]

기원[편집]

코파 이탈리아의 시작은 1921년 이탈리아 축구 구조를 뒤엎는 격동기 속에서 구상됐다. 당해에 주요 구단들과 이탈리아 축구 연맹간의 깊은 불화는 이탈리아 축구 연합(CCI)이 주관하는 독립 리그로 주요 구단이 탈퇴하는 결과를 낳았다.

축구 연맹은 토너먼트로 구성된 대회를 구상했고 1921-22시즌 대회를 구체화 하기에 이른다. 축구 리그와 병행되는 별개의 대회를 제안한다. 그리하여 1922년 4월 2일 첫 국내 컵대회의 첫 경기가 열렸다. 그러나 전력이 약하고 알려지지 않은 구단들의 참가는 이미 코파 이탈리아 첫 대회에 크나큰 악재로 예상됐었으며, 코파 이탈리아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패자부활전과 참가 철회와 같은 복잡한 일들이 있는 가운데, 소위 약팀이며 비인기 구단인 바도는 결승전에서 우디네세를 만나 연장전에서 승부를 지으며, 역사적인 우승을 거둔다. 새 대회는 1922년 여름의 콜롬보 타협으로 인한 이탈리아 축구 개편과 더불어 개최되지 못했다,

4년 후, 1926-27시즌을 통해 다시 이 대회를 재개하러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가용 가능한 일정의 문제로 며칠 가지 않아 당해 시즌을 진행에 차질을 입어 중단하게 된다. 1920~30년 대에는 코파 CONI, 코파 아르피나티, 코파 델리탈리아 센트랄레와 같은 수 많은 작은 대회들이 이탈리아 전역에 난립했으나, 코파 이탈리아와 같이 전국을 아우르는 대회는 없었다.

1930년대[편집]

1936-37시즌 우승 트로피와 함께 포즈를 취하는 제노아 선수들

1935년 이는 이탈리아 축구의 최상위 리그인 세리에 A의 구단 수가 16개 구단으로 확정되고 전국적 리그로 개편되어 어느정도 자리를 잡은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이 코파 이탈리아를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대회로 재탄생 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대회 규정은 잉글랜드 FA컵 (잉글랜드)와 같이 추첨을 통해 경기 장소를 정하고 모든 대진이 결정되는 방식을 도입했으며, 정규 시간과 연장전 후에도 승부가 결정나지 않으면 원정 구단의 구장에서 재경기를 가졌다.

모든 세리에 A, 세리에 B, 세리에 C 구단들이 참가했으며, 최상위 리그의 구단들은 본선으로 직행했으며, 나머지 구단들은 수차례의 예선 라운드를 거치며 걸러졌다. 본선은 총 5개 라운드로 이뤄져있으며, 16강 전으로 시작된다. 결승전은 제3의 구장을 매년 바꿔가면서 여는 것으로 계획되어 시작왰으나, 이탈리아의 수도인 로마를 고정 개최지로 하는 방안으로 변경됐었었지만, 곧 두 결승전 진출 구단의 경기장에서 홈, 원정으로 번갈아 두번의 경기를 여는 것으로 바뀌었다. 우승구단은 이듬해 중앙 유럽 컵의 진출 자격을 획득했다.

다시 열린 첫 대회의 우승 구단은 토리노다. 1936년 제노아스타디오 루이지 페라리스에서 알레산드리아를 꺾으며 우승컵을 들었다. 토리노는 당시 제노아, 피오렌티나, 암브로시아나 인테르, 유벤투스와 더불어 소위 강팀 중 하나였다. 유벤투스는 1937-38시즌에서 우승을 이뤘는데, 당시 결승전은 결승전으로서는 최초의 더비경기로서 토리노의 양팀이 맞붙은 경기였다.

1940년대[편집]

1940-41시즌 베네치아가 우승을 거두는데, 베네치아는 역사적으로 축구 상위권에서 먼 구단이었다. 하지만 이 시기에 베네치아는 에치오 로이크발렌티노 마촐라와 같은 걸출한 선수들이 베네치아의 분홍빛 유니폼을 입고 베네치아를 챔피언으로 만들었다. 이 두 선수는 이듬해에 그란데 토리노(Grande Torino)에 합류하여, 1942-43시즌 우승과 스쿠데토 획득에 큰 공헌을 하며, 토리노는 최초로 동시에 2개의 국내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더블의 업적을 남긴 구단이 된다. 그 전 시즌인 1941-42시즌에서 유벤투스가 결승전에서 밀란을 무찌르며 최초로 2번 우승한 구단이 됐다.

