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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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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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부(일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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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행정구역 변천
1910년 9월 30일 공포, 10월 1일 시행된 〈조선총독부지방관관제〉에 따라 한성부는 경성부로 개칭되고 경기도의 하부 조직의 하나가 되었다. [2] 경성은 수도가 있는 서울이라는 뜻.행정구역은 1911년 4월 1일부터 5부 8면제를 실시하여 종전대로 성내(城內)는 5부로 구분하고 성밖(城外)은 용산·서강·숭신·두모(豆毛)·인창(仁昌)·은평·연희·한지(漢芝)의 8면(面)으로 구분하였다가 1913년에 행정구역을 변경하여 1914년에는 용산·숭인·인창·한지·두모면의 일부를 경성부에 편입시켰다. [1] 1914년 4월 1일부로 5부 8면제는 폐지되고 [3] 이 날부터 경기도는 지금까지 실시해 오던 한성부 방, 계, 동 제도를 폐지하고 경성부의 행정구역을 186개 동으로 하여 경성부가 직할하게 하는 대대적인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하였다.[4]
1914년 9월 27일부터 경성부에 동부 · 서부 · 북부 · 용산의 4개 출장소를 설치하고 업무를 처리하였다. 그러나 이 출장소 제도도 설치한 지 겨우 1년 2개월 후인 1915년 6월 17일 용산출장소만 남기고 폐지하였다. 1936년 3월 23일자 조선총독부 경기도 고시 제32호에 따라 경성부의 행정구역의 명칭이 기존의 “~동”(洞)에서 “~정”(혹은 마치, 町)으로 개칭되었고[5] 4월 1일 경기도 고양군·시흥군·김포군 일부 지역이 아래 표와 같이 경성부로 편입되었다. [6]
| 개편 전 | 개편 후 |
|---|---|
| 고양군 용강면 아현리 | 아현정 |
| 고양군 용강면 여율리(汝栗里) | 영등포출장소 여의도정(汝矣島町) |
| 고양군 연희면 대현리, 노고산리, 창천리, 동세교리, 신촌리(新村里), 봉원리, 북아현리 | 각각 대현정, 노고산정, 창천정, 동교정, 신촌정(新村町), 봉원정, 북아현정 |
| 고양군 연희면 연희리, 연희면 남가좌리 중 홍제원천(弘濟院川) 좌안 지역 | 연희정 |
| 고양군 숭인면(崇仁面) 돈암리(敦岩里), 성북리(城北里), 안암리(安岩里), 종암리(鍾岩里) | 돈암정(敦岩町), 성북정(城北町), 안암정(安岩町), 종암정(鍾岩町) |
| 시흥군 북면 도림리 일부(현재의 도림동, 문래동)·신길리·본동리(本洞里)·노량진리·흑석리·동작리·번대방리 | 영등포출장소 도림정·신길정·본동정·노량진정(鷺梁津町)·흑석정·동작정·번대방정 |
| 시흥군 영등포읍 영등포리·당산리·양평리 | 영등포출장소 영등포정·당산정·양평정 |
| 시흥군 동면 상도리 | 영등포출장소 상도정 |
| 김포군 양동면(楊東面) 양화리 | 영등포출장소 양화정 |
1936년 7월 23일 동부출장소(東部出張所)와 영등포출장소(永登浦出張所)를 설치하였고 1940년 7월 1일 서부출장소를 설치하여 4개의 출장소가 경성부 하부관아로서 경성부 업무를 보조 수행하였다. [3] 영등포 출장소는 시흥군 등에서 편입된 지역을 관할하였다. 이 출장소 제도는 1943년 6월 9일 부령(府令) 제163호에 의하여 폐지되었고 1943년 6월 10일 인구 증가에 따라 구제가 처음으로 실시되었다. 용산출장소를 용산구(龍山區)로, 동부출장소를 분할하여 동대문구(東大門區)와 성동구(城東區)로, 서부출장소를 서대문구(西大門區)로, 영등포출장소를 영등포구(永登浦區)로 하고, 도성내에 종로구(鐘路區)와 중구(中區)를 각각 신설하여 모두 7개구를 설치하고 행정기구로 구역소(區域所)를 두고 업무를 수행하였다. [7] [8] [9] 이전에도 시의 특정 주변지역(영등포, 용산, 서부(西部), 북부(北部))에 출장소(出張所)라는 것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그 출장소는 어디까지나 본청의 하부 행정기관일 뿐 독립적인 행정구역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때 경성부에는 중부, 종로, 동대문, 성동, 서대문, 용산, 영등포의 7개구역소가 설치되었다.
