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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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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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부(京城府, 게이조후)는 일제 강점기의 서울특별시의 행정구역이다.
조선과 대한제국의 수도였던 한성부는 1910년의 한일 합방과 함께, 같은 해 9월 30일에 시행된 조선총독부지방관관제에 의하여 ‘경성부’로 개칭되어 경기도의 도청소재지가 되었다.[1] 1936년에 도시화가 진행됨에 따라 주변 지역을 병합하여 4배로 확장되었고, 1943년 6월 10일 인구 증가에 따라 구가 설치되었다. 이때 7구가 설치되고, 1944년에 주변 지역을 병합해 마포구를 추가로 설치하였다.
1945년 광복 이후에도 잠시 경성으로 불렸으나, 1946년 10월 18일 미군정에 의하여 경기도에서 분리된 서울자유시로 지정되었다. 이후 대한민국 건국 이후에 서울특별시가 되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목차 |
[편집] 행정구역 변천
1910년 9월 30일 공포, 10월 1일 시행된 〈조선총독부지방관관제〉에 따라 한성부는 경성부로 개칭되고 경기도의 하부 조직의 하나가 되었다. [2] 경성은 수도가 있는 서울이라는 뜻이지만, 그 의미의 약화를 위해서 대개 일본 발음인 ‘게이조’로 불렀다. 1914년 4월 1일부터 경기도는 지금까지 실시해 오던 한성부 방, 계, 동 제도를 폐지하고 경성부의 행정구역을 186개동으로 하여 경성부가 직할하게 하는 대대적인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하였다. [3] 이 때 시행된 경성부 186개 정, 정목, 동의 명칭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서부: 삼판통(三坂通, 현 후암동), 한강통(漢江通, 현 남영동 및 용산동2가)
- 미상: 강기정(岡岐町, 현 갈월동), 고시정(古市町, 현 동자동)
1936년 3월 23일자 조선총독부 경기도 고시 제32호에 따라 경성부의 행정구역의 명칭이 기존의 "~동"(洞)에서 "~정"(혹은 마치, 町)으로 개칭되었고 같은 날, 경기도 고양군 용강면, 연희면, 숭인면 일부 지역이 아래 표와 같이 경성부로 편입되었다. [4]
| 기존의 행정구역 | 경성부의 행정구역 |
|---|---|
| 고양군 용강면 아현리, 여율리(汝栗里) | 아현정, 여의도정 |
| 고양군 연희면 대현리, 노고산리, 창천리, 동세교리, 신촌리, 봉원리, 북아현리 | 각각 대현정, 노고산정, 창천정, 동교정, 신촌정, 봉원정, 북아현정 |
| 고양군 연희면 연희리, 연희면 남가좌리 중 홍제원천(弘濟院川) 좌안 지역 | 연희정 |
| 고양군 숭인면(崇仁面) 돈암리(敦岩里), 성북리(城北里), 안암리(安岩里), 종암리(鍾岩里) | 돈암정(敦岩町), 성북정(城北町), 안암정(安岩町), 종암정(鍾岩町) |
| 시흥군 북면 당산리, 도림리 일부(현재의 도림동, 문래동), 신길리, 영등포읍 | 당산정, 도림정, 신길정, 영등포정 |
| 시흥군 북면 양평리, 김포군 양동면 양화리 | 양화정 |
1943년 6월 10일 인구 증가에 따라 구제가 처음으로 실시되었다. [5] 이전에도 시의 특정 주변지역(영등포,용산,서부(西部),북부(北部))에 출장소(出張所)라는 것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그 출장소는 어디까지나 본청의 하부 행정기관일 뿐 독립적인 행정구역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 때 서울시에는 중구, 종로구, 동대문구, 성동구, 서대문구, 용산구, 영등포구의 7개구가 설치되었으며, 삼판통은 용산구에 편입되게 된다. 1944년 11월에는 추가로 마포구가 설치되었다. [6]
[편집] 하위 행정구역
[편집] 같이 보기
[편집] 주석
- ↑ 조선총독부령 제6호 및 제7호(1910년 10월 1일 공포) 참조.
- ↑ 조선총독부령 제7호 (메이지 43년 10월 1일 공포)
- ↑ 조선총독부 경기도 고시 제7호 (1914년 4월 1일 시행)
- ↑ 조선총독부 경기도 고시 제32호(1936년 3월 23일) 참조.
- ↑ 부제시행규칙등중개정의건 (일괄개정 1943.6.9 조선총독부령 제164호)
- ↑ 행정기구. 서울六百年史. 서울특별시. 2008년 4월 22일에 읽어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