제2차 세계 대전은 코파 이탈리아를 중단하게 만들었다. 세계 대전 종전 후 세리에 A의 참가 구단 수를 20개 구단으로 늘리면서 그 보다 작은 국내 컵대회는 설 자리를 잃었다. 전후 첫 시즌(1945-46)에 이탈리아 축구는 하나의 전국구 리그를 조직하는데 실패하면서, 리그 결선 라운드에 진출하지 못한 북부 축구 구단들이 모여 코파 알타 이탈리아 대회를 열었고, 볼로냐가 우승했다.

1950년대[편집]

1958년에 이르러서야 대회가 재개하게 되었다. 라치오가 피오렌티나를 결승전에서 꺾었다. 이 시즌부터 레가 나치오날레 프로페시오니스티에서 대회를 주관하게 됐다. 이는 컵위너스컵이라는 신설될 유럽 클럽 대항전을 고려하여 이뤄진 구조 조정이었다.

1958시즌 대회는 시즌이 시작되고 한참이 지나서야 개회했는데, 그 이유는 스웨덴에서 열린 1958년 월드컵 대회를 고려하여 세리에 A 1957-58시즌을 3주 가량 리그를 늦게 시작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이 지역예선에서 북아일랜드에게 충격적인 패배를 받으며 탈락했다. 그리하여 축구 구단과 선수들을 방치할 수 없기에 전 시즌대회의 결승전이 열리기도 전에 1958-59시즌을 계획적으로 개회했다.

1958시즌에 라치오가 우승을 하면서 코파 이탈리아 우승의 상징인 "코카르다 트리콜로네"가 최초로 사용됐으며, 레가에서 공식적으로 채용하기에 이른다. 1959-60시즌에 유벤투스가 우승을 거두며 최초로 더블을 기록했으며, 현용되고 있는 이탈리아 국기를 상징하는 삼색의 에나멜 장식이 있는 황금 트로피가 최초로 사용됐다.

1960년대[편집]

세리에 B 소속이었으나 1961-62시즌에 우승한 나폴리

상기된 UEFA 컵위너스컵이 1960-61시즌으로 대회가 시작됐으며, 컵위너스컵은 코파 이탈리아 부활의 궁극적이고 유일한 목적이었다. 이 목적은 코파 이탈리아 대회 설계에 잘 들어나있다. 세리에 C와의 협력없이, 모든 대진과 경기가 싱글 엘리미네이션 토너먼트로 진행되고 우등 구단이 상위 라운드에 진입하게 하여 대회가 최다한 신속하고 번거로움이 없게 진행되도록 설계됐다.

1960년대에 코파 이탈리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크지않던 상황 속에서 로마, 밀란과 같은 주요 구단이 코파 이탈리아 우승 구단에 처음으로 이름을 남겼으며, 1962-63시즌 아탈란타의 예상치 못한 우승도 있었다. 1961-62시즌나폴리 구단의 우승은 바도 구단의 우승 이 후로 두번째이며 지금까지 마지막으로 최상위 리그에서 뛰지 않는 구단이 우승한 마지막 우승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리고 1967-68시즌은 주목할만한 시즌이었다. 대회 창설 시즌부터 그 전 시즌까지 행해졌던 최후의 두 구단이 승부를 짓는 결승전 방식을 버린 시즌이다. "결승 라운드"가 도입되었는데, 8강 까지 진행하여 남은 최후의 4구단을 이탈리아식 리그전을 벌여 네 구단 모두 서로 2번씩 경기를 가지고 최종 승점이 높은 구단이 우승컵을 들어올리게 됐다.

1970년대[편집]

대회 부흥과 더 많은 사람들을 경기장으로 이끌기 위해 FIGC는 이탈리아 축구 구단에게 리그 만큼은 아니겠지만 많은 관심을 달라 종용했고, 연맹은 세리에 A 참가 구단을 16개로 줄이며 연간 일정에 생기는 많은 공백을 막고자 점차적으로 토너먼트가 아니라 조별 "더블 라운드-리그전"으로 개정하는 것으로 대회 구성에 변화를 주었다.