| 구역소 명칭 | 관할 구역 |
|---|---|
| 영등포구 | 영등포구역소(소재지: 양화정) 당산정·영등포정·여의도정·도림정·신길정·양화정·양평정·본동정·노량진정·상도정·흑석정·동작정 |
| 성동구 | 상왕십리정, 하왕십리정, 마장정, 사근정, 행당정, 응봉정, 금호정, 옥수정, 신당정 |
| 종로구 | |
| 서대문구 | 부암정, 홍지정, 신영정, 은행정(銀杏町), 송월정, 홍파정, 평동정, 교남정, 교북동, 서소문정, 정동정(貞洞町), 화천정(和泉町), 의주통1정목, 의주통2정목, 중림정, 봉래정3정목, 봉래정4정목, 죽첨정, 합정(蛤町), 미근정, 북아현정, 냉천정, 천연정, 옥천정, 관정(館町), 현저정, 대신정, 대현정, 신촌정, 봉원정, 창천정, 연희정, 홍제정, 공덕정, 신공덕정, 아현정, 신수정, 현석정, 구수정, 신정정, 창전정, 상수정, 하중정, 당인정, 서교정, 동교정, 합정정 |
| 중구 | 북미창정, 남미창정, 장곡천정, 태평통1정목, 태평통2정목, 남대문통, 봉래정1정목, 봉래정2정목, 욱정(旭町)1정목(丁目)·2정목·3정목, 장교정, 무교정, 다옥정, 명치정일정목, 명치정이정목, 남산정1~3정목, 영락정1~2정목, 본정1~4정목, 대화정(大和町) 1~3정목, 주정(鑄町), 일지출정(日之出町), 왜성대정(倭城臺町), 동서헌정(東西軒町), 서사헌정(西四軒町), 신정(新町), 화원정(花園町), 병목정(竝木町), 광희정(光熙町) 1정목,2정목, 초음정(初音町), 앵정목1정목,2정목, 황금정1정목(黃金町一丁目)~7정목, 주교정, 방산정, 입정정, 임정(林町), 약초정(若草町) |
| 동대문구 | 돈암정(敦岩町), 창신정(昌信町), 숭인정(崇仁町), 신설정(新設町), 용두정(龍頭町), 안암정(安岩町), 제기정(祭基町), 청량리정(淸凉里町), 회기정(回基町), 이문정(里門町), 휘경정(徽慶町), 전농정(典農町), 종암정(鍾岩町), 답십리정(踏十里町), 성북정(城北町) |
| 용산구 | 삼판통 |
1944년 11월 1일에는 고양군 연희면을 편입시키고, [1] 서대문구와 용산구 일부를 분할하여 마포구(麻浦區)를 신설하였다. [10] [11] 이리하여 경성부의 하부관아로 8개의 구(區)가 설치되어 업무를 수행하였으니 이것이 오늘날 구청(區廳)의 전신이다. [12]
| 개편 전 | 개편 후 |
|---|---|
| 서대문구 공덕정, 신공덕정, 아현정, 신수정, 현석정, 구수정, 신정정, 창전정, 상수정, 하중정, 당인정, 서교정, 동교정, 합정정 | 마포구 공덕정, 신공덕정, 아현정, 신수정, 현석정, 구수정, 신정정, 창전정, 상수정, 하중정, 당인정, 서교정, 동교정, 합정정 |
| 용산구 도화정, 마포정, 용강정, 토정정, 대흥정, 염리정, | 마포구 도화정, 마포정, 용강정, 토정정, 대흥정, 염리정 |
[편집] 시가지 확장
1919년 경성의 인구가 48만 8천명이었던 것이 일본인들이 급속하게 이주하여 오는 등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구는 계속하여 증가하고 일본인 주택지가 새로 조성되었다. 즉 남산 북사면(北斜面) 일대의 필동·남산동·인현동·쌍림동·장충동·회현동과 남대문 밖 서울역 부근의 후암동·청파동·효창동·용문동·원효로 등지의 용산 방면에 일본인 주택지가 생겨 일본식 목조가옥이 늘어서게 되었다. 후에는 을지로와 명동·충무로에 일본인 상가도 형성되었던 것이다. 1935년에 인구가 40만 명으로 증가하였다.
