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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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성(北漢山城)
대한민국 대한민국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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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성 대서문
지정번호 사적 제162호
(1968년 12월 5일 지정)
소재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산1-1 외
서울특별시 은평구·성북구·강북구·도봉구 일원
제작시기 조선 숙종 37년 (서기 1711년)
서울의 역사

북한산성(北漢山城)은 북한산에 쌓은 산성이다. 사적 제162호로 지정되었고,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산1-1번지에 위치한다.

조선시대 숙종(1711년)때 고려시대의 중흥산성을 바탕으로 축성된 산성이다. 14개의 문, 3개의 장대와 함께 유사시 어가를 북한산성으로 옮길 행궁을 건립하였다. 둘레가 7,620보(步)이다.

수문부터 용암문까지 훈련도감에서, 용암문에서 대성문까지 금위영에서, 수문부터 대남문까지 어영청에서 각각 만들었다. 지형에 따라 성벽 없이 여장(女檣)만 쌓은 곳도 있는데, 그 길이는 1,457보이다.

역사[편집]

  • 문종 원년(1451) : 북한산을 비롯한 도성 주변지역에 대한 축성을 논의
  • 선조 29년(1596) : 북한산성 축성논의에 따라 이덕형중흥산성을 돌아보고 옴
  • 효종 10년(1659) : 송시열에게 축성 계획을 전했으나 실행하지 못함
  • 숙종 28년(1702) 우의정 신완(申玩)이 성지(城池) 문제를 논의
  • 숙종 37년(1711) 4월 3일 : 축성 시작
  • 숙종 37년(1711) 8월 : 행궁영건청 설치
  • 숙종 37년(1711) 10월 : 완공
  • 숙종 38년(1712) 4월 : 숙종이 중성을 쌓도록 지시
  • 숙종 38년(1712) 5월 : 행궁 완공
  • 숙종 40년(1714) : 중성문 완성
  • 1760년(영조 36년) : 소남문에 문루를 올림
  • 1765년(영조 41년) : 소남문의 이름을 대남문으로 바꿈
  • 1996년 : 서울대박물관에서 북한산성 지표조사
  • 1999년 : 단국대학교 매장문화재연구소가 북한산성 행궁지 지표조사
  • 2009년 : 경기문화재단 북한산성행궁지 종합정비 기본계획 발간
  • 2011년 : 한울문화재연구원 고양 북한산성행궁지 시굴조사

규모[편집]

  • 누각 : 3개
    • 세심루 : 서암사 앞에 있다.
    • 항해루 : 중흥동 입구 계곡 지나서 있다(용학사 앞에 있다)
    • 산영루 : 중흥사 앞에 있다.

유적[편집]

  • 북한산 승도절목 명문(北漢山 僧徒節目 銘文) : 북한산 용학사 아래 비석거리 내 화강암 암벽에 새겨진 명문이다. 조선 시대 철종 6년(1855)에 북한산성 내의 사찰이 피폐하고 승도가 흩어짐이 승병대장인 총섭(總攝)의 책임인 바 그의 임용시 폐단을 없애기 위한 규칙을 새겨 놓은 것이다. 규모는 가로 226.5cm, 세로 107.5cm이다.
  • 북한산성 금위영 이건 기비(北漢山城 禁衛營 移建 記碑) : 대동문 안에 있던 금위영숙종 41년(1715)에 보국사 아래로 옮긴 기념으로 세운 비석이다. 뒷면이 땅에 묻혀 있는 와비(臥碑)이다.
  • 북한산성 금위영 유영지(北漢山城 禁衛營 留營址) : 효율적인 산성 자치와 관리를 위하여 금위영 유영을 둔 터이다. 지금은 금위영이건기비를 비롯하여 가로 4m, 세로2m 크기의 건물 기단, 주춧돌 9개, 돌계단 2개소, 장대석 7개, 석누조 1개, 무너진 담장터만이 남아 있다.
  • 북한산성 어영청 유영지(北漢山城 御營廳 留營址) : 대성문 안쪽에 어영청 유영을 두었던 터로, 19세기 말에 관리소홀로 방치되다가 소멸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없으며 오래된 석축, 주춧돌, 돌담 등이 흩어져 있다.
  • 북한산성 훈련도감 유영지(北漢山城 訓鍊都監 留營址) : 효율적인 산성 자치와 관리를 위하여 훈련도감 유영을 둔 터이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없으며 총 길이 200m, 높이 7m에 이르는 긴 석축과 각 건물에 사용되었던 주춧돌, 기단석, 대석과 우물, 연못자리 등이 남아 있다.
  • 북한산성산영루지(北漢山城山映樓址) : 북한산성 중흥사 앞에 위치해 있는 조선후기의 누각으로, 산그림자가 수면 위에 비치는 곳이라 하여 산영루라 이름붙였다. 17세기 이전부터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며, 1915년과 1925년 홍수로 누각은 사라지고 초석 10매만이 남아 있다.
  • 북한산성 상창지(北漢山城 上倉址) : 조선 숙종 37년(1711) 북한산성 축성 이후 전란을 대비하여 양곡을 보관하던 창고터로 북한산성행궁 아래에 있다. 규모는 대청 18칸, 내아 12칸, 향미고 63칸, 군기고 3칸, 집사청 3칸, 군관청 4칸, 서원청 4칸, 고지기집 5칸, 월랑 2칸, 각문 7칸 정도였고, 19세기 말에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 북한산성 중창지(北漢山城 中倉址) : 조선 숙종 37년(1711) 북한산성 축성 이후 전란을 대비하여 양곡을 보관하던 창고터로 중흥사 앞에 있다. 규모는 대청 6칸, 향미고 78칸, 고지기집 5칸, 대문 2칸 정도였고, 19세기 말에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 북한산성 하창지(北漢山城 下倉址) : 조선 숙종 37년(1711) 북한산성 축성 이후 전란을 대비하여 양곡을 보관하던 창고터로 서문 안에 있다. 규모는 대청 6칸, 향미고 34칸, 고지기집 8칸, 대문 2칸 정도였고, 19세기 말에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 북한산성 선정비군(北漢山城 善政碑群) : 현존하고 있는 비의 숫자는 총 26기로 이 중에 옥개석을 모두 갖춘 것은 몇 기 되지 않으며 대부분 훼손된 상태이다. 비문에 새겨진 기록을 통해 본 비의 건립 시기는 모두 19세기 이후이다.

같이 보기[편집]

바깥 링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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