상기됐던 전통적인 결승전 방식을 대신하여 최후의 4개 구단이 한개의 조를 이뤄 리그전을 통해 트로피의 행방을 가리는 방식으로 바꾸었으나, 우승팀이 가려지는 과정에서 소위 "페이소스" 결여가 문제점으로 야기가 됨에 따라 연맹은 기존의 결승전 방식으로 회귀시켰다. 이러한 재변경에 큰 영향을 준 사건이 1970-71 시즌이다. 결승 라운드의 모든 경기가 치뤄졌고 두 구단이 동일 승점으로 마감되어, 트로피 증정을 위해 중립 경기장에서 플레이 오프를 치뤄야하는 상황이 발생했는데, 설상가상으로 (코파 이탈리아 역사사 최초로)페널티 킥까지 가서 승부가 가려졌다. 이 일로 다시 기존의 결승전으로 돌리라는 요청이 쇄도했고, 바로 연맹은 그 다음시즌인 1971-72시즌부터 즉시 적용됐다.

1970년대 전반기에 토너먼트에서 대체된 조별 리그 방식에 수정이 더해졌다. 프리시즌 동안에 한 조당 구단 5개인 총 7개 조에서 "싱글 라운드-리그전" 방식의 경기를 가진다. 리그 종료 후, 각 조의 1등 구단인 총 7개 구단과 전시즌 우승 구단을 합한 8개구단은 2개 조로 배경이되어 "더블 라운드-리그전"을 펼친다.

조 선두의 두 구단은 로마에 있는 스타디오 올림피코에서 이탈리아 대통령의 참석하에 단일 결승전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로마 결승전" 규정은 1979-80 시즌까지 지속됐으며, 단 1976-77 시즌1978-79 시즌 결승전만 로마가 아닌 다른 곳에서 결승전이 열렀다. 각각 밀라노스타디오 산 시로나폴리스타디오 산 파올로에서 열렸다.

1970년대에 제일 성공적이었떤 구단은 밀란이다. 5번 결승전에 올라가서 3번 우승하여, 코카르다를 가슴팍에 달 수 있었다. 1977년에 이 밀라노의 흑적군단 AC 밀란은 결승전에서 밀라노 더비가 성사되어 인테르를 꺾고 우승했다. 밀란의 도시 라이벌인 흑청군단 인테르는 39년 만에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홈에서 거둘 호기였으나 지역 라이벌에게 방해를 받은 샘이었다. 그리고 마침애 바로 다음시즌에서 인테르는 우승컵을 들어올린다. 과거에 찬란한 영광을 가지고 있던 볼로냐는 70년 전반기에 두번의 우승을 거두었다. 그리고 팔레르모의 눈에 띄는 위업이 있는데, 세리에 B에서 뛰고있었으나 1970년대에 두번이나 코파 이탈리아 결승전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1980년대[편집]

유럽 클럽 대항전의 성공이 코파 이탈리아 대회 방식을 바꿔야한다는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고, 원정 다득점 규칙이 적용된 토너먼트를 1979년부터 도입하게 되어, 준결승전과 8강전에 도입이 됐고, 2년 뒤에는 결승전에도 도입이 되기에 이르렀고, 세리에 C1구단이 본 대회에 다시 참가하게된 1982-83시즌 부터는 결선전에도 적용이 됐다.

상기됐듯이 1980-81시즌부터 결승전 방식이 바뀌었다. 두번의 경기로 트로피의 행방을 가르게 된다. 두경기 모두다 승리를 거두면 우승하게 되며, 두 결승전 경기로 승패가 가려지지 못하고 골득실 차가 동일할 경우에, 원정 경기에서 가장 많이 득점을 한 구단이 트로피를 가져가게 된다. 원정 득점 수도 동일할 경우에는 연장전으로 돌입하며 상황에 따라 승부차기까지 이어지게 되고, 이 방식은 2006-07시즌까지 지속된다.

1980년대에 로마와 신흥 강팀인 삼프도리아로 패권이 넘어간다. 이 기간동안 삼프도리아는 4번 결승전에 진출하여 3번 우승했며, 이 제노바의 축구단은 코파 이탈리아 1987-88시즌에서 우승을 거두며 유럽 클럽대항전과 1988년에 신설되어 세리에 A 우승팀과 코파 이탈리아 우승팀이 자웅을 겨루는 국내 컵대회인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진출자격을 가져갔다.[2]

1990년부터 유럽 만들어진 원정 다득점 방식은 대회의 전반에 적용됐으며, 코파 이탈리아 대회는 싱글 엘리미네이션 토너먼트 방식과 총 5개의 라운드로 구성되었다.