종로·남대문로·태평로를 중심으로 번화한 도심지가 형성되어 가고, 청량리·마포·돈암동·영천(靈泉)·영등포 등의 전차 종점과 전차 노선 부근은 계속 도시화가 이루어졌고, 주변은 근교 농촌으로 있었다. 그러나 아현동 일대와 숭인동·신설동 등지에는 순수한 한국인 주택지가 조성되어 갔다.
일제는 시가지 정리에 주력을 한다고 하여 1913년에는 성벽을 헐어 도로를 만들고 확장한 결과 성곽 도시의 면모를 사라지게 하였고, 1939년에는 남대문에서 종로·을지로·퇴계로 등 도심부는 상업지역, 영등포·용산에서 마포·서강 일대와 청계천 하류의 답십리 일대는 공업 지역, 기타 지역은 주택지구로 정하는 지역제(地域制)를 실시함으로써 서울이 근대적 도시로 발전할 계기를 맞게 되었던 것이다. [1]
[편집] 역대 경성부윤
| # | 이 름 | 임기 |
|---|---|---|
| 1 | 오바 간이치(大庭寬一) | 1910년 10월 1일 ~ 1912년 4월 1일 |
| 2 | 가네야 미쓰루(金谷充) | 1912년 4월 1일 ~ 1919년 12월 4일 |
| 3 | 사이토 레이조(斉藤禮三) | 1919년 12월 4일 ~ 1921년 8월 5일 |
| 4 | 요시마쓰 노리오(吉松憲郎) | 1921년 8월 5일 ~ 1923년 2월 24일 |
| 5 | 다니 다키마(谷多喜磨) | 1923년 2월 24일 ~ 1925년 6월 15일 |
| 6 | 우마노 세이이치(馬野精一) | 1925년 6월 15일 ~ 1929년 1월 21일 |
[편집] 같이 보기
[편집] 주석
- ↑ 가 나 다 라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일제시대의 서울〉
- ↑ 조선총독부령 제7호 (메이지 43년 10월 1일 공포).
- ↑ 가 나 경성부『경성휘보(京城彙報)』260호 1943 pp.1∼6 참조.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동명연혁고』서대문구편 1977 pp.14∼15
- ↑ 이때 시행된 경성부 186개 정, 정목, 동의 명칭은 조선총독부 경기도 고시 제7호 (1914년 4월 1일 시행).를 참조.
- ↑ 조선총독부 경기도 고시 제32호(1936년 3월 23일) 참조.
- ↑ 조선총독부령 제8호 (1936년 2월 14일)
- ↑ 『경성휘보(京城彙報)』제260호 pp.1∼6.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서울600년사』제1권 1977 p.375
- ↑ 조선총독부령 제163호(1943년 6월 9일 공포) 참조.
- ↑ 부제시행규칙등중개정의건(일괄개정 1943.6.9 조선총독부령 제164호).
- ↑ 행정기구. 《서울六百年史》. 서울특별시. 2008년 4월 22일에 확인.
- ↑ 조선총독부령 제350호(1944.10.23 공포)
- ↑ 『경성휘보(京城彙報)』제260호 pp.1∼6.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서울육백년사』제1권 1977 p.3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