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세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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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세웅(咸世雄, 1942년 6월 28일 ~ )은 대한민국의 교육자, 사회운동가, 로마 가톨릭교회 신부이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을 창립하고 고문을 역임하는 등 진보적 기독교 진영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현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1]

목차

생애 [편집]

경성부에서 태어나 어릴 때 서울 용산구의 용산성당에 다니면서 로마 가톨릭교회에 입문하였다. 유년기에 겪은 한국 전쟁 중 전쟁의 참상을 목격한 것이 계기가 되어 성직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2]

1960년가톨릭대학교에 입학하였고, 군 복무 후 1965년부터 1973년까지는 로마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 귀국한 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성당에 부임하였다.

1974년에 천주교 원주교구장 지학순주교 등 각계 인사들이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대거 구속된 사건을 계기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창립을 주관하고, 이후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다.[3] 1974년의 민주회복국민선언1976년명동 3.1 민주 구국선언에 모두 참여하고 제4공화국에서 두 차례 투옥되었다. 1979년 10·26 사건 때도 수감 중이었다가, 긴급조치 9호가 해제된 뒤에 석방되었다.

1987년 6월항쟁 때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홍보국장으로 재직 중이었고, 가톨릭대학교 교수를 거쳐 장위동성당, 상도동성당, 제기동성당 주임신부를 지냈다. 2008년 한미 쇠고기 협상 내용에 대한 반대 시위에 대한 언론의 왜곡을 비판하면서 대통령 이명박의 경청을 요구하여, 촛불 시위에 대한 지지 의사를 표명한 바 있다.[4]

기타 [편집]

1984년 9월 14일 낮 12시 30분 경 서울 성동구 자양동 강변도로에서 스텔라 승용차를 직접 운전하던 도중 무단횡단하던 안재연(당시 7세, 남)를 치어 그자리에서 사망케 했다.[5] 그는 운전 중 안재연을 발견 급정거했으나 미처 피하지 못하고 사고가 발생했다. 경찰은 그를 불구속 입건하여 조사하였다.[5] 다만 이 기사에는 구의동성당의 당시 48세 함세웅 신부로 나와있어, 당시 42세의 신부였던 함세웅 신부와 맞지 않는다.

같이 보기 [편집]

주석 [편집]

  1. 함세웅신부 “노대통령 우리가 껴안고 가야””, 《연합뉴스(동아일보)》, 2007년 1월 9일 작성. 2008년 8월 29일 확인.
  2. 이재성. “[한겨레가만난사람] 함세웅 정의구현사제단 고문”, 《한겨레》, 2004년 3월 24일 작성. 2008년 8월 29일 확인.
  3. 이재성,유신재. ““70년대에 ‘촛불네티즌’ 있었다면 독재 더 빨리 몰아냈겠지요””, 《한겨레》, 2004년 3월 24일 작성. 2008년 8월 29일 확인.
  4. 최훈길. “함세웅 "거짓된 언론의 회개를 촉구"”, 《미디어오늘》, 2008년 6월 10일 작성. 2008년 8월 29일 확인.
  5. "손수 운전 함세웅 신부, 교통사고 불구속 입건" 경향신문 1984년 09월 18일자, 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