1990년대[편집]

1990년대의 시작은 최초 우승과 강자의 귀환과 함께 시작됐다. 1991-92시즌파르마가 창단이래 첫 우승을 거두며, 이 시기동안 이 "지방 구단"은 국내대회와 유럽 대항전에 출전 기회를 얻게된다. 다음시즌에 토리노가 우승을 거두며 20년 만에 코파 이탈리아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다음시즌인 1993-94시즌안코나가 결승전까지 올라가 준우승을 기록했는데, 이는 현재까지 세리에 A 구단이 아닌 구단이 결승전에 진출한 마지막 기록으로 남아있다.

1990년대의 중반을 가로짓는 시즌인 1995-96시즌에서 피오렌티나가 20년만에 우승을 거둔다. 1997-98시즌에서 일어난 라치오의 우승은 더욱 의미가 있는데, 라치오가 코파 이탈리아의 재개막 시즌에서 우승한 후 정확히 40년 만에 트로피를 들어올리게 됐다. 그 전 시즌에 소형구단인 비첸차가 우승을 거두며 바도, 베네치아, 아탈란타의 영광을 상기시키며,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거둔 마지막 지방 구단으로 역사에 남게된다.

20세기 마지막 시즌은 비록 대중의 관심이 최고는 아니었으나 어느정도의 인기를 끌어모얐다. 하지만 UEFA에서 유럽 클럽 대항전의 변화를 공표하며 코파 이탈리아 대회 인기에 찬물을 끼얹다.

2000년대[편집]

1999년 컵위너스컵이 폐지됐고 UEFA 챔피언스리그 참가권이 확대됨에 따라 코파 이탈리아가 존재 이유를 제거해 버렸고, UEFA 컵 진출권은 리그를 통해서 보다 쉽게 달성할 수 있었기 때문에, 컵위너스컵 진출권이 UEFA 컵 진출권으로 대체된 것이 대회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

코파 이탈리아의 인기가 떨어져버림에 따라 대회 구성또한 축소되었다. 참가 구단이 세리에 A, 세리에 B 모든 구단과 세리에 C1의 상위 10개 구단으로 줄어들었다. 1라운드는 시즌 시작 기준으로 세리에 A의 하위 2개 구단과 하위 리그 구단이 각 조마다 4구단씩 단판 리그전을 펼치고, 각 조 1등이 다음 라운드로 진출한다. 2라운드에서는 1라운드에서 진출한 8개 구단과 세리에 A의 9~16위 구단이 2차전에 걸쳐 승부를 가지고, 결승 라운드로 진출한다.

2005-06시즌에서 5번째 우승을 거둔 인테르

이 기간동안 코파 이탈리아의 인기는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2005년 대회 구조에 재개편하기로 결정했다. 세리에 A 구단 중 대륙 클럽 대회에 진출하지 못한 12개 구단과 세리에 B 전구단, 세리에 C1에서 30개 구단이 참가하여 단판 경기를 가지는 예선전을 도입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구단들은 자주 경기에 선수단 2진을 내보내는 등 이런 혁신조차 경기장으로 관중들을 끌어모으기에는 부족했다.

그러나 코파 이탈리아 60회를 맞이하는 2007년에 수많은 변화를 주었다. 대회 출전 구단을 세리에 A와 세리에 B 구단으로 축소시키고, 결승전 진출 구단의 경기장에서 두번에 걸쳐 치뤄왔던 결승전을 영구적으로 로마 소재의 스타디오 올림피코에서 단판승부로 변경한다.[3] 2008년에는 구조적 변경이 있었다. 참가구단을 하위 리그 구단으로 확대하여 예선전을 구성했고, 예선전을 테니스 대회 예선전처럼 여러 다발의 토너먼트로 재구성했다. 또한 2차전에 걸쳐 열리는 준결승을 제외하고는 모든 라운드는 단판 토너먼트로 변경됐다.

2008-09시즌에서 5번째 트로피를 들어올린 라치오

2000년대는 라치오의 더블로 시작하여 인테르와 로마로 이원화되어 결승전에서 5번 맞붙었으며 그 중 두 팀은 4시즌 연속으로 결승전에서 만났다. 인테르가 로마를 상대로 3번 우승했고 로마는 2번 우승했다. 특히, 2004-05시즌 우승을 거둔 인테르는 23년전만에 유니폼에 코카르다를 다는 영광을 얻었다.[4] 2002-03시즌에는 밀란이 26년만에 우승을 거뒀다.

2010년대[편집]

2010년대의 전반기에는 오랜 기간의 침묵을 깨고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거둔 두 구단이 있다. 2011-12시즌나폴리지난 우승 후 25년 만에 우승을 거두었고,[5] 2014-15시즌에는 유벤투스가 20년 만에 우승을 거두며, 최초로 두 자리 수의 우승을 거둔 첫번째 구단이 되었다.[6] 유밴투스의 흑백군단은 이후 2010년대의 후반기를 독식하기 시작했고, 코파 이탈리아 대회 4연패라는 신기록을 세운다.[7] 이전의 2012-13시즌 스타디오 올림피고에서 열린 결승전은 본 대회 역사상 최초의 로마 더비 결승전 이었고, 라치오가 코카르다를 거두어 갔다.[8]

대회 구성[편집]

코파 이탈리아 트로피를 들어올린 구단은 다음시즌 유로파리그 조별리그 참가권을 얻게된다. 만약 우승 구단이 이미 챔피언스리그 참가 자격이 됐을 경우에 유로파리그 참가자격은 리그 순위에 따라서 재부여된다.

2011-12시즌부터 토너먼트 구성은 아래와 같다.

  • 세리에 A 20개 구단, 세리에 B 22개 구단, 세리에 C 27개 구단, 세리에 D 9개 구단이 참가.
  • 예선전 1라운드에서 세리에 C와 세리에 D 구단이 맞붙으며, 세리에 B구단은 2라둔드부터 참가한다. 3라운드에서는 이 전 시즌 세리에 A 9~17위를 기록한 12개 구단과 더불어 세리에 B에서 새로 승격한 3구단이 참가한다. 나머지 8개 구단은 시드권을 가지고 16강부터 참가한다. 4라운드로 구성된 예선전과 16, 8강전은 단판 경기다. 시즌 전 추첨식에서 받은 번호에 따라 상대보다 낮은 번호를 받은 구단은 홈구장에서 경기를 가지며, 홈 원정으로 구성된 준결승전은 예외다.
  • 결승전은 로마 소재의 스타디오 올림피코에서 이탈리아 대통령의 참석하에 열려 대통령이 경기 후 시상을 하며, 대통령의 부재시에는 이탈리아 상원 의장이 이를 대신한다.
  • 모든 경기에서 나이키가 제공하는 레가 세리에 A의 공인구가 반드시 사용돼야 한다.

결승전이 단일 경기로 바뀐 뒤 통상 유명 아티스트가 킥오프 전 이탈리아 국가를 부른다.

상징물[편집]

트로피[편집]

1936~43년 동안 사용된 트로피

코파 이탈리아 첫 시즌 최초의 트로피는 바도에게 수여됐으며, 파시스트 기간 중에 파괴됐다. FIGC는 바도가 이룬 우승의 70년이 되는 해인 1992년에 복제품을 제작했고, 현재 바도 리구레에 있는 카사 디 리스파르미오 디 사보나(사보나 저축은행) 본사에 전시되어 있다. 최초 트로피와 1936~1943년 기간에 사용된 트로피와 1958~1959년에 사용된 트로피는 현용되는 트로피와는 외형적으로 매우 다르게 생겼다.

코파 이탈리아 대회가 영원을 기약하며 재개됨에 따라, 1960년 5월 30일 레가 나치오날레 프로페시오니스티제12회 대회 결승전을 위해 현재의 트로피를 만들기로 결정을 내렸다. 순으로 만들어진 새 트로피는 밀라노의 전문 회사에서 제작했으며 2백 5십만 리라의 값이었다.

그 이후로 트로피 원본이 한 시즌동안 양도되어 리그에 반납전까지 우승구단에게 보관되며,[9] 이와 동시에 우승 구단과 준우승 구단은 복제 트로피 또한 수여받는다. 우승구단 것은 합금 금이며 준우승 구단은 이다. 형평성을 위해 1960년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두 시즌 우승구단인 라치오유벤투스에게도 수여됐다.

1963-64시즌부터 레가 세리에 A는 코파 이탈리아 트로피와 함께 코파 레나도 달라라 트로피를 추가한다. 1964년에 사망한 볼로냐 구단의 회장의 이름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우승한 선수단에게 수여된다.[9] 초기에는 트로피는 시상식때 경기장에 같이 모습을 드러냈지만 이러한 관습은 사라졌다.

2010-11시즌 레가 세리에 A이탈리아 국방부는 이탈리아 통일 150주년이 되는 당해의 대회 명칭에 대한 합의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당 시즌 우승 구단인 인테르는 총 3개의 트로피를 수여 받았는데, 코파 이탈리아, 코파 달라라와 이탈리아 통일 150주년 트로피를 수여받았다.[10]

코카르다[편집]

상기된 트로피와 더불어 코파 이탈리아 우승 구단은 약 12개월 동안 유니폼 가슴팍에 우승의 상징으로서 이탈리아 삼색으로 구성된 코카르다(Coccaeda, 모표(帽標))를 부착할 수 있게된다.[11] 이탈리아 챔피언이 스쿠데토를 다음 시즌에 부착하는 것과 같다.

우승 구단 유니폼에 부착된 코카르다 트리콜로레

코카르다는 1958-59시즌에 코파 이탈리아 전 시즌 우승 구단인 라치오의 유니폼에 부착되며 처음으로 선 보였으며, 최외곽 원은 빨간색, 그 다음 원은 하얀색, 중심 원은 초록색으로 구성되었고, 이 형태의 코카르다는 1984-85시즌까지 사용됐다. 그 다음 해인 1985-86시즌 부터는 가장 바같 원이 초록색, 그 다음 원이 흰색, 빨간색으로 된 다른 색깔로 구성된 코카르다를 전 시즌 우승 구단인 삼프도리아의 유니폼에 부착되며 처음으로 사용됐다. 겉부분이 빨간색인 코카르다는 1988-89시즌 삼프도리아의 유니폼과 1990-91시즌 유벤투스의 첫 경기에 일시적으로 사용됐었다가, 마침내 2006-07시즌부터 최초에 사용된 형태의 코카르다로 회귀돼서 사용되고 있다.

코카르다 부착의 개념이 창안되 전인 전간기동안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 구단도 우승을 상징하는 표식을 가슴에 부착했다. 다만 58년에 창안된 코카르다와는 달랐는데, 스쿠데토의 지위가 격하되어, 이탈리아 왕국의 권력을 잡은 파시스트 정권 때문에 속간이 중앙에 추가된 스쿠데토가 코파 이탈리아 우승구단에게 1935-36시즌부터 1942-43시즌동안 수여됐다. 그 당시 동안 세리에 A 우승 상징은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청색 유니폼 색과 같은 파란색 테두리로 감싸진 사보이 가의 문장으로 대체됐다.

우승 기록[편집]

구단명 우승 횟수 준우승 횟수 우승 시즌 준우승 시즌
유벤투스 13 5 1938, 1942, 1959, 1960, 1965, 1979, 1983, 1990, 1995, 2015, 2016, 2017, 2018 1973, 1992, 2002, 2004, 2012
로마 9 8 1964, 1969, 1980, 1981, 1984, 1986, 1991, 2007, 2008 1937, 1941, 1993, 2003, 2005, 2006, 2010, 2013
인테르 7 6 1939, 1978, 1982, 2005, 2006, 2010, 2011 1959, 1965, 1977, 2000, 2007, 2008
라치오 7 3 1958, 1998, 2000, 2004, 2009, 2013, 2019 1961, 2015, 2017
피오렌티나 6 4 1940, 1961, 1966, 1975, 1996, 2001 1958, 1960, 1999, 2014
밀란 5 9 1967, 1972, 1973, 1977, 2003 1942, 1968, 1971, 1975, 1985, 1990, 1998, 2016, 2018
토리노 5 8 1936, 1943, 1968, 1971, 1993 1938, 1963, 1964, 1970, 1980, 1981, 1982, 1988
나폴리 5 4 1962, 1976, 1987, 2012, 2014 1972, 1978, 1989, 1997
삼프도리아 4 3 1985, 1988, 1989, 1994 1986, 1991, 2009
파르마 3 2 1992, 1999, 2002 1995, 2001
볼로냐 2 0 1970, 1974 -
아탈란타 1 3 1963 1987, 1996, 2019
제노아 1 1 1937 1940
베네치아 1 1 1941 1943
바도 1 0 1922 -
비첸차 1 0 1997 -
베로나 0 3 - 1976, 1983, 1984
팔레르모 0 3 - 1974, 1979, 2011
우디네세 0 1 - 1922
알레산드리아 0 1 - 1936
노바라 0 1 - 1939
SPAL 0 1 - 1962
카탄차로 0 1 - 1966
파도바 0 1 - 1967
칼리아리 0 1 - 1969
안코나 0 1 - 1994

기록[편집]

구단 기록[편집]

스쿠데토와 코파 이탈리아를 동일 시즌에 우승한 소위 "국내 더블"의 기록은 총 11번 있었다. 유벤투스는 6회(1959-60, 1994-95시즌2014-15, 2015-16, 2016-17, 2017-18시즌), 인테르는 2회(2005-06, 2009-10시즌), 토리노(1942-43시즌), 나폴리(1986-87시즌), 라치오(1999-2000시즌)가 1회를 기록했다. "대륙 더블"과 같은 경우에는 총 6회 있었다. 피오렌티나(1960-61시즌)와 밀란(1972-73시즌)이 코파 이탈리아와 컵위너스컵을, 유벤투스(1989-90시즌)와 파르마(1998-99시즌)가 코파 이탈리아와 UEFA 컵에서 우승했고, 밀란(2002-03시즌)과 인테르(2009-10시즌)가 코파 이탈리아와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거뒀다. 유일하게 트레블을 기록한 구단은 2010년의 인테르로서 코파 이탈리아, 스쿠데토,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을 거두며 하나뿐인 기록을 세웠다.

위의 설명에서 볼 수 있듯이 유벤투스는 2014-15시즌부터 2017-18시즌까지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거두며 4연패의 기록을 세운 유일한 구단이다.[7] 1986-1987시즌에 나폴리가 모든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며 13연승의 기록과 함께 우승했다 피오렌티나도 1995-96시즌에, 인테르는 2009-10시즌, 유벤투스는 2017-18시즌에 전승 우승을 거뒀으나, 나폴리의 13경기 보다는 적은 경기를 가졌다. 1961-62시즌 나폴리의 우승, 첫 시즌 바도의 우승은 최상위 리그에서 뛰지 않고 있는 구단이 우승을 한 유이한 기록으로 남아있다. 코파 이탈리아 결승전에서 같은 도시의 구단이 맞붙은 소위 더비가 총 3번 발생했다. 1937-38에서 유벤투스-토리노, 1976-77에서 밀란-인테르, 2012-13에서 로마-라치오.[12]

밀란은 준결승 9번을 기록하여 코파 이탈리아 결선 진출 대비 우승 수 가 가장 낮은 구단이다. 베로나, 팔레르모는 우승없이 준결승만 3번한 구단이다. 지금까지 결승전에 진출하여 준우승만 이룩한 구단이 총 10구단이다. 앞의 두 구단와 더불어 우디네세, 알레산드리아, 노바라, SPAL, 파도바, 카탄차로, 안코나가 결승전에 한번 진출하여 준결승한 구단들이다. 칼리아리는 1968-69시즌 결승전이 없던 결승 리그전이 있던 시절 2위였다.

경기 기록[편집]

선수 기록[편집]

최다 득점 선수[편집]

상위 10명 최다 득점 선수

순위 국적 성명 득점 출전 기간 소속 구단
1 이탈리아 알레산드로 알토벨리 56 1974-1990 3 브레시아, 46 인테르, 7 유벤투스
2 이탈리아 로베르토 보닌세냐 48 1963-1980 2 바레세, 3 칼리아리, 36 인테르, 6 유벤투스, 1 베로나
3 이탈리아 주세페 사볼디 47 1965-1980, 1982-1983 1 아탈란타, 27 볼로냐, 19 나폴리
4 이탈리아 잔루카 비알리 43 1981-1996 2 크레모네세, 36 삼프도리아, 5 유벤투스
5 이탈리아 브루노 조르다노 38 1975-1992 18 라치오, 14 나폴리, 4 아스콜리, 2 볼로냐
6 이탈리아 피에트로 아나스타시 37 1966-1981 1 바레세, 30 유벤투스, 6 인테르
6 이탈리아 파올로 풀리치 37 1967-1985 29 토리노, 8 피오렌티나
8 이탈리아 로베르토 바조 36 1982-2004 2 비첸차, 15 피오렌티나, 14 유벤투스, 3 밀란, 1 볼로냐, 1 인테르
9 이탈리아 지지 리바 33 1963-1976 33 칼리아리
10 이탈리아 로베르토 만치니 32 1981-2000 26 삼프도리아, 6 라치오

최다 출전 선수[편집]

상위 10명 최다 출전 선수

순위 국적 성명 출장 수 출장 기간 소속 구단
1 이탈리아 로베르토 만치니 120 1981-2000 볼로냐, 삼프도리아, 라치오
2 이탈리아 주세페 베르고미 119 1979-1999 인테르
3 이탈리아 피에트로 비에르코보드 116 1976-2000 코모, 피오렌티나, 로마, 삼프도리아, 유벤투스, 밀란, 피아첸차
4 이탈리아 프란코 카우시오 113 1971-1986 레지나, 팔레르모, 유벤투스, 우디네세, 인테르, 레체, 트리에스티나
5 이탈리아 조반니 잘리 112 1977-1996 피오렌티나, 밀란, 나폴리, 토리노, 파르마, 루케세
6 이탈리아 디노 조프 110 1961-1983 우디네세, 만토바, 나폴리, 유벤투스
7 이탈리아 이바노 보르돈 102 1970-1989 인테르, 삼프도리아, 브레시아
8 이탈리아 파우스토 살사노 102 1983-1998 파르마, 삼프도리아, 로마
9 이탈리아 주세페 브루스콜로티 100 1971-1988 소렌토, 나폴리
10 이탈리아 가에타노 시레아 100 1972-1988 아탈란타, 유벤투스

최다 우승 선수[편집]

고란 판데프 선수는 코파 이틸리아를 5번 우승했고, 4연속 우승했다.

최다 연속 우승 선수[편집]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TIM E LEGA SERIE A: SIGLATO L'ACCORDO DI SPONSORIZZAZIONE PER LA FASE FINALE DELLA TIM CUP 2018-2019”. 《legaseriea.it》 (이탈리아어). 2019년 4월 23일. 2019년 5월 25일에 확인함. 
  2. Rossi, Franco (2019년 8월 8일). “Supercoppa Italiana, Berlusconi e Mantovani "picciotti onorari". 《tuttomercatoweb.com》 (이탈리아어). 2019년 5월 25일에 확인함. 
  3. Chesi, Sergio (2012년 5월 22일). “Editoriale - Canta Napoli! Perchè una Coppa Italia va celebrata come una Champions”. 《goal.com》 (이탈리아어). 2019년 5월 25일에 확인함. 
  4. “Roma senza gioco e senza grinta Coppa Italia all'Inter dopo 23 anni”. 《repubblica.it》 (이탈리아어). 2015년 6월 15일. 2019년 5월 25일에 확인함. 
  5. Mallucci, Mattia (2012년 3월 20일). “La Coppa Italia è del Napoli. Battuta la Juve in finale”. 2015년 5월 21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9년 7월 24일에 확인함. 
  6. Gerna, Jacopo (2015년 5월 20일). “Juve infinita, vince la 10ª Coppa Italia: Matri piega la Lazio ai supplementari”. 2019년 7월 24일에 확인함. 
  7. Mazzitelli, Massimo (2018년 5월 9일). “Juventus-Milan 4-0, i bianconeri conquistano la quarta Coppa Italia consecutiva: notte da incubo per Donnarumma”. 2019년 7월 24일에 확인함. 
  8. Manfredi, Jacopo (2013년 5월 26일). “Coppa Italia, Roma-Lazio 0-1: Lulic regala il sesto trofeo ai biancocelesti”. 2019년 7월 24일에 확인함. 
  9. “Coppa Italia 2012/2013, 2013/2014 e 2014/2015 – Regolamento”. 《legaseriea.it》. 2012년 6월 4일. 2013년 9월 2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10. “Coppa del 150° anniversario dell’Unità d’Italia”. 《difesa.it》 (이탈리아어). 2011년 5월 29일. 2019년 5월 25일에 확인함. 
  11. “Regolamento Coppa Italia 2010/2011 e 2011/2012 – Premi società vincitrice” (이탈리아어). 2010년 4월 8일. 2013년 9월 2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12. Valdiserri, Luca (2013년 4월 17일). “Inter ko, la Coppa Italia diventa il derby di Roma”. 《corriere.it》 (이탈리아어). 2019년 5월